베트남견문록(3) 수용소

작성일
2016-05-05 17:09
조회
1465

베트남 견문록(3) 수용소


 

대략 4시간 반 정도의 소요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마중나온 은주씨 부부와 함께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의 풍경도 눈길을 끈다. 차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거리는 대략 1시간 정도? 길가의 풍경이 과연 베트남이다.

DSC09020

베트남의 풍경은 열심히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사탕수수를 팔고 있는 풍경에서 남국의 느낌이 그대로 생생하게 전해 진다.

DSC09030

하노이 구경도 식후경이다. 우선 맛있는 걸로 손님 대접 한단다. 메뉴를 보라는데 앗~! 한자가 한 글자도 없다. 이것 참 생소하구먼.... 대만이나 중국에서는 그래도 글자를 보고 대략 무슨 의미겠거니~ 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눈까리가 발바닥이다. 온통 베트남 문자들 뿐이다. 길가의 간판도 마찬가지이다. 난관이다. ㅋㅋㅋㅋ

DSC09042

오호~! 식당 풍경 낯설다. 그래서 좋다. 여행자에게는 낯 선 풍경일수록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더욱 좋다. 메뉴를 보면 뭐하노~ 어련히 잘 시켜 주려니. 그냥 풍경이나 스케지 하는 거다. 좋구먼~ 여행 나온 것 같다.

20160426_134332

쌈을 싸 준다. 그야말로 월남쌈이다. 이렇게 본토에서 먹어야 제 맛이 느껴지지~ 그야말로 바삭바삭한 것이 일품이다. 원래 탐식가인 낭월의 혀는 마구마구 춤을 춘다. 아, 식탐가(食貪家)가 아니라 탐식가(探食家)이다. 오해가 없으시길 ㅋㅋㅋ

DSC09049

한 상~ 그득한 베트남 요리로 허기 진 배를 가득 채운 일행들의 표정이 여유롭다. 먹은 놈은 맘이 너그러워진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다만, 물 한 컵도 공짜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돈이고 물수건도 돈이란다. 또한 한국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DSC09050

누가 봐도 깃발부대이다. 점심을 먹고 차를 기다리는데 후끈후끈 한다. 하노이의 날씨라고 이해를 하지만 그래도 더운 것은 질색인 낭월에게는 감내 해야만 할 난코스 중의 하나이다. 남편과 다음의 코스에 대해서 의논하는 은주씨~!

DSC09053

길거리의 오토바이야 대만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다만 간판이 전혀 익숙하지 않다. 영어도 아닌 것이 알파벳의 글자에 깃발과 꼬리를 달고 있는 것에서 참 알쏭달쏭하다는 느낌만 증폭된다. 과연 태국과는 전혀 다른 문자들이다. 왜 이런 문자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그게 궁금하다. 궁금해~!!

DSC09060

잽싸게 눈알을 굴려보지만..... 뭐 이렇다. 대충 짐작으로 때려 잡을 벗님이시라면 읽어 보시라고 이렇게 떡 하니 안내문을 한 장 올려 놓는다. ㅋㅋ 무엇이 보이시는지?

DSC09064

3만동, 입장료이다. 이건 알겠다. 그래서 열심히 암산모드로 들어간다. 음.... 공 하나 빼라고 했으니 3천동, 이것을 반으로 나누랬으니 1500원이로구먼. 환산하기 참 쉽죠잉~~!!

DSC09065

수용소이다. 전쟁의 포로수용소가 아니라 베트남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힌 사람들을 가두는 수용소이다. 독립투사들을 감금하는 곳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 수용소를 관리한 사람은 프랑스인들이라는 것을 은주씨의 설명을 통해서 이해 했다. 비로소 인도차이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머릿 속에서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었다.

영화도 있지 않은가,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지에 대한 민중들의 운동과 탄압과 고통들... 우리는 일제침략기에 대해서 알고 있으므로 100% 공감이 되지만 그러한 행위를 한 것이 일본 뿐만이 아니라 점령자들은 모두 같았다는 공통점에서 인간의 바탕을 넘겨다 본다. 누구에게나 완장이 주어지면 폭군이 될 수 있음을.......

DSC09071

피해자는 한국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가해자들의 행색에서 일본인이 아닌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익숙한 쇠고랑이며, 몽둥이다. 아, 일본도 대신 몽둥이가 다르구나..... 힘이 없으면 이렇게 된다. 집을 떠나면 애향인이 되고, 나라를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우리나라 "대한민국~~!!" 이만하면 감사하다. 고오롬~!!

DSC09081

사진자료의 위대함이란 이런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한 장의 사진으로 충분히 그 정황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기에.....

DSC09083

그런데.... 겹치는 영상이 있다. 따이한의 베트남 전쟁 개입..... 미국의 요청이라고 하지만 국가의 재건을 위한 다는 명분과 동맹을 지킨다는 이유 등등을 논하지만, 또 한 돈벌이의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베트남 국민에게 어떤 일들을 저질렀을지.... 이렇게까진 몰라도 살해, 폭행, 강간..... 문득 대한민국인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부끄럽다. 자꾸.... 부끄러워진다. 내 탓은 아닐지라도 나도 어려서 노래를 불렀다.

"아느냐 그이름 무적의 사나이~~"

초등학교에서 불렀던 노래들은 맹호부대, 청룡부대, 백마부대, 비둘기부대의 찬가들이다. 이것은 결국 침략자들을 위한 응원가가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낭월, 아니 박주현도 일종의 시대적 공범자가 아니었던가.....? 동네 친구의 삼촌이 월남에서 칼라테레비를 사왔다고 자랑하는 것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왜 그런 삼촌도 없는가를 생각했었지....

연일 들리는 승전보만 알고 베트콩을 무찌르는 것이 무슨 지구의 최대 위대한 평화 전쟁이라도 되는양.... 아, 참으로 부끄러웠다. 여행 첫 날에 이런 감상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원취저신이라고 프랑스의 탄압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젖어본다.

DSC09102

벗님은 보셨는가? 이것이 바로 단두대이다. 저 프랑스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앞에 서기를 기다렸다가 셔터를 눌렀다. 그래야 그 크기가 가늠이 되겠기로.... 아니면, 저 여인도 만약에 프랑스 인이라면, 연대적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음을 은연 중에 말하고 싶었을 수도....

DSC09107

저 거대한 칼날 앞에 인간의 목은 무우처럼 잘려 졌겠지.... 그것을 알면서도 베트남 독립을 위해서 저항했던 위대한 사람들.....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모습... 요즘의 보트피플과 겹치면서 새삼 나라가 존재함에 감사를 드리게 된다. 감정을 이입해 보니 과연 그들의 고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싶다. 이러한 점에서는 대만과 판이하게 다르다.

대만도 포르투칼의 식민지, 일본의 식민지로 지냈지만 이렇게 고통을 당했다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물론 그런 흔적도 있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하노이의 그 역사적인 상처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세계를 향해서 외치고 있음을..... 베트남의 모습을 단적으로 이해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좀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지식인의 자료를 찾아 본다.

 

★★★★★★★★★★★★★★★★★★★★★★★

베트남에서 프랑스의 식민지화와 독립의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862년 코친차이나 동부3성(베트남동남부지역과 메콩강삼각지역 동부지역)이 프랑스 식민지화되었음.


1867년 코친차이나 서부3성(메콩강삼각지역 서부지역)이 프랑스 식민지화되었음.


1883년 아르망조약(제1차 Hue 조약)에 의해 베트남 전지역이 프랑스 식민지화되었음
           통킹(북부지역)-간접통치, 안남(중부지역)-베트남 자율 통치, 코친차이나(남부지역)-직접통치


1885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전체에 프랑스령인도차이나를 설치하고 베트남도 이에 편입되었음. 


1840년 프랑스 비시정권(독일점령하 괴뢰정권)에 의해 독일과 동맹국인 일본군의 주둔이 허락됨.


1945년 3월 일본군이 프랑스군을 축출함(일본 괴뢰정권인 베트남제국 탄생) 


1945년 8월 일본 항복 선언한 뒤 프랑스군이 재진출함(2차세계 종전후 북베트남은 중국이 남베트남은 영국이 분할 점령하기로 하였지만 중국과 영국이 프랑스군에 권한을 넘겨줌)


1945년 9월 2일 호치민 주석이 베트남 독립을 선언함


1954년 딘빈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하여 프랑스군이 축출됨,


1954년 7월 제네바 협정에 의해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권은 불인정되고 베트남은 위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 분단으로 이어짐.


★★★★★★★★★★★★★★★★★★★★★★★★★★★★

그러니까 이 자료에 의하면, 대략 1862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꼽짝꼽작....) 83년... 대략 80여 년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다는 이야기구나..... 그 사이에 한문은 사라지고 말았겠다는 짐작을 해 본다. 그리고는 프랑스의 문자를 베트남화 시킨 표기법이 탄생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본다. 그래서 오늘날의 베트남 문자가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그런데 짐작과 현실은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검색을 해 보니까 베트남의 문자와 프랑스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던 것 같아서이다. 아무래도 잘 아는 지식인의 설명이므로 타당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여기에 옮긴다.

★★★★★★★★★★★★★★★★★★★★★★★★★★★★

언어


베트남의 공식 언어는 베트남어이며 로마자로 적는다. 베트남어는 단철어(單綴語)로 6가지의 성조(聲調)가 있다. 오랫동안 지배해온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가 사용되고 있으며 음역부분에서는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꾸옥 응으(quốc ngữ,國語)로 불리는 이 로마자 표기는 16세기부터 가톨릭 선교사들이 현지어를 로마자로 옮겨 적으려는 작업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예수회의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는 포르투갈어 철자법을 바탕으로 최초의 안남어 사전을 만들어냈다. 


이 로마자 표기법은 현지인들의 교육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1945년 이후부터 그간의 베트남어가 한문에 익숙한 일부 지식인층에 국한되었고, 프랑스 식민통치자들은 베트남을 지배할 목적으로 베트남의 전통적인 사상을 말살하기 위해서 베트남 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꾸옥 웅어를 사용하게 하였다. 


초기엔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으로 로마자에 거부감을 표시하던 베트남의 독립 운동가들은 베트남 민중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근대사상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한문이나 쯔놈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여 로마자의 편의성을 인정하고 이후 로마자를 베트남어의 새 문자로 적극 받아들여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한자문화를 완전히 대체하였다. 이 외에도 베트남은 55종에 달하는 이른바 소수민족의 언어가 있으며 이것들은 다시 6, 7개 정도의 언어 집단으로 나뉜다.


★★★★★★★★★★★★★★★★★★★★★★★★★★★★


 이로 미뤄서 보건대, 베트남에 간여한 나라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한자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그 음만 남아서 베트남화 되어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각설하고.


DSC09108

감옥에서 바라 본 창문이다. 높기도 하다. 탈출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여하튼 이 안에서 밖을 보면서 나라의 독립을 염원했을 투사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서 수용소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