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제42장. 적천수/ 16.왕성(旺盛)하나 맹렬(猛烈)하지는 않아

작성일
2024-04-30 05:13
조회
166

[516] 42. 적천수(滴天髓)

 

16. 왕성(旺盛)하나 맹렬(猛烈)하지는 않아

========================

 

그러자 현담이 백발에게 말했다.

그랬군. 장부(丈夫)의 기백(氣魄)이로구나. 열심히 정진하면 큰 깨달음을 얻겠구나. 허허허~!”

백발이 합장하고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채운을 가리켰다.

채운이던가? 다음 구절을 풀이해 보게나.”

! 태사님, 채운입니다. 다음 구절은 합임이충(合壬而忠)’이네요. 이것은 ()과 합()하여 충성(忠誠)한다는 뜻인데 정()을 일간(日干)으로 하면 임()은 정관(正官)인지라 정관(正官)은 나를 다스리는 자이므로 주군(主君)의 의미로 삼아서 충성하는 것으로 봤어요. ()과 합하는데 왜 충성한다고 했는지도 생각해 봤습니다. 합을 하지 않으면 정()은 신()을 공격하여 을()을 보호하게 되는데 임()이 있어서 합이 되면 임()의 뿌리가 되는 신()을 극하지 않으므로 충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께름칙하기는 합니다. 단지 생극으로 논하면 될 것인데 무슨 연유로 효도(孝道)니 충성(忠誠)이니 하는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혹 화목(化木)의 의미를 담았을까요? 그렇게 되면 임수(壬水)가 백성인 병화(丙火)를 공격하게 되고 그것은 폭군(暴君)을 의미하는데 화목(化木)이 되어서 오히려 천리(天理)에 순응(順應)하는 현군(賢君)이 되도록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어요.”

채운의 궁리가 날이 갈수록 현묘(玄妙)한 경지로 나아가고 있구나. 그렇게 계속 추적(追跡)하다가 보면 또 새로운 이치도 발견하게 되겠네. 말한 그대로 충()은 임()을 말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갑()을 의미한다고 해도 될 것이네. 도처(到處)에 숨겨진 기문의 의미를 여기에 적용해서 생각해 본다면 갑은 영원히 군주(君主)란 말이네. 그러니까 임()이 병()을 공격하고 경()의 생을 받고 있는데 정()과 합을 하게 되면 화목(化木)이 되어서 오히려 갑()의 기운을 돕게 된다는 것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겠지. 물론 기문을 논하던 시절에는 당연히 화목(化木)한다고 할 것이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으니 당연하리라고 여겨지는군.”

현담이 이렇게 풀이를 거들어 주자 채운이 다시 합장하고 말했다.

아하! ()을 아직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어요. 정관(正官)인 임()이라서 군()으로만 생각했는데 갑()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는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 역시 채운은 너무나 많이 부족하네요. 호호호~!”

채운이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백발이 손을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현담이 말했다.

, 백발도 할 말이 있었나? 어디 말해 보게.”

채운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든 생각입니다. ()은 충성(忠誠)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극히 유교(儒敎)스러운 가르침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맹자(孟子)의 향이 풍깁니다. 충효(忠孝)소학(小學)에서 나오는 말인데, 하고 많은 이야기 중에서 하필이면 충()과 효()를 언급한 것은 유생(儒生)들에게 명리학에서도 충효(忠孝)를 논하는 이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싶습니다. 이것은 경도의 뜻이거나 혹은 뒤에 누군가 덧붙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담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물었다.

아니, 누가 봐도 부모에 효도하고 임금에 충성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그것조차도 경도의 의도였는지 의심스럽단 말인가?”

아닙니다. 이것은 결코 자연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까닭입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그 자식은 또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는 말이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효()는 늙은이들이 자신들의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 만들어 놓았을 따름입니다. 하물며 자연의 도리(道理)에서 어찌 왕이 있고 신하가 있으며 충신이 있고, 반역이 있겠습니까? 왕이 자신의 권력을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굴레를 만들어 놨을 뿐입니다.”

오호! 일리가 있군. 그러니까 적천수의 원문이 잘 못 되었다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했으면 옳다고 보는가?”

역시 백발은 생각이 단호했다. 현담의 물음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만약에 경도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가 있다면, 정화유중(丁火柔中), 내성소융(內性昭融), 왕이불렬(旺而不烈), 쇠이불궁(衰而不窮)까지만 경도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위치를 살짝 바꿔놓은 것은 황제의 눈치를 본 어느 권력자(權力者)의 농간(弄奸)이었을 것으로 밖에는 안 보입니다.”

과연 날카로운 지적이로군. 그렇다면 어떻게 배치해야 한단 말인가?”

현담이 다시 묻자, 백발이 정화(丁火)편을 다시 정리해서 읽었다.

 

정화유중 내성소융(丁火柔中 內性昭融)

왕이불렬 쇠이불궁(旺而不烈 衰而不窮)

포을이효 합임이충(抱乙而孝 合壬而忠)

여유적모 가추가동(如有嫡母 可秋可冬)

 

이렇게 고쳐서 읽은 다음에 다시 자기의 생각을 피력(披瀝)했다.

깊은 이치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놓고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전반부의 내용에 대해서만 풀이를 해 보겠습니다.”

 

음화(陰火)인 정()이 만물의 한가운데에서

안으로 품은 성품은 밝고도 두루 융합하니

아무리 왕성해도 병화처럼 맹렬하지 않고

무력하게 쇠락해도 영원토록 다하지 않네

 

백발이 풀이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현담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과연! 명쾌한 풀이로군. 정화편의 핵심이 여기에 다 들어있지 않으냔 말이지? 막상 그렇게 바꿔놓고서 읽어보니까 잘 어울리기도 하네. 허허허~!”

참으로 중요한 정화(丁火)의 본질은 여기에 다 있으니 경도의 통찰력(統察力)이 완전히 무르녹았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그 예리한 통찰력으로 다음 구절도 읽어보게.”

현담은 다른 제자에게 시키려고 했던 다음 구절까지도 백발에게 풀이해 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내심으로 놀란 사람은 우창이었다. 명리에 대해서는 별로 깊은 조예가 없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불과 어제 얻은 적천수를 얼마나 읽었기에 오늘 이러한 의견을 제시하는지가 더욱 놀라웠다. 예전부터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다봤으나 이렇게 글자를 바꿔서 봐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생각이 자유로운 백발은 글을 보는 방법도 자유롭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자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백발이 말했다.

태사님께 말씀드립니다. 제자는 글자의 뜻은 이해하겠으나 더 깊은 것을 풀어내기에는 아직도 역부족(力不足)입니다. 다음에 공부를 더 한 다음에 깊은 풀이를 하게 되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백발은 왕이불렬의 의미에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눈치로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풀어내기에는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현담이 염재에게 풀이를 시키자, 염재가 일어나서 풀이했다.

! 알겠습니다. 다음 구절은 왕이불렬(旺而不烈)’입니다. ()은 사물(事物)을 태워서 얻는 불이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태양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렇기에 왕성(旺盛)하다고는 하지만 병화(丙火)처럼 맹렬하게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경금(庚金)을 바라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금이 아무리 밉더라도 음양이 다르기에 맹렬하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과 비교해서 맹렬하지 않다고 하는데 당연히 경()은 정신이라고 했으니 뜨거운 불은 정신(精神)을 강렬하게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서 기문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깨달았습니다.”

염재는 참으로 총명했다. 배운 것은 곧바로 자기의 실력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 먹으면 소화를 시키는 왕성함이 느껴졌다. 염재의 설명이 이어졌다.

, ‘왕이불렬을 십성(十星)으로도 살펴봤습니다. ()의 본질은 정관(正官)입니다. 항상 스스로 이치에 벗어나지는 않았는지를 살피고 합리적(合理的)이고 객관적(客觀的)인 기준선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유중(柔中)’인 것으로도 이해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더라도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땅에서도 아무리 폭염(暴炎)으로 기온이 높더라도 어느 시점을 지나면 다시 가을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왕이불렬(旺而不烈)’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오호! 그럴싸하군. 다음은?”

현담이 잘 풀이했다는 것을 말하자 염재가 다시 다음 구절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한 것에 대해서 풀이했다.

다음은 쇠이불궁(衰而不窮)’입니다. 이것은 앞의 왕이불렬에 이미 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되는 것입니다. 운률(韻律)을 위해서 적어놓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화()의 성품(性稟)은 폭발하는 것이지만 정()은 음화(陰火)이기 때문에 왕쇠(旺衰)의 극단(極端)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해 봤습니다. 가령 한겨울에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땅속은 따뜻합니다.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한겨울에 혹한(酷寒)을 만나면 땅을 파고 움집을 짓습니다. 그 안에서 생활한다면 연료(燃料)를 특별히 갖추지 않더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하(地下)에 있는 용암(鎔岩)의 열기(熱氣)가 쇠()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지상(地上)은 동장군(冬將軍)이 맹위(猛威)를 떨치더라도 지하는 항상 일정한 온기를 함유(含有)하는 까닭입니다. 이러한 이치로 인해서 쇠약해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화(丁火)로 태어난 사주조차도 그렇다고 하는 것은 오해(誤解)가 될 따름입니다. 천간론(天干論)은 사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비중을 두고 말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백발(百發)의 말에 순서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앞의 네 구절은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고, 뒤의 네 구절은 사주에도 적용하는 방법을 말한 것으로 생각했으면서도 그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공덕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염재의 풀이를 듣고서 현담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염재가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마지막 두 구절을 유하(遊霞)에게 풀어보라고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 다음 구절은 고운 모습으로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그대가 풀어볼 텐가?”

유하는 과거에 배우(俳優)를 할 정도로 누가 봐도 화려한 용모인지라 눈에 띄기 마련인데 이렇게 마지막 구절에서 풀이해 보라고 시키는 것은 유하의 공부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가늠한 현담의 배려였다. 표정만 봐도 공부의 이해(理解)가 상급(上級)인지 하급(下級)인지를 바로 알아보는 까닭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청중으로만 두지는 않았다. 내용의 고저(高低)에 따라서 적절하게 발표를 시켜가면서 자극하는 방법을 쓰고 있음을 우창도 알 수가 있었다.

태사님, 유하입니다. 아직 깊은 공부가 부족하여 귀한 가르침들을 나누는데도 어떤 것은 이해되고 또 어떤 대목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모르는 것은 도반과 대화를 통해서 깨달아 가는 것이 기쁠 따름이에요. 유하도 열심히 정진해서 언제나 태사님의 질문을 받고서 자신의 의견을 척척 답할 수가 있으려나 싶은 마음에 부러움만 가득해요. 부족하지만 영광으로 생각하고 힘써 풀이를 해 볼게요.”

부족하단 말은 하지 말게. 여기 앉은 모두는 다 부족하니까. 허허허~!”

현담의 격려에 자신감을 얻은 유하가 말을 이었다.

태사님의 말씀 고맙습니다. 그럼 풀이해 보겠습니다. ‘여유적모(如有嫡母)’적모가 있다면으로 조건을 붙인 것이에요. 그리고 가추가동(可秋可冬)’은 계절(季節)을 말하는 것이니 화기(火氣)가 쇠약한 가을이나 무력한 겨울이 되어도 견딜 수가 있다는 것이니까 여기에서 적모(嫡母)는 목생화(木生火)를 하는 갑을(甲乙)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그런데 적모라는 말은 잘 모르겠어요. 생모(生母), 양모(養母), 계모(繼母)는 알겠는데 적모는 어떤 어머니일까요?”

유하가 멀리에서 들어도 또렷하게 들리는 배우(俳優) 특유의 음성으로 풀이해 놓고도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지 다시 현담에게 물었다. 그러자 현담이 미소를 짓고는 유하에게 설명했다.

유하의 음성은 참 아름답구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꾀꼬리의 소리를 갖고 있으니 큰 보물인 줄을 알고 깊이 공부하여 사람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바라네. 적모라고 할 적에는 정화(丁火)는 서출(庶出)이 된다는 뜻이라네. 즉 서자(庶子)라는 말이지. 쉽게 말하면 첩()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말이겠군. 첩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낳은 어머니는 생모(生母)라고 하는데 부친의 정처(正妻)도 어머니라고 한단 말이네. 이것을 문어(文語)로 한다면 적모가 되는 것이라네. 그러니까 생모(生母)는 정인(正印)을 말하니 갑목(甲木)이 되는데 이번에 말하는 것은 계모(繼母)를 의미하니까 을목(乙木)을 말한다고 이해하면 되겠군. 어떤가?”

현담의 설명을 듣고서 유하는 알듯 모를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음성에 대한 과찬의 말씀 고맙습니다. 태사님의 말씀으로 적모의 뜻은 잘 알았어요. 그런데 어차피 목생화(木生火)가 아닌가요? 같은 목생화인데 무슨 까닭으로 갑()은 안 되고 을()은 된다는 것인지를 모르겠어요. 그 차이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당연히 목생화(木生火)라네. 그럼에도 왜 구분했겠나? 그것은 오행론(五行論)과 천간론(天干論)의 의미가 다른 까닭이라네.”

이렇게 말하던 현담이 문득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서 보여주며 말했다.

이 찻잔은 음양(陰陽)으로는 차와 더불어 대입하면 음()이 되고, 차호(茶壺)와 더불어 대입하면 양()이 되지만, 오행(五行)으로 보게 되면 금()이라고 한다네. 그런데 다시 천간(天干)에서 보게 되면 을()이 된단 말이네. 어떤가? 이러한 변화가 잘 구분이 되는가?”

현담은 천천히 말했지만 유하는 이미 머릿속이 복잡해졌는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어머나! 그러한 이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때로는 왜 말이 다른가만 생각하고 아직도 공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만 여겼는데 태사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이미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었네요. 같은 여인이라도 아기가 볼 적에는 엄마이고 남편을 볼 적에는 아내이지만 엄마가 볼 적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기이듯이 말이죠?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여태 몰랐을까요?”

그것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나 보군. 그렇기에 이렇게 문득 깨닫는 즐거움이 주어지지 않느냔 말이네. 허허허~!”

맞아요. 궁금하다가 깨달으면 더 재미있죠. 마치 목마른 사람이 시원한 물을 얻는 것처럼요. 그러니까 간법(干法)으로 본다면 적모인 을()이 생하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네요? 그 이유는 알 것 같아요. ()은 바람이고 을은 식물(植物)이라고 배웠거든요. 정은 연료(燃料)가 필요한 불이기도 하므로 을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야 갑이 있으면 다 갖춘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을()은 신유금(申酉金)을 만나거나 가을과 겨울을 만나거나 항상 필요로 하는 것이란 가르침이네요. 그것은 불은 연료를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으로 보면 되겠어요. ()을 말할 적에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정화편에서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음양(陰陽)의 차이가 천리지격(千里之隔)이라는 의미였어요.”

그제야 궁금했던 것들이 모두 풀렸다는 듯이 합장하며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창에게 말했다.

우창은 어떤가? 혹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해 보게.”

현담은 우창의 말을 듣고 오늘 공부를 마무리할 생각으로 물었다. 우창도 약간의 의문이 있던 차에 물어주자 일어나서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 백발의 충효(忠孝)에 대한 의견도 들어볼 만했는데 순서까지 바꿔서 풀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듣고서는 내심 놀라기도 했습니다. 정화(丁火)를 공부하면서 새삼스럽게 그 광대(廣大)한 역할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왕이불렬하고 쇠이불궁한다는 의미는 자연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로 인해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보조(補助)하는 역할을 하게 되니 병()이 앞서고 정()이 뒤선다는 것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 병정이 앞서고 뒤선다는 말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걸. 어디 모두 알기 쉽게 풀이해 주게.”

가령 한여름에 폭염(暴炎)이 대지를 후끈후끈하게 달아오를 무렵이면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만물을 위해서 자비(慈悲)를 베풀어 주는 것이 정화(丁火)임을 생각하면서 새삼 감동했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도 언뜻 이해되지 않았는지 다시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더 설명을 들어야 하겠네.”

여름의 구름은 계수(癸水)가 하늘로 올라가서 만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맞아!”

강하(江河)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기 위해서는 정화(丁火)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됩니다. 우선 수증기(水蒸氣)가 되어야 하는데 열기(熱氣)가 없이는 불가능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수증기를 하늘로 운반하는데도 증발(蒸發)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니까 병화(丙火)의 빛을 받아서 열기(熱氣)가 된 정화(丁火)는 다시 수분(受粉)을 허공으로 올려보내게 되고 이것이 구름까지 된 다음에는 비로소 정화의 일이 끝납니다. 그리고 다음의 일은 무()에게 넘겨주는 것이지요. 무는 중력으로 비구름이 대지를 적시도록 다시 내려보내는 일을 수행합니다. 그러니 여름에는 비를 만드는데 협조하니 자연의 균형을 이루는데 얼마나 큰 공을 세우는지 이해가 됩니다.”

! 그런 이치가 있다는 것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군. 허허허~!”

또 겨울에는 병()도 쇠약하고 정()도 허약합니다. 그렇기에 을()의 도움을 받는다면 비로소 추동(秋冬)의 계절조차도 만물이 얼어 죽지 않고 무사히 겨울을 벗어나서 새로운 봄을 만나게 되는 것을 읽어보면서 마지막 구절을 잘 꾸몄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 정화(丁火)의 핵심(核心)을 잘 정리했군. 그렇다면 오늘의 공부는 이렇게 마무리해도 되겠네. 또 다음에 이어서 토론하도록 하지. 허허허~!”

흡족한 웃음을 웃으며 현담이 돌아가자, 제자들도 서로 뒷이야기를 나누면서 흩어졌다. 그러자 유하를 지켜보던 백발이 유하를 보면서 물었다.

어디선가 안면이 있다고 했더니 우희(虞姬)가 아니었습니까? 어떻게 오행원에서 만나게 되었나 싶어서 반신반의했습니다만, 음성을 들어보고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창이 두 사람을 서재로 데리고 갔다. 연화가 차를 가져와서 한 잔씩 놔주고 돌아가자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 백발에게 들려줬다. 그제야 백발도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인연이란 존재하나 봅니다. 스승님과 유하가 이렇게 만났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입니다. 예전부터 극단(劇團)이 소주(蘇州)에서 공연한다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앞자리에서 극을 보면서 즐거웠는데 요즘은 왠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희가 없어서였나 봅니다. 하하하~!”

백발이 이렇게 반가워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흐뭇했다. 그러자 유하가 말했다.

인연이 있죠. 암요. 호호호~!”

참으로 반갑군. 함께 오행원에서 공부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지.”

백발의 말을 듣고 유하가 말했다.

정말 오늘 공부하면서 백발 선생이 예리하게 파고 들어가는 것을 직접 보면서 소름이 돋았어요. 공부는 단순히 글만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글과 글 사이는 물론이고, 문장(文章)과 문장의 사이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이러한 공부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연마(硏磨)하고 숙성(熟成)해야 가능하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마음도 생겼어요. 오늘의 가르침에 감사드려요. 호호호~!”

내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같이 잘 배워보도록 하세.”

이렇게 말한 백발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허락하시면 백발도 운영하던 명상관을 닫아놓고 아예 오행원에서 기숙(寄宿)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는지요?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 아쉬워서입니다. 같이 뒹굴면서 공부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야 허락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혹 유하의 미모를 보고서 집으로 갈 마음을 잊으신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하하하~!”

우창이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하면서 흔쾌히 허락했다. 이번에는 유하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항상 제자들을 위해서 불철주야(不撤晝夜)로 애쓰시는 것을 항상 지켜보면서 감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촌음(寸陰)을 아껴가면서 수행에 여념이 없으신 도반들도요. 그래서 문득 해 본 생각인데 좀 전에 태사님께서 음성을 남들에게 들려주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생각만 하다가 자신감이 생겨서 말씀드려요.”

, 뭔지 말해 보시게.”

실은 극단(劇團)을 하나 만들고 싶은 생각을 했어요. 학인들의 긴장된 마음도 풀고, 괜찮으면 한산사를 찾아오는 방문자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수도 있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극본(劇本)인데 이것은 스승님께서 써주시면 되겠어요. 그리고 오행원의 제자들도 새로운 경험 삼아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맡아서 연기(演技)를 해 본다면 재미있지 않겠어요?”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이 듣기에도 나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구나 천하를 누비고 다니면서 온갖 경험을 다 쌓은 유하가 있으니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능히 처리할 것으로 봐서 마음이 든든했다. 더구나 한산사의 신세를 지고 있던 차에 연극을 통해서라도 보답이 된다면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승락했다.

그야 당연히 기가 막힌 제안이로군. 그렇다면 점심을 먹고 한산사로 같이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지. 그에 대한 금전은 소주자사(蘇州刺史)에게 맡아 달라고 하면 또한 거절하지 않을 테니 들어가는 비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싶네.”

흔쾌히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유하가 이렇게 말하고 돌아가자, 백발에게 말했다.

실로 연기력으로 말하자면 백발을 빼놓을 수가 없지요. 멋진 실력으로 좌중을 휘어잡아 주기 바랍니다. 하하하~!”

백발은 우창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옛날에 백발도사 시절을 떠올리고서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승님께서 원하신다면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그렇게라도 해서 남들에게 기쁨을 줄 수가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망외소득(望外所得)입니다. 더구나 미색(美色)조차 뛰어난 우희(虞姬), 아니 지금은 유하와 같이 연극을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니 얼마나 재미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백발도 흔쾌히 말하자 한산사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