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제42장. 적천수/ 14. 주조야서(晝鳥夜鼠)

작성일
2024-04-2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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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42적천수(滴天髓)

 

14. 주조야서(晝鳥夜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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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서재로 돌아가니까 오랜만에 백발(百發)이 찾아와서는 매화나무를 보면서 혼자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침에 우창이 마시다가 놔둔 차호에서 따라 마시는 것이었다. 우창을 보자 반겨 맞으면서 말했다.

스승님, 문안드립니다. 한동안 뵙지 못해서 잘 계시나 하고 나들이했습니다. 날씨도 동풍이 불어와서 따사로워서 들앉아 있으려니 갑갑하기도 했고 말이지요. 하하하~!”

우창오 오랜만에 쾌활한 백발을 보니 반가웠다.

나도 바빠서 나들이한 지가 오래되었군. 그간 잘 지내셨겠지요? 나들이를 해 주셨으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하하~!”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다가 백발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심심해서 한 바퀴 돌다가 강당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무슨 공부를 하시는 것입니까?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혹여라도 방해될까 싶어서 스승님께 여쭤보려고 참았습니다. 그리고 스승님만이 아니라 다른 분도 있으신 것 같던데 말입니다.”

, 현담이라는 명인을 만났지뭡니까. 그래서 지금 적천수(滴天髓)라는 책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혹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듣느니 처음입니다. 이름만 봐서는 명서(命書)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책입니까?”

우창은 백발이 묻자 들고 있던 책을 꺼내어서 보여주며 말했다.

백발은 상서(相書)에 정통(精通)하고 있으니 명서(命書)는 관심이 없으실 겁니다. 이 책은 경도라고 부르는 신비(神秘)의 인물이 남긴 책입니다. 내용이 상당히 심오해서 스승님을 통해서 그 절학(絶學)을 전수(傳受)받고 있지요.”

아니, 스승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참으로 대단한 기서(奇書)가 분명하겠습니다. 아무리 상서에 약간의 식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귀한 가르침이 깃든 책을 보고서 어찌 욕심을 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자도 공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야 원하신다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언제든 참석하셔서 자유롭게 문답을 나누면 됩니다. 우창이야 환영이지요. 하하하~!”

언뜻 듣기로 삼합을 이야기하셔서 풍수 공부를 하시나 싶었습니다. 명학에서도 그러한 논리가 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동한 것이기도 합니다.”

, 그러셨군요. 오래도록 서로 연관이 있는 오술(五術)이니까 어디에도 같은 공식이 난무(亂舞)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오행원에서는 그러한 논리는 죽은 법이거나 외부에서 묻어온 잡동사니로 간주해서 사용할 가치가 없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러니까 논외(論外)로 하는데 마침 내용이 그런 이야기가 있기로 토론했던 것이지요.”

, 그러셨습니까? 풍수가(風水家)는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명가(命家)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취급을 받기도 하는군요. 정말 올해가 들면서 백발도 공부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니 말입니다. 오늘 마침 스승님을 뵈었는데 추명(推命)을 받아보면 어떻겠습니까?”

그야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마침 점심을 먹을 시간이 다가오니 밥을 먹고 나서 이야기를 나눠도 되지 싶습니다.”

이렇게 일단 이야기를 정리하고는 이내 목탁소리가 들리자 같이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는 백차방으로 향했다. 언제나 열성적인 제자들은 백차방의 문지방이 닳도록 넘나들었다. 이미 십여 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오늘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삼고서 토론하고 있다가 우창과 백발이 들어가자 모두 일어나서 합장하고 인사를 했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우창이 앉으라고 하고서 제자들이 재빨리 비워주는 가운데의 두 자리에 앉자 언제나처럼 연화가 찻잔을 가져다가 오룡차(烏龍茶)를 따라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한 모금 마시자 모두의 눈길이 처음 보는 백발에게로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우창이 소개했다.

이분은 백발도인으로 모처에서 문성명상관(文盛命相館)을 운영하는 선생이라네.”

그러자 제자들이 모두 합장하면서 말했다.

백발도인을 뵙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받은 백발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도인이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추문성(鄒文盛)이라고 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스승님을 뵙고 싶어서 왔다가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열기가 부러워서 한 자리 끼워달라고 보채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환영합니다~!”

제자들도 일제히 환영했다. 백발이 자리에 앉아서 우창에게 다시 물었다.

스승님 아까 말씀하신 추명(推命)은 지금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제자들과 함께 토론하는 것도 재미있겠는데 그래도 되지 않겠습니까?”

백발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얼른 천세력을 찾아서 필묵과 함께 옆에서 대기했다. 생일만 알려주면 붓을 들어서 적을 준비를 즉시로 갖췄다. 그렇게 해서 찾은 백발의 사주는 신묘(辛卯)년 경인(庚寅)월 병오(丙午)일 기축(己丑)시였다. 염재가 큼직하게 적어서 앞에다 걸었다. 모두 명식(命式)을 들여다보면서 사주를 궁리하느라고 잠시 조용했다.

 

 


 

 

백발의 명식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명이 가장 먼저 말을 꺼냈다. 모두 진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백발은 자신의 팔자가 어떻게 풀이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설명을 들었다.

스승님, 우선 용신(用神)은 상관(傷官)으로 봐야 하겠죠? 재성(財星)은 있으나 뜬구름이니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하겠어요. 다만 달변(達辯)을 타고 났으니 입만 있으면 어디에서도 밥을 만드는 능력이 탁월해 보여요. 젊어서는 다소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겠으나 중년 이후에는 자신의 자리를 확실하게 잡고서 일문(一門)을 일으켜 세울 수가 있는 것으로 보여요. 진명이 보이는 대로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어요. 호호~!”

진명이 풀이를 마치고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는 백발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단지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놓고서 그렇게 이 백발의 삶을 한 줄로 꿰어버린단 말이오? 젊은 낭자의 공부가 예사롭지 않구료. 과연 백발이 살아온 여정이 지금 낭자가 단숨에 풀이한 내용과도 별반 다르지 않소이다. 추명하는 깊이에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오. 하하하~!”

백발이 순순히 동의하면서 말하자 진명이 오히려 감탄하면서 말했다.

정말이에요? 배운 대로 풀이를 하고 싶었는데 사실이 그렇다고 하시니 오히려 진명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어요.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 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에게 공을 돌렸다. 사실 백발의 사주는 웬만큼 공부한 사람이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풀이할 수가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 사주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채운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채운도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성품이 곧고 직설적(直說的)이라서 숨기거나 감추지를 못하기 때문에 겉과 속이 다른 말씀은 잘 못 하실 것으로 읽었어요. 다만 일단 마음이 내킨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서 요설변재(樂說辯才)로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능력이 탁월하기에 누구라도 일단 언쟁(言爭)을 한다면 이기는 것은 포기해야 할 거예요. 더구나 가슴 속에는 웅지(雄志)가 있어서 소소한 허례허식(虛禮虛飾)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서 마음을 열기 때문에 오해도 잘 받을 수가 있겠으나 일단 마음이 통한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져버리지 않을 거예요. 그야말로 호걸(豪傑)의 성품이라고 해도 되겠어요.”

채운의 풀이를 들으면서 우창은 문득 옛날에 백발도사로 위세를 부리던 풍경이 떠오르면서 미소를 지었다. 사주를 보는 순간 그러한 것이 모두 이해되었다. 더구나 병오(丙午)일주가 상관(傷官)을 용신으로 삼고 있는데 우창이 무진(戊辰)이어서 인연의 이치도 묘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에 손을 들고 말한 사람은 자원(慈園)이었다.

싸부, 올해는 계유(癸酉)년인데 운으로 보면 재관(財官)이라서 상관격(傷官格)으로 봐서는 길하다고만 하기는 어려워 보여요. 다행히 상관이 재성(財星)을 옆에 두지 못해서 허전했는데 유금(酉金)이 들어오는 바람에 오히려 나름대로 결실을 이룰 수도 있겠는데 이러한 경우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서 풀이하는 것이 타당할까요?”

자원은 상관견관(傷官見官)의 폐해(弊害)에 대해서 궁금했다. 그래서 올해 어떤 일을 예상할 수가 있을 것인지를 알고 싶었는데 그 말을 듣고서 우창이 설명했다.

그야 일간(日干)이 약하다면 아무래도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할 수가 있겠지. 다만 매우 강한 병오라서 그러한 것은 능히 감당할 것이고, 오히려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강력한 힘으로 밀고 나가서 마침내 결실을 이뤄낼 것으로 보이니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염려할 것이 아니라고 하겠지.”

우창의 설명을 듣고는 신이 난 백발이 말했다.

스승님이 말씀을 듣고 보니 전혀 걱정할 일이 없을뿐더러 결실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봐서 올해의 운도 좋다고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자들의 면상(面相)이 청수(淸秀)한 것이 참으로 청정(淸淨)한 인연들임을 알겠습니다. 이러한 무리에 오히려 백발이 뛰어들어도 될 것인지를 망설이게 됩니다. 하하하~!”

백발의 말을 듣고는 염재가 적천수를 한 권 가져다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염재가 공부 삼아서 필사(筆寫)한 것인데 마침 한 권이 완성되었기로 인연이 닿는 사람을 만나면 주려고 했는데 백발 선생이 그 인연인가 싶습니다. 어차피 공부하시려면 필요할 테니 염재가 기념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보자기에 싼 책을 주자 백발은 감동하면서 말했다.

참으로 공부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무심코 스승님이 보고 싶어서 오행원에 나들이했는데 이렇게 귀한 인연도 만나고 더구나 공부하라고 책까지 선물을 받았으니 반드시 열심히 해서 도반들이 깊은 이치를 깨우치는데 약간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이 닳도록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백발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책을 받았다. 염재도 기쁘게 받아 주니 마음이 흐뭇해서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백발이 우창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스승님, 오늘은 갔다가 내일 다시 시간을 맞춰서 공부하러 오도록 하겠습니다. 미진한 부분은 또 도반들이 이끌어 줄 것으로 생각되어서 마음이 놓입니다. 얼른 가서 책을 먼저 읽어봐야 하겠습니다.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도반 여러분 오늘의 풀이에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백발이 호쾌하게 웃으며 마차를 타고 돌아갔다. 그러자 차를 마시던 현지(玄智)가 우창에게 조용히 말했다.

참으로 활달한 분이시네요. 그런데 오늘 마침 병화(丙火)를 공부했는데 마침 찾아온 손님이 병오 일주라서 그것도 무슨 조짐인가 싶은 생각을 해 봤어요. 이것은 괜한 생각일까요?”

아마도 우리의 학문하는 열정에 반응해서 찾아오게 된 것이 아닐까?”

우창의 말에 모든 대중이 감탄했다. 세상은 혼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서 수레바퀴를 함께 굴리며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지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도 단순히 비밀을 지켜지지 않는다는 뜻만이 아니란 거죠?”

맞아! 그렇게만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고, 그 안에는 우주의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서 우리가 함께 있으므로 비밀도 없고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철학자라고 하겠지.”

참으로 오묘한 가르침이시네요. 오늘 새로운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일렁이게 하네요.”

현지가 가슴에 손을 얹고서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채운도 느낌이 있었는지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스승님, 불경(佛經)에는 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이 거대한 바다의 파도가 되어서 천하를 떠돌다가 인연처에 도달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우주가 알게 된다는 거죠. 하물며 오늘 이렇게나 많은 오행원의 대중의 열기로 병화편을 공부했으니 스승님과 인연이 있던 병오(丙午)에게 어찌 전달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생각도 좋은 생각만 하고 흉악(兇惡)한 생각은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말도 그 말을 듣고는 괜히 나쁜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만 생각했는데 현지 언니의 말씀에 화들짝 놀랐어요.”

맹강녀(孟姜女)만 봐도 알 수가 있는 일이지 않은가? 비록 고사(故事)이지만 그 안에서도 생각하게 되는 의미는 분명히 있으니 말이네. 하하~!”

우창의 말에 현지가 다시 말했다.

어머나! 정말이네요. 맹강녀가 만리장성(萬里長城)에 끌려간 남편을 찾아가서는 그리던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목을 놓아 남편을 부르자 장성이 무너지면서 그 안에 묻혀있던 백골이 맹강녀 앞에 뛰어나왔다는 이야기가 또 이렇게 되살아 날줄은 몰랐어요. 그러고 보면 이미 옛사람도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세상은 한 몸이라고도 하지. 유마거사(維摩居士)라는 사람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문병하러 가서 묻기를 왜 병이 났느냐고 하니까 중생이 병들어서 자신도 병들었으니 중생의 병이 나으면 자기의 병도 나을 것이라고 했다더군.”

! 원래 그런 것이었군요. 정말 별다른 의미 없이 던진 말 한마디로 이렇게나 고금의 지혜를 접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현지는 감탄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현지의 말과 동감이었다. 이때 조용히 찻잔을 채워주고 있던 연화(緣和)가 말했다.

실로 제자는 항상 느끼고 있어요. 흡사 어머니의 뒤통수에는 눈이 달려있다는 말과 같다고 하겠어요. 오늘은 하늘을 보고 날씨가 쌀쌀해서 오미자(五味子)가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빨간 오미자의 열기를 모두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언제나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되었고, 강당에서 공부하다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나와도 조바심을 내지 않게 되었어요. 그 기운이 돌고 돌아서 다시 깨달음의 문고리를 열어젖히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비록 오늘은 아직 꽃이 개화되지 않았으나 언젠가 그 순간이 다가와서 봄바람이 살짝 건드려 주기만 하면 즉시로 꽃이 활짝 열려서 따사로운 햇살을 담뿍 받아들이게 될 것임을 믿거든요.”

연화의 말을 듣고서 모두 깜짝 놀랐다. 조용히 차만 만들어 주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내면의 감성에서는 이렇게도 섬세하고 깊은 생각과 두루 통찰하는 혜안(慧眼)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연화에게 말했다.

과연 깊게 통찰하고 계셨구나. 그래서 항상 차의 맛도 항상 그윽했나 싶네. 마음속에 깊이 숨겨둔 생각조차도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드러나고 언행(言行)을 통해서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군. 오늘의 차는 그래서 더욱 향기롭다는 말이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연화도 기쁜 마음으로 합장으로 감사했다. 이렇게 차담을 나누다가 모두 우창에게 인사하고는 흩어졌다.

 

다음날 사시초(巳時初).

마차를 몰아서 오행원에 도착한 백발이 대중에게 공양할 고기와 술을 싣고 왔다. 음식을 마련할 사람도 다섯 명이나 같이 와서는 음식의 재료들을 주방으로 날랐다. 춘매의 지시대로 저마다 준비를 시켜놓고는 다시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백발에게 말했다.

아니, 조용히 공부나 할 일이지 번거롭게 무슨 짓을 벌인 겁니까?”

스승님, 언젠가 크게 보답할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행하는 대중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보다 더 신명 나는 일이 또 있겠습니까? 그래서 조촐하게나마 준비를 한 것이니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나서는 고생한 몸을 위해서도 잠시 배려하는 것이 음양의 균형으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하하~!”

여하튼 대중을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하하~!”

준비를 한 것으로 봐서 단순히 주육(酒肉)만이 아니었다. 어제 서둘러서 돌아간 이유가 이러한 잔치를 생각한 까닭이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저마다 찻잔 하나씩을 들고서 자리에 앉아서 현담이 등단하기를 기다리느라고 강당은 조용해졌을 때 오광이 현담과 함께 들어와서는 자리를 잡고 앉자 대중은 언제나처럼 제자의 예를 올리고서 앉았다. 그러자 모두 공부할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한 염재가 일어나서 말했다.

태사님께 아룁니다. 오늘은 천간론(天干論)의 정화(丁火)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을 순서입니다. 모두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염재도 앉아서 정화편을 펼쳤다. 그러자 현담이 눈길이 머무는 곳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그대가 정화편을 읽어보겠나?”

이렇게 말하자 지시를 받은 제자가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말했다.

제자는 당문약(唐文若)이예요. 읽어보겠습니다.”

우창은 문득 당문약은 아호가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 밨다. 원춘(元春)을 사모해서 인연이 되었으니 원()을 넣어주고, 또 한 글자는 정()이 넘치니 그것도 넣어주면 좋겠는데 정()은 수행자에게는 그리 아름다운 글자라고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리만 바꿔서 정()을 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현담의 음성이 들렸다.

아니,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고, 수행자에게는 아호가 있는데 그대는 아호를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가? 육신(肉身)은 부모가 물려준 것이기에 부모의 이름을 이어받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하겠지만 정신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으니 응당(應當) 그대도 아호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현담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호도 하나 지어주지 않고 뭘 했느냐는 듯한 의미의 눈길이었다. 우창이 일어나 말했다.

스승님께 말씀드립니다. 당문약은 너무도 조용히 스스로 수행에 몰입해서인지 대화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나 봅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야 태만(怠慢)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바로 아호를 부여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우창이 당문약을 향해서 말했다.

오늘에야 아호를 지어주게 되었으니 미안하면서도 다행스럽네. 마침 스승님의 가르침이 있어서 이제라도 부족한 것을 채우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겠네.”

우창의 말을 듣고서 당문약은 기뻐하면서 말했다.

그것은 스승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제자가 너무 드러나지 않고 수행에만 몰입한 까닭일 따름이죠. 이제 그것도 때가 되었나 봐요. 태사님이 계셨으니까요. 호를 얻으면 호에 걸맞도록 열심히 수행하겠어요.”

당문약의 호는 이후로 원정(元貞)으로 부르겠으니 다른 제자들도 그리 불러주면 좋겠네. 어디 이 호가 맘에 드는가? 의미를 풀이해 봐도 좋겠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당문약이 약간은 들뜬 음성으로 대답했다.

너무 맘에 들어요. 원정(元貞)은 원형이정(元亨利貞)에서 나왔네요. 수행자에게 과분한 호를 주셨어요. 더욱 열심히 정진해서 세상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고 수행해서 남의 모범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태사님과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현담이 다시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차를 마시고는 말했다.

과연, 멋진 아호로군. 이제 당문약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에게 이름을 붙여 줬으니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면 되겠네. 그러면 빠진 것도 채워졌으니 이제 글을 읽어도 되겠네. 허허허~!”

! 태사님의 분부에 따라 원정이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기뻐하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낭랑(朗朗)한 음성으로 정화(丁火)편을 읽었다.

 

정화유중 내성소융(丁火柔中 內性昭融)

포을이효 합임이충(抱乙而孝 合壬而忠)

왕이불렬 쇠이불궁(旺而不烈 衰而不窮)

여유적모 가추가동(如有嫡母 可秋可冬)

 

이렇게 다 읽고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원춘(元春)을 가리켰다. 그러자 원춘이 일어나서 현담에게 합장하고는 풀이를 했다. 아마도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거침없이 말했다.

태사님, 제자의 이름은 구양정(歐陽貞)이고 아호는 원춘입니다. 이해를 한 만큼의 풀이를 하겠습니다.”

원춘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도 내심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원춘을 따라서 공부의 길로 들어간 당문약인데 원춘의 이름이 구양정(歐陽貞)이니 당문약의 호가 원정(元貞)이 된 것을 생각하자 그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만 아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