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 제43장. 여로(旅路)/ 14.천도(天道)와 지덕(地德)

작성일
2024-09-10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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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 43. 여로(旅路)

 

14. 천도(天道)와 지덕(地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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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귀 선생께서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호호~!”

배려랄 것도 없소이다. 얼마든지 즐겨주시기만을 바랄 따름이오. 혹 우창 선생도 원하신다면 고량이든 감로홍이든 말씀만 하시오.”

현령이 우창에게도 술을 가져다줄지 묻자 우창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우창은 차 한 잔이면 충분합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다음 구절의 설명을 듣고 싶소이다. 모두 나들이를 가신 사이에 책을 좀 읽어봤는데 내용이 과연 삼명통회에서 보던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왜 진즉에 적천수라는 보석을 품에 갖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찾아볼 줄을 몰랐는지 한탄했다오. 그래서 어서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것이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돌아오지 않아서 문밖을 서성였던 늙은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으려나 모르겠소이다. 허허허~!”

현령은 소탈했다. 자신의 체면은 크게 안중에 없었고, 솔직담백(率直淡白)하게 느낀 그대로 말했다. 그것을 본 우창도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그래서 가르침을 만나는 것도 때가 있다고 했나 싶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답을 얻고자 하는 열정입니다. 이것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정답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생도 지금 그러한 과정에 머물러있으시니 조금도 염려하시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정진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하하~!”

우창 선생의 말에 그나마 위로가 되오이다. 이제 다음의 가르침을 주시오. 여전히 문귀는 목이 많이 마르구려. 허허허~!”

이렇게 말하면서 책을 펴놓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학문에는 남녀노소가 없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새로운 가르침에 대해서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이와 같음을 보면서 우창은 내심 감동했다.

그러면 다음 구절을 살펴보시겠습니까? 이미 읽어보시고 의미도 생각해 보셨을 것이니 풀이해 보시지요.”

우창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현령이 구절을 읽었다.

 

천전일기(天全一氣)

불가사지덕막지재(不可使地德莫之載)

지전삼물(地全三物)

불가사천도막지용(不可使天道莫之容)

 

이렇게 읽고서는 다시 풀이까지 했다. 아마도 우창 일행이 머물러있는 동안에 한 구절이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마음인 듯싶었다.

천전일기(天全一氣)는 무슨 뜻이오?”

아마도 이미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우창이 대답 대신에 현령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현령이 대답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다면 사갑(四甲)이나 사을(四乙) 등을 말하는 것이라고 여겼소이다만 이것이 맞게 풀이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고서에는 천간(天干)이 하나의 기운으로 이뤄지면 대귀(大貴)하다는 설명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경도의 가르침이라고 하겠습니다.”

경도 선생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라도 있소이까?”

현령은 존귀하게 느껴지는 적천수를 쓴 경도에게 존칭을 붙이고 싶었는데 우창이 그냥 평상(平常)하게 말하자 의아해서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우창에게는 경도와 우창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미 친근해져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선생이라고 호칭(呼稱)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거리감을 둘 필요가 없어진 까닭이지요. 하하~!”

우창의 말에 현령도 웃으며 말했다.

과연 우창 선생이 적천수에 대해서 연구가 얼마나 깊은지 그것만으로도 능히 짐작되고도 남소이다. 그러나 문귀는 여전히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려우니 양해하시오. 허허허~!”

물론입니다. 선생께서 편하신 대로 하면 됩니다. 아무도 그것을 탓하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지요. 다음 구절도 풀이해 보시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령은 다음 구절에 대해서도 풀이를 했다.

여기에 쓰인 그대로 본다면 지지(地支)에서 음덕(陰德)으로 실어주지 않으면 불가(不可)하다고 해야 할 텐데 덕으로 실어준다는 것은 천간의 뜻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천간에 사갑(四甲)이 있다면 지지(地支)에는 수목(水木)이 있어서 그 뜻을 생조하거나 목화(木火)가 있어서 흐름을 받아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를 했소이다만?”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도 고개를 끄덕여서 동조(同調)했다. 그러자 현령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불가하다는 말은 지지(地支)에 신유(申酉)가 있거나, 혹 원하지 않는데 진술축미(辰戌丑未)가 있을 경우를 말하는 것이오?”

맞습니다. 물론 천간에서 금()을 원한다면 신유(申酉)도 용납이 되는 것은 당연히 지덕(地德)이 됩니다. 다만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해자수(亥子水)가 깔려 있더라도 또한 부덕(不德)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창이 맞는다고 확인해 주자 현령은 다시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멋진 가르침이오~!”

우창이 가만히 있자, 현령이 다시 말했다.

왜 이러한 가르침을 이제야 접하게 되었나 싶소이다. 비록 안개 속에서나마 전체적인 윤곽(輪廓)을 잡은 듯한 통쾌감(痛快感)이 마음에 사무치니 말이오. 이렇게 관한다면 아마도 전체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가 있을 것만 같소이다. 허허허~!”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이미 해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겠습니다. 하하하~!”

, 다음 구절도 봐야 하겠구료. 보자.....”

우창은 이렇게 깨침을 얻어서 기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항상 큰 보람을 느끼게 되어서 덩달아 기쁜 마음이 되었다. 잠시 생각한 현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음 구절의 지전삼물(地全三物)은 방합(方合)을 말하는 것이오? 아니면 삼합(三合)을 말하는 것이오? 이 둘 중의 하나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은 되오만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소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다음의 구절에 있으니까 말이지요. 하하~!”

, 알겠소이다. ‘천도(天道)가 용납(容納)하지 않으면 불가(不可)하다는 말이구료. 그렇다면 결국은 같은 말이잖소?”

그렇습니다. 같은 말입니다. 지덕(地德)이든 천도(天道)든 서로 원하는 바를 갖고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쓸모가 없으니 이름에 매이지 말고 실체(實體)를 관찰하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다.”

우창의 말을 들으면서 말없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현령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생겼소이다. 천도(天道)라고 말을 할라치면 대구(對句)에서도 지도(地道)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소? 어떻게 지지(地支)는 덕()이라고 하고 천간(天干)은 도()라고 하는지도 의미가 있다면 설명을 듣고 싶소.”

과연 부스러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시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어떤 판본(板本)에는 지도(地道)라고 한 곳도 있습니다. 만약에 지도와 천도로 표시했다면 그것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판본에서는 도덕(道德)의 뜻까지도 포함하고자 했다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아니, 도덕의 뜻은 또 무엇이오?”

결국은 체용(體用)이 아니겠습니까?”

우창은 여기까지만 말하고 현령의 답을 기다렸다. 답을 알려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과연 현령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생각해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구려. 천간(天干)은 양()이요 지지(地支)는 음()인데 도덕을 체용으로 말한다면 도()가 체이고 덕()이 음일 테니 이것은 상반되는 이야기가 되지 않소?”

우창은 비로소 현령이 어디에 막혀있는지를 알았다.

그렇다면 천간을 체로 보고 지지를 용으로 보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간양지음(干陽支陰)이 아니오?”

아닙니다. 간음지양(干陰支陽)입니다.”

우창의 말에 현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우창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선생께 묻겠습니다. 천간에서 지지가 나왔습니까? 아니면 지지에서 천간이 나왔습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천간은 천간이고 지지는 지지이니, 비유하자면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인데 이 둘은 처음부터 본질이 다르지 않소? 그러니까 음과 양인데 그것이 어디에서 나올 수가 있단 말이오?”

현령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우창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다시 물었다. 질문은 깨달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간지학(干支學)은 음양(陰陽)입니까? 아니면 오행(五行)입니까?”

그것은 또 무슨 말이오? 음양오행(陰陽五行)이 모두 간지의 모습이잖소? 그래서 갑양(甲陽)이고 을음(乙陰)이 되는데 어찌 간지학을 음양이나 오행으로 나눌 수가 있단 말이오?”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본질을 생각해 보면 음양과 오행은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역경(易經)은 음양에서 태어났고, 자평(子平)은 오행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역경을 숭상(崇尙)하는 무리는 자평까지도 음양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을 하다가 보니 후학은 그 혼동의 동굴에서 길을 잃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평에서 보는 음양은 무엇이오?”

현령은 역시 깊은 학문의 내공이 있었다. 역경의 음양과 자평의 음양이 같지 않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바로 했던 것은 이러한 공부의 힘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창은 알아볼 수가 있었다.

지지는 천간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천지(天地)라는 두 글자에 현혹(眩惑)되면 길을 잃게 됩니다. 그것을 버리고 나면 비로소 답이 보이는 까닭입니다. 나무로 예를 든다면 간()은 큰 줄기인 간()을 말하고, ()는 줄기 끝에 있는 지엽(枝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창의 말을 듣고 생각하던 현령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은 간()에서 왔고, ()는 지()에서 왔단 말이오? 그래서 간부(幹部)가 되고 지부(支部)가 된다는 의미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우창이 간단하게 대답하자 현령은 잠시 혼란스러운 생각이 정리하는 듯이 침묵에 잠겼다. 우창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라 조용히 기다렸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비로소 현령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호~!”

이제야 이해가 되셨군요. 하하하~!”

여태까지 문귀는 헛공부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소이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모르면서 삼명통회만 붙잡고 있으면 오행의 이치를 통달할 것으로만 여겼던 세월이 이리도 허무하게 느껴지는구려. 허허허~!”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란 말은 이런 때에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허탈하게 웃으면서 그래도 핵심을 얻었다는 만족감이 그 안에서 우러나왔다.

이제부터 선생의 학문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하실 것입니다. 하하~!”

이제야 간음지양(干陰支陽)의 뜻이 비로소 이해되었소이다. 그러니까 천도와 지덕이 짝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도 말끔히 해소(解消) 되었구료. 역시 스승을 잘 만나야 감긴 눈을 뜨게 된단 말이오. 참으로 감동했소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현령은 허리를 굽혀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우창도 그 마음을 이해하는지라 조용히 미소로 마음을 받았다. 현령이 확인 삼아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지지에 인묘진(寅卯辰)이 있든 해묘미(亥卯未)가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천간에서 용납(容納)하느냐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지 않소? 이것은 간지(干支)가 생생(生生)으로 유정(有情)하게 구성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겠구려?”

맞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오호~!”

현령은 다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나름대로 연구했다고 자부하던 마음이 봄눈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쓸데없는 것에만 집착해서 골몰했던 나날들을 정리하느라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후 현령이 감았던 눈을 뜨자 우창이 말했다.

선생의 공부가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을 잘 아셔야 합니다. 이렇게 한두 마디에서 깨달음을 얻으시는 것도 공부가 있었기에 가능하니 말입니다.”

우창의 이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얼굴이 밝아진 현령이 말했다.

어서 다음 구절도 공부하고 싶소이다. 궁금해서 이대로는 잠을 이룰 수가 없겠구려.”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구절도 살펴보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현령은 다시 원문을 읽었다.

 

양승양위양기창(陽乘陽位陽氣昌)

최요행정안돈(最要行程安頓)

음승음위음기성(陰乘陰位陰氣盛)

환수도로광형(還須道路光亨)

 

원문을 읽고 난 현령이 다시 내용을 풀이했다.

양이 양을 타면 양기가 창성(昌盛)하니 가장 중요한 것은 행운(行運)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

현령이 이렇게 풀이하자 우창이 말했다.

해석은 바르게 하셨으나 내용은 헛된 말입니다.”

현령은 의외의 말을 하는 우창이 의아해서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선생이 말씀하신 그것입니다. 오행론(五行論)과 음양론(陰陽論)이 뒤범벅되다 보니 이렇게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글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더욱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현령이 물었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도 선생과 한 몸이라고까지 하고서 이제는 그렇게 말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이오?”

우창은 현령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서 눈을 깜빡이다가 그 뜻을 알고는 웃으며 말했다.

, 무슨 말씀이신가 했습니다. 하하하~!”

그게 그렇지 않소이까? 앞에서는 그렇게 훌륭한 적천수라고 하면서 또 이제는 그렇게 하잘 것이 없다는 듯이 말씀한다면 과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한단 말이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일리가 있겠습니다. 물론 이 구절을 경도가 지었다고 한다면 말입니다. 하하하~!”

그건 또 무슨 뜻이오? 경도 선생이 짓지 않았다면 왜 이 대목이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오?”

현령은 점점 알 수가 없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정색을 하고는 설명했다.

적천수가 이미 오랜 세월을 흘러오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첨삭(添削)이 이뤄졌을 것으로 봅니다. 모든 고서가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대부분은 이렇게 옥석(玉石)이 뒤섞여 있지요. 물론 부족한 점을 보태는 것이야 매우 바람직합니다만 깊은 이치를 담은 내용에 저마다의 짧은 생각을 섞어놓게 되면 후학은 다시 그것을 가려내는 수고로움을 면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현령도 비로소 무슨 뜻인지 이해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을 보면서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 않습니까? 앞의 말과 이 말의 뜻이 현격(懸隔)한 차이가 난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겠습니까? 만약에 경도가 술에 취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구절이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란 말이지요. 설령 술에 취해서 썼다고 하더라도 다음 날에 술이 깨고 난 다음에 확인하고는 삭제했을 것입니다. 하하하~!”

과연, 우창 선생의 탁견(卓見)에 감탄했소이다. 그런 줄은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오. 문득 삼명통회에도 그러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소이다. 어찌 생각하시오?”

당연합니다. 문귀 선생이 그렇게나 애지중지(愛之重之)하신 삼명통회는 육오(育吾) 만민영(萬民英) 선생이 송대(宋代)까지 떠돌던 자평법과 관련된 문서들을 집대성했습니다. 그 공이야 훌륭하다고 해도 되겠습니다만, 옥석을 가릴 정도의 깊이가 없었던지라 온갖 것들을 모았기 때문에 책의 내용에는 참으로 중요한 보석(寶石)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만큼의 쓰레기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귀도 그 쓰레기 더미에서 방황하면서 헛된 세월을 보냈더란 말이잖소?”

아마도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혼란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건 일리가 있는 말이구료.”

이렇게 깊은 이치를 담은 적천수에도 누군가 가필(加筆)을 해서 혼란을 유발한다면 그 나머지는 말해서 뭘 하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맞는 말이오. 그렇다면 이 대목은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소이까?”

현령은 갈증이 나는지 차를 들이마시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구절은 가만두고 건드리지 않으면 됩니다. ‘치지불론(置之不論)’이지요. 하하~!”

잘 알겠소만 뜻이나 설명해 주시오. 버리더라도 왜 버리는지는 알고 버려야 하지 않겠소?”

이런 것입니다. 가령 갑인(甲寅)이라고 한다면 양간(陽干)이 양지(陽支)에 앉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양기가 창성(昌盛)하는 것이라는 의미지요.”

그건 일리가 있는데 왜 쓰레기라고 하는 것이오?”

다음 구절이 문제입니다. 운에서는 기축(己丑)과 같은 음의 운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자고로 운의 길흉은 용신의 선택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인데 단순히 양의 간지는 음의 간지를 만나야 한다거나, 반대로 다음 구절에서 말하는 음의 간지는 운에서 양의 간지를 만나야 뜻대로 풀린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허황한 망언(妄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지요? 아마 짐작하건대, 이러한 구절을 써넣은 사람은 경도일 리가 만무(萬無)하다고 생각되니 어쩌면 음양의 이론을 첨가하여 겉보기에 뭔가 있어 보이도록 장식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우창의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현령을 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실제로 사람들과 더불어 사주풀이를 하여 길흉화복을 논하고 추길피흉(趨吉避凶)을 조언할 줄은 몰랐던 사람의 졸작(拙作)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인해서 앞의 천전일기(天全一氣)와 지전삼물(地全三物)의 깊은 의미가 퇴색되고 말지 않습니까?”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잠시 생각하던 현령이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어허~! 정녕 그렇소이다. 이제야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던 흑운(黑雲)이 말끔히 사라졌소. 가령 음주(陰柱)인 을묘(乙卯)라면 운에서는 양주(陽柱)인 병오(丙午)와 같은 간지를 만나야 한다는 말이니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임을 명료하게 깨달았구려. 허허허~!”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삼진도 조용히 무릎을 쳤다. 옥석을 가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삼진도 그 의미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무척 어려워서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우창의 설명을 들으니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밝은 등불을 만난 듯이 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것을 본 우창이 다시 현령에게 말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훑어보게 되면 도처에서 군더더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해롭지 않은 군더더기도 있으나 또 이렇게 사유하는데 혼란만 발생시키는 것도 있음을 알고 있다면 비로소 적천수를 읽을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하하~!”

현령은 우창의 말에 감동한 듯이 말했다.

참으로 멋진 풀이에 감탄했소이다. 이렇게 한 수를 가르쳐 주시니 앞으로 혼자서 공부하는데 매우 밝은 등불을 하나 얻은 것과 같구려. 글에 담긴 뜻만 찾아서 살피느라고 감히 그 글의 진가(眞假)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 줄을 몰랐잖겠소? 그래서인지 나름대로는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기도 하면서 내심 열심히 했는데도 왜 아직 자평의 이치를 통달하지 못했는가 싶은 생각만 했지 정작 공부하는 방법에 문제가 없었는지는 전혀 문제로 여기지 않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허참~”

현령은 이렇게 탄식하는 듯이 말했다. 그것을 본 우창도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자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원이 끼어들었다.

싸부, 옛말에 지혜로운 사람이 공부하는 것은 쌀을 쪄서 밥을 하는 것과 같고, 어리석은 사람이 공부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보다도 이것이 백미(白米)인지 모래가 절반인 쌀인지부터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어요. 모래가 절반인 쌀로 밥을 지어서는 온전히 먹을 수가 없을 테니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밥을 짓는 사람이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어요. 애초에 쌀과 모래를 섞어놓은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이 있으니까요.”

자원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 밥은 그냥 버려야 하는 건가?”

아니죠. 맑은 물에 밥을 넣고 풀어야죠. 그렇게 되면 무거운 모래는 가라앉고 가벼운 밥알은 위로 떠오르게 될 테니 그때 잘 건져서 먹으면 온전히 한 끼를 해결할 수가 있지 않겠어요? 호호호~!”

자원의 말에 현령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오. 허허허~! 이 늙은이는 그것도 모르고 입안에다가 모래 밥을 넣고서는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면서 우물거리고 있었소이다. 이제 낭자의 비법을 전해 받았으니 당장에 물에 쏟아붓고서 헹궈야 하겠소이다. 허허허~!”

현령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 사이에 현령은 다시 다음 구절을 펼쳤다. 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설명을 들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선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