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리학(性理學)

작성일
2007-08-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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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대표학문으로 활발했던 성리학은 주자(朱子)를 필두로 전개된 유학(儒學)의 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것은 조선의 학자들 간에 화두가 되었던 것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나중에는 당파싸움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고 하므로 원래의 순수한 정신이 현실을 만나서 갈등을 빚었다고도 하겠다. 특히 거유(巨儒)인 퇴계(退溪)선생의 이기이원설(理氣二元說)이나, 율곡(栗谷)선생의 이기일원설(理氣一元說)이 서로 팽팽하게 토론되었던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이론들이 자칫 공론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것은 그러한 이야기들이 느낌으로 전달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겠고, 실제로 이러한 것을 사람의 심리라고 이해를 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심리를 연구하는 관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여서, 그야말로 도덕(道德)에 대한 논리는 될지라도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것으로 인해 계승발전이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싶다.

이기일원론적 입장에서는 이(理)가 기(氣)보다 먼저 존재하며 이가 기를 낳는다고 하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적 주장을 거부한다. 명나라 때의 학자 나흠순(羅欽順)은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적 입장을 강화하였다.

조선(朝鮮)의 성리학에서는 이기일원론의 입장이 일부 수용되었다. 서경덕(徐敬德)은 “기 밖에 이가 없으며 이는 기를 주재하는 것”이라 하여 이기일원론적 입장을 취하였다. 율곡은 기본적으로는 이기이원론을 계승하면서도 “이와 기는 혼연하여 사이가 없고 서로 떨어지지 않으므로 다른 물건이라 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이기일원론적 입장에 비중을 두었다.

이러한 관점은 신체에서 정신을 찾고자 하는 현대의 서양심리학 영역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신체와 정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일원론이 매우 타당해 보인다고 하겠고, 융과 같은 관점으로 본다면 정신과 신체는 각각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인 심리를 논하는 단계로 나아가기에는 거리가 먼 것으로 봐야 하겠고, 그야말로 원론적(原論的)인 구성을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적에 구체적으로 각 개인에게 적용을 시키는 것으로는 적합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즉 이론적으로만 존재하고 개인적으로는 적용을 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과 비교해서 자평명리학의 철저한 개인위주의 심리구조를 분석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