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1] 노자를 읽다가 코카서스는 왜 찾누?

작성일
2019-10-28 06:3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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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노자를 읽다가 코카서스는 왜 찾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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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기해년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네요. 계룡산 마루도 서서히 가을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을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오니 또 책이 눈에 들어오네요. 그래서 잡은 책은 '노자, 새로운 탐색'입니다. 김상우 선생의 내공이 엿보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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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로 놀러 갈 궁리를 하다가, 소동파를 만나게 되고, 소동파를 만나니 문득 노자를 보고 싶어서 책을 펼치게 되었는데 손에 잡힌 책이 재미있어서 읽다가 보니 자꾸만 빠져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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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서문에서 '노자는 중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쓴 이야기도 놀랍거니와, 『노자』는 어느 한 사람이 쓴 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이끌려서 수메르를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앞의 이야기인 '인연이 인연을 부른다'는 이야기의 연속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

근데 코카서스는 왜 찾느냐고요? 그니깐요. 이에 대한 이유는 중국사이트를 검색하다가 문득 발견한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눈이 어지럽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항상 출처를 밝힐 수가 있으면 밝히는 것이 좋아서 이렇게 긁어다가 붙여 넣습니다.




老子、孔子是白種人嗎?難道世界上的天才都歸類到白種人?



노자, 공자는 백인종인가? 설마 세계의 천재들은 모두 백인종이란 말인가?






央視《走遍中國》說,山東人是歐洲白人的後代,有白人血統,屬於高加索人或者亞美利亞人,孔子也是高大的白人,身高196CM。日本學者認為山東人的身高突增,沒有按照緯度自然伸展的規律而增高。這說明山東地區高加索人比率遠遠大於別的地區。


중국 중앙방송의《走遍中國(주변중국)》에서 말하기를, 산동사람은 원래 유럽의 백인종 후예이며, 백인의 혈통을 물려받았으니 그들은 코카서스(高加索)인이거나 혹은 아르메니아(亞美利亞)인일 것이다. 공자도 키가 196cm이나 되는 큰 백인이었다. 일본학자는 산동사람들의 키가 갑자기 커졌는데 위도상의 자연적인 상황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말들에서는 산동지역에 살았던 코카서스인의 비율이 오래전부터 특별히 많았다는 것을 설명한다.


山東博物館的考古學家和中國古生物分子遺傳學研究所,通過對山東新石器時代大汶口文化時期的墓葬,和春秋戰國時期的山東臨淄古墓群中古人類遺骨中提取的DNA樣本所做的檢測,研究表明,儒家的發源地山東,從新石器時代一直到春秋戰國晚期,當地人的人種特徵都是明顯的高加索人種(白種人),進而可推知:儒家的創始者孔子,毫無疑問也是屬於高加索人種的成分。 


산동박물관의 고고학자와 중국고생물분자유전학연구소에서, 산동의 신석기시대와 대문구문화시기를 거친 무덤이나, 춘추전국시대의 산동 임치에 있는 고분군의 고대 중국인류의 유골을 DNA로 조사해 보고 발표한 것인데, '유교의 발원지인 산동은 신석기시대부터 춘추전국의 말기까지 살았던 사람들의 유골에서 드러나는 것은 코카서스인(백인종)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미루어서 유추해 보면 유교를 창시한 공자는 조금도 의심을 할 필요가 없이 키가 큰 코카서스인의 성분이 분명하다.'


這個研究結果曾經在2000年「21世紀中國考古學和世界考古學國際學術研討會」上公布過。郭沫若也曾考證過,大汶口文化時期的東夷人,體貌特徵為鬍鬚體毛較濃密,鷹鉤鼻,這是明顯的高加索人種成分。


이 연구결과는 이미 2000년에 「21세기 중국고고학과 세계고고학국제학술연토회」에서 공포한 것이다. 곽말약도 '대문구문화(용산문화)시기의 산동사람(동이인) 특징은 수염이나 머리와 몸의 털이 비교적 짙고 많았으며 매부리 코인 것으로 봐서 코카서스인종의 성분이 분명하다'고 했다. 


如下圖,據山東省考古研究所研究員李振光介紹,此孔子見老子壁畫創作於1800多年前,年代久遠、保存完整、藝術水平很高。


아래의 그림과 같이 산동성의 고고학 연구원인 이진광의 소개를 예로 들면, 이 그림은 공자가 노자를 만난다는 벽화인데 1800년 전에 그린 그림이지만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상태가 완벽하고 예술적인 수준도 대단히 높다. 


在西周時期,山東境內有個小國叫「萊國」,「萊」等於「來」或「麥」,這個小國特別擅長種植麥子,或許他們就是帶來麥子的白人後裔。今天山東與「萊」有關的地名多與這個「萊國」有關,比如「蓬萊」等,又從這些地名可以判斷當初「萊國」的大致位置。從麥子的根源在中東可以推斷,這部分人有白人遺傳的可能性就比較大。山東本地人應該知道,膠東半島與魯西的人種差異很大,白人在山東近海的緣故造成了膠東地區人群高大的事實。至此,為什麼山東的孔子身高達196cm現在看也沒什麼奇怪了。白人中間這個身高相當常見,不必為難是數據搞錯。



서주시기에 산동의 경내에는 「萊國(래국)」이라고 부르는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萊(래)」는「來(래)」나「麥(맥)」을 의미한다. 이 작은 나라는 특별히 키가 큰 맥류(보리나 밀)를 심었는데 혹 그들이 맥류를 가지고 왔던 백인의 후예일 수도 있다. 오늘의 산동성에서「萊(래)」와 연관이 있는 지명이나 「萊國(래국)」과 연관이 있는 것을 찾아보면, 예를 들어「蓬萊(봉래)」와 같은 것이 있다. 또 이 지명을 통해서 살펴볼 적에 당초에 「萊國(래국)」의 대체적인 위치를 판단할 수 있다. 밀이나 보리의 원산지는 중동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가 있는데 이 부분의 사람들인 백인유전자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비교적 크다. 산동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산동에서 태어난 공자의 키가 196cm가 되었다는 것을 현재의 관점으로 본다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백인들 중에서는 대부분은 정도의 키가 보통이기 때문이니 다시 다른 근거를 찾을 필요는 없다.

最早的山東沿海是白種人, 膠東人凹眼,普遍大眼窩兒,高鼻,高大,膚白。據中國古生物分子遺傳學研究室的專家介紹,他們與日本的有關研究機構合作,以山東臨淄地區古墓群中古人類DNA為標本,提取並純化了該地區2500年前、2000年前的古人骨DNA和現代人的DNA,並分別與從國際基因資料庫中篩選的1300多個標本進行了DNA特徵的比較。結果發現,2500年前的山東臨淄人與現代歐洲人的基因特徵非常近似。 


가장 이른 시기의 산동의 바닷가에는 백인종이 살았는데 교동[칭다오]사람의 눈은 움푹 들어가고 보편적으로 눈들이 크고 코는 높고 키는 크며 피부는 희다. 이러한 근거는 중국고생물분자유전학의 연구실에서 전문가의 소개인데, 그들은 일본의 관련있는 기구와 합작으로 신동의 임치지구에 있는 고묘군의 고인류에서 DNA에서 표본을 구했다. 그 자료에서 2500년~2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현대인의 DNA를 나란히 분석해 본 결과 국제적인 기본자료창고의 표본에서 선별한 1300여 표본으로 진행한 결과에서 드러났는데 2500년 전의 산동성 임치사람들과 현대 서구인의 기본적인 특징은 대단히 닮았다.


 黃種人和白種人是分化最晚的人種。黃種人和白種人的分離距今只有大約4萬年或3.5萬年。中國人,東南亞人,歐洲人,印度人,印第安人的祖先曾經一起在伊朗阿富汗高原上生活了很長時間。後來中國人和東南亞人的祖先南下並通過印度進入東亞,而歐洲人,印度人,印第安人的祖先則進入中亞,並此後發生了分離。印度人和歐洲人的祖先向西進入南俄草原,並且在那裡發生了基因突變,漸漸形成了今天的白種人的長相。白種人膚色的白化,以及金髮碧眼的形成相當晚近,距今不到一萬年。而印第安人的祖先則向東進入北亞,他們的一些同伴留在北亞,成為今天的北極圈附近的居民,而他們則通過白令海峽進入並擴散到整個美洲大陸。在黃白分離以前,不存在今天意義上的黃種人和白種人,而是屬於一種未分離的歐亞黃白人種。我們的90%以上的父系祖先和1/3—2/3不等的母系祖先就屬於這一人種。 


황인종과 백인종은 가장 늦은 시기에 분화가 되었다. 황인종과 백인종이 분리된 시기는 지금부터 대략 4만년전이거나 3만5천년 전이다. 중국인, 동남아인, 유럽인, 인도인, 인디언의 선조는 일찌기 이란과 아프칸의 고원지대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다. 그 후로 중국인과 동남아인의 선조들은 남하해서 하거나 인도를 통과해서 동아시아로 이주했고 유럽인, 인도인, 인디언의 조상들은 중아시아로 진입했으며 이후로 분리가 발생하게 되었다.


인도인과 유럽인의 조상은 피부색이 희색이었고 금발에 푸른 눈의 형태는 그 후에 늦게 변화했으니 지금부터 1만년이 넘지 않는다. 인디언의 선조는 동쪽으로 향해서 북아시아에 들어갔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북아시아에 머물렀으니 현재의 북극권 부근의 사람들인 그들은 베링해협을 통과해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산되었다.


황인과 백인으로 나뉘기 이전에는 요즘의 뜻에 해당하는 황인종이나 백인종의 분류는 없었으며 같은 종족으로 분리가 되지 않은 황백인종이었으니 우리의 90%이상은 부계의 3분의1~모계의 3분의2로 서로 같지 않은 모계혈통에 가까운 인종이었다.


 相比於古代中國人,現代的中國人顯然出現退化。有現代西方學者的研究,認為清以前的古代北方中國人是世界上最高大的人種之一。明代的歐洲傳教士也留下了同樣的印象。當時的西班牙(葡萄牙)傳教士甚至把福建廣東人視為阿拉伯人那樣的「棕種人」,而把其他地方的中國人(漢族)稱為「白人」。由於混入了較多的棕種血統的緣故,部分日本人的膚色其實和中國人是有一點區別的。在一個近代歐美作家的小說中,甚至出現了「實際上日本人的皮膚不是黃色的,而是棕色的,真正的黃種人只有中國人」這樣的描述。


고대의 중국인과 현대의 중국인을 서로 비교해 보면 퇴화한 것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대의 서양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청대 이전의 고대북방 중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인종 중에 하나였다. 명대의 유럽에서 온 선교사들이 머무를 적에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상이었다. 당시의 스페인(포르투갈포함)에서 온 선교사들은 심지어 복건성이나 광동성의 사람들도 아라비아 사람을 닮은 말레이시아인 들과 흡사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밖의 지역에 사는 중국인(특히 한족)을 백인이라고 했다. 비교적 많은 많은 말레이시아인의 혈통과 혼합이 된 까닭인데 부분적으로는 일본인의 피부도 실은 중국인의 피부와 구분이 되기도 한다. 근대의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작가가 쓴 소설에서도 등장하는데, '실제상 일본인의 피부는 황색이 아니라 말레이시아인의 피부색이니 진정한 황인종은 다만 중국인 뿐이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如果真的是這樣,那我們中華文明的聖賢都成了白種人。發生在2000多年前春秋戰國時期的百家爭鳴、人類第一次思想大爆發的人種竟然是白種人主導。這的確讓今天的我們不相信。


만약에 이러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중화문명의 성현들은 모두가 백인종이다. 2000여년 전에 발생했던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의 인류사의 첫번째로 사상적인 대폭발을 일으킨 인종도 모두 백인이 주도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확신을 오늘의 우리는 믿을 수가 없다.





原文網址:http://kknews.cc/culture/b24xykn.html 

 




일부분만 풀이하고 그 아래로는 풀이를 생략했는데 그 나머지가 궁금해서 마저 풀이 합니다. 이렇게 해 놓으면 언젠가 궁금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즉시로 확인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흘러버리면 나중에 뭔가 생각이 나서 막상 찾아보려고 해도, 또 사라지고 없기도 하니까요. 일종의 문서 보험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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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와 수메르의 거리를 측정해 봅니다. 비교적 가깝다고 할 수가 있겠네요. 그러니까 수메르의 문명을 알고 있는 코카서스 사람들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동방으로 향해서 갔다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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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지방의 사람들이 코카서스인의 후예들이라면 왜 산동에 자리를 잡았을지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유는 찾았습니다. 바다가 가로막혀서 더 갈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안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전횡도 산동사람이었네요. 그의 초상화가 실물과 얼마나 근접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그도 조상이 코카서스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상상열차는 항상 재미있고 흥미진진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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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자료를 뒤지다가 경위(涇渭)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경하(涇河)와 위하(渭河)가 만나는 곳에서는 청수와 탁수가 교차하는데, 일설에는 경탁위청(涇濁渭淸)이라고 하니까 경하가 탁하고 위하가 청하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지도를 통해서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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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위에 대해서는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경위를 밝혀라'고 할 적에 그 경위입니다. 처음에는 경위가 경위(經緯)인 줄 알았습니다. 경도와 위도가 서로 음양으로 분명하게 구분을 하는데 그것으로 기준을 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뭔가 찜찜해서 다시 자료를 찾다가 소리만 같고 글자가 다른 경위분명(涇渭分明)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어쩌면 예전에 공부한 제자에게는 그렇게 말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바로 잡습니다. ㅎㅎㅎ

위하는 황하로 흐르고
경하는 위하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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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하와 위하가 만나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경수와 위수라고도 했던 모양입니다. 같은 이름입니다. 이름은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기도 하니까요. 경탁위청이면 왼쪽이 위하이고 오른쪽이 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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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이렇게 분리되어서 흘러가다가 결국은 합쳐진답니다. 합쳐진다면 흘러서 황하로 가겠네요. 황화로 간다면 황톳물이지요? 그러니까 경하가 황하의 뿌리가 된다는 말이 되는 셈이겠지요? 이렇게 궁리를 하다가 확인을 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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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알고 살아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면 다시 캐내봐야 합니다. 자료를 뒤지다가 보니까 경탁위청이 잘못된 정보라는 이야기를 알게 되어서 말이지요. 그래서 이야기는 또 시경(詩經)으로 올라갑니다. 시경은 또 왜? 그니깐요. 인연이 인연을 부른다고 했잖습니까? ㅎㅎㅎ

詩經˙邶風˙谷風:「涇以渭濁,湜湜其沚。」

시경의 패풍 곡풍에 이르기를
경수는 위수를 만나면 흐려지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 흐려짐을 멈추기도 한다.


그러니깐.... 시경에서는 위수의 맑음이 경수를 만나서 흐려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건 또 어떻게 된 거지? 그렇다면 경탁위청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 사이에 강의 물 색이 바뀌었단 말인가? 그러기는 쉽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뭐가 옳은 거지? 이렇게 학자는 옳고 그름을 밝히느라고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됩니다. ㅋㅋㅋ

시경의 출처는 밝혔으니 경탁위청(涇濁渭淸)의 출처를 밝혀봐야 하겠습니다. 그걸 밝혀봤자 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재미있으니까요. 알쓸신잡의 지식놀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찾았습니다. 이런 것을 찾는 것은 어린 시절에 소풍가서 보물찾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습니다. 시경권지이(詩經卷之二)에 있는 주희집전(朱熹集傳)이었습니다. 주희는 공자 다음으로 떠받드는 주자를 말합니다. 주자의 시경 해설에서 나온 문구라는 이야기인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주자가 잘못해서 맑은 경수는 탁해지고 탁한 위수는 맑아졌다는 말이네요. 그런데도 왜 고치지 않았을까요? 위력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위력은 무시무시합니다. 심지어 학문의 세계에서도 그 힘은 가공할 정도니까요.

"어찌 감히~~!!"

맞습니다. 어찌 감히, 그래서 또 신경준 선생의 올곧은 인품이 돋보입니다. 훈민정음에서 밝힌 소리의 오행을 오류라고 뒤집은 것은 배짱이 아니라 올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학자의 자부심이었을 것이 분명한 까닭입니다. 권위에 도전하는 것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절이었습니다만, 권위가 아니가 학문의 옳음에 도전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감히 주자가 써놓은 것을 안다면, 뜻만 알면 되지 글자까지 지적질해서 미움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싶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지나 청나라 건륭제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것이 오류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참 대단한 주자입니다.

그나저나 이게 도덕경과 코카서스와 무슨 연관이 있다고 이렇게 너절하게 소란을 피우나 싶은 벗님도 계시지 싶습니다. 물론 연관은 만들면 됩니다. 또 지나는 길에 경위분명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아두는 것이 뭐 그리 나쁘고 억울해 할 이유는 없지 싶어서 부산을 피워봤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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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위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서안(西)입니다. 서안은 중국 고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박물관입니다. 그러니까 서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경위를 끌어들인 셈인가요? 뭐든 끌어다 쓰는 것이 필요하면 사양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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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을 찾다가 보니까 또 서안구경도 하고 싶어집니다. 여행도 인연의 고리를 따라서 물처럼 흐르는 모양입니다. 서안(西安)은 중국어로 시안(Xian)입니다. 장안(長安), 경조(京兆), 고경(镐京), 서경(西京)으로도 불렸습니다. 이름은 세월 따라 바뀌어도 땅은 그대로입니다. 주나라,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의 수도였으니 볼만한 것도 많지 싶네요. 북경은 고작 청나라의 수도였음에 비한다면 말이지요. 역사기행이라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라고 자꾸만 속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까이꺼 내년 봄에는 서안을 가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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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의 위치가 왜 중국의 중심에서 서북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처음에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카서스가 나오고 수메르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서안의 위치에 대해서 마침표였던 것이 물음표가 되었다가 이제는 느낌표로 바뀌려고 합니다.

'아하~!'

수메르에서 이주하다가 넓고 비옥한 땅을 발견한 고대의 유랑민이 정착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찾은 셈인가요? 그래도 서안이 중국의 중심부로 보인다고요?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주나라 당시의 지도를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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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산악지대에는 강족이 살고 구석에는 후에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비로소 낭월이 서안에 대해서 갖게 되었던 물음표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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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가 서안에 자리를 잡기 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황제가 황하의 북쪽인 중국의 서북쪽 그러니까 서안의 북쪽 영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을 적에 동쪽에는 막강한 영역을 다스리던 동이족이 있었다는 그림입니다. 통상 중국 역사에 묻어갈 적에 우리민족을 동이족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어쩌면 그것도 아전인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중국 땅 내에서도 인간취급을 하지 않았던 동이인데 하물며 이땅에 살았던... 고조선 이전의 배달민족을 동이라고 했을리가...... 싶은 생각이 드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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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서에 등장하는 동이를 보면서, '활을 잘 쏘는 민족이었다'는 글을 인용해서 '봐라! 궁사가 금메달을 휩쓰는 우리가 동이족이잖아~!!'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역사에서 나온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낭월은 동이족은 우리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의미는 맘대로 사용하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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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더라도 근거를 갖고 우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역사가 시작된 주대에 우리 땅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적으로는 고조선도 시작되기 전입니다. 이미 그 시기에 동이족은 중국에서 저렇게 막강한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것을 묻어두고 그냥 우리가 동이족이라고만 하면 되겠느냔 생각도 해 보면서 역사공부를 해야 하지 싶습니다. 각설하고.

이렇게 해서 '중국인의 서래설'을 점점 완성시켜 갑니다. 어차피 인류의 고향이 아프리카라는 것은 학자들이 밝혀준 것이니까요. 그래서 흐름을 역류해서 수메르를 찾아가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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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고대문명의 발상지라는 수메르 부근입니다. 메소포타피아문명도 수메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까 항상 중요한 것은 그 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명도 물처럼 흘러갑니다. 북으로 가면 유럽이 되고 동으로 가면 아시아가 되네요. 그런데 왜 남으로는 가지 않았을까요? 그건 아마도 너무나 잘 아는 곳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밖으로 향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이 다가왔을 때나 가능하다고 보면 아프리카로 되돌아가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요즘도 한국의 상품들이 더 낮은 기술을 갖고 있는 곳으로 흘러가잖아요? 이치는 하나라고 보면 되지 싶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의 기술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왔고, 그래서 그들의 자부심을 충족시켜줬는데 이제는 그것이 역류하게 생겼으니까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ㅋㅋㅋ 문명은 기술입니다. 기술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학문도 기술입니다. 그래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백제시대의 학문이 일본으로 흘러간 것도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문명은 절대로 역류하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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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고대의 수메르였던 메소포타미아로 흘러왔다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갔을 리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집트의 수준이 높은데 다시 높은 곳으로 갈 이치는 없다는 까닭이지요. 그보다는  훨씬 낮은 곳인 인더스나 황하로 가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은 흐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일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인더스에서 황하로 흐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살짝 해 봅니다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더욱 복잡해지므로 일단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ㅎㅎ

며칠 전만 해도 수메르에 대해서 무슨 인연이 있겠느냐는 생각도 했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되기도 합니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눈이 번쩍 띄는 내용이 보여서이지요. 12진법과 60진법의 발상지가 수메르였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비명을 지릅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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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설형문자라고도 하는 쐐기문자로 표시한 1에서 60까지의 모습이랍니다. 참 단순하지만 이렇게 숫자로 표시한 것이 세상의 어떤 그림 못지 않은 흥미로움이 발동합니다. 1년을 360일로 사용한 것도 그들어있고, 60진법은 요긴하게 사용되었겠다는 짐작도 해 보게 됩니다. 12진수든 60진수든 이것이 어디에서 꽃을 피우는지는 벗님도 낭월도 알기 때문입니다. 일년을 12개월로 나눠놓고 매일은 60갑자로 기록하는 역사는 그야말로 유구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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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자 이전의 그림을 보면 괜히 설렙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라는 것을 보면서도 그러한 느낌이 있었는데 수메르의 문자이전의 기호를 보니 또 그런 기분이 드네요. 설렘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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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제작한 '문자1 위대한 탄생'을 보다가 캡쳐한 자료입니다. 이러한 사유의 공통점은 외계인들과의 소통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상상의 나래를 펴 볼 꿈도 꿔봅니다. 말도 문자도 통하지 않는 사람과 소통하려면 가장 먼저 시도해 볼 것이 이런 형태일 겁니다.

60진법이 여태까지 중국에서 창안되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더 오래 전에 수메르에서 사용했다면 이러한 흔적들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역사에 남은 흔적을 좆차서 생각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래서 연관된 책으로 소개한 두 권의 책을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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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에 대해서 궁금하면 수메르 관련 책을 보면 됩니다. 그러다가 궁금하면 여행티켓이라도 하나 알아봐야지요. 우선은 책으로 상식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역사의 뿌리에 대해서 잘 설명해 놓은 책이라는 바람에 또 한 권을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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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에 대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미 절판이 되고 없어서 중고로 구입을 했습니다. 중고책의 가격은 파는 사람 마음입니다. 어떤 것은 절반이고, 어떤 것은 두배 세배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필요하면 구입하는 것입니다. 낭월이 갖고 있는 책들도 검색해 보면 이미 절판된 것이 상당하거든요. 그래서 책은 눈에 뜨일 적에 얼른 사놔야 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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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기열전으로 돌아옵니다. '사마천은 노자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을 했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노자에 대해서 기록한 것으로 신뢰를 할만하다고 하는 것이 사기인 까닭입니다. 행여 그의 흔적에서 도덕경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흔적을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만한 것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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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 노자한비열전에서 노자부분만 발췌함]


老子者,楚苦縣厲鄉曲仁里人也,姓李氏,名耳,字耼,周守藏室之史也。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여향의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 이름은 이, 자는 담으로 주나라의 도서를 보관하는 장실의 관리였다.

孔子適周,將問禮於老子。老子曰:「子所言者,其人與骨皆已朽矣,獨其言在耳。且君子得其時則駕,不得其時則蓬累而行。吾聞之,良賈深藏若虛,君子盛德容貌若愚。去子之驕氣與多欲,態色與淫志,是皆無益於子之身。吾所以告子,若是而已。」孔子去,謂弟子曰:「鳥,吾知其能飛;魚,吾知其能游;獸,吾知其能走。走者可以為罔,游者可以為綸,飛者可以為矰。至於龍,吾不能知其乘風雲而上天。吾今日見老子,其猶龍邪!」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머무를 적에 노나를 만나서 예를 물었을 적에 노자가 말했다. '선생이 말하던 성현들은 모두 뼈가 흩어지고 썩었고, 그 말만 남겨졌을 따름입니다. 또 군자는 때를 얻어서 군자가 되었다가 때를 잃으면 길가의 쑥부쟁이처럼 떠돌이가 되어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소. 내가 듣기에 훌륭한 상인은 중요한 물건은 깊이 감춰두고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답디다. 군자는 넘치는 덕이라도 깊이 감추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꾸민답니다. 그대는 교만한 기운과 이루고자 하는 욕망과 표정을 버리기 바라오 이러한 것은 선생의 몸에 아무런 이익이 없소. 내가 해 줄 말은 이것 뿐이오.'라고 했는데, 공자가 제자들에게 돌아와서 '새는 스스로 잘 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고기는 스스로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고, 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알기에, 달리는 짐승은 그물로 잡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로 잡지만 나는 새는 화살을 쏴서 잡는다. 그러나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니 내가 만난 노자는 용과 같은 사람이었다.

老子修道德,其學以自隱無名為務。居周久之,見周之衰,乃遂去。至關,關令尹喜曰:「子將隱矣,彊為我著書。」於是老子乃著書上下篇,言道德之意五千餘言而去,莫知其所終。

노자는 도와 덕을 닦고 스스로 학문을 숨겨서 이름을 숨기는데 애썼다. 주나라에 살다가 주의 쇠함을 보고는 몰래 떠났다. 그가 관에 다다랐을 적에 관을 지키던 윤희가 말하기를 '선생이 장차 은둔하시니 저를 위해서 글을 남겨 주시오'라고 하자 노자는 상하로 된 두 편의 글을 써 주니 그 내용은 도와 덕에 대한 5,000여 자를 말해주고는 떠났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或曰:老萊子亦楚人也,著書十五篇,言道家之用,與孔子同時云。

혹자가 말하기를 노래자도 초나라 사람인데 책 열다섯 권을 지어 도가의 용도를 말했는데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蓋老子百有六十餘歲,或言二百餘歲,以其修道而養壽也。

대체로 노자는 160살 혹은 200살을 살았다고 하는데 그가 이렇게 장수한 것은 도를 닦아서 수명을 길렀기 때문이다.

自孔子死之後百二十九年,而史記周太史儋見秦獻公曰:「始秦與周合,合五百歲而離,離七十歲而霸王者出焉。」或曰儋即老子,或曰非也,世莫知其然否。老子,隱君子也。

공자의 사후 129년이 되었을 적에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주나라 태사인 담이 진나라 헌공을 만나서 말하기를 '진나라는 처음에 주나라와 합쳐서 500년이 지나 다시 나뉘고 합하다가 나눠진 후 70년이 되면 새로운 패자가 나타날 것이니 이렇게 말을 한 담이 바로 노자라고도 하고 혹자는 아니라고도 하는데 세상에서는 그 분명함을 알 방법이 없으니 노자는 숨은 군자이다.

老子之子名宗,宗為魏將,封於段干。宗子注,注子宮,宮玄孫假,假仕於漢孝文帝。而假之子解為膠西王卬太傅,因家于齊焉。

조자의 아들은 종인데, 종은 위나라의 장군이 되어서 단간을 봉토로 받았고, 종의 아들은 주이고 주의 아들은 궁이며 궁의 현손은 가인데 가는 한나라 효문제를 섬겼고 가의 아들 해는 교서왕 앙의 태부가 되어서 제나라를 다스렸다.

世之學老子者則絀儒學,儒學亦絀老子。「道不同不相為謀」,豈謂是邪?李耳無為自化,清靜自正。

세상에서 노자의 학문을 배우는 자는 유가의 학문을 업신여기고 유가는 또한 노자를 그렇게 대하니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 뜻이다. 노자는 무위로써 자신을 교화하였고 맑고 고요하게 스스로 반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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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사기에 나온 노자 부분의 전부입니다. 대단히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는데 의외네요. 그나마도 장자에서 옮긴 듯한 공자와의 이야기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기록의 부실함으로 인해서 태사공 사마천도 고민을 많이 했지 싶습니다. ㅎㅎㅎ

내용 중에 눈에 띄는 대목이 나옵니다.

至關,關令尹喜

지관은 관에 다다랐을 적이고, 관령윤희는 관을 지키는 사령 윤희라는 뜻일 테니까 여기의 관은 무슨 관이냐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관으로 갔다는 것은 노자의 방향을 알려주는 힌트가 되기도 할 테니 까요. 그래서 찾아보니 관은 함곡관(函谷關)을 줄여서 말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함곡관의 위치를 찾아보면 되겠네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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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동쪽으로 떠났군요. 동쪽은 제나라가 있는 방향입니다. 더구나 노자의 자손이 제나라에서 벼슬을 했다고 나왔으니 이것은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나라가 고향이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물론 초나라 고현이 고향이라고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마천도 여기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던지 정확한 것을 잘 몰라서 '혹자는'으로 또 다른 사람이 노자라고 하는 설도 있다는 말로 얼버무렸으니까 얼마든지 다른 경우도 가능하다고 보면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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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곡관 입구에는 이렇게 노자상이 있는 모양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는 짐작이 되네요. 아마도 도덕경이겠지요? ㅋㅋㅋ

여태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모든 화살표는 동으로 향합니다. 해 뜨는 곳으로 가는 것은 당연할까요? 심지어 노자조차도 말이지요. 이렇게 뒤지다 보면 우연처럼 겹치는 것이 자꾸만 만나집니다. 그리고 그 동쪽의 끝에는 바로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도 말이지요. 그러니까 코카서스에서 온 사람들이 과연 산동에만 머물렀을까요? 더 동쪽으로 이동하지는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과 인연이 전혀 없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그러니까 결론은? 

역사에는 결론이라는 말은 없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정설로 자리를 잡았는가 싶으면 또 이설이 그 정설을 흔들어버리는 것이 부지기수니까요. 다만, 오늘 생각해 본 것은 노자의 도덕경 81편은 한 사람에 의해서 쓰였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에 의해서 썼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여러 사람이 쓴 글을 한 사람이 수집했을 수도 있다는 것도요. 특히 노자의 직업이 주나라의 도서관장이었다면 수집과는 너무도 잘 어울리네요. 당연히 수메르에서 나온 문서도 봤을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특히 도덕경의 81장은 서로 연관성이 없이 나열된 내용임을 보면 명심보감이나 채근담과도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마황퇴에서 발굴된 백서 도덕경과는 배치한 순서도 제각각입니다. 어쩌면 죽간에 써서 오랜 세월을 유전하다가 보니 서로 섞였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논문을 보는 것처럼 일목요연하기는 어려운 내용이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형식이야 아무렴 어떻겠느냔 말이지요. 내용을 음미하면서 삶의 질을 조금 더 완숙하게 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보면, 노자()라는 호칭도 애매하네요. 늙은 선생이잖아요? 성이 이씨라고 하면서 이자(李子)라고 하지 않은 것도 생각해 봅니다. 공자, 장자, 손자는 모두 성을 따랐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문득 김상우 선생의 통찰력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특히 일반인에게 귀감이 된다기 보다는 정치하고 다스리는 입장의 사람들에게 해 주는 말이 많은 것도 눈여겨 보라는 의미에서는 맹자의 마음과도 통하는 것같습니다. 맹자는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한 것을 생각해 보면 지식인들은 통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었다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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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김상우 선생의 관점으로 탐색한 제1장의 내용이나 다시 봅니다. 설명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네요. 책 이름이 탐색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사유와 통찰이 포함된 학자의 관점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풀이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또 하나의 관점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싶습니다. 그래도 맛이 있습니다. 냠냠냠~~!!


2019년 10월 28~29일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