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 제37장. 유람(遊覽)/ 4.암자의 노승(老僧)

작성일
2023-05-1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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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제37장. 유람(遊覽) 


4. 암자의 노승(老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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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설명을 듣고 있던 주인의 표정이 가관(可觀)이었다.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표정을 보면서 유하가 깔깔대고 웃었다.

“호호호~! 언니~! 그냥 웃어도 되거든요. 저마다 주어진 운명의 몫이 있다잖아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어요. 부디 그렇게 되시기를 천지신명 전에 빌게요. 그렇지만 축하한다고는 하지 않을래요. 호호호~!”

“실은 꿈에도 그러한 것을 바라지 않았는데 오늘 점괘를 보고 났더니 욕심이 조금 생기기도 하네. 비록 헛된 점괘(占卦)라고 하더라도 기분이 좋아서 오늘 저녁은 제가 사겠어요. 사람을 보내서 맛있는 찬관(餐館)에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

이렇게 말을 한 주인은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유하가 주인을 보며 말했다.

“언니의 손 큰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일행이 몇이나 되는 줄로 알로 그런 약속을 해버리니 말이야. 호호호~!”

“어? 일행이 또 계셨어? 그럼 더 좋지. 아예 며칠 머물러서 쉴 곳까지 마련해 드릴 요량이었는데 잘 되었네. 열 분까지는 편하게 쉴 집이 있는데, 가끔 지인이 찾아오면 쉬도록 하는 집이니까 편히 쉬도록 하면 나야 고맙지 여기는 다행히 길목이 좋아서 밥벌이는 충분히 되니까 희아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호호~!”

“그야 고맙죠. 그럼 언니 덕에 호강할게요. 아니, 점괘 덕에 호강하는 건가? 그나저나 참 신기하기는 하네. 어쩜 그렇게 나왔는지 지켜봐야 하겠어요.”

이렇게 말한 유하가 우창에게 다시 물었다.

“스승님, 시주(時柱)에 바로 변화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으로 보이잖아요? 결과를 지켜보고 싶어요. 그동안에 볼 것도 많은 개봉이나 천천히 둘러보면서 말이죠.”

유하의 말을 듣고서 우창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며칠은 묵으려고 했는데 객잔에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보다는 한적한 곳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유하가 원하는 대로 내맡겨 두기로 했다. 그때 염재와 진명이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고 웃으며 문 앞으로 와서는 차관의 문이 닫힌 것을 보고 난감해하는 것이 내려다보였다. 그것을 본 유하가 얼른 나가서 문을 열어줬다.

“어? 저는 또 문이 잠겨있어서 모두 다른 곳으로 가셨나 했죠. 안에 계셨던 거로군요.”

진명이 반가워서 말하자 상담하느라고 문을 닫았다고 말을 해 주고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주인과 인사하고서 옆에 앉았다. 그사이에 점원이 뜨거운 물을 가져와서 차를 우려내고 있었다. 마침 목이 마르던 염재도 차를 불어서 마시면서 분위기를 익히다가 육갑패를 발견하고는 자연스레 눈길이 멈췄다. 주인과 상담한다던 유하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 의미려니 싶어서 패를 들여다봤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어서 오세요. 좋은 인연을 축하합니다. 저는 오늘 새로운 안목을 얻게 되었어요. 세상에서 이렇게 신통한 점괘는 처음이지 뭐에요. 두 분도 함께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실걸요? 아니다, 항상 스승님과 동행하시니 너무 많이 봐서 심드렁하실 수도 있겠구나. 호호호~!”

기분이 좋아진 주인 황연수(黃演秀)는 자기를 소개하고는 저녁을 먹으러 가도록 준비하라고 점원에게 시켜놓고서는 이야기하다가 유하에게 물었다.

“희아, 혹 새로 부르는 이름이나 아호가 있어?”

“지금은 유하(遊霞)라고 불러요. 호호호~!”

“그렇구나. 유하는 무슨 뜻이야? 나도 그런 것을 하나 갖고 싶었는데.”

“자유롭게 유람을 다니면서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의 장엄한 풍경처럼 멋진 나날을 살고 싶어서 스승님과 같이 의논해서 얻은 거예요. 언니도 하나 지어서 불러주면 되는데 뭐가 어렵겠어요. 호호호~!”

“아냐, 그래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호를 써도 잘 어울리는 것이지 나같이 장사나 하는 사람에게는 돼지 발의 진주잖아. 안 그래? 그래 우희(虞姬)보다 훨씬 멋지네. 호호호~!”

“이름도 우희를 버리고 고윤옥(高允玉)으로 바꿨어요. 비련(悲戀)의 주인공(主人公)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싫어서요. 호호호~!”

“정말 잘했구나. 이름이 바뀌면 인생도 달라진다더니 희아, 아니 유하를 보니까 알겠네. 나도 이름을 바꾸고 싶네.”

“사람이 바뀌니까 이름도 바뀌는 것이지 이름만 바꾼다고 사람이 달라지진 않아요. 공부도 아직 얼마 못했지만 이러한 정신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되었어요. 그래서 마음부터 잘 쓰자고 생각했죠. 공부는 하루아침에 식은 죽을 먹듯이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호호호~!”

“정말 유하는 원래부터 생각이 많더니만 이렇게 도사의 길을 들어서게 되었구나. 잘 어울려서 나도 기뻐. 그리고 축하해. 그렇게 공부하다가 보면 오늘 현지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기가 막힌 점괘를 풀이해 줄 수도 있는 거잖아. 어서 그러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호호~!”

“고마워요. 그 염원을 받아서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할게요.”

잠시 후에 점원이 준비되었다고 말하자 일행과 함께 집을 나섰다. 시원한 호반을 거닐다 보니 마침 저녁의 노을이 아름답게 수면(水面)을 물들이고 있는 시간이었다. 하늘의 노을과 호반의 반영(反映)이 어우러져서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호수의 주변에 있는 집마다 등불이 하나둘 켜지면서 과연 밤에도 풍경을 봐야 할 정도로 멋진 야경(夜景)으로 변했다.

“이야~! 이렇게 멋지다니~!”

진명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歎聲)을 질렀다. 산골에서 공부하느라고 화려한 풍경을 오랜만에 본 것도 있겠으나 과연 아름다운 저녁의 풍경은 동평호에서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화려하게 보였다. 그 사이로 유람선이 오색의 등불을 켜서 치장하고 유유히 물결을 가르며 배회하는 것도 볼 만 했다.

노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면서 걷다가 이내 화려한 식당의 앞에서 걸음을 멈춘 황연수가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점원이 뛰어나와서 넓은 탁자로 자리를 안내하고는 이내 말리화(茉莉花) 차를 내어왔다. 짙은 향기가 감돌았다. 뚱뚱한 모습의 남자가 반갑게 나와서 황연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잘 지내시는지 통 못 뵈었습니다. 오늘은 귀한 손님들을 모시고 찾아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무엇으로 준비해 드리면 될까요?”

우창이 보기에 주인은 성실해 보였다. 그래서 맘에 들었다. 차를 마시면서 창밖으로 어둠이 찾아오는 양가호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는데 황연수의 높고도 카랑카랑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귀한 손님이고 말고요. 오늘은 산에서 도를 닦고 내려오신 귀한 분들을 모시고 왔거든요. 그러니까 가장 좋은 재료를 써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세요. 제가 손님을 청하는 거예요. 맘껏 즐겨주세요. 호호호~!”

“예에~ 그렇게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주인은 우창의 일행에게도 일일이 인사를 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우창은 황연수와 유하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면서 차를 마시는데 옆자리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점 소리가 커지면서 모든 사람이 듣지 않으려고 해도 안 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언성이 높아졌다. 두 남자가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오가야, 네 녀석이 처음에 투자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내가 왜 돈을 댔겠어. 이제는 발뺌하고 너만 살겠다는 거잖아. 큰돈을 벌게 해 주겠다고 꼬드겨서 금광에 투자하게 하고는 금이 나올 것 같지 않으니까 내게 떠넘기고 도망가겠다고 하면 그게 맘대로 되겠느냐!”

이렇게 외치자, 오가라고 불린 사람이 다시 그 말에 대꾸했다. 성씨가 오씨 였던 모양이었다.

“그래, 말 잘했다. 주가야. 내가 언제 확실하다고 하더냐?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 그리고 금이 나오기도 했잖느냐? 다만 양이 부족해서 투자한 것을 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일 따름이다. 그리고 나도 더 돈을 집어넣고 싶으나 형편이 안 된단 말이다. 이미 들어간 것이 3만 냥이잖느냐? 더 이상 버티다가는 거지가 되게 생겼으니 달리 방법도 없단 말이다.”

우창이 이야기의 대강을 들어봤을 적에 주가라고 불린 사람이 금광에 투자하면서 자금이 부족하니까 여유가 있는 오가를 끌어들였던 모양인데, 결과물이 여의치 못하자 갈등이 생긴 것으로 보였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마주 앉았지만 더 이상 투자하지 않으려고 하자 그도 감정이 격해져서는 언성이 높아진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소란이 일자 주인장이 얼른 나와서 조용히 해 주기를 간청했지만 이미 감정이 폭발한 주가는 계속해서 언성을 높이기만 했다. 듣고 보니 참 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관계없는 일에 개입하는 것도 이상하다 싶어서 잠자코 있는데 요리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자. 백주(白酒)를 곁들여서 담소하면서 먹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두 사람의 언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자 황연수가 일어났다.

“저, 잠시만 개입하고 와야 하겠어요. 천천히 드세요. 호호~!”

이렇게 웃으며 일어나서는 옆의 탁자로 다가가서 말했다. 듣고 보니까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던 모양이었다.

“주 대부(大夫)께서 안 보인다 했더니 금광에서 황금을 찾으시느라고 그랬나 봐요. 그런 일이 있으면 제게도 좀 알려 주시지 그러셨어요. 섭섭하잖아요. 그리고 친구분은 첨 뵙는데 소개라도 시켜주세요.”

우창은 옆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에 흥미가 생겨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귀는 옆으로 열어놨다. 우창의 모습에 다른 제자들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모두 그쪽의 상황을 주시했다. 주 대부가 황연수에게 같이 싸우던 사람을 소개하면서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황연수가 낮은 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오늘 제가 모시고 온 손님들은 기가 막힌 실력을 갖추고 있는 도사님들이세요. 지금 유람차 개봉에 왔는데 제가 붙잡아 뒀거든요. 숙소를 마련해 드렸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두 분이 저를 찾아오시면 안내해 드릴게요. 함께 잘살아 보자고 벌인 일에 이렇게 싸워서 원수가 된다면 무슨 이익이며 가까운 친분에는 또 얼마나 큰 손실이냔 말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드시던 술과 음식으로 맛있게 시간을 보내시고 내일 오세요. 아마도 결코 실망은 안 하실 거예요. 아셨죠?”

황연수의 말에 주 대부의 말소리가 작아졌다.

“그래? 내가 다른 사람 말은 못 믿어도 그대의 말은 믿지. 그럼 그대 말대로 해보도록 하겠네. 해결책만 나온다면 내가 또 한 턱 내겠네. 하하~!”

이렇게 말한 주 대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맛있게 음식을 드시는데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사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포권(包拳)을 하고는 사방을 향해서 머리를 숙이자 모두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우창도 미소를 지었다. 황연수의 탁월한 말재간에 감탄하면서 저녁의 만찬(晩餐)을 즐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깨끗한 황연수의 집에서 편히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우창은 저녁에 백주를 곁들였던 탓이었던지 갈증으로 잠이 깼다. 아직 인시(寅時)였고 사방은 깜깜했으나 호반에는 몇 개의 장명등(長明燈)이 어둠을 지키고 있는 풍경이 내다보였다. 불을 밝히고 보니 진명이 그랬는지 머리맡에 자리끼를 마련해 놨던 모양이다. 고마운 마음으로 시원하게 물 한 대접을 들이키고 나서야 잠이 깼다.

멀지 않은 곳에서 새벽예불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절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소리에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목탁 소리를 따라서 밖으로 나섰다. 절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언덕에 있었다.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에 「정법사(正法寺)」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큰 나무들이 서 있는 것으로 봐서 꽤 유서(由緖)가 깊은 사찰로 보였다. 대웅전에서는 기도하는지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우창도 그 소리를 따라서 대웅전으로 가자 노승이 앉아서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우창은 불전(佛前)에서 삼배를 올렸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일배(一拜)를 하고, 자신의 지혜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또 절하고 마지막으로 지금 순간에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절을 할 수가 있음을 감사하면서 절했다. 그렇게 절을 하고는 염불하고 있는 노승에게도 반 배를 하고서 밖으로 나오는데 노승의 염불 소리가 멈춰졌다. 기도를 다 하셨나보다 하고는 계단을 내려서는데 소리가 들렸다.

“젊은 시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시겠소~!”

주변을 둘러봤으나 말을 할 사람은 우창을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으로 생각하고는 도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문 앞에서 우창을 바라보고 있는 노승에게 합장배례를 했다.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그렇소이다. 방으로 가십시다. 허허허~!”

우창은 혼자 있는 것이 편했지만 노승이 방으로 가자는 말이 싫지는 않았다. 뭔가 인연이 닿아서 해 줄 말이라도 있다면 들어도 해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없이 따라갔다. 방앞에 다다르자 시자(侍者)가 나와서 문을 열어줬다.

“시자야, 손님이 오셨으니 차를 마련하거라.”

“예, 대사님~!”

“자, 이쪽으로 누추하지만 들어오시겠소?”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노승이 방으로 들어가자 우창도 따라 들어가서는 불이 환하게 밝혀진 방에는 향 내음과 함께 오래 묵은 책에서 풍기는 기분이 좋은 냄새가 섞여서 풍겼다. 우창은 이런 냄새가 늘 좋았다. 노승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자, 그쪽으로 앉으시오~!”

“예, 인사드립니다.”

우창이 노승에게 절을 했다. 노승도 합장으로 절을 받았다. 그리고는 앉아서 무슨 말을 하려나 싶은 생각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자가 차를 가져와서 노승과 우창의 앞에 따라놓고는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노승이 차를 마시면서 우창에게도 권했다.

“드시오~!”

“예, 고맙습니다.”

“오늘 새벽에 예불을 드리는데 왠지 인연이 있는 방문자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시자에게 물을 끓여놓으라고 했더니 과연 시주가 찾아와 주었구료. 허허허~!”

“그렇습니까? 기다리고 계셨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귀한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소생은 진하경(陳河鏡)이라는 사람입니다.”

“오, 진거사(陳居士) 잘 오셨소이다.”

“환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차가 참 향기롭습니다. 하하~!”

노승은 우창을 지그시 보더니 말을 이었다.

“간밤 꿈에 도량신(道場神)인 사천왕(四天王)께서 손님이 찾아오거든 문자부(文字符)를 전해주라고 하기에 참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진 거사가 찾아왔으니 어찌 인연이라고 하지 않겠소이까. 허허허~!”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허허허~!”

노승은 기분이 좋은 것처럼 웃더니 다시 말했다.

“그런데 문자 부적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있소?”

“예. 부적은 문자도 있고 도형(圖形)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런 도사들이 사용하는 부적이 아니라.....”

이렇게 말을 한 노승은 책상 위에 있던 문서 하나를 우창 앞에 내놨다. 우창이 보니까 손바닥 두 개를 겹친 만큼의 기다란 종이에 글이 한 줄 적혀있었다.

“대사님, 이것도 부적입니까?”

우창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노승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승이 미소를 짓고는 설명했다.

“나 혼자서만 사용하는 핵(核) 부적이라오. 그런데 오늘 정법사의 사천왕께서 전해주라고 하는 계시를 내리셨기에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하고 그대에게 전해주는 것인데 받을 마음이 있소?”

우창은 순간적으로 얼떨떨했으나 문자로 된 부적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고 무슨 조건을 내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겠다고 하는 것이며, 도량신이 주라고 했다는 계시까지 내렸다는 말에 싫어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말씀으로 봐서 필시 좋은 곳에 쓰일 비법인가 싶습니다. 소중한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우창이 그렇게 하겠다는 답을 듣고서야 노승이 말을 이었다.

“진 거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아, 예. 하릴없이 산천경계가 좋아서 유람하고 있는 서생(書生)입니다.”

“그런 말은 할 것 없고, 문자(文字)의 인연이 각별했나 싶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문자부(文字符)를 전하라고 할 까닭이 없지 싶어서요. 벼슬을 할 마음은 있소?”

“관직(官職)에는 인연도 없고, 그릇도 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는 관심도 없으니 아마도 이번 생에는 다 틀렸나 싶습니다. 그래서 허접한 오행 나부랭이나 주워들고서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하~!”

“오호~! 오행 학자셨구나. 어쩐지~ 허허허~!”

“학자라니요. 과분한 말씀입니다. 그래도 대사님께서 학자라고 칭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내가 사천왕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왜 난데없이 부적을 전해주라고 하는지 의아해서 짐짓 궁금했을 따름이오. 허허허~!”

“사천왕께서 어여삐 여기셨다니 감동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창도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노승이 문자부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기를 청했다. 시자가 다시 차를 따라서 잔을 채워줬다. 우창이 고맙다는 눈인사를 했다. 시자가 한쪽으로 가서 앉자 노승이 다시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强力)한 힘을 갖는 것이 무엇이오?”

우창은 난데없는 질문이 어리둥절했으나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면 되겠지 싶어서 묻는 대로 답을 했다.

“그야 왕권(王權)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제왕의 권력보다 더 강한 힘이 있겠습니까?”

“그렇소? 왕의 힘이 강하오? 아니면 백성의 힘이 강하오?”

“백성은 바람이 불면 쓰러지고, 밟으면 밟히면서 살아가는 무력한 존재들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대답했는데 노승은 원하는 답이 아니었던지 문밖을 내다보다가 소리쳤다.

“밖에 뉘시오~!”

노승의 말에 우창도 내다보니까 여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리고는 노승의 말을 듣고서 흠칫하더니 이내 뜰로 다가왔는데 보니 진명이었다. 잠이 깨어서 산책하다가 여기까지 올라왔던 모양인가 싶었다.

“아니, 진명이 산책 나왔구나.”

“스승님께서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

진명도 의외라는 듯이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노승이 미소를 지으며 진명에게 들어오라고 하고는 시자에게 찻잔을 하나 준비하라고 시켰다. 진명도 얼떨결에 우창의 옆에 앉았다.

“진 거사의 제자이셨구료. 참 곱기도 하오. 더구나 영안(靈眼)이 열렸소이까? 그 정도면 웬만한 사람의 후광은 바로 알아볼 수준이니 말이요. 참으로 전생에 공덕이 많았던 인연이군. 허허허~!”

노승이 감탄하면서 웃었다. 그러자 진명도 우창도 깜짝 놀랐다. 그냥 별로 볼품이 없는 암자의 늙은 화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진명을 보면서 바로 그 내공을 간파해 버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물었다.

“대사님 법호는 어찌 쓰시는지요?”

“나 말이오? 해주(解呪)라고 하오.”

“아, 해주 대사님이셨군요. 그런데 법호가 좀 특이합니다. 무슨 의미가 있으신가 여쭤도 되겠습니까?”

“빈도는 원래 밀교(密敎)를 수행하고 있소이다. 밀교는 주문을 외우는 것이 수행의 기본인데 그것을 하다가 보니 의미를 이해(理解)하게 되겠더란 말이오. 그래서 ‘겨우 주문을 이해했다’는 뜻으로 붙은 호외다. 허허허~!”

“참 특이한 법호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러셨군요. 소생은 우창(友暢)입니다.”

“오호~ 우창 거사. 좋소이다. 허허허~!”

“고맙습니다.”

“우(友)는 함께 더불어 즐긴다는 뜻이 될 게고. 창(暢)은 신(神)이 알려 주는 이치를 쉽게 풀이한다고 해서 쉬울 이(昜)가 붙은 이치는 알고 있소?”

“아니, 그런 뜻도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냥 뜻이 좋아서 화창(和暢)하다는 의미로만 취한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요. 그러나 쉬울 이(易)를 두고서 양(陽)의 고자(古字)이기도 한 이(昜)를 쓴 것은 ‘따뜻한 볕’이라는 의미 외에도 ‘바뀐다’는 뜻도 포함된 까닭이오. 그래서 이것을 파자(破字)하게 되면, ‘신(神)의 뜻을[申] 쉽게[昜] 바꿔서[易] 드러낸다[陽]’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과연 우창 거사에게 딱 어울리는 글자를 선택하셨소이다. 허허허~!”

우창도 나름대로 파자를 즐긴다고 여겼으나 노승의 수준에는 한참 미흡(未洽)한 수준임을 바로 알아볼 수가 있었다. 노승은 신이 나는지 계속 이어서 말했다.

“불도량(佛道場)의 도장(道場)도 장(場)은 땅의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니, 이곳에서는 부처의 이치를 드러낸다는 의미가 된다는 말이오. 그러니 도를 드러내어 깨닫기 쉽게 하고 모두를 위해서 밝히는 것이니 신의 뜻을 밝히면 창(暢)이 되는 것이고, 자연의 이치를 밝히면 도(道)를 드러내어서 장(場)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허허허~!”

우창은 해주의 설명을 들으면서 머리를 한 대 쥐어박힌 느낌이 들어서 아찔했다. 글자를 갖고서 논다는 말은 들어봤으나 과연 이 정도는 되어야 논다고 할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 사이에 하늘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