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 제37장. 유람(遊覽)/ 2.개봉부(開封府) 유람

작성일
2023-05-0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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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 제37장. 유람(遊覽) 


2. 개봉부(開封府) 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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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를 따라가면서 개봉부를 둘러보니 좌우에 붙어있는 현판에는 청정렴명(淸正濂明)이라고 쓴 것도 보이고, 또 한쪽에는 근정위민(勤政爲民)이라고 쓴 편액도 있어서 분위기가 자못 엄숙했다. 청렴(淸廉)하고 정명(正明)하다는 뜻이니 뇌물을 받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처리한다는 뜻과 항상 조심해서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우창을 비롯한 일행이 높이가 십척(十尺:3m)은 되어 보여서 위압적(威壓的)인 느낌조차 드는 포청천의 상을 향해서 분향(焚香)하고 배례했다. 그러는 동안에 백 통판은 잠시 옆에서 기다려 줬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자는 손짓을 따라서 옆문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앞에는 세 개의 작두가 보였다. 그것을 본 우창이 통판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디에 사용하는 것입니까?”

우창의 물음에 백 통판이 엄숙하게 말했다.

“죄인의 목을 자르던 작두입니다. 이름은 용의 머리를 한 작두는 용두찰(龍頭鍘)이고, 다음으로 호랑이의 머리를 한 작두는 호두찰(虎頭鍘)이며, 나머지 하나는 구두찰(狗頭鍘)입니다. 찰(鍘)은 작도(斫刀)를 의미하지요.”

“생긴 것으로 봐서 죄인을 벌할 적에 사용하던 것인가 싶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묻자, 백 통판은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맞습니다. 목을 벨 만큼 중죄(重罪)를 지은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게 되었을 적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셋이나 됩니까? 그 차이가 있겠지요?”

“여기, 용의 머리를 한 작두는 왕족(王族)이 죽을 정도로 큰 죄를 저질렀을 적에 집행하는 형구(刑具)입니다. 또 그다음의 호랑이 머리를 한 작두는 벼슬하던 관리들이 허물을 심하게 범하여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하는 것이고요, 마지막의 개 머리를 한 작두는 벼슬하지 않은 백성이 큰 죄를 저질러서 사형을 집행할 적에 사용하던 것입니다. 작두형을 집행할 적에는 개봉부로 일반 사람들도 참석해서 공개적으로 죄상을 물어서 재판하고 처형했기 때문에 그것을 한 번 본 사람은 절대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상상하던 우창이 몸서리를 쳤다. 그러자 관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오셔서 작두의 날을 만져보시겠습니까? 이것은 보통은 공개하지 않는 것입니다만 도 통판께서 동행하신 손님이라서 특별히 배려해 드립니다. 하하~!”

이렇게 말하고는 개작두를 들어서 우창에게 날을 만져보라고 했다. 우창이 만져보자 서슬이 시퍼런 것이 무엇이라도 단박에 잘라버릴 것만 같았다.

“작두의 날이 참 날카롭습니다. 무섭습니다. 하하~!”

이번에는 용 작두를 만져보라고 했다. 용작두는 개작두와 다르게 날이 없었다. 마치 칼등을 만져보는 느낌이었다.

“아니, 용작두는 날이 없습니다. 왕족은 특별대접을 한 것입니까?”

우창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묻자 관리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이 맞습니다. 특별한 대접을 한 것이지요. 왕족은 이미 배울 만큼 배웠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면서 고의로 죄를 범했다고 판단한 포청천께서 목이 잘리지 않고 짓이겨지도록 이러한 작두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 참혹함을 본 왕족들은 자신이 그 고통을 당하는 듯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은 당연하지요. 당시에는 개봉이 북송(北宋)의 도읍(都邑)이었으니 왕족들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랬겠습니다. 그런데 백성의 목을 베는 작두는 왜 이렇게나 날카로운 것입니까?”

“비록 백성이 죄를 짓고 중죄인이 되어서 목은 자르지만 국법을 모르고 그랬다고 판단해서 마지막 가는 길이나마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단번에 잘리도록 배려했던 것입니다. 포공(包公)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그런 곳에서도 배어있어서 당시에 개봉의 백성들은 감히 죄를 지으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포공이 판관을 했던 기간은 얼마나 되었던 것일까요? 백성들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랐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항간에서 경극이나 연극을 통해서 유명하게 회자(膾炙)되다 보니까 오랜 시간을 재임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판관(判官)을 지낸 기간은 1년 6개월이었습니다. 자신들에게 닥칠 형벌이 두려웠던 왕족들의 모함을 받아서 변방으로 쫓겨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그것은 참 의외입니다. 그렇다면 포공의 태어난 생일은 알 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공(公)은 송(宋)의 함평(鹹平) 2년 4월 11일에 태어나셨다가, 나이 28세에 진사(進士)에 합격했으나 부모님을 봉양하느라고 10년을 보살핀 후에 나이 서른아홉에 판관으로 위명(威名)을 떨쳤고, 63세에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우창은 포청천의 생일을 알게 되자 그의 사주가 궁금했는데 염재가 재빨리 그것을 기록하는 것을 보고는 고개만 끄덕였다. 염재가 백 통판에게 물었다.

“혹 포공의 생일 간지를 알 수가 있을까요? 팔자(八字)에 관심있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데 워낙 청렴(淸廉)하신 분이어서 궁금한 마음이 듭니다. 하하~!”

“아, 그러셨습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여기에서 관리하다가 보면 그것을 묻는 방문자도 있어서 일부러 찾아 뒀습니다. 나가실 적에 찾아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저쪽으로 가 보시지요.”

이렇게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개봉부를 잘 둘러보고는 나오면서 백 통판이 알려주는 포청천의 명식(命式)도 받고서 나왔다. 진명이 안내하느라고 수고한 것에 대해서 감사의 표시로 은자를 하나 줬다. 그러자 백 통판이 펄쩍 뛰면서 말했다.

“왜 이러십니까? 여전히 포공의 위명이 전해지고 있는 개봉부입니다. 그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하~!”

그 말을 듣고서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개봉부를 나와서는 이미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가까운 찬청(餐廳)을 찾아서 들어갔다. 포공호(包公湖)를 조망하기 좋은 곳에 있는 중산천채관(中山川菜館)이었다.

점원의 안내에 따라서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자 차림표를 들고 왔다. 상호로 봐서 사천요리(四川料理)가 전문인 것으로 보였다. 음식은 유하가 알아서 시켰다. 천하를 떠돌면서 쌓인 경험이기에 믿을 만했다.

“아무래도 사천요리는 얼큰하니까 혹 먹기에 거북하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러나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면서 포청천의 사주를 꺼내놓고 살펴보기로 했다. 염재가 적은 종이를 식탁의 가운데에 펼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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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자, 가장 먼저 진명이 말을 꺼냈다.

“어머~! 신기해요. 작두가 자꾸 떠올랐는데 사주에서도 그렇잖아요? 사해충(巳亥沖)과 자오충(子午冲)은 영락없는 작두네요. 사정없이 잘라버리잖아요?”

진명의 말에 유하도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자 과연 지지(地支)의 모습이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아니, 그렇다면 작두로 죄인을 다스렸다는 것도 사주에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실행을 했단 말이야?”

유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진명을 바라보며 말하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언니도 참 그런 것이 어디 있겠어요. 웃자고 한 말이에요. 다만 해석은 자유롭게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봐도 말은 되거든요. 호호호~!”

“아, 그런 것이었어? 난 또 팔자가 그렇게나 정확하게 무서운 것인가 싶어서 깜짝 놀랐잖아. 호호~!”

유하의 말에 모두 웃었다. 그러자 염재가 우창을 보며 말했다.

“스승님, 아무래도 기사(己巳)월 갑오(甲午)일이라서 인성(印星)이 필요해 보입니다만 이렇게 보는 것이 맞겠습니까?”

“그렇겠군.”

우창이 간단히 말했다. 용신은 바로 찾아줘야 궁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서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지가 한마디 물었다.

“왕족(王族)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작두를 들이댄 것은 관살(官殺)이 없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이번에도 우창은 간단히 말했다. 그러자 다시 진명이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진명이 보기에는 확실하게 결과를 보고 싶은 정재(正財)로 인해서 목을 잘랐을 것으로도 생각이 되네요. 그런데 사주는 이렇게나 혼란스러운 구조로 된 것이 무척 아쉬워요. 그야말로 지지(地支)에 전쟁(戰爭)이 난 것이라고 해야 하겠으니 말이에요. 그 정도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의 사주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잖아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우창이 그에 대해서 설명했다.

“진명은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는 말은 들어봤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기억이 나지 않는지 눈만 깜빡였다. 그것을 본 염재가 설명했다.

“아, 스승님의 그 말씀은, 바둑을 둘 적에는 마주 앉은 사람은 잊고서 바둑판에만 집중하라는 말인데, 사주를 볼 적에는 명반(命盤)이라고도 하기에 같이 통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주를 놓고서 판단할 적에는 그 사람이 재상(宰相)이거나 천민(賤民)이거나, 심지어는 제왕(帝王)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주만 풀이하라는 말씀이지요. 비록 세상의 악인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판관 포청천일지라도 그의 사주는 또 사주대로 자평법의 이치에 따라서 풀이하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그러니까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고 해서 팔자가 좋을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잖아?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말이네. 기억해 둬야지. 호호호~!”

“맞습니다. 그러니까 기준(基準)이 중요합니다. 인생의 기준에는 조상의 뿌리가 있다면 명학(命學)에서는 사주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삶을 사주에 대입해서 살펴야지 사주를 삶에 대입하게 되면 혼란이 발생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억지로 끌어다 붙이지 않아야 사주가 바로 보인다는 스승님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서야 혼란이 정리되었습니다.”

“정말이네. 사주가 중심이 되어야만 판단을 잘할 수가 있다는 말씀이 백번 옳다고 하겠구나.”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점차로 공부가 깊어지니까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사주를 풀이하고 그 사람에 대입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니까요.”

“정말 염재는 확고한 기준과 신념이 있구나. 부러워. 호호~!”

“아닙니다. 잘 모르면 스승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언제나 옳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오행의 이치대로 풀이했음에도 빗나갔다는 말을 듣게 되어도 처음에는 마음이 흔들렸으나 언제부터인지 그러한 생각조차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직 염재의 공부가 부족하거나 혹은 사주의 연월일시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정리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요리가 하나씩 탁자에 차려졌다. 이것을 본 진명이 말했다.

“와우~! 맛있겠네. 우선 먹고서 또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요. 스승님 먼저 접시에 덜어 놓으세요. 호호호~!”

모두 시장하던 차에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서 저마다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즐겁게 담소하면서 먹었다.

“아니, 이렇게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개봉부를 관람하고 만찬을 접하니 더 바랄 것이 없는데. 안타깝게도 술이 빠졌잖아?”

현지는 우창이 반주(飯酒)가 생각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명에게 말하자 재빨리 점원을 불러서 술을 주문하자 바로 가져왔다. 술을 본 우창이 말했다.

“역시 내 맘을 살펴주는 사람은 현지뿐이로구나. 하하하~!”

그러자 진명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스승님을 살펴드리지 못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했으니 진명은 아직도 공부가 멀었음을 인정해야 하겠네요. 자 스승님부터 한 잔 드시고 우리도 마셔요. 호호호~!”

우창의 잔에 고량주를 채우고는 제자들도 모두 한 잔씩 따랐다. 그러자 다시 진명이 말했다.

“오늘의 이 순간을 축하해요. 건배~!”

모두 잔을 들어서 눈높이로 들어 올려서 축하하고는 마셨다. 음식의 맛이 더욱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 배불리 먹고 나자 점원이 상을 치우고는 차를 준비했다. 향기로운 청향(淸香)이 차호(茶壺)에서 풍겨 나오자 진명이 점원에게 물었다.

“차의 향이 참 좋아요. 무슨 차이기에 이렇게나 향이 맑은가요?”

차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점원이 차를 따르면서 말했다.

“와우~! 차를 아시는 손님이시네요. 맞습니다. 이 차는 하남(河南)에서 유명한 신양모첨(信陽毛尖)입니다. 매운 사천요리를 드신 다음에는 녹차(綠茶)가 좋은데 그중에서도 신양모첨은 사봉용정(獅峰龍井)과 쌍벽(雙璧)을 이룰 정도로 뛰어난 향미(香味)를 자랑한답니다. 자, 드셔보시지요. 입안이 개운하실 것입니다. 헤헤~!”

“이름이 왜 신양모첨이죠?”

궁금한 것은 풀어야만 속이 시원한 염재가 점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점원이 염재를 향해서 말했다.

“신양은 하남의 남쪽인 신양현을 의미합니다. 모첨은 차잎에 잔털이 많고 뾰족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안휘(安徽)의 태평후괴(太平猴魁)는 납작하게 만드는 것과 비교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점원은 차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아 보였다. 이렇게 설명해 주자 염재도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인사했다. 점원이 뜨거운 물을 화로(火爐)에 올려놓고는 물러가자 차를 마시면서 먼저 진명이 현재를 보며 말했다.

“갑기합(甲己合)은 뭘 의미할까요? 뇌물을 받아먹는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말이에요. 왜냐면 재물에 집착하는 정재(正財)와 합이 되어있으니 말이죠. 그러니까 청관(淸官)이라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언니가 보기에는 어떤가요?”

진명이 현지와는 공부의 정도가 비슷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기에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선 옆에 앉은 현지에게 물었다. 현지도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음.....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서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동생이 그렇게 물어주니 내 생각을 말한다면 환경에 따라서 같은 정재라도 다른 작용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말하자면 재물을 탐하는 정재도 있지만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정재도 가능하니까 말이지.”

현지는 역시 나이가 있어서인지 사려(思慮)가 깊었다. 의문보다는 이해를 먼저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현지의 말에 진명도 웃으며 말했다.

“아니, 언니께서 어느 사이에 공부가 진명보다 깊어 지셨잖아요? 진명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잘 알고 계시니 말이에요. 혼자서 스승님께 특별한 가르침을 받으셨죠? 호호호~!”

그 말을 듣고 있던 염재가 이번에는 우창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다른 제자들은 답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였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용신(用神)이 인성(印星)으로 보인다면 재성(財星)은 기신(忌神)이 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데 어떻게 탐관(貪官)이 되지 않았을까요? 만약에 포청천의 사주라는 것을 모르고서 감명(鑑命)했다면 아무래도 청렴(淸廉)한 사람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요? 어디에 청기(淸氣)가 있는지 보이지를 않아서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염재가 묻는 말에 우창이 답을 했다.

“그래, 맞는 말이지. 잘 해석했군. 그야말로 선택(選擇)의 문제라고 해야 하겠군. 누군가는 물욕(物慾)으로 선택을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명욕(名慾)으로 선택을 하게 되겠지. 비록 인간세(人間世)에서 평판(評判)은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하겠지만 명리학(命理學)에서는 음양의 양면(兩面)일 뿐이지 않겠어? 그리고 포청천은 명예(名譽)를 선택했던 것이지.”

우창이 여기까지 말하고는 다시 제자들의 토론을 지켜볼 요량이었다. 이렇게 방향을 잡아주자 이번에는 진명이 말했다.

“아하~! 누구나 의지력(意志力)이 있으니까 선택하는 부분에서는 스스로 가능하다고 하겠어요. 그러니까 포공(包公)은 명예를 선택해서 확실하게 결과를 보고자 했기 때문에 물욕은 깨끗하게 포기를 한 것으로 보면 되겠어요. 단순하게 정재(正財)의 합은 재물(財物)에 대한 욕심(慾心)이라고 단정(斷定)한 진명은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네요. 호호~!”

그러자 유하도 한마디 했다.

“그런데, 아까 그 관리가 말하기로는 1년 반이 되자 왕족들의 모함을 받아서 변방으로 쫓겨갔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것은 운이 나빠서인가요? 아니면 운과는 무관하게 미움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인가요? 그것이 궁금해요.”

유하의 말에 염재가 세운(歲運)을 따져보고는 말했다.

“포공(包公)은 기해(己亥)년 생이므로 41세에 기묘(己卯)가 됩니다. 39세에 판관이 되었다면 대략 무인(戊寅)에서 비견(比肩)인 인목(寅木)의 힘을 받아서 일을 처리했고, 무토(戊土)는 편재(偏財)가 되므로 신속하게 처단(處斷)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다만 불씨는 그 안에서 자라고 있었겠네요. 인목(寅木)이 사오화(巳午火)를 달구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다가 기묘년(己卯年)을 넘기지 못하고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쩌면 그다음 해인 42세가 되는 경진(庚辰)년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경금(庚金)의 편관(偏官)은 큰 부담이라고 하겠고, 자수(子水)의 용신이 극을 받아서 힘을 쓰지 못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두려움에 가득한 왕족들이 도저히 그대로 둬서는 스스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모함(謀陷)해도 운이 돕지 못하니 그대로 물러나게 되었을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설명하자 진명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와우~! 염재는 그것까지 생각했던 거야? 놀랍네. 정말 대단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우창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좋은 팔자는 아닌 것이 맞죠?”

“고단한 삶을 살아갈 조짐이라고 해야 하겠군. 그나마 청렴하게 살았으니까 오래도록 명성(名聲)을 얻게 되었다고 봐야겠으니 중요한 것은 사주가 아니라 행위(行爲)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갑오(甲午)는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유하가 포청천의 일주(日柱)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러자 진명이 대신 설명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궁리해 보니까 갑오(甲午)는 말의 수레에 짚을 싣고서 불을 붙여놓은 것으로 봐도 되지 싶어요. 그렇게 되면 말은 어떻게 할까요? 언니가 생각해 봐요. 호호호~!”

진명의 말에 유하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말했다.

“그렇게 되면 말은 미친 듯이 달아나지 않을까? 아하~ 이제 알겠다. 오(午)가 말이라서 그렇구나. 맞지?”

유하의 말에 진명이 깔깔대며 웃었다.

“호호호호~! 아니에요. 호호호~!”

“뭐라고? 아니라니? 오년(午年)에 태어나면 말띠가 맞잖아? 왜 아니라고 하는 거지? 그렇다면 왜 말이 나왔어?”

“아, 갑목(甲木)은 동물(動物)로도 보거든요. 동물의 아래에 오화(午火)의 불이 붙어서 불붙은 수레를 생각했을 따름이에요. 그런데 언니가 보기에는 또 그래서 말이 나왔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정말 재미있어요. 호호호~!”

진명의 설명을 듣고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지 유하는 큰 눈만 멀뚱거렸다. 그것이 또 재미있어서 웃던 진명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불붙은 수레를 자수(子水)가 후려치는 것은 물을 부은 것일까요? 아니면 채찍질을 하는 것일까요?”

“이런 경우라면 채찍질이 되겠지. 그나저나 진명의 통변이 나날이 깊어가는걸. 하하~!”

우창의 칭찬에 진명은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지지가 온전히 수화상충(水火相沖)이잖아요? 이것은 오행의 이치로 본다면 도(道)가 없는 형태이니 무도(無道)라고 하겠는데 이것을 여기에 적용시켜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까요?”

“아 그것보다는 상관패인(傷官佩印)으로 보는 것이 좋겠네. 원래는 상관(傷官)은 주장이 강해서 질서를 무너트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자수(子水)가 꽉 잡아주게 되니까 다듬어진다고 할까? 표현을 잘해서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으면 수긍하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그것은 자수(子水)의 존재로 인해서 가능하다고 하겠지. 만약에 자수가 없었다면 자칫 교활(狡猾)하게 작용을 할 수도 있으니 자시(子時)를 얻은 것이야말로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는 귀인(貴人)이라고 해야 하겠네.”

“그런가요? 그냥 자오충(子午冲)에 대해서만 신경을 썼더니 이것이 사주의 균형을 바로 잡게 되는 공덕(功德)이 되었네요. 이런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그랬군. 충을 바라보면 충만 보이기 마련이지.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정작 충의 작용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수 있지.”

우창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진명이 다시 물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설명해 주세요.”

“사해충(巳亥沖)은 기해(己亥)이니 기토(己土)가 해수(亥水)를 통제하고, 기사(己巳)는 기토(己土)가 사화(巳火)의 기운을 돌려서 화기를 약하게 하니 실상은 사해가 충돌(衝突)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완충작용이 된다는 것이지. 또 자오충(子午冲)도 자수(子水)의 충돌하는 힘을 오히려 갑자(甲子)가 되는 바람에 갑목(甲木)이 수생목으로 흐르게 되어서 자오충이 완화된다고 보는 것이라네.”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가만히 생각하던 진명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하나만 보고서 판단하는 것은 안 되겠어요. 예전에 말씀하시기를, ‘충(沖)은 없고 극(剋)만 있다’고 하셨는데 이 경우에도 그것은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수극화(水剋火)의 작용이 크겠네요?”

“맞아. 그렇게 대입하면 잘하는 것이네. 하하하~!”

우창과 진명의 대화를 듣고 있떤 유하가 말했다.

“오행의 이치가 오묘하다고 하더니 정말이네요. 그리고 제 팔자가 왜 이렇게 정처도 없이 떠돌아다니나 했는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중요한 것은 팔자만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살아가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차담(茶談)만 나누다가는 다음 구경은 언제 하죠? 유하는 아직도 가야 할 곳이 많답니다. 호호호~!”

그제야 사주를 보느라고 다음의 일정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서로 마주 보며 웃고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