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 제37장. 유람(遊覽)/ 1.소주행(蘇州行)

작성일
2023-04-30 06:20
조회
1170

[444] 제37장. 유람(遊覽) 


1. 소주행(蘇州行)


========================

다시 이레를 더 동평객잔에서 머물면서 방문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진명이 응대하고 또 때로는 현지도 대화에 힘을 보탰다. 그러는 중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고, 바람이 몰아칠 때는 낙엽이 눈처럼 허공을 맴돌기도 했다. 우창이 생각해 보니 오늘이 입동(立冬)이었다. 방문자들은 끝이 없었고,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아침을 먹고는 무슨 핑계를 대고서 길을 떠나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밖에 나갔던 염재가 돌아와서 말했다.

“스승님, 곡부로 보냈던 파발(擺撥)이 돌아왔습니다. 오행원에 소식을 잘 전했고, 곡부 현령께서도 편의를 봐주기로 했답니다. 소주의 목사께서 머무름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아, 그래?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길을 떠나 볼까? 술월(戌月)도 지나갔으니 해수(亥水)의 물결에 몸을 실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네만.”

“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 날을 방문자들과 이야기 나눴는데 스승님께서도 좀 지치셨지 싶습니다. 오늘은 길을 떠나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우창의 말에 염재는 진명에게 말해서 모두 움직일 준비를 하도록 했고, 헤어지는 것이 마냥 아쉽다는 주인 고윤화에게도 작별을 고했다. 마지막으로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는 소주를 향해서 마차가 출발했다.

“도사님들께서 머무르시는 동안 참으로 즐겁고 보람이 있었어요. 이제 언제 또 뵙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서도 항상 건강하시기 바라겠어요.”

그 사이에 정이 들었는지 고윤화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루의 정도 깊이 드는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 우창도 손을 잡고는 말했다.

“정말 여러 날을 즐겁게 잘 보냈습니다. 천지신명께서 보우하셔서 나날이 번창하시고 좋은 인연들로만 한가득 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여러 도사님도 모두 즐거운 여정이 되시기 바랄게요~!”

고윤화는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일행을 전송했다. 진명도 같이 손을 흔들어서 답례했다. 길가는 이미 가을의 흔적이 깊어지고 있었다. 무심하게 말을 몰던 염재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일로(一路)로 소주를 향해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어디 둘러보고 가셔도 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염재가 이렇게 묻자 우창도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듣기로 남방에서는 오랫동안 송(宋)의 수도였던 개봉(開封)의 풍경이 좋다고 들었는데 너무 많이 돌아가지 않을까 싶어서 말은 꺼내지 못했지. 그런데 개봉은 가 봤나?”

우창이 개봉에 대한 말을 꺼내자 진명과 현지가 쌍수를 들어서 환영하면서 말했다.

“정말 진명이 할 말을 스승님께서 하셨네요. 개봉은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감히 엄두는 내지 못했어요. 좀 돌아서 가더라도 개봉을 구경했으면 좋겠어요. 마침 현지 언니도 마음이 동하신 것으로 생각되는데 구경하고 가요. 호호호~!”

우창이 유하를 바라봤다. 얼른 오행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을지도 모르는데 혹 원하지 않는 여정이 된다면 그것도 지루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극단(劇團)을 따라서 어딘들 안 가봤겠느냐는 생각도 들어서였다. 우창의 속내를 헤아린 유하가 웃으며 말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개봉을 한 번 보지 않았다면 천하를 구경했다고 말하지 못할 거에요. 마침 개봉에는 유하에게도 인연이 있으니까 안내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오랜만에 가보고 싶어요. 호호~!”

유하의 말에 우창이 말을 덧붙였다.

“난 혹시라도 이미 둘러본 곳이라서 지루할까 싶어서 염려되었지.”

“그야 누구와 동행하느냐가 중요하죠. 일하러 가는 것과 구경하러 가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어요. 마침 상담을 해주고 받은 노잣돈도 두둑하겠다. 멋지게 여행길을 즐길 수가 있겠네요. 정말 이런 분위기는 무조건 좋아요. 호호호~!”

모두가 환영하자 염재도 신명이 나서 말을 몰면서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는 역시 유하가 가장 풍부했다. 그래서 유하가 이야기보따리를 꺼내면 한 시진이고 두 시진이고 그칠 줄을 몰랐으며 그중에서 간간이 우창에게 묻는 것이 있을 때는 또 우창이 답을 하면서 여정(旅程)을 가다가 보니 지루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평객잔을 떠난지 닷새 만에 하택(荷澤)에 도착했고, 경치가 좋은 하택에서 느긋하게 다시 사흘을 머물면서 희곡(戲曲)의 고향이요, 서화(書畵)의 고향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풍경을 즐겼다. 거리에서는 흥이 넘치고 문화의 풍취가 우아했다. 여장(旅裝)은 관화루(觀花樓)에다 풀어놓고 안내는 유하가 맡아서 구석구석을 챙겨줬으며 특히 요순(堯舜)이 머물면서 활동하던 곳이라는 말에 우창도 새롭게 둘러봤다.

꽃으로 유명한 모화원(毛花園)에서는 가을이 깊어가지 않았더라면 참으로 볼만한 풍경이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갖 화초들로 가득했다. 그 밖에도 오래된 성시(城市)답게 고색이 창연한 건물들을 보면서는 문득 건물을 남기고 싶다던 증립창이 떠오르기도 했다. 역시 전화(戰禍)와 화재(火災)만 피한다면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감동을 주게 되는 건물에 매력을 느낄 만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삼일을 하택에 머물렀다. 주변의 풍경과 역사적인 흔적들을 유람하면서 여유롭게 놀다가 하택을 출발한 지 사흘이 되어서야 개봉부(開封府)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하남(河南)의 개봉은 과연 오랫동안 송(宋)의 도읍(都邑)답게 웅장하고 화려했다. 송나라만이 아니라 고대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부터 유서가 깊은 곳이기도 했다.

비록 낯선 풍경이었지만 유하가 앞서서 안내하니 일행은 모두 오래전부터 봐왔던 것처럼 편안하게 안내하는 대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동호빈관(東湖賓館)으로 가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객실(客室)을 얻었다.

“스승님과 개봉을 들리게 될 줄을 어떻게 생각이나 했겠어요. 다행히 개봉은 손바닥처럼 훤해요. 오늘은 푹 쉬셔도 되니까 편히 쉴 곳으로 모셨어요. 이 객잔이 전망(前望)이 가장 좋아요. 그리고 주변에 볼만한 곳으로 이동하기도 좋으니까요. 호호~!”

유하는 약간은 흥분이 되는 듯이 일행이 불편한 것이 없는지를 세심하게 챙겨주니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저마다 객실에 여장을 풀고 담소를 나눴다. 대청(大廳)에는 커다란 탁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누구라도 둘러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모두 간편하게 옷을 입고서 차를 마시면서 유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개봉부에는 큰 호수가 두 개가 있었는데 앞에 있는 호수는 반가호(潘家湖)라고 하고, 바로 옆으로 이어져 있는 호수는 양가호(楊家湖)라고 부르는데 이 둘을 합쳐서 동호(東湖)라고도 해요. 개봉의 서쪽에 있는 훨씬 큰 호수는 서호(西湖)거든요. 동호에는 송대(宋代)의 풍경을 만들어놓은 멋진 곳도 있어요. 그래서 유람객은 서호보다는 동호를 찾게 돼요.”

그러자 염재가 물었다.

“누나가 말씀하시는 멋진 곳은 혹시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을 말씀하는 것인지요?”

“맞아~! 염재는 알고 있었구나. 가 봤어?”

“아닙니다. 개봉에 가면 가장 먼저 둘러봐야 할 곳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요. 그러한 곳을 구경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침착한 염재도 개봉을 유람할 생각에 살짝 흥분되는 표정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유하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로 개봉은 포청천(包靑天)이 활약한 곳이라는 것만 떠오르는걸. 인간의 탐욕이 가득한 본성(本性)을 서릿발처럼 추상(秋霜)같은 법으로 엄하게 다스렸다고 하니까 말이지.”

“맞아요. 그래서 경극(京劇)에서도 항상 단골로 등장하곤 해요. 그러다 보니까 대략은 알고 있죠. 개봉부(開封府)도 둘러볼 수가 있어요. 특히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뜻을 펼치려는 의미로 일이 없을 적에는 구경할 수가 있도록 하니까요. 호호~!”

이야기를 나누는데 점원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고 전갈했다. 그를 따라서 식당으로 가자 커다란 회전식(回轉式) 탁자에는 진수성찬이 마련되어서 있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유하의 배려는 세심했다. 진명과 현지는 유하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도 즐거웠다. 그러다가 현지가 말했다.

“계절이 늦가을이라서 조금 아쉽긴 하네. 봄철이었으면 온갖 꽃들도 볼 수가 있었을 텐데 말이지.”

“아, 현지 언니는 개봉의 화원(花園)에 대해서 들으셨네요? 맞아요. 봄철부터 여름까지는 상춘객(賞春客)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서 기화요초(琪花瑤草)를 즐기죠. 그렇지만 하늘은 배려(配慮)가 많으셔서 다행히 이 늦은 가을에 찾아온 나그네에게도 서운하지 않도록 하셨어요. 호호호~!”

“그래? 그 말은.....?”

“바로 국화(菊花)에요. 아마도 청명상하원에는 한창 국화꽃이 만발했을 거예요. 가보게 되면 결코 섭섭하지않을 풍경을 보여드릴 테니까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될걸요. 호호~!”

“맞다~! 국화가 있었구나. 기대되네.”

현지는 꽃이 좋았다. 누구나 꽃을 싫어하기야 하겠는가만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저마다 개봉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창이 하품하자 모두 쉬기로 했다.

“스승님도 고단하셨지요?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부터 천천히 둘러보도록 해요. 모두 잘 자요~!”

우창은 노정(路程)에 쌓인 피로를 뜨거운 물로 씻고서 푸짐한 저녁으로 배를 채우고서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개봉의 밤 풍경은 호화로웠다. 더구나 오랜 시간을 산에서 보낸 우창의 일행에게는 더욱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저 멀리까지 펼쳐지는 고도(古都)에 갖가지 등불로 치장을 한 유람선(遊覽船)이 호수를 떠다니는 풍경이 멋졌으나 오늘이 아니라도 천천히 둘러볼 것이므로 푹 쉬었다.

 

개봉의 새벽은 두부 장수의 외침으로 열리나 싶었다. 잠결에 들으니까 딸랑이는 요령 소리와 함께 두부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두부사려~ 따끈따끈한 두부요~!”

우창은 두부를 좋아했다. 특히 순두부의 간간한 맛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콩 냄새가 좋아서 기회가 되면 먹곤 했는데 그것을 먹어본 것이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얼른 일어나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찾아갔다. 늙수그레한 장수가 대막대기에 두부와 순두부를 담아서 앞뒤로 걸고는 아침을 준비하러 나온 여인들에게 팔고 있었다.

“순두부를 사고 싶습니다.”

우창이 말하자 노인은 의외라는 듯이 우창을 바라봤다. 보통은 이 시간에 남자가 두부를 사러 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드릴깝쇼?”

“어떻게 파십니까?”

“한 그릇에 1전입니다요.”

“그럼 한 그릇 주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그릇을 이리.”

우창은 그릇을 챙긴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나갔기 때문에 그릇이 없었다. 우창의 손을 본 노인은 자신이 갖고 다니는 종이 그릇에 순두부를 담아서 건네줬다. 우창이 받아 들자 따끈따끈한 온기가 전해졌다. 새벽의 싸늘한 기운과 어우러지니 기분도 상쾌해졌다. 길을 건너자 동호의 호반(湖畔)이었다. 문득 며칠 전에 머물렀던 동평호가 떠올랐다. 풍경을 감상할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순두부를 먹으면서 고요에 잠겨서 서서히 밝아오는 동녘 하늘을 바라봤다. 향긋한 두부의 향과 싸늘한 공기가 어우러져서 행복감이 밀려왔다.

“스승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동평호가 떠오르시죠?”

소리를 듣고 돌아다 보니까 유하가 어느 사이에 찻잔을 들고는 길을 건너와서 말을 걸었다. 풍경에 취해서 다가오는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아, 유하구나. 잘 쉬셨나?”

“그럼요. 막 잠에서 깨어나서 창을 내다봤는데 언뜻 스승님의 그림자가 보여서 차 한 잔 들고나왔죠. 예전에도 이른 새벽에 여기 앉아서 여명(黎明)과 함께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는 것이 좋았거든요. 호호호~!”

“그랬구나. 이 시간의 풍경이 참 좋지?”

“하루 중에서 단연 최고예요. 호호~!”

우창이 먹던 순두부를 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잠시 생각했다. 그것을 본 유하가 말했다.

“스승님은 순두부를 좋아하시는구나. 유하는 차를 좋아해요.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남은 순두부를 마저 먹고는 그사이에 더 밝아진 새벽의 풍경을 바라봤다. 유하도 말이 없이 옆에 앉아서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어, 비가 내리려나 봐요. 하늘은 예쁘게 물들었는데 지나가는 비겠죠?”

“그렇겠지. 그만 들어갈까? 아무래도 한바탕 쏟아지려나 보다.”

“스승님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대청에서 비가 내리는 호수를 바라보는 풍경도 좋거든요. 호호~!”

유하를 따라서 어제저녁에 담소하던 대청으로 올라가자 그사이에 점원이 불을 밝혀놔서 환했다. 우창이 풍경이 잘 보이는 창가로 가자 유하가 찻잔을 들고 와서 따끈한 차를 따르고는 옆에 앉았다.

“스승님~!”

제법 밝아진 아침 풍경을 보고 있는데 유하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서 바라봤다. 말없이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유하에게 왜 불렀느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유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요. 불러보고 싶었어요. 호호호~!”

“싱겁긴. 하하~!”

우창도 마주 보고 웃고는 다시 풍경을 보는데 유하가 말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무엇이 말인가?”

“이 시간에 이렇게 스승님과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 자신을 보니까 말이에요. 20여 년을 야생마(野生馬)처럼 얼마나 분주(奔走)하게 살아왔던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 항상 그래야만 하는 것인 줄로 알았으니까요.”

“그랬겠군.....”

“동평객잔에서 본 진명의 티 없이 즐거워 보이는 표정에 반했잖아요.”

“진명에게?”

“아니죠. 저런 표정을 짓게 하는 스승님에 대해서요.”

“그런가? 다행이군. 어쩌면 불행일 수도 있고. 하하~!”

우창도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대해서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운 점도 없지 않아서 이렇게 말이 나왔다. 유하가 무슨 뜻인지를 바로 알아듣고서 말했다.

“스승님, 부담을 갖지 마세요. 오늘이 즐거우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내일은 오늘의 연속일 따름인걸요. 지금 이순간이 너무나 황홀하단 말이에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소중한 시간인걸요.”

“유하가 그렇다니 나도 고마울밖에.”

“스승님~!”

유하가 또 불렀다. 단둘이 있는데 부르니 그것도 어색했다. 다시 유하를 바라보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르는 소리에 울음이 배어있었던 것도 같았다.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니, 왜....?”

“스승님, 한 번만 안아 주시면 안 될까요?”

“어? 무슨....?”

우창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얼떨떨한 채로 있는데 우창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안기자 여인의 체취가 풍겨왔다. 우창도 엉겁결에 유하의 등을 토닥였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유하의 어깨가 들썩였다. 잠시 그대로 있게 했다. 그러나 이내 안정을 취했는지 몸을 일으킨 유하가 눈가를 손으로 씻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여태 살아온 날들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잠시만요.”

유하가 안으로 들어가자 우창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천하에 의지할 곳이 없이 떠돌다가 마음의 안주처(安住處)를 찾은 마음이려니 싶었다. 잠시 후에 다시 나타난 유하를 보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활짝 웃고 있었다.

“스승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오래도록 함께하면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요. 그동안은 헛된 웃음으로 보냈던 세월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진실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에요. 스승님은 그 옆에서 지켜봐 주시기만 하면 되거든요. 스승님께 작은 힘이라도 되어드리는 유하이고 싶답니다. 호호호~!”

“아무렴. 나아가서 많은 사람에게 빛을 주는 유하가 될 것이네.”

“생각해 보니까 그동안에는 남의 삶을 대신 살았던 것이네요. 배우는 그렇게 자신을 숨기고 남의 역할만 하니까요. 이제는 허울을 다 벗어버리고 진실한 나만을 위해서 살아갈 거에요.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만 살아가면 그렇게 될 테니까요. 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진명도 일어나서는 나오다가 우창과 유하를 발견하고는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스승님, 편히 쉬셨어요? 언니도~!”

“그래, 예쁜 진명이구나. 다시 보니 더 반갑네.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진명에게 다가가서 포옹(抱擁)했다. 진명도 그게 싫지 않았다. 둘이 포옹한 채로 얼굴을 마주 봤다. 그러자 진명이 물었다.

“언니, 울었어요? 아니, 왜?”

“응, 울었어. 기쁨에, 안타까움에서. 호호호~!”

“기쁨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안타까워서 울어?”

“왜 안타깝지 않겠어? 안타까운 것이 어디 한두 가지라야지. 모두가 다 안타까워. 그렇지만 이제는 안타깝지 않아. 기쁨이 새록새록 솟구치니까 말이야. 그래서 눈물이 흘렀어. 호호호~!”

“알아요. 언니의 그 맘. 축하해요. 함께 오래도록 웃고 살아요. 호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아침밥을 먹으라는 점원의 말을 듣고서 모두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제까지 마차를 모느라고 고단했던지 염재만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진명이 염재의 방으로 가서 깨웠다.

“염재, 아직도 잠에서 안 깨어난 거야?”

“아, 진명 누나구나. 이제 막 일어났습니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아침에도 푸짐한 요리로 차려진 탁자였다. 저마다 양껏 먹었다. 오늘도 돌아다니려면 든든하게 먹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도 음식의 맛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침을 든든하게 드셔야 해요. 오늘의 일정이 빡빡하거든요. 호호호~!”

벌써 구경할 곳을 안내할 생각에 즐거워진 유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염재가 물었다.

“유하 누나, 오늘은 어디를 가게 됩니까?”

“아무래도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이 개봉부야. 개봉에 왔으니 포청천을 만나봐야 하지 않겠어? 더구나 염재는 통판 나리잖아. 호호호~!”

“아, 그런가요? 잊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아침을 먹고서 일행은 유하가 안내하는 것에 따라서 개봉부로 향했다. 개봉부까지는 반시진(半時辰) 정도가 걸렸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으나 주변의 풍광을 보면서 가다 보니 이내 도착한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유하가 일부러 풍경을 보면서 가도록 배려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개봉부의 앞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 이름이 포공호(包公湖)였다. 포공은 포청천의 존칭이었다. 과연 개봉과 포청천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깊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염재가 마차를 정해진 자리에 매어 놓고는 앞서서 문지기 관원에게로 다가가서 몇 마디 말을 하자 얼른 문을 열어 줬고, 염재가 일행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문지기도 가로막고 있는 창을 거두고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배려했다.

안에서 꽤 높아 보이는 관리가 급하게 나와서 염재에게 인사를 하면서 반겨 맞았다.

“어서 오시오. 도대림(陶大臨) 통판(通判)께서 나들이하셨습니까? 편히 안내하고 모시겠습니다. 저는 개봉부의 통판 백민중(白敏中)이라고 합니다. 오늘 귀하신 분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도중에라도 무엇이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백 통판께서 친히 안내해 주시겠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에게 와서 말했다.

“스승님, 백 통판이라고 합니다. 안내를 해주시기로 했으니 혹 둘러보시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함께 개봉부를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염재가 백 통판에게 일행을 간단히 소개하고 명학을 공부하는 스승이라는 말은 뺐다. 집안의 어른인 걸로 얼버무리는 것을 보고는 모두 속으로 웃었다. 나이는 많지 않아도 주변의 상황에 대처(對處)하는 것은 이미 노련미가 드러날 정도였다. 백통판이 염재에게 물었다.

“어디부터 둘러보시겠습니까?”

이 말에 염재가 우창을 보면서 다시 물었다.

“아무래도 포(包) 판관의 흔적을 보고 싶으시겠지요?”

“맞아. 거기부터 보고 싶군.”

“백 통판께서는 포공(包公)을 먼저 뵙게 해주시겠습니까?”

“아, 그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포증(包拯)을 모신 사당이 우람하게 드러났다. 포청천의 인물상이 중앙에 거대한 불상처럼 자리하고 있으며 그 위에는 커다란 편액에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