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生旺庫의 관계 분석

작성일
2007-09-1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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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생왕고(生旺庫)에 대한 원리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화학반응이라는 이야기를 드렸는데, 그 요구조건이 바로 생왕고가 한 자리에 모여있기를 원한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 중에서 어느 한가지가 빠져있거나 또는 위치가 변경되어 있다면 삼합의 효과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는데, 위치에 따라서 반합으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결국 합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는 셈이다.




1) 生支와 旺支의 관계




生은 旺이 자신의 영역에서 그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도록 에너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생이 없는 旺은 아무래도 마음대로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의 원조를 받으면서 자신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旺은 그 힘이 몇배나 왕성해 진다고 볼 수 있겠다는 말이다.




2) 旺支와 庫支의 관계




다시 旺이 庫를 만나면 이번에는 자신이 일을 하고서 돌아갈 곳을 찾은 셈이다. 이것은 마치 집이 있는 사람이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과도 서로 통한다고 하겠다.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은 고단하게 일을 하고서도 편안하게 돌아가서 피로를 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므로 그 마음에 안정된 기분이 들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겠고,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매우 안정된 가운데에서 자신의 몫을 열심히 수행할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역시 旺과 庫의 관계도 旺支가 열심히 자신의 기운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庫地라고 본다.




3) 生支와 庫支의 관계




生支는 왕지가 있어야 뭔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을텐데, 왕지가 없어서 전혀 목적을 찾지 못할 것이고, 庫支는 고지대로 또한 자신에게 와서 휴식을 취할 주인을 만나지 못한 꼴이 되어서 역시 목적을 찾을 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三合과는 전혀 무관하게 단지 地支대 地支로써만 존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관계라고 해야 하겠다.




일설(一說)에는 生支와 庫支만 있어도 반합은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것은 좀더 생각을 해보면 서로의 관계가 애매하다는 생각을 할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서 불가(不可)하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다. 잘 판단해서 올바르게 이해를 하시기 바란다.




★ 시멘트 반죽과 三合관계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그 속에서 역학적(易學的)인 또는 명리학적(命理學的)인 이치를 찾아내려고 관찰을 하게 되는데, 현대에서 건물을 지을적에 없어서는 불가능 할 정도로 중요한 재료인 시멘트 반죽을 생각해 보면서 이 삼합에 대한 부분을 연결지어보려고 생각한다. 즉 이 콘크리트 범벅이 잘 되는 것은 삼합이 되는 것과 같을 것이고, 잘못되는 것은 삼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콘크리트의 반죽을 생각해 볼적에, 크게 봐서 재료는 물과 모래와 세멘트이다. 자갈도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선택사항이므로 여기에서는 뺀다. 이 셋이 잘어우러지면 멋진 시멘트 반죽이 된다. 그런데 부득히 재료가 갖춰지지 못하고서 뭔가 한가지가 빠지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중에서 어느 것이 빠져도 완전한 결합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멘트라고 생각이 된다. 시멘트가 없으면 도저히 일이 되지를 않으니까 말이다.

여기에서 시멘트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旺支라고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콘크리트라고 하는 구조물을 보면서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은 시멘트라는 것이 떠오른다는 것은 삼합을 생각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이 旺支(子午卯酉)라고 하는 것을 떠올리는 것과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이치를 생각해 볼적에 三合에서 子午卯酉가 빠지는 것은 콘크리트에서 시멘트가 빠진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앙꼬없는 찐빵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찐빵은 앙꼬가 없으면 맛은 덜하겠지만, 그래도 빵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히려 앙꼬가 빵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무도 빵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맛은 없어도 자신의 역할을 수행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앙꼬(팥앙금)만 놓고서는 아무도 빵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볼적에 삼합에서는 반드시 旺支가 끼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4) 庫인가 墓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다음으로 庫의 개념에 대해서 한번 잘 생각해보도록 하자. 중국의 명리학 교과서에서는 일반적으로 묘고(墓庫)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과서에서는 대개가 묘(墓)라고 표기를 한다. 그래서 보통은 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라고 본다. 생왕묘(生旺墓)라고 하는 말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도 다시 용어정리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낭월이다. 그래서 고심을 한 끝에 생왕고(生旺庫)를 쓰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면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 墓庫와 墓의 차이점




우선 중국사람들이 말하는 墓와 우리가 말하는 묘는 그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사람의 묘는 일종의 집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되면 어째서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이해 하실 것이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묘는 창고와 같은 개념이었던 것이다. 중국영화를 봐도 그렇다. 무슨 묘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실은 그 곳에는 절이 되는 경우가 보통이고 또 사당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옆에 무덤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사당을 일러서 묘라고 하는 경우라고 이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무덤 자체도 일반적인 한국인의 개념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서 공주에 있는 무령왕능을 보면 묘라고 하는 개념이 약간 달라진다. 적어도 문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묘는 주로 이런 식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렇다면 墓庫라고 하는 말이 같은 뜻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겠다.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묘고라는 개념은 보관을 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보관을 하는 이유는 언젠가 꺼내기 위해서 잠시 일정시간을 보관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창고라고 하는 개념을 대입하면 충분하게 납득이 갈 것이다.




墓庫 - 나중에 꺼내기 위해서 우선 저장을 한다는 개념

墓地 - 그대로 파묻어서 꺼낸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개념

倉庫 - 창고로써 잠시 쓰지 않는 물건을 보관하는 개념




한국사람에게 묘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묻는다면 백이면 백 모두다 매장(埋葬)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 꺼내기 위한 공간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용어의 정리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오히려 창고라고 하는 말을 써야 그 개념이 올바로 전달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묘라고 쓰면서도 그 개념을 창고의 형태로 이해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란 것이 항상 습관적인 생활의 상식으로 받아들이다 보니까 결국은 묻어버리는 것으로 이해를 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보는 것이 헛된 염려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三合에서의 墓라고 하는 표현은 이제 한국에서는 庫라고 수정을 해야 의미전달이 올바르게 된다는 것을 말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