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음양의 변형(變形)

작성일
2007-09-1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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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앞의 설명에서 오행(五行)이라는 용어가 등장을 했다. 이 오행이라는 부호는 엄밀히 말한다면 음양의 형상을 분류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음양의 각기 다른 모습을 고정시킨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음양이라는 것만을 갖고서 그러한 다양한 변화된 모습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복잡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아예 그러한 구조를 어떤 부호로 표시해서 간단하게 인식을 하도록 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부호가 바로 오행인 것이다. 남자를 양이라고 하고, 여자를 음이라고 했던 비유를 다시 여기에 끌어온다면,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지 생각해본다.




원래의 음양이라는 형상으로 설명을 할 적에는 남자와 여자를 대표적으로 음양이라는 말로 표시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점차 다양한 형태의 음양이 발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양이라고 하는 남자 중에서도 크게 봐서는 모두 양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여자의 분위기를 갖는 남자가 있었다. 그러한 사람은 남자라고는 하면서도 어딘지 남자 답지 않은 모습에서 또 한번의 분류과정을 거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부류의 남자들에게는 ‘여자같은 남자’라는 이름을 부여하게 되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의 여성다움이 외곡되면서 나중에는 여자이면서도 남자보다도 더욱 억센 형상을 한 여자가 등장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람은 단순히 여자라고 하는 말로만 묶어두기에는 상당히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을 묶어서 ‘남자같은 여자’라는 말로 부르기로 했던 것이다. 이렇게 분류를 하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볼적에 남자같은 여자의 부류는 겉모습은 여자지만 실제로는 남자의 성격이라고 봐야 할 상황이었다. 또 여자같은 남자도 마찬가지로 겉모습은 남자지만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하나같이 여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분류를 하다가 보면 남자도 여자도 아닌 부류가 있어야만이 ‘음양의 중간’에 해당하는 성분을 나타낼텐데, 그러한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구태어 있다고 한다면 형상에 구애받지 않고, 그 마음이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중화를 이룬 사람들이라고 하면 말이 될것도 같다. 아니면 성인(聖人)의 무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세간의 모든 욕망을 떠난 자유인은 성별에 의해서 자신의 욕망이 발동하지 않으므로 구태어 여자니 남자니 하는 말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치로 봐서 음도 양도 아닌 사람이기도 하고, 또 음이기도 양이기도 한 사람도 되는 사람은 음양이 중간인 성분으로 볼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던 이렇게 해서 기본적인 혼돈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서 음양이 되었고, 그 음양은 또 더 많은 세월이 흘러서 더욱 복잡한 형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본다.




신 유토피아




두 사람의 남녀가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남자라던지 여자라고 하는 생각이 없이 그냥 즐겁고 천진스럽게 동산을 뛰어놀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한가지의 근원에서 태어난 각기 다른 성분이었지만 그러한 것을 분별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배고프면 과일을 따먹고 목이 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시고는 다시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되었다. 그야말로 낙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절은 음양이 구분되기 이전의 혼돈의 시절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나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이뤄지고 가고자 생각하면 그대로 도달하는 자유로움이 존재하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 두 남녀는 보고 듣는 것이 확장됨에 따라서 분별심이 발생했다. 즉 음식을 먹는데에도 더 맛이 있는 것과 덜 맛이 있는 것을 구분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구분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것을 결정적으로 일러준 것은 한 마리의 여우였다. 이 여우는 두 사람이 노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여보시게, 저쪽으로 가면 아주 맛있는 사과가 있는데, 그 사과를 먹어보라구 얼마나 맛이 있는지 몰라.”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그 사과를 먹으면서 여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우는 맛이 있는 것을 얻는 방법과 맛이 없는 것을 가려내는 요령도 일러주었는데,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두 사람은 매우 강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렇게 구분을 해보았고, 또 재미가 있었다. 재미가 있자, 스스로 그렇게 재미있는 일꺼리를 찾아다니게 되었는데, 그 일꺼리 중에서는 서로의 몸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몸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도 역시 여우를 통해서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알음알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분별심을 일으킨다는 것이고 분별심은 다시 말하면 음양(陰陽)이라는 구별을 하게 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말하는 원래의 맑은 불성이 세월을 거치면서 분별심에 의해서 선악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서 취사(取捨)심이 발생하였으니 그 후로는 사람들이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도 서로 통한다고 보겠다.




그렇게 분별을 하고 나서는 서로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더욱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이미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의 개념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 후로는 모든 것을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했다. 그래서 여우가 일러준대로 하다 보니까 자식도 생기게 되고, 사냥도 더욱 많이 해야 했으며 그 결과로 대단히 많은 기준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언제 밤이 되고, 언제 눈이 오는지도 표시를 해 두었다가 활용을 했다. 소위 말하는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 인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고, 그 기준에 따라서 크게 다섯가지의 기준을 세웠던 것이다. 그 다섯가지는 바로 음양이 오행으로 분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와 같이 원래의 낙원이라는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서 주변에 흐르는 사물에다가 눈을 맞춰놓고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은 것 중에서도 좀더 나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나쁜 것 중에서도 좀더 나쁜 것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다섯가지의 기준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오행이라고 하는 것이고, 불교로 따진다면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온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말하는데, 눈으로 봐서 사물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고서는 그 자료는 머릿속에 저장이 되는 것을 말한다.




비유가 다소 유치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음양과 오행의 과정을 생각해 보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오행이라는 것도 별개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음양이 서로 만나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라고 보자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성분들도 또한 시간이 경과함으로써 각기 자신의 독립된 개체로써의 인격을 주장하게 됨으로 인해서 나중에는 오행이라는 별개의 형태로 대우를 해 주는 것이라고 보자는 생각이다.

이제 음양에서 오행이 발생하게 되는 연유를 설명 드렸으니까 다음단계인 오행의 장으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된듯하다. 그러면 좀더 오행이라고 하는 구조를 이해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