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5] 명리학과 역리학은 같은 거지요?

작성일
2016-07-0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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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 명리학과 역리학은 같은 거지요?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지진에, 장마에, 폭우에, 참 어수선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네요.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인에게는 시원하니 더 없이 좋은 나날들이기도 합니다. 책 보기에 좋다는 말씀이지요. 오늘도 차 한 잔의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어제 공부를 하러 오신 선생님이 던져 주신 화두로 인해서 아침 차의 안주꺼리로 삼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벗님께서도 그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으셨다면 이참에 정리해 보시는 것도 좋지 싶습니다.

제자 : 선생님 사람들이 사주공부를 역학이라고 합니다.
낭월 : 그렇지요.
제자 : 그러니까 그렇게 말을 해도 되는 것인가 싶어서 말입니다.
낭월 : 뭐, 안 될 것도 없으니까요.
제자 : 사실 역학은 주역의 역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지요.
낭월 : 오호~! 기특하십니다. 그렇게 궁리하면 머지 않아 답을 찾으시겠습니다.
제자 : 그렇다면 제자가 질문을 잘 한 것이란 말씀이신지요?
낭월 : 당연하지요. 여태 그것을 물어 본 제자는 없었거든요. 하하~
제자 : 그렇다면 오늘 제대로 공부를 하겠습니다. 그 차이점을 설명해 주세요.
낭월 : 당연하지요. 물으면 답을 합니다. 안 물으면 답도 얻지 못하지요.
제자 : 그러니깐요~ 질문을 잘 해야 하는데 아는 것이 없어서.....
낭월 : 이렇게 생각날 적마다 질문하면 되지요. 잘 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서 긴 설명이 이어졌습니다만, 대략 일반적인 경우에는 이러한 구분을 별로 할 필요도 못 느끼고, 그러다 보니까 그게 그것이려니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원래 알면 쌍동이의 형과 동생을 구분합니다만 모르면 그놈이 그놈 같잖아요. 하하~

물론 낭월은 역학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래서 피상적인 관점에서만 의견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양해 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짧은 견해로 인해서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전달을 할 수가 있을 위험에 대한 보험을 들어두는 것이랍니다. 항상 어딘가에서 문제는 생길 수가 있으니까요.

 

1. 역학은 운명예측학의 통칭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사용합니다.  그리고 별다른 문제도 없습니다. 사주공부를 하던 주역공부를 하던 모두 역학한다고 하고 또 그렇겠거니 하니까요. 그래서 이러한 정도의 의미라면 오늘 드리는 이야기는 그냥 유식한 체 하는 학인의 지식 자랑에 불과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ㅎㅎ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을 할 것도 없고 의견을 드릴 것도 없으므로 이것이 답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조금 더 파고 들어가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싶은 벗님들께서는 이제 뭔가 하나의 정리를 할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셔도 실망치 않으시지 싶습니다. 그냥 낭월의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지요.

 

2. 명리학과 역리학의 차이는 있다.


명리학(命理學)은 줄여서 명학(命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리학(易理學)은 줄여서 역학(易學)이라고 하면 되겠군요. 그러니까 뭔가 구분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두 학문의 체계라고 해도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차이도 분명히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명리학은 사주를 보는 것이고, 역학은 점을 치는 것이라고요? 그 정도라도 상당하신 겁니다. 적어도 같은 것이 아니란 정도는 구분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그러나 그 정도만 알아서는 그야말로 수박의 겉을 핥아 본 사람의 소감을 듣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ㅋㅋ

그러니까 단순하게 역학이라고 할 적에는 모두 묶어서 칭하는 것으로 봐도 되지만, 이에 상대적으로 명학이 대두 된다면 문제는 조금 복잡해 진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차이점은 알고 있어야 자평명리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낭월학당의 방문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려니~ 하겠습니다.

 

3. 역리학의 뿌리는 음양(陰陽)에 있다.


이제 역리학에 대해서 의미를 정리합니다. 물론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더 깊은 것이야 하늘에 닿을 만큼 많은 역학 서적을 보면 될 일이라고 얼버무립니다. 아무리 많은 역학관련 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뿌리는 음양에 닿아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분명하다고 하는 것을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팔괘도

뭔 말이 필요하겠어요. 이렇게 기본도판을 보면 바로 이해를 할 수가 있을텐데 말이지요. 가운데 태극도 음양이요, 가의 팔괘도 모두 음효(陰爻)와 양효(陽爻)로 구성이 되어 있음을 보면 이 학문이 어느 방향에서 태어났는지를 알기에 식은 죽먹기라고 하겠네요. 틀림없지요? 예 동의 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역학의 뿌리는 주역(周易)에 있습니다. 그리고 공자님이 노년에 완전히 빠져서 연구하셨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겸해서 따라다닙니다. 그 바람에 사실 명리학은 역리학에 뒤쳐졌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오해하지 마시라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인식적인 것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것이지요. 성현이신 공부자께서 역학을 연구하신 것을 보면 분명히 가치의 평가를 역학에 두셨던 거라는 주장을 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물론 반발을 할 마음도 없고 당연하다고 할 뿐입니다.

그러나, 상상컨대 공자님 시절에 자평명리학이 있었더라면 아마 공자님도 자평명리학을 연구하지 않으셨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공자님 떠나신지 1천 년도 더 지난 다음에 비로소 자평명리학이 태동을 했으니 어쩌면 역학의 운이 좋았던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래서 역학은 제도권에서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순간에도 명학은 뒷골목에서 아낙네의 한숨소리를 들어주고 있는 처지이기도 하겠습니다. ㅋㅋ 물론 가치평가는 상대적입니다. 역학이 위대하다면 명학도 위대합니다. 명학이 하찮다면 죄송하지만 역학도 하찮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낭월은 전자입니다. 왜냐하면, 명학이 대단하기에 역학도 대단하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관점이려니 싶은 까닭입니다. 역학의 뿌리는 음양에 닿아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이미 역학의 절반은 이해 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뿌리를 움켜 잡았으니까 말이지요. 하하~

 

4. 명리학의 뿌리는 오행(五行)에 있다.


반면에, 명학의 뿌리는 오행에 닿아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오행은 아시다시피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입니다. 사주풀이를 해 보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여름 나무로 태어났습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이것은 음양일까요 오행일까요? 물론 당연히 오행이지요. 그래서 명학은 오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됩니다.

오행도

오행에는 음양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냥 생극(生剋)에 대한 이야기만 있네요. 이것이 바로 두 학문의 뚜렷한 차이점이라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이 표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아름답습니다.

생도 하고,극도 하고..
생할 것은 생하고,
극할 것은 극하고...


생해야 할 것을 생하면 아름답고...
극해야 할 것을 극하면 또한 아름답고....

생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하면 거북하고...
극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극하면 고통스럽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낭월은 오행학자입니다. 그러므로 오행에 대해서 조금은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사실 오행의 변화에 빠져서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지요. 그리고 아직도 그 변화에 정신이 몽롱하여 내일이 있는지 조차 까맣게 모르고 오행의 연극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ㅋㅋ

음양의 이분법적인 관점도 물론 훌륭합니다만, 그것도 오행의 생극적인 몸에 입혀지지 않는다면.... 별로 멋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도 주역을 사귀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역학과 명학의 가장 큰 차이에 대해서 이해를 하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손톱만큼만 조금 더 들어가 봐도 되겠지요? 이렇게 하고 마무리 지어버리면 왠지 허전하실 벗님도 두어 분은 계시지 싶어서 말이지요. 하하~

 

5. 역학과 명학이 만나서 음양오행이 되었다.


흔히 그러잖아요. '음양오행을 알아야 한다'고요. 오행은 사주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음양은 주역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네요. 물론 능력이 되신다면 그렇게 하시기를 권합니다. 다만 낭월과 같이 반쪽짜리라도 일생을 붙잡고 고민해야만 하는 우둔한 선비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속담이 있잖아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다가 다 놓쳤다.'는 말이요.  안면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게도 구럭도 다 놓쳤다.'고요. 게를 잡으러 쫓아다니다가 게를 놓치고 구럭을 찾아보니 구럭도 밀물에 떠내려 가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구럭은 게를 담는 망태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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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낭월은 죽자고 한 마리 토끼만 쫓아 다닙니다. 그래서 이제 겨우 뒷다리를 붙잡은 것 같습니다. 정말 천만 다행입니다. 자칫했으면 한 마리만 쫓다가 그나마 놓쳐버리고 무주공산에 홀로 한숨만 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음양의 뿌리에서 주역이 꽃을 피웠고, 오행의 뿌리에서 자평(子平)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참, 말씀을 드려야 하나요? 낭월이 말하는 명학은 자평명리학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을요. 왜냐하면 명학에도 다종다양한 분야가 있기 때문에 혹 오해를 하실까 싶어서입니다. 그것은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오로지 한 마리 토끼만 쫓았다니깐요.

그리고 너무너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 정원을 느긋하게 거닐기만 하면 됩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학문의 세계인 것이지요. 이러한 풍경에 벗님도 동참하시기를 은근슬쩍 권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함께 노닐면 더 즐거우니까요.

 

6. 오행의 몸에 음양의 옷을 입은 것이 명리학이다.


오행만 있었던 것에서 음양의 관점을 수용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사실 갑골문을 보면, 역학의 흔적도 보이고 명학의 흔적도 보입니다. 물론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간지(干支)가 갑골문에 기록되어있다는 것은 분명하니까 말이지요. 간지는 명학의 해석코드이니까 이것이 뿌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행의 생극이라고 했습니다만, 생극(生剋)이라는 의미 속에는 이미 음양의 개념이 도입되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무리가 된 것이 오행의 음양인 것이고, 그것을 십간(十干)이라고 호칭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명학의 기본적인 핵심인 간지(干支)가 완성 되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역학이 오행을 어떻게 수용하여 활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낭월이 언급을 할 주변머리가 되지 못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행을 위주로 말하는 것이 자평법에서 음양을 논하는 것보다는 현저히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어디까지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는 까닭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이 있습니다. '음양에서 오행이 나왔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이것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봐야 하지 싶습니다. 맞다고 보는 것은 역학의 관점이라고 해 두고, 틀리다고 보는 것은 명학의 관점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명학은 절대로 단언하건대, 음양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음양에서 오행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만 있으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음양이 한 번 뒤집어서 재주를 부린 다음에 나온 것은 사상(四象)이잖아요? 사상과 오행의 차이는 뚜렷합니다. 넷과 다섯의 차이니까요.

둘에서 넷, 넷에서 여덟, 여덟에서 64가 나온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5진수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 왜 여덟에서 열여섯이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역학에서 그렇게 나누는 법은 별로 본 적이 없었지 싶습니다. 아마도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였던 모양입니다. 하긴.... 숫자 보기를 마당가의 지네 보듯 하는 낭월인지라 역학에 대해서 더 정감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

이 정도로 마무리 지으면 되지 싶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접시물같은 상식이 금새 바닥이 드러나 버릴 것이기 때문에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낭월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역학과 명학은 출발부터 다르고 성장 과정도 다르고 해결하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을 알고, 선택에 대해서는 각자의 인연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비록 간단하게 한담에서 생각을 정리해 보기는 했습니다만, 더 깊이 들어가면 오행의 생극으로 인한 조화는 그야말로 천변만화(千變萬化)입니다. 이것은 미끼입니다. 모쪼록 덥썩 물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이것을 알아 두는 것이 인생에서 결코 해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장마 중이라서인지 온통 꿉꿉합니다. 오행의 이치에 따라서 화(火)의 계절이지만 수(水)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다는 이치도 알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서 방바닥에다가 따뜻하게 불도 넣어가면서 음에서 양을 찾는 이치를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시기 바라면서 이만 수다쟁이는 물러갑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2016년 7월 7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