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주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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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에 신금의 작용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 즉 辛金일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에는 앞에서 설명해본 여러 가지의 상황들이 연결될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야 음양오행의 이치가 사람의 운명에 작용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금으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이렇게 냉혹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고 본다. 또한 다아아몬드처럼 화려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들어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그렇게 알아달라고 광고를 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광고를 하는 것은 木火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면적으로 그러한 욕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신금은 어찌보면 여인과도 닮았다. 반짝이는 모습은 흡사 사랑에 빠진 여인의 눈빛을 생각나게 하고, 한번 목적을 세우면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것도 역시 자명고(自鳴鼓)를 찢어버린 낭랑공주를 생각나게 한다. 뭔가 한곳으로 집중을 하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성분이 있어서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들은 신금의 영향이라고 보는데, 단단하게 압축되어서 웅크리고 있는 성분이기에 언제던지 누군가가 알아주기만 한다면 자신의 온 힘을 바쳐서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바가 잘 되지 않더라도 그러한 것에 대한 입력된 기억은 좀체로 지울 수가 없다. 이것은 나무의 성분이 빨리 잊어버리는 것과 비교를 해볼만 한데, 신금은 그렇게 각인된(바위에) 사연에 대해서 털어버리는 소질을 타고나지 못했다. 이러한 성분도 여인이 첫사랑의 감정을 일평생 가지고 간다는 의미와도 서로 통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성분이 사회적으로 잘 활용되려면 법관이나 행정기관에 근무를 하면 좋을살 싶다. 그러나 연예계 쪽으로는 아무래도 썩 잘 어울린다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구조라기 보다는 수동적으로 의뢰를 받아서 실행하는 형태에 가깝다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학교에서 규율반장과 같은 형태의 일이라면 잘 수행할 가능성이 있겠다. 그리고 이것이 확대되면 군경(軍警)계통으로 진출을 하는 것도 가능하고, 비슷한 경우겠지만, 교도관도 역시 적성에 어울릴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단지 일간(日干)48)만 가지고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간의 주변에서도 항상 예기치 못한 변수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항상 종합해서 판단을 내리는 안목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균형을 잃어버린 사주 쪽으로 생각을 바꿔보자. 가령 신금이 너무 많은 경우에는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억압하는 성분이 너무 많다면 부작용도 필시 발생할 것이다. 일단 지나치다는 점에서 자칫 불량배의 유혹을 받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교도관을 하는게 아니라 교도소에서 교도를 받는 입장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양면성이 있는 것이 세상만사의 이치가 아닐까 싶다. 즉 순경과 강도가 왠지 비슷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리고 죄수와 간수도 어딘가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표면적으로는 서로 상반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실상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 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추리가 나온다. 실제로 귀신이 붙어서 고생을 하는 사람과 귀신을 떼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동격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병원의 의사나 환자는 역시 동격이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수가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벗님은 어떻게 생각이 되시는가?

낭월이가 생각하기에는 환자가 되어야 의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즉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선생도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자신이 건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며, 너무나 유명한 동의수세보원의 뿌리가 되는 사상의학을 창시했던 이제마 선생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가 없는 특이한 병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은 결과라고 전해진다. 이렇게 볼적에 간암 환자만을 돌보는 간암 전문의는 간암으로 죽게 될런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너무 추상적인 내용을 확대해석 했다고 하실런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참고를 할 것도 있을상 싶다.

그리고 명리학을 연구하시는 것도 그렇다. 자신의 사주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면 연구를 할 마음이 들 것 같지가 않다. 여기저기 자신의 운명을 풀어달라고 돌아다니다가 어느날 문득 자신도 모르게 명리학의 숲속에 깊숙이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이제 남들의 운명을 봐주는 입장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보도에서 늘상 보아오는 것이지만, 범죄자들과 연결이 되어있는 경찰관들을 많이 보게된다. 서로 같은 공간에 놓여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범죄자들은 허가없는 죄인이고 경찰은 허가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출발은 되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그릇49)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므로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민주경찰이라고 하는 슬로건 아래에서 책임감을 느끼고서 그야말로 올바르게 처신을 하면 이것이 상품(上品)인 것이다. 경찰관이 혐의가 있는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것을 볼적에 크게 다를 것이 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은 결코 치우친 생각이라고 보지 않는다. 말이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사를 못해먹는다고 할 것이나, 그러면 그만두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냥 그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자신의 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론은 너무 신금의 특성이 강화되면 이렇게 치우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 대한 선악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 모두는 살아가는 모양일 뿐이다. 어쨌던 뭔가 한가지로 치우치게 많은 것은 정체가 될 가능성이 높겠고, 그로 인해서 부작용은 반드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우친 사주는 그러한 기운을 어떻게 조화롭도록 조절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있는 인생이 되도록 가꿔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너무 약하다고 한다면 이것도 문제이다. 즉 마음속으로만 생각을 하고 실제로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라면 역시 갈등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갈등은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것이다. 마음만 먹고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늘 속으로 숨어버린 그 마음이 어떤 일을 꾸미게 될런지도 모른다. 원래가 에너지는 질량보존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다. 어디에선가 사용되지 못하고 축적된 에너지는 언젠가 무슨 일을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만들어 낼 것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질병으로 나타나는 것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하면 되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쨌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않고, 중심선에 근사하도록 조절이 되어있으면 가장 좋겠는데, 사람의 운명이 어디 그렇게 맘대로 되는가... 더욱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이지러지고 넘치는 에너지를 타고난 채로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그 마음에 이러한 작용을 새겨두지 않으면50) 되겠는데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