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운명을 간섭하는 요인들에 대하여 (1) |
흔히 생각할 적에는 자신의 삶은 자신이 살아간다고 하기가
쉽다. 그러다가 어느 시절에 가서는 또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방향에서 삶의 흐름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운명론자(運命論者)니 숙명론자(宿命論者)니 하는 말도
생겨나게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사이트에서 연구하는 낭월이를 비롯한 여러 벗님들도
역시 어느 정도의 문제는 있겠지만 운명의 작용에 대해서 인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작용하는 구조에 대해서 어떤 원리가 개입하고 있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한 번 정도는 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 아침에 잠시 생각을
더듬어 본다.
1. 전생(前生)의 업연이 씨앗을 이룬다.
아무래도 낭월이가 불교도이다 보니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태어나기 이전에 결정이 되어버린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예를 든다면 한
장의 큼지막한 철판이 있다고 할 적에 이 철판이 아직 무엇인가로 되기 전이라고
할지라도 상당히 큰 범위에서는 그 용도가 결정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여하튼 목재나 물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철판이 들어갈 위치는 어느 정도 정해진
것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자동차로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 철판은 예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철판으로 탄생이 된 순간부터 그의 삶에 대한 방향은
한정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의 덮개가 되었든 문짝의 표면이
되었든 여하는 자동차의 어느 부분으로 들어가도록 마련이 된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나 철판이 엔진 부분으로 들어갈 일은 없다. 또한 바퀴가 될 수도 없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하겠다. 핸들이 될 수도 없고, 유리창이 될 수는 더더욱 없다고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아직 활용의 여지는 있다고 하겠지만 기본 틀은 정해져 있다고
보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자.
그렇다면 이러한 것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하겠는데, 물론 보통의 사람 능력으로써는 읽을 수가 없다고 해야 정답일
것이다. 예전에 전생을 읽어 준다는 사람이 있어서 찾아가 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전생에 대해서 줄줄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낭월이의 전생은 화려했다.
인도에서 살았고, 삼장법사이고, 지장보살로 생활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반도의 인연으로는 일연스님의 수제자로써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편집할 적에
대단히 큰 몫을 했다는 구체적인 말도 나왔다. 물론 낭월이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지만,
낭월이의 전생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나이가 31세 정도 되었을 것이고, 승복을 입고 갔었으니까
혹 불교와 관련한 모든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맞춰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충 소설을 써도 그 정도의 연극대본은 충분히 나올 만 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믿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다시 그러한 이야기들을
사실이라고 전제하고서 생각을 해본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할 것도 아니었다. 모질지
못한 여린 심성은 지장보살의 노릇을 했다고 하는 말로써 연결이 될지도 모르겠고,
몇 년 전에 태국에서 현지 음식을 먹으면서 약 열흘 동안에 몇킬로그램이 불어나서
스스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열대 음식이 몸에 맞는가보다..'
했는데, 다시 이 전생이야기와 연관을 시켜본다면 인도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다면
그러한 습이 윤회하는 과정에서도 일부분이 남아있었을 수도 있겠고, 그래서 비록
이 몸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전생의 인연에 의해서 열대성 음식이 그렇게 편안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면 구태여 아니라고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삼장법사(三藏法師)라는 말도 그렇다. 물론 말씀을 해주신
분은 현장삼장을 놓고 말했는지 또는 다른 삼장을 두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삼장이라고 했다. 당시에 어느 삼장이냐고 물었더니 인도로 불경을 가지러 갔던 중국의
삼장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현장삼장을 말하는 모양이지만 그의 불교에 대한
상식이 별로 인 것으로 생각을 해보면 아마도 아는 삼장이 현장삼장일 뿐이라고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다시 각색을 해보면 어느 삼장이든 간에 경률론의 이론에 상당히
깊은 연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이번 생에서 자평명리를 하나 붙잡고서도
많은 궁리를 하는 스타일을 보면 절대로 아니라도 할 수도 없는 가닥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아가서 인각사(경북에 있는 절로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머물던 절)에서 일연스님을 도와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편찬하는 일에
수위의 일을 맡았다는 말도 그렇다. 물론 믿을 수는 없지만 또한 일찍이 17세에 불교에
입문하여 나름대로 경전에 대한 공부도 하고 또 이렇게 책을 쓰는 것을 보면서 또한
이야기를 많이 삽입(원래 삼국유사도 이야기가 많음을 볼 때...)하면서 횡설수설하는
것에서도 아마도 삼국유사에서 이야기를 채집하던 실력(?)이 발휘된 것이라고 한다면
역시 구태여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을 해본 후로 1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곰곰 생각을 해보니까 혹 그 분이 전생을 제대로 읽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물론 당시에서는 너무도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으로 짐짓 웃고 말았는데
그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도 그대로 뇌리에 박히는 것은 물론 자신의 불가해한 부분에
속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이야기라고 봐서이다. 그리고
스님에게는 원래가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 소설가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는데,
사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전생의 인연으로 연결된다고 보는 관점이라면 스님행색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전생에도 스님을 했다고 하면 그만이고, 가장 완전한 것은
전생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서 마음대로 소설을 써도 되는 것이라는
완전범죄(?)의 부분이 상당히 있다고 봐서 얼마든지 얽어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가능하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다른 전생예언가를 찾으면서 점차로
신빙성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은 서로의 전생이야기들이 연결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언가는 낭월이 보고 전생에 일본에 살던 스님이라고 한다.
임진왜란에 조선으로 장수를 수행하고 왔다가 이 땅에 빚을 많이 지게 되어서 스님이
되어 그 빚을 갚는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아마도 추적을 하면 뭔가 나올
법도 하기는 한데, 그래도 그러한 노력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는데, 왜냐면 전생이야
아무러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이다. 이미 그렇게 진행이 되어버린 과거의
일이라면 그에 연연해서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생에 왕자였다고
한 대서 이번에 취직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전생의 추적은
그야말로 흥미꺼리일 뿐이라고 생각을 하기는 하면서도 항상 궁금... 하기는 하다.
이마도 벗님도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시리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과연 전생의 인연을 이렇게 읽을 수가 있느냐는
것은 그냥 두고서라도 여하는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이번의 삶에 대해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점에서는 참으로 신비한 구석이 많은 점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이 있었다.
예전에 어려서 10세 무렵쯤 되었을까.... 점술에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방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실은 점술이라기 보다는 영매자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영기운이 강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생각이 된다. 그 분이 들어오다가 입구에 있는 동네의 집앞을 지나오게 되었는데,
와서는 하는 말이
"저 아랫집에 있는 남자는 전생에 남의 집에 일을
해주러 다니는 일소였더구만 그랴~"
이 말을 듣고 어린 마음에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다음에나온 말은 더욱 기묘했다.
"그 사람은 자기 집의 일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남의
집 일이라고 하면 기를 쓰고 나가지?"
"그렇다네"
"왜 그런지 아슈?"
"글세... 왜 그럴까?"
"남의 집 일소는 제집에서는 먹는 것이 시원치 않거든
그러다가 남의 집에 일을 하러 가면 그때는 잘 얻어 먹잖여. 그러니까 맘이 온통
남의 집에 가 있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번 생에서도 그렇게 남의 집일을 좋아한다니까.
하하~"
"정말 그 사람이 그렇더군... 그 참 묘하네 그랴.."
이렇게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생각에 참
그럴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말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장담을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과연 전생의 인연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연결이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실로 공부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사람은 순박하니 좋았다. 그래서 소라고 하는 영상을 겹쳐 놓으면 틀림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선입견이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여하튼
연결고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삶의 운명에 간섭하는 요인으로써
전생의 습관은 음으로 양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나눠서 올려드리도록 하겠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