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징성(象徵性)

작성일
2007-09-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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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진토를 상징하는 것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용(龍)이 가장 우두머리에 앉아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선 용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고 나서 다음을 넘어가야 이야기의 순서에 합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변화가 무쌍하고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용은 현재 지구상에서는 멸종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멸종이 된 것은 아닌 것으로 떼를 써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현재에도 용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구상에는 어떤 용들이 있는 지부터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기왕에 용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면 세세하게 연구를 해봐야 제대로 이해를 할 것이다.

우선 멸종된 용으로는 공룡(恐龍)이 있다. 공룡이 멸종된 원인에 대해서는 각기 학자들마다 자신이 상상한대로 억측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것도 이름을 봐서는 분명히 용에 해당하기 때문에 함께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특징 중에서 발이 넷이라는 것과,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뭔가 연결이 될 듯도 하다. 익룡이라는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생긴 것은 새처럼 생겨서 육식을 하면서 날아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한꺼번에 몰아서 공룡으로 부르면 될 것이고, 결국 한꺼번에 멸종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부류의 용이 있는데, 바로 도롱뇽이다. 이 녀석이 생긴 것을 보면 일종의 용은 용인데, 그 규모적인 면에서는 공룡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도 이름이 용인 것을 보면 아마도 발이 네 개 달려있다는 것을 높이 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쬐끄만하게 생겼더라도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는 또한 덩치가 컸을는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볼 만 하다. 상상은 자유니까 말이다. 원래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리고 나면 몸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도 살아가면서 에너지를 많이 써버리고 나면 늙으면서 몸이 줄어든다. 뼈의 조직이 약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어쨌거나 도롱뇽의 과거는 또 어떠했을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용처럼 생겼으면서도 용이라고 부르지 않는 놈이 있다. 바로 악어인데, 이 녀석은 어쩐 일인지 발이 있는 파충류인데, 그냥 고기라고 이름이 지어져있다. 아마도 예전 사람들은 이 녀석에게도 일종의 용이라는 이름을 붙였음직하다. 우리는 그냥 서양식으로 된 이름을 번역하다 보니까 악어라고 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악어와 유사한 것으로는 규모는 적지만 이구아나라던지 대형 도마뱀도 있다. 이런 녀석들도 모양은 과히 볼품이 없지만, 그래도 일단 용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辰土에 대한 것을 연구하는 마당에서 잠시 생각을 해볼 만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는 카멜레온이라는 파충류도 있다. 이 녀석도 생김새는 비슷하다. 대충 이렇게 살펴봐도 이미 상당한 종류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부류가 우리가 생각하는 용띠라고 하는 용과의 연관성이 어느 정도 있는지, 아니면 전혀 별개의 동물인지는 그냥 상상에 맡길 뿐이다.

대충 이 정도로 현재 우리가 자료상으로 알 수 있는 용들을 생각 해볼 수가 있는데, 이것들을 보다 현실적으로 연결시켜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현재의 공부하는 분위기가 모두 과학적, 실험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그냥  상상의 동물로만 생각하고 있는 용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다른 11마리의 동물과는 다르게 별스러운 녀석이 끼어있는 것 정도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현실적으로 합리적으로 그럴싸한 이유를 제시해보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낭월이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용의 부류들 중에서 고인들이 자료를 삼았다고 생각이 되는 용은 과연 어느 용이 될는지는 추측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설명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냥 파충류 중에서 발이 달린 것으로 대표를 삼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그 정도로 참고하는 것이 무난할 것 같은데, 용띠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신통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므로 그대로 한 번 밀고 나가볼 생각이다. 그런데, 용과 진토와 어떤 연관성을 떠올려 보자니까 아무래도 자꾸 토룡(지렁이)이 생각난다. 사실 진토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는 지렁이가 제격인데, 지렁이를 일명 토룡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전혀 무관하다고는 못할 것 같다. 물론 억지라는 것은 알지만, 일단 진토의 형태가 그렇게 축축하고 부드러우면서 기름진 흙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적에, 일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진월이 되면 이러한 룡자가 들어간 동물들은 모두 살맛이 제대로 날 것이다. 양력으로는 이미 4월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니 만치 냉혈동물인 파충류들로써는 가장 좋은 시절이라고 할만 하겠다. 그래서 진월에다가 용을 넣은 것이라고 일단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그런데 여러 가지 자료를 보건대, 용띠에 나타나는 용은 전형적인 동양의 용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영화를 보면 축제를 할 적에 한 쌍의 청룡과 황룡이 의여주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더러 보이는데, 그 형상도 매우 구체적이다. 그리고 한국의 이곳저곳에 얽혀있는 전설을 살펴봐도 심심찮게 용이 등장을 한다. 우선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통도사의 구룡지(九龍池) 이야기이다. 우선 앞에서 생각해본 사이비 용(?)들은 모두 뿔이 없다. 그림에 나오는 용은 무조건 제일 필수조건이 뿔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적에 뿔이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핀트가 잘못 맞춰진 것 같다. 그렇다면 원래의 용은 실종된 것일까? 공룡처럼 말이다. 잠시 옛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그야말로 용의 전설이 되는 셈이다.




★ 통도사의 구룡 전설




옛날 신라시대에 자장스님이 계셨는데, 이 분은 특징이 계율(戒律)을 잘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일러서 율사67)라는 호칭을 썼는데, 선덕여왕을 도와서 왕사노릇을 잘 하셨던 모양이다. 그러한 고승(高僧)이 처음에 통도사를 세우려고 자리를 찾다가 현재의 통도사 자리에 왔다. 주변의 동네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이 연못에는 아홉 마리의 악룡이 살고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있으므로 좀 잡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자장스님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자장암을 만들고 그 곳에서 기도를 드렸더니 용들이 모두 굴복을 하더라고 전한다. 그래서 제각각 좋은 곳으로 천도를 시켰는데, 유독 한 마리가 자장스님을 찾아와서는 눈물로 하소연을 하는데,

“지는 말입니더. 원래 눈이 멀어서 승천을 할라케도 못합니더. 그러이까네 기냥 여기에서 살면서 시님을 공부하시는데 보호라도 하면서 있으마 않되겠심니껴?”

하더란다. 그래서 자비심을 베풀어서 그 용이 살 공간을 만들어 줬는데, 부처님의 사리탑 앞쪽으로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고, 그 웅덩이에 눈먼 용이 살도록 해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침 낭월이가 통토사 출신이므로 그 자리에서 공부를 하면서 가끔 시간이 날 때에는 그 연못 주변을 서성이면서 혹시 라도 눈먼 용이 보일랑가... 싶어서 기웃거려 봤지만 결국 보지는 못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통도사에는 오늘도 그 용의 못이 있어서 찾는 나그네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보며서 느끼는 것은 과연 용이라고 하는 것이 전설로만 존재하는 동물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설로만 존재한다고 보기에는 신라시절의 여러 곳에서 구체적으로 용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서 약간 의아하기도 하다. 그래서 실제로 살았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무대왕의 호국룡이라던지 의상대사의 선묘룡68)도 그렇고 구석구석에서는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있는 용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과연 그냥 허구로만 지어진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했었다면 또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호랑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어딘가 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아마 용도 어딘가 에서 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던 이렇게 여러 가지 추측을 만들고 있는 것도 진토이다. 과연 진토의 본래면목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난해한 동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서 연구해보고 있는 것이다.




★ 정축년엔 용이 열두 마리 라는디...




용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러한 상식도 한쪽 끝에다가 삽입을 시켜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한다. 해마다 옛 어르신들이 년초가 되면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한 말씀에 의거하면

“이거 정축년에는 용이 12마리나 되니 엄청 가물겠구먼... 벼농사는 관두고서 그냥 메밀이나 심어야 할까보다...”

“용이 열두 마리면 물을 엄청나게 많이 주겠구먼 왜 가물까요?”

“아이고, 학자람서 그것도 몰라? 서로 미루다가 가무는거여~”

“아하~ 그렇군요. 그럼 용이 1마리면 비가 많이 오겠군요?”

“그렇지두 않어, 한 마리면 혼자서 돌아다니려니까 분주해서 비가 적어~”

“그럼 가장 적당한 용은 몇 마리일까요?”

“그야 6~8마리 정도지 그 나머지는 크게 기대를 할 것이 못되더라구.”

“근데 그 용들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야 나도 모르지 그냥 책력에 나왔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지뭐.”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서 책력을 뒤져보니까 과연 표지 바로 다음 장에서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날짜를 뒤져보면서 어째서 용이 12마리가 되었는지를 찾아봤다. 그랬더니 별로 어렵지 않게 확인되는 사실이 있었다. 즉 설날로부터 따져서 맨 처음 만나는 진일이 바로 용의 숫자였다. 그러니까 정축년에는 처음으로 일진에 용이 들어오는 날은 음력으로 정월 12일 즉 壬辰일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이렇게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무지한 사람들은 그냥 말만 듣고서 농사를 변경하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생각을 해보면 식자우환이 되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구조를 볼 적에 그냥 단순히 재미로 시작된 일종의 년운풀이인 셈인데 이것을 다 믿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고 여겨진다. 미신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을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앞으로는 이러한 풍속도 앞으로는 없어지겠지만 혹 이것이 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명색이 오행학자라고 하면서 모른다고만 해서는 모양이 날 것 같지 않아서 잠시 설명을 드려봤다. 별것도 아니다. 그리고 참고로 그 나머지들, 즉 일일득신이나 구우경전 등등도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