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화련] 台灣 花蓮 태로각(太魯閣) 2014-05-13

작성일
2014-05-1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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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화련] 台灣 花蓮 태로각(太魯閣)  (2014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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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3일에 대만의 화련에 있는 태로각 나들이를 했다.

대만에 가면서 첫 나들이인 동행이 있을 경우에 가끔 들리는 곳인데 이번에도 태로각을 가보지 못한 일행이 있어서 일정에 넣었다. 태로각의 일정은 이렇게 잡았다.

기차로 화련(花蓮)까지 간 다음에 차량을 빌려서 태로각을 구경하고 그대로 남향해서 북회귀선까지 간 다음에 옥산으로 차량이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정은 계획표와 현실에서 서로 다를 수가 있음은 항상 겪는 일이니 어쩔 수가 없지만 이번에는 차량을 빌리는 문제에서 벽에 부딪쳤다.

작년에 남부 대만을 가면서 고웅(高雄)에서 격상조차(格上組車)에서 차를 빌려서 잘 다녔기 때문에 화련에서도 격상랜트카를 찾았다. 그런데 일껏 차를 골라놓고 나니까 한국사람에게는 차를 빌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국교가 어떻고 하기에 국교는 작년에도 없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우겼지만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법이 달라졌다보다 하면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일행 중에 한 사람이 한국의 대통령이 뭘 잘못 한 모양이라고 했다. 물론 정확한 것을 모르고서 단정을 할 수는 없었지만 대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못내 찜찜했다. 그래서 다시 화련역으로 가서 택시와 흥정을 했다. 4시간에 2천원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서야 왜 한국사람에게 차를 빌려주지 않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국사람에게 차를 빌려줬더니 속도감시 카메라에 엄청나게 찍혔는데 나중에 벌금이 나와도 어떻게 받아 낼 방법이 없어서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은 한국사람의 면허증은 상대를 하지 않기로 했어요."

참, 창피한 일이지만 그것도 현실이었다. 국내에서도 그렇게 과속을 하는데 대만에선들 다르랴 싶기도 했다. 그래서 택시를 대절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잘 된 것 같았다. 길도 험한데 잘못하다가 예전에 태풍이 불 적에 아리산에 올라갔다가 굴러온 돌에 차가 손상되었던 기억이 있었던지라 오히려 잘 되었다고 위안을 삼기로 했다.

화련에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보인다고 했더니만 기사왈 "꽃할배땜에 많이들 와요."란다. 방송의 영향이 대단하기는 한 모양이다. 태로각에서 만난 한국인이 무척 많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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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들로 인해서 태로각이 한국에 자세하게 소개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여행객의 관심을 끌었을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태로각으로 향하던 택시기사가 말을 꺼낸다.

"태로각에 가기 전에 청수단애를 먼저 가겠어요"
"청수단애가 뭐지요?"
"바닷가에 절벽이 있는데 볼만해요."
"아, 그거~!"
"가 보셨어요?"
"봤어요. 이따가 내려오다가 들려도 되겠네요."
"지금 햇살이 좋으니까 지금 가야 해요."
"왜요?"
"해가 지금 보인다고 해서 이따가도 보인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햇살을 받아야 풍경이 좋은가 보군요."
"맞아요~!"

그래서 두말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그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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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안내문은 글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찍어두기도 하지만 혹 궁금한 벗님이 읽어보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나 추가하는 습관이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이러한 것에 눈길을 줄 여유는 없지 싶다. 풍경만 중요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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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네 사람이 증명사진을 찍었다. 여기에 언젠가 왔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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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야무져 보이는 여성이 우리를 안내했던 택시기사이다. 얼른 보면 남자를 떠올릴 수도 있는 인상이지만 분명히 여성이다. 그리고 이야기도 잘 해서 주고 받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뒤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서방은 대만사람과 쑤왈라 쑤왈라를 하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경이롭기조차 한 모양이다. 하긴....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으면 "무슨 뜻이예요?(썸머이스~)"라고 하는 것조차 유창한 중국말로 들릴 테니...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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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햇살을 받은 태평양의 빛깔이 과연 아름답다. 택시기사는 햇살의 위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구름이라고 끼었다면 바다는 우중충하고 벼랑은 안개 속에 감춰지기라도 한다면 재미는 반감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도 해 준다. 며칠 동안 비바람만 불어대다가 어제부터 햇살이 나왔으니 그렇게 말을 할 수 밖에 없단다. 그냥 단순히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긴, 외모를 보면 알겠지만 비위를 맞추려고 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 나중에 소개할 적에 참고하라고 명함도 하나 받아 왔는데 어디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나중에라도 나오면 첨부하기로 하고 일단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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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좋지만 햇살이 너무 따갑다. 기온이 35도이다. 올 들어서 가장 더운 날이란다. 그래도 개안타. 왜냐면 놀러 다닐 적에는 35도가 덥지 않고 일할 적에는 25도조차도 덥기 때문이다. 같은 환경에서도 돈쓰는 마음과 돈버는 마음이 이렇게 다르니 사람의 마음은 확실히 믿을 놈이 못 되는 것은 틀림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태로각으로 향하면서 그녀가 랜트카의 위험한 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줘서 더욱 실감났다. 돌이 떨어져서 차가 상해도 물어줘야 하고, 험한 계곡의 좁은 길에서 자칫하면 사고라도 나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 택시를 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현명하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백번 공감이 되었던 것이다.

태로각을 소개하면서 이 말을 빠뜨리면 안 되지 싶어서 언급한다. 길위를 가다가 보면  날선 돌덩어리들이 뒹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누가 던진 돌이 아니다. 석벽에서 수시로 낙하하는 그야말로 '낙석(落石)이다. 이런 것이 차에 맞아서 찌그러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배상해야 한다. 그러니 멋모르고 차를 빌렸던 것이 오히려 어리석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러니 벗님도 혹 대만가서 차를 끌고 다닐 생각을 하셨다면 잘 생각하시기 바란다. 차를 빌려주지도 않겠지만 빌려준다고 해도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가운전으로 여행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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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위험하기 때문에 공원관리소에서는 무료로 안전모를 빌려주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은 귀찮으니까 그냥 가지만 저런 돌을 머리에 맞기라도 한다면 생명을 논해야 할 수도 있으니 미리 알아둬서 나쁠 일은 아니라고 하겠다.

안전하게 빌려주는 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구경을 잘 하고 내려오다가 반납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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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는 아무래도 안전모를 쓰지 않고 가다가 혼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만큼 보기 좋은 태로각에는 무서운 독도 품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장미의 가시를 생각하면서 태로각에 갈 적에는 반드시 알아두시는 것도 좋겠다. 이런 말을 하는 낭월은 당연히 안전모를 쓰고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돌아다녔는데 태로각족(太魯閣族)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것이니 사후약방문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소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소개한다. 혹시라도 낭월의 소개를 받고 마음이 동해서 태로각에 가셨다가 사고라도 당하시면 그것도 미안한 일이겠기에. ㅎㅎㅎ

여행도 좋고 구경도 좋지만 안전은 최우선이니 다소 불편하더라도 유념하시기 바라면서.... 인터넷에서 구한 사진이니 낭월의 일행일리는 없다.

처음 계획으로는 차를 빌려서 대유령을 올라가보려고 생각했었는데 택시 기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시간이 엄청 걸리고 볼 것도 없는데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고 하여 단칼에 거절을 당했다. 예전에 넘어봐서 알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체험이 되므로 안내하고 싶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귀가 먹먹한 고산 느낌도 나쁘지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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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교(慈母橋)까지는 경치가 볼만하여 천천히 살펴보면서 진행한다. 천상(天祥)에는 휴게소도 있고 주변에는 문수온천도 있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므로 자모교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그런데 합환산(合歡山)을 거쳐서 무령(武嶺)에 올라가면 해발 3500m의 풍경을 볼 수가 있는데 기사에게 이야기 했다가 거절당했다. 시간이 너무 걸리고 볼 것도 없으니 갈 것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딴은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멋진 동영상을 하나 찾았다. 태로각에서 대우령까지 카메라로 찍은 도로풍경의 영상이다. 그래서 이것으로나마 대신 그 맛을 느껴보고자 하여 여기에 링크한다. 1시간 20분을 달리므로 영상만 봐도  현기증이 날 수도 있으니 또한 멀미약을 먹어야 할지도... ㅋㅋㅋ


이것 하나로 태로각은 다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냥 보려니 애써서 카메라를 들고 찍었을 노력을 생각해서 코멘트를 달아놓기도 했다.



태로각으로 나 있는 도로의 이름은 동서횡관공로(東西橫貫公路)이다. 풀이하면 '동과 서를 관통하는 국도'라는 의미가 되겠다. 문득 한국의 영동고속도로가 생각난다. 동해안으로 연결하는 길이 없었던 것을 대관령을 관통하는 도로를 냄으로 해서 동해안의 시대가 열렸던 것을 생각해 본 것이다. 물론 영동고속도로는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다 했겠지만 동서횡관공로는 망치와 정으로 쪼아서 만들었다는 것이니 대만사람들이 이러한 비교를 본다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참, 택시를 이용하면서 빠뜨린 이야기가 있다. 이 세 가족의 이야기이다. 화련에서 차를 빌리려던 계획이 무산되고서 택시를 알아보기로 하고 택시가 있는 화련역 앞으로 가는데 영감님이 호객을 한다.

"당신들 태로각가요?"
"예"
"내 택시로 가요."
"얼마예요?"
"2500원~!"
"몇 시간동안 구경시켜 줄 건데요?"
"6시간까지 가능해요."

그 말을 듣고 짬짬하고 있으니까 눈치를 살핀다. 그래서 2천원에는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잠시 생각하는 척 하더니 그렇게 하겠단다. 그런데 화인이 그냥 가잔다. 영감님이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자고 하고는 슬슬 움직였는데 한 여자기사가 말을 걸었다. 이것은 앞에서 소개했던 일이니 생략한다. 그런데 흥정하고 있는데 한 여인이 말을 건다. 스마트폰을 켜고서 기사에게 보여주면서 태로각을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지금 흥정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필시 외국인이다. 그리고 보아하니... 그 왜 있지 않은가... 뭔가 모르게 끌리는.... ㅎㅎㅎ

"태로각 가시게요?"
"어머! 한국 분이세요? 중국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하도 중국 말을 잘 하셔서~"
"차로 가면 2천원에 네 시간을 구경시켜 준답니다."
"대북으로 가는 기차표를 4시로 끊었는데 지금이 11시 반이니까 맞추겠는데요."
"그럼 잘 되었네요. 이 차는 우리가 흥정했으니 뒷 차를 타시면 되겠어요 타고 가세요."
"그런데......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차의 좌석이 많아 보이는데..."
"아, 그것도 가능하겠네요. 마침 6인승 택시였네요. 기사에게 물어보고요."

그렇게 물었더니 1인당 추가비용은 500원인데 두 사람이니까 1천원 내고 아기는 그냥 무임승차로 하겠단다. 우리야 사람이 있던없든 이득이 없지만 택시기사에게는 1천원의 추가이익이 발생하는 것이고 동족에게는 1천원의 절약이 생기는 것이니 조금만 불편(?)하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젊은 부부가 선량해 보여서 우리 일행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동행이 되었는데 두 부부는 30대였고 아기는 이름이 서현이고 일곱살이었다.

여행의 재미 중에는 또 이렇게 돌발적으로 생기는 변수에도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도 운이 좋아서 맑은 날에 태로각을 찾았지만, 이 부부는 우리보다 운이 더 좋아서 맑은 날씨에, 50%의 비용에다가, 더구나 한국인 가이드까지 (그것도 천하의 낭월에게 가이드를 받는) 무료로 붙이고 태로각을 가게 생겼으니 말이다. ㅎㅎㅎㅎ

네 시간 내내 자신들에게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마음쓰는 것도 보기 좋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택시기사의 말을 받아서 통영해 줬다. 물론 우리 일행 중에서 중국어 한 달 배운 사람이 있어서 어차피 해야 할 통역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같은 차를 타게 된 동행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끼워넣으면 그것도 재미있겠네...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 싶다. 얼굴모습을 담기는 그래서 그냥 저렇게 노는 장면을 하나 찍어놨다. 나중에 써먹... 그러니까 지금 써 먹으려고 말이다. 뭐 그 정도야 양해 할 것으로 생각된다.

왜 태로각에 왔느냐고 했더니 엄마가 중국어에 관심이 많은데 남편을 졸라서(느낌상... ㅎㅎ) 대만여행으로 2박3일을 잡았단다. 그러니 얼마나 소중하고 금쪽같은 시간이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약간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나름대로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사전조사를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중국어를 배워야 할 목적이나 의욕이 더욱 커졌다면 그것도 좋은 영향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물론 낭월의 신분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다.


갑자기 웬 풍경인가 싶겠다. 이 위치에 오면 누구나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것은 사방의 암벽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대만지형처럼 생겼다고 해서 하늘을 보게 된다. 그런데 화인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 렌즈에 다 담기지 않으니까 최대한 멀리 잡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16mm의 광각을 들고 왔어야지 눕는다고 보이겠는가만 그냥 마음이 그랬다는 것을 전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싶다. 만약에 대만이 하늘에 있는 것을 보고 싶으시다면 초광각 렌즈를 준비하시면 좋겠다는 안내말씀들 드린다. 그렇지만 한 장의 사진을 찍자고 그것을 짊어지고 태로각으로 간다는 것이 쉽진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왜냐면 낭월도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를 쳐박아 둔지가 이미 일년이 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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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로각 여행자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장춘사(長春祀)이다. 절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 마련한 사당이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서 입구로 내려서면 바위를 파서 만들어 놓은 법당이 있다.
중부동서횡관공로를 개관(開關)하다가 안타깝게 사고를 당한 형제들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의미로 아래에 이름들을 새겨놓고 불상을 안치하여 위로하고 있는 장면이다. 하긴 여기에서 합장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어 줄 빚을 진 것은 모든 관광객에게 다 포함된 공통의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으로 합장하는 한국인은 별로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무슨 뜻인지 몰랐거나 혹은 종교가 달라서일 수도 있었기는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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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잊지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태로각의 길이여 오래도록 영원하라~~!! 라는 뜻으로 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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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일주(焚香一柱) 하고 배례했다. 그들의 명단을 보면서 죽은 사람들을 기리면서 잊지 말도록 하자는 염원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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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사 옆을 흐르는 계곡 물은 폭포를 이룬다.
한국의 아줌마들이 한 차 도착했는지 귀에 익숙한 말들이 시끌시끌하다. 이러면 외국여행하는 분위기는 반감되지만 또한 꽃할배 덕분이겠거니... 싶었다.


글자를 좀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확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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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읽어보는데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보자.... 떠듬떠듬 읽어볼테니 대략 분위기만 느껴주시기 바란다. 제대로 풀이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미리감치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두는 낭월 ㅎㅎㅎ

[협곡의 다리와 길]

입무(入霧-지명)의 계곡을 들어서서 바다로 들어가는 앞에 형성된 매우 좁고 좁은 협곡이 있다. 중관공로의 장춘교(옛날 다리)는 이렇게 계곡을 이어주고 있었으니 일찌가 일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이미 세워진 조교선환교가 여기에 걸쳐있었던 것인데 1915년에 일본사림들이 원주민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다리를 고치고서 이번도로라고 했다.
이번도로(理番道路-태로각족을 청대에는 藩人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나온 것인 듯... )는 또한 같은 시기에 태로각의 산수풍경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으니 그로 인해서 여행객들이 매우 편리하게 빼어난 절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1935년에 이번도로는 기초가 되었고 다시 고쳐서는 합환월(合歡越-합환산으로 넘어기는 길)이라고 했는데, 도로의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숙소도 들어서게 되었으니 태로각차실도 생겨서 행인들이 쉬어갈 수 있었다.
사금광산이 입무(入霧)에 들어서면서 입부의 계곡을 이용해서 수력발전을 하게 되엇고 합환산을 넘어서 태로각까지의 계곡을 끼고 도로를 만들었으니 처음에는 폭이 4m정도의 차도였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고 대만을 떠나고 나서 십여년 동안 침묵을 지키더가 정부에서 국방과 경제적인 상황에 의해서 1956년부터 중횡공로의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번(원주민을 통치하기 위한 목적), 남승(좋은경치를 보기 위한 목적), 채금(사금을 채굴하기 위한 목적), 발전(전력을 얻기 위한 목적), 국방(나라를 지키기 위한 목적), 경제(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이 깊은 협곡과 준령에 같지 않은 도로를 개통하게 되었다.

대략 풀어보니 이런 이야기들이다.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태로각의 길이 이렇게 역사를 바꿔가면서 발전해 왔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옆에는 또 하나의 안내판이 붙어있다.



뭔가 태로각의 사연과 연결이 되어있지 싶어서 또 글자를 확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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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을 받았던 중관도로]

현재의 위치는 한번 완성되었다가 버림을 받았던 도로이다. 왜 이렇게도 어렵게 만들었던 도로를 버리게 되었던 것인가? 그것은 태퐁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중관도로를 낸 다음으로 몇 차례의 태풍을 당했는데 민구 46년 6월 25일(1957)에 불어닥친 불금니(佛琴尼-VIRGINIA), 당년 9월 14일의 카문(卡門-CARMEN), 다음 해의 7월 15일에 일어난 태풍 온니(溫妮-WINNIE), 9월 3일의 갈서사(葛瑞絲-GRACE), 민국 48년 8월 29일(1959)의 환안(瓊安-JOAN), 9월 4일의 로의사(露依絲-LOUISE)등에 의해서 장춘사의 좁은 협곡이 거센 바람과 급속하게 불어나는 계곡물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서 매번 다시 만들고 수리를 했지만 대단히 큰 타격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카르멘 태풍에 의해서 도로의 기초와 다리들도 날아가고, 윈니에로 인해서 계곡물이 장춘교를 넘치면서 장춘교와 도로는 모두 흙과 함께 떠내려가버렸다. 가장 혹독했던 태풍인 조안과 루이스에 의해서 도로의 기반이 완전히 날아가버린 것은 물론이고 장춘철교를 지탱하던 200여m의 자리에는 물로 채워졌다.
태로각에서 영안까지의 다리와 도로는 원래 일본인들이 통치하면서 금을 캐기 위해서 건설되었는데 후에 연속된 내풍이 지나가면서 민국 48년 말에 다만 벼려진 다리를 수리했고 다리의 기초와 기둥을세워서 장춘교(옛날 장춘교를 말함)를 만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다리가 비록 끊겨져 있는 채로 장춘교에서 볼 수 있지만 그 위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오히려 당시의 버려진 도로의 오랜 흔적들을 찾아볼 수가 있으니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태풍들로 인해서 사람의 힘으로 만들었던 다리는 큰 손상을 받게 되었으니 태풍의 파괴력은 이렇게도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몇 차례의 태풍으로 인해서 도저히 도로를 유지할 수가 없어서 버려졌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과거의 흔적들을 알려주고 싶어서 안내문을 세웟던가 보다. 끊겨진 다리라고 하니 문득 본 것도 같아서 자료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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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끊겨진 장춘교는 아래에 끊긴 채로 흔적만 남아있는 것을 말한다. 그 위에 놓여진 철교가 구장춘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장춘교는? 그러니까 신장춘교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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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신장춘교이다. 다리 위에서 이러고 노는 것은 택시기사가 시켜서인데 시킨다고 참 잘도 한다. ㅎㅎㅎ


화장실 옆에 만들어 놓은 휴게소가 있는데 이러한 사진이 눈길을 끈다. 태로각족의 모습인데 입 주위로 검은 문신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태로각족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기사에게 물었다.

"지금도 태로각족은 남아 있나요?"
"있어요. 다만 많지 않아요."
"왜 요...?"
"일본 사람들이 침략하면서 남자만 보이면 목을 쳤어요."
"오나가나 외놈들이란....."
"여나문 살 먹은 여자아이들은 살려두고 남자는 죽였지요."
"왜 그랬나요?"
"하오써~~~!!!!"

하오써라고 해서 잠시 생각해 보니까 학원에서 배우지 않은 용어였다. 그러나 낭월이 누군가 상담실에서 눈치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ㅎㅎㅎ 바로 감이 딱 왔다. 하오는 好 써는 色 그래서 색골들이라서 계집아이는 모두 살려뒀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문득 정신대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말았다. 여행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아서.... 여하튼 태로각족은 그렇게 호된 시련을 당하면서 아직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이다. 사진 자료를 찾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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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을 보고 나서 다음의 조각물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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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의 문신이 같아서 해 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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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로각족의 모습들이다. 태로각족에 대한 이야기는 사진기행에서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 같아서 생략한다. 다만 어디에서나 외놈들의 만행은 항상 있었고, 이것은 천황폐하라는 완장의 힘을 빌어서 저지른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본인은 모두가 상냥하고 친절한데 왜 총칼만 들려주면 짐승으로 변하는지를 이해할 방법이 없어서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완장을 채워주면 그러한 권력이 생기는 것이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이니 구태여 일본 사람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근래에 본 영화 중에 노예12년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또한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노예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도 노예로 12년을, 아니 종신토록 살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해 봤다. 그러니 겪어보지 않고서 함부로 말을 할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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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리는 대로각족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위험하다고 해서 통행할 수 없도록 막아놨다.

대만 태로각의 개구리 왕자


예전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올 여름에 대만에서 택시기사와 동행을 하는 바람에 듣게 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자모교(慈母橋) 옆에 있는  바위가 개구리 왕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낭월: 개구리처럼 생겼네요.
기사: 그래서 개구리 왕자라고 해요.
낭월: 근데 개구리면 개구리지 왕자는 또 뭡니까?
기사: 아, 원래는 개구리였어요.
낭월: 누가 봐도 개구리라고 할 만 하네요.
기사: 그런데 왕관을 씌고 앉아있으면서부터 개구리 왕자가 된 거예요.
낭월: 왕관이라고요?
기사: 저게 왕관이잖아요.


기사가 가르치는 곳에는 육각정자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정자가 왕관이라는 이야기이다.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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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태로각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 본다. 무엇보다도 날씨가 맑아서 다행이었고, 차를 빌리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기사의 설명을 곁들여서 더 감칠맛이 나는 태로각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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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화련에서 택시를 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시라고 그 기사 여미령(余美齡)씨의 연락처를 첨부한다. 혹 인연이 된다면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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