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2) 사자산 법흥사

작성일
2016-08-0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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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 2. 사자산(獅子山) 법흥사(法興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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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부터는 사자산(獅子山)이다. 산 이름 치고 참 얄궂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서 사자산이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호랑이 산이야 말이 되겠지만 있지도 않은 사자의 이름을 딴 산이라니 이것은 뭔가 음모가 있음이 분명하리라.... ㅋㅋ 무슨 음모씩이나 있겠느냐만서도 아마도 산중의 스님들이 지은 냄새가 솔솔 나는 산 이름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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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의 기둥에는 동물의 형상을 담아서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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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와 코끼리로 기둥을 삼았다. 따지고 보면 산이나 봉우리에 불교틱한 산 이름이 참으로 많은 것도 한국이다. 금강산도 그렇고 영축산도 그렇다. 그 외에도 엄연히 원래의 산 이름이 있었는데도 강제로 종교의 힘으로 개명을 한 경우도 흔히 있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료를 뒤적여 보니 원래는 사재산(四財山)이었던 모양이다. 산 이름 치고는 참 소박하다. 네 가지 재물이 있는 산이라니 그게 뭘까.....

첫째는 바위 굴에 넘쳐났다는 석청이고, 
둘째는 먹는 흙인 전단포가 있고,
셋째는 칠기의 재료인 옻나무가 있고,
넷째는 만고의 영약인 산삼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사재산이라고 하니까 품격을 중시하던 산골 화상들에게 조금 비위에 안 맞았을 수도 있었지 싶다. 돈은 속인들이나 탐하는 것인데 그러한 이름으로 된 곳에서 수행하고 산다는 것이 맘에 거슬렸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서 비슷한 발음이면서 부처를 나타내는 사자산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세월이 흐르면 또 이름으로 굳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럼 왜 사자가 부처의 상징인가? 백수의 왕이 사자이듯이 인간들에게 만법을 베풀어서 다스리는 지혜로운 자가 부처라는 의미이었을 것이다. 뭐.... 조금은 껄쩍찌근~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자기가 모시는 스승이 세계 최고라고 하는 것조차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싶으니 그냥 넘어간다.

여하튼, 그래서 사자산이었을 것으로 추측을 해 보면서 산문을 들어선다. 그 다음에 왜 사자산이라고 했느냐는 선비들의 못마땅한 비아냥 정도야 산세가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압니다.... 하면 그만이다. 산이 사자가 웅크린 것인지 소가 자빠져서 자는 것인지는 알 방법이 없으니 그냥 일반인들이야 그렇겠거니.... 할 밖에. 그야말로 식자들의 농간이다. 하하~

사자산문(獅子山門)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눈치빠른 벗님은 읽으셨는지 모르겠다. 1편의 마지막에 돌 하나 서 있고, 그 곳에 한 줄로 써놓은 것을 말한다.

獅子山門 興寧禪院
사지산문 흥령선원

이 이름의 이해를 위해서 두산백과의 이미지 하나를 슬쩍 한다.

구산선문

신라시대의 선문구산인데, 그 중에서 영월에는 흥령사에 사자산문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원래는 흥령사였다는 이야기이고, 그것이 나중에는 법흥사가 된 것인데 그 흥과 이 흥이 같은 흥인 것을 보면 어디에서 온 흥인지를 짐작하는데 과히 어렵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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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거쳐서 조금 진행하니 비에 젖어 고요한 사찰의 풍경이 등장한다. 법흥사(法興寺)이다. 진리가 왕성한 절이라는 뜻인가 보다. 글이라면 한 글 하는 화상들이니 이름 하나는 그럴싸 하게 잘도 지어다 붙인다. 그래서 사자산에 법흥사가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래서 찾아오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낭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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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고 있는 틈에 잠시 쉬면서 강원도 옥수수로 여유로움을 즐기는 간식을 먹을 요량을 한것 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길가를 지나다가 옥수수를 파는 노파가 있어서 5천원을 주고 산 것인데, 막상 먹으려고 하니까 냄새가 좀 이상하다.

그래서 한입 베어 물었더니 이건 올챙이 국수를 먹었을 적의 느낌이 확 난다. 흐물흐물 한 것이 형체만 있고 씹을 것도 없는 상태로 곰삭아버린 옥수수....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옥수수였다. 그래서 얼른 봉지에 도로 담았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삶은지 일주일은 되었지 싶은 것을 얼렁뚱땅 팔아치웠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참배를 마치고 나가다가 다시 그 옥수수 가게에 들렸더니 할매가 화들짝 놀란다. 실수로 잘못 드렸단다. 그럼.... 되가져 오면 실수인 거고, 그냥 가면 수지맞은 거겠지. 날씨도 이 모양이니까 새로 삶기도 그렇기는 했을게다.... 그렇게 이해하기로 하고 다른 것으로 바꿔서 먹었으니 여하튼 이것도 여행에서 주의해야 할 항목 하나로 추가한다. 벗님들께 드리는 길가옥수수의 구입에 대한 주의사항인 셈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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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우중참배를 나섰다. 쭈욱~ 낭월학당의 사진들을 보셨던 벗님은 무슨 의미인지 아실 몸우산으로 단단히 동여매고 보궁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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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이 어정쩡한 위치에 서서 길손을 반긴다. 원음루인 것은 북소리를 의미하는 것도 되고, 부처의 음성이 원음이라는 의미도 된다. 원음(圓音)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겠는데..... 둥근 소리이다. 그것은 부처의 말은 원음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인이 들으면 한국말로 들리고, 미국인이 들으면 미국말로 들린다는 의미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소가 들으면 소의 말로 들리고, 개가 들으면 개의 말로 들리는 정도의 차원이며, 지렁이가 들으면 지렁이 말로 들리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지금 구글이 시도하는 다국어 번역 시스템은 애초에 쨉이 되지를 않는 차원의 수준이 원음인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북과 종을 치고 울리면 그 소리가 원음이 되어서 귀가 있는 모든 중생들은 그 속에서 부처의 진리를 전해 듣고 깨달음을 이루라는 뜻인 줄을 몇이나 알겠는가 싶어서 이렇게 사족을 붙이기는 하지만, 또 알아 본들~!!

달리 설명한다면, 자기 조상 잘 났다는 자랑질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버리면 그만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스님들은 자신의 법명 앞에 부처석(釋)을 붙여서 석모모라고 한다. 원래는 자기 조상이 준 몸이기 때문에 성씨는 타고 난대로 사용을 했는데 중국의 한 화상이 부처의 자식이므로 부처의 성씨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 먹혀들어서 지금도 그러한 습관이 있다.

그러니까 혹 스님을 만나서 이름을 물었는데 석낭월이라고 한다면 괜히 아는 척을 하면서 어디석씨냐고 묻지 말고, 그냥 스님이라서 석씨를 사용하는구나.... 하면 그 뿐이다. 참고로 박석김의 신라 성씨에 나오는 석은 옛석( )이니 혹시라도 착각하지 않으시도록.

방문자가 통행하는 누각의 아래에 있는 것은 금강문(金剛門)이다. 원래 규모를 갖춘 사찰에서는 별도로 금강문이 있고, 그 다음에 사천왕문이 있는 경우가 정석이라면 정석이다. 그렇지만 각각의 절에 따라서 배치야 형편이 되는대로 하면 그뿐이다. 금강문은 금강신장(金剛神將)이 방문자를 검문하는 곳인 셈이다.

사천왕문을 통과하기 전에 허접한 영혼들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도록 잡아내는 검문소인 셈이다. 금강과 같은 지혜를 가진 자만 통과하라는 의미일까? 금강은 다른 말로 금강역사(金剛力士)라고도 한다.

금강역사

대충 보고서 사천왕상으로 오인하기도 하는데 위엄이 좀 떨어진다고 할까.... 아니면 차림새가 후줄근하다고 해야 할까? ㅋㅋ 여하튼 금강은 사천왕을 보조하는 신들이라고 보면 되겠다.

금강역사0

하긴, 경주 석굴암에서는 부처의 앞 양쪽으로 버티고 있는 금강역사가 있다. 누군가 이런 자료를 올려주신 분께 감사~ 주로 맨주먹으로 겁만 주고 있는 폼들이라서 허접한 영혼들이 마음대로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법흥사는 터가 옆으로 넓게 자리잡고 있어서 길게 되어있는 경우의 구조와는 또 좀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누각 하나를 통과하는데 이렇게 사설이 길어지는 것은 혹시라도 법흥사에 가신다면 이러한 소식을 대충이나마 알고 가시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포함하고 있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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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을 지나면 보궁으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40여년 전에는 그냥 흙길이었을 것으로 막연히 생각나는데 깔끔하게 만들어 놓은 길을 보니 비가 와도 미끄럽지 않게 생겨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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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길을 만나게 된 것은 비가 내리는 덕분일 수도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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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쭉~ 뻗은 천년의 금강송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금강송(金剛松)이 무슨 나무인지 묻는 사람도 가끔 있다. 그냥 소나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특히 내용물에는 송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일반 소나무와 다르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래서 금강송으로 건물을 지으면 천년이 되어도 벌레가 파먹지 않고 습기에 썩지 않는다.

다만, 음양의 이치는 세상 만물에 고르게 적용되는 것인지, 금강송으로 지은 집은 불이 붙으면 감당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불타버린다. 낙산사 법당이 불탈 적에 그 위용을 보셨다면 대략 짐작이 되지 싶기도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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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몸통이 붉어서 적송(赤松)이라고도 한다. 적자와 구분없이 사용하는 홍송(紅松)이라고 해도 안 될 이유는 없다. 색은 이름 붙이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송진을 가득 머금고 있기 때문에 무겁기가 또 한량없다. 그래서 큰 건물을 지을 적에는 일등의 재목으로 선택이 되는 것이니,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으면서 금강송을 엄청 베어냈다. 불타버린 숭례문을 복원하면서도 당연히 금강송을 사용했을 것은 두 말을 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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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오르면 산간의 감로약수가 나그네를 반긴다. 사자산의 약수로 목을 축이고,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은 보궁을 찾아가는 순례객에게 기본적인 예의라고 하겠는데 물 맛도 참 좋다. 오죽하면 강원도 산골의 물이겠는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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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도 가파르지 않아서 천천히 걸으면 된다. 비도 그 사이에 많이 가늘어져서 조금만 더 있으면 멈추지 싶기도 하다. 추억에 젖어서 오르는 보궁 가는 길이 어제 걸어갔던 것마냥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착각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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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을 가득 머금은 한여름의 싱그러운 풍경이 가히 선경이다. 풍경을 감상하면서 오르다 보면 이 시간에 건강한 몸을 이끌고 이 자리를 지나고 있음에 무한감사가 샘솟는다. 벗님도 그러한 기분을 느껴 보셨기 바란다. 보는 것 하나 하나, 들리는 것 하나 하나가 모두 새롭고 신선하고 아름답고 감동의 전율이 온 몸을 진동시키는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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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감동하다가 보면 이내 보궁의 날맹이가 나타난다. 그래 그 날..... 밤이 깊도록 나름 1천배를 한답시고 땀을 한바탕 푸썩 흘린 다음에 밖으로 나와서 느꼈던 그 상쾌함의 날아갈 것 같은 심경이 다시 되 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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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전히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보궁이구나. 그냥 대웅전(大雄殿)이라고도 하지만, 이곳의 현판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되어 있다. 보궁은 보배궁전이라는 뜻이겠는데 적멸은 불교의 용어이므로 의미를 생각해 볼 요량이라면 약간의 주석이 필요하지 싶다.

마음의 자리에서 시시각각으로 죽솥에서 죽이 끓듯이 생멸하는 번뇌가 사라진 곳을 적멸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고요한 것조차도 없어진 곳이 적멸이다. 그러니까 적멸(寂滅)이라는 것은 적정(寂靜)도 소멸(消滅)한 것으로 이해를 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옮겨서 세상의 모든 번뇌로 부터 자유로워진 부처가 계시는 보배궁전이라는 의미로 적멸보궁의 네 글자를 사용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줄이면, '부처가 계신 곳'이라는 말이다. 부처가 여기에 계신다고? 그렇단다.

이미 인도에서 죽은 부처가 왜 여기에 있어? 라고 한다면 그냥 그렇게 믿으면 된다고 얼렁뚱땅 얼버무린다. 그래도 자꾸 캐고 들어오는 궁금이에게는, '그럼 부처가 없는 곳도 있냐?'라고 퉁명스럽게 받아주면 더 이상 묻지 않을 게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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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보궁에서는 오후 기도를 정진하시는 스님의 염불 소리가 정적을 깬다. 천수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 바퀴 둘러본다. 보궁의 터도 과연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줍잖은 풍수지리의 상식이 발동하여 분별심이 생긴 까닭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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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서 염불은 뭐하러 하느냐는 생각도 불쑥 든다. 그냥 뒷짐을 지고 뜨락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적정삼매(寂靜三昧)에 빠져들지 싶어서이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있는 사이에 천수경이 끝나고 정근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울린다. 정근은 같은 명호를 반복적으로 부르는 것을 말한다.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문득 혼자 피식 웃는다. 이 스님께서 기도객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보문시현 원력홍심은 관세음 보살님께 기도를 할 적에 사용하는 도입부이다. 그런데 지금 무심코 그것을 외우고 있는 화상.... ㅋㅋㅋ

그리고 '대자대비 관세음 보살'로 이어지면 되는데, 문득 생각이 들어서 화들짝 놀라신게다.

'엇~? 지금 내가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겨?'

그래서 얼른 방향을 틀어서 석가모니불을 시작하는 도입부로 뛰어넘은 것이니 이미 선수라는 이야기이다. 초보는 그냥 내쳐 관세음 보살을  부르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기도처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낭월도 예전에 관음기도를 한참 하고 다녔기 때문에 독성기도를 해 달라는 신도가 있다고 대신 좀 해 달라는 주지스님의 부탁으로 그러마고 했는데 한참 하다가 보니까 스스로 '나반존자'라고 해야 하는 것을 '관세음보살'이라고 목이 터지라고 정근하고 있었더라는 경험이 있어서이다.

그래서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고, 염불도 해 본 화상이 그러한 사정을 헤아리는 것이니 여하튼 가능하면 웬만한 것은 직접 겪어보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한바퀴 돌고는 법당으로 들어갔다. 바로 들어가면 혼자 사고친 것을 혹시라도 들었을까 싶어서 번뇌의 먹구름이 순식간에 몰려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낭월은 사진을 찍으러 갈 적에는 일반복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아는 놈이 안다고, 아무리 일반인의 복장을 하고 다녀도 절밥을 먹는 놈은 뭐가 달라도 달라서 바로 알아보는 법이다. 이에 대한 에피소드 한 도막.....

 

예전에 어느 화상이 중 노릇이 하기 싫어서 환속을 했더란다. 배운 것이라고는 염불하고 참선하는 것이 전부인지라 세상에서 먹고 살 만한 일이 도무지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이고, 그래서 노동판에서 일을 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었는데, 그 일이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에게는 그냥 일상이겠지만 절집에서 해 주는 밥만 얻어먹고 책이나 읽던 스님에게는 매일매일이 지옥이었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일을 하여 월급이라고 나왔다. 그 몇푼의 돈을 위해서 한 달을 뼈 빠지게 노력했던 것을 생각하니 문득 허탈한 생각이 들었던지 술집으로 향했다. 사내의 마음이 허전 할 적에는 쓰리고 공허한 가슴에 감로주(甘露酒)를 뿌려주는 것만 한게 또 있겠느냔 이치는 벗님도 공감하시리라 생각한다.

주모가 막걸리를 들고 와서 한 잔 따라 준다. 무심고 잔을 들고 있다가 술이 가득 채워지자 잔을 흔들었다. 주모가 술병을 놓고 빤히 바라보고는 불쑥 한 마디 던진다.

"아제, 중이구나~!"

사내가 그 말을 듣고 쓴 웃음을 지으며 받는다.

"니는~?"

그 순간부터 문을 닫아 걸고는 둘이 마주 앉아서 밤이 새도록 술타령을 했다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가슴이 짠~~~~ 하다. 홀아비 맘은 과부가 알고 환속한 비구의 마음은 환속한 비구니가 알지 누가 알아주랴..... 이 둘의 후편이 궁금한데 애석하게도 들리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참, 술 잔을 왜 흔들었는지 궁금하실 벗님을 위해서 사족을 붙인다면, 절집에서 발우공양을 할 적에는 입을 열어서 밥만 퍼먹어야지 말을 뱉으면 안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은 싸인으로 진행이 되는데, 처음에 물을 따라주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을 받은 다음에는 흔들면 물을 멈추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몸에 배었는지라 술을 따라주는 것을 보다가 무심결에 잔을 흔들고 말았으니 이미 자신의 신분이 드러난 것인데 그것을 또 알아보는 년이 있었다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수작(酬酌)인게다. 마음이 아련하게 쓰려오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이기에 문득 떠올려 봤다.

낭월이 생각해 보는 후편에는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여자는 술 팔고 남자는 장작을 패면서 오순도순 수행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더라는 이야기가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 뭐 있느냔 말이지. 그렇게 또 서로 의지하면서 공부하면 그곳이 내 수행처(修行處)인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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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출하게 잘 생긴 스님이 열심히 기도에 몰입하고 있다. 그래서 삼배를 올린 다음에 카메라를 들어서 샷~!

보궁에는 부처가 없다. 아니, 불상이 없다고 해야 하겠다. 부처가 없는 곳이 없기 때문에 잘못 쓰면 눈이 밝은 벗님에게 혼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불상이 없는 보궁에서는 왜 그러냐고 묻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또 답한다. 부처는 뒤의 탑 속에 계시노라고.

왜 부처가 탑 속에 있느냐고 물으면, 석가모니 부처를 화장해서 나온 사리를 그 안에 모셔놔서 그렇다고 해 주면 된다. 그리고는 그냥 일반 스님의 사리와 구분해서 불사리라고도 하고 진신사리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사리면 사리지 뭐 다를 것이 있으랴 싶기도 하다.

여하튼 사리를 여기에 가져다 모신 분은 자장율사라고 전한다. 불교의 기초상식에는 한국의 오대보궁이 있는데,

경상남도 양산 영축산의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의 상원사,
강원도 정선 태백산의 정암사,
강원도 설악산의 봉정암,
강원도 사자산의 법흥사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섯 곳의 보궁이 모두 남한에 있다는 것이고, 그 중에서 경남에 한 곳을 빼고는 모두 강원도에 있다는 것이고, 그 보궁들이 모두 자장율사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외에도 경북 선산의 도리사를 포함해서 도처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사찰은 부지기수이다.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도 사라탑이 있는데 항상 그렇듯이 자장율사가 직접 받아 왔다는 사리만 인정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자장율사가 인도를 언제 다녀 왔는데? 라고 하면 물론 일이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중국의 오대산에서 문수 보살님께 기도하여 문수 보살로부터 사리를 받아왔기 때문인데, 문수보살이 실제하는 인간도 아니고 보면 이것도 구라가 아니겠느냐는 반론을 받았을 적에 설명이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스님의 육신에서 나온 사리를 들고 와서, '꿈에 문수 보살님이 줬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지 천하의 자장율사가 설마하니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느냐는 상상을 해 본다. 혹, 그런 불경스런 생각을 하면 되느냐고 하실 독실한 불자님께는 죄송한 마음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니 괘념치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한 것에 집착하는 것도 병이라고 하는 돌파구를 만들어 뒀기 때문이다. 하하~

요즘도 여전히 사리가 수입되고 있다. 중국에서, 태국에서, 미얀마에서, 혹은 라오스에서 계속해서 사리가 유입되어서 사리탑을 만들고 홍보하고 기도하고 수익을 누리는 곳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쩌면 벽안(碧眼)의 현각 스님이 이러한 것을 놓고 한국 불교의 중심에 있는 조계종이 재물을 신으로 섬긴다는 말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그것도 불타의 가르침에는 올바르지 않은 것이기는 하다. 잘못 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직접 이야기를 하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조용히 떠나는 것도 불교의 가르침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SNS에 올려서 세인들로 하여금 왈가왈부하는 모양새를 만드는 것도 지혜로운 처사는 아니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문득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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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을 나와서 뒤뜰로 가면 사라탑이 이끼를 뒤집어 쓰고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도굴범들이 그것도 장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하도 들 쑤셔대니까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다가 숨겼다고도 하는데 그 실상이야 누가 알겠는가만 그냥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가 사리 한 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온 허공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탑의 옆에 있는 구멍은 자장율사가 공부하시던 석굴이라고 전한다. 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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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보면, 자장율사가 웃게 생겼다. 고려시대의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면 이것도 또한 뻥~! 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아니면, 봉신방으로 돌아가서 신라시대의 자장율사가 고려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서 공부했다고 하던가.... 진위는 아무래도 상관없기에 또 그냥 넘어가도 그만인 것이다. 그냥 누군가 별나게 공부방을 만들었던가 싶은 생각 정도만 하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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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 사리탐의 증명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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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퉁이가 떨어져 나기가도 했던 것은 전쟁에 폭탄을 맞았거나, 도굴범들이 뭘 찾느라고 뒹굴려서 손상이 된 것이겠거니 싶다. 뭔가 누군가에게 탐심을 일으킬 만한 것을 갖고 있다는 것도 무소유의 관점에서는 집착이기는 하다.

뒤를 돌아서 법당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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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에 독경하시는 스님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사자산의 위용이 반영되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담겨있는 것을 하마트면 놓칠 뻔했다. 연꽃은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는 발원의 등불이고, 이것과 산의 모습이 잘 어우러지니 또한 절경이다.

여기에 부처님이 앉으시라고 만들어 놓은 좌대가 고요하게 펼쳐지니 이것이 바로 적멸보궁이로구나...... 싶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면서 실상과 허상의 둘이 아니라는 어줍잖은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아주 가끔은 기특한~ 낭월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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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궁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반대편 길로 되돌아 나오는데 담장 옆에 잠자리가 적정삼매를 즐기고 있나 보다. 꽃이 진 나리의 암술에 앉아서 빗방울의 시원함을 즐기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잠자리도 우중비상은 쉽지 않았을 것이므로 잠시 휴식에 빠졌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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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기거하시는 공간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그냥 밖에서 넘겨다 보면서 과거에 대중방에서 생활하던 상상을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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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나리도 뭐가 궁금한지 빼꼼히 넘겨다 보고 있다. 원래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더 가보고 싶은 것이 만물의 마음인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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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고요한 풍광이다. 발걸음 소리도 너무 크게 들리는 순간들이기에 조용조용 걸음을 옮긴다. 비는 이내 멎었다. 이런 비가 논산에서도 좀 와 줘야 하는데 무심한 하늘은 자기 맘에 내키는 곳에만 흩뿌리고 지나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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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궁에서 충분히 놀고는 걸음을 돌렸다. 절 마당으로 내려오니 절을 잘 관리하셨다는 스님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징효국사란다.

자료를 찾아보니, 통일신라의 승려인 징효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이란다. 징효국사는 19세에 탁월한 총명으로 수행을 시작하여 효공왕 4년(901)에 75세로 입적하였다.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였으며 경문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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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징효대사에 대한 내력을 적은 비이다. 하도 오래 되어서 글자는 마모되어 읽기도 어렵겠지만 그것을 읽어 볼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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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한적하게 자리잡은 곳에 있는 부도탑이 징효국사의 부도이다. 스님의 묘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 앞에 있는 소박한 돌도 필시 이 절을 위해서 일생을 헌신했던 스님의 흔적이겠거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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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저넉한 풍광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서 덧없는 세월의 흔적이 알알이 묻어난다. 바삐 지나가는 저 여인은 또 무슨 생각으로 저리도 분주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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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를 굽어보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오랜 세월의 흔적들을 일일이 다 보았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문득 산쪽을 돌아보니 그곳에서도 아련한 추억의 흔적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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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슨 흔적인지 알아보려면 열심히 잡학상식을 넓힌 벗님이거나, 아니면 세월을 한 60년은 족히 살아왔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소나무에게 지워진 애환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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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와서 이 짓을 했구나... 쯧쯧~~~

나무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 상처를 부여안고 이렇게 살아남았을까..... 그 세월은 일제강점기에 일인들에 의해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국민들에게 주어진 것이기도 했지만 그 재앙은 산천의 소나무에게도 미치게 되었으니 이른바 비행기 연료로 사용할 송진기름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멋진 나무에 톱질을 해 대었던 것을.......

안면도에서 학굣길에 오가면서 늘 접했던 거대한 소나무들이 있었다. 지금은 없기 때문에 과거완료형이 되어버렸다. 그 나무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상처를 안고 있었다. 그게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어느 노인이 알려 주셨다. 왜놈들이 다 그렇게 해 놓은 것이라고, 송진을 얻기 위해서 소나무에 상처를 낸 것이란다.

지금도 옻을 구하기 위해서는 옻나무에 이와 같은 상처를 내야 하니 누구를 탓하고 말고 할 것은 아니다. 남방에서는 고무를 구하기 위해서 고무나무에도 이렇게 한다고 들었다. 다만 오래도록 살아있는 소나무이기에 그 안타까움이 조금 더 하다고 하는 인지성정일 뿐이다. 그리고 안면도의 그 나무들이 베어지고 없어서 기억에서도 지워진 줄만 알았는데 여기에서 또 그것을 만나니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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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는 사자 머리가 담뱃대를 물고 있는 형상이 자리잡고 있다. 왜 사자의 머리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싶다. 그렇게 파이프를 물고 있는 모습의 끝에는 물통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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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산의 맑은 물이 철철 넘친다. 물을 한 바가지 퍼서 마시고는 대웅전을 둘러본다. 원래 대웅전이 보궁보다 뒷전이기 때문에 보궁 부터 둘러보고 내려와서 대웅전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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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대웅전에는 현판이 없다. 이미 보궁에 적멸보궁을 붙여놔서 별도로 대웅전이라고 할 필요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아직 현판이 준비가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깔끔하게 단청까지 해 놓은 건물을 보니 감로사에 옮겨 놓았으면 좋겠다는 탐심이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진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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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앞의 쌍사자 석등이다. 또한 사자가 두 마리 서로 마주보고 등을 받쳐들고 있는 모습이 사뭇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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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에는 중앙에 부처와, 좌우에 관세음 보살, 지장 보살을 모셨다. 부처는 아마도 석가모니는 아니실게고 아미타불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는 사리로 보궁에 계시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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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옆에는 조사전이 있다. 이 절을 창건한 인연으로 모시게 되는 어른들의 휴식처라고 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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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스님의 진영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에는 자장율사이다. 당연히 그 자리에 앉으셔야 할 분이 앉아 계신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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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왼쪽에는 징효국사가 자리를 잡고 계신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비어있으니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새롭게 자리를 잡으실 분이 없다면 가운데를 비워놓고 균형을 맞춰서 좌우로 모셨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본다.

예전에 젊어서 방문했을 적에는 지효대사께서 주석하고 계셨는데, 지효(智曉)와 징효는 이응 하나 차이이니 그냥 오른쪽에 모셨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 황당한 생각도 들었다. 조계종의 정화불사에 혼신을 불사르다가 나이가 들어서 병든 몸을 이끌고 법흥사에서 머무르시던 시절이었던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또 누가 알겠는가, 천년 전의 징효가 천년 후의 지효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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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나그네 앞에 새로운 나그네가 산문으로 들어선다. 모습을 봐 하니 엄마, 아빠 그리고 아들이리라.... 그런데 몸짓들이 재미있어서 한 장 찍었다. 아들은 땅을 보고 엄마는 하늘을 보고 아빠는 폰을 보는 장면이 이 시대의 가정에 대한 모습일까 싶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