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
작성일
2019-03-04 12:0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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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
풍경은 겨울이다. 아니, 그냥 대충 훑어 본 풍경은 겨울이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으니 마음이 내켜도 그냥 방에서 인터넷이랑 놀다가 문득 햇살에 이끌려서 밖으로 나가 본다.
옅은 햇살은 맑았던 어느 날이 그립게 만들지만 이또한 지나갈 것임을 기대하고 보이지 않는 하늘보다는 보이는 주변을 뚜리벙뚜리벙~~
억세풀..... 겨울을 보내고서도 씨앗이 붙어있다. 새들의 먹이가 되는 것을 면한 것이 다행일까? 아니면, 새에게 먹혀서 어디로 이동하지 못한 것의 불행일까.....
화인네 마당가의 감나무는 다시 지난 가을의 풍요로운 모습을 보여줄 준비가 한창이다. 막이 열리기 전의 분주한 배우들의 모습이다. 긴장된 채로 올해는 또 얼마나 태양과 구름이 조화를 이뤄줄지.....
벗나무도 봄을 맞을 준비가 다 되었지 싶다. 이제 한달 여가 지나고 나면 연분홍빛 꽃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벌들과 유희를 벌일테니......
누군가의 눈에는 앙상한 가지만 보일테지만 그 내막을 아는 낭월의 눈에는 이미 꽃이 만발한 풍경이 겹친다. 그야말로 환영과 환상과 착각의 틈바구니에서 봄이 오는 길목을 지켜본다.
할배는 뭐하시능교? 다시 겨울이 가고 또 봄이 오는데 그 다음의 소식은 어떠하신교? 저승의 풍경은 어떠하며, 이승과 비교하여 또한 어떠합니까? 이세상의 일도 궁금한 것 투성이인데 제세상의 일은 또 왜 그리 궁금할까요?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지만 때론 조급증이 재발하기도 합니다. ㅎㅎ
봄은 어떻게 오느냐고?
이렇게 길을 달려 오지 뭘 어떻게 와!
헛소리 말란다. 봄은 삽시간에 전방위적으로 쏟아내리는 별빛과 같은 것임을. 그래서 나무와 풀과 씨앗과 사람의 마음에 속속들이 파고 드는 것임을.....
오! 너희들도 봄바람이 불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바람이 일렁이면 바람결에 허공을 날아서 제각기 자신의 인연처에 도착하겠구나. 그래서 너희도 봄소식에 까치발을 세우고 기다렸구나....
지난 가을에 내버려둔 배추포기는 긴 겨울을 보내면서 이렇게 변했다.
언뜻 보면 그냥 추위에 말라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자세히 보면 누군가에게 식량이 되었었다는 것을....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노루와 토끼들이 살며시 찾아와서 입맛을 다셨을게다.
아직도 초록색이 남아있는 녀석들도 있다.
봄동을 준비할 형편은 안 되지 싶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누군가에겐 반가운 간식꺼리가 되고, 또 누군가에겐 생명을 연장해주는 진미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게다.
아직도 봄이 도착하지 않았음에....
오늘 저녁에도 누군가 찾아와서 입맛을 다시게 될게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미 봄이 와있는 곳도 있음을.....
밭둑의 홍매에 꽃이 맺혔다.
봄이 온 길목이다.
그래서 매화이구나. 온실의 분재매화도 매화지만, 이렇게 밭둑에서 찬바람을 맞으면서 피운 꽃도 그에 못지 않음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을 만났다.
나무는 작년의 그 나무로되, 꽃은 작년의 그 꽃이 아닌..... 뭔가 그럴싸 한 생각이 떠오를 것도 같은 풍경.....
다가가고....
좀 더 다가가고....
그러다가 활짝 열린 꽃을 만났다.
이제 봄이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경칩이 턱밑이구나. 비록 공기는 탁할지라도 마음은 매화향으로 해맑아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