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 제44장. 소요원(逍遙園)/ 10.관세음보살 상주처(常主處)

작성일
2025-01-1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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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44. 소요원(逍遙園)

 

10. 관세음보살 상주처(常主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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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은 주지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물었다.

,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시험을 만들어서 빠지게 됩니다.”

? 원래 시험은 없는 것입니까?”

당연합니다. 지금 동굴의 독방에는 자기의 왼팔을 부처님께 공양한 화상이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팔을 공양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삼진이 묻자 기현주가 안다는 듯이 말했다.

, 그 왼팔이 없는 화상 말이죠?”

그렇습니다.”

예전에도 뵙고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실례가 될까봐서 여쭙지 못했는데 왜 그러셨어요?”

그는 법화경(法華經)을 읽는 수행자였습니다.”

더구나 경을 읽었다면서 왜 그랬을까요?”

법화경에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을 찬탄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물론 그것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잘못 이해하게 되면 열정에 사로잡혀서 자기의 몸을 불태우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렇다면 그 대목은 수정해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삼진이 이렇게 말하자 주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생각도 했겠습니다만, 불경은 한 글자도 고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서 임의대로 고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원이 궁금하다는 듯이 주지의 말이 끝나자 삼진에게 물었다.

, 좀 전에 말했던 그 화상은 성불했나요? 성기를 자르고 성불했더라면 오히려 그만한 보상이 주어졌다고 할 수도 있지 싶은데 말이죠.”

자원의 물음에 삼진이 대답했다.

몸만 망쳤지, 그런다고 해서 성불을 했을 턱이 없잖은가? 스님께서도 지금 말씀하셨듯이 망념에 사로잡혀서 자기의 몸을 훼손한 것일 따름이니 말이지.”

그렇구나. 참 안타까워요.”

자원의 말을 듣고 있던 주지가 말했다.

모두 스스로 지어서 만드는 일입니다. 자업자득이지요. 부처의 말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거부해야 하는데 가끔은 그렇게 무지몽매한 불제자들도 있기는 합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우창은 여전히 궁금한 것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스님의 법문을 잘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안이비설신의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진실하다고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실한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떠난 곳에 있습니다.”

? 심신(心身)을 놓고 말한다면 또 이해되는데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면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수용할 수가 있다는 말씀이지요?”

이해가 좀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마음의 장난인 까닭입니다.”

그것을 알려면 출가하여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까?”

소용없습니다.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어디에서도 불가능하니까요.”

?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입산출가(入山出家)에 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도 오산이라는 뜻이지요.”

……

우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보타암에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들려서였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이곳에 관세음보살이 계신 것은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우창 선생의 가슴 속에도 있고, 흐르는 석간수에도 있으니 이 도량에 없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아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은 허상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허상에 실상이 있고 실상에 허상이 있으니 말입니다.”

주지는 우창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관세음보살은 마음 밖에도 없고, 몸 밖에도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앉은 자리가 법당이고, 이것을 모르는 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머리에 이고 부처님을 부른다고 해도 모두가 헛된 일일 뿐이지요.”

우창은 그제야 주지의 말이 약간이나마 이해가 될 듯했다. 결국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 짐작을 했다.

다시 여쭙습니다. 크게는 물질이 허상이고 정신이 실상이지만, 작게는 정신이 허상이고 말로 할 수가 없는 그 무엇이 실상이라는 뜻입니까?”

축하합니다. 드디어 돌을 깨셨습니다.”

그 순간에 우창은 중화(中和)가 떠올랐다. 치우치지 않음의 묘리(妙理)를 주지가 설명하는 불법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비로소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대사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눈으로 보려고 말고 마음으로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참된 진리요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맞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심외무일물(心外無一物)이니까요. 그 심이 상념(想念)의 심이 아니라 자유로운 불성(佛性)의 심이라는 것만 아신다면 말이지요.”

자상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주지가 불쑥 물었다.

이곳에 관세음보살이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이곳 보타암에는 관세음보살이 계십니다.”

,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주지는 그제야 일행을 객실로 안내했다. 객실이라고 해서 소주(蘇州)의 한산사(寒山寺)처럼 별도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인 듯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자 잠시 어둠에 적응하느라고 기다렸는데 이내 내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이미 한 사람이 글을 읽고 있다가 우창 일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자리를 비켜줬다. 그 모습을 보자 우창은 깜짝 놀랐다. 모습이 특이해서였다.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 . 안녕하십니까.”

우창이 놀란 이유는 말로만 듣던 벽안(碧眼)의 양인(洋人)이었다. 머리카락은 노랗고 눈은 푸른 빛이었으며 키는 구척장신이었고, 피부는 하얗게 보였다.

말은 유창하게 하는데 모습과 잘 연결이 되지 않아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주지가 말했다.

인사하시지요. 이분은 덕국(德國:독일)에서 우리의 문화와 학문을 접하고 공부하러 온 갈만(葛漫) 거사입니다.”

우창도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우창이라고 합니다.”

갈만이 손을 내밀어서 우창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모양을 보고 놀라셨나 봅니다. 하하하~!”

, . 처음 뵙는 모습이어서 좀 놀랐습니다.”

그러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면은 같으니 조금도 달리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벌써 이곳에 온 지도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본 주지는 다른 일이 있다는 듯이 자리를 떴다. 우창은 궁금한 것이 많아서 대화에 신경을 쓰느라고 그것은 살피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말을 유창하게 잘하시는군요. 말만 들어서는 전혀 구분하지 못하겠습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천주교(天主敎)를 전하러 일행과 함께 왔는데 다들 돌아가고 저는 신비로운 불학(佛學)에 정신을 빼앗겨서 눌러앉았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그런데 성함은 어색하지 않습니다. 원래 부르는 이름입니까?”

, 아닙니다. 고향에서 부르는 이름이야 따로 있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이곳에 어울리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나름대로 맘에 드는 글자를 찾아서 지었습니다. 뜻은 물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뭐든 묻는 것을 좋아해서 이 글자가 맘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상의 성()이 칼가인데 그것과도 닮아서 그냥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아 칼 씨였군요. 비슷합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실은 도가(道家)의 존경스러운 인물이 포박자(抱朴子) 선생인데 그분의 이름이 갈홍(葛洪)이라고 해서 그것을 본뜬 것도 있습니다.”

아하~! 이해됩니다. 멋진 조합으로 탄생하게 된 갈 선생이군요.”

잠시 후에 주지의 시자(侍者)가 차를 갖고 와서 따라줬다. 모두 탁자에 둘러앉아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우창과 갈만은 서로 연배가 비슷해서인지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갈만이 물었다.

올해 연세는 어떻게 되십니까?”

, 마흔하나입니다. 갈만 선생도 비슷한 연배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우창이 이렇게 묻자 갈만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마흔다섯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옆에서 듣던 기현주가 말했다.

갈만 선생은 예전에 왔을 적에 못 뵈었는데 언제부터 보타암에 머무르고 계셨나요?”

, 가끔은 선실동(禪室洞)에서 며칠씩 면벽(面壁)합니다. 어쩌면 그 무렵이라면 못 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머무른 지는 대략 3년쯤 되었나 봅니다.”

우창이 갈만의 책상을 보니 역경(易經)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말했다.

역경을 공부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역경도 보고 도덕경도 보고 남화진경(南華眞經)도 보면서 도가(道家)의 풍경(風景)에 푹 빠졌지요. 하하~!”

참 대단하십니다. 오늘 우창이 많이 배워야 하겠습니다.”

나눌 수가 있다면 또한 좋은 일이지요. 반가운 벗이 멀리서 찾아왔으니 또한 즐거운 일이지 않습니까? 하하~!”

논어(論語)도 읽으셨나 봅니다. 하하~!”

실로 저는 잡식성입니다. 무엇이든 재미있는 것이면 가리지 않고 배우느라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고향의 말도 잊어버릴 지경입니다. 하하~!”

우창은 이 사람의 속에는 어떤 지식이 들어있을지 참으로 궁금했다. 예전에 고월이 간간이 들려주던 서양의 이야기로 약간의 상식은 있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직접 양인을 마주하고 보니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러나 초면에 너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결례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중했다. 그러자 갈만이 먼저 물었다.

우창 선생은 무슨 학문을 하십니까? 봐하니 상공(商工)에 종사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필히 학문을 하시는 것이 맞지요?”

, 그렇습니다. 오행학(五行學)을 약간 이해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오행이라면 전혀 모르지는 않습니다.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말씀하시는 것이 맞지요?”

우창은 생긴 모습은 달라도 학문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흥미가 동했다.

, 맞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역경에서는 음양(陰陽)을 위주로 사유(思惟)하던데 오행학을 연구하는 분야는 어떤 것입니까? 초면에 이렇게 여쭤도 실례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갈만은 예의를 갖춰서 말했다. 우창은 그 말을 들으면서 흡사 고월(古越)을 보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습은 다르나 말하는 것이 닮아있었다. 그러자 자원이 말했다.

싸부, 갈만 선생에게서 고월 싸부가 보여요. 호호호~!”

, 자원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하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갈만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서 말했다.

그러니까 저를 닮은 사람이 또 있다는 뜻입니까? 이거 궁금해지는걸요.”

같이 공부하는 도반인데 배움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니 문득 떠올랐습니다. 오행은 춘하추동(春夏秋冬)으로 운행하는 이치입니다만 이것을 바탕으로 삼고 사람의 심성(心性)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심성을요? 뜻밖에 귀한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갈만은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것을 보자 우창도 친밀감이 들어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만 선생은 심성에 관심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맹자(孟子)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을 공부하고 불타의 유식론(唯識論)을 조금 이해하고 보니까 만물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암자의 혜정(慧靜) 대사로부터 배우고 있기도 합니다.”

아하! 이제 보니까 대사께서도 마음의 전문가셨군요. 어쩐지 여느 화상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과연 예사로운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나저나 오행학이라는 학문은 듣지 못했습니다. 동양학에 전반적으로 기본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것만을 연구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음양(陰陽)을 주로 논하는 역경에 대해서는 약간 이해했습니다만 궁금합니다.”

, 명리학(命理學)이라고 합니다. 특히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분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의술(醫術)이겠군요. 생명학(生命學)인 듯하니 말입니다. 고향인 덕국(德國)에는 병리학(病理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만 명리학이라고 하시니 관심이 더욱 커집니다. 양생술(養生術)과 같은 것입니까?”

우창은 갈만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자평법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것을 풀어서 말한다면, 성명이치학(性命理致學)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생겨서 움직이는지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창의 설명에 갈만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심리학(心理學)의 한 종류가 아닙니까?”

심리학이라? 그것은 참 적절한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하하~!”

놀랐습니다. 맹자의 심리학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합니다.”

? 맹자의 심리학이라고 하시면....?”

, 사단칠정을 거론하는 것도 심리학이거든요.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도 모두 마음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듣고 보니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됩니다. 우창도 그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오늘 지기(知己)를 만난 것 같아서 기쁩니다. 하하~!”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다가 우창이 기현주를 바라봤다. 갈만과의 대화를 위해서 소요원으로 초대하면 어떨지를 묻고 싶어서였다. 우창의 눈과 마주친 기현주가 갈만에게 말했다.

갈만 선생 괜찮으시다면 우리 집으로 가셔서 같이 머물며 연구하는 것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것은 어떻겠어요?”

기현주의 말에 갈만은 기뻐하며 말했다.

그야 이를 말씀입니까? 기꺼이 동행하겠습니다. 귀한 가르침을 받게 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렙니다.”

차를 마시고는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일행은 주지에게 작별을 고하자 주지는 말리지 않고 잘 가라며 합장했다.

 

돌아오는 마차에서 기현주가 우창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까 주지화상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까 참 재미있었는데 말이야. 동생은 무유설(無有說)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한 거지?”

? 무유설은 또 무슨 뜻입니까?”

우창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자 기현주가 설명했다.

그야 없음으로 있다는 설이지 뭐야. ‘무용(無用)이 대용(大用)이라는 말은 들어봤잖아?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던가?”

, 그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에 쓸모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로 가죽나무가 장수하는 비결 이야기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그것을 무유설이라고 한단 말이지요?”

그야 아무렴 어때?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나 진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깨달으면 되었다는 것이지. 관세음보살을 만나러 남해의 보타낙가산(補陀落迦山)으로 가지 않아도 내가 머무르는 곳에서 즉시로 친견(親見)한다는 말인데 이 이치를 알고 있다면 헐떡이면서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될 거 아냐?”

맞습니다. 오늘 보타암 나들이에서 참으로 중요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고정관념(固定觀念)이 하나가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몸의 탓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지요. 하하~!”

? 그건 무슨 뜻이지?”

도를 얻기 위해서 성기를 자르거나 팔을 불태우는 등의 행위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말하지요. 마음을 다스리고 미망(迷妄)을 걷어내야 밝아질 텐데 그것을 왜 애먼 육신에게 공격해서 스스로는 불구자(不具者)가 되고 부모에게도 죄를 짓는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까? 하물며 도를 위해서 목숨을 던지는 이야기도 어디에서 본 듯합니다.”

그건 부처의 전기(傳記)에 나오지. 전생에 그랬었다는 이야기니까 다 믿을 것은 없다고 봐.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글을 읽은 후세의 수행자가 자신도 그대로 따라서 하겠다며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지.”

그런 경우도 있겠습니다. 법화경을 따라서 행한다고 소신공양(燒身供養)을 올린다고 했는데 공양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느 부처가 그런 공양을 받는단 말입니까? 받는 이가 없는데 베푸는 것이야말로 환상(幻想)이라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맞는 말이야. 동생이 고치고 싶은 것은 적천수뿐이 아니겠는걸. 호호~!”

?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잘못 안내하는 것이 불경(佛經)에 있다면 그것조차도 뜯어고칠 기세여서 말이야. 그래도 그것까지 건드리면 안 된단 말이지. 호호호~!”

그야 우리끼리 이야기지요. 어찌 감히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부처의 귀한 가르침이 훨씬 크기에 얼마든지 수용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나도 동감이야.”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이번에는 갈만에게 물었다.

갈 선생은 왜 그 구석진 보타암에서 수행하고 계셨을까요?”

갈만이 기현주에게 말했다.

조용하지 않습니까?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고, 혜정 대사의 혜안(慧眼)도 큰 도움이 되어서지요.”

, 그러셨구나. 이해되네요. 어쩌다가 머나먼 이역만리(異域萬里)까지 와서 도학(道學)과 불학(佛學)을 공부하게 되셨는지 그것도 궁금해요.”

기현주의 말에 갈만이 말했다.

여기에는 또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실로 조부(祖父)께서 우연히 도가(道家)의 경전을 접하시고는 일생을 바쳐서 연구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을 어려서부터 보면서 자란 덕분에 이곳의 문물에도 관심이 많았지요.”

아니, 그 먼 곳에서도 도가의 경전을 접할 수가 있었단 말인가요?”

그것도 인연법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긴 하지만 참 묘한 인연이네요. 그래 무슨 경전을 접하셨는지 이름이나 들어볼까요?”

그 경전은 여동빈(呂洞賓) 선인(仙人)이 지은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라고 하는 책이었습니다. 조부께서 그 책을 덕국어(德國語)로 번역하면서 황금꽃의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했지요. 물론 사람들은 연금술(鍊金術)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말이지요. 하하~!”

아하!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렇게 인연이 되었으니 뿌리는 조부께서 뿌려놓았다고 해도 되겠어요. 존함은 어떻게 되세요? 물론 들어도 모르겠지만요.”

, 갈융(葛融)이라는 한자로 이름을 만들었기 때문에 실은 저도 갈만이 된 것이기도 합니다. 하하하~!”

갈만의 말을 듣고서 우창도 한마디 했다.

갈융이라니 칡넝쿨이 온 천하를 두루 뒤덮는다는 뜻이잖습니까? 그야말로 동서(東西)의 학문을 사방으로 번져나가게 하고자 하는 열정이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대를 이어서 손자까지도 이렇게 학문을 연마하고 있으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하하~!”

이렇게 담소하다 보니 이내 소요원에 다다랐다.

여기가 누추한 거처랍니다. 어서 들어가요.”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정원을 품고 있는 소요원을 보고 갈만은 입이 떡 벌어졌다.

과연! 환상적인 몽유도원(夢遊桃園)입니다. 이러한 곳을 거닐던 꿈을 꿨는데 오늘을 예견한 것이었나 봅니다.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곱게 가꿔진 화원은 누가 봐도 감탄을 자아낼 만하였다. 마침 시절도 초여름이라 싱그러운 풍경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