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 제44장. 소요원(逍遙園)
6. 청탁(淸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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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현주는 잠시 말이 없이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이야기로 잠시 정리가 필요한 듯싶어서 우창도 가만히 뒀다. 대신에 화원을 한 바퀴 돌면서 가볍게 산책하기로 했다. 자원도 같이 따라 나와서 천천히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뒤따르던 자원이 말했다.
“싸부, 언니를 보니까 어딘가 모르게 노산에 살았던 상인화(尙印和) 언니가 생각나는데 싸부는 안 그래요?”
자원의 말에 우창도 문득 느낀 바가 있어서 대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그런 느낌이 있었구나.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라서 나도 쉽게 정감이 느껴졌었는데 단지 학문을 좋아해서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도 상인화 누님을 떠올리지는 못했구나.”
“싸부도 참 무심하시네요. 처음에 딱 보니까 그 느낌이 들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좋아했던 상 언니를 벌써 잊어버리다니 참 무심하시네요. 호호~!”
“잊어버리긴. 가끔 생각나는걸. 하하하~!”
“그런데 공화 언니는 정말 활발해서 누구라도 호감을 느낄 거예요. 더구나 어디에서 그렇게나 궁금한 것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는지 신기할 지경이잖아요? 지칠 줄도 모르니 싸부도 일일이 대답하기 힘들죠?”
“힘들기는. 힘이 나지. 이렇게 활발한 문답을 나눠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잖아?”
“맞아요. 오행원에서는 다수를 상대하느라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편하게 나누기가 쉽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소요원의 시간이 참 편하네요. 마음 같아서는 한 삼 년 머물면서 책이나 읽고 토론했으면 좋겠어요.”
“머물러도 되지 뭘. 이따가 이야기해 보렴. 우리야 어차피 역마살이 동해서 길을 떠났으니 더 돌아다니겠지만 자원은 여기 머물러도 되니까.”
우창의 말에 자원이 팔을 치면서 말했다.
“뭐예요! 나를 여기에다 떼어놓고 어디로 돌아다니면 마음이 편하실까요?”
“누가 떼어놓는다고 했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라는 말이지 뭘. 하하~!”
자원도 우창이 맘에 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쳐다보고 입을 삐쭉 했을 뿐, 이내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엉켰던 생각들이 풀리기도 하고 정리가 되기도 하고 또 더 깊어지기도 해서 너무 좋아요. 서둘러 가야 할 일도 없으니 푹 쉬면서 대화를 나눠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저렇게 열심히 파고드는 언니가 있으니 싸부도 행복하시잖아요. 그쵸?”
“그야 당연하지. 머무는 데까지 머물다가 마음이 동하면 또 움직이면 되는데 아직은 안 그래도 되겠어. 그만 들어가자.”
거실로 들어가자 현령도 바람을 쐬고 들어왔는지 과일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었다. 기현주가 현령에게 물었다.
“오라버니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려요?”
“내가 아무래도 기초가 얕다 보니 그런가 보네. 그래도 재미있어서 들을 만하고 또 고상(高尙)한 무리에 동참한 듯한 느낌도 좋아서 괜찮았네. 허허허~!”
“복잡했던 문제는 해결된 거죠?”
“맞아. 자원 낭자가 한 방에 해결해 줬으니 이만 돌아가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겠네.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안 보였는데 말이지.”
이렇게 말한 현령이 자원을 보며 고맙다고 하고는 서둘러 돌아갔다. 모두 일어나 현관까지 나가서 배웅하고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소호에게 차를 더 가져오라고 말한 기현주가 다시 책을 펴들었다. 모두 그렇겠거니 하고 자리에 앉아서 기현주의 풀이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볼 내용은 「淸氣」편이네? 이런 편명(篇名)은 생각지 못했는걸. 그러니까 사주에서 ‘맑은 기운’을 알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기현주가 관심을 보이자 우창이 미소로 답했다. 읽어보라는 뜻이었다. 기현주의 글 읽는 소리가 넓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일청도저유정신(一清到底有精神)
관취생평부귀진(管取生平富貴眞)
징탁구청청득거(澄濁求清清得去)
시래한곡야회춘(時來寒谷也回春)
‘맑은 기운 하나가 머무는 곳에 정신이 있으니
평생의 참된 부귀를 취하고 관장하는구나
탁한 중에 맑음을 구하여 맑음을 얻어 가니
시절이 돌아와 겨울 산골에 봄을 맞는 도다’
「청기(淸氣)」편을 읽은 기현주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머나! 청기가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어? 그러고 보니 동생이 내 명식을 보고서 청하다고 했는데 무엇을 말한 것인지 궁금해.”
“누님도 참 급하기도 하십니다. 우선 의미하는 것은 모두 이해하셨습니까?”
“뭐, 특별하게 어려운 것은 없잖아? 청한 팔자를 타고 나면 일평생을 잘살게 된다는 것이고, 탁한 것이 있더라도 운이 와서 그것을 제거해 준다면 또한 좋은 시절을 누릴 수가 있다는 말인데 달리 무엇이 더 필요 할까 싶은데?”
기현주는 습득하는 능력이 남달랐다. 그사이에 청기에 대한 의미까지도 모두 파악을 해버렸으니 가히 일취월장이라고 할 만했다.
“참 멋지십니다. 그렇게 단숨에 청기에 대해서 정리를 하셨으니 말이지요. 이제 다음 구절로 넘어가도 되겠습니다.”
“아니지, 겉으로 드러난 글에 대해서만 이해했다는 것이니까 이제 그 속에 있는 뼈를 꺼내어서 보여줄 일은 동생이 해야잖아. 호호~!”
“아, 풀이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까? 알겠습니다. 누님이 더 알 필요가 없다고 하시기에 해결이 되었나 싶었지 뭡니까. 하하하~!”
“잘 알면서 왜 그래. 어떤 팔자를 일러서 청기(淸氣)가 있다고 하는 것인지는 동생이 알려줘야 할 몫이잖아. 내가 어떻게 그것까지 알겠어?”
기현주는 빤히 알면서 능청을 떠는 우창에게 한마디 던지고는 풀이를 기다렸다. 그러자 자원이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청기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니까 자원이 이해한 만큼이라도 설명해 드려보고 싶어요. 깨달은 것은 말해야 정리가 된다고 싸부가 늘 말씀하셨거든요. 괜찮겠죠?”
“그야 당연히 환영이지. 나도 동생의 풀이보다 자원의 풀이가 더 공감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어서 설명해 줘봐. 도대체 청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도대체 무엇을 일러서 청기라고 하는지 난감했었어요. 마치 아지랑이를 잡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반복해서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까 이제는 멀리서 다가오는 안개 속의 사람 모습 정도는 보여요. 이것이 보이니까 사주를 보는 일이 훨씬 더 즐겁고 명료해진 것은 확실해요.”
“역시! 눈높이가 중요해. 위에서 내려주는 동생의 가르침도 좋겠지만 앞에서 끌어주는 자원의 설명이 더 편하게 느껴지니 말이야. 호호호~!”
기현주가 자원의 설명이 맘에 든다는 듯이 칭찬하자 자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언니, 청탁을 모르면 용신만 보이거든요. 그런데 청탁을 알고 나니까 전체가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한 번 이것을 알고 나니까 사주를 보면 단번에 상중하의 등급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을 저절로 알 수가 있죠. 그래서 청탁에 대한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니까 이 구절은 경도 선생의 가르침이 아닐까 싶어요. 알고 나면 수준이 높아지니 말이죠.”
자원의 설명을 듣고서 기현주는 더욱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것을 어떻게 보는지 방법을 알려줘 봐. 원문은 아무리 봐도 그렇다는 것이지 어떤 것이 청한 것인지는 설명이 없잖아.”
“그렇다면 경도 선생은 아니고 아마도 가탁 선생의 가르침일 수도 있겠어요. 아무래도 핵심을 전해주지 않았으니 말이죠. 호호호~!”
“맞아! 뭔가 숨기고 흔적만 보여준 것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였구나. 왜 숨긴단 말이야? 가르쳐 주려면 속에 있는 것들을 탈탈 털어서 전부 다 보여주어야 하는 거잖아? 안 그래?”
“맞아요. 그렇지만 그 속이야 어떻게 알겠어요. 후학이 찾아서 빈자리를 채워 넣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죠.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가 봐요. 어떻게 해서든 자원도 그것을 알아냈으니 말이죠.”
자원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들으며 기현주는 애가 탔다.
“그러니까 나도 스스로 그 답을 찾으라는 거야? 설마 그건 아니지?”
“에구~ 그럴 리가 있나요. 언니가 숨이 넘어가기 전에 말씀해 드릴게요.”
“어서~!”
기현주는 자원이 한마디만 더 하면 우창에게 묻겠다는 듯이 말하자 자원이 청기를 설명했다.
“언니, 상생(相生)과 연주상생(聯珠相生)은 알고 계시죠?”
“그야 당연히 알지. 생하는 것으로 이어진 것을 연주상생이라고 하잖아. 염주 알이 줄에 꿰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야.”
“맞아요. 일간을 포함하고서 만약에 네 글자를 꿰었다면 대청(大淸)이라고 하고 세 글자를 꿰었으면 중청(中淸)이라고 하니까 이들은 모두 청기(淸氣)가 있는 것으로 봐요.”
자원이 설명하는 것을 듣고서 기현주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겨우 그것을 두고 한 말이었어? 난 또 뭔가 심오한 것이 있을 줄로 알았는데 너무 시시하잖아?”
“맞아요. 내용은 시시한데 적용하면 놀랍거든요. 이것이 오행놀이죠. 호호~!”
“정말 알고 보면 참 간단한 것이었구나. 모르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더니 나를 두고 한 말이었어.”
기현주가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하자 자원은 앞서 설명하느라고 적었던 사주를 하나 꺼내놓았다.

“이 사주를 봐요. 비천녹마라고 했던 것인데 용신(用神)이 보인다면 중수(中手)가 되는 것이고, 청탁(淸濁)이 보이면 상수(上手)죠.”
“용신은 인성인 토잖아?”
“중수(中手)~!”
“음.... 청기는 염주를 꿴 듯이 한다고 했지? 그러면 경(庚)이 자(子)를 생하니까 두 알은 꿰었는데 목(木)이 없네?”
“그러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불청(不淸)이잖아?”
“맞아요. 다음의 구절인 탁기(濁氣)를 이해하게 된다면 탁(濁)하다고 하게 되겠지만요.”
자원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는 자신의 명식이 적힌 종이를 찾아서 꺼내놨다.

“보자…… 수생목(水生木)해서 두 알, 목생화(木生火)하니 세 알, 다시 화생토(火生土)하니 네 알인가? 이렇게 보는 것이 맞아?”
자원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기현주가 깜짝 놀라며 우창에게 물었다.
“자원의 말이 맞는 거야? 내 팔자가 대청(大淸)이라고 하는 것이 말이야.”
자원의 말을 못 믿겠다는 듯이 우창에게 묻자 우창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시 자원에게 물었다.
“난 여태 그것을 몰랐어. 도를 깨닫는 것이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만큼 쉽다더니 이것을 두고 한 말이었어? 현령 오라버니는 어떻지?”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면서 현령의 사주를 적었다.

“보자, 금생수(金生水)가 되니까 염주 두 알이구나. 수생목(水生木)은 없잖아? 연간(年干)의 을목(乙木)은 안 되는 거지?”
“끊기면 안 되죠. 그건 무효네요. 호호호~!”
“뭐야? 그럼 청한 사주가 아니라는 거잖아?”
“염주 한 알이 더 있는데요?”
“어디? 아, 토생금(土生金)을 말하는 거야?”
“일간을 포함했으니 그것도 봐줘야죠.”
“그렇다면 화생토(火生土)도 가능하잖아?”
“맞아요. 잘 찾으시네요. 호호~!”
“그럼 염주는 네 알이구나. 청한 사주라고 해야 한단 말이지?”
“당연하죠.”
“어쩐지..... 오라버니의 심성도 상당히 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주도 그랬구나. 이제 조금은 이해될 것 같구나. 그렇다면 청기를 본다는 것이 이렇게 간단한 것인 줄 미처 몰랐었구나. 정말 재미있네. 사주에 없는 것을 본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었어. 그렇지?”
“언니도 이제 팔자를 보는 안목이 비약적(飛躍的)으로 발전하셨어요. 어떤 사주를 봐도 맨 처음에 들어오는 것은 용신이 아니라 청탁일 테니까 말이에요. 호호호~!”
자원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기현주가 잠시 생각하더니 우창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청하다는 것은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린다는 뜻이야? 평생을 부귀하다고 했으니 말이지.”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창이 기현주의 물음에 대답했다.
“청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청귀(淸貴)도 있고, 청고(淸枯)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다만 부귀영화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봐주는 관점인 까닭이지요.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영화(榮華)를 누린다고 해서 반드시 청하다고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구분하는 거야? 자원의 말을 듣고서 청기에 대해서 모두 이해를 한 것으로 여겼는데 동생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만으로 다 알았다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잖아?”
“거의 다 오셨습니다. 일지 선생의 팔자는 청하나 귀하지는 못합니다. 반면에 누님은 청한데 귀하기까지 합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신다면 모두를 얻었다고 하겠습니다.”
“참 오묘하구나. 그렇다면 오라버니 사주가 청하지만 귀하지 않은 이유는 뭐지? 음..... 수생목(水生木)이 되지 않아서인가?”
“맞습니다.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하하~!”
“그래도 염주 알이 넷이나 되잖아?”
“일간을 관통하지 못한 까닭이지요.”
“수생목(水生木)이 되고, 차리라 화생토(火生土)가 안 되었더라면 청귀(淸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야?”
“당연합니다.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현령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현령이라도 하는 것이 귀(貴)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세상 사람들은 현령이라도 하고 싶어서 안달일 테니 말이지.”
“그 말씀은 황상(皇上)이 되면 최귀(最貴)라고 하는 것을 전제(前提)로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아참, 그랬지. 세속적인 얻음이 마음이 청한(淸閑)한 것과 다른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야.”
“맞습니다. 잘 이해하셨습니다.”
기현주는 그제야 비로소 청기(淸氣)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되었다. 그것은 자원이 말한 안개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아서 더욱 공감되었다. 뭔가 보인다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있음에서 없음을 찾고 다시 없음으로 있음을 보는 것이었잖아? 참으로 오묘한 이치인걸.”
“그렇습니다. 팔자의 글자에서 보이지 않는 청기를 찾고, 청기가 보이면 다시 보이지 않았던 청기를 봄으로 해서 삶의 귀천(貴賤)을 볼 수가 있으니 누님이 제대로 이해를 한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하하~!”
기현주는 청기를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인해서 풍부한 수확을 거둬들인 농부처럼 뿌듯한 마음이었다.
“멋지구나! 청탁을 볼 수가 있다니. 이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인데 미혼진(迷魂陣)을 벗어나서 밝은 풍경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네. 이런 이치가 있었다는 것을 왜 여태까지는 몰랐을까?”
기현주가 독백처럼 말하자 우창이 거들었다.
“아마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모르면 보려고 하는 마음도 없는 것이고, 마음이 없으니 보였을 수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맞아! 정말이구나. 과연 그렇게 봐야 보이는 세상도 있었네.”
“그래서 고인이 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말이지요.”
“그래, 꼭 맞는 말이었구나. 청기(淸氣)에 대해서 이해하고 났더니 탁기는 더 보지 않아도 알겠는걸.”
“그럼 그냥 건너뛸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만. 하하하~!”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얼른 말을 받았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다음 구절도 살펴봐야지. 호호~!”
기현주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탁기(濁氣)」편을 읽고 풀이했다.
만반탁기령인고(滿盤濁氣令人苦)
일국청고야고인(一局清枯也苦人)
반탁반청유시가(半濁半清猶是可)
다성다패도신혼(多成多敗度晨昏)
‘명반(命盤)에 탁기(濁氣)가 가득하면 삶도 고단하고
비록 청하더라도 편고(偏枯)하면 또한 고통이로다
청탁이 뒤섞여 있더라면 그래도 괜찮다고 하겠는데
이루기도 하고 패하기도 하면서 날이 저물어 간다’
“내용의 뜻은 쉽네. 그런데 탁기는 단지 염주 알이 없으면 해당하는 건가? 두 알만 있는 것은 불청(不淸)이라고 했으니 탁하다는 말이 되는 셈이지?”
“불청이라고 해서 탁하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불청일 뿐이지요. 탁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충극(沖剋)이 만연하면 비로소 만반탁기(滿盤濁氣)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염주 알은 전혀 꿰어지지 않고 각자 따로 굴러다닐 뿐이지요. 연주상생(聯珠相生)이 없으면 불청(不淸)이고 충극이 많으면 혼탁(混濁)입니다. 그 중간의 단계는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 기현주를 바라보자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말했다.
“청탁(淸濁)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었구나……”
“그렇습니다.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단지 용신만 찾아서 될 일도 아니란 말이잖아?”
“물론 용신만 찾으면 길흉은 알 수가 있습니다. 다만 청탁을 알게 된다면 그 안목은 철벽(鐵壁)을 뚫고 더 깊은 곳까지 관찰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정말이네. 마치 땅의 겉만 보는 것이 사주를 보고 용신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면 청탁을 안다는 것은 지하에 물이 흐르는지 용맥이 흐르는지를 바로 보는 것과 같다고 하겠네. 문득 『입지안전서(入地眼全書)』가 생각나네.”
“그건 어떤 책입니까? 느낌으로는 지리서(地理書)인가 싶습니다만.”
“맞아, 지리서인데 이름이 재미있어서 기억났어. 그것처럼 새롭게 책을 하나 만든다면 『입명안전서(入命眼全書)』라고 하면 되겠어. 정말 재미있겠다. 청탁을 이해한다는 것이 또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구나. 호호~!”
기현주가 매우 만족하면서 말하자 우창도 기분이 좋아졌다. 몰랐던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희열(喜悅)이야 이미 많은 경험을 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