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 제43장. 여로(旅路)/ 21.십성(十星)의 궁전(宮殿)

작성일
2024-10-15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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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 43. 여로(旅路)

 

21. 십성(十星)의 궁전(宮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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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누님의 왕성한 연구열에 부합하려면 심리추명의 핵심을 꺼내놓아야 할까봅니다. 이렇게 생긴 것입니다.”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붓을 들어서 종이에 십성궁을 표시했다. 기현주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우창이 쓰는 것을 주시했다.

 

 

 


우창이 붓을 놓자 기현주의 눈이 더욱 커졌다.

이런 명식(命式)은 처음 봐. 이게 뭐야? 온통 천간으로만 되어 있고 지지(地支)는 없네? 지장간을 표시한 건가?”

지장간과는 무관합니다. 천간을 표시한 것이 맞습니다. 이러한 것을 처음 보시는 것이 아마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어서 설명해 봐. , 일간(日干)의 자리에 경()이 있네? 이것은 주체(主體)라는 것을 의미하는 건가?”

역시 누님의 내공은 깊으십니다. 하하~!”

그래? 그렇다면 일지(日支)의 을()은 신체를 말한다고 했겠다?”

그렇지요.”

오호라~ 그러니까 일주(日柱)는 그 사람을 나타내는데 일간(日干)은 정신이 되고 일지(日支)는 신체가 된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우와~! 이건 완전히 신천지(新天地)인걸. 놀라워! 어서 설명해 줘봐.”

일간(日干)은 비견궁(比肩宮)이 되고 일지를 정재궁(正財宮)이라고 하셨습니다. 일간을 기준으로 해서 각각의 궁에 십성의 이름을 부여하게 됩니다.”

, 그건 간단하잖아. 그렇다면 월간(月干)은 식신궁(食神宮), 월지(月支)는 정관궁(正官宮)인가?”

맞습니다.”

연간(年干)은 편재궁(偏財宮), 연지(年支)는 정인궁(正印宮)이고?”

그것도 잘 보셨습니다.”

시간(時干)은 편인궁(偏印宮)이고, 시지(時支)는 상관궁(傷官宮)이라는 말이겠구나?”

그렇습니다.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대로입니다.”

그게 뭐라고, 십성이야 대입하면 되니까 이름을 붙이는 것은 간단하지 뭘.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설명을 들어봐야 하겠네. 이렇게 막막하기도 참 오랜만이잖아. 호호호~!”

기현주는 흡사 어린 소녀처럼 신명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는 우창도 마음이 흐뭇해서 바로 설명을 이었다.

적확하게 설명한다면, 일지에 있는 글자가 어떤 십성이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자기의 몸을 생각하는 기준이 정해지는 것이지요. 가령 누님의 사주에서 일주(日柱)가 을묘(乙卯)이기에 심신일여(心身一如)가 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일간(日干)이 일지에 비견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몸을 함부로 괴롭히지도 않을뿐더러 두려워하고 떠받들지도 않는 심성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어머나! 맞아,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읽어내지? 참으로 신기하네.”

그래서 하충 스승님의 가르침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얼른 말했다.

그렇다면 말이야. 을유(乙酉) 일주라면 자기의 몸을 두려워해서 함부로 대하지 못할뿐더러 몸이 원하는 대로 들어줘야 한다는 건가?”

역시 바로 활용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하하~!”

반대로 을축(乙丑)이나 을미(乙未)라면 몸을 돌보지 않고서 함부로 대하게 된다고 해석하게 된단 말이지?”

틀림없이 그렇게 풀이하면 됩니다.”

우창의 말에 기현주는 잠시 말을 잊고서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명상과 같은 것으로 봐서 우창도 잠시 조용하게 창밖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대략 일각(一刻)의 시간이 흘렀을까? 감았던 눈을 뜬 기현주의 눈빛이 더욱 반짝였다.

오늘부로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팔자가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어. 그리고 새롭게 드러나는 그림은 전혀 다른 모습이네. 그저 사주를 볼 때마다 뭔가 막연했던 것들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지네. 그러니까 여덟 개의 궁에 어떤 간지(干支)가 있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지?”

빨리도 깨달으셨습니다. 우창은 감탄했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어서 궁에 깃든 의미를 가르쳐 줘봐. 그것을 알아야 대입할 수가 있을 테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월간(月干)은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태도(態度)를 의미하고, 월지(月支)는 더 넓은 세상의 강호(江湖)를 바라보는 관점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월간에 상관(傷官)이 있으면 표현이 능소능대(能小能大)하여 대인관계를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있어서 상업(商業)에 능하고, 월지(月支)에 편관(偏官)이 있으면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웬만하면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고 집안에서 안전한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오호~ 알겠어. 이해되네. 그렇다면 연주(年柱)는 어떻게 작용하지?”

연간(年干)은 통솔(統率)하는 능력을 가늠하게 되고, 연지(年支)는 인정(人情)이 어떠한지를 살피는 곳이 됩니다. 연간에 편재(偏財)가 있다면 무관(武官)이 되어서 군사(軍師)를 통솔하면 잘할 수가 있고, 연지(年支)에 편재가 있다면 인정이 메말라서 냉혈한(冷血漢)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창의 설명은 옆에서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서기(書記)의 손끝에서 즉시 문자로 기록이 되고 있었다. 기현주는 다시 물었다.

알았어.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시주(時柱)에 대해서도 설명해 줘.”

, 시간(時干)은 종교나 철학에 대한 관념(觀念)을 살펴보는 곳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믿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이로써 살펴보고 판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지(時支)는 희망에 대한 것과 미래에 대한 것을 살펴보는 곳입니다. 여기에 식상(食傷)이 있다면 미래에 대해서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관살이 있으면 미래를 걱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창이 말을 마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기현주가 꿈에서 깨어난 듯이 몽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쉬운 듯하면서도 실은 대단히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었네. 지금 바로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겠어.”

기현주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는 감탄하면서 말했다.

오호라~! 참으로 절묘한 가르침이구나.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천지가 개벽해서 세상이 뒤집어져서 종말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不安感)으로 걱정하는 것도 팔자에 매였고, 또 반대로 오늘처럼 내일도 화평하게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낙천적(樂天的)으로 살아가는 것도 팔자소관이라는 말이잖아?”

만만하게 생각하고 이야기를 듣다가 점점 복잡하고도 오묘한 이치를 파악하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정상입니다. 우창도 처음에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서 거의 보름 동안은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느라고 고심했었으니까요. 그래도 박식한 누님은 두어 시진만 생각하시면 핵심을 파악하게 된다고 믿어도 되지 싶습니다. 하하~!”

그러니까 운문선사는 시간(時干)에 편재(偏財)가 있어서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란 말이지? 이것을 알아서 적용한다면 고인의 어록에 남겨진 의미의 뿌리까지도 파헤쳐 볼 수가 있지 않겠어?”

기현주가 신기하다는 듯이 약간 들뜬 음성으로 외쳤다. 그러다가 또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 십간(十干)과 십성(十星)을 팔자(八字)에 대입하려고 보니 두 가지는 자리가 없잖아? ()과 신()이 없는데 이것은 십성으로 겁재(劫財)와 편관(偏官)이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니, 그것을 바로 파악하셨습니까? 참 빠르기도 하십니다. 하하~!”

그 정도야 간단한 것이잖아? 그보다도 여기에 대한 설명이 궁금해.”

안달이 나는 듯한 기현주를 보면서 우창은 또 춘매가 떠올랐다. 춘매는 뭘 몰라서 궁금해했는데 기현주는 너무 많이 알아서 궁금해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것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누님, 팔괘가 여덟 개인 것은 왜 그런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창이 난데없이 팔괘를 이야기하자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말했다.

그야 생각해 봤지, 팔괘는 목토금(木土金)은 음양(陰陽)이 있고, 수화(水火)는 음양이 없기 때문이잖아. 동생이 묻는 것이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무슨 연관이 있는 거야?”

참으로 궁리가 빠르십니다.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다만 두 가지의 경우가 모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생각해 봤던 적은 있었지요. 하하~!”

?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두 학문의 뿌리가 모두 팔자(八字)와 팔괘(八卦)로 같은 숫자인 팔()을 품고 있으니 말이야. 이건 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는걸? 어서 설명해 줘봐. 궁금하잖아.”

우창은 기현주의 모습에 미소를 짓고는 조용히 붓을 들었다. 그러고는 그림을 그렸다. 팔괘도를 천간(天干)으로 표시한 그림이었다.

 

 

 


기현주가 우창의 붓끝만 바라보다가 우창이 붓을 놓자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우창이 설명했다.

팔괘는 수화(水火)가 하나씩이고 팔자는 병()과 신()이 보이지 않아서 화금(火金)이 하나씩입니다.”

..... 그러니까 비견(比肩)은 있고, 겁재(劫財)는 없는 까닭과 정관(正官)은 있고 편관(偏官)은 없는 이유가 이와 같단 말이야? 뭔가 서로 연결되는 것은 없어 보이잖아? 왠지 억지로 꿰어 맞춰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걸.”

바로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것은 각자의 표현된 결과물이 팔개씩이라는 것이지요. 팔괘에서는 열 개의 천간(天干)을 여덟 개로 표현하고 심리추명에서도 열 개의 천간을 여덟 개로 표현한 것이 같다는 의미입니다.”

아니, 이렇게 서로 다른 학문이 만나는 지점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생각할 줄도 몰랐던 이야기인걸. 절묘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귀객(貴客)이 찾아올 줄을 내가 어찌 알았겠어. 호호호~!”

그야 누님께서 오늘 우창을 불러주신 까닭이겠지요. 하하하~!”

? 무슨 말이야? 내가 우창을 불렀나?”

그야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지금 이렇게 우창은 여기에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부르지 않았다면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마른 솜에 물이 스며들듯이 우창의 말을 받아들이시는 것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목이 마르셨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 그건 맞아, 그동안 갈증이 참 많이 났었거든. 이미 갈증의 절반은 해소된 것만 같아서 속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를 지경이라니까. 호호호~!”

기현주가 행복한 표정을 짓자 우창도 흐뭇해서 설명했다.

후천팔괘(後天八卦)에서는 수화(水火)가 중심을 잡아야 하듯이 심리추명(心理推命)에서는 일월(日月)이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건 왜지?”

세상의 중심은 일간(日干)에 있고, 일간이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곳은 월지(月支)에 있는 까닭이지요.”

일간은 일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물론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모든 명서(命書)에서는 오로지 월령(月令)에 비중을 두고서 격국(格局)으로 삼기조차 하는 것이 일간만큼이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능히 짐작하실 겁니다.”

, 맞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왜 월령에 그렇게나 큰 비중을 두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팔괘의 수화(水火)를 보니까 뭔가 중요한 의미가 따로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걸. 하충 선생은 뭐라고 하셨어?”

아쉽게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신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창이 스스로 그 부분에 대해서 궁리해 봤지요.”

어머나! 그랬단 말이지? 참으로 대단하다니까.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러니까 하충 선생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우창이란 말이잖아. 그래 우창이 생각하기에 그 이치는 무엇이라고 본 거야?”

가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위대한 태양의 빛에 촛불 하나를 보탠 셈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니까 말이지요. 하하~!”

기현주는 우창의 설명이 더 궁금했다. 그래서 설명해 주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우창도 어떻게 설명해야 잘 알아들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말했다.

누님, 여쭙겠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그야 하나지 둘일 까닭이 없잖아? 태양도 하나라서 소중하고 심장도 하나라서 소중하듯이 말이야.”

맞습니다. 그래서 후천팔괘는 수화(水火)가 중심이 되는 것으로 봅니다.”

맞아, 선천팔괘(先天八卦)는 천지(天地)가 중심이잖아. 그렇다면 천간(天干)은 열 개가 되지만 팔자(八字)에서는 그중에서도 일월(日月)이 중심이 된다는 말이잖아?”

이번에는 우창이 깜짝 놀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긴장감이 넘치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었다. 우창은 속으로 짜릿한 쾌감을 느끼면서 말했다.

수화(水火)와 일월(日月)의 관계가 참으로 재미있지요?”

자원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까 점점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도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순간을 놓치게 되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서 더욱 긴장하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물어야 할 것만 같아서 우창에게 말했다.

싸부, 말씀하시는 중에 미안하긴 한데요.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호호호~!”

그러자 기현주가 자원을 보며 말했다.

어머, 미안해라! 내가 궁금한 것만 생각하고 자원이 있다는 것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네. 어서 물어봐 그것도 내겐 중요한 공부가 될 테니까.”

기현주가 양보하자 우창이 자원에게 물었다.

그래, 궁금한 것이 뭐지?”

우창의 말에 자원이 팔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말이에요. 왜 자원은 늘 동방(東方)은 묘()이고 서방(西方)은 유()라고 생각했을까요? 지금 그것이 자꾸 신경이 쓰여서 싸부 이야기에 몰입할 수가 없잖아요.”

우창이 자원의 말을 듣고서 답을 하려고 하는데 기현주가 먼저 말했다.

, 그건 내가 설명해도 될까?”

그야 당연하지요. 우창도 누님의 풀이를 듣고 싶습니다. 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우창도 알겠지만 나도 머리를 식힐 겸으로 자원에게 설명해 줄게. 호호~!”

어서 말씀해 주세요. 언니!”

우창은 차를 마시면서 기현주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헛기침을 한 번 한 다음에 설명했다.

자원이 헷갈린 것은 지반(地盤)과 팔괘를 구분하지 않은 까닭일 거야.”

지반(地盤)이야 알죠. 사정방(四正方)이 자오묘유(子午卯酉)잖아요?”

맞아, 동묘(東卯) 서유(西酉)로 인해서 당연히 정동(正東)은 을묘(乙卯)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우창이 써놓은 것은 동갑(東甲)이어서 왜 그런가 싶었던 거잖아. 맞지?”

기현주가 자원을 보며 말하자, 지원도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어머~!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호호~!”

그런 줄 알았어. 지반(地盤)과 팔괘가 다른 줄만 알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거야. 자원도 팔괘의 음양(陰陽)은 알지?”

그 정도는 알죠. 건괘(乾卦), 진괘(震卦), 감괘(坎卦), 간괘(艮卦)는 모두 양괘이고, 곤괘(坤卦), 손괘(巽卦), 리괘(離卦), 태괘(兌卦)는 음괘잖아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팔괘의 방향은 여기에서 찾으면 되는 거야.”

진괘(震卦)는 정동(正東)인데 진목궁(震木宮)은 갑목(甲木)이잖아? 갑목은 양목이고 진괘도 양괘이니 당연히 정동은 갑이 될밖에.”

자원은 기현주의 설명을 듣고서야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바로 깨달았다. 팔괘와 지반은 서로 달랐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자 더 이상의 설명은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문득 한참 정신없이 생각에 빠져있는 여정을 보니 그것이 또 맘에 걸렸다. 아마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 빤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자원이 여정을 바라보니까 여정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오늘 우리 여정이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고 고생이 많구나. 호호호~!”

그러자 우창도 무슨 뜻인지 알고는 여정에게 말했다.

우선 이해가 되는 것은 듣고, 그렇지 못한 것은 그냥 담아두기만 하게. 나중에 또 천천히 풀어가면 될 것이니 말이지. 하하~!”

,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 괜히 걱정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기현주가 듣고서 한마디 했다.

여정이라고? 어린 사람이 참 복도 많지. 시간은 많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다 깨닫게 될 거야. 호호호~!”

자원이 다시 기현주를 보고 말했다.

알았어요. 언니의 설명을 듣고 보니까 답은 바로 앞에 있었어요. 더구나 갑()은 인목(寅木)이니 태양이 떠오르는 동방이 맞고, ()은 유금(酉金)이니 태양이 지는 서방이 맞네요. 왜 이런 생각을 여태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자원은 대칭(對稱)으로 이해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 그러고 보니 나도 깨달은 것이 있었네. ()의 건궁(乾宮)과 을()의 손궁(巽宮)이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잖아. 예전에는 이것도 무심코 봤었는데 말이야. 자원의 덕분이네. 호호~!”

기현주의 말에 자원이 무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기현주를 바라보자 자원에게 설명했다.

, 간단한 이야기지만 심리추명(心理推命)’에서 알게 된 것을 응용해 보니까 또 새로운 것이 보여서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뭐냔 말이에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 건금궁(乾金宮)은 가장 어른이 머무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가장 존귀(尊貴)한 것이 부친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이제 겨우 깨닫게 되었지 뭐야. 그리고 대칭점(對稱點)에 있는 손목궁(巽木宮)은 존귀한 정신(精神)을 싣고 다니는 마차와 같다는 것을 새삼스레 생각했거든. 그러니까 이것은 신체(身體)인 몸을 의미한다고 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 본 거지.”

손궁이 신체라는 의미는 있나요?”

자원이 또 궁금해서 기현주에게 물었다.

손궁(巽宮)의 상징은 풍목(風木)이기도 하잖아. 바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몸도 되겠다는 것을 지금 생각했다는 것이지.”

정말 언니의 사유(思惟)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판단이 서질 않아요. 어서 설명해 주세요. 어떻게 바람이 몸과 연결되는 거죠?”

자원의 말을 듣고 보니 문득 장자(莊子)가 말한 대지의 풀무질이 떠오르는구나. 풀무질하려면 무엇이 필요하지?”

갑자기 웬 장자요? 호호호~! 풀무질은 대장장이가 쇠를 녹일 적에 불길에 바람을 넣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바람이 필요하죠.”

내 말이~! 호호호~!”

? 자원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데요?”

그래? 참 실망이네. 매 순간 풀무질해야만 불이 꺼지지 않는 물건이 뭘까?”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수수께끼인가요?”

아니, 수수께끼는 무슨. 비유라고나 해야 할까? 호호~!”

..... 비유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래도 모르겠어요. 알려주세요.”

자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듯이 기현주에게 물었다. 그러자 미소를 띤 기현주가 소리를 질렀다.

호흡(呼吸)~!”

기현주가 이렇게 외치자 우창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역시~! 누님의 통찰력은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감동입니다. 하하하~!”

아직도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자원이 말했다.

호흡이라니요? ...... , 호흡하는 것이 풀무질과 닮기는 했네요.”

닮은 것뿐이 아니라 틀림없잖아? 대지는 풀무질해서 만물을 살리고, 인체도 풀무질해서 심장의 불을 살리니 완전히 같은 것이지 뭐야?”

자원도 그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막상 이해하고 보니 이보다 간단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허탈해서 웃었다.

아니, 뭐에요. 호호호~!”

이제 자원도 이해했구나. 진목궁(震木宮)의 을목(乙木)이 풍목(風木)이라는 것만 알았지, 그것이 신체를 살아 있도록 하는 호흡인 줄은 이제야 깨달았으니 내 공부도 참 몇 푼어치가 못 되었어. 호호호~!”

정말 언니 말씀을 듣고 보니까 여합부절(如合符節)이잖아요. 참으로 팔괘나 팔자나 신기하네요. 호호호~!”

오늘 우창이 찾아와서 십성궁(十星宮)의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알고 살다가 죽었을 것이잖아? 이것을 생각하니까 온몸에 전율(戰慄)이 일어나지 뭐야. 정말 인연법에 감사해~!”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합장하고서 우창과 자원에게 진지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 바람에 우창과 자원도 마주 합장하고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언니도 참. 그 바람에 우리도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잖아요. 팔괘에서 건()과 손()이 짝을 이룬다는 생각은 못 했으니까요. 그나저나 건괘와 손괘가 만나면 무슨 괘가 되더라.......”

자원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자 기현주가 얼른 말했다.

천풍구(天風姤)!”

, 맞다. 천풍구지. 구괘(姤卦)는 남녀가 정을 통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나도 그 의미를 오늘 새롭게 알았어.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바람이니까 서로 짝을 이뤄야만 삶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었잖아.”

기현주의 말에 자원은 말이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 여자는 바람이라니요? 바람은 남자가 피우는 것이잖아요?”

뭐라고? 호호호호~!”

기현주는 자원의 말이 재미있다는 듯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여심(女心)이고, 자식을 낳는 것도 여인(女人)이니 뭐가 어려워? 그러니 여인은 바람이고 몸이고 대지이고 호흡이지. 호호호~!”

정말 언니의 풀이를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호호호~!”

과연 이치는 어디에서나 통하는가 봅니다. 하하~!”

우창도 맞장구를 치자 기현주가 이번에는 우창을 향해서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건 바로 건()은 정신이고 손()은 신체라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은 실로 남자가 아니라 정신일테니까 말이지.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궁리하는 것도 이치에 맞는 걸까?”

당연한 말씀입니다. 팔괘를 그려놓은 값을 제대로 후하게 쳐서 받았습니다. 하하하~!”

, 문득 드는 생각인데, 선천팔괘에서는 천지(天地)의 건곤(乾坤)이 중심이 되는데 그것도 태허공(太虛空)의 하늘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精神)인 건()과 대지인 곤()이 짝을 이뤘다고 해야 하는 거야?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은 대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

글자 하나가 무엇과 짝을 이루느냐에 따라서 의미도 달라지는 것이잖습니까? 여인과 아들이 짝을 지으면 모친이 되듯이 말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천지는 어떻게 봐야 한단 말이지?”

그냥 알고 계시는 대로 하늘과 땅으로 보면 됩니다. 건손(乾巽)의 대응(對應)과 건곤(乾坤)의 대응이 다른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정말이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공화(空華)였었네. 호호호~!”

자원과 기현주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장원(莊園)을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