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 제43장. 여로(旅路)
16. 팔자(八字)의 형상(形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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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게 차려진 아침 밥상을 받은 일행은 모두 든든하게 먹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도중에 녹림(綠林)도 아름다웠으나 서호로 향하는 마음이 앞서서인지 누구도 걸음을 늦추자고 말하지 않는 바람에 사흘이 되던 아침나절 무렵에 항주(杭州)의 영역에 들어설 수가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말이 없던 자원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우창에게 물었다.
“싸부, 현령은 그동안의 공부로 허송세월을 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겠죠? 아마도 싸부를 만나서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원의 말을 듣고 우창도 한마디 했다.
“맞아, 마침 그 순간에 자원이 ‘증사작반(蒸沙作飯)과 증미작반(蒸米作飯)’의 비유가 어쩌면 그렇게 딱 맞든지 절묘했네. 하하하~!”
“그런가요? 그건 자원이 생각해도 적절했어요. 이렇게 비유도 감초처럼 잘 사용하면 이해에 너무 큰 도움이 되겠어요. 호호~!”
자원의 말을 듣고 있던 여정이 마차를 몰다가 궁금했던지 자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님, 그런 이야기는 나눈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무슨 뜻입니까?”
여정이 갑자기 묻자 자원이 잠시 생각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 난 또 무슨 말인가 했네. 밥하는 이야기야. 모래 밥과 쌀밥의 이야기를 나눴었잖아. 호호호~!”
“아하~ 누님이 비유로 밥을 말씀하신 거야 기억나죠. 과연 절묘한 연결이었습니다. 많이 알아야 그러한 것도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찾아다 써먹을 수가 있으니 정말로 많이 듣고 보고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듣고 있는 것도 다 공부니까 열심히 들어두렴. 호호~!”
“맞습니다. 그래서 눈은 앞을 보고 있지만 귀는 뒤로 향하고 있습니다. 또 무슨 가르침을 주워들을 수가 있으려나 하고 말이지요. 하하~!”
여정의 말을 들으며 삼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생각해 보면 그렇게나 방대한 삼명통회에서도 정작 쓸만한 내용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많은 학인이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지 생각만 해도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왜 아니겠나. 그래서 적천수가 그만큼 위대하다고 하는 것이잖은가? 그렇게 소중한 적천수조차도 군더더기가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야 하지만 그래도 다른 것에 비한다면 비교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니 능히 용납(容納)되고도 남지 않겠나?”
“맞습니다. 특히 ‘간지총론’편에서도 ‘양승양위(陽乘陽位)’와 같은 허망한 내용은 예리한 칼로 도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글을 써놔서 뭔가 심오한 내용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매달려야 하니 말입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아니라면 그러한 것을 정리하는데 또 상당한 시간이 흘러가고 말겠지요.”
“물론이지. 다만 그러한 내용을 가려내는 과정에서도 내공은 증진되기 마련이니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네. 마치 목마른 나그네가 우물가에서 물을 청할 적에 지혜로운 아낙은 물그릇에 버들잎을 하나 띄워 준다지 않은가.”
우창의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지 삼진이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본 자원이 얼른 받아서 말했다.
“오라버니가 못 알아듣는 말도 있네요. 그건 물 위에 있는 버들잎이 자꾸 입 안으로 들어가니까 천천히 마실 수밖에 없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리는 것을 방지하는 여인의 지혜라잖아요. 호호호~!”
자원의 말을 듣고야 비로소 이해된 삼진이 말했다.
“아, 그런 뜻이었구나. 이제 분명히 알겠네. 전에도 그런 말을 듣긴 했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서 남정네를 희롱하는 것이겠거니 싶은 생각만 했었네.”
“어머~! 그럴 수도 있겠어요. 호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며 웃자 우창이 말했다.
“실로 현령과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어? 그래도 열심히 길을 찾으며 정진하다가 보면 우리와 같은 사람을 만나서 한 수 얻기도 하는 것이니까 공부도 인연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 물론 내가 스승들의 가르침을 만난 것은 참으로 큰 복이라고 해야 하겠고 말이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옳지, 이렇게 좋은 날에 마냥 마차에 흔들리면서 길을 갈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공부하면서 가요. 공부라고 해봐야 싸부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지만 말이죠. 시간은 소중하잖아요?”
자원이 적천수를 설명해 달라고 말하자 삼진도 동의한다는 듯이 합장하며 우창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스승님, 다음의 구절은 「형상(形象)」입니다. 이렇게 길을 가면서 가르침을 듣는 것도 좋겠습니다.”
삼진의 말을 듣고는 자원이 바로 책을 펴서 읽었다. 여정도 자원의 글 읽는 소리가 좋아서 귀를 기울이느라고 말의 걸음도 약간 늦춰졌다.
양기합이성상(兩氣合而成象)
상불가파야(象不可破也)
오기취이성형(五氣聚而成形)
형불가해야(形不可害也)
글을 읽은 자원이 우창에게 물었다.
“싸부, ‘형상(形象)’은 아마도 전체적인 구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겠죠?”
“맞아, 그 사람의 생일을 찾아서 명식을 작성한 다음에는 용신을 결정하고 전반적인 형태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 대목은 그러한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군.”
“그러면 우선 뜻을 풀이해 보고 가르침을 받을게요.”
이렇게 말한 자원이 내용을 보면서 풀이했다.
“두 기운(氣運)이 모여서 이뤄진 사주는 그 상을 깨트리면 불가하고, 다섯 기운으로 모여서 이뤄진 사주도 그 형상을 해(害)하면 안 된다.”
이렇게 풀이한 자원이 우창에게 물었다.
“싸부, 이름에서도 나왔듯이 상(象)과 형(形)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이 둘의 차이는 뭘까요? 형상(形象)으로 묶어서 말하면 될 것을 나눠서 설명한 것에는 뭔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의미를 모르겠어요.”
자원의 말에 삼진도 한마디 했다.
“스승님, 삼진이 보기에 ‘양기(兩氣)가 모이면 상(象)이고, 오기(五氣)가 모이면 형(形)이라’고 한 설명도 이해는 어렵습니다. ‘불가파(不可破)’나 ‘불가해(不可害)’는 아마도 같은 의미로 봐도 되지 싶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삼진의 물음까지 들은 우창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뭐가 다르겠나? 상(象)과 형(形)은 같은 뜻의 다른 글자일 뿐이라고 봐도 되겠네. 중요한 것은 양기(兩氣)와 오기(五氣)인데 두 기운으로 되었다면 아무래도 편중(偏重)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우창이 묻자 삼진이 말했다.
“그렇다면 목화(木火)나 금수(金水)를 말하고, 토수(土水)나 화금(火金)과 같이 생하거나 극하는 관계의 두 가지 오행으로만 되어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그밖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있겠나?”
“없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인데 파괴(破壞)되면 안 된다고 한다면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글자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봐도 되겠지. 그런데 현실적으로 사주를 놓고서 생각해 본다면 두 오행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양상(兩象)이거나 삼상(三象)이거나 그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전체적인 균형이 중요하나?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제자도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오형(五形)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균형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말이니 이것도 하나 마나 한 말이라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없어도 되는 말이지 않습니까? 왜 이런 내용을 남겼을지 그것이 오히려 더욱 궁금합니다.”
삼진이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자 우창도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더 거론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겠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다시 물었다.
“싸부, 처음에 이 대목을 읽었을 적에는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는데 막상 설명을 듣고 보니까 있으나 마나 한 이야기임을 알겠어요.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은 알아두고 알고 있는 사람은 이치를 통한 것이니 더 머뭇거리지 말고 다음 대목으로 넘어가도 되다는 것으로 볼까요?”
“오호~! 그것참 멋진 해결책인걸. 하하하~!”
“잘 알았어요. 그렇다면 다음 구절을 읽어볼게요.”
독상희행화지(獨象喜行化地)
이화신요창(而化神要昌)
전상희행재지(全象喜行財地)
이재신요왕(而財神要旺)
“독상(獨象)이라고 한 것으로 봐서 아마도 일행득기격(一行得氣格)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원이 글을 읽고서 맨 앞에 나온 독상을 짚으며 우창에게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 아니겠어. 여덟 글자가 모두 한 가지 오행으로만 되어있다는 뜻이지.”
“이것은 종격(從格)을 의미하는 것이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서는 종격이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속단(速斷)하지 말자고. 하하하~!”
“그러니까 화신(化神)이란 식상(食傷)을 말하는 건가요?”
“맞아, 그런데 말이 안 되지?”
“예? 뭐가요?”
자원은 우창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책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아니, 앞에 독상(獨象)이라고 써놓고서 화신(化神)이 창성(昌盛)하기를 바란다고 하면 이것이 말이 되냐는 거야.”
“아, 정말 그렇네요. 이미 독상인데 무슨 화신이 또 융창(隆昌)할 수가 있겠냐는 생각은 미처 못했어요. 혹 행운(行運)에서 식상의 운이 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원의 말을 듣고서야 우창도 느낀 바가 있었다.
“아하~! 그렇구나. 운에서는 식상(食傷)을 만나는 것이 좋다는 것이겠네. 그건 누가 봐도 타당한 이야기로구나. 자칫하면 괜히 경도에게 시비할 뻔했잖은가. 하하하~!”
우창의 말에 삼진과 자원도 웃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는 여정도 지금의 분위기는 이해되었던지 같이 웃었다. 그러자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이 말은 왕희순세(旺喜順勢)와 같은 의미로 봐도 되겠습니다. 비겁(比劫)이 전국(全局)을 가득 채웠을 적에는 극(剋)하는 관살(官殺)이 오더라도 무력할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흘려보내는 식상이 최상의 운이라는 것을 말한다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맞아. 바르게 해석했네. 내 생각도 그렇다네.”
“그런데 다음 구절이 조금 애매합니다. 전상(全象)은 또 무엇을 의미할까요? 앞에서 오기(五氣)를 말했으니 오행이 모두 있는 것을 말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어떤 상황을 두고서 ‘온전한 형상’이라고 했을까요?”
삼진의 물음에 우창도 정색하고서 말했다.
“과연 삼진이 핵심을 잘 짚어주는군. 내가 생각해도 좀 명료하지 않은 점이 있기는 한데 그래도 억지로나마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다음 구절의 ‘재신(財神)이 왕성한 것을 요한다’는 것으로 봐서 일강(日强)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은 분명하지 싶군.”
우창의 말에 자원이 다시 물었다.
“그건 좀 어색하잖아요? 그렇게 하려면 전상(全象)이 아니라 차라리 왕상(旺象)이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으니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미뤄서 왕성한 일간으로 짐작하고 넘어가도 되지 싶군. 그렇지만 여전히 어색하기는 하지?”
“맞아요. 경도 선생도 이때는 무척이나 바쁘셨던가 봐요. 호호호~!”
“아무래도 그랬던 것으로 봐야겠구나. 하하하~!”
다시 책을 보던 자원이 말했다.
“이제 한 구절만 더 보면 형상편의 내용이 전부네요. 그러니까 내친김에 마저 살펴볼게요.”
이렇게 말하고는 내용을 읽었다.
형전자의손기유여(形全者宜損其有餘)
형결자의보기부족(形缺者宜補其不足)
“계속 형상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네요. 앞에서는 양상(兩象), 독상(獨象), 전상(全象)을 이야기하더니 이번에는 형(形)을 말하니 말이에요.”
이렇게 말하는데 여정이 마차를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앞을 보니 시원한 그늘이 있는 노변(路邊)이었다. 그리고 아담한 주막(酒幕)이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오시(午時)가 되었던 모양이다.
“스승님, 말도 좀 쉴 겸 잠시 멈췄습니다. 이 주막에서 점심을 해결하면 어떻겠습니까?”
여정의 말을 듣자 모두 갑자기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에 취해서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원이 말했다.
“잘했어. 하마터면 밥을 놓칠 뻔했잖아. 어서 말도 쉬게 하고 우리도 뭘 좀 먹자.”
일행이 주막으로 들어가자 노파(老坡)가 의자에 앉아서 나물을 다듬다가 일행을 보고 반겨 맞았다.
“어서들 와요. 뭐든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일 잘하시는 걸로 부탁드려요~!”
자원도 선량해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에 호감이 생겨서 무엇이든 만들어 주면 먹겠다는 듯이 말하고는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식탁은 열 개 정도나 되었는데 그중에 서너 자리는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있어서 분위기는 한가로워 보였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호기심이 많은 자원은 손님들의 모습을 곁눈질로 훑어봤다. 혹시라도 위험한 인물로 보이는 사람은 없는지 주의하기 위해서였다. 특별한 모습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싸부, 기다리는 시간에 형전(形全)과 형결(形缺)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어떤 것을 ‘온전한 형태(形態)’라고 하고, 또 어떤 것을 결함(缺陷)이 있는 형태라고 하는 건가요?”
자원은 말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 여정을 보면서 우창에게 물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던 우창이 자원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서 자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급해서 그래? 하나씩 물어도 될 것을 말이지. 하하하~!”
“맞아요. 하나씩 물어야 하는 것을 또 깜빡했죠. 호호호~!”
자원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자원이 말을 이었다.
“형전(形全)은 생생불식(生生不息)이 아닐까요? 온전하다는 것은 간지가 서로 이웃으로 생하고 또 생하는 것이니 말이에요.”
“맞아.”
우창의 답은 간단했다. 더 긴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어서였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물었다.
“형태가 온전하다면 중요한 것은 넉넉해서 남는 것을 들어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으니 이것은 식상(食傷)이나 관살(官殺)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겠어요? 다시 말하면 일간(日干)이 강왕(强旺)할 경우의 해결책인 거죠?”
“두말하면 군소리겠지?”
“억부(抑扶)에서 강자의억(强者宜抑)과 완전히 같은 말이잖아요?”
“아무렴~!”
우창이 동의하자 자원도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그렇게 되면 형결자(形缺者)는 약자의부(弱者宜扶)네요?”
“당연하지.”
“이러한 형태를 말한다면 생생불식과는 반대가 되는 모습일 테니 ‘충극단절(沖剋斷絶)’이라고 해도 되겠죠?”
“그것도 맞지만, ‘허약득병(虛弱得病)’도 고려해야지. 비록 충극은 없다고 하더라도 허약한 경우도 당연히 있을 테니 말이지.”
“아 맞다~! 당연히 있죠. 그러한 경우에는 부족한 것을 보완하라고 했으니까 인겁(印劫)으로 도우면 된다는 말이겠네요?”
“그렇지.”
말하면서 생각하던 자원이 우창을 보며 웃었다.
“아니, 이건 순전히 억부법(抑扶法)의 이치잖아요? 호호호~!”
“누가 아니랬나? 하하~!”
“이렇게 간명하게 억부의 핵심을 짚었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죠. 비록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내용은 참으로 빛나는 가르침이네요. 결국은 자평의 핵심은 억부에 있다는 말을 이렇게도 부드럽게 하니 말이에요.”
“맞아. 경도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장면이지.”
“문득, ‘다 필요 없고~!’라고 하는 말씀이 들리는 듯해요. 정말 멋진 가르침을 적어놓으셨네요. 호호~!”
노파가 고기를 볶은 것과 좀 전에 다듬던 나물을 무쳐서 내왔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고소한 향이 정갈한 느낌을 줬다.
“간이나 맞으려나 모르겠습니다. 혹 부족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우창은 노파의 말투에서 품격이 느껴진다는 것을 생각했다. 아마도 장사를 처음부터 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학식(學識)이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우선 호감이 갔다.
“음식이 정갈해 보입니다. 잘 먹겠습니다.”
품격이 있는 접대에 우창도 예의를 갖춰서 인사하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노파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붉은색의 음료를 가져와서 따라주고는 말했다.
“이건 작년에 오미자를 따서 청으로 담아놓았던 것인데 시원하게 마시고 음식을 드시면 소화가 잘된답니다.”
오미자의 시큼한 향이 풍겨왔다. 그러자 저쪽에 앉아있던 언뜻 봐서 여정의 또래쯤으로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할멈, 우리는 왜 그걸 안 주는 거야~!”
자원은 말투가 거슬렸지만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노파가 그쪽으로 다가가서 조용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손님들께는 오미자 대신에 오가피(五加皮)를 담근 술을 드렸습니다. 젊은 혈기에는 오미자보다 오가피주가 소화에 더 도움이 되실 겁니다.”
노파는 평온한 모습으로 조곤조곤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남자가 언성을 높여서 말했다.
“아니, 이게 술이야? 맹물을 줘놓고 술이라고 한단 말이야? 이거 완전히 날강도로구나~!”
그래도 노파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다시 조용히 말했다.
“식전(食前)에 마시는 술은 너무 독하면 위장을 해치기에 일부러 순하게 한 것이에요. 이제 음식을 드셨으니 원하신다면 빼갈을 드셔도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쎈놈으로 가져와 봐~!”
자원이 듣기에 말투가 못 배워먹은 티가 풀풀 났다. 노인에게 말하는 품이 마치 집안의 하녀를 부리는 듯한 것이 거슬렸다. 저런 모습은 부모가 갑자기 부자가 되었거나 해서 격에 맞지 않는 복을 누리느라고 감당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옆에 앉은 친구로 보이는 두 남자는 다소 민망한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잠자코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은 오늘 점심에 초대받은 사람인 듯싶었다.
노파가 술이 든 병을 갖다주자 덥썩 받아서는 병째로 들고는 벌컥벌컥 마시더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호기롭게 요리를 주문하는 것을 보면서 자원이 우창에게 조용히 말했다.
“음식이 깔끔해서 좋아요. 꼭 들어가야 할 것만 들어간 것 같은 맛이잖아요? 싸부도 이런 음식을 좋아하시니 입에 맞으실 것으로 보여요.”
“맞아, 딱 내 입맛이로군. 여정이 식당을 잘 들어왔구나. 하하~!”
우창이 여정을 칭찬하자 여정도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제자는 말이 쉬고 싶어 하기에 말의 뜻에 따랐을 뿐인데 음식이 맘에 드신다니 아마도 말이 스승님의 식성을 알고 있었던가 봅니다.”
이렇게 대화하면서 음식을 먹는데 갑자기 예의 젊은이가 호기롭게 소리를 질렀다.
“오늘 여기에 계신 손님들을 제가 초청(招請)하겠소~!”
그 말에 다른 쪽 식탁에 있던 다섯 사람은 박수치며 감사의 표시를 했으나 자원은 아무런 까닭도 없이 원치 않는 대접을 받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그 젊은이를 바라봤다. 사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삼진이 자원의 발을 지그시 밟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서 그 젊은이에게 말했다.
“초면에 선의를 베풀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먹겠습니다.”
삼진의 말에 젊은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노파를 불러서 요리를 더 가져다 놓으라고 주문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창은 내심 일이 재미있게 되어간다고 생각하면서 잠자코 요리를 먹었다. 필시 이러한 선의(善意)에 따른 대가는 분명히 있을 것임을 생각하면서 점괘가 궁금해서 조용히 득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