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 제42장. 적천수(滴天髓)
24. 연약(軟弱)하나 질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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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서재로 돌아가자 서옥이 아들 일석과 놀면서 청소하다가 우창을 보고 반겨 맞았다.
“스승님, 오늘은 이야기가 길어지셨나 봐요. 백화당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으니 말이에요. 호호호~!”
“응, 제자들의 열정이 넘쳐서 뿌리치고 나올 수가 없었지. 하하~!”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긴 그 바람에 나도 스승님으로부터 귀한 가르침을 받기도 했으니 항상 진리는 주고받는 것임을 또 생각하게 되네. 날씨도 화창한데 산책이나 갈까?”
이렇게 말하면서 일석을 보니 그사이에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문을 닫고는 숲이 우거진 길을 걸으면서 흐르는 개울의 물소리를 들었다. 맑은소리가 지저귀는 새의 소리와 함께 잘 어우러져서 허공을 맴돌았다.
“서옥은 지내는 것이 힘들지는 않아?”
“힘들긴요. 모두 잘 챙겨 주시는 바람에 즐겁기만 한걸요. 왜요? 하실 말씀이 있죠?”
우창의 눈치를 보면서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을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실은 바람을 쐬러 가볼까 싶은데 어린아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이 아무래도 걱정되어서 말이네.”
“아하~! 스승님의 역마살이 발동을 걸었나 봐요? 호호호~!”
“그런가?”
“어디든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세요. 어디로 가보고 싶으신가요? 서옥은 일석이와 놀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누구랑 가고 싶으세요?”
“응, 이번에는 혼자서 북방으로 한 바퀴 돌아보고 싶군.”
“아니, 염재라도 동행하셔야 길이 편안하실 텐데 왜 혼자 가시려고요?”
“염재는 식구들이 잘 지내도록 오행원을 관리해야 해서 말이네. 그리고 홀가분하게 유람하는 재미도 크잖은가? 하하~!”
“어마나! 이미 마음에 결정하셨네요. 내일이라도 떠나실 것처럼 들떠있는 것이 서옥도 느껴져요. 그렇게 좋은가요? 호호호~!”
우창은 서옥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대로 하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산사 경내를 거닐다가 저녁을 알리는 목탁 소리를 듣고서 발길을 돌렸다.
“태사님께 경례~!”
사시(巳時)가 되어 강당에 모인 제자들은 구령에 맞춰서 일제히 합장배례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몇몇 제자들은 어제 오후에 백화당에서 신금(辛金)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나눴기에 훨씬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떤 가르침을 듣게 될 것인지 귀를 기울였다.
차를 한모금 마신 현담이 대중을 둘러보고는 군엄(君嚴)을 가리켰다.
“예, 태사님 제자 군엄입니다.”
“오늘은 그대가 읽어볼 텐가?”
“알겠습니다. 「신금(辛金)」편을 읽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읽었다.
신금연약 온윤이청(辛金軟弱 溫潤而清)
외토지첩 요수지영(畏土之疊 樂水之盈)
능부사직 능구생령(能扶社稷 能救生靈)
열즉희모 한즉희정(熱則喜母 寒則喜丁)
군엄이 읽고서 자리에 앉자, 이번에도 대중을 둘러봤다. 누가 풀이를 해 보겠느냐는 표정을 본 제자가 얼른 손을 들고 일어났다.
“스승님 부족하나마 제자가 의미를 풀이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그대 이름과 아호는 뭔가?”
“예, 제자는 올해 서른여덟입니다. 이름은 고봉한(高鳳翰)이고 아호는 삼진(三塵)이며 고향은 길림(吉林)입니다.”
“그래 어디 풀이를 들어보지.”
우창이 삼진을 찬찬히 살펴봤다. 그동안 조용하게 지냈던 까닭에 대중 속에 묻혀서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나서는 것을 보고야 관심이 생겼다.
“좁은 소견이지만 말씀을 드려보고자 하는 것은 매를 맞아야 학문에 진전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가차없는 편달(鞭撻)을 청합니다.”
우창은 삼진의 말투가 맘에 들었다. 이미 상당한 독서(讀書)가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신금을 어떻게 풀이할지 기대했다.
“신금(辛金)은 연약(軟弱)하니 온윤(溫潤)하면 맑아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연약이란 광물(鑛物)의 오금(五金)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금(金), 은(銀), 동(銅), 석(錫), 철(鐵)이 그것이지요. 이들은 불을 만나면 녹아서 쇳물이 되었다가 다시 틀을 만나면 굳어서 그릇이 됩니다. 다만 그 본성이 연약하기에 무엇으로도 변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삼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풀이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삼진의 풀이가 이어졌다.
“무엇으로도 변화한다는 것은 목적에 따라서 그 형상을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적성(目的性)이 뚜렷합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변화하므로 심성(心性)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서 유연하다고 해석하게 됩니다.”
삼진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도 시큰둥한 표정에 갑자기 생기가 돌면서 말했다.
“오호~! 그런 생각까지 했단 말인가? 그럴싸한걸. 어디 계속해 보게. 하하하~!”
“고맙습니다. 태사님의 격려에 힘을 얻어서 계속 풀이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신금의 목적에는 오욕(五慾)이 포함됩니다. 식욕(食慾), 성욕(性慾), 수면욕(睡眠慾),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을 말하지요. 이러한 욕망이 치성(熾盛)하게 되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물이 모래 속으로 스며들듯이 끝없이 파고 들어가는 성향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조차도 모두 유연하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
“온윤(溫潤)하면 청(淸)하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온(溫)은 적당한 열기(熱氣)를 말하고 윤(潤)은 또 적당한 수분(水分)을 말합니다. 따뜻한 것은 화생금(火生金)의 이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辛)의 탐욕을 눌러주는 것으로는 불보다 효과적인 것이 없습니다. 다만 맹렬(猛烈)하면 녹아버리게 되므로 본성(本性)을 해치게 됩니다. 그렇기에 적당히 제어(制御)하는 것이면 과욕(過慾)을 부리지 않을 것이니 그 심성이 청(淸)하게 됩니다. 또 윤(潤)으로 인해서 금생수(金生水)가 되니 쌓아두려는 신(辛)의 본성을 유화(柔和)해서 흘려보내도록 하여 과욕을 나눌 줄 알게 해주니 이렇게 되어서 청(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욕심이 많은 사람도 교육받고 사유하게 되면 청정(淸淨)한 경지에 노닐 수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창은 삼진의 풀이를 들으면서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탐욕(貪慾)의 대명사(代名詞)인 신(辛)에 대해서 청정한 경지를 거론할 수가 있다는 것에서 감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풀이할 수도 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현담의 표정을 보니까 역시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도 계속해서 풀이하는 것에 집중했다. 삼진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다음으로 ‘외토지첩(畏土之疊)하고 요수지영(樂水之盈)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토(土)는 기토(己土)를 말하고 이것은 토양(土壤)을 의미합니다. 단순하게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한다는 것은 토생금(土生金)의 이치가 과중(過重)하게 되면 토극금(土剋金)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이러한 것을 오해(誤解)하여 ‘신금(辛金)은 보석(寶石)이라서 흙이 많으면 묻힌다는 의미로 토다금매(土多金埋)라’고 풀이하는 것은 오류(誤謬)라고 여겨집니다.”
삼진이 이렇게 풀이하고는 자신의 해석이 맞는지 확인할 요량으로 현담을 바라봤다. 현담이 묵연(黙然)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도 좋다는 의미였다.
“신(辛)은 자연의 모든 기운을 흡수하는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갑을(甲乙)의 발산지기(發散之氣)와 병정(丙丁)의 폭발지기(爆發之氣)와는 사뭇 다른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금기(金氣)는 수렴(收斂)하는데 이것은 경(庚)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신(辛)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기토(戊己土)는 신(辛)의 인성(印星)이므로 수렴작용을 강화(强化)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토기(土氣)가 지나치게 되면 균형을 잃고서 탐욕을 부리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그로 인해서 두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말을 듣고는 우창이 물었다.
“삼진의 탁월한 관점으로 풀이하는 설명에 감탄했네. 특히 목기(木氣)와 금기(金氣)를 대비해서 이해하는 것은 우창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점이어서 놀랍기조차 하다네. ‘외토지첩(畏土之疊)’과 ‘외토지다(畏土之多)’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책에서는 ‘외토지다’라고 된 곳도 있어서 말이네.”
우창은 문득 그 차이에 대해서 삼진은 어떻게 풀이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삼진이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물론 대동소이합니다. 다만 느낌은 현격(懸隔)하다고 하겠습니다. 단순히 많은 것으로는 외(畏)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첩첩(疊疊)한 정도는 되어야 두려울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多)는 첩(疊)의 오자(誤字)라고 보입니다.”
“오호~! 삼진의 탁견(卓見)일세~!”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토극금(土剋金)은 무토(戊土)를 말한다고 볼 수는 없나?”
“그렇게 풀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무토가 허공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로 미뤄서 생각해 보면 또한 보석(寶石)의 관점에서 무토(戊土)를 태산(泰山)으로 대입한 오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무토(戊土)일 수가 없다고 본 것이며, 이것은 기토(己土)가 분명하다는 것으로 봤습니다.”
삼진은 조용하면서도 굳은 신념이 가득한 말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깊은 통찰(洞察)을 한 삼진을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삼진의 말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풀이해 보겠습니다. ‘요수지영(樂水之盈)’은 금생수(金生水)의 구조를 좋아하는 것으로 해석하겠습니다. 이것은 빨아들여서 쌓아놓고자 하는 신금의 탐욕을 쌓아두기만 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여기에 토(土)가 첩첩하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폐색(閉塞)하여 죽은 것과 같을 것인데, 다행히 임계수(壬癸水)가 있어서 쌓인 금기(金氣)를 뚫어준다면 이보다 더 시원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삼진의 설명을 들으면서 우창이 문득 수(水)도 임(壬)과 계(癸)의 차이가 있으리라고 여겨서 다시 확인차 물었다.
“혹 임수(壬水)를 말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풀이한 고인도 있어서 말이네. 여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군.”
“유독(惟獨) 임수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사료(思料)됩니다. 임수가 있으면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시원할 것이고, 계수가 있으면 안으로 궁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들 테니 어느 것이라도 있다면 모두 반가울 따름입니다. 이것은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은 모두 반갑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만 아무리 ‘요수(樂水)’라고 하더라도 금생수(金生水)가 지나치면 또한 수극금(水剋金)이 될 따름이니 항상 균형을 이룬 다음에 살펴야 할 것입니다.”
“멋진 풀이로군~!”
우창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해서 말했다. 그러자 삼진은 우창에게 합장하고 말했다.
“그간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귀중한 핵심(核心)을 항상 전해주시는 스승님과 태사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판단하는 단서(端緖)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항상 진심(眞心)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열성(熱誠)에 경의(敬意)를 표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드리지 않았으나 말석에 앉아서 공부하는 즐거움은 어디에도 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기회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말하고 현담과 우창에게 합장하고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것을 본 현담이 웃으며 말했다.
“오호~! 기재(奇才)로다. 하하하~!”
“과분(過分)합니다.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그래 다음 구절도 풀이해 보게.”
“실은 신금(辛金)에 대한 핵심은 이미 다 노출(露出)되었습니다. 다음의 구절들은 군더더기에 불과하여 해석할 필요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아니, 그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삼진의 부족한 생각으로는 앞의 심오한 의미를 감소시키는 내용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마도 후대의 누군가 괜한 덧칠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 무슨 뜻으로 풀이하였기에 그렇게 확신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겠네. 하하~!”
우창도 통쾌한 마음에 이렇게 웃으며 풀이를 요청했다. 그러자 삼진도 스스로 풀이한 내용에 대해서 말했다.
“사직(社稷)을 지키는 것이나 생령(生靈)을 구하는 것이 다 무엇인가 싶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사족(蛇足)을 붙인 의미는, ‘군왕(郡王)인 병화(丙火)와 병신합(丙辛合)을 하여 화수(化水)가 되니 그로 인해서 수생목(水生木)을 하여 병화(丙火)가 임금의 조상(祖上)인 목(木)을 불태우는 것을 방지하고 신(辛)은 또 갑(甲)의 군왕(郡王)이기도 하여 백성을 잘 지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귀로 인해서 학문을 파고 들어가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따름이니 거론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오호~ 과연~!”
현담이 감탄했다. 우창도 놀랐으나 현담의 표정과 감탄하는 것을 보며 과연 이러한 즐거움은 학문(學問)에서 나오는 것임을 다시 생각했다. 보통은 글귀의 내용을 더욱 길게 풀이하는 것인데 삼진은 있는 것조차도 아예 잘라 내버리는 예리함에 감탄하게 되었다. 현담이 말이 없자. 삼진이 계속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실은 갑목(甲木)편이나 을목(乙木)편에서도 그러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앞의 네 구절은 심오(深奧)하나 뒤의 네 구절은 미흡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풀이한다고 해서 크게 틀렸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것이 있으므로 해서 사족이 되어버렸으니 차라리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병신합수(丙辛合水)의 이치는 논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넌지시 물었다. 이미 합화(合化)의 이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러한 이치를 믿고 있는 다른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였다. 우창의 물음에 삼진이 다시 설명했다.
“합화(合化)의 이치는 의서(醫書)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그러한 의미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운론(五運論)」과 「육기론(六氣論)」에 의하면 갑기년(甲己年)에는 금천지기(黅天之氣)가 되는데 갑년(甲年)에는 토기(土氣)가 태과(太過)하고 기년(己年)에는 불급(不及)하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살펴보면, 단지 상징적인 의미일 따름이고 실속이 없습니다. 갑년(甲年)에 오히려 목극토(木剋土)가 되어서 토기가 부족하다고 하면 그나마 고개를 끄덕이겠으나 오히려 태과하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화토(化土)에 빠져서 출구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꼴이라고 여겨집니다. 의술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어서 질병을 예방(豫防)하고 치료(治療)되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명학(命學)에서는 군더더기일 뿐이고 거론하면 할수록 미궁(迷宮)으로 빠져들 따름이라고 여겼습니다.”
확신에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는 삼진을 보면서 우창은 공감되었다. 예리한 칼날로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것같이 시원한 희열(喜悅)이 느껴지기조차 했다.
“멋진 생각이네. 나머지 구절도 언급은 해 봐도 좋겠네.”
“예, 또한 쓸데없는 말이지만 헛일 삼아서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열기(熱氣)가 많으면 자연 화극금(火剋金)을 하니 인성(印星)인 토(土)를 기뻐하고 한기(寒氣)가 많으면 따뜻한 정화(丁火)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어찌 정화만 해당이 되겠습니까? 병정화(丙丁火)는 모두 도움이 될 테니 또한 편협(偏狹)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혹 가르침이 있으면 받겠다는 표정이었다. 우창은 문득 경금(庚金)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경금(庚金)」편에서도 뒤에 있는 절반은 군더더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의견을 듣고 싶네.”
“그렇습니다. 없어도 그만인 의미이니까 말이지요. 습토(濕土)를 만나면 생하고 조토(燥土)를 만나면 부서진다는 의미가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갑(甲)을 이기고 을(乙)에게 정을 준다는 말은 또 무슨 헛소리인가 싶기도 합니다.”
“듣고 보니 과연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내용들이었군. 잘라버려도 전혀 아프지 않은 내용이니 말이네. 그러니까 어제 자원이 풀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품이나 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물이 흐르듯이 거침없는 풀이에 감탄했습니다. 의미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 풀이조차도 헛된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잘 알겠네. 그렇다면 경금에 대해서 어떻게 정리하겠나?”
우창은 삼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었다. 생각지 못한 말이 툭툭 튀어나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창의 물음에 삼진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경신(庚辛)은 같은 금(金)입니다. 그래서 경(庚)은 득수이청(得水而淸)하고 득화이예(得火而銳)하는 것이며, 신(辛)은 온윤이청(溫潤而淸)이라고 한 것이니 온윤도 경(庚)과 마찬가지로 수화(水火)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서로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구태여 경신(庚辛)으로 나눌 필요도 없었단 말인가?”
“예, 스승님. 경(庚)이 대살(帶殺)이면 신(辛)도 대살입니다. 경(庚)이 강건(剛健)하면 신(辛)도 강건하고요. 서로 같아서 구분할 필요가 없는데 그것을 구분해 놓음은 후학의 총명함이 부족하여 혼란할 수가 있음을 염려한 것이니 그것조차도 탓할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우창이 듣고 봐도 전혀 문제가 없는 통찰(洞察)이었다. 오히려 문자에 매여서 크게 바라보는 것을 놓쳤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오행(五行)의 이치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다만 크게는 같으나 작게는 음양의 다름을 구분해야 할 것이므로 그 정도의 차이로만 이해한다고 해도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우창이 조용히 생각에 잠기자 조용히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수경이 손을 들고 말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그렇다면 전반부는 적용하고 후반부는 버리는 것이 옳을까요?”
항상 흑백을 분명히 하는 것을 좋아하는 수경다운 물음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현담이 대답했다.
“아닐세. 그냥 두고서 그런 줄만 알고 있으면 충분하지. 상근기(上根機)는 앞의 구절만으로도 깊은 깨달음이 있겠지만 중근기와 하근기는 허접한 내용을 통해서도 진전이 있으니 말이지. 그래서 풀이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는 것이라네. 하하하~!”
역시 현담의 생각은 깊었다. 삼진은 공부하는 관점에서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핵심(核心)을 찾는 수행자라고 한다면 현담은 한 바퀴를 다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여유로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느껴졌다. 현담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장자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 쓸데없는 것은 없다.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모를 따름이다’라는 의미였다. 그러니까 현담의 생각으로는 ‘능부사직’도 필요하고 능구생령도 필요하기에 이러한 것을 알아도 전혀 해로운 것은 없다고 보는 관점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줄을 알면서도 아직은 무럭무럭 자라야 할 어린 제자들과 글자 놀이하면서 즐기는 것임을 알고서 또 감탄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과묵한 안산(安山)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태사님께 여쭙습니다. 삼진의 관점을 들으면서 새로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그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태사님께서는 이렇게 보는 것도 좋고 기존처럼 이해하는 것도 좋다고 하시니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제자는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정리해 주신다면 머리가 가벼워질 것입니다.”
안산의 물음에 현담은 우창을 바라봤다. 여기에 대해서 답을 할 수가 있으면 해 보라는 뜻임을 이해한 우창이 붓을 들어서 그림을 하나 그렸다.
우창이 그린 그림을 앞에 세워서 대중이 볼 수가 있도록 하자 자원이 손을 들었다. 우창이 자원을 바라보자 자기에게 설명해 보라는 의미임을 눈치채고는 말했다.
“스승님, 이 항아리 그림은 자원이 설명해 볼게요. 잘 이해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아, 그래? 어디 설명해 보게.”
우창이 허락하자 또렷한 음성으로 설명했다.
“스승님께서 그린 항아리 그림은 학인(學人)이 공부하는 과정을 나타낸 것처럼 보여요. 항아리에 물을 붓게 되면 맨 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맨 아래에는 입문(入門)을 의미하므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되겠어요. 점차로 위로 올라가면서 넓어지는 것은 가르침을 통해서 지식(知識)이 커지는 것을 의미해요.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교육(敎育)을 이루게 되면 더하는 공부는 끝이 나고 이제부터 덜어내는 입선(入禪)의 공부가 진행되죠. 그릇을 빚는 도공(陶工)은 내용물을 잘 담아두기 위해서 위를 좁게 만들듯이 학자도 말과 글이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는 다 비어버리는 공(空)의 단계에서 노닐게 되는 의미로 봤어요. 이렇게 되어서 비로소 바깥세상과 소통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내공에 의해서 정제(整齊)된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을 설명한 것으로 보여요. 문득 이런 그릇도 떠올랐어요.”
이렇게 말한 자원이 그 옆에다 그릇을 하나 그렸다.
“이러한 그릇은 무엇이든 되는대로 모두 담는 그릇이에요. 차고 넘쳐서 낭비하게 되지만 그것이 자신의 역량(力量)인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퍼붓고 있을 따름이죠.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타당한지요?”
자원은 정확하게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우창이 맞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말을 이었다.
“도공이 그릇을 만들면서 어떤 그릇은 폭이 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또 폭이 좁기도 해요. 그래서 큰 그릇이 되기도 하고 작은 그릇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모두 자신의 목적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수행자도 박학다식(博學多識)해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흡수한 다음에 이것을 정리하게 되면 석학(碩學)이 되는 것이고, 나아가서 선지식(善知識)이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학자는 약간의 지식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작은 술병도 있을 거예요.”
말을 마친 자원이 우창을 보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 말했다.
“자원의 설명에 더 보탤 것도 없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적천수(滴天髓)를 통해서 배움을 넓혀가고 있는데 삼진은 어느 사이에 그 배움을 정리하고 줄여가는 단계에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현담이 말했다.
“저마다 공부하는 역량(力量)은 다르다네. 문기(文氣)가 강한 사람은 지식을 흡수하는 힘이 강하고, 선기(禪機)가 강한 사람은 지식을 요약해서 핵심을 찾아내는 힘이 강한 것이지. 신(辛)은 빨아들이는 역할을 한다면 경(庚)이 노력한 만큼 그 지식은 늘어나기 마련이니 이것이 바로 신금(辛金)이 존재하는 목적이라네.”
“과연 그렇겠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덜어내거나 보태는 것을 자유롭게 한다면 대기묘용(對機妙用)의 경지를 얻게 되지.”
“대기묘용은 무슨 뜻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