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賤

작성일
2007-09-1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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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滴天髓】

何知其人賤. 官星還不見.

하지기인천. 관성환불견.

'그 사람이 천한지를 어떻게 알까.

관성이 도리어 보이지 않느니라.'

【滴天髓徵義】

富貴之中. 未嘗無賤. 貧賤之中. 未嘗無貴. 賤之一字. 不易知也. 如身弱官旺. 不用印綬化之. 反以傷官强制. 如身弱印輕. 不以官星生印. 反以財星壞印. 如財重身輕. 不以比劫戎身. 反忌比劫奪財. 合此格者. 忘却聖賢明訓. 不思祖父積德. 以致災生不測. 殃及子孫. 如身弱印輕. 官旺無財. 或身旺官弱. 財星不現. 合此格者. 處貧困不改其節. 遇富貴不易其志. 非理不行. 非義不取. 故知貪富貴而戀金谷者. 竟遭一時之顯戮. 樂單瓢而甘磯縕者. 終受千載之令名. 是以有三等官星不見之理. 如官輕印重而身旺. 或官重印輕而身弱. 或官印兩平, 而日主休囚者. 此上等官星不見也. 如官輕劫重無財. 或官煞重無印. 或財輕劫重官伏者. 此中等官星不見也. 如官旺喜印. 財星壞印. 或官殺重無印. 食傷强制. 或官多忌財. 財星得局. 或喜官星, 而官星合他神化傷者. 或忌官星, 他神合官星又化官者. 此下等官星不見也. 細究之, 不但貴賤分明. 而賢不肖亦了然矣.

부귀지중. 미상무천. 빈천지중. 미상무귀. 천지일자. 불역지야. 여신약관왕. 불용인수화지. 반이상관강제. 여신약인경. 불이관성생인. 반이재성괴인. 여재중신경. 불이비겁방신. 반기비겁탈재. 합차격자. 망각성현명훈. 불사조부적덕. 이치재생불측. 앙급자손. 여신약인경. 관왕무재. 혹신왕관약. 재성불현. 합차격자. 처빈곤불개기절. 우부귀불역기지. 비리불행. 비의불취. 고지탐부귀이연금곡자. 경조일시지현육. 낙단표이감폐온자. 종수천재지령명. 시이유삼등관성불견지리. 여관경인중이신왕. 혹관중인경이신약. 혹관인양평, 이일주휴수자. 차상등관성불견야. 여관경겁중무재. 혹관살중무인. 혹재경겁중관복자. 차중등관성불견야. 여관왕희인. 재성괴인. 혹관살중무인. 식상강제. 혹관다기재. 재성득국. 혹희관성, 이관성합타신화상자. 혹기관성, 타신합관성우화관자. 차하등관성불견야. 세구지, 부단귀천분명. 이현불초역요연의.

"부귀한 가운데에도 천하지 않음이 없다고 못할 것이고, 빈천한 가운데에서도 (또한) 귀함이 없다고 못할 것이니, 천이라는 한 글자는 알기가 쉽지 않다. 만약 신약하고 관성이 왕한데 인성의 화함을 용신으로 하지 못하고 도리어 상관으로 강제로 제어하거나, 신약하고 인성도 약한데 관성이 인성을 생조하지 못하고 도리어 재성이 인성을 극하거나, (혹은) 재성이 많고 신약한데 비겁으로 일주를 돕지 못하고 도리어 비겁이 재성을 겁탈하는 것을 꺼린다거나 하는 격들을 가진 자는 성현의 밟은 가르침을 망각하고 조상이나 부모의 덕을 쌓음도 생각하지 않고, 그래서 재앙이 생기는 것을 헤아릴 방법이 없으니 그 재앙은 (다시) 아들이나 손자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만약 신약하고 인성도 약한데 관성이 왕하고 재성이 없거나, 혹은 신왕하고 관이 약한데 재성이 나타나지 않는 사주의 구조라고 한다면 (비록) 가난한 지경에 처해서도 그 절개를 고치지 않을 것이고, 부귀함을 만나더라도 그 지조를 바꾸지 않을 것이니, 이치가 아니면 행하지를 않고 옳은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할 것은 부귀를 탐하고 황금의 골짜기를 그리워하는 자는 반드시 한 순간에 죽음의 나락으로 나뒹굴게 될 것이고, 하나의 표주박을 즐겁게 생각하고 헤어진 옷 한 벌을 달게 여기는 자는 반드시 천년의 명성을 남길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세 등급의 관성이 보이지 않는 이치가 되는 것이다.

만약 관성이 약하고 인성이 중한데 신왕하거나, 혹은 관성이 중하고 인성이 약한데 일간도 신약하거나, 혹은 관성과 인성이 균형을 이루고 일주는 휴수된 경우에는 이를 일러서 상등의 관성이 보이지 않는 자라고 한다.

만약 관성이 약하고 비겁은 중한데 재성이 없거나, 혹은 관살이 중하고 인성이 없거나, 혹은 재성이 약하고 비겁이 중하며 관성은 숨어 있는 상태라면 이러한 경우는 중등의 관성이 보이지 않는 자에 해당한다.

만약 관이 왕해서 인성을 필요로 하는데 재성이 인성을 깨거나, 혹은 관살이 중한데 인성이 없어서 (부득이) 식상으로 강제로 제하거나, 혹은 관이 많아서 재성을 꺼리는데 재성이 국을 이루거나, 혹은 관성을 기뻐하는데 관성이 다른 글자와 합이 되어서 상관으로 화하거나, 혹은 관성을 꺼리는데 타른 글자가 관성과 합해서 관성으로 화한다면 이러한 사주는 하등의 관성이 보이지 않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잘 연구한다면 다만 귀하고 천함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어질고 어리석음도 또한 정확하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강의】

천함에도 등급이 있다는 설명을 보면서 세상 인심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좋은 가르침이 적힌 글은 사람의 경험치를 한 단계 높이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과연 좋은 책은 따로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는 철초님 나름대로의 상당히 의미심장한 생각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 느껴지는데, 적천수원문에서는 그냥 관성의 동태를 봐서 천함을 살핀다고만 했는데, 철초님은 이것을 보다 의미 심장하게 확대해서 삼등급으로 구분을 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참 감탄을 하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낭월은 이렇게까지 관찰을 할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서 이렇게 강의를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선현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벗님의 시각도 이러한 대목을 접하면서 상당히 좋아지리라고 생각이 된다.

특히 첫 머리에 말씀하신대로 '부귀한 가운데에도 천함이 없지 않고, 천한 가운데에도 귀함이 없지 않으니...' 라는 말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삶을 체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쉽사리 표현을 할 수가 있는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철초님의 주장은 상당히 입체적이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평면적으로 서술을 해 놓은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 속에서 뼈저리게 경험을 하고 서럽게 느껴보고 그리고 다시 정리를 한 다음에 말씀을 하신 것으로 이해가 되는 까닭이다. 그러한 내용을 접하면서 후학의 생각은 자연히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주를 살펴보고나서 다시 낭월의 어줍잖은 소견이나마 몇 마디 첨가하도록 할 생각이다. 사주를 살펴보도록 한다.

甲 丁 壬 丁

辰 亥 子 丑

甲乙丙丁戊己庚辛

辰巳午未申酉戌亥

丁火生於仲冬. 干透壬水. 支全亥子丑北方. 官星旺極. 辰乃柚土. 不能制水. 反能晦火. 日主虛弱. 甲木凋枯. 自顧不暇. 且柚木不能生無焰之火. 謂淸枯之象. 官星反不眞也. 喜其無金. 氣勢純淸. 其爲人學問眞醇. 處世無苟. 訓蒙度日. 苦守淸貧. 上等官星不見也.

정화생어중동. 간투임수. 지전해자축북방. 관성왕극. 진내습토. 불능제수. 반능회화. 일주허약. 갑목조고. 자고불가. 차습목불능생무염지화. 위청고지상. 관성반부진야. 희기무금. 기세순청. 기위인학문진순. 처세무구. 훈몽도일. 고수청빈. 상등관성불견야.

"정화가 子月에 나서 천간에 임수가 투출되고 地支에는 해자축으로 북방을 이뤘으니 관성이 극히 왕하다. 辰土는 습토이니 물을 제어하기는 불가능하고 도리어 불만 어둡게 하는구나. 일주가 극히 허약하나 甲木은 시들어서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다. 또 습목이 불꽃을 일으키기도 불가능하니 그래서 '맑기는 하지만 메마른 형상' 이라고 말한다. 관성이 도리어 부진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 금이 없어서 기세가 순청함은 반갑다. 그 사람의 학문이 진국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구차하게 살지 않았고 오히려 글방에서 훈장으로 세월을 보냈으며 괴롭지만 청빈함을 지켰으니 상등의 관성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강의】

사람의 설명을 보면서 백결선생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분도 이 정도의 청빈한 사주였던가 보다. 그러고 보니 殺重用印格의 구조라고 한다면 상등의 관불견이라고 할만 하다고 하겠는데, 비록 힘은 들지만 관살의 힘으로 인해서 남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고 인성의 작용을 살려서 교육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세월을 보내게 되니 과연 품격이 상등이라고 하겠다. 그러다가 운이 도래하면 문득 발탁이 되어서 귀한 벼슬도 하겠는데, 이 사주의 주인공은 중 후반에 비겁의 운이 있었으면서도 발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사주에 관살이 많아서 火는 별로 힘을 받지 못해서 비겁의 운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인품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해야 하겠다. 좋은 자료라고 생각이 된다.

壬 丙 庚 丙

辰 午 寅 辰

戊丁丙乙甲癸壬辛

戌酉申未午巳辰卯

此造財絶無根. 官又無氣. 兼之運走東南之地. 幼年喪父. 依母轉嫁他姓. 數年母死. 牧牛度日. 少長則苦力傭工. 後雙目失明. 不能傭作. 求乞度日.

차조재절무근. 관우무기. 겸지운주동남지지. 유년상부. 의모전가타성. 수년모사. 목우도일. 소장즉고력용공. 후쌍목실명. 불능용작. 구걸도일.

"이 사주는 재는 절지에 있어서 뿌리가 없고, 관성도 또 무력한데 겸해서 운은 東南으로 흐르니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를 의지해서 다른 아버지를 섬겼는데, 몇 년 후에는 그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소를 돌보면서 세월을 보내다가 조금 자라서는 노동자로써 일을 하다가 후에 두 눈을 실명하고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구걸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강의】

이 사주는 인겁이 왕한 상태에서 時干의 壬水 편관을 용신으로 삼는 구조이다. 불행히도 운이 남방으로 흐르게 되어서 무력하다고 하겠지만 사주의 구조로 봐서는 그렇게 천하다고만 할 것은 아닌 것이 아무래도 부모의 인연이 없음으로 해서 자신의 운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의 사주보다는 아버지를 잘못 만난 것이 유감이고 어머니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유감이며 다시 눈이 실명된 것이 유감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천한 삶을 살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으면 멀쩡한 사람이 신체를 사고로 당하고 나서는 그대로 사회적인 지위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볼 수가 있겠고, 이렇게 신체적인 결함이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면 운이 좋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러한 것도 다 팔자가 아니겠느냐고 할 수는 있겠지만 글쎄다..... 아마도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닌 것으로 해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저능아나 정신 장애자와 마찬가지로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경우에도 역시 운의 대입이 불가능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사주는 편관격으로 타고났으면서도 자신의 마음대로 추진이 되지를 못하고 주변의 여건에 의해서 삶을 꾸려간 것이 여간 딱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신은 아무리 잘 살고 싶어도 여건이 돕지 않으면 도리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사주이다.

癸 辛 甲 丁

巳 亥 辰 卯

丙丁戊己庚辛壬癸

申酉戌亥子丑寅卯

此春暮逢火. 理宜用印化煞. 財星壞印. 癸水剋丁. 亥水?巳. 似乎制煞有情. 不知春水休囚. 木火?旺. 不但不能剋火. 反去生木洩金. 財官本可榮身. 而日主不能勝任. 雖心志必欲求之. 亦何益哉. 出身本屬微賤. 初習梨園. 後因失音隨宦. 人極伶?. 且極會趨逢. 隨仕數年. 發財背主. 竟捐納從九品出仕. 作威作福. 無所不爲. 後因犯事革職. 依然落魄.

차춘모봉화. 이의용인화살. 재성괴인. 계수극정. 해수충사. 사호제살유정. 부지춘수휴수. 목화병왕. 부단불능극화. 반거생목설금. 재관본가영신. 이일주불능승임. 수심지필욕구지. 역하익재. 출신본속미천. 초습리원. 후인실음수환. 인극령리. 차극회추봉. 수사수년. 발재배주. 경연납종구품출사. 작위작복. 무소불위. 후인범사혁직. 의연낙백.

"이 경우에는 늦봄의 불을 만났는데, 이치적으로는 인성을 용해서 살을 화한다고 하겠는데, 재성이 인성을 깨고 癸水는 丁火를 극하며 亥水는 巳火를 충하니 살을 제하여 유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봄의 물은 무력하고 木火는 모두 왕성함을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다만 火를 극하기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목을 생조하고 금을 극하기조차 하니 재관은 본래 몸을 영예롭게 하는 성분이건만 일주가 감당을 하기가 어려우니 비록 마음으로는 구하고자 하지만 또한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출신은 본래 미천했는데, 처음에는 과수원을 관리하는 일을 배웠다가 후에는 벙어리가 되어서 내시를 따라갔다. 사람이 극히 영리하고 또 기회를 만나면 잘 따랐으니 몇 년간 벼슬을 하다가는 돈을 벌자 주인을 배신하고 마침내는 돈을 내고 9품의 벼슬을 시작했는데, 하는 일이 자못 위엄스럽게 폼을 잡고 스스로 돈이 되는 일을 골라서 하였으며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권력을 휘둘렀다. 후에 일을 도모하여 지위를 바꿨다가 그대로 혼백이 떨어지게 되었다."

【강의】

설명을 보면서 참으로 자세히도 관찰을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철초님의 생각도 함께 엿보인다. 그리고 상당히 경멸하는 마음도 슬쩍 보이는데, 여하튼 그야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이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사람으로써야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당시의 세상으로써는 천하게 태어났으니 뭔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벼슬도 하고 지위도 누리다가 죽었으니 구태여 잘못 살았다고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 그렇게라도 마음껏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면 별로 후회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물론 그의 행동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적으로는 이해를 할만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 여하튼 명리학은 그렇게 인간 개인을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봤을 적에 이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그대로 수용을 해야 하겠다.


【賤에 대한 추가의견】

부귀빈천에 대해서 짝을 지어보면 富-貧, 貴-賤으로 연결이 되겠다. 그러니까 부귀는 좋은 면만 생각을 해본 것이고 빈천은 나쁜 면만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는데, 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는 의미에서 다시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1) 부자와 가난은 物質的인 면의 陰陽이다.

물질적인 면의 陽에는 富가 있고, 물질적인 면의 陰에는 貧이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사람은 대개 양을 좋아하고 음은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고 여기에 대해서는 낭월도 예외일 수가 없다고 해야 하겠다. 여하튼 그렇게도 징글징글하게 가난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보니까 불편한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래서 실제로 가난은 싫은 부분이다. 다만 비록 가난할 망정 천하지는 말자는 의미로 생각을 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는데 그 천하다고 하는 것도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본인이 아니고서는 뭐라고 말을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냥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을 한다면 과연 벗님의 선택은 어떻게 되실지?

아마도 일단은 부자 쪽으로 줄을 서고 싶으시리라고 본다. 그런데 이게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어쩌면 참으로 오묘한 질서가 있어서인지 실제로 가난함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다고 해야 하겠다. 벗님이 부자를 원한다고 생각을 하시거나 혹은 가난한 사람이 좋겠다고 생각을 하시거나 상관이 없이 가난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란다.

※ 가난하고 싶어하는 사람

예전에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고, 오로지 음식을 주면 받아먹을 찌그러진 냄비 하나 있는 것이 전부라고 해야 할 모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없는 자의 자유로움을 누리면서 마냥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불우이웃돕기에서 기부금을 내라고 하지도 않았고, 끼니때가 되어서 밥을 얻으러 가면 별로 괄시를 하지 않고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그 날도 밥을 빌기 위해서 어느 집 앞을 다가가는데 이미 먼저 온 방문자가 있었다. 그는 찌그러진 냄비도 없었고 깨진 쪽박도 없었다. 그냥 맨 손으로 밥을 받아서는 쪼그리고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 먹고 난 다음에 옆의 수돗물을 틀어서 역시 맨 손으로 물을 받아서 먹고는 손을 씻고는 여유롭게 자신을 한번 쳐다보고는 휘적휘적 길을 가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서 그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을 했다. 손에 들린 찌그러진 냄비는 자신의 무소유에 대한 자신감에 오점을 남기는 선명한 소유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 즉시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렸다. 그리고 그도 빈손으로 밥을 빌러 다녔다. 그래서 더욱 자유로웠고 편안했으며 여유로웠다. 실로 냄비 하나를 관리하는 것에도 얼마나 많은 신경이 쓰였던가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그대로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없고 보니까 냄비를 깨끗하게 닦느라고 공을 들여야 했고, 다음의 끼니를 위해서 늘 몸의 어딘가에 달아 둬야 했었고, 그러자니까 움직일 때마다 냄비는 소리를 냈으며 늘 그 존재를 확인해야 마음이 편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오로지 그 냄비로 인한 마음의 집착이 이렇게도 강했었다는 사실에 새삼 스스로 놀라면서 그에 비해서 지금의 상황은 참으로 진정한 자유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만끽하였던 것이다.

이상이다. 내용을 보시고는 '그야 도를 닦는 사람이니까 그렇지...'라고 하는 생각이 드셨다면 또한 잘못된 편견이다. 도를 닦거나 장사를 하거나 그 속에 움직이는 오욕과 칠정은 모두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 점에 대해서는 벗님 자신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 잘 아실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누구나 편안하고 싶은 욕망과 잘 먹고 싶은 욕망과 뻐기고 싶은 욕망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인 이상 공통적인 성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점을 거부하게 된다면 이미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잘못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되리라고 본다. 그러니까 수행을 하는 사람도 그 속에는 그러한 욕망이 있지만 스스로 다스린다고 하는 점에서 차이일 뿐, 그 본질은 같다고 하는 점을 놓치시면 곤란하다. 이러한 것을 간과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느냐하면 '스님이니까..' 라는 선입견이 생긴다. 그리고 '도를 닦는 사람이니까,'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등등을 하다 보면 그 겉의 모습만 보다가는 자신이 도리어 자신에게 속게 될 수도 있는 것이 무섭다고 본다. 그래서 교주에게 신이라고 하면서 평생의 재물을 갖다 바치는 사람도 나타난다. 모두 이러한 착각 속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으면 그러한 일이 벗님에게도 당도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부처는 말했다.

"여래가 간 길도 따라가지 말라"

여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부처라고 해서 나를 흉내내지말고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겠는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니 따라가면서도 과연 잘 따라가는 것인지 못따라가는 것인지 아리송송~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따라가다가는 마침내 자신도 망치고 가족도 망치고 이웃까지도 망치게 되는 일도 당하고 보면 참 어려운 일인 것은 틀림이 없는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버리는 방향으로 따라가는 사람도 역시 그 이면에서는 오욕칠정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헤아리시고 바라다 봐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여하튼 모두를 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누구나 주워 모으기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도 또한 편견이라고 하는 생각을 바로 하게 된다. 그리고 보다 철이 많이 든 사람(?)일수록 많이 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예를 든다면 일생을 노력해서 재물을 모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재단에다가 기증을 한다고 선언을 하는 경우에도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버리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어제 신문을 보니 어떤 기업의 총 회장이 자리를 물러난다는 말이 보였다. 역시 때가 되면 버리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낭월만의 생각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실컷 누리다가 마지막에 버리는 것은 그 가치는 좀 적어지지 않을까 싶다. 기왕이면 더 가지고 놀 수도 있는 것을 버릴 적에 그 가치는 극대화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봤다.

버리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니까 가장 큰 것을 버린 사람은 왕의 길을 버린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순치황제나 싯다르타를 생각할 수가 있겠다. 순치왕은 왕의 노릇을 17년인가 하다가 버렸으니 그래도 그 가치는 좀 덜하다고 하겠는데, 싯달타는 한번 해보지도 않고서 포기를 했으니 더욱 위대하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을까? 물론 낭월의 교주라고 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다. 그냥 객관적으로 봐서 그렇지 않겠느냐는 것인데, 실은 권력을 얻고 나면 그 집착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높은 자리에서 버리는 것이 더 위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정치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하는 점인데, 그렇지만 실제로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그렇게 얻기 어려운 것을 버리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도 적지 않음을 생각해 주시라는 말씀이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해 본다면, 결국 물질적으로 많고 적음의 차이로써 貧富는 결정이 난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다. 그 마음에 대해서는 여기의 기준으로 저울질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점을 이해하시면 되겠고, 그 마음이야 아무렇게 생겼거나 말거나 가난한 사람과 부자는 그렇게 표면적인 상황을 보고서 구분할 수 있다고 하는 점만 정확히 해두면 충분하겠다. 벗님이 재수(財數)가 좋아서 부자가 되시던지 또는 재수가 없어서 가난하게 살으시던지 그 점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하겠고, 실로 재물이 있으면서 버리는 통쾌함도 맛보시면 좋을 것이지만 실은 재물이 없으면서도 재물에 연연하지 않는 가난한 삶도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능하다는 점을 챙겨놓고서 이 대목을 줄인다. 물질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의미라고 하는 점만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2) 貴人과 賤人은 精神的인 면의 陰陽이다.

이제는 貴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지 않으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귀함에 재물을 포함시켜야 하느냐 마느냐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더욱 구분의 기준이 애매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우선 이 점을 고려한다면 일단 貴를 논함에는 재물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옳겠다.

그래서 귀천은 정신적인 문제이므로 물질적인 것과는 상관이 없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또한 팔자와는 어떤 연관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봐야 하겠는데, 기본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당연히 팔자와도 상당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이미 앞에서 귀하게 살아간 사람의 사주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충분히 파악이 되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팔자로써 귀천을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과연 귀천을 팔자로 읽었다면 그 암시를 고칠 수는 없겠느냐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팔자에서 귀하겠다는 암시가 있는 사람이야 또 그렇다고 치더라도 팔자에서 천하다는 암시가 있는 사주의 경우에는 그렇다면 귀하게 마음을 쓴다면 귀하게 될 수도 있겠느냐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데, 실제로 생각을 해보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부분임을 이제서야 말씀드리게 된다. 과연 이 점은 가능한 것일까?

비록 팔자는 천하게 타고났더라도 그 마음에서 청하게 살아보려고 한다면 아마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러한 것은 후천적인 변화라고 이해를 해본다. 그래서 자신의 팔자에서 가난하게 타고난 것은 고치기가 어렵겠지만 천하게 타고난 것은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이유는 순전히 내면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빈부는 내가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 것이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으로 가능한 것은 귀하게 될 수도 있고 천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재물이 없으면서 천하게 되면 괄시를 받게 될 것이고, 재물이 있으면서 천하게 되는 사람은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정리를 해보자.

富하면서 貴한 사람-존경과 선망의 대상

富하면서 賤한 사람-손가락질을 받는 대상

貧하면서 貴한 사람-청렴함을 존경하는 대상

貧하면서 賤한 사람-무시를 당하는 대상

정신적으로 귀천을 누리게 되는 것을 살펴보니까 과연 일리가 있는 분석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천한 항목에 해당하는 상담의 자료는 싣지 않을 요량이다. 실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봐서이다. 남의 사주를 보면서도 이 사주가 천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생각에서이고, 실로 만약에 그 사람이 자신의 팔자가 천하다는 것을 알고 수신제가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에게 천하다고 하는 해석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말을 할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담을 하면서 비중을 두고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사주가 귀하게 생겼는지 천하게 생겼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밖으로 추진하는 계획들이 잘 진행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을 하는 것이 명리학의 활용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귀천을 사주로 읽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된다.


【富貴貧賤에 대한 마무리】

이렇게 해서 평소에 부귀빈천에 대한 부연 설명은 여기에서 매듭을 지어야 하겠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그 의미가 앞의 부분과 서로 중복이 되기도 해서 별도로 긴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간단하게 언급을 하도록 할 요량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단순하게 사주로 알 수가 있느냐는 정도의 범위를 넘어서 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설명을 드려 봤지만 또한 낭월도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의 생각이므로 이점도 참고하셔서 '낭월의 생각' 이라고 하는 정도로 수용을 해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