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눈을 크게 뜨고서...
자 벗님이시여, 이제 눈을 크게 뜨고서 자연을 다시 바라다보자. 다들 훤출한 출격대장부들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부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신 양 싶다. 이렇게 잘난 모습들을 가지고서 눈을 크게 뜨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부디 자신의 울타리만을 바라다보지 말고, 더없이 넓은 自然의 眞理를 바라다보도록 하자. 陰陽 속에 녹아있는 대자연의 진리를 음미해보자. 오행 속에 스며드는 형형색색의 화엄삼매(華嚴三昧)에 잠겨보자. 그리고 다시 十干과 十二支에서 연출되는 멋진 연극이 펼쳐지는 무대로 시선을 돌려서 함께 한 덩어리가 되어 덩실덩실 춤이라도 한바탕 춰보자.
이제 이쯤 왔으니까 자신의 사주팔자에서 무엇이 잘났고 무엇이 못났는지는 충분히 파악이 되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이제 무엇을 할까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 그냥 자유롭게 두둥실 춤이라도 한바탕 추고 싶은 생각뿐이다. 아마도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모두 파악을 해버리고 난 벗님의 마음도 낭월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조금도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함께 어우러져서 한바탕 놀아보자.
잘난 사주는 잘난 대로 자신이 할 일을 찾을 것이다. 못난 사주는 못난 대로 또한 자신의 일을 찾아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둘 중에서 과연 누가 더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그저 그렇게 생겨서 그렇게 놀다가 그렇게 떠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인생무대에 등장을 하는 순간에 받아 든 대본대로 열심히 연극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게 멋진 연극을 각기 주어진 각본대로 사바세계를 무대로 한바탕 멋지게 펼쳐보게 되는 것이 인생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놀다가 어떻게 갈 것이냐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자유롭게 살 수만 있다면 사주야 깨어졌으면 어떻고 부서졌으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 앞선다.
사주를 몰랐을 적에는 그러게도 마음이 답답했는데, 막상 사주를 알고 나니까 또한 그렇게 덤덤할 수가 없다. 답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속이 시원하지도 않다. 이 상태의 마음은 처음에 사주를 전혀 몰랐을 경우와 비교해서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것인지를 모르겠다. 마치 맹물에 맹물을 탄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는지 낭월이의 글재주로는 더 이상 설명을 드리기가 어렵다는 한계를 느끼겠다...
문득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지장간들이 보인다. 저마다 자신의 비밀을 간직한 채로 그렇게 낭월이를 비웃으면서 자신들의 길을 달려가는 것만 같다. 그 속을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건만 겉모습만 얼핏 보여주고서는 자신들의 길만 가버린다. 과연 낭월이가 둔해서 그 순간에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천지자연의 이치가 누설되는 것이 두려워서 짐짓 감춰 버렸는지.... 그도 아니면 원래 그 이상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렇게 낭월이가 본대로 느낀 대로의 자연의 모습은 모조리 이 몇 권의 책에다가 모두 주워담았다. 그 중에서 다시 찌꺼기를 걸러내는 것은 이제 후학의 날카로운 선기(禪機)를 기다려야 할까보다. 다만 두려운 것은 혹시라도 낭월이의 오죽잖은 안목으로 인해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맺은 벗님들조차도 그만 현란한 춤사위에 눈앞이 어지러워져서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서 작은 울타리 속으로 갇혀버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적지 않다.
그래서 부디 간청을 드리노니, 이제 낭월이의 글장난(?)에 얽매여서 진리를 놓치지 마시고 눈을 크게 떠 주시기 바란다. 그래서 참으로 대자연의 이치를 발견한 후에 비로소 낭월이를 불쌍한 눈빛으로 봐주신다면 그래도 다행으로 여기겠다. 오히려 낭월이의 말장난에 걸려서 우왕좌왕하시는 모습은 차마 봐 드릴 수가 없겠다. 그래서 눈을 크게 떠 주십사 하고 이 자리에서 간청을 드리는 것이다.
이제 낭월이가 길을 물을 차례이다. 벗님은 낭월이에게 길을 묻지 마시기 바란다. 사실 낭월이는 길을 모른다. 그냥 앉은자리에서 봄이가고 여름이 오는 소식을 약간 느꼈을 뿐이다. 이렇게 앉아있는 사람에게 ‘江南의 소식은 어떻더냐?’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부디 분발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서 다시 낭월이에게 돌아와서는 강남의 소식을 일러주시기만을 바란다. 물론 강남의 소식을 알고 나니까 낭월이가 지껄인 헛소리들도 약간은 참고가 되더라는 말씀만 약간 비춰 주신다면 더없이 고맙겠다.
언제부턴가 길을 찾아가는 안내서를 묵묵히 보내주시는 벗님이 계신다. 그런데 그 분의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다만 영문으로 K.D.U. 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주소는 항상 출판사의 주소로 되어있다. 아마도 생각컨데, 이 분은 혹시라도 배달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출판사로라도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보내는 이의 주소가 없으면 중간에서 배달부가 짤라 먹을는지도 몰라서 그렇게 적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여하튼 벌써 세 번째인가의 소포를 보내 줬다. 물론 그 속에는 항상 길을 찾아가는 안내서가 들어있었다.
처음에는 이 영문자를 의지해서 사람을 떠올려 보려고 애를 썼다. 첫 글자의 K는 아마도 김씨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가장 확률이 높은 추리라고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보내어진 책을 이리저리 뒤적여봐도 힌트도 없다. 그래서 나중에는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포기를 해버렸다. 다만 그래도 낭월이가 분별의 구렁텅이에서 언젠가는 헤어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묵묵히 바라다보고 있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이렇게 지켜 봐주는 벗님이 계신 동안은 낭월이도 길을 잃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항상 고마워하는 마음이 앞선다.
오늘도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제 나름대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들려 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들, 적어도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물어서 더욱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가능성에 대해서 약간의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시간에도 항상 어디에선가 이렇게 낭월이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선지식이 있음을 느낀다.
그래선지 언제라도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길을 몰라서 헤메이면서 답답하기는 할지언정 외로워보지는 않았다. 언제나 허공에서 땅위에서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항상 들려주는 지혜의 음성들을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선지식을 만나면 몽둥이 서른 대를 맞을지언정 그 몽둥이 속에는 사랑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기다려진다. 언제나 그 몽둥이를 들고 선지식이 나타나 주실까...
잠깐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언젠가 멋진 신사 분이 가족을 거느리고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낭월이를 보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신기(神氣)가 있는 사람인가 보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이 전생에 낭월이의 스승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뭔가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순간 라즈니쉬 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대는 스승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 그대의 어두운 눈으로는 스승은 보이지 않는다. 스승이 그대를 찾도록 만들어라. 반드시 스승은 제자를 찾아오게 된다. 조용히 기다려라.”
이런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낭월이가 왕보보사주학을 쓰게 된 것이 어쩌면 스승을 불러들이기 위한 도구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대단히 조심스럽게 그 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는 아득한 옛날의 또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흥미가 동했다.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한 다음에는 더 이상 생각이 있으면 찾아오라면서 훌훌 떠나버렸다.
그래서 다음날 즉시로 찾아갔다. 그래서 반겨 맞아준 전생의 사부님과 함께 참치횟집으로 향했고, 그 자리에서 진지한 역사의 탐험이 전개되었다. 물론 그 분도 단추 구멍만큼의 어느 세계를 들여다봤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낭월이의 전생과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장난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당시에 절에 있던 다른 사람도 묘한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후에 전해줬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볼 적에 그 분과의 인연은 어느 부분에서 얽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결정적으로 따를 수가 없었던 것은 연지님이 악마의 하수인이라고 하는 말이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서였다. ‘함께 수행을 하는 도반(道伴)’이라고 해줬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선악으로 구분 지어버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서히 생각이 달라졌다. ‘이것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분의 이야기들이 서서히 귓가로 밀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연지님에게는 그 이야기를 전부 들려 줄 수가 없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는 악마의 하수인으로써 나의 공부를 망치려고 이번 생에 따라 붙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로부터 일년 후에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있기는 했지만,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갖고 계신 분이었다. 연지는 낭월이와 일생을 함께 하는 벗이다. 설령 이 여인이 악마의 하수인이라고 하더라도 낭월이는 최선을 다해서 함께 살아 볼 작정이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이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저런 인연들이 얽혀서 돌아가는 것 같다. 때로는 분명하게, 때로는 흐릿하게 그렇게 뭔가의 흐름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진행은 계속 될 것이다. 적어도 인연을 모두 끊어버리기 전 까지는 말이다.
또한 모두 고마운 인연들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또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것인가에 대해서도 흥미롭다. 발바닥에 부적을 붙이고 날아다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버린지 오래가 되었다. 그냥 그렇게 어우렁더우렁 어우러져서 살고있는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서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인연은 억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여하튼 오늘도 눈을 크게 뜨고서 누가 앞을 스쳐 지나가는가를 살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