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측이 빗나가는 이유- (1) 사주가 틀렸을 경우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 하겠다. 자평명리학은 그 바탕의 자료로 삼는 것은 본인이 출생한 年月日時가 전부이다.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대입을 시키지 않는다. 물론 부모의 직업이나 이름이나 혈통 등에 대해서도 전혀 대입을 해야 할 근거가 없다. 나름대로 경험상 응용을 하는 선생님들은 계시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활용일 뿐이지 명리학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료는 출생한 연월일시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만약 이 자료가 틀렸다고 생각을 해보자. 그 결과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사실 적천수징의에서도 1시간의 차이로 인해서 관찰사(도지사급)와 거렁뱅이로 갈라진 자료를 싣고 있다. 그렇다면 불과 한시간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그 오차로 인한 판단의 결과는 전혀 예측을 불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사주가 틀리게 되는 경우는 어떻게 나눌 수가 있겠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1) 소흘함으로 인한 과실
대충 따져서 시간을 말해주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보다 상세한 자료를 요구할 수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서 낭월이의 부친께서 아이들을 낳으면 시간을 잡는데, 당시에 형편상 시계도 하나 없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자연적인 정황(달, 해, 潮水 등)을 참고해서 정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황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으로 해석을 하신 것이었다. 그 주관적인 해석을 하게 만드는데에는 자신의 오행에 대한 지식도 포함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에 낭월이는 출생 시간이 申時로 되어 있었다. 부친께서 그렇게 말씀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우는 戌時, 막내는 子時로 정해졌다. 그래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아마도 낭월이가 명리학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평생을 그렇게 신시로 보았을 것이고, 나중에 죽은 다음에도 후세의 명리연구가들은 낭월이의 사주를 그렇게 신시로 놓고서 왈가왈부 하게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신시가 사주분석에서 문제로 걸려들었다. 심리적인 영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뭔가 빗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양력으로 4월 16일날 저녁에 고향에 찾아갔다. 형제들은 많지만 혼자만 고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난 당시의 상황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출생한 곳의 자연적인 상황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저녁때라고 하면 서쪽에 큰 산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 그래서 未時가 되자 어머님께 주의를 환기시켰다.
“지금부터 제가 태어난 정확한 상황에 대해서 확인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상황을 생각이 나시는대로 그대로의 실제상황을 이야기 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노모님이야 아들이 공부를 위해서 자신의 사주를 알아보겠다고 일부러 날을 정해서 와가지고 물어보는데, 함부로 이야기를 하진 않으실 것이다. 이윽고 申時가 되었고, 또 두어 시간이 지났다. 30분 간격으로 질문을 했는데, 어머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신시가 아니었다. 酉時로 접어 들었다. 오후 6시 경이 되었다. 그제서야 어머니께서는 이 정도의 시간일 거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여자의 입장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도 많겠지만, 처음으로 출산을 한 경험에 대해서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지 상당히 정확하게 당시의 상황을 기억해 내셨다. 그제서야 낭월이의 출생시간은 신시가 아닌 유시라고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님께 어째서 신시라고 생각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여쭤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나름대로의 조작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陽時에 태어나마 父先亡이라고 안카나. 그래서 내가 먼저 갈라꼬 그래 정했던거 아이가...”
그러니까 자식의 출생시간을 조작해서 자신이 아내보다 먼저 가야 한다는 염원이 자식들의 시간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의 아이들도 모두 그런 사연이 있어서 陽時로 잡았던 것이다. 어쨌든 자식들의 시간을 모두 양시로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혼자서 한동안 외롭게 시간을 보내신 후에 따라가셨다.
물론 출생시간이 음이든 양이든 자신의 사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자녀들이 출생한 시간의 음양이 서로 다른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버지가 다르거나 아니면 자식들의 시에 따라서 두 번 죽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야 설명이 되는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벗님의 주변에 형제들의 사주를 관찰해 보시기 바란다. 더러는 일치를 하기도 하겠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에는 서로 어긋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기에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음양오행의 미신이라고 봐야 하겠다.
그런데 보통 명리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일반인들은 그냥 대충 시간을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명리학자는 그것을 바탕으로 감정을 하게 된다. 낭월이 조차도 이러할진데, 과연 상담을 하러 와서 불러준 정확한 사주가 몇%나 될 것인지는 참으로 의심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놓고서 사주가 맞지 않는다고 학자를 비난한다면 이 학자는 과연 이 학문을 연구해서 밥을 먹고 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조차도 갈등을 해야 할 판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명리학의 이론을 제대로 대입을 시켜보지도 못하고, 비난부터 반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사주의 정확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학자의 고충은 참으로 많은 것이다.
더구나 섬머타임이나, 자연시간과 표준시간의 오차로 인한 문제까지 포함되어있는 상황에서의 정확한 시간을 가려낸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요인인 셈이다. 여하튼 이런 부류의 과실은 단지 약간의 상식이 개입된 소흘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특히 오전 9시 경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참고로 생각해 볼 적에, 실제로는 8시 반경이었거나 9시 40여분 경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따지기 좋으려고 9시로 정해버린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을 미세하게 질문해보면 어렵지않게 만날 수 있는 실제상황이다. 명리학자는 우선 이러한 점에 대해서 먼저 관찰을 해야 할 것이다.
2) 부득이한 분실
이것은 과실이 아니라 분실이다. 개인적인 상황은 다 각각이다. 그 중에서도 낳자마자 보자기에 쌓여서 남의집 대문간에 버려진 아기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정확한 출생시간에 대해서는 분실을 할 가능성이 대단히 많다고 하겠다. 또 처음에는 생모가 정확하게 출생사주를 적어뒀다고 하더라도 이러저리 전전하는 과정에서 서류기재상 별로 중요하게 의미부여가 되지못하는 출생시간은 소외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분실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고아들을 돌보는 단체는 주로 기독교 계통이 많은 것 같은데, 이들의 단체에서는 사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또 누락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런저런 원인을 생각해 본다면 사주의 올바른 연월일시를 얻을 수 있는 확율은 자꾸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료를 가지고서 상담을 해야하는 명리가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경우는 그래도 이해가 되지만, 어머니의 기억이 희미해져서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로는 생일까지도 왔다갔다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특히 열심히 키우느라고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다가 막상 며느리를 볼 때가 되어서 궁합에 대해 질문이라도 하려고 명리가를 찾아가면 정확한 시간을 요구받을 때 참으로 난감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수 있다. 역시 분실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분실의 정황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주를 정확하게 이야기 해주지 않음으로써 진단을 내릴적에 오차에 대한 두려움의 부담은 학자가 져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결국 방문자는 자신이 제공한 자료의 정확성 여부는 뒷전이고, 얼마나 정확하게 맞추느냐는 것에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무조건 시간이 정확하지 않은 사주는 보지 말자는 기준을 세워봐도 실제적으로 상담을 하겠다고 찾아오면 그냥 가라고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변명같지만 주어진 자료가 정확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오진(誤診)에 대해서는 명리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일반인들이 이해를 해주었으면 싶은 것은 희망사항이다.
3) 사주작성을 할 때에 발생하는 실수
이러한 경우에는 실수라고 해야 하겠지만, 그 원인은 고객의 책임이 아니라 학자의 책임이다. 만세력을 보고서 찾아내는 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온통 의지를 할 것이라고는 만세력 뿐인데, 그 만세력을 잘못 보고서 결과를 적었다면 이것은 순전히 잘못 적은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이다. 그래서 사주를 작성할 때에는 온통 신경을 집중해서 하지만, 사람이 사람인 바에야 간혹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은 실수임이 분명하지만 방문자가 생각할 때에는 실패라고 해야 하겠다. 완전히 남의 다리만 긁다가 돌아간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의를 하고 또 해야 할 점이 정확한 사주작성이라고 하겠다. 특히 사주를 적을 때에는 그런데로 잘 하는데, 가끔 운세를 적으면서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음을 낭월이도 경험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거꾸로 적어놓고 이야기를 해준 다음에 손님이 돌아간 후에 살펴보면 잘못 적혀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도 간혹 올바르게 명식작성을 하지 못하고 실수를 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실수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때로는 갑자년에 출생한 사람인데, 을축년의 사주를 적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간혹 발생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런 경험을 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인데, 중년의 부부가 상담을 하러 왔다고 한다. 그래서 사주공부를 해보셨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고는 만세력을 보고서 사주를 적었다. 그렇게 해놓고서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가 사주가 잘못 적힌 것 같으니까 다시 확인을 좀 해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이게 무슨소린가 싶어서 다시 확인을 해보니까 사주명식을 잘못 적어놓고 설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희안한 점은 부인의 사주도 또 잘못 적혀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생각했을적에 과연 낭월이의 공부에 대해서 얼마나 실망을 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일단 기가 꺽기는 것이다.
그래서 올바른 상담이 이뤄진 것 같지가 않았는데, 보내놓고 생각을 해보니까 이미 이 사람들은 상당한 공부가 되어있으면서 자신들의 공부를 숨기고 사주를 물어봤던 것이 들통이 나버린 셈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자. 틀리게 적힌 것에 대해서도 뭔가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즉 숨기고서 테스트를 해보려고 하니까 원국 자체가 잘못 적힌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변명이다. 처음에 물었을 때 나름대로 약간의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면 혹 사주가 올바르게 적히지 않았을까... 하는 자기합리화가 이뤄지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뭐라고 변명을 하더라도 사주를 잘못 적은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이렇게 부부의 사주를 모두 원국부터 틀리게 적은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런 생각을 해봤던 기억이난다.
여하튼 사주를 잘못 적을 가능성은 항상 있다. 이것은 순전히 명리가의 과실이기 때문에 어쨌든 이러한 실수는 전혀 없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욕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고 나면 사주를 봐줄 생각도 들지않는 기분을 벗님은 아실려나 모르겠다.
4) 만세력의 과실도 생각해보자
그렇다. 아무리 정신을 차려서 작성을 한다고 해도 만세력 자체에서 잘못 씌어진 데이터라고 한다면 이것은 또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보다 정확한 만세력이 없는가 하고서 찾기도 하지만, 그 많은 수치들을 계산하면서 한군데에도 잘못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면 그 책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항상 실수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세력을 몇가지 놓고서 참고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좋은 방법이 되겠는데, 그렇게 하자니까 또 아까운 시간이 흘러간다. 그에 대한 생각이 미치게 되면 그만 귀찮아지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사람의 사주에 대해서만 깊이 생각할 경우라면 또 이해가 되는데, 자신의 가족들을 모두 보겠다고 7~8명의 가족들을 불러대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작업이 얼마나 시간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경험해보신 벗님은 알고 계실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이 되는 만세력을 선택해서 보는 수밖에 없는데, 중요한 것은 100% 완벽한 만세력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여하튼 만세력의 과실로 인한 오진은 책임을 지기까지는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기계의 오동작으로 인해서 의료사고를 일으켰을 경우에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 환자의 보호자들은 의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납득을 하지 않을 것은 뻔하다. 그러나 기계의 오동작은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 첨단산업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비행기도 오동작을 하고, 컴퓨터도 또한 오동작을 하게 되는데, 하물며 의료기계인들 사람이 만든 것인데, 오동작을 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또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사람이다. 물론 만세력이 틀려서 실제상황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고소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명리가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서는, 내년에 사업을 하면 돈을 번다고 하는 말에 솔깃해서 무리하게 투자를 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당하게 되었다면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하더라도 도의적인 책임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만세력을 선택할 적에는 참으로 망설여지게 되는 것이고, 적어도 명리가의 책상에는 서너권 이상의 만세력이 놓여있는 까닭도 이 정도에서 납득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로써는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오차가 적은 만세력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하겠다.
이 정도의 문제를 생각해보게 된다. 명리가의 개인적인 학문 연구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이렇게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의해서만도 수두룩한 오진(誤診)을 할 가능성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다가 자신의 학문의 연륜을 추가한다면 그 결과는 예측을 할수 없을 만큼 불투명해진다. 주의를 하고 또 주의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이외에도 뭔가 틀릴 수 있는 변수가 있겠지만, 일단 사주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봤다. 다음으로는 본격적으로 연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진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