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子平命理의 限界

작성일
2007-09-1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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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제목이 여기에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하셨을런지도 모르겠다. 낭월이가 명리학에 대해서만 연구를 하다가 언젠가 벽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부딧히게 되었다. 그래서 아마도 자평명리학도 그냥 하나의 학문일 뿐이지 그 이상의 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회의심에 잠기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학문을 연구하다 보면 당연히 이러한 생각이 들게 될 것이고, 이것은 명리학을 연구하는 사람 뿐만이 아니라 기타의 모든 학문을 연구하는 분들도 또한 겪는 과정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하면서 여기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주학에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한계라고 하는 것이 과연 실제로 이 학문의 한계인지 아니면 낭월이 같은 둔재의 한계인지는 장담을 할 수가 없겠다. 여하튼 사주팔자의 원리로써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잘 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건만, 어쩐 일인지 잘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사주를 잘못 봤는가 싶어서 재차 검토를 해봤지만 자평명리학의 이론으로써는 도저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한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하겠다. 우선은 극우파(極右派)의 형태로써 사주옹호주의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던지 사주는 타당한 것이고, 용신운에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사주의 시간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강력하게 고집하는 경우 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이 연구하는 학문이 어떤 한계점을 드러내게 된다면 즐거워 할 학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낭월이도 이점에 있어서는 같은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평명리학에 대해서 불손한 생각이 있어서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자평명리학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명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책임에 대한 한계를 분명하게 해둠으로써 마음 편안하게 연구에 몰두를 할 수가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단 최선을 다해서 연구에 몰두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합리한 이론은 과감하게 제거를 해나가야 하는 것도 물론 학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온갖 이론을 대입시켜서 해석을 해봐도 도무지 까닭을 모르겠다는 사주가 나타난다면 이때에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역시 명리학도 별수 없는 속임수라고 하는 생각으로 책을 던져버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던지 내가 배운 이론 속으로 그 상황을 이끌고 들어가기 위해서 궁색하더라도 그냥 강제로 변명을 해야 할 것인가?

또는 원칙적인 이론으로 설명을 하기가 궁색해지면 좀 구차스럽기는 하지만, 온갖 신살들이라도 끌고 들어가서 여하튼 사주학이 대단한 학문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인가?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노라면 참으로 고민덩이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낭월이는 이러한 고민들을 모두 겪으면서 오늘까지 왔다고 말씀을 드릴수 있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하겠다는 묘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주학의 한계점에 대해서 인정을 하게 되니까 삽시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벗님도 나름대로 오행의 이치대로 설명을 했는데에도 뭔가 빗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낭월이와 똑같은 갈등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래야 학자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보지 않으신 벗님이라면 천부적으로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이거나 아니면 구체적으로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은 한국에서 初一流級의 학자님들도 자신이 연구하는 학문의 한계에 대해서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서 잠을 아끼면서 정진(精進)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이렇게 몰두를 하지 않으면 학문은 발전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보통의 감각은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자님들의 고민은 또한 색다르다. 이 문제점을 누구와 더불어 의견을 나누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칭 내노라 하는 일인자인데 감히 어느 누구에서 이 이치가 타당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 는 이야기를 쉽게 할 수가 있는는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頂上에서의 孤獨’ 이라고 하는 말도 있겠지만, 여하튼 마음놓고 내 학문의 결함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여건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낭월이라고 이렇게 책을 통해서나마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라도 자평명리학의 이면에서 설명이 되지않는 분야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앞으로 연구하는 학자님들이 뭔가 감을 잡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도 자신의 학문이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곳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과연 그 학문이 완벽해서인지 저자께서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고 싶어서 고의로 숨긴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 분은 완벽하게 통달을 하셔서 그야말로 명실공히 ‘일점(一占)의 의혹(疑惑)’이 없어서 그대로 써 놓으셨는지는 알수가 없다.

다만 이중에서 감추는 것으로 인해서 이야기를 못했다면(적어도 낭월이는 그렇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올바르게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 문제가 낭월이의 우둔함으로 인한 것이었다면 명확하게 밝혀 주시면 더욱 고마운 일이고 그렇게 해서 이 학문은 또 발전을 하게 될것이라고 믿는다. 우선 눈에 띄는 책을 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한 곳이 없기 때문에 후학들은 과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중도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것은 이 학문의 발전으로 볼 적에는 엄청난 손실이라고 생각이 된다.


낭월이가 느낄때에 분명히 어떤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을 할 만큼 해봤다. 그래서 지금부터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결론을 적어본다. 보다 깊은 연구를 거친 다음에 결론을 내려야 옳겠지만, 그동안이라도 눈밝은 선배님께서 이 글을 읽으시고서 따끔하게 일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자평명리학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다 보니까 그 결함까지도 사랑을 하게 되어서 당당하게 이러한 점에서 뭔가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나, 또는 적중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본 점을 말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