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징성(象徵性)

작성일
2007-09-1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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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의 실체는 깡철이라고 말을 하였는데, 상징하는 것으로는 꼬꼬닭이다. 이녀석이 어떻게 유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는 간단하게나마 왕초보사주학에서 생각을 해봤지만, 여기에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해볼 참이다. 다른 관점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른 새벽에 날이 밝아 오는 것을 알리는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닭(그 중에서도 장닭)은 새벽을 알리는 것으로 상징되어있다. 새벽을 알린다는 것을 확대해석하면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는 것도 포함이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유행되는 말 중에 하나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것인데, 닭이 새벽을 알리지 못하게 된다고 해서 날이 새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괜히 억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될것도 같다.

그 닭이 우는 시간은 바로 새벽이다. 새벽은 오행으로 따지면 木의 시간에 해당한다. 이러한 목의 시간을 깨어버리는 것은 금이라고 하는 생각을 했음직 한 선배님들이 닭이라고 하는 동물을 그 자리에 집어 넣었던 것이다. 닭의 외침은 그야말로 金剋木, 그 자체였다. 그렇게 두꺼운 어둠도 닭의 외침가 함께 엷어져 버리고, 마침내 해가 솟는다. 그러면 새벽(寅卯時)의 목기운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바로 금기에 해당하는 닭의 울음소리이다. 그렇다면 금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금인 酉金의 상징으로써는 바로 닭을 연결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을법 하지 않은가? 여기에서 우리는 독수리나 매가 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연약한 닭이 차지하게 되었던 이유를 약간은 알것도 같다.




그런데 요즘의 신세대들은 아마도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오히려 드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강사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딴전을 피우거나 잡담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젊은 세대 용으로도 뭔가 한가지 정도는 생각을 해봐야 하겠다는 망상이 문득 들어서 다시 관찰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바로 ‘닭모가지’라고 하는 말이 떠오른다. 닭의 목은 여러 가지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요즘같은 명예퇴직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쎌러리맨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닭모가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새로이 창업하는 혼자서도 할수 있는 그러한 일이 인기순위를 달린다는 말도 들리는데, 이러한 점이 바로 닭모가지와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즉 생명력이 죽는 시기가 바로 유금이 왕성해지는 가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일리가 있다고 본다. 모든 산천의 초목들은 유금의 계절이 되면 모두 힘없이 시들어 버리게 된다. 이것을 다시 생각해보면 닭의 목을 비틀어 버리는 것과도 같이 아무나 손쉽게 죽일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를 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삼라만상이 쉽게 죽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말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 머리에다가 의천검과 도룡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던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살기운을 가지고 있는 글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말은 당사주에서도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 유천인(酉天刃)의 의미




여기에서 刃은 바로 칼날이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당사주의 풀이로써는 몸에 흉터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칼이라고 하는 살벌한 이야기가 등장을 하게 되는 글자는 유독 酉金이라는 점과 연계해서 칼날이 떠오르는 것은 의미가 있어보인다. 이 칼날인 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다. 바로 닭의 주둥이가 칼끝을 상징한다는 생각과 함께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 종교인들의 동물성(?)




불교인들은 그 성질이 닭과 닮았고, 기독교인은 그 성질이 개를 닮았다는 것이다. 낭월이가 이렇게 말을 하면 아마도 불교를 싫어하시는 벗님이라면 혹 기독교를 깍아 내리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에 찬 눈길을 보내실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은 낭월이가 지은 이야기가 아니고 종교와 무관한 어느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므로 크게 신경을 쓰지말고 그 내면에 흐르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시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의 교리와도 전혀 무관한 이야기이다.




1) 닭을 닮은 불교인




새벽에 소리높여 목청껏 울부짖는 장닭의 모습과, 우뚝 선채로 ‘천상천하에 내가 오직 홀로 높네~!’ 라고 외치고 있는 그림이 묘하게도 겹친다. 스스로가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불교인들이다. 자신에게 부처의 본성이 있으므로 다른 부처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이 유지된다. 심지어는 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도인은 ‘부처도 자기 부처이고 나는 나인데 내가 왜 너에게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해야 하는가?’ 하는 말로 나무라기도 한다. 참으로 대단한 기개라고 생각이 된다. 그러한 모습에서 의연하게 버티고 서있는 닭과 닮았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그러실 것 같다. “그럼 그렇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 알아봤지...”

다시 불교인을 관찰해보면 서로 헐뜯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참으로 묘하게도 무리를 지어서 놀고 있던 닭 중에서 한 마리가 어딘가에서 상처를 받아서 피가나면 많은 닭들이 모여들어서 쪼아댄다. 자기네들 깐에는 위안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피는 더욱 더 많이 흐르고 상처는 커져서 마침내 죽어버린다. 불교인에게서도 이러한 점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있는 일이다. 누군가 한 스님의 비리를 캐어 내면 많은 스님들이 그것을 물어뜯어서 결국 절집에서 살지 못하게 만든다. 일명 ‘체탈도첩’이다 승려로써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면 산문출송을 해버리는 것이다. 쉬운말로 하면 쫒아 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인정사정 없는 것이 절집안의 풍습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 자체만 놓고서 생각을 해보면 별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기독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면 당장이 무슨 의미가 그 속에 들어있는지 감이 오실 것이다.




2) 개를 닮은 기독교인(천주교 포함)




이번에는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 분의 말씀 중에서 기독교의 단점이라고 말을 했던 점도 있었는데, 낭월이가 그 이야기를 하면 맛이 여영 나쁠 것 같아서 생략을 하고 좋은 점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드리겠다. 우선 개들을 관찰해보도록 하자. 만약 어느 개가 무슨 일로 몸에 상처가 나면 온 동네의 개들이 모여서 그 상처를 핥아준다. 그러면 상처는 점차로 아물게 되어서 결국 완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신도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두는 그를 호위하고서 최선을 다해서 그 상처를 치유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과연 단결되는 힘이 불교와는 비교도 되지않을 정도로 막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관찰하면서 서로 찍어서 죽여버리는 닭들의 무리와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장면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얼마전에 입적하신 어느 스님은 박사학위가 수십개에 해당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던 학계와는 별도로 절집에서는 푸대접을 받았던 것도 어쩌면 이러한 불교인의 특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강사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종교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닭의 특징을 관찰하면서 잠시 엉뚱한 소리를 해봤지만, 내심 참으로 아쉬움이 많은 불교라는 생각이 든다. 절집의 속담에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다. ‘벼룩 서말은 몰고가도 스님 세명은 못데리고 간다.’ 는 속담이다. 참으로 스님들의 생리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너무 개성이 강해서일까? 하긴... 부모님 말씀도 거역하고 머리를 깎았으니까...




닭을 생각하면 역시 동글동글한 계란이 떠오르는 분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열 두동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알을 낳는 입장에 처해 있기도 하다. 뱀의 한 종류인 구렁이도 알을 낳지만 전체적으로는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혼동이 되는 것이라서 채용을 하기가 곤란하다. 오로지 죽으나 사나 알만 낳는 동물은 닭인 셈이다. 이렇게 알을 낳으니까 그 알은 결실이라고 보는 의미도 들어있게 되고, 여기에서 유금은 결실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쓰였을 것도 같다. 어쨌던 계절로 봐서 팔구월은 결실을 생각하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소가 송아지를 낳는것도 결실인 것은 분명한데, 우리는 그러한 표현 보다는 닭이 알을 낳는 것에 대해서 더욱 결실이라고 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황금알이라는 말을 생각해봐도 그렇고, 금달걀이라는 말도 그렇다. 어쨌던 알이라고 하는 것은 결실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유금의 위치에 닭을 대입시켰다는 것도 보다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닭에 대한 주변 이야기는 이 정도로만 말씀을 드려도 짐작을 하실 것으로 생각되어서 줄이기로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서 이치적으로 유금을 관찰 해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