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주왕산 용추협곡

작성일
2023-11-17 21:4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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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靑松) 주왕산(周王山) 용추협곡(龍湫峽谷)과 용연폭포(龍淵瀑布) 

 

(2023년 11월 7일 탐방)

 


주왕산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는 용추협곡을 향해서 주왕굴을 출발했다. 주왕암에서 용추협곡으로 가는 길은 다시 처음에 들어온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산을 타고 비스듬히 가는 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무장굴은 생략했다. 여기에서 용추폭포 까지는 0.9km구나. 

 


천천히 걸어가니까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런 곳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되지. 일단 올라가 봐야 한다. 뭔가 볼만한 것이 있기에 공을 들여서 만들어 놨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너편에 보이는 암벽들의 이름이 표시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서도 왜 그런 이름이 붙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무슨 이름이든 있어야 하니까 붙은 것이겠거니 한다. 이름은 연화봉이라고 하지만 연꽃으로 보이지 않기에 해 본 생각이다. ㅎㅎ

 


 

 

 


 

 

 


 

 

 


 

 

 


 

 

 


 

 

 


 

 

 


급수대(汲水臺)의 암벽이 비스듬히 보이기도 한다. 

 


 

 

 


 

 

 


앗! 이 모양은 주왕굴 앞에서 본 형태와 흡사한 것으로 봐서 같은 시기에 형성된 암벽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겠다. 여하튼 자세히 관찰하는 것만이 유일한 수단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무성하게 자란 소나무도 한 장 담아줬다. 암석만 보다가 균형을 위해서 나무도 볼 필요가 있겠다는 뭐, 따지고 보면 균형이라고나 할까. 온통 응회암 투성이의 낭떠러지 절벽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본성을 지키고 있는 나무의 위용이 박수를 받아도 중분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나그네는 길을 재촉한다.

 


흔히 산속에서 만났음 직한 오솔길 같은 길을 걷는 것은 매우 편안하다. 계단이 아니면 항상 환영이다.

 


낙석이 위험하니까 나무테크로 만든 탐방로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기도 하다. 여기가 바로 급수대의 벼랑이다. 안전하게 산행하라고 하니까 시키는 대로 간다.

 


처음의 길은 완전히 암벽을 끼고 노루길처럼 있었구나. 응회암이 견고하지 않아서 낙석이 잘 생기기 때문에 주의하라는 말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이 된다. 이미 벽은 돌이 떨어지기 쉬운 구조라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막대기를 기대 놓은 풍경도 이어진다. 어딘가에서 인디언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가 피어오르기도 하는 듯하다.

 


안전을 고려해서 만든 길로 걸어 가면서 급수대의 멋진 절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 걸음은 자꾸만 더뎌진다. 그 옆에는 언제인지 떨어졌을 낙석이 뒹굴고 있는 것도 보인다. 저런 돌이 머리와 만난다면 중상 아니면 사망이겠구나. 이런 풍경이라면 안전모라도 쓰고 지나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이 느껴진다. 문득 대만 화련의 태로각(太魯閣)이 떠오른다. 그곳에서는 올라가는 관광객들에게 안전모를 쓰고 가도록 하고 실제로 낙석으로 인한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고 하는데 주왕산의 급수대를 지나가려면 양쪽 끝에 안전모를 비치해 두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문득 든다.

 


 

급수대 주상절리와 천둥알

옛 신라시대 왕으로 추대받던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하고 이곳 급수대 바위 위에서 대궐을 짓고 살았다고 하며, 바위 위에서 생활하기 위해 물을 길어 올렸다고 하여 급수대라 이름 부르게 되었다.

 

김주원(金周元)이 이 급수대 위에 대궐을 지었다는데 토굴이라면 또 몰라도 흡사 눈썹 위에 대궐을 지었다는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긴, 대궐이 벌건가, 왕이 머무르면 그곳이 대궐이긴 하지. 그래도 띠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긴 하네. 억지스러워보이는 이야기도 현실성이 없으면 바꿀 필요도 있지 않겠느냔 말이지. 여하튼 설명이나 읽어보자.

 

지질학적 요소

급수대는 주왕산의 많은 응회암질 단애 중 주상절리가 가장 뚜렷하게 발달한 곳이다. 급수대 주상절리는 두껍게 퇴적된 화산재가 온도와 입력에 의해 용결되고 식는 과정에서 수축이 일어나 만들어졌다. 천둥알이라 불리는 유문암질 열변질광물은 미국 오레곤주와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대표적으로 산출되며 마다가스카르나 인도 등지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주왕산응회암에서도 소량이 산출된다. 급수대 벽면에 나타나는 열변질광물은 기존 광물과 변질광물간의 부피차이에 의해 암석 내 균열이 생기고, 그 후 실리카 물질을 함유한 열수에 의해 반틈이 채워진 형태로 발달한다.

 

천둥알이라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서 암벽을 살펴보고 또 살펴본다. 그런 것이 있다면 그냥 놓칠 수가 없지 않으냔 말이지.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알로 보이는 것은 없어서 다른 여행가들의 자료들을 찾아봐도 모두 못 찾았다는 글만 나타날 따름이다. 그래도 나름 천둥알로 보이는 것이라고 우길 만 한 것을 발견하기는 했다.

 


안전하게 만들어 놓은 데크길에서 바라보는 급수대 절벽은 아무래도 나뭇가지들의 방해를 받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고는 낙석을 맞아서 부상당할 각오를 하고라도 좀 더 다가가 봐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ㅎㅎ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둘리는 보이지 않아서 뭔가 답답하더란 말이지.

 

 


비록 위험하기는 하더라도 하필이면 이날 이 시간에 그 자리에 있을 적에 돌이 떨어져서 머리에 맞는다면 그것도 운명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안전하다는 길로만 다니고서 집에 돌아가 사진보따리를 풀어놓고서 후회하느니 보다는 잠시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신체적인 위험을 안고 정신적인 승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 이제 주상절리도 제대로 보이는구나. 국립공원 측에서 나무를 잘라주지 않으니까 나그네는 이러한 결심도 필요하더란 말이지. 그냥 풍경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질을 공부하려고 왔으니 그러한 마음은 더하다고 해야 하겠다. 여하튼.

 


 

 

 


어? 저건가? 저게 천둥알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여하튼 뭔지 모르니까 뭐라도 잡고 우겨보고 싶은 여행객의 미련이기도 하다.

 


주변의 암석 색도 좀 다르고 나름 의미를 부여해 보면 껍질을 깨고 나오려고 하는 알처럼 보이기도 해서 이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근거없는 바위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게다. ㅋㅋ

 


멋진 암벽이다. 이것이 기암단애보다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을 끊임없이 떨어져 내렸을 흔적들을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손이 머리로 올라간다. 그래서 더욱 재미도 있구나. 이런 풍경이야말로 주왕산 다움이라는 생각도 든다.

 


 

 

 


반드시 이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것을 이 순간에 느낀다. 그냥 지름길을 따라서 용추계곡으로만 간다면 길에서 멀찌감치에서 바라보고 지나갈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렇게 바짝 붙어서 생생한 세월의 흔적을 바라보는 것을 만나게 되어서 또 행복했다. 급수대의 재미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여하튼 천둥알이 저것이었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은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일단 자기만족으로 넘어가면 된다.

 


급수대를 지나니까 안전망을 설치했구나. 여기는 더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간간히 지나가는 여행객들도 스쳐간다. 다들 용추계곡으로 가느라고 주왕암 길은 덜 찾는 모양이라서 조용하니 좋다.

 


길이 잘 되어 있어서 안전하게 걸을 수가 있는 것도 고맙다. 예전에는 입장료라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것도 없어져서 수익도 없는데도 관리를 하려면 그것도 힘들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용추계곡으로 다 내려온 모양이다. 많은 등산객들의 행렬이 앞에 나타난 것으로 봐서다. 가장 빼어난 경관이라고 하니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이미 선행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한 풍경이다. 시루봉이라고 이름붙은 바위구나.

 

 


 

시루봉(甑峰)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 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루봉에는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으며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바위를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낭월 : 시루를 닮았습니까?

남자 : (옆에서 바라보다가) 아뇨~! 달마대사를 닮았습니다.
낭월 : 아, 선생님도 그렇게 보셨습니까?

남자 : 그렇습니다. 이걸 시루라고 하다니요.

낭월 : 아마도 배가 무척 고픈 사람이 이 바위를 보고 이름을 지었나 봅니다.

남자 :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낭월 : 논산에서 왔습니다.

남자 : 그러셨군요. 마이봉도 볼만 한데요.

낭월 : 재미는 없지 않습니까.

남자 :그건 맞습니다. 재미는 역시 설악산이지요.

낭월 : 동감입니다. 하하~

 

 

하긴, 형상이 뭐가 중요하겠으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냔 말이지. 그냥 깎이고 떨어져 나가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물일 뿐 그곳에는 마음이 없건만 사람이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의미를 부여할 따름이니 그냥 그렇겠거니 하면 된다.

 

 

 

 

 

 

 


 

 

 

 

이제부터 용추협곡이로구나. 사진으로는 많이 봤다. 

 

 


(달마를 닮았든 말든)시루봉을 지나면 학소교(鶴巢橋)가 경수천을 가로지른다.

 


날아가는 학의 조각이 있으니 학소대의 의미를 살린 것으로 봐도 되겠다.

 

 

다리를 건너서 뒤를 돌아보면 벼랑이 보이는데 이곳이 학소대다. 학의 둥지가 벼랑 위에 있었던 모양이구나.

 

 


그래서 학소대 위를 올려다 본다. 물론 둥지가 보일 리는 없지. 그냥 자세히 보고 싶을 따름.

 


 

학소대(鶴巢臺)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巢)를 짓고 살았다하여 학소대로 불린다.

어느 옛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 오고 있다. 지금 학은 간데 없고 그들의 보금자리 터만 절벽 위에 남아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랬구나. 전설은 전설일 뿐이긴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믿을 수가 없는 말이기는 하다. 첫째로 학은 한자 말이고 우리 말로는 두루미다. 들판의 바닥에서 생활하고 더구나 한국에는 여름을 나지 않는다. 시베리아나 「찰룡자연보호구(扎龍自然保護區)」에서 여름에 알을 부화하고 겨울이 되어야 잠시 찾아와서 순천만이나 천수만이나 철원평야에서 겨울을 지나고는 날이 풀리면 다시 고향으로 날아가는 철새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철원으로 두루미를 보러 가서 공부하게 된 인연으로 딱 이 만큼만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청학이나 백학이니 하는 말은 괜한 전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하튼 학은 바위 위에서나 소나무 위에서 생활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태의 관점이다. 그러니까 전설은 말이 되는 전설도 있고 말이 안 되는 전설도 있다는 것. 어쩌면 빙하기에는 한반도에서 여름을 살았을 가능성도 절대로 없다고 할 수는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 놓는 것도 괜찮지 싶기는 하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하고, 또 앞으로 걸음을 옮기면 용추협곡이 앞에 나타나게 된다. 

 

지질명소 : 용추협곡(龍湫峽谷)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침식협곡

용추폭포는 용이 승천한 폭포라는 뜻이며, 총 3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ㅏㄷ. 1단과 2단 폭포 아래에는 각각 선녀탕, 구룡소라고 불리는 돌개구멍이 있고, 3단 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있습니다. 폭포 주변의 주왕산 응회암 절벽에서는 피아메에 의한 용결엽리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은 예로부터 청학동이라 불리며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협곡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신선세계에 발을 딛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응회암에 발달하는 수직절리를 따라 침식작용이 일어나면서 첩첩산중의 보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돌개구멍과 폭호는 어떤 관계?

돌개구멍은 암석의 깨어진 틈을 따라 자갈과 모래가 갖혀 물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생긴 원통형의 구멍입니다. 폭호는 폭포의 아래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만들어진 웅덩이입니다. 즉, 물이 흐르면서 생긴 것이 돌개구멍, 물이 떨어져서 만들어진 것이 폭호입니다.

 

폭호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폭포로 호수를 이루는 것인가 싶어서 폭호(瀑湖)를 떠올리면서 사전을 뒤적뒤적.....

 

 

엥? 폭호는 우리 말이었어. 한자로는 함몰소(陷沒沼)이고 한일전문용어사전에 나오는 말이었네. 중국어사전에서는 지리(地理)에 나오는 용어로 소력지(消力池)라고 한단 말이지? 참 생각지 못한 용어를 또 하나 배운다. 그냥 용소(龍沼)와는 다르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 차이는 뭔지 모르겠군. 그냥 같은 형태의 다른 말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모두 줄을 서있다.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서인 모양이다. 이런 곳은 대충 보고 얼른 지나치는 것이 상책이다.

 

 

 

 

 

  


 

 

 







용추협곡(龍湫峽谷)

화산이 만들고 시간이 조각한 침식협곡

용추(龍湫)란 용이 하늘로 승천한 웅덩이를 뜻하고, 협곡은 급경사를 이루며 암석이 양쪽으로 높이 서 있는 좁고 깊은 골짜기를 말합니다. 주왕산의 용추 협곡은 백악기 후기(1억 년~6,50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가 두껍게 쌓이고 굳어져서 만들어진 응회암이 오랜 시간 동안 풍화, 침식되어 만들어졌습니다.

 

포트홀과 폭호

포트홀은 항아리 모양의 둥근 구멍을 말합니다. 물과 함께 이동하던 자갈들이 하천 바닥의 작은 틈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아랫부분을 깎아 만들어집니다. 폭호는 폭포 아래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만들어진 웅덩이입니다.









 









용추폭포구나 음..... 폭포라기에는 좀 빈약하다만 폭포는 폭포니까 폭포보다는 주변의 암벽들이 볼만하다.

 

 






이건 바위손인가? 아닌 것도 같고.... 여하튼 바위에 붙어서 잘 살아가고 있구나.

 


폭포에서 뒤를 돌아보니 또한 볼만 하다. 

 

 






















그러니까 돌개구멍이 1폭이고, 그 아래가 2폭이란 말인 모양이구나.

 

 


이것이 3폭이겠구나. 뜬금없이 폭호라고 해서 뭔가 싶었지만 그냥 용소네 뭘. ㅎㅎ

 

 

내친김에 국가지질공원에 대해서 좀 공부하고 가는 것도 좋지 싶어서 자료를 찾아본다.

 

 

 

크게 나눠서 13곳(2020년 7월 현재)인 모양이다. 언젠가 들려봤었던 곳도 있고, 앞으로 가봐야 할 곳도 있구나.

 

울릉군 :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 23개 (삼선암,코끼리바위,봉래폭포 등) 

제주도 : 제주도 국가지질공원 12개 (한라산,수월봉응회환,중문대포주상절리대 등)

부산 : 부산 국가지질공원 12개 (금정산,대종대,오륙도 등)

경북 : 청송 국가지질공원 24개 (기암단애,신성 공룡발자국,백석탄 등)

강원도 : 강원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화천,인제,양구,고성) 16개 (구운구곡,양구백토,화진포 등)

광주전남 : 무등산권 국가지질공원(광주,화순,담양) 23개 (서석대,광석대,적벽 등)

경기도강원도 : 한탄강 국가지질공원(포천,연천,철원) 24개 (비둘기낭폭포,제인폭포,철원용암대지 등)

강원도 :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태백,영월,정선,평창) 21개소 ( 검룡소,화암동골,한반도지형 등)

경북 :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경주,포항,영덕,울진) 19개 (양남 주상절리군,호미곶 해안단구,왕피천 등)

전북 :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고창,부안) 12개 (채석강,적벽강,고창갯벌 등)

인천 : 백령.대청 국가지질공원 10개 (두무진,사곶해변,콩돌해안 등)

전북 : 진안.무주 국가지질공원 10개 (마이산,구봉산,운일암반일암 등)

충북 : 단양 지질공원 (여천리 돌리네,고수동굴,도담삼봉 등)

전북 : 고군산군도 지질공원 (산북동 공룡발자국 화석지,말도 습곡구조 등)

경기 : 화성 지질공원 고정리 공룡알 산지,우음도 등)

경북 : 의성 지질공원 (만천리 새끼공룡발자국,해망산 거대건열구조 등)

경북 : 문경 지질공원 (문경새재,굴봉산 돌리네습지 등)

 

지정이 된 곳도 있고, 신청 중인 곳도 있는데 고군산군도와 의성은 2023년 그러니까 올해에 지정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잘 정리하다가 단양 지질공원부터는 몇 개인지도 빼 먹었군. 정리를 하려면 끝까지 잘 해야 한단 말이지. 쯧쯧. 그래서 단양 지질공원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까 국가지질공원이 25개소이고 비지질공원도 20개나 되는구나. 더 자세히 보려면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국가지질공원/세계지질공원 살펴보기]

 

지질공원의 안내를 봐 하니 이미 가본 곳도 다시 가봐야 하겠구나. 백령도와 대청도를 다 둘러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빠진 곳이 수두룩하니 말이지. 다른 곳도 물론 대동소이하다. 그래도 대략 둘러본 곳도 많기는 하다. 물론 지질공원인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는 것이기는 하지만서도. 

 


그나저나 용추협곡의 지질도 살펴봐야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불국사층군 각역질 안산암

 

용추협곡도 대부분의 주왕산 지질과 같은 모습이다. 이제 용추계곡의 마지막 목적지인 용연폭포까지 가볼 요량이다. 절정은 용추협곡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온 김에 용연폭포까지 들리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아쉬움이 남게 될 수도 있고 그것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으로 보는 까닭이다.

 


용연폭포까지는 1.2km구나 그 정도는 가봐도 되겠다.

 


맑은 날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사진을 보면 흐린 날이 최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명암의 차이가 극심하기 때문에 풍경을 볼 적에는 몰라도 지질을 보기에는 매우 불편한 까닭이다.

 


절구폭포는 생략해도 되지 싶어서 곧바로 용연폭포로 방향을 잡았다.

 


날씨가 흐렸더라면 좋았을텐데 양지와 음지의 차이가 너무 심하구나. 보정으로도 바로잡을 수가 없어서 그냥 포기한다. ㅎㅎ

 


 

지질명소 : 용연폭포(龍淵瀑布)

살아 움직이는 하식동굴

용연폭포는 2단 폭포로 구성되며, 주왕산의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이 폭포는 두 줄기의 낙수현상으로 인해 쌍용추폭포라고도 불립니다. 1단 폭포의 양쪽 벽면에서는 각각 3개씩의 하식동굴(河蝕洞窟)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폭포가 형성되고 발달하면서 침식에 의해 폭포면이 차츰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지금의 폭포면에서 가장 먼 곳의 하식동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폭포가 점차적으로 후퇴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하식동굴이 만들어졌습니다.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건너다 봐도 폭포가 보이지만 그래도 길이 있으니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좋지 싶어서 길을 계속 간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있지만 이것은 나오는 길이라고 안내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용연폭포로 내려가는 길은 여기구나. 오른쪽으로 난 길은 등산로다. 등산할 사람들은 반대로 올라오는 길로 내려가서 내려가는 길로 올라온다. 그래야 두벌 걸음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맞지 싶다.

 

 

사진을 찍어 둘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작은 이정표를 억지로 크게 한다고 해서 잘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지. 다시 게으름을 후회한 들 이미 늦었다. 장 그렇다. ㅋㅋ

 

 

 

 

 

내려가는 길이 꽤 가파르다.

 

 

아, 하식동(河蝕洞)은 저걸 말하는구나. 그러니까 맨 앞의 하식동굴에서부터 폭포가 시작되어서 점차로 뒤로 가면서 바위를 깎아냈다는 말이로군. 이러한 풍경도 특이하기는 하다. 이것이 용연폭포의 특징이다.

 

 

 

 

 

 

흐린 날을 좋아하는 이유다. 

 

 

다시 설명이다. 같은 말이구나. 아무래도 가뭄이라서인지 수량이 얼마 없어서 폭포의 위용은 아쉽다. 

 

다 둘러봤으니 또 다음 목적지로 향해야지. 올라가는 길도 좋고 내려가는 길도 좋다.

 


아래에서 보는 급수대구나. 이 길은 주왕굴로 올라가느라고 빠진 길이기도 하다.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셈이다.

 


 

 

 


급수대 각자(刻字) 해석

여기서 10시 방향으로 계곡 맞은편을 살펴보면, 급수대 하단 주방천(주왕계곡) 자연석 바위에 가로 230cm, 세로 161cm 크기의 주왕산 유람 기록이 새겨져 있다.

1818년(무인년) 9월 15일에 청송부사 심능식이 순찰사 김노경, 경시간 김재원 등 인근 지역 부사와 현감 등 여러 고을 수령들이 함께 지방 향시 후 동반 유람한 기록으로 약 200~300명이 유람한 것으로 추정된다.

1847년(정미년) 8월 청송부사 박증수, 의성현령 홍한주, 안사 김현 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주왕산을 유람하고 남긴 글은 다수가 있으나, 바위에 유람 기록을 남긴 경우는 귀한 기록이다.

 

 

실물을 봤어야 하는데 내려갈 길이 없어서 안내판으로 대신했다. 그래도 글자를 잘 탁본해서 오히려 이것이 더 낫지 싶기도 하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급수대는 이렇게 보이는구나. 이건 아니라고 봐. ㅋㅋ

 

 

 

 

 


주방천 페퍼라이트를 지나쳤구나. 이렇게 지나고 살펴보면 또 뭔가 빠져있다니깐. 장 그렇다. 꼼꼼하게 살핀다고 해도 항상 이 모양이다. 그래도 페처라이트는 변산의 적벽강에서 충분히 봤으니까 대략 분위기는 떠오른다. 그렇게 위로하지 않으면 또 어쩌겠느냔 말이지. ㅠㅠ

 


 

 

 


 

 

 


 

구암(龜巖) 각자(刻字) 해석

이곳 구암 상단에는 세로로 주방동천(周房洞天) 문림천석(文林泉石)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빼어난 산수의 주왕산과 물과 돌은 문림랑의 것이다" 라는 의미이다.

문림은 고려시대 "문림랑위위시승" 벼슬을 지낸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를 칭하는 것으로 청송심씨 봉토 "완문표석"이다.

암벽 글씨 아래 끼워 넣은 사각의 표석은 상단 암벽에 새겨진 큰 글씨에 대한 유래를 설명한 것으로, 청송심씨 종유사 심호창과 심호택이 주방천 자연석에 새긴 주방동천 문림천석의 원석이 파손되어 1990년(경오년) 5월에 당시 종유사 심완택, 심상일이 이 바위에 옮겨 새겼다는 기록이다.

 


내려가는 길 오른쪽 암벽에 새겨진 글자는 원래의 글이 마모되어서 새로 새겼다는 말이로구나.

 


 

 

 


아니, 아무리 봐도 동천(洞天)인데 설명에는 동천(洞川)이라고 했지? 실로 洞天은 있어도 洞川은 없는 말인데 무슨 의미인가 했더니 설명이 잘못 했던 것으로 보인다. ㅎㅎ 

 


만약에 화강암(花崗巖)에 새겼더라면 오래도록 보존이 되었을텐데 응회암이라서 마모가 심하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러니까 후손이 고생이로구나. ㅋㅋ

 


저 위로 보이는 암벽은 주왕암과 주왕굴이 있는 곳임을 안다. 가봤으니까. ㅎㅎ

 


여기에서 보는 것과 그 자리에서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거의 다 내려와서 다시 하나의 안내문을 만났다. 올라 갈 적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도 내려오다가 보면 또 보이기도 하는 법이다.

 


 

 

 


 

 

 

 

 

 

주왕전의 옛터

주왕전의 옛터에서

풀숲 헤치며 주왕 궁궐 찾노라니

산마루 지는 해 낮게 드리웠네

계단은 무너져 이미 층계는 없어졌고

기와는 부서져 반 진흙 되었네

규모는 초라하여 높은 사람 집은 아닌 것 같고

숲은 깊어 산새들 서식지 되었네

흥망이 천고의 한이 되어

길게 휘파람 불며 서쪽 계곡을 지나네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학봉집』「주왕산지」중에서

 

궁궐의 터를 찾아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서는 나그네의 심경을 읊은 시로구나. 학봉 선생도 참 대단하다. 이렇게 해서 주마간산격으로나마 용추계곡의 코스를 살펴보고 대전사를 떠난다.

 


주왕산 용추협곡 코스를 돌아보고 나온 여정이다. 시간은 10시 50분에 대전사를 출발해서 주왕굴을 거쳐서 용연폭포까지 보고 다시 돌아오니까 1시 50분이다. 대략 3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제 달기약수탕으로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