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 제43장. 여로(旅路)
18. 비인(非人)의 종말(終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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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께서 이렇게 깊은 신기(神技)를 갖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장행성의 말에 우창이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늘 초면인데도 귀한 밥을 얻어먹었는데 밥값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우창이 봐하니 장행성은 벌써 뭔가 물어볼 것을 생각하고 왔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며 미소를 지었다.
“선생의 아호는 어찌 되십니까? 소생은 익현(翼弦)이라고 합니다.”
그 사이에 하무의 아내가 보퉁이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어서 자원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여행길이 순조로우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작은 성의이니 받아주세요. 비로소 머리 아픈 일이 해결되었으니 어서 귀가해서 길 떠날 채비를 해야 하겠네요.”
고맙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말하고는 하무와 함께 떠났다. 하무도 우창에게 포권을 하고서 말했다.
“오늘 도사 선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번뇌가 사라지지 않았을 텐데 말씀을 듣고 보니 어느 하나도 헛된 풀이가 없소이다. 그래서 선생의 말을 믿고 한 번 길을 떠나 보도록 하겠소. 고맙소~!”
“보중(保重)하시기 바랍니다.”
우창은 그와 작별하자 다른 손님들도 장행성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고는 모두 떠나갔다. 장행성은 인사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작은 성의를 즐겁게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더욱 즐거운 일들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우창은 의외로 장행성의 말투가 쾌활하다고 생각했다. 성급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매우 상냥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음.... 젊은 사람이 보기보다는 좀 다른 면이 있군...’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켜봤다. 손님이 모두 떠나가자 장행성은 동행들에게도 말했다.
“친구들, 나는 이 선생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가고 싶다면 그래도 되네. 하하~!”
그런데 친구들도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한 마음에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러자 장행성은 우창을 보며 말했다.
“실로 도사님이라고 해야 할지 선생님으로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전에 풀이하는 내공을 접하고 이런 학문도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이렇게 하루하루를 허랑방탕(虛浪放蕩)하게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아갈 것이 아니라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그 가르침을 배울 방법이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창이 처음에는 장행성이 경망스러워 보여서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야기하면서 소탈하고 꾸밈이 없고 속진(俗塵)이 묻지 않은 천진난만(天眞爛漫)한 젊은이로 생각이 되어서 약간의 호기심이 생겨서 말했다.
“배우기는 뭘 배운단 말이오? 사서삼경을 열심히 읽어서 벼슬길이나 찾도록 하시오. 이것은 배워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의 학문일 따름이니 말이오. 하하하~!”
우창도 공부하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거우나 지금은 가볍게 여행하려는 마음이 앞서서 제자를 맞이하는 것이 번거롭게 생각되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장행성은 눈치가 없어서인지 우창의 말에 더욱 애가 타서 말했다.
“스승님께서 거두기를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공부를 익히고 경륜을 쌓아서 벼슬하라는 말씀이 제 팔자를 보고서도 내려야 하는 판단이라면 그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만약에 도학(道學)에 인연이 모기의 눈물만큼이라도 있다면 뿌리치지 말고 받아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자 문득 앞에서 뽑아놓은 점괘를 떠올렸다. 이미 그 순간에 어떤 조짐이 주어졌다면 아직도 점괘는 유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점괘를 적어서 앞에 내어놨다.
우창이 적어놓은 점괘를 바라보던 자원이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우창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싸부. 이 점괘는 이미 하무보다 더 앞서서 뽑으신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벌써 어떤 조짐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셨단 말이에요? 그렇지 않고야 묻지도 않은 사람의 점괘를 뽑았을 까닭이 없잖아요?”
“그야 나도 모르지. 그냥 점괘를 보고 싶어서 봤는데 오늘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하는 순간에 얻은 것이라네.”
그러자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삼진이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혹시 그 점괘는 점심을 사겠다는 말을 듣고서 뽑으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오호~! 맞아, 그렇다면 삼진도 그 순간에 점기(占機)를 읽었단 말인가? 신기하구나. 하하~!”
두 사람의 대화에 장행성은 궁금증이 더욱 커져서 삼진에게 물었다.
“스승님이라고 하시니 제자이신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생이 밥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 조짐이 될 수가 있습니까? 그것부터가 신기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삼진이 장행성을 보며 말했다.
“만약에 그대가 밥을 사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점기는 없었겠지.”
“그게 무슨 점기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흔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자세히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점기가 될 수 없다고 봐야지. 다만 그것이 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본 사람에게는 그것도 점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란 말이네.”
삼진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장행성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알겠습니다. 역시 보통 사람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조짐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까? 풀이를 청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전에 풀이하신 하무 선생과 같은 점괘라는 말씀인 것은 확실하지요?”
“그렇지요. 오주괘(五柱卦)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설명해 주자 장행성은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스승님 연배로 보나 배움의 인연으로 보나 말씀을 편하게 하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귀를 기울여서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아예 제자가 되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하면서 풀이를 청했다. 우창도 거절하지 않고 설명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네. 그런데 간지는 좀 알고 있나?”
“잘은 모릅니다. 다만 제 이모님께서는 술수(術數)에 밝으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저녁에 이모님 댁으로 스승님을 모시고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이모님께서는 항상 제게 말씀하시기를, ‘넌 세상 인연이 없으니 출가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물론 저는 그러한 말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지요. 하하~!”
장행성이 이모님의 이야기를 하자 우창은 그것이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동행해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전에 점괘를 풀이해 줘야 했다. 우창은 일진(日辰)의 갑진(甲辰)을 가리켰다. 그러자 장행성이 얼른 말했다.
“앞서 하무 선생의 풀이에서 비룡재천(飛龍在天)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든 어려움이 없이 술술 풀린다고 하셨고요. 연월일까지 같은 것으로 봐서 해석도 같이하면 되는 것이지요?”
우창은 장행성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풀이하는 것이 아닙니까? 같은 글자인데 설마 달리 해석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 다르지.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날뛰다가 벼락을 맞는 조짐이니 말이네. 하하~!”
“예?”
장행성의 표정이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냐는 듯했다. 그것을 보며 우창이 다시 설명했다.
“앞에서는 신미(辛未)였지만 여기는 경오(庚午)이잖은가? ‘지척(咫尺)이 천리(千里)’라는 말은 알고 있나?”
“알지요.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천리나 멀리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다. 그러니까 한 시간의 차이로 인해서 해석이 전혀 달라진다는 말씀이시네요?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렇다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조짐이라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신 것인지 여쭙습니다.”
장행성이 진지하게 묻는 말에 우창도 진지하게 설명했다.
“갑목(甲木)이 경금(庚金)을 만났으니 대살(帶殺)이라고 한다네. 감당하지 못할 일로 힘들어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지. 내가 아까 점괘를 뽑아놓고서 생각하기로는 점심을 사는 것만으로 힘든 일이 생기는 이치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몰라서 풀이하기가 어려웠단 말이네.”
“그렇다면 이제 풀이할 실마리가 나왔습니까?”
“맞아, 실은 그대 이모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그 의미가 모두 풀렸다고 봐야 하겠네.”
“예? 이모님이요? 음..... 아, 출가나 하라는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비로소 그 말을 듣고서야 점괘의 뜻이 명료하게 밝아졌지. 그리고 어쩌지 못하고 절간으로 들어가야만 할 일이 생긴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었다네. 그러한 원인은 그대가 그동안 방탕하게 살아온 것으로 인해서 피할 수가 없는 일이니 아마도 친구들과 작당해서 큰 허물을 지은 것이 틀림없겠군.”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동행인 친구들을 훑어봤다. 그들은 우창의 말을 듣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진저리를 쳤다. 그것을 보자 무슨 곡절(曲折)이 있겠다고 짐작하고서 장행성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무서운 점괘가 나온 것일지 내게 설명해 주겠나?”
우창의 말에 장행성은 하얗게 질려서 말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점괘를 마저 해석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마도 급하게 서둘러서 자리를 피한다면 면할 가능성은 있군.”
“그렇습니까? 실로 염려했던 것에 대해서 이렇게 명쾌하게 말씀해 주시니 더 감추고 도망을 칠 수도 없겠습니다. 실은 어젯밤에 사람을 하나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도 가담했습니다만 주범은 제가 맞는데 이것이 발각된다면 아마도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원래는 죽을 생각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그만.....”
이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자 우창도 한 바퀴 살펴봤다. 주인 노파는 멀찍이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반찬에 쓸 나물을 다듬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우창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나 봐야 하지 않을까?”
우창의 말에 장행성은 일말의 희망이 있다는 말을 믿고서 설명했다.
“실은 우리 동네에 지독한 악행으로 재물을 긁어모으는 수전노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빈대를 잡으면 깨물어서 피를 빨아먹을 정도로 지독한 사람이지요. 빈곤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빚을 지고는 이자를 갚느라고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적당히 혼을 내서 마음을 고치려고 한 것이 그만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시신은?”
“놀라서 엉겁결에 돌을 매달아서 저수지에 넣었습니다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때가 되면 떠오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심히 불안했습니다.”
“당연하겠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봐하니 저수지도 별로 크지 않은걸? 웅덩이 정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곳에다 시신을 버렸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드러날 가능성이 많을 텐데 이렇게 태연하게 사람들에게 밥을 사면서 여유를 부릴 겨를이 있나?”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장행성이 놀랍다는 듯이 묻는 말에 우창은 일지(日支)의 진(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좌우에 해자(亥子)가 있었더라면 제법 큰 저수지라고 하겠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사오(巳午)가 있으니 그 규모는 자그마한 곳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냔 말이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깊어 봐야 두어질 정도일 겁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 다시 꺼내서 매장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지은 죄는 어쩐다?”
“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녁에 이모님을 뵈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오늘 점심을 사겠다고 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 말속에서 스승님은 살기(殺氣)를 느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야말로 기쁘고 즐거워서 한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큰 짐을 지고 보니 저도 제 마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만하면 대략 어떻게 된 일인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러자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영업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파를 바라보자 조금 전까지 나물을 다듬고 있던 노파는 어느 사이에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손님도 없는데 뭘 하는지 살펴보자 큼직한 쟁반에다 전병(煎餠)을 서너 개 지져서 담아왔다. 한쪽에는 술도 한 병 놓여있었다. 모두 노파를 바라보자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실은 대화하는 내용을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것이 아닙니다. 인연이 있어서 전음술(傳音術)을 배웠던 탓이니 늙은이의 귀가 밝은 것을 탓하지 마시고 이것이라도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시라고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에게 술을 따랐다. 그야말로 존경한다는 표정을 보면서 우창은 잔을 들어서 술을 받았다. 내심으로 이 노파의 내력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놀라운 신기(神技)를 갖고 계셨네요. 축지술(縮地術)을 쓰는 분은 뵈었으나 전음술을 통한 분은 초면입니다. 저렇게 먼 거리에서도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별것도 아닌 잔재주랍니다. 문밖에서 속삭이는 소리는 일상의 대화처럼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도망을 쳐야 한다면 매우 유용하기도 하지요.”
우창과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자원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참으로 숨은 기인들이 많은 세상이네요. 뵙기에는 그냥 허름하고 평범해 보이는 할머니신데 놀라운 점혈법(點穴法)을 펼치시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숨기고서 주막이나 운영하시는 연유가 궁금했어요. 이리 와서 같이 앉아 담소하면 어떻겠어요?”
자원은 하무에게 아혈(啞穴)을 찍혀서 꼼작도 하지 못하는 장행성에게 다가가서 가볍게 혈도를 풀어버리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에 이미 보통의 노파가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장행성은 그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갑자기 하무의 손길에 몸이 굳어지는 듯했다가 이내 정상이 되어서 혹 무엇을 잘못 먹어서 그런가 싶은 생각만 했을 따름이었다.
“그 정도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니 대단하다고 할 것이 없지요. 그런데 그걸 보고 단박에 알아차린 낭자의 눈매도 예사롭지 않아요. 호호호~!”
노파는 겸손함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웃으며 자원을 추켜세웠다. 이렇게 말을 돌리고는 삼진과 장행성에게도 술을 따랐다. 자원을 보면서 마시겠느냐는 듯이 눈짓하자 자원도 잔을 들었다. 그러자 가득 따라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주인 할머니께도 한 잔 올리겠습니다.”
장행성은 술병을 들고 노파에게 잔을 권했다. 그러자 노파도 사양하지 않고 잔을 받았다. 모두 잔을 들어서 한 모금씩 마시고는 내려 놓자 노파는 또 자리를 일어나면서 말했다.
“혹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잠시 밖에서 일을 보겠습니다.”
정중하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자리를 피해주는 것도 같았다. 그 마음을 이해하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잠시 후에 우창이 장행성에게 물었다.
“죽은 사람의 가족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처첩(妻妾)이 다섯인가 됩니다. 그들은 재물이 많은 부자에게 의지해서 살기는 하지만 하도 많은 사람의 고혈(膏血)로 얻은 부유함인지라 모두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도 꺼리며 숨어서 지내듯이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허물을 감추려고 그렇게 말하면 쓰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동행인 사람들도 장행성의 말에 동조하며 실제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창이 곰곰 생각하다가 잠시 후에 장행성에게 말했다.
“대략 정황은 알겠네. 그대의 행위는 해서 안 될 짓을 했으나 동기(動機)조차도 나쁘다고 탓을 할 일은 아니로군. 자고로 인간계(人間界)란 성인(聖人), 현인(賢人), 중인(衆人)이 있지만 그 아래에는 비인(非人)이 있지. 흔히 ‘개나 돼지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하는 말이 바로 비인을 가리키는 것이라네.”
“예! 맞습니다. 그놈은 개보다도 못하고 돼지보다도 못한 놈입니다. 오히려 개와 돼지가 그 말을 들으면 화를 낼 정도입니다.”
장행성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학문을 경시(輕視)하고 재물만 중시(重視)하는 부류는 주로 비인(非人)에 가까울 수가 있다네. 가끔은 천하게 벌어들인 재물을 갖고서 귀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없진 않지만 그야말로 가뭄 든 밭에 콩이 나듯 매우 드문 일일 뿐이지.”
이렇게 말한 우창이 점괘를 적은 종이에서 분간(分干)의 임수(壬水)를 가리켰다. 그러자 삼진과 자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머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우창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우창은 삼진에게 물었다.
“이것은 뭘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예, 스승님 구원자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누구일 것으로 보이나?”
“아마도 이모님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임수(壬水)는 갑목(甲木)에게 편인(偏印)에 해당하고 편인은 어머니와 같은 계층인 까닭입니다.”
“삼진은 이미 해결책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자원의 의견을 들어볼까? 자원의 생각은 어떤가?”
“싸부, 자원의 봐도 오라버니의 견해가 다르지 않겠어요. 이미 오시(午時)에 오분(午分)인지라 불은 붙었으나 진중계수(辰中癸水)의 선연(善緣)이 있어서 비록 경금(庚金)의 감옥이 손짓하고 있으나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 선녀가 손을 뻗어 구해서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니 말이에요. 호호~!”
자원의 풀이를 듣고 있던 장행성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원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 말씀대로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듭 확인하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자원이 장행성에게 미소를 짓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시신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까요? 암매장하는 것이 옳지는 않아 보이는데 싸부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요.”
“아마도 암매장하고 나면 오래도록 마음에 근심을 남기지 않겠나?”
“그러니까 말이에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자원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말없이 시지(時支)의 오화(午火)를 짚었다. 그러고는 자원을 바라봤다. 자원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싸부의 말씀은 불에 태워버리라는 뜻이죠?”
자원의 말에 우창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삼진을 바라봤다. 해답을 내놓아 보라는 뜻이었다. 삼진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절묘(絶妙)~!”
삼진의 말에 자원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두 사람의 얼굴만 번갈아 바라보자 장행성을 비롯한 모든 사람도 같은 표정으로 우창과 삼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이 삼진에게 말했다.
“삼진, 그 방법이 최선이지 않겠나?”
“맞습니다. 조금 전에 사매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고개를 가로젓는 순간 그 의미가 보였습니다. 오늘도 소중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오라버니~!”
자원이 답답하다는 듯이 삼진을 향해서 외쳤다. 그러자 삼진이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목을 삼진에게 집중했다.
“그 사람의 정신(精神)을 화장(火葬)하는 것입니다.”
삼진이 이렇게 말했으나 자원은 아직도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이런 경우를 당하고 보니 삼진이 자원보다 한 수 위라고 하는 것만 명백하게 드러났다.
“자원 사매, 경(庚)은 정신이 아니던가? 다 배운 것인데 왜 생각이 나지 않는단 말인가? 하하~!”
“맞아요. 그야 알죠~! 그런데요? 정신을 화장한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니 어서 쉽게 풀이해 줘요~!”
“천기누설(天機漏洩).”
삼진이 간단하게 말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더 길게 설명하는 것은 자칫하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였다. 그러자 우창도 그 뜻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한 사람은 자원이었다.
“뭐예요~! 이러시기에요?”
우창이 자원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장행성에게 말했다.
“어서 이모님을 뵈러 가야 하지 않겠나? 그만 앞장을 서시게.”
실로 우창은 장행성의 이모님이 궁금했다. 어떤 여인이기에 술수에 능통하다고 했는지 알고 싶었고, 무엇인가 배울 것이 분명히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어서 괜히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장행성이 노파에게 밥값을 치르고는 친구들과 작별하고 여정의 옆에 앉아서 길을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