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 제43장. 여로(旅路)
15. 간지총론(干支總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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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령이 책을 열심히 보자 우창도 그 뜻을 알고서 물었다.
“다음 구절을 살펴보시겠습니까?”
“그렇소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옥석이 있는지를 살피고 싶어서 안달이 난단 말이오. 허허허~!”
“좋습니다. 살펴보시지요. 하하~!”
현령은 우창의 말을 듣고는 다음 구절을 읽었다.
지생천자(地生天者) 천쇠파충(天衰怕衝)
천합지자(天合地者) 지왕희정(地旺喜靜)
이렇게 읽고는 다시 풀이까지 했다.
“읽어보니 ‘지생천(地生天)’이란 ‘지지에서 천간을 생하는 것’이니 천간이 쇠약할 때는 충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구려. 이것은 말이 되는 것으로 봐도 되지 싶소만 어찌 생각하시오?”
현령도 숨은 의미까지 파악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는지 우창에게 의미를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현령의 물음에 대답했다.
“있으나 마나 한 구절입니다. 왜냐면 지생천이란 병인(丙寅)이나 임신(壬申)과 같은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인데 병인(丙寅)은 신금(申金)을 좌우에 만난다면 금극목(金剋木)이 될 뿐이니 병화(丙火)에게 부담이라고 하겠으나 임신(壬申)의 경우에는 좌우에 인목(寅木)이 있더라도 목이 금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니 충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니 있으나 마나 한 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인신충(寅申沖)이 일어나면 양패구상(兩敗俱傷)이 아니오? 더구나 생지(生支)의 충돌인 인신충(寅申沖)과 사해충(巳亥沖)은 대흉(大凶)이라고도 했으며 이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인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이다.”
“삼척동자도 알기는 하나 또한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건 왜 그렇소?”
“비유를 들어서 여쭙겠습니다. 만약에 마을에서 송사(訟事)가 생겼으나 해결하지 못하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는 말에 현령은 얼른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그 상부 기관인 현령(縣令)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소?”
“그렇다면 현(縣)에서도 답을 내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으나 마나 더 상부인 주목(州牧)이나 자사(刺史)에게 물어야지요.”
“같은 이치입니다. 이를테면 자평법의 최고 기관은 오행부(五行府)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오행법(五行法)으로 풀어야 한다는 의미지요.”
“그렇겠소이다. 그렇다면 인신충(寅申沖)은 어찌 판결할 참이오?”
“그것은 오행법으로 보면 됩니다. 금극목(金剋木)이니 금승목패(金勝木敗)일 따름이지요. 그러니 목소아(木小兒)와 금대인(金大人)이 싸우는 것과 같아서 이미 싸움이 되지를 않는데 양패구상이란 말이 어울리겠습니까?”
우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령은 자기의 머리를 쳤다. 그것도 몰랐느냐는 자신에게 꾸짖는 듯한 태도였다. 그것을 본 우창이 잠시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보고 또 다음의 말을 해야 하지 싶어서였다.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짓던 현령이 우창에게 말했다.
“아니, 그것이 그리도 간단한 것이었소? 그 이치를 누가 모른단 말이오. 다만 책에 그렇게 육충(六衝)이라고 나와 있으니 그대로 따라서 외우고 적용했을 따름인데 오늘 문귀의 상식이 이렇게 와르르 무너질 줄은 몰랐소이다.”
현령의 자조(自嘲)가 섞인 말을 듣고서야 우창이 말했다.
“원래가 알고 보면 간단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라도 깨우친다면 이미 늦지 않은 것임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이 말도 경도 선생의 말이 아니오?”
“아마도~!”
“그렇다면 우창 선생은 왜 이런 말이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하시오?”
“아마도 멋있어 보이라고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내용인 것으로 봐서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라고 보면 되지 싶습니다.”
“아하~! 그런 것이오? 만약에 문귀가 혼자서 이 구절을 접했다면 몇 날을 두고두고 그 의미를 생각하느라고 허송세월(虛送歲月)했을 것이오.”
“이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령이 다시 물었다.
“다음 구절에 대해서도 의미가 없는 것이오? 천합지(天合地)라고 했으니 이것은 간지가 합한다는 말이잖소?”
“그렇습니다. 간지가 합하는 것은 네 개의 간지입니다. 임오(壬午), 무자(戊子), 신사(辛巳) 그리고 정해(丁亥)지요. 그런데 지왕(地旺)은 무엇이겠습니까? 가령 정해(丁亥)인데 지지에 신유금(申酉金)이 있어서 해수가 왕하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인묘목(寅卯木)이 지지에 있어서 일간(日干) 정화(丁火)가 왕하다는 것입니까? 명식(命式)을 살펴서 용신(用神)을 정하는데 어떤 경우든지 안정(安靜)은 좋으나 혼란(昏亂)이나 충돌(衝突)이 좋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마나한 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현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창이 설명한 것에 대해서 요모조모로 따져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의미를 알게 되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과연 처음에는 우창 선생이 우쭐대는 마음으로 딱 잘라서 하는 말인 줄로 생각하고 오해했었소. 그런데 자초지종을 듣고 생각해 보니 조금도 이치에서 어긋남이 없소이다. 실로 감탄했소. 허허허~!”
“다행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옥석을 구분하는 안목은 어떻게 기르게 된 것이오? 연배도 한참 아래인데 학문은 오히려 순후(淳厚)한 것을 보니 문귀 같은 범인은 신발을 벗고 쫓아가도 감당할 수도 없을 지경이니 말이오.”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천성이 아둔해서 단지 오랜 시간을 음미하고 의심하고 사색하면서 군더더기를 제거하다가 보니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을 따름이지요. 누구라도 이렇게만 한다면 모두 낯을 씻다가 코를 만지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겸손이 과하시오. 절대로 그렇게 해서 도달할 경지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한데 말이오.”
“문제는 관점(觀點)입니다. 오행의 관점으로 본다면 아무리 복잡하게 꼬인 방법이라도 의외로 쉽사리 그 빈틈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하하~!”
“실은 오후에 혼자서 이 구절도 살펴봤었소. 그러고는 참으로 오묘한 뜻이라고 생각하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두 쓸모없는 것이라고 해서 내심 불편했었는데 이제야 그러한 생각이 옹졸했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구려. 과연 모르면 손에 쥐어 줘도 모른다는 옛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소이다. 허허허~!”
“그러나 다음 구절은 참으로 요긴한 간지의 핵심(核心)을 담고 있으니 살펴보시지요.”
우창은 과찬이 부담스러워서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현령도 다음 구절에 대해서 살펴보고는 천천히 읽었다.
갑신무인(甲申戊寅) 직위살인상생(直為殺印相生)
경인계축(庚寅癸丑) 야좌양신흥왕(也坐兩神興旺)
“이 대목을 풀이하면 ‘갑신(甲申)과 무인(戊寅)은 바로 살인상생(殺印相生)이 되고, 경인(庚寅)과 계축(癸丑)은 또한 앉은 자리에서 간지가 서로 왕성(旺盛)하다’고 풀이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소이다만?”
우창에게 의견을 물었다. 자신이 풀이는 했으나 이렇게 본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맞습니다. 잘 풀이하셨습니다. 책에 따라서는 직위(直爲)를 진위(眞爲)라고 쓴 곳도 있으나 의미는 대동소이하여 옮겨쓰는 과정에서 직(直)을 진(眞)으로 쓰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듣고 보니 그렇겠구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말이오. 갑신(甲申)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라서 허약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살인상생이라면 견딜 만하다는 의미가 아니오?”
“그렇습니다. 선생께서 적확(的確)히 이해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신중임수(申中壬水)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뜻이오? 그렇다면 무인(戊寅)도 인중병화(寅中丙火)의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로 볼 수가 있겠소만.”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갑신(甲申)을 금극목으로 봐서 갑목을 형편없이 무력한 것으로 보거나 무인(戊寅)을 목극토로만 봐서 무토를 무기력한 것으로 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경도가 이렇게 일갈(一喝)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도 현령은 얼른 납득이 안 되었는지 곰곰 생각하는 모습으로 앉아있다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살인상생(殺印相生)의 뜻을 생각해 보면 비록 현실적인 상황이 힘은 들어도 생명력은 강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외의 간지들은 또 어떻겠소? 가령 을축(乙丑)도 지장간의 이치를 본다면 살인상생(殺印相生)의 뜻이 있지 않겠소?”
“당연합니다. 이렇게 조짐을 알려줬으니 그 나머지는 독자가 알아서 확대하라는 뜻이라고 보면 되지 싶습니다.”
“아하~! 그렇구료. 이제야 이해되었소이다. 그런데 경인(庚寅)은 금극목(金剋木)이니 경(庚)은 왕하고 인(寅)은 쇠약(衰弱)해야 하는 것이잖소? 그런데 ‘양신이 흥왕(興旺)하다’고 하니, 이 말은 경과 인이 모두 왕성하다는 말인데 이것도 얼른 이해가 되지는 않소이다.”
“경(庚)은 왕성하나 인(寅)도 인중병화(寅中丙火)의 도움을 받아서 결코 기세(氣勢)가 꺾이지 않는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인목의 뒤에는 경금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화가 있다’는 뜻이니 예를 들면 ‘내 아들이 장비(張飛)다 이놈아~!’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현령은 우창의 비유를 듣고서 바로 이해가 되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과연 비유법도 탁월하시오. 허허허~!”
“여러 가지의 방법을 생각하면서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러한 응용도 가능하더군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하하~!”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니 모두가 오행의 이치로 대입했을 뿐이구려. 참으로 의미심장한 구절이외다.”
“내용에 따라서 옳은 것도 있고 부족한 것도 있으니 그것을 살피면서 공부하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겠습니다.”
“여하튼 참으로 놀랍소이다. 그렇다면 다음 구절도 좀 살펴봐야 하겠소.”
“예, 그렇게 하십시오.”
상하귀호정협(上下貴乎情協)
좌우귀호동지(左右貴乎同志)
“내용을 살펴보니, ‘위아래는 간지를 말하는 것이겠는데 위아래가 귀하고자 하려면 유정(有情)하게 협력(協力)하는 것이고, 좌우는 간지와 간지의 관계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귀하게 되려면 뜻이 서로 같아야 한다’고 풀이하면 되겠소?”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상하좌우를 잘 살펴서 귀천(貴賤)을 살펴보라는 뜻이오? 이렇게 되어 있으면 당연히 귀하다고 하겠는데 왜 이런 구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소이다. 그 의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오.”
“크게 중요하지 않은 말입니다. 말하자면 ‘넋두리’라고 하겠습니다. 있어도 크게 해로운 것은 없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전혀 아쉽지 않은 내용인 까닭이지요.”
“이것도 비유로 설명할 수 있겠소?”
현령은 우창의 비유법이 맘에 들었는지 또 비유를 들어달라고 하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비유한다면 ‘황금 숟가락에 봉황을 조각한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조각이 없어도 이미 좋은 숟가락입니다만 여기에 봉황을 조각했으니 구태여 나쁘다고 할 것은 아닙니다만 실제로 효력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하하~!”
“과연 그렇게 설명해 주시니 의미가 또렷하게 드러나는구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지만 있다고 해서 나쁠 이유는 없으나 장식용으로나마 없느니보다는 낫다고 하면 되겠소이다. 허허허~!”
“실속이 없는 말의 잔치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구절에서 미사여구(美辭麗句)는 절정을 향해서 치달린다고 하겠습니다. 어디 살펴보시지요. 하하하~!”
“아, 그렇소? 어디 살펴보리다.”
현령은 이렇게 말하고 원문을 읽고 풀이했다.
시기소시 종기소종(始其所始 終其所終)
부귀복수 영호무궁(富貴福壽 永乎無窮)
“우선 봐서 참 좋은 뜻인 듯싶소. ‘그 시작할 곳에서 시작하고, 그 끝날 곳에서 끝나니 부귀(富貴)와 복수(福壽)가 영원토록 다함이 없다’는 말이니 말이오. 여기에도 무슨 문제는 없는지 궁금하구려.”
현령의 말에 우창이 또 간단하게 핵심만을 말했다.
“군더더기입니다.”
“내 그럴 줄 알았소이다. 허허허~!”
현령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왜냐하면 말이오. 앞의 갑신(甲申)이나 무인(戊寅)을 생각해 봤을 적에는 칼날처럼 예리함이 느껴졌는데 이 대목에서는 전혀 그러한 느낌이 안 들어서 뭔가 좀 한가롭고 느슨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던 까닭이오.”
“맞습니다. 이미 적천수의 핵심에 절반은 도달하셨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렇게 살펴서 판단하면 되니까요.”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령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 사주를 본다면 이렇게 되는 사주가 있기는 한 것이오?”
현령은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우창도 느낀 그대로를 말했다.
“우창이 많은 사람을 접한 것은 아닙니다만 시종(始終)을 잘 이룬 사주는 보지 못했습니다. 일천분지일(一千分之一)이나 일만분지일(壹萬分之一)이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팔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없거나 있다고 한다면 운명을 감정하고자 할 마음도 없을 것이니 명리가(命理家)와의 인연은 없다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하하하~!”
“하긴 그렇기도 하겠소이다. 복록(福祿)이 무궁(無窮)한 사람이 무슨 답답한 일이 있을 것이며 그러한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묻고자 할 까닭도 없을 테니 말이오. 허허허~!”
“그리고 명학(命學)은 이러한 사람을 위해서 성현이 남겨주신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하는 숱한 중생들이 삶에서 부대끼다가 지치고 힘들 적에 찾아와서 하소연도 하고 위안도 받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고자 하는 것이 고인의 뜻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오호~!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바로 이 구절은 있으나 마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허언(虛言)이라는 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하하~!”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오. 오늘 우창 선생의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내용 하나하나를 접하면서 혼자서 감탄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그것이야말로 아찔할 뿐이외다. 허허허~!”
“약간이나마 학문의 연구에 도움이 되셨다면 그것만으로 큰 보람입니다. 열심히 궁리하시는 열정에 감동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이렇게나마 몇 말씀 주제넘게 드려본 것인데 말이지요. 하하~!”
“그러니까 오늘 가르침을 참고하여 비록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앞의 천간론(天干論)이나 뒤의 내용들도 이러한 관점으로 살핀다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이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오. 이만 고단하실 텐데 쉬시도록 하시오.”
“아닙니다. 전혀 고단하지 않을뿐더러 무엇이라도 말씀하시면 더 해드릴 말씀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창의 말에 현령은 감동한 듯이 말했다.
“참으로 진정한 스승이외다. 내 마음만 같아서는 앞으로 한 해는 곁에 모셔놓고서 가르침을 받고 싶은 마음이오만 이 정도의 가르침으로도 어떻게 궁리하면 될 것인지를 깨달았으니 앞으로 시간을 십 년은 단축한 듯하오이다. 이렇게 가르침을 받고 보니 그동안 목숨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겼던 삼명통회는 그냥 커다란 돌덩어리처럼 보이기조차 하오. 허허허~!”
현령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것에 아쉬움이 컸다는 듯이 말했으나 이제라도 공부의 방향을 잡은 것에 대해서 얻은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해서 오히려 홀가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령이 옆에 있는 방울을 흔들자 푸짐하게 차려진 주안상이 네 사람의 손에 들려서 들어왔다. 향기로운 요리의 냄새가 여태까지 열심히 토론한 우창에게 시장기를 안겨주었다.
“감사한 마음은 내일 별도로 전하도록 하겠거니와 우선 오늘 저녁에는 이렇게나마 먹고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누려주시오. 문귀는 이만 퇴청(退廳)하겠소이다. 편히 쉬시구려. 허허허~!”
현령은 이렇게 말하고 휘적휘적 안채로 사라졌다. 그러자 자원이 우창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싸부는 역시 사람을 가르칠 적에 참으로 숨겨진 비기(秘技)가 소리도 없이 등장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어쩜 그렇게 구구절절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로 점철(點綴)되는지 옆에서 보기에도 감탄이 절로 나와요. 그러니 현령 나리가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호호호~!”
“그런가?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로구나. 하하하~!”
이렇게 말하면서 지루했을 여정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야 뜻이라도 알고 있으니까 재미있었다고 하겠지만 여정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앉아있으려니 힘들지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그러자 여정이 그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은 뜻을 알아도 재미있겠으나 비록 뜻은 모른다고 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말씀 하나하나에 진심이 가득하다는 것이 저절로 느껴져서 무슨 말이라도 모두 귀중하다는 생각으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영아(嬰兒)가 엄마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마음으로 통하는 감정이 있어서 빤히 바라보면서 방긋방긋 웃는 것과 같았습니다.”
여정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벌써 싸부의 후계자 노릇을 하고 있잖아? 그렇게 적절한 비유를 쓰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걸. 정말 기대가 되네. 호호호~!”
“누님도 참 과찬이십니다. 문득 그러한 모습이 떠올라서 말씀드렸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다니요. 하하~!”
“아니야, 나도 만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어? 여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앞으로 반드시 훌륭한 학문을 이루게 될 거야.”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모쪼록 누님께서 아낌없는 편달(鞭撻)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렴, 그나저나 젊은 사람이 시장하겠다. 어서 먹자. 음식은 모쪼록 따뜻할 적에 먹어야 맛이 나니까. 정성스럽게 차리기도 했구나. 더구나 감로홍도 빠트리지 않고 챙겨 왔으니 더욱 고마울 따름이네. 호호~!”
“고맙습니다. 우선 스승님께 한 잔 따라 올리겠습니다.”
여정은 이렇게 말하면서 술주전자를 들어서 우창의 잔에 따라주고 이어서 삼진에게 따르고 자원에게 가득 부어줬다. 그것을 본 자원도 주전자를 들어서 여정의 잔에 따라주려고 하자 여정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스승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술은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이미 가슴 속은 뜨거운 혈기로 불타오르고 있으니 조금도 개의치 마시고 즐겁게 드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자 자원도 더 권하지 않고 맛있게 볶은 닭다리를 잡고 뜯으면서 술잔을 들여서 우창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오늘은 순전히 싸부 덕분에 얻어먹으니 더 맛이 좋아요. 이것도 기념할 일이니 같이 건배해요. 호호~!”
우창과 삼진도 잔을 들고 건배했다. 여정은 수정과를 담은 그릇을 들고 건배했다.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우창도 배가 고팠던지 마련된 음식들이 모두 맛있어서 시간은 비록 늦은 밤이었지만 다소 과식했다. 맛있는 술까지 곁들이니 마음도 몸도 느긋해져서 취하는 줄도 모르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나 잤는지 해가 중천에 걸리고서야 밖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잠이 깼다. 문을 열어보니 시종이 향긋한 차를 쟁반에 가져와서 내려놓고는 절하고 물러갔다. 대접하는 자세가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아무래도 현령의 특별한 지시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은 미안했으나 또한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내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싸부, 푹 주무셨어요? 이제야 일어나셨으나 말이에요? 호호~!”
고개를 들어 돌려보니 자원이 밖에서 한바퀴 산책하고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그래, 이제 일어나서 차를 마시고 있으니 들어와 같이 마시게.”
“마침 목이 말랐는데 잘 되었어요.”
이렇게 말한 자원이 방으로 들어와서 따뜻한 차를 후후 불어가며 후루룩거리고 마셨다. 목이 마르기는 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어제 과음을 했지? 내 그럴 줄 알았어.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도 동의하며 말했다.
“당연하죠. 그렇게 맛있는 술을 사양하고 마시지 않으면 주신이 노하실 거예요. 호호호~!”
이렇게 담소하는 사이에 현령이 찾아와서는 작별 인사를 했다.
“이렇게 며칠을 옆에 모시고 공부하고 싶으나 부득이 외무(外務)가 생겨서 나가봐야 하게 되었으니 즐거운 여행길이 되시고 다음에 또 지나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들려서 귀한 가르침을 주시기 바라오. 아마도 이번 일을 해결하려면 며칠이 걸릴 듯하니 다음 기회를 봐야 하겠소이다. 허허~!”
정성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본 우창도 얼른 일어나서 답례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지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 내내 강령하시기 바랍니다. 후한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미리 작별인사를 마친 현령은 관군들을 대동하고 바삐 나갔다. 아마도 무슨 사건이 발생했던 모양이지만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그것은 현령의 책무인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