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제42장. 적천수/ 18.열리고 닫히는 까닭

작성일
2024-05-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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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2. 적천수(滴天髓)

 

18. 열리고 닫히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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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열정은 백차방으로 옮겨붙어서 여전히 활활 타올랐다. 누구보다도 흥분한 사람은 채운(彩雲)이었다. 옆에 조용히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던 자원(慈園)에게 상기된 어조로 말했다.

언니, 오늘은 어쩜 그렇게 신들린 듯이 말하던지 흡사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니까요. 채운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혼자 속으로만 익히고 있다가 대중 앞에서 멋지게 발표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심으로는 약간 서운하기도 했잖아요. 왜 평소에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채운이 따지기라도 하고 싶다는 듯이 볼멘소리로 말하자 자원이 웃으며 채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오해하지 말아 그런 게 어디 있어. 호호! 그냥 평소에는 조각구름처럼 제멋대로 떠다니던 생각들이 문득 지남철(指南鐵)에 쇳조각들이 모여들듯이 정리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어? 그래서 생각이 나는 대로 말을 해 봤는데 태사님께서도 말이 된다고 하셔서 다행이다 싶었을 뿐이야. 호호호~!”

그랬군요. 정말 감동이었어요. 천간(天干)의 이치가 심오하다고는 여겼고, 앞서 목화(木火)에 대한 이치를 배우면서도 감탄했는데 오늘 무토의 설명을 들으면서 완전히 놀라서 자빠질 지경이었거든요. 채운이 평소에 생각하기에 천간(天干)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므로 무토(戊土)의 작용도 지상(地上)의 생명을 챙겨주는 것까지만 생각했을 뿐 우주의 별들조차도 그 영향권 안에 있다는 것을 꿈엔들 상상했겠어요. 그러고 보니까 우주(宇宙)의 허공계(虛空界)를 장악하는 천간에서 유일한 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목화금수(木火金水)를 이 땅에 꽁꽁 묶어두고서 허공의 질서를 잘 관리하는 세심(細心)하고도 정이 넘치는 부친(父親)과 같은 무토의 능력에 푹 빠지겠어요. 호호~!”

채운은 새로운 발상(發想)과 시선(視線)의 놀라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우창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수경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스승님도 일간(日干)이 무토(戊土)잖아요? 오늘의 풀이에 더욱더 공감이 많이 되셨겠다는 생각이 되는데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우창은 수경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이 무진(戊辰)이라는 것을 문득 떠올리고서 웃으며 말했다.

, 그랬나? 잊고 있었는데 말하니 알겠군. 다만 오늘 공부한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천간(天干)의 도리(道理)는 모두가 자연의 관점을 풀이하는 것이니 사주와는 연결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하하~!”

그런가요? 수경은 무토로 태어난 사람은 어딘가에서 그러한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어차피 일간(日干)의 영향(影響)도 작용을 할 것이니까요. 스승님을 뵈면, 항상 제자들을 챙기고 구석구석까지 올바른지를 살피는 것을 생각하면서 중정(中正)의 의미를 이해한걸요.”

수경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가 싶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천지만물(天地萬物)에는 저마다 십간(十干)의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므로 완전히 무관하다고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하겠구나. 그래서 무토(戊土)는 걱정이 많고 고독하고 생각할 것이 많은가 보다. 하하하~!”

이렇게 차를 마시면서 공부의 뒷이야기를 하는 것도 정리에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서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즐기도록 하고 우창은 서재로 돌아가서 오늘 배운 대목들을 생각하면서 정리했다.

 

다음날, 또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예전과 다름없이 한 자리에 모인 제자들을 앞에 두고서 모두가 현담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잘 쉬셨는가? 오늘은 어디 진명(眞明)에게 다음 구절을 풀이해 보라고 할까?”

현담의 눈에 들어온 진명에게 말했다. 그러자 진명이 얼른 일어나서 말했다.

태사님, 오늘은 진명이 감당할 수가 없어요. 어제 자원의 풀이를 듣고서 충격을 받았는데 지금까지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아무래도 올바른 풀이를 할 수도 없을 거예요. 그래서 사양하겠어요.”

활발한 진명조차도 다음 구절에 대해서 풀이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자 이번에는 시선이 백발에게로 향했다. 처음부터 백발이 현담을 바라보면서 눈빛을 반짝였기 때문에 현담도 백발의 의견을 들을 생각했는데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짐짓 자신이 없어 보이는 진명에게 말을 던져봤던 것이기도 했다. 백발이 일어나서 합장하고 말했다.

태사님의 말씀을 받들어서 미력(微力)이나마 힘써 풀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의 대목은 정흡동벽(靜翕動闢)’입니다. 이것은 오행의 이치가 아니라 음양의 내용이라서 나름대로 소견을 말씀드릴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우선 동정(動靜)이 등장합니다. 음정양동(陰靜陽動)의 이치야 모두 알고 계실 것이고요. ()하면 닫히고, ()하면 열린다는 이치는 계절(季節)의 순환으로 이해했습니다. 춘하(春夏)의 봄과 여름에는 천기(天氣)를 열어서 만물이 활동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추동(秋冬)의 가을과 겨울에는 반대로 천기(天氣)를 닫아서 만물은 휴식에 들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 구절을 보기 전에는 하늘의 태양이 그 일을 맡은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어제 기중차정(旣中且正)’을 배우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뜻이 이어지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백발의 표정이 평소처럼 능글거리는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고 진지해진 것을 살펴보면서 우창도 내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서 공부의 발심(發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발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로 미뤄서 생각해 보건대, 비단(非但), 계절의 의미만은 아닐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생도 같은 이치가 그대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겠고, 하루살이와 같은 미물(微物)조차도 흡벽(翕闢)의 이치가 작용한다고 하겠습니다. 별것은 아니나 벽()으로 시작하지 않고 흡()으로 시작한 것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에서 동()이 나와야지 동에서 정이 나올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호흡(呼吸)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막 출생한 아기가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릴 적에도 처음에는 내어 쉬는 호()여야만 하고 그다음에 비로소 들이쉬는 흡()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정흡동벽(靜翕動闢)’은 호흡을 말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지(大地)도 호흡합니다. 그래서 순간(瞬間)마다 새롭게 깨어나는 것은 들숨이니 생()이요 날숨은 멸()이기 때문이지요. 어제저녁에 잠이 오지 않아서 오늘 공부할 대목을 살펴보다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무토(戊土)는 그 자체가 삶임을 깨달았습니다.”

대중들은 백발의 걸걸하면서도 진심이 가득 어린 말을 들으면서 마음으로 정흡동벽의 네 글자를 읊었다. 그러자 백발이 이번에는 다음 구절을 풀이했다.

다음의 구절은 앞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내용입니다. ‘만물사명(萬物司命)’이 그것입니다. 만물(萬物)은 목화금수(木火金水)의 일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거나 생명이 없거나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물을 사명(司命)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명(司命)’은 사람의 생명을 관장(管掌)하는 문창성(文昌星)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생사(生死)를 관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로 미뤄서 알 수가 있는 것은 무()의 존재를 단순하게 높은 산이라고 해서는 아무것도 깨달을 것이 없겠다는 이치입니다. 이렇게 여덟 글자의 뜻을 음미하느라고 밤을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명서(命書)를 여러 권 읽었습니다만 이러한 글은 본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우창 스승님께서 그리도 소중하게 여기는 의미를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지요. 단순하게 사람의 연월일시(年月日時)를 풀이하여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논하는 차원(次元)의 가르침이 아니라 더 높은 곳에 있는 이치를 두 손에 움켜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이 많은 백발입니다. 태사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백발이 합장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백발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본 현담이 이번에는 우창을 향해서 물었다.

어떤가? 백발이 풀이한 내용에 더 보탤 것이 있으면 어디 우창이 거들어 주게.”

현담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일어나서 합장하고 말했다.

백발의 깨달음에 우창이 특별히 더 보탤 것이 없을 정도로 깊은 이치를 잘 파악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간지의 이치는 깊이 공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오행에 대한 통찰력(統察力)이 있어서인지 핵심(核心)을 잘 파악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정흡동벽(靜翕動闢)’이 대지가 호흡하는 소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니 무슨 말을 하더라도 군더더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창도 이렇게 인정하자 이번에는 현담이 대중을 보면서 말했다.

대중은 잘 듣게.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적천수(滴天髓)의 깊은 뜻을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그대들의 큰 복이라고 해야만 할 것이네. 내가 여기에 한 마디만 더 보탠다면 심리적(心理的)으로 볼 적에 무(戊土)는 십성이 편인(偏印)에 해당한다.”

이렇게 말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대중도 따라서 같이 차를 마시고 목을 축이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편인(偏印)은 무()의 본질이라고 했지. 그래서 편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본다면, ()은 편재(偏財)인 것과 대비를 해 볼 수가 있겠군. 갑은 앞으로만 내달리는 천둥벌거숭이라고 한다면 무는 뒤에서 그 갑이 행여라도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역할을 하지. 그래서 미리 길 앞에 있는 돌을 치우고 파인 곳을 메우는 일을 한단 말이네. 이것이 결국은 무()가 하는 일이고 만물을 살리는 존재의 역할임을 함께 생각한다면 그대들의 십성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질 것이네.”

현담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겠습니다. 십성의 응용을 보면 편인을 의약(醫藥)으로 대입하고 성직자(聖職者)로도 적용합니다. 나아가서 대대로 이어저 온 조상(祖上)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십성의 의미를 무()에서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창의 질문에 현담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과연 우창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한 것 같군. 성직자인 화상(和尙)이나 도사(道士)는 결국 중생의 마음을 치유(治癒)하는 의원(醫員)이 아니겠는가? 몸에 생긴 불균형을 찾아서 바로잡아 주는 것은 의자(醫者)이고, 마음에 생긴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것은 수행자(修行者)들이 아니겠나? 그리고 이들을 모두 두 글자로 표시한다면 편인(偏印)’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네. 더구나 어제 자원이 말하지 않았나? 몸의 불균형을 지켜주느라고 피부가 벗겨지면 딱지를 만들어서 보호하는 창[]이 되고 호흡기(呼吸器)나 소화기(消化器)로 침입한 해충(害蟲)이나 독물(毒物)은 칼[丿]이 퇴치한다고 말이지. 이것이야말로 의왕(醫王)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의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심의(心醫)와 신의(身醫)가 그것이지. 그리고 이러한 의왕조차도 무()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편인이 틀림없음을 증명(證明)하는 것이라네. 허허허~!”

우창은 역시 현담의 폭넓은 식견에 감탄하면서 말했다.

과연 스승님의 안목은 제자들의 등불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콕 짚어서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러한 말씀은 실제로 사주를 풀이할 적에도 그대로 적용될 테니 살아있는 가르침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겠습니다. ()를 통해서 편인의 영역에 도달하고, 다시 마음을 다스리는 경지까지도 넘나들게 됩니다. 마음을 다스리려면 번잡한 마을을 떠나서 고요한 곳을 찾는다는 의미도 그대로 무()를 찾아가라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무를 산()이라고 한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이 웃으며 말했다.

누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다만, 밝은 이는 그러한 의미로 고산(高山)을 말했건만 어리석은 제자는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는 단지 무즉산(戊卽山)’이라고만 기억(記憶)하고는 그것이 전부인 줄로 알고 다시 그것을 전해 주고 또 전해 받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약()을 독()으로 만든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허허허~!”

현담의 말에 우창도 확연히 깨닫는 것이 있었다.

맞습니다. 바로 그것이었군요. 가르치는 스승은 어떻게라도 어리석은 제자가 자연의 이치를 잘 깨닫게 하려고 말했는데 지월견지(指月見指)의 우를 범하게 되니 결국은 아는 만큼만 보이는 소치(所致)가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깝기는 하나 실은 그것조차도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네. 갑목(甲木)이 뻗어나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려고 나무를 가리키니 ()은 큰 나무라고만 적어놓고 묻지도 궁리하지도 않고, 을목(乙木)이 식물임을 가르치려고 화초(花草)를 가리키니 이번에는 의미는 생각할 줄을 모르고 단지 ()은 초목(草木)’이라고만 적어놓을 따름이란 말이네. 그러니 빛을 가르치려고 태양을 가리키면 , ()은 태양이로구나라고 생각하다가는 또 정화(丁火)의 열기(熱氣)를 가르쳐 주려고 촛불을 가리키니 이번에는 ()은 촛불이요 등불이다라고만 할 따름이니 어리석은 제자에게 자연의 이치를 가르친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네. 허허허~!”

현담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었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얼마나 녹녹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본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그래서 제대로 알아듣는 제자를 만나면 그것도 가르치는 자의 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득 공자(孔子)가 안연(顔淵)을 잃고서 그렇게나 비통(悲痛)에 잠겼을 것으로 생각해 봤다. 스승의 입장을 겪어보지 않으면 무슨 소식인지 알 방법이 없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남을 가르쳐 보고 나서야 스승의 거룩함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아버지가 된 다음에서야 부친의 노력을 알게 되고 아이를 낳아보고 나서야 모친의 신고(辛苦)함을 깨닫게 되는 것도 전혀 다르지 않은 것임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창의 표정을 본 현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창도 제자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으니 잘 알고 있구나. 이제 또 다음 구절을 살펴볼까?”

이렇게 말한 현담이 이번에는 진명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는 사양했으나 다시 현담이 묻자 이번에는 일어나서 말했다.

태사님께서 거듭 물으시니 부족하지만 풀이해 봐야 하겠어요. 다음의 구절은 수윤물생(水潤物生)’이에요. ‘수분(水分)이 윤택(潤澤)하다는 것은 과다(過多)하거나 부족(不足)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그렇게 되면 만물은 생()을 받아서 잘 자라게 된다는 뜻으로 깨달았는데 이것이 올바르게 이해한 것인지요?”

현담이 말없이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이 앞의 구절보다는 다소 쉬워서인지 잘 이해하고 있는 진명을 보면서 동의했다. 그러자 진명이 다시 이어서 풀이했다.

다음은 화조물병(火燥物病)’입니다. 뜻은 어렵지 않아서 화기가 과다해서 조열(燥熱)하게 되면 만물이 질병(疾病)을 얻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어요. 이 두 구절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무()의 수행(隨行)에 수화(水火)가 반드시 적절하게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자신의 본성대로 생장(生長)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과다(過多)하거나 부족(不足)하면 안 되는 것이야말로 수화이기 때문에 무토를 도와야만 한다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제자의 공부는 여기까지에요. 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고는 합장하고 앉았다. 기본적인 의미는 풀이를 잘한 것으로 봐도 되겠는데 현담이 이번에는 현지(玄智)를 지적하면서 말했다.

어디, 현지의 의견도 좀 들어볼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게.”

현지의 표정을 보던 현담이 이렇게 기회를 주자 비로소 현지가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말했다.

태사님께서 물으시니 생각해 본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확인을 받고 싶습니다. 무토(戊土)가 관장할 수가 없는 것이 수화(水火)가 아닐까 싶습니다. 목금토(木金土)는 물질이 고정(固定)되어서 통제할 수가 있다고 한다면 수화는 유동적(流動的)인 형태를 하고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까요. 불은 무토의 견제(牽制)를 전혀 받지 않고 위로 타오르거나 폭염(暴炎)을 만들거나 하는데 이러한 상황을 무토가 관리할 방법이 없어요. 땅바닥이 가뭄으로 갈라서 거북이 등처럼 터지는 것을 보면서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이잖아요? 그래서 화조물병을 말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이것은 사람의 몸에서도 같은 의미로 이해했어요. 심화(心火)가 과다하게 차오르면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그렇게 되면 몸의 혈액은 말라서 끈적해지고 체액(體液)은 고갈될 수밖에 없으니 성격으로 본다면 인내심이 부족해서 화를 잘 내고 화병(火病)에 걸려서 타고난 수명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현지가 이렇게 자기의 생각을 말하자 현담도 맞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서 동조했다. 그러자 현지가 다시 말했다.

오행(五行) 중에서 수화(水火)는 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균형(均衡)을 이루지 못하고 때로는 태과(太過)하고 또 때로는 불급(不及)하게 되기도 하는데 수()도 마찬가지로 과다(過多)하면 온 산천은 홍수(洪水)에 잠겨서 동식물(動植物)의 생존을 위협하게 됩니다. 현지가 감탄하는 것은 수화(水火)를 콕 짚어서 무토(戊土)의 일이 잘되도록 협조해야 한다는 의미로 그 두 성분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는 거예요. 인체도 수분(水分)이 부족하게 되면 즉시로 탈수증(脫水症)이 발생해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심하면 쓰러져서 죽음에 이르기도 하니까요. 만물의 생존을 바라고 열심히 외호(外護)하는 무토(戊土)임을 알고 나서 살펴보니까 그 이치가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네요. 결국 무토의 존재는 목토금(木土金)을 위해서 수화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도 되겠어요.”

현지가 이렇게 말하자 현담도 차를 마시다가 잔을 내려놓고는 답했다.

오호! 놀랍군. 그러니까 목화금수(木火金水)를 모두 챙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수화(水火)는 오히려 만물의 영속(永屬)을 위해서 무토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잖은가? 현지가 깊은 사유(思惟)를 했구나. 허허허~!”

현지가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염재에게 말했다.

어디 무토의 마지막 구절은 염재가 풀이해보거라.”

오랜만에 지명(指名)을 받은 염재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지막 구절을 풀이했다.

! 태사님께 말씀드립니다. 마지막 구절은 약재간곤(若在艮坤)’입니다. 실로 이 마지막 구절은 없어도 되는 것인데 줄을 맞추기 위해서 써넣은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주역의 팔괘에서 간()은 양토(陽土)이고 곤()은 음토(陰土)입니다. 주석(註釋)을 보면 인신(寅申)을 뜻한다고 했는데 다음 구절을 보면, ‘파충의정(怕衝宜靜)’입니다. ‘충이 두려우니 안정됨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왜 하필이면 인신(寅申)만 그렇겠습니까? 사해(巳亥)를 만나도 어차피 두렵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해 봤습니다. 다만 무사(戊巳)와 무해(戊亥)의 간지(干支)는 없기에 무인(戊寅) 일주거나 무신(戊申) 일주일 경우를 놓고 말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한 것을 종합하면 하늘의 무토에게 인신충(寅申沖)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심오한 무토의 이야기에 품격(品格)이 맞지 않아 보입니다. 혹 경도(京圖)는 이러한 하늘의 무토에 대한 소식을 헤아리지 못한 부분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영감(靈感)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이치를 써놓았는데 왜 그랬는지를 해석하지는 못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본 것입니다. 이것은 말이 되는 것일까요?”

여기까지 말하던 염재가 현담을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미이고 답을 듣고 싶다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러자 현담이 말했다.

오호! 염재의 생각이나 오행원의 제자들 수준이 경도를 능가(凌駕)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인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인의 생각만 좇아가다가 말면 그것은 후생의 예의가 아니지. 경도가 적천수(滴天髓)’까지 길을 닦아놓았으면 그 길을 의지해서 우리는 신적천수(新滴天髓)’로 이어지고, 또 다음 세대(世代)에서는 우신적천수(又新滴天髓)’로 전개(展開)하고 발전(發展)해야만 고인의 노력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란 말이네. 그러니까 스스로가 자만하여 기특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까지 안내를 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를 할 따름이지. 허허허~!”

정말 태사님께서 주시는 가르침의 깊이가 심연(深淵)과 같습니다. 잠시 우쭐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역경(易經)에서도 화천대유(火天大有)의 다음에 지산겸(地山謙)괘를 놓았는가 싶습니다. ‘대유(大有)’에서 천하를 얻었다면 그다음에는 ()’에서 겸허(謙虛)를 말하고 있는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옳지~! 허허허~!”

태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오행원의 제자들은 지금 화천대유(火天大有)의 경지에서 간지의 놀이에 푹 빠져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잠시 경도조차도 안중에 없는 듯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하룻강아지가 범이 무서운 줄을 모르는 것과 흡사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래야지. 그렇다면 다시 옷깃을 여미고 이 구절을 생각해 보려나?”

염재는 현담의 말에서 아직도 뭔가 살피지 못한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곰곰 생각해 봤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떠오르는 것이 없자 합장하고 말했다.

태사님께서는 뭔가 더 찾아보라고 하십니다만 눈이 어두워서인지 다 찾지는 못하겠습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차를 한 모금 마신 현담이 고월에게 말했다.

인신(寅申)의 이야기도 틀린 것은 아니네. 다만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것은 정흡동벽(靜翕動闢)’과 연관이 있지. 정흡(靜翕)의 순간(瞬間)은 입추(立秋)로 이어지는 신월(申月)이고 동벽(動闢)의 순간은 입춘(立春)으로 이어지는 인월(寅月)이 아니던가? 고월의 의견은 어떤가?”

고월도 약재간곤(若在艮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가 현담의 물음을 듣고는 일어나서 대답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정흡동벽을 말씀하시는 바람에 막혔던 철벽(鐵壁)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역시 경도의 가르침에는 겹겹의 진리를 품고 있는 듯한 느낌조차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중요한 것은 시작점(始作點)입니다. 처음에 아기가 일어나려고 애를 쓸 적에는 옆에서 부모가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도와주지 못하고 혼자서 뒹굴게 둔다면 마침내 두려움으로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파충의정(怕衝宜靜)’이라고 했으니 충돌은 두렵고 조용한 것이 마땅하다고 한 것이겠습니다. 또 누군가는 새로운 일로 사업을 일으키고자 하는데 누군가 옆에서 격려해 준다면 오히려 자신감을 얻어서 발전하겠지만 기를 꺾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이것은 인월(寅月)의 동벽(動闢)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고월의 말에 현담도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호! 그리고?”

누군가 나이가 들어서 하던 일을 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쉬고자 할 적에 옆에서 아내가 그래 애 많이 썼으니 이제 편히 쉬세요.’라고 한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지는 않고 오히려 구박하면서 재물을 벌지 못하면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고 도리어 면박(面駁)이라도 주게 된다면 아마도 편히 쉬고 싶지만 쉬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만 할 수도 있을 것이니 이것은 신월(申月)의 정흡(靜翕)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해야 할 때는 일을 하는 것이 좋고, 일을 쉬고 싶을 적에는 쉬는 것이 올바른 자연의 질서임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역류(逆流)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파충의정(怕衝宜靜)이 아니겠습니까? 흐름을 끊는 것은 두려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그 뜻에 따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니 자칫 무토(戊土)가 무인(戊寅)이거나 무신(戊申)으로 태어난 일주가 되어서 충돌(衝突)하면 불길(不吉)하다는 의미로만 생각했습니다. 큰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고월의 말을 듣고서 현담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염재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 이제야 태사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해했습니다. 약재간곤(若在艮坤)의 의미가 인신충(寅申沖)이기도 하고 진술충(辰戌沖)과 축미충(丑未沖)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간방(艮方)에는 축인(丑寅)이 거()하고 곤방(坤方)에는 미신(未申)이 거하는 까닭입니다. 아울러서 봄이 시작되는 것과 가을이 시작되는 것까지도 함축(含蓄)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어느 한 가지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님을 헤아리고 나서야 비로소 경도의 깊은 사유(思惟)를 깨달았습니다. 역시 스승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것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신중(愼重)하게 관찰(觀察)하고 궁리하겠습니다.”

이렇게 가르침에 감사하자 다른 제자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오늘의 공부는 이렇게 하고서 마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서 백차방에 모인 제자들도 무토(戊土)편의 공부로 인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운지 열띤 토론이 저녁까지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