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 제42장. 적천수(滴天髓)
15. 만물(萬物)의 융합(融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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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님께 말씀드립니다. ‘정화유중(丁火柔中)’이라고 했는데, 정(丁)은 화(火)입니다. 여기에 있는 화(火)는 불 보듯 빤한 것인데 왜 써놨는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것은 정(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행(五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백천 가지의 이론들을 모두 통제하는 관부(官府)는 오행궁(五行宮)이고, 우리 오행원(五行院)도 실은 겸손한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오행궁이라고 했어야 옳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원춘의 말에 현담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으로 봐서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 유중(柔中)의 뜻은 을목수유(乙木雖柔)와 서로 통하는 유(柔)라고 여겨집니다. 유(柔)에는 ‘온유(溫柔)하다’는 뜻과 ‘복종(服從)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글자의 생긴 것으로 봐서는 나무[木] 위에 창[矛]이 있습니다. 나무는 창을 만나면 복종해야 합니다. 다만 칼[刀]이 아닌 것이 좀 의아하기는 합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을(乙)은 나무가 아니라 몸이라는 것을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몸은 창에 찔리면 죽게 되는 까닭입니다. 다른 의미로는 병(丙)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오행은 양의 기(氣)가 앞서고 음의 질(質)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을(乙)은 갑(甲)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도 같이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창은 내심 감탄했다. 원춘의 사유가 이렇게까지 깊은 줄은 생각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항상 배우는 것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도 생각하면서 현담이 여러 제자의 의견을 골고루 들어보는 방법의 특출(特出)한 점을 깨달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담이 원춘에게 물었다.
“오호! 그것까지도 생각했더란 말인가? 오행원에 숨은 보석이었군. 유(柔)의 의미를 그렇게까지 파고드는 사람은 나도 처음이네. 허허허~!”
현담의 칭찬에 원춘이 합장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변변치 못한 소견이나마 과찬을 해 주시니 더욱 열심히 정진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겠습니다. 유(柔)가 따른다고 했는데 그 따르는 것은 중(中)입니다. 그래서 유중(柔中)이 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중(中)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고 생각하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오랜 시간 궁리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심장(心臟)이 떠올랐습니다. 심장은 인체(人體)의 중앙(中央)에 있으면서 생명(生命)을 관장(管掌)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항상 중간(中間)의 균형(均衡)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심장이 과다하게 뛰거나 느리게 뛰면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적중(的中)한 속도로 균일(均一)하게 뱃속의 태아 시절부터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간단(間斷)없이 뛴다는 것을 생각하고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는 태사님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한 원춘이 현담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자 현담이 만족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명철(明哲)한 학자로다. 유중(柔中)을 참으로 적확(的確)하게 풀이했으니 더 보탤 말이 없네. 허허허~!”
현담이 인정하자 원춘이 다시 생각했던 말을 이어갔다.
“고맙습니다.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님을 비로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을(乙)은 신체(身體)가 되고, 정(丁)은 신체를 살아있도록 혈액(血液)을 순환시키면서 생명을 이어주는 역할(役割)을 맡았으니 항상 중심(中心)을 갖고서 주어진 업무(業務)에 충실해야 합니다. 감정이 격해져도 심장은 제 자리에서 뛰어야 하고, 우울하고 힘들어도 또한 심장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중간(中間)을 지켜야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로소 경(庚)의 호흡(呼吸)에 따라서 을(乙)의 생명이 이어지고, 정(丁)은 을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도록 온몸에 온기(溫氣)를 전하는 막중한 일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멋지군. 허허허~!”
오늘은 현담도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원춘의 설명을 들으면서 연신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구절은 ‘내성소융(內性昭融)’이니, ‘내성(內性)’의 의미는 음화(陰火)이기에 양화(陽火)처럼 그 본성(本性)이 밖을 향하지 않고 안에서 작용한다는 의미로 볼 적에 병화와는 상대성(相對性)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병화(丙火)는 겉으로 모든 것을 발산(發散)하는 것과 비교해서 정화(丁火)는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수렴(收斂)하는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원춘의 말에 현담이 짐짓 물었다.
“아니, 정(丁)이 내성이라면 병(丙)은 외성(外性)인가?
“그렇습니다. 빛은 안을 향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밖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품(性稟)이라고 하기보다는 지향(指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리겠습니다. 그래서 외성이라고 해도 안 될 것은 없으나 외향(外向)으로 말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가? 글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뜻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로구나. 잘 생각했네. 계속해서 풀이해 보게.”
“다음의 구절은 ‘소융(昭融)’입니다. 소(昭)는 환하게 밝은 모양이고, 융(融)은 서로 다른 것을 한곳에 모아서 녹이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녹이고 태워서 하나로 만들 수가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내성소융(內性昭融)’을 풀이하면, ‘안에는 무엇이든 녹여내는 불덩어리와 같은 성분(性分)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한다면 용광로(鎔鑛爐)라고도 하겠습니다. 소융(昭融)은 참으로 정화(丁火)다운 표현이고 그래서 경도의 의도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마치 갑목(甲木)편의 ‘탈태요화(脫胎要火)’나 병화(丙火)편의 토중생자(土衆生慈)와 함께 정화(丁火)를 대표하는 구절로 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두 글자를 계속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원춘이 특히 내성소융에 대해서 말할 떼의 목소리에는 확신에 가득한 힘이 들어 있었다. 그 말을 듣고는 현담이 다시 물었다.
“원래 통설(通說)은 ‘병화(丙火)는 태양(太陽)이고 정화(丁火)는 등촉(燈燭)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경도는 왜 정화에 대해서 말하면서 등촉이라는 의미는 말하지 않고 오히려 소융(昭融)을 말했는지 나도 궁금하군. ‘밝게 녹이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두 가지의 관점으로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하나는 물질적인 부분입니다. 물질적으로는 구습(舊習)을 녹여서 새로운 문명(文明)을 창조(創造)하는 것입니다. 묵은 것을 녹여서 바꾸지 않고서는 새로운 물건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문명이라고 합니다. 돌에 새기고 나무에 새기던 문자는 종이에 붓으로 기록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야산(野山)을 누비면서 힘들게 열매를 따던 시절이 지나가고 이제는 농장(農場)에서 키우는 곡식이 되었고, 동물을 사냥해서 식량(食糧)으로 삼다가 가축(家畜)도 사육(飼育)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생활의 편리성을 추구한 결과라고 하겠지만 실은 소융(昭融)의 결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득한 옛날에는 돌을 주워서 도구로 삼다가 그것을 다루기 편하게 다듬어서 사용했습니다. 그것을 석기시대(石器時代)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이제는 자연에서 습득(拾得)한 철광석(鐵鑛石)을 불에 녹여서 청동(靑銅)을 얻었고, 다시 강철(鋼鐵)을 얻게 되어서 더욱 날카로운 창이나 칼이 탄생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는데 정(丁)만이 가능하고 병(丙)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룰 수가 없는 영역입니다.”
“아니, 그대의 풀이를 들어보니 경도보다 더 뛰어난 견해가 보이는군. 이치에 부합하고 현실에 타당하니 아무리 반박(反駁)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구나. 그렇다면 정신적인 정화(丁火)에 대해서도 들어보겠네.”
현담의 말에 원춘은 감사의 표시로 합장을 한 다음에 다시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다른 제자들은 숨소리도 없이 원춘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실은 정화(丁火)의 위력(威力)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성(內性)이라고 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궁리하다가 문득 병(丙)은 정(丁)에서 나왔겠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음체양용(陰體陽用)의 이치에 고스란히 부합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을(乙)에서 갑(甲)이 생겼다는 것도 유추(類推)할 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식물(植物)에서 동물(動物)이 나오게 되었다고 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식물이 움직이면 동물이 되는 것이 분명한 까닭입니다.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가 되므로 지금은 생략하겠습니다.”
원춘이 갑을목(甲乙木)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는 듯했으나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는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촛불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초에 불을 붙이면 초가 녹으면서 불이 됩니다. 만약에 초가 녹지 않으면 불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모습에서 소융(昭融)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초의 심지에 불이 붙어서 타오르니 이것이 정화(丁火)입니다. 그러므로 정화가 등촉(燈燭)이라고 한 고인의 통설도 결코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촛불이 밝게 어둠을 밝히는 빛은 병화(丙火)라는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원춘이 과문(寡聞)해서일 수도 있겠으나 어디에서도 그러한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체용(體用)에 대한 관점을 얻었습니다. 병(丙)은 정(丁)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는 너무나 통쾌해서 사흘 동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병정(丙丁)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오호! 점입가경(漸入佳境)이로군. 그래서?”
“이론(理論)이란 한 곳에만 맞고 다른 곳에서는 어긋난다면 그것은 정설(定說)이 될 수가 없습니다. 촛불을 보면서 깨달았던 이치를 다른 곳에도 적용을 시켜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골몰(汨沒)했습니다. 그러다가 인신(人身)으로도 적용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인체에서는 장부론(臟腑論)이 있으니, 오장육부(五臟六腑)가 그것이 아닌가? 정(丁)은 심장(心臟)이요 병(丙)은 소장(小腸)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대입을 해 봤다는 말이지?”
“처음에는 당연히 그렇게 대입하면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장(心臟)은 뜨거운 것이므로 정(丁)은 문제가 없겠으나 소장(小腸)을 빛으로 보기에는 원춘의 부족한 지식으로 아무리 답을 구해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좌절에 빠졌습니다. 혹시 도반 중에서 이 부분에 대한 이치를 알고 계신다면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의서(醫書)에서 심소장(心小腸)을 화(火)의 영역에 배치한 것에는 타당한 이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춘이 이렇게 말하면서 대중을 둘러봤다. 아무도 이에 대해서 응답이 없어서 다시 말을 이어가려고 하던 때에 마침 한 제자가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 사람은 춘매였다. 평소에 조용히 이야기만 듣고 있던 춘매가 손을 들자 제자들은 의아했으나 무슨 말을 할 것인지가 더 궁금해서 말하기를 기다렸다. 춘매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강당에 울려 퍼졌다.
“태사님 춘매(春梅)예요. 예전에 춘매에게 안마술(按摩術)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의 말씀이 떠올라서 말씀드려 보려고 해요. 병(丙)은 소장(小腸)이라고 하는 이유를 물어봤었거든요. 물론 당시에는 병(丙)이 광선(光線)이라는 의미는 전혀 모르고 있을 때였어요. 소장(小腸)은 백천(百千)의 일월(日月)을 밝혀놓은 것만큼이나 밝다고 했어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죠. 뱃속이 깜깜한 암흑(暗黑)임이 분명한데 소장이 밝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했으니까요. 원춘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떠올랐어요. 그래서 같은 생각을 했구나 싶었던 것이지요.”
춘매가 이렇게 말하면서 원춘을 바라보자 공감한다는 듯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 스승님의 말씀이 궁금합니다. 백천의 일월이라니 그것은 처음 듣는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원춘의 말에 춘매가 미소를 짓고는 설명했다.
“음식(飮食)을 먹으면 위(爲)에서 소화(消化)시킨 다음에 도달하는 곳이 소장이라고 했어요. 토(土)의 장부(臟腑)가 비위(脾胃)인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싶어요. 우주의 천기(天氣)인 무(戊)와 지물(地物)인 기(己)를 받아들인다는 이치는 모두 잘 이해하실 것으로 여겨지니까요. 여기에서 정(丁)의 역할은 계속해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혈액(血液)이 동맥(動脈)과 정맥(靜脈)을 순환하면서 몸의 구석구석에 신선한 피를 공급하고 못쓰게 된 것은 체외(體外)로 배출하게 되니까요. 이것은 마치 촛불이 타오르기 위해서 초를 녹이는 것과 같아요. 촛불이 타오르도록 녹이는 것은 기름 덩어리인데 그것을 인체에 적용하면 소장에서 만드는 것이에요. 소장에서 연료(燃料)를 만든다는 말이지요.”
원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는데 춘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니까 소장에서는 심장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지요. 더욱 재미있는 것은 소장이 하는 일이 단지 기름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던 춘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모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춘매를 다시 바라봤다.
“춘매가 저도 모르게 웃은 것은 문득 그 당시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서예요. 스승님께서는 믿을 수가 없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말을 못 알아듣는 제 모습을 보면서 웃으셨던 장면이에요. 호호호~!”
춘매는 웃었으나 대중 가운데서 웃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 감탄이 나올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춘매가 다시 진정하고는 말을 이었다.
“마치 밝은 대낮에 조금 전에 먹은 음식을 탁자 위에 펼쳐놓고 뼈로 보낼 것, 혈액으로 보낼 것, 근육으로 보낼 것은 물론이고 머리카락으로 보낼 것, 대소변으로 보낼 것, 치아로 보낼 것을 모두 구분한다는 거예요.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요. 스승님의 말씀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하려면 밝은 대낮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뭘 상상했는지 아세요? 씹어 삼켜서 이미 아무것도 구분할 수가 없이 죽처럼 되어버린 음식물을 뒤지면서 분류하는 자신을 떠올렸던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그 몰골이 어떻겠는지를 말이지요. 호호호~!”
춘매의 말을 듣던 현담이 물었다.
“백천의 불빛을 밝혀놓았다는 의미가 와 닿는군. 그렇다면 혹 그 불이 어두워지거나 심지어는 꺼질 수도 있겠는가? 문득 그게 궁금하군.”
현담의 말을 듣고 춘매가 답했다.
“당연하죠. 만약에 생각이 복잡해서 입맛이 없거나 몸에 과다한 열(熱)이 발생하거나 혹는 지나치게 한냉(寒冷)한 상황이 생긴다면 소장은 기능(機能)할 수가 없이 되죠. 그러면 음식물이 들어와도 제대로 분류하지 못해서 대소변으로 가야 할 것을 뇌나 폐로 보내기도 하고, 혈관으로 보내야 할 것을 오히려 소변으로 보낼 수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몸의 균형은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말죠. 이것을 중병(重病)이라고 해요.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죠. 만약에 소장의 불빛이 꺼져서 영양분(營養分)이 제대로 분류되지 못한다면 생명은 거기까지라고 해야죠. 그러니까 소장의 등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 줄을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은 그 의미를 모르고 지나치게 되잖아요. 호호호~!”
춘매의 말을 듣고 있던 현담이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오호~! 과연 웃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풍경이로군. 그러니까 깜깜한 뱃속에서 소장의 일하는 장면은 그렇게나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모든 음식물에서 필요한 영양분(營養分)을 분류하고 골라서 적재적소(適材適所)로 전달하니 과연 밝은 병화(丙火)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참 재미있는 스승이었네. 허허허~!”
“태사님이 공감해 주셨어요. 호호호~!”
“아무렴! 공감하고말고. 그러니까 원춘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오히려 오늘 원춘의 설명을 들으면서 춘매가 깨달았다는 말이지 않은가? 참 절묘(絶妙)하군. 허허허~!”
그때 원춘이 일어나서 말했다.
“이제야 왜 소장이 병(丙)인지를 확연(確然)히 깨달았습니다. 춘매의 설명이 아니었더라면 영원히 깜깜한 채로 의문만 갖고서 살아갈 뻔했습니다. 그리고 소장의 존재가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었다는 점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병화의 역할은 빛이 없는 곳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춘매의 이야기에서 원춘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춘매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자 원춘이 다시 말했다.
“귀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원춘이 생각했던 병(丙)은 밖으로 발산하는 것에서 겨우 찾았습니다. 그것은 안광(眼光)이었습니다. 심장(心臟)에서 얻은 기운은 눈으로 전달되어서 밝은 빛과 교감(交感)한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심장이 없이는 눈빛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했던 것이지요.”
원춘의 말에 현담이 다시 물었다.
“원래 눈은 간장(肝臟)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습니다. 다만 그것은 물질적인 눈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목(目)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사물을 식별(識別)하는 것은 안(眼)이라고 합니다. 물론 ‘안(眼)’자의 목(目)은 눈이고, 간(艮)은 한계를 말합니다. 간은 산(山)을 말하는 간산(艮山)의 뜻이니까요. 산이 없는 곳까지 볼 수가 있다는 의미인데 심장이 기능을 멈추게 되면 목(目)은 있으나 안(眼)이 없어서 아무것도 바라볼 수가 없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장애가 생겨서 시력(視力)을 상실한 맹인(盲人)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심장(心臟)의 정(丁)과 시력(視力)의 병(丙)으로 체용(體用)을 찾았던 것입니다.”
“오호! 그것도 일리가 있는걸. 소융(昭融)을 이해하는데 이렇게나 풍부한 상식을 얻을 수가 있다니 참으로 놀랍네, 놀라워! 허허허~!”
“더욱 놀라운 것은 인체의 병정(丙丁)만이 아닙니다. 이 땅의 병정화(丙丁火)도 놀라울 따름이니까요. 땅의 심장은 지하(地下)의 깊은 곳에서 뛰고 있을 것입니다. 마치 인체의 심장이 맥박(脈搏)을 갖고 있듯이 지하의 심장도 맥박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춘의 말에 현담도 흥미를 보였다.
“원춘의 사유(思惟)가 참으로 대단하군.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단단하고 차가운 땅에서 정화(丁火)를 찾았단 말로 들리는데 무슨 뜻인지 궁금하군?”
“태사님께서는 화산(火山)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지하에서 펄펄 끓는 용암(鎔岩)이 정화(丁火)이고, 그것이 분출(噴出)하는 것이 화산입니다. 그 말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지하에서는 심장에 해당하는 정화(丁火)가 벌떡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화산이 간헐적(間歇的)으로 불기둥을 내 뿜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심장의 맥박(脈搏)과 같기도 하니까요. 원춘은 이러한 것을 보면서 인체와 대지는 완전히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수목(水木)은 인체의 모발(毛髮)과 같고, 남북의 강하(江河)는 눈물과 혈액과 같으며, 지하의 용암은 심장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용암이 모두 식는다면 화산도 없고, 지진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이 땅에는 만물이 생존할 수가 없다는 것도 미뤄서 짐작해 봤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다가 내성소융(內性昭融)을 보는 순간 이러한 수십 가지의 의문들이 일순간에 녹아서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내성(內性)은 몸의 내부와 땅의 내부를 의미하고 소융(昭融)은 그렇게 녹여서 또 다른 힘으로 변화시키는 역량(力量)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원춘이 생각해 본 것입니다.”
긴말을 끝내고 원춘이 자리에 앉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대중들이 마음속으로 합장하고 감사했다.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관법을 이렇게 노력도 하지 않고 얻게 된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원춘의 말을 듣고 있었던 현담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로 원춘의 풀이를 인정하고는 안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안산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에서 을병정(乙丙丁)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 생각나는데 기문(奇門)의 삼기(三奇)를 설명해 주겠나? 을(乙)과 병(丙)에 대해서는 말해 줬으니 정(丁)도 설명해 보게.”
춘매와 원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진 느낌이 들었던 안산이었는데 현담이 갑자기 묻자 깜짝 놀라서 얼떨떨했다. 잠시 생각을 하고서야 삼기(三奇)를 설명하라는 뜻임을 알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태사님께 말씀드립니다. 물론 다른 도반들이 조금이라도 기문의 기본적인 이치에 대해서 이해를 돕도록 하신 말씀임을 알겠습니다. 정(丁)이 갑(甲)을 지키는 방법은 경(庚)을 누르는 것입니다. 병(丙)은 경(庚)을 공격하는 형식으로 제압하여 갑을 완벽하게 보호합니다. 그래서 맹렬(猛烈)하다고까지 했습니다. 다만 정(丁)은 음양(陰陽)이 다르기에 제압하는 힘이 다소 부드럽다고 보게 됩니다. 그래서 유중(柔中)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연(柔軟)하지만 중심을 지켜서 경(庚)이 갑(甲)에게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도 이해가 됩니다. 또한 앞에서 원춘의 설명대로 풀이해도 완벽합니다. 그리고 기문의 의미를 대입해서 이해한다고 해도 이렇게 그럴싸해 보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辛)도 갑(甲)에게는 반가울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갑(甲)을 돕는 을(乙)이 신(辛)을 보게 되면 그 힘을 다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정(丁)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다면 신(辛)은 조용히 한쪽에서 기회만 볼 따름이지 감히 앞으로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안산의 설명을 듣고 있던 현담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구절과도 연결이 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바로 그에 대한 풀이가 들어 있으니 함께 풀이하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안산이 이렇게 의견을 말하자 현담도 좋다고 수긍했다.
“다음 구절은 ‘포을이효(抱乙而孝)’입니다. 여기에서 을병정(乙丙丁)의 삼기(三奇)가 완성됩니다. 을(乙)을 만나면 효도(孝道)를 한다는 뜻이니 을을 지켜야 할 이유는 당연히 갑(甲)을 잘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이 그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경신(庚辛)은 정(丁)을 보면 무조건 굴복하게 되어 있으므로 정이 을(乙)에게 효도(孝道)하게 되는 것입니다. 효도라고 한 것은 부모를 봉양(奉養)하는 것인데, 갑을(甲乙)은 정(丁)의 어머니가 되는 까닭에 효도라고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병(丙)에게 효도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은 신(辛)을 만나면 병신합(丙辛合)이 되어서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까닭에 갑을(甲乙)을 살피는 마음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丙)은 효도를 못 하지만 정은 효도하게 되는 것이지요. 안산은 이 대목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태사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안산이 이렇게 말하고는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현담이 안산의 설명에 대해서 평을 했다.
“그렇구나. 포을이효(抱乙而孝)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줬으니 그 공덕이 지대(至大)하네. 여기에 더 추가해야 할 것은 없다고 봐도 되겠네.”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대중을 둘러봤다. 다음 구절을 누군가에게 시키려던 참이었다. 때마침 백발이 눈에 들어왔는지 물었다.
“그대는 처음 보는 것인가?”
그러자 백발이 일어나서 날아갈 듯이 삼배(三拜)를 올리고는 말했다.
“백발(百發)이 태사님을 뵙습니다. 오늘부터 청정한 모임에 동참하게 된 것을 무한(無限)의 복인 줄을 알겠습니다.”
“그런가? 머리도 아직 희지 않은데 백발이라니 웬 호인가?”
“여기에는 고사(故事)가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 처음으로 우창 스승님을 뵈었을 적에 점술로 겨루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던 추문성(鄒文盛)은 감히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의미로 백발도사라고 이름하고 골목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의 점술로 패배하고서는 스승님을 따라서 태산으로 가서 약간의 공부를 하게 되었고, 우연히 소주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마침 스승님께서 소주에 오신 것을 알았고, 더구나 적천수를 공부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발입니다. 하하하~!”
걸걸한 음성으로 간단히 내력을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