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제42장. 적천수/ 10.초록(草綠)의 동물(動物)

작성일
2024-03-30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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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42. 적천수(滴天髓)

 

10. 초록(草綠)의 동물(動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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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지은 현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왜 손목(巽木)에 바람을 배속시켰는지도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네. ()은 진뢰(震雷)라고 한 것과 같이 생각해 봐도 좋지. 갑은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을은 왜 바람이라고 했느냔 말이지.”

그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가르침을 청합니다.”

초록색(草綠色)의 동물(動物)은 아는가?”

? .... 초록색은 청개구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앵무새도 초록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초록색의 동물을 말씀하시는지요?”

그것은 식물(植物)을 다시 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라네. 지금 이순간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을 식물이라고 하면 되겠는가?”

그렇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가령 어느 사람이 10년을 두고 숲의 한 곳을 바라본다고 생각해 볼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숲의 식물들이 자리를 넓혀가는 것을 볼 수 있을까?"

"당연하겠습니다. 씨앗이 떨어져서 점점 넓혀갈 테니까요?"

“그렇다면면 동물은 자손을 어떻게 번식시키는가?”

, 그것은 암수가 짝을 지어서 새끼를 낳고 또 새끼를 낳습니다.”

초목(草木)은 어떻게 번식시키는가?”

초목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그 씨앗이 다른 곳에 뿌리를 내려서 다시 대를 잇습니다.”

오호! 잘 알고 있군. 그렇다면 식물이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보통은 조류(鳥類)나 동물이 열매를 먹고 씨앗을 다른 곳에 배설(排泄)하면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람은?”

바람도 한몫합니다.”

어허! 잘 생각해 보게. 새나 동물도 초목의 관점에서는 바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그렇다면 온전히 바람에 의지해서 번식하는 것이로군요.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새롭게 배웁니다.”

손풍(巽風)의 의미와 초목의 연관(聯關)을 다시 생각해 볼까?”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관점입니다.”

손방(巽方)은 어디인가?”

손방은 동남(東南)입니다.”

동남이 맞네. 이른바 봄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지. 진방(震方)은 태양이 떠오르는 정동(正東)이고, 손방(巽方)은 바람이 불어오는 동남이라네 이렇게 바람이 불어오면 가을에 길짐승들이 과일을 먹고 씨앗을 옮겨가고, 겨울에 날짐승들도 나무에 매달린 씨앗을 먹어서 남쪽으로 옮겨간 다음에 새로운 봄이 시작되면 비로소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네. 그러면 겨우내 붙어있던 초목의 씨앗들이 그 바람에 흩날려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는 다시 제 갈 길로 흩어지는 것이라네. 가령 포공영(蒲公英:민들레)이나 나마(蘿藦:박주가리)와 같은 식물의 씨앗은 날개를 갖고 있다가 바람이 불어올 때를 기다려서 허공으로 날아오르지 않던가?”

, 스승님께서 말씀해 주시니 비로소 기억이 납니다. 과연 바람이 초목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알겠습니다. 그것도 종자를 번식(繁殖)시키려면 반드시 바람이 필요하겠습니다. 실로 밤이나 은행이 나무의 아래에 떨어져서 싹을 틔운다면 어미의 그늘에 가려서 성장할 수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풍목(風木)의 뜻을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뢰목(雷木)은 처음에 움직이는 기운이 되고 풍목은 씨앗이 이동하는 것으로 갑을목(甲乙木)을 이해하고 보니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경도의 가르침은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수유(雖柔)를 볼까? 비록 유약하다는 말은 바람에 내맡겨진 씨앗을 의미하는 것이지. 얼마나 유약하겠는가? 씨앗이라고 한다면 유연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아니겠나?”

그렇겠습니다. 한 톨의 씨앗은 참으로 유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가는 새나 벌레가 먹어버릴 수가 있으나 전혀 저항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허약하다면 당연히 유약한 것이 맞습니다. 여태 경도의 관점을 곡해(曲解)하고 있었던가 봅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과연 경도는 옳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현담은 이야기를 멈추고 우창의 말을 들으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광이 뜨거운 차를 마련했다가 다시 잔을 채웠다. 현담이 대중을 둘러본 다음에 말했다.

비록 과격한 표현으로 규양해우(刲羊解牛)라고 했지만 실로 찌르고 해부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맞습니다. 씨앗이 처음에 마른 땅이든 젖은 땅이든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지상(地上)에 떨어진다면 뿌리를 뻗어서 땅속으로 넣는 것이 급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땅이든 가리지 않고 자리를 잡는다는 의미가 그 속에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비로소 올바른 뜻을 알았습니다.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과연 참으로 놀라운 경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생각해 보게나. ()은 단순히 양을 말하겠는가? 아니면 술()인 개도 포함하겠는가? 그리고 축()은 진()인 용()도 포함하고 있는 것인 줄을 모르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방금 스승님께서 진땅이든 마른 땅이든 가리지 않는다고 하셨을 적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축진토(丑辰土)이든 술미토(戌未土)이든 구분을 할 수도 없습니다. 바람에 실려와서 떨어진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주어진 숙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뚫고 들어가든 베고 들어가던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살아남아야 하니 작은 씨앗에게는 그것도 생사(生死)의 갈림길이 되는 치열한 전쟁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너무 안이(安易)한 생각으로 을목을 관찰했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잘 생각했네. 그렇다면 규양해우도 해결을 본 셈이로군. 허습지지(虛溼之地)도 하나마나한 말이란 것을 알겠는가? 이미 규양해우에 다 포함된 말일 테니까 재론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렇더라도 친절한 경도는 후학이 길을 잃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을 방황하고 다닐 것을 염려하여 거듭 말하는 것이라네. 기마역우(騎馬亦憂)도 같은 의미라고 봐야지. 그러니까 추운 땅에도 온기가 있으면 발아(發芽)를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엄중한 가르침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네.”

? 그것은 좀 난해(難解)합니다. 무슨 뜻인지 조금만 풀어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은 자신도 그렇지만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을 이해시키려면 좀 더 쉬운 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청했다. 그 의도를 알고서 현담이 또 쉽게 풀어서 말했다.

씨앗이 싹을 틔울 적에는 마른 땅이 최적이란 말이네. 허습(虛濕)이라는 말은 실로 의학(醫學)에서 신체를 논하는 말이지. ()에는 체질(體質)이 허약(虛弱)하다는 의미가 있으니 이렇게 되면 바람을 싫어하고 추운 것도 싫어하고 더운 것도 싫어 한다네. 즉 천기(天氣)의 상황이 씨앗이 자라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 또 습()은 과습(過濕)한 것을 이르는 것이니, 담습(痰濕), 습열(濕熱), 한습(寒濕), 풍습(風習), 허습(虛濕)이 있는데 이 중에서 허습은 다음과 같은 싯귀가 전하네.”

 

체허이야습(體虛易惹濕)

거습선보비위(祛濕先補脾胃)

 

이렇게 두 구의 글을 읊은 현담이 뜻에 대해서 설명했다.

몸이 허약하면 습이 쉽게 끼어든다는 말이네. 이것이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습을 제거하려면 먼저 비위(脾胃)를 도와야 하는데 바위는 오행으로 토()가 된단 말이네. 그런데 원문에 뭐라고 했는가? 기마역우(騎馬亦憂)라고 하지 않았나? 기마역우는 오()를 지지(地支)에서 만나면 근심이 된다는 뜻이지 않은가? 이것은 안정되게 토의 기운으로 물컹한 허습(虛濕)을 다스려야 하는데 조바심으로 습()을 말려서 건조하게 하려고 한다면 그것도 근심이 된다는 말이네. 이건 무슨 뜻이겠는가?”

현담이 우창에게 그 뜻을 물었다. 우창도 내용이 쉽지 않아서 곰곰 생각하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우창이 이해하기로는 지지(地支)가 과습(過濕)하다고 해서 화극수(火剋水)를 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부작용(副作用)을 일으킬 수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오화(午火)를 쓰지 말고 술미토(戌未土)를 써야 한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사주의 관점으로 생각해 본다면 지지에 해자수(亥子水)가 많아 보인다면 이때는 사오화(巳午火)를 쓸 생각을 하지 말고 조토(燥土)로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 옳다는 의미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까?”

우창은 나름대로 답은 해 놓고서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자신이 없어서 다시 반문했다. 그러자 현담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다시 씨앗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씨앗은 축축한 땅은 좋아하나 과습(過濕)한 곳은 썩어버리게 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엇이든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지나치게 습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짧은 생각이라네. 이것은 비단 초목만 해당하겠는가? 사람은 어떻겠나? 과습한 지역인 호수의 주변이나 바닷가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풍토병(風土病)이 있는데 주로 습병(濕病)이라고 하네. 이러한 조건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고 하더라도 결코 회복될 수가 없을 것이란 말이지.”

현담이 씨앗을 비유로 설명하자 우창도 의미가 명쾌하게 전달이 되었다. 비로소 을목(乙木)에서 막혔던 부분이 풀렸다. 단순하게 수생목(水生木)으로 인해서 수()가 많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균형을 잃어버린 착오였다는 것을 명료하게 깨달았다. 이 구절의 뜻은 수극목(水剋木)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스승님, 이제야 명백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상당히 복잡(複雜)하고 미묘(微妙)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의미를 담으신 경도의 탁월한 안목에 감탄했습니다.”

,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군. 초목을 환경에 따라서 이동하는 초록동물(草綠動物)이라고 하는 말도 이해가 되었다면 거의 마무리된 것으로 봐도 좋겠군.”

참으로 깊은 의미가 들어있는 설명에 감탄했습니다. 바람은 씨앗을 옮겨서 온천지에 파종(播種)시킨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식물이 식물이 아니라 단지 이름만 식물일 뿐이라는 것도 새삼스럽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도 잠을 잘 적에는 식물이었다가 잠이 깨면 동물이 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다가 보면 초목과 짐승의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모두가 같은 것으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초목은 을목이라는 말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곳에 고정된 것만을 바라보면서 짧은 견해를 갖는 것도 올바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현담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화(緣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대가 마지막 대목을 풀이해 보겠나?”

현담이 지적한 연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등라계갑(藤蘿繫甲)은 등()이나 담쟁이덩굴의 식물이 거목을 의지하고 얽혀있으면 가춘가추(可春可秋)라고 하니 언제나 잘 살아갈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깊은 뜻은 아직 생각이 짧아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으나 칡넝쿨이 소나무에 얽혀있는 것을 봤는데, 그렇게 되면 오래도록 잘 살아갈 수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그러한 뜻도 있다네. 그러나 그것도 일부분에 대해서만 이해를 한 것이라네. 이번에는 고월이 좀 더 깊은 뜻을 살펴보겠나?”

현담의 말에 고월이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등라계갑이야말로 하등(下等)의 명학자를 위한 가르침으로 보겠습니다. 을목(乙木)이 어찌 등넝쿨이나 담쟁이넝쿨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갑은 웅장한 나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이렇게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서 쓴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오히려 이와 반대입니다.”

고월이 이와 반대라고 말하는 소리에 모든 대중이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표정을 본 현담이 다시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알기 쉽게 설명해 주겠는가?”

초목은 하늘의 뜻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생명체를 위해서 마련한 자비심(慈悲心)입니다. 그리고 초목은 다시 생명체들을 의지해서 자신의 목적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상부상조(相扶相助)가 되는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가령, 화초(花草)가 꽃을 피우면 그 안에 꿀과 화분(花粉)을 마련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벌과 나비의 식량입니다. 벌은 이 꿀을 식량으로 삼고 꽃가루는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를 먹여서 키웁니다.”

오호! 재미있군. 그래서?”

그러나 꿀과 꽃가루를 만든 뜻은 정작 더 깊은 곳에 들어있습니다. 꿀로 인해서 수분(受粉)하여 종자를 키우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동물을 위해서 식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조금만 그 속의 사정을 들여다보게 되면 오히려 식물을 위해서 동물이 희생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잘 살피셨네. 허허허~!”

현담이 칭찬하자 고월이 합장하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인간을 봐도 그것은 명백합니다. 인간의 주식(主食)은 쌀과 보리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곡식이 있으니 이름하여 오곡백과(五穀百果)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것을 먹고 살기 위해서 해가 뜨기 전부터 어둠이 온 대지를 덮을 때까지 허리도 펴지 못하고 식물을 가꾸며 일생을 살아갑니다. 심지어는 가축(家畜)을 키우는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먹을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식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식물은 항상 동물들이 멀리 떼어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생명에 밀접합니다.”

맞아, 틀림없는 말이로군.”

()은 정신이고 을()은 신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신체는 정신을 잡아두는 능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밥을 주지 않으면 정신을 괴롭힙니다. 달고 맛있는 것을 먹여주면 몸은 희락(喜樂)을 느낍니다. 그리고 거칠고 메마른 음식을 주면 질환(疾患)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정신도 결국은 몸의 지배를 받게 되기 쉽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꼴이기는 합니다만 세간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고량진미(膏粱珍味)에 정신을 빼앗기고서 그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드물지 않게 봅니다. 결국은 이 몸의 안락을 위해서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되고, 화적(火賊)이며 도둑이 되는 것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부처도 육신은 아무리 달콤한 음식과 부드러운 비단으로 감싸준다고 해도 결국은 썩고 말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식물의 유혹에 넘어가서 일생을 몸의 노예(奴隷)로 살아가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 범부(凡夫)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식물의 노예이듯이 정신은 이 몸의 노예임을 깨닫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과연! 고월의 통찰력은 예사롭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등라계갑은 허언(虛言)이라고 단호하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었군. 허허허~!”

,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경도가 적확(的確)하게 핵심을 짚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면 몸은 자신을 잘 챙겨주는 정신을 만나면 일생을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잘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칡이나 등이 땅바닥을 기어다니다가 노루나 토끼에게 잎을 뜯어먹히고 줄기도 갉아 먹히는 일을 면할 수가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결국은 덩굴은 끊임없이 옆의 나무를 타고 올라가려고 하듯이 육신은 정신을 자기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하는 것이 아마도 본능일 것이고, 이것이 을목의 속성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옳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당연히 정신이 깨어있어서 몸이 원하는 것이 적당한 것인지를 잘 헤아려야 합니다. 하루에 삼시세끼의 밥을 주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것이 과할 적에는 두 끼를 먹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한 끼만 먹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조차도 과하면 단식으로 며칠씩을 물만 공급하면서 몸의 욕망을 다스릴 수도 있겠습니다. 을은 정재(正財)라고 했습니다. 항상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고 계량(計量)하고 이해타산(利害打算)을 명백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험한 세상을 살아남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곳하고 어눌해 보여도 그 내심에서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길가의 질경이를 보면 그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을 면치 못합니다. 밟히고 뜯겨도 씨앗을 만들어서 자손을 번식시키는 것을 보면 과연 누구라서 능히 이들을 제압할 수가 있겠는가 싶기도 합니다.”

놀랍군.”

현담이 감탄하면서 말하자 고월이 다시 말을 이었다.

스승님, 을목(乙木)을 화훼(花卉)라고 한 것도 오류이고, 덩굴이라고 한 것도 오류입니다. 단순히 비유일 따름이지요. 그러나 그 속에서도 올바름은 찾을 수가 있습니다. 난초와 장미는 사람에게 고운 꽃과 향기로움을 선물합니다. 그래서 애지중지(愛之重之)하게 됩니다. 기화요초(琪花瑤草)는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을목은 꽃나무라고 하는 것도 오류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화초를 가꾸면서도 자신들은 이미 그들의 노예가 되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습관(習慣)이 되어버린 까닭입니다. 가령 며칠을 집을 떠나서 멀리 나가게 되면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키우던 화초가 말라서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라고 여겨서 식구들에게라도 단단히 일러두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을목을 화초라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적절하겠습니까? 다만 문제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것에 있습니다. 실로 화초만 보고 그 속에 깃든 몸은 잊는 것이지요. 수행자는 항상 몸의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수행의 도구로만 사용하는지에 대해서 궁리합니다.”

오호! 그래서 화초에 깃든 속뜻을 잘 헤아리라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결국은 화초도 사람을 이르는 말일 뿐입니다. 갑목(甲木)을 탈태요화(脫胎要火)라고 한 것은 사람이 앉았다가 일어날 적에 힘을 주는 것과 같고, 노인은 일어나면서 끙차!’하는 소리를 내는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위해서 온갖 보약을 구해서 먹이는 것은 바로 등라계갑(藤蘿繫甲)이지요. 그래서 경도의 가르침은 아무리 공부하고 또 파고들어도 여전히 저만치에서 손짓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고월이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떤 제자는 고월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또 어떤 제자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기도 했다. 잠시 후에 현담이 조용히 말했다.

, 이제 명백해졌나? 왜 을목수유(乙木雖柔)라고 했는지를 말이네. ‘을목(乙木) 그게 그렇게 약하다고? 원 천만에~!’라고 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네. 모두를 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공부는 오늘 자기의 수준에서 한 푼만 더 얹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 자칫해서 욕심으로 한 근을 얹겠다고 한다면 그 무게로 인해서 머리가 무겁거나 심하면 두통까지도 발생할 수가 있는 것이라네. 오늘 나눈 이야기는 실로 간단치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또한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이겠나? 서로 의논하고 토론하면서 점차로 이해를 넓혀가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지.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좋겠네.”

현담의 말에 염재가 일어나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제자들도 따라서 합장하고 동음으로 외쳤다.

태사님 감사합니다~!”

현담은 오광과 함께 돌아가자 우창이 등단해서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학문에 대한 열정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새로운 가르침으로 가슴이 뜨거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혹시 스승님께는 여쭙지 못했지만 궁금한 것이 있다면 잠시 문답의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그런 점이 있었다면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우창의 말에 모두 손뼉을 치고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은 허정이었다. 우창이 말해보라고 하자 일어나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스승님, 질문은 아니에요. 그냥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실로 태사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허정이 알고 있던 주역의 이치까지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손풍(巽風)에서 씨앗이 바람에 날려야 하고 그것은 초목에게는 무엇보다도 막중(莫重)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주역과 명학의 차이에 대한 경계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이러한 관법으로 사유하면 되겠다는 멋진 방법을 얻게 되어서 매우 기뻐요.”

허정의 말을 듣고서 다른 제자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창이 이에 대해서 말했다.

그것은 우창도 마찬가지라네. 공부는 끝이 없고 사유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지. 허정의 공부도 앞으로 많은 성취가 있을 것이네.”

그런데 예전에 들었던 말이 있는데 이것이 맞는 말인지가 궁금해요. 무엇이나면 을목(乙木)은 습목(溼木)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습목이라서 목생화(木生火)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서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는데 오늘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정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일리가 있다면 그렇다고 말을 해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의미가 없다면 또 깔끔하게 정리가 될 것으로 보여서였다. 우창이 허정의 물음에 답했다.

! 우창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네. 우리가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모든 문제는 오행법으로 관하면 된다는 것이지. 오행으로 본다면 분명히 목생화인데 을묘(乙卯)는 물기를 머금은 나무라서 불을 붙일 수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편협(偏狹)한 생각인지를 알 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말이에요.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여쭙고 싶었어요.”

그렇지 싶네. 생목(生木)은 개화(開花)하고 사목(死木)은 발화(發火)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하하~!”

? 그런 말은 또 처음 들어요. 그러니까 습목불생화(溼木不生火)’라는 말은 의미가 없는 것이 확실하네요?”

만약에 을묘(乙卯)의 옆에 계해(癸亥)라도 있다면 해당이 된다고 하겠지. 그러나 단지 음목(陰木)이어서 습목이라고 하는 것은 버려야 할 우선순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네. 하하하~!”

잘 알았어요. 명쾌한 가르침에 머릿속이 개운해졌어요. 호호~!”

허정이 우창에게 잘 알았다는 듯이 합장하자 다음에는 수경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수경이 공부하기 전에 먼저 을목편을 읽으면서도 감탄했는데 오늘 가르침을 받고 보니까 스스로 깨달은 것은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을목수유(乙木雖柔)에 대해서 어떻게 살펴봐야 하는지를 확연히 깨달았는데 단순하게 식물의 차원이 아니라 동물을 지배하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경이(驚異)롭기조차 했어요. 앞으로의 공부도 더욱 기대가 커졌습니다. 호호~!”

그랬구나. 아마도 모든 대중이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군. 특별히 이해되지 않은 점이 있으면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이해를 넘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더 묻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대중을 향해서 마무리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 나누고 또 다음 시간을 기대해 보도록 합시다.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는 인연에 감사하고 혹 공부하다가 정리가 되지 않으면 서재로 찾아주셔도 좋으니 망설이지 말고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우창이 합장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모두 힘차게 박수쳤다. 그리고 그 표정에서는 기쁨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우창이 서재로 향하자 진명이 조용히 뒤따라서 들어왔다.

?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

, 일석이가 잘 자라고 있나 잠깐만 보고 가려고요. 호호~!”

마침 서옥은 아기와 함께 서재에서 책장을 청소하고 있다가 두 사람을 반겨 맞았다.

언니! 오랜만인 것 같아요. 한집에 살아도 왜 그렇게 보기가 어렵죠? 공부가 그렇게나 재미있으신가요? 호호~!”

말도 마, 머리가 터질 지경이야. 그래도 우물쭈물하다가는 다른 도반들에게 뒤처지게 생겼으니 어쩌겠어. 머리가 둔하니 노력으로 때우는 수밖에 아기가 보고 싶어서 잠깐 들렸어. 벌써 많이 자랐구나. 웃기도 하고. 호호호~!”

진명이 그렇게 서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우창도 고마웠다. 혼자서 공부도 못하고 아기와 둘이서 보내느라고 외롭기라도 할까 싶은 마음에 잠시 놀아주는 마음이 참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기와 놀던 진명이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적천수의 위력이 이제야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했어요. 경도의 경지(境地)가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많은 공부를 하신 스승님도 다시 새롭게 배우고 궁리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참으로 느끼는 것이 많았어요. 더욱 열심히 정진하는 것밖에 없겠다는 생각이죠. 호호호~!”

이렇게 방울 물이 바위를 뚫기에 적()이 아니겠나? 하하하~!”

어머! 그렇게도 해석이 되나요? 정말 재미있어요. 호호~!”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눈 진명도 돌아가자 우창은 의자에 앉아서 오늘 논의한 내용을 되새기면서 머릿속에서부터 정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