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 제41장. 유유자적/ 10.계유년(癸酉年) 입춘(立春)

작성일
2024-01-30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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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 41. 유유자적(悠悠自適)

 

10. 계유년(癸酉年) 입춘(立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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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책을 보느라고 늦잠을 잤는지 서옥이 깨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우창은 잠이 깼다. 

, 늦잠을 잤구나. 잘 잤어?”

그러신가 싶었어요. 일어나서 씻으세요. 곧 조반(朝飯)을 들 시간이에요.”

그래야겠구나.”

오늘이 입춘(立春)인 건 알죠? 인시(寅時)가 입춘이었으니 이미 봄이 시작되었네요. 맞죠?”

, 그렇게 되었구나. 그럼 봄이 시작된 것이지. 겨울도 다 지나갔네.”

입춘 맞이 기념으로 산책하고 싶어요. 겨우내 춥다고 산책도 못 했나 봐요.”

그럴까? 얼른 씻고 나올게.”

잠시 후에 우창이 서옥과 함께 밖으로 나가니까 이미 제자들도 일어나서 삼삼오오로 마당도 쓸면서 제각기 맡은 일을 시작하고 있다가 우창 부부를 보고는 인사하며 밝게 웃었다. 우창도 답례하고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변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배가 거북한지 두 손으로 떠안다시피 하면서 걷는 서옥이 무척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몸이 무겁긴 하구나. 날씨가 아직은 쌀랑하네.”

마음만 봄이지 현실적으로는 아직도 겨울인가 봐요. 호호~!”

이렇게 산책을 한 것으로 하고 그만 들어갈까?”

그게 좋겠어요. 좀 더 있다가 나와봐야겠어요.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보니까 좋긴 하네요.”

두 사람은 조금 걷다가 서서 물안개를 바라보다가 식당에서 두드리는 목탁 소리를 듣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정갈하게 차린 아침을 먹고는 백차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연화가 우려주는 오룡차를 마시는데 하나둘 모여들어서 자리를 메우다 보니까 오행원의 주요 인물이 다 모였다. 연화가 따라주는 차를 염재가 각자의 앞으로 가져다주면서 빠진 사람이 없는지 한 바퀴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채운이 우창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는 언제나처럼 분위기를 이끌었다.

스승님 내외와 함께 차를 마시니 더 좋아요. 오늘이 입춘이니 대길(大吉)이잖아요. 스승님께서 올해의 태세(太歲)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거죠?”

채운은 기회를 결코 헛되이 보내는 법이 없었다. 입춘을 핑계로 또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말을 꺼냈다. 특히 염재는 항상 무엇이든 진지했다. 채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슨 이야기가 나오든 기록해야 한다는 듯이 필묵(筆墨)을 꺼내서 기록할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이 잠시 기다렸다. 향긋하고도 묵직한 오룡차를 한 모금 마시며 행복감을 즐겼다. 항상 즐겁지만 이렇게 제자들과 한 자리에 둘러앉아서 담소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도 없을 정도로 흐뭇한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받아 적을 준비를 한 염재가 우창을 바라봤다. 준비가 다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동안에도 항상 우창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틈이 나는 대로 기록을 하는 것으로 봐서 반드시 크게 깨달을 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소중한 것을 들으면 놓치지 않으려고 기록하는 것보다 더 알찬 공부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창이었기 때문이다.

채운이 올해의 태세에 대해서 말을 해 달라고 물었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걸.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주려나?”

, 제자가 마음이 급했어요. 입춘이 지났으니 이제부터 명가(名家)에서는 신년(新年)이 되는 셈이잖아요? 그러니까 올해의 계유(癸酉)에 대해서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어요. 이것을 점으로 대입할 수는 없겠지만 계유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태세를 핑계로 공부를 찾는 셈이기도 하고요. 호호~!”

맞는 말이네. 언제든 공부할 거리를 만들어서 스승을 귀찮게 하는 제자가 가장 어여쁜 제자이니까 말이지. 하하~!”

정말 감사드려요. 언제든 무엇을 여쭤도 거절하는 법이 없으시기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쭙게 되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질문을 드리기 전에 먼저 걸러서 생각하게 될 텐데 말이에요. 호호~!”

그래 알았네. 계유에 대해서 내가 말을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어? 누가 먼저 말을 해보는 것이 좋겠군. 우선 말을 꺼낸 채운부터 풀이해 봐. 계유에는 어떤 함의(含意)가 깃들어 있어 보이는지.”

모두의 눈길이 채운을 향했다. 채운의 열정적인 학구열이야 모두가 인정해 주는 까닭에 무슨 말이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기대감은 있어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채운도 사양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꺼냈다.

채운이 생각하기에 계유(癸酉)는 계수(癸水)와 유금(酉金)이잖아요? 그래서 유금은 암반(巖盤)으로 보고 그 위에 물이 있으니까 생수(生水)가 퐁퐁하고 솟아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수량이 많지는 않아도 영원히 마르지 않는 약수(藥水)가 되어서 동네 사람이나 길을 가던 나그네들이 항상 맑은 물을 마시고 지나가는 감로수(甘露水)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스승님께 이렇게 생각해도 말이 되는지 여쭙고 싶었거든요. 호호~!”

채운의 말에 모두 손뼉을 쳤다. 공감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서옥도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는 듯이 말했다.

서옥도 오행원 밥을 먹은 지도 일 년이 되어가다 보니까 반 귀는 열렸는지 대충 말을 들으면 무슨 의미인지가 들리는 것이 신기하네. 그런데 채운 동생의 기발한 생각은 나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어떻게 계유를 보면서 행인이 목을 축이는 장면까지도 떠올릴 수가 있을까? 참으로 대단해.”

서옥이 감탄하는 소리를 듣고서 염재가 말했다.

사모님께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공부는 익어갈 수밖에 없지요. 이슬비에 옷이 젖는 줄을 모른다고 하는데 과연 사모님께서도 그렇게 훈습(薰習)이 되어가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자원이 웃으며 말했다.

자원도 한마디 거들어야 하겠네. 오늘의 계유(癸酉)는 여인의 가슴으로 보이는 것은 왤까? 아마도 만삭의 서옥을 보니까 그렇게 떠올랐나 봐. 술꾼은 유()에서 주()를 떠올린다지만 통통한 젖에서 감로수가 뭉클뭉클 솟아나는 어머니의 가슴이 떠올랐어. 싸부, 이렇게 유추해도 안 될 것이 있겠어요. 그쵸?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 말했다.

물론이지. 자원이 그렇게 말을 하니까 또 생각해 보게 되는군. ()는 아기가 엄마의 가슴에 매달려서 젖을 먹고 있는 모습이라면 계유(癸酉)를 묶어서 관찰하는 것도 오행(五行)에서 벗어나서 형상으로 판단한 것이니 또한 의미심장한걸. 채운은 계유를 위아래로 봤다면 자원은 옆에서 바라본 것이라고 하겠네. 하하하~!”

차를 마시는 것에 맞춰서 다시 물을 끓여서 차를 따라주던 연화(緣和)도 한마디 했다.

다들 상상력과 궁리가 어우러져서 멋진 법담(法談)을 나누는 것을 들으면서도 연화는 공부가 부족해서 달리 끼어들어서 할 말이 없는 것이 답답하기 짝이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옆에서 들을 수가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은 아마도 얻는 것이 많은 까닭이려니 해요. 그나저나 이렇게 깊이 있는 풀이를 한다면 스승님께서는 하실 말씀이 없지 싶은데 또 무슨 말씀으로 제자들을 감동하게 해 주실지 그것이 궁금해요. 호호~!”

연화가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보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 연화를 보면서 말했다.

왜 아니겠나. 그렇지 않아도 지금 내 고민이 바로 그것이라네. 이렇게들 하루가 다르게 학문이 진보하고 있으니 내가 할 말조차도 없어지게 될까 그것이 걱정이로군.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수경(水鏡)이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께서 이미 뭔가 새로운 가르침이 준비되어 있기에 먼저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보신 것임을 왜 모르겠어요. 정말 스승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해 주실지 진작부터 궁금했어요. 어서 그 풀이를 듣고 싶어요.”

수경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경의 말을 듣고 보니까 이미 내 속내를 다 들킨 것만 같아서 섬뜩하군. 내가 조금 전에 산책하면서 잠시 생각해 본 계유(癸酉)년은 암벽(巖壁)에 새겨진 글귀를 닮았다는 것이라네.”

우창의 말을 듣자 모두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만 자원은 잠시 생각하고서 미소를 지었다. 우창이 말하기 전에는 생각을 못 했으나 이야기를 듣고서 곰곰 생각해 보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인지 대략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창도 그 표정을 보면서 자원에게 물었다.

어디, 자원이 왜 이렇게 말을 했는지 이해한 만큼 설명해 볼 텐가?”

, 싸부의 의중을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우선 암반(巖盤)은 쉬워요. 이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문제는 그 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자원도 싸부가 말씀하시니까 그것을 근거로 삼아서 궁리해 볼 따름이지 말씀을 해 주지 않으셨다면 전혀 어림짐작도 못 했겠죠.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생각하다가 내심 감탄했어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마음이 급했는지 자원에게 다그쳐 물었다.

애고, 명이 짧은 사람은 숨이 넘어가겠네. 자꾸 뜸을 들이지 말고 어서 말을 해 봐. 나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전혀 가늠되지 않아서 답답하단 말이야.”

진명도 궁금했던지 자원에게 어서 말하라고 채근했다. 그러자 자원이 진명에게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는 응고(凝固)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어요. 당연히 싸부가 말씀해 주신 것이었는데 잊고 있었던가 봐요. 응고라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소중하게 보관하는 것이지 않겠어요? 더구나 계()는 씨앗을 의미하는 것이니 땅에 들어가면 자()가 되잖아요. 씨앗이 식물에게는 자손을 다음 대로 전하는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스승의 소중한 가르침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씨앗이 암반 위에 있다는 것은, 당연히 소중한 글귀를 새겨놓은 암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잖아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자기의 말이 이치에 타당한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러자 우창이 말없이 미소를 짓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대로 계속 이야기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누구라도 소중하지 않은 글은 아무 곳에나 써 놓지만, 후세의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귀중한 경전(經典)은 암석에 새기고 쇠틀에 부어서 천년을 전하고자 하잖아요. ()가 물이고 액체(液體)라는 생각만 하다가 보니 정작 귀중한 씨앗을 담았다는 것을 간과(看過)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고인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 제자백가(諸子百家)잖아요? 오늘 싸부의 가르침 하나로 다시 굳어있던 돌머리가 쨍~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려서 머리가 아뜩했어요. 정말 귀중한 가르침에 머릿속이 상쾌해졌어요. 호호호~!”

자원이 이렇게 풀이하자 우창은 미소를 지었고, 진명과 채운은 놀라서 입을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 특히 수경이 놀라서 감탄하면서 말했다.

정말 스승님의 통찰력(統察力)도 놀랍지만 그러한 의중을 헤어린 언니의 추리력(推理力)에 더 감탄했어. 어떻게 그런 궁리를 할 수가 있을까? 참으로 오뉴월의 하루 땡볕이 무섭다고 하더니만 노산(嶗山)에서부터 스승님께 공부한 내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겠어. 정말 놀랍고 부러워.”

염재도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모두 조용한 틈을 타고 말했다.

스승님께서 이렇게나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오행의 이치를 가지고 자유롭게 관찰하시고 이러한 이치를 저희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시는데 왜 또 다른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대중을 둘러봤다. 염재의 마음에는 현담의 출현에 대해서도 그리 반갑지 않았던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대로도 충분한데 여기에 더 무엇을 더 보탤 것이 있을 것이냐는 생각이었다. 염재의 말을 들은 우창이 미소를 지으면서 찻잔을 들어서 기울였다. 그러자 연화가 다가와서 차를 채워주면서 염재에게 말했다.

연화는 아직 깊은 이치는 모르지만 아마도 스승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지에서 현담 스승님의 가르침을 보지 않으셨을까?”

연화의 말을 들은 염재가 이번에는 연화에게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다가 보면, 자연의 관점이나 사람의 마음에 대한 가르침이나 운명의 길흉에 대한 것이나 조짐을 통해서 점괘(占卦)의 풀이조차도 신기막측(神奇莫測)하다고 생각하면서 항상 감탄할 따름인데 여기에 더해서 무엇을 더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냐는 말이지요.”

염재의 말을 듣고 있던 수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염재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은 맞아, 그 말을 듣고 보니까 예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나네.”

수경의 말에 염재가 관심을 보이면서 물었다.

듣고 싶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궁금합니다.”

, 3, 4년 전이었을 거야. 세상의 이치가 궁금해서 집을 떠난 후로 밝은 스승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어이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하던 시절이었지. 그때도 유람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밥을 먹고 가려고 객잔에 들렸다가 등에 장검을 메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만났던 적이 있었어.”

수경의 말을 듣던 채운이 물었다.

아니, 언니는 검객을 만나면 무섭지 않아?”

왜 무섭지? 실은 사람이 무서운 거지 검은 무섭지 않아, 가령 스승님께서 검을 뽑아서 손에 들고 계신다면 동생은 무섭겠어?”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상상만 해서 그렇구나. 하긴 침착한 언니니까 당연히 상황을 잘 살폈겠지. 그래서?”

밥을 앞에 놓고서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 흔한 풍경은 아니잖아? 그래서 눈여겨보게 되었어. 그러다가 그와 눈길이 마주쳤는데 그 모습이 하도 진지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어. 그러자 그는 자기에게로 와도 좋다는 듯이 손짓을 하기에 내가 먹던 것을 갖고 앞에 가서 앉았지. 아마도 그의 눈빛에 끌렸었나 싶기도 해. 호호~!”

수경의 말에 채운이 웃으며 말했다.

남자가 준수하게 생겼던 거지? 호호호~!”

말을 듣고 있던 염재가 물었다.

누나가 검을 메고 있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갔다면 뭔가 느낌이 달랐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궁금합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수경이 그때의 정황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 ◆ ◆ ◆ ◆ ◆ ◆ ◆ ◆ ◆

검객의 앞에 앉은 다음에 검객에게 물었다.

무사께서는 아까부터 무엇을 그렇게도 깊이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서 바라보고 있었어요. 마침 소녀도 바쁜 일이 없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렇게 불러 주셨으니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낭자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불렀나 보오. 낭자는 무엇을 찾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 강호를 누빈단 말이오? 그것도 혼자의 몸으로.”

그야,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가만히 방에서 옷에 자수(刺繡)나 놓다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또 엄마가 되었다가 할머니가 되는 것은 재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집을 나서긴 했는데 오늘 무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배울 것이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무엇을 그리도 깊이 생각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대신 오늘 밥은 제가 살게요. 호호~!”

봐하니 검을 배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맞아요. 검에는 관심이 없고 삶에만 관심이 있어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재미있는 삶이 될 것인지를 알고 싶은 거죠. 그렇지만 배움에는 서검(書劍)이 따로 있다고 여기지는 않아요. 이치는 하나로 통한다는 것은 알거든요.”

오호! 과연 그렇구료. 참 재미있는 낭자오이다. 하하하~!”

제 이름은 공명화(孔銘華)에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름을 말해 달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검객이 말했다.

, 공 낭자셨군. 나는 이춘양(李春陽)이라고 하오.”

알았어요. 왜 칼끝에 목숨을 달고 다니는지부터 묻고 싶어요. 아니, 그것보다도 무엇을 그렇게 깊이 생각하셨어요?”

, 실은 오늘 아침에 만났던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자꾸만 생각이 나서 말이오. 옳은 말인 것도 같고 쓸데없는 말인 것도 같아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오.”

뭐라고 했기에 그러죠? , 말을 편하게 해 주세요. 봐하니 제가 동생뻘쯤 되어 보이니까요. 호호~!”

그럴까? 그야 아무래도 좋으니까. 내가 아침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앉아있는데 옆으로 다가와서 앉기에 눈인사를 했을 따름인데 그가 말을 하더군.”

그 사람도 말이 고팠던가 보네요. 무슨 말을 했어요?”

검을 왜 메고 다니느냐고 묻더군.”

맞아요. 명화가 봐도 검객으로는 어울리지 않거든요.”

그래? .....”

뭐라고 답을 했어요? 아니, 우선 밥을 먹고 이야기해요. 봐하니 이야기가 길어질 모양이니까요.”

이춘양은 말없이 밥을 먹고 나서는 공명화를 바라봤다. 이춘양이 열심히 먹는 것을 보고 있다가 다 먹는 것을 보고서는 옆에 있던 차관(茶館)으로 자리를 옮겨서 차를 주문하고 앉았다.

그 사람이 묻는데 딱히 할 말이 없더군. 무림(武林)을 쟁패(爭霸)할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다니기도 허전하고 산골에서 늑대라도 만나면 몸을 지킬 요량으로 갖고 다니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지.”

그러니까 아무런 말도 못 했다는 거잖아요?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어요?”

절정(絶頂)의 고수(高手)에 대해서 말을 해 주더군.”

그건 또 무슨 이야긴데요?”

칼이 필요 없는 경지가 되면 말이나 마음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거야.”

그건 또 무슨 뜻이에요? 처음 들어요.”

생사(生死)의 경계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공명화는 이춘양의 물음이 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되지 않아서 멀뚱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생사의 경계라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표정을 보고 있던 이춘양이 다시 말했다.

검은 무엇인가를 베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야 당연하죠.”

공명화도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어서 얼른 말했다. 그러자 다시 이춘양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초식(招式)을 배우면서 너무나 즐거웠는데 어느 시점이 되자 세월이 흘러가도 진척(進陟)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척이나 우울했었거든. 그러한 마음으로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었던 거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네요. 글공부도 마찬가지니까요.”

낭자는 어린나무가 자라는 것이 보이나?”

그럼요. 한 해 두 해 흘러가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보이죠.”

오백 년이 된 나무는 어떨까?”

그것은 보이지 않아요. 언제 봐도 항상 그렇게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이미 다 자란 것이 아닐까요?”

나무는 자라지 않으면 죽은 것이라네. 그러니까 우리가 알 수는 없어도 자라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지.”

, 그렇겠네요. 그런데요?”

공명화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이춘양이 말을 이었다.

모든 것에는 임계점(臨界點)이 있다고 하더군.”

그건 또 뭐죠? 처음 들어요.”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하지?”

그야 밥을 먹죠.”

자꾸 먹으면?”

배가 부를 때까지 먹었으면 된 거죠.”

그래도 자꾸 먹으면?”

? 그러면 밥이 목까지 차오르겠네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 짓을 왜 하겠어요?”

그 상황에서 한 숟가락을 더 먹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토하게 되지 않을까요?”

맞아~!”

공명화는 이춘명의 말에 맞장구를 차자 의아해서 다시 바라봤다.

무슨 뜻이에요? 맞기는 뭐가 맞아요? 당연한 것을요.”

낭자가 이해하기 쉽게 밥을 말했을 뿐이야. 검술(劍術)을 연마하더라도 대상을 바꿔서 생각하면 같은 말이니까.”

공명화는 그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말하자면, 지금의 상황이 검술의 연마가 목에까지 차올라서 더 진전이 없다는 의미라는 거죠?”

그렇지. 이렇게 되었을 적에 비로소 그것을 뚫어 줄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네.”

간단한 이야기네요. 그분께 뚫어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왜 아니겠나. 그래서 나도 그렇게 말했지. 그랬더니 그 사람이 엉뚱한 말을 하더군.”

뭐라고 했기에요?”

나를 빤히 보더니, ‘칼끝으로 글을 쓰려고 하느냐?’고 하지 않겠나.”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긴, 길이 다르다는 이야기이고, 길을 잘못 들었다는 이야기이고, 무도(武道)를 갈 것이 아니라 문도(文道)를 가야 한다는 말이지.”

아하~! 그럼 저랑 같은 길이네요. 어쩐지 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더니 그랬군요. 호호호~!”

그래서 낭자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라네.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던 그 눈길을 낭자에게서도 봤기 때문이지.”

정말 신기하네요. 그런데 그 마지막의 한 숟가락은 무사(武士)에게만 해당하는 말인가요? 글공부는 어떨까요?”

마찬가지야. 마치 파초(芭蕉)의 껍질과 같다고 보면 되겠지.”

무슨 뜻이에요?”

껍질을 하나 벗기고 나면 끝이 날 줄로 알았지. 나무의 껍질은 그렇잖은가? 그런데 파초는 다시 또 껍질이 나오는 거지. 그것을 벗기면 또 하나의 껍질이 나오고, 이렇게 계속 벗겨가는 것이야말로 모든 수행(修行)의 이치라고 하더군.”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더 벗길 껍질이 없을 때까지.”

세상에는 저마다 모두 다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어떤 사람은 두 겹을 벗기고 다 했다고 여기고, 또 어떤 사람은 한 겹을 벗기고서 다했다고 여기기도 하지.”

어머나~! 그런 거였어요?”

공명화가 놀라서 감탄하자 이춘양이 이번에는 되물었다.

낭자가 보기에도 나는 검보다 붓을 들어야 할까?”

말해서 뭘 해요. 선비가 검을 잡는 꼴이잖아요. 호호호~!”

그대는 아마도 학문으로 큰 성공을 이루겠군.”

말씀을 듣고 보니까 소녀는 겨우 껍질 하나를 벗긴 셈인가 봐요. 호호~!”

오늘 말벗이 되어 줘서 고맙네. 다음에 또~!”

문운(文運)을 빌어요~!”

◆ ◆ ◆ ◆ ◆ ◆ ◆ ◆ ◆ ◆

 

말을 마친 수경이 염재를 향해서 말했다.

우리는 겨우 세 겹의 껍질을 벗기면서 스승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어 보이는 스승님은 이미 아홉 겹의 껍질을 벗기셨고 마지막 한 겹을 남겨두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수경의 말에 염재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정말 수경 누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스승님께서도 더욱 연마해야 할 것이 있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가어(家語)에도 그런 말이 있는데 잊고 있었습니다. 더욱 정진해야 하겠습니다.”

가어라니? 거기에는 무슨 말이 있길래?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수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수경을 향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