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 제33장. 감응(感應)/ 5.통인사(通印寺)의 인연

작성일
2022-06-10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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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제33장. 감응(感應) 


5. 통인사(通印寺)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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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의 독촉에 우창은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여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어떻게 도움이 될 수가 있을 것인지를 물었다.

“형님께서는 기감(氣感)이 뛰어나시니 어떻게든 그 여인에게 도움을 주실 수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 괜한 일로 형님께 폐를 끼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했습니다만.....”

“아니, 아우님의 그 말은 과연 진심인가? 오히려 ‘오호~ 이건 또 뭐냐, 새로운 공부를 할 기회를 만나지 않았는가~!’하면서 그 속에 있는 내막이 궁금해서 안달이 난 것은 아니고?”

지광이 정확하게 우창이 품고 있었던 생각조차도 읽어내자 자신의 호기심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맞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계면쩍게 웃자, 염재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지광에게 물었다.

“정 사부께서 관심을 보이시는 것으로 봐서는 반드시 그 여인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는 생각지도 못한 세상을 접하게 될 것이 기대됩니다. 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차에 어젯밤에 만났던 화상이 숙소를 찾아왔다.

“선생님들께서 잘 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참으로 소중한 공부를 하는 인연에 동참하게 되어서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잠시 후에 아침 공양이 마련될 것입니다. 목탁 소리가 들리면 공양간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는 화상의 얼굴을 비로소 제대로 본 셈이 된 우창이었다. 대략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모습과 속세의 번뇌는 없어 보이는 해맑은 표정에서 수행자의 풍모가 느껴졌다.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창이 대표로 말하고 모두 합장으로 동의했다. 화상은 미소를 띤 얼굴로 공양간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고는 총총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염재가 말했다.

“선인선연(善人善緣)이라더니만 어디를 가도 좋은 인연만 만나게 되는가 싶습니다. 두 분 스승님만 모시고 다니면 어디를 가도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염재의 말에 지광이 말했다.

“그런가? 일은 이렇게 흘러갈 따름이라네. 화맥이 지나가면 또 수맥이 다가오니까 그러한 상황이 되면 아마도 염재가 피곤해질 수도 있을 것이니 그냥 이 순간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네. 하하하~!”

“예?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럴 리가 있으니 그것이 인생사(人生事)이고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아니던가? 하하하~!”

“잘 알겠습니다. 좋은 시절에 취하지도 말고 힘든 시절에 매이지도 말라는 말씀이시지요?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지광의 말에 우창이 의아해서 물었다.

“형님의 말씀으로는 앞으로 염재에게 귀찮을 수도 있는 일이 생기게 된다는 뜻입니까? 혹 그러한 일이 생길 조짐이 보인다면 미리 막을 방법은 없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지광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말했나? 아우님도 참 예민(銳敏)하시군. 그냥 지나가는 말을 했을 뿐이니 마음에 두지 말게. 하하하~!”

그러자 목탁소리가 세 번 울렸다.

‘똑또르르르르~, 똑또르르르르~, 똑또르르르르~ 딱!’

화상이 말했던 아침을 먹으라는 신호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세 사람이 밥을 먹으러 가려는데 거산이 산책을 갔다 오면서 말했다.

“목탁소리가 울립니다. 무슨 신호로 들리는데요?”

“응, 아침을 먹으라는 신호라네. 어서 가보세나.”

염재가 이렇게 말하고는 공양간으로 향했다. 넓은 공양간에는 화상들은 보이지 않았고, 음식을 마련하고 나르는 동자승들의 분주한 몸놀림이 보였다. 한 동자승이 우창의 일행을 보고는 미리 마련된 식탁으로 안내했다. 정갈한 사찰의 아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둘러보자. 예의 그 여인과 눈길이 마주쳤다. 여인이 우창을 알아보고는 목례(目禮)를 했고 우창도 미소로 답했다. 여인은 동자승들과 담소하면서 같이 음식을 나눠 담는 일을 거들고 있었다. 아마도 이미 100일이나 함께 있다가 보니까 서로 돕는 모양이었다.

아침에는 흰죽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냥 아무것도 넣지 않고 쌀로만 끓인 죽의 향이 구수하게 풍겼다. 탁자에 앉은 지광이 간단히 설명했다.

“원래 절간에서 아침에는 죽을 드신다네. 그래서 어디나 죽을 먹지.”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처음 알았습니다. 혹 특별한 연유라도 있는지요?”

“불법(佛法)에는 원래 하루에 한 끼만 먹도록 했다네. 그것은 낮에 먹는 점심 공양이지. 그런데 체력이 약한 사람은 아침에 죽을 먹는 것까지는 허락하게 된 것이라더군. 물론 저녁은 먹지 않는다네. 그것을 오후불식(午後不食)이라고 한다네.”

“아, 그렇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견디기가 힘들겠습니다.”

“그런 것부터가 수행이지 않겠나?”

지광은 절간의 법칙에도 두루 관통(貫通)하고 있었던지 기본적인 공양의 예절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을 해 줬다.

“이렇게 음식을 마주하게 되면 합장(合掌)하는데 그 의미는 이 음식의 재료를 농사지은 농부와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과 시주(施主)를 한 인연에 대한 감사(感謝)의 기도라고 볼 수가 있겠네.”

우창은 맛있는 아침을 먹으면서 지광의 말을 들었다. 과연 이 시간에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음식을 얻어먹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형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쌀 한 톨도 저절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겠습니다. 새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절에 가면 절로 공부가 되니 자연히 절로 부처가 된다고 해서 절이라고 한다더군. 하하하~!”

“예? 정말입니까?”

“무슨 말을 못 하겠군. 농담이네. 하하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여인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합장하고서 우창에게 말했다.

“공양은 많이 드셨어요? 소녀가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으시면 소녀의 거처로 가실까요?”

우창이 식전에 설명해 준 바가 있어서 거산만 빼고는 모두 이 여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우창이 웃으면서 답했다.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폐를 끼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모두 일어나서 여인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공양간을 나오는데 동자승들이 다시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자 우창도 답으로 합장하면서도 괜스레 경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인의 거처는 공양간에서 멀지 않았다. 문의 위에는 편액이 있어서 읽어보니 「호쾌실(好快室)」이라고 되어 있었다. 읽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의 글이었다.

“참 좋은 곳입니다. 하하~!”

우창이 편액의 의미를 보고서 여인에게 말했다. 여인은 미소를 짓고는 문을 열었다. 안에는 침소와 함께 탁자가 조촐하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화로(火爐)에서는 물이 김을 내뿜으면서 끓고 있었다. 아마도 밥을 먹으러 가기 전에 불을 피웠던 모양이다. 공양을 마치고 차를 대접하기 위해서 준비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는데 여인이 말했다.

“자, 누추하지만 이리 앉으시지요. 차를 준비하겠어요.”

“그럼~!”

새벽의 초면(初面)이 아침에는 구면(舊面)이 되었으니 우창이 일행을 대신해서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탁자 옆에는 창이 큼직하게 나 있어서 내부는 매우 밝았다. 그리고 밖의 풍경이 잘 보였다. 어제 봤던 산의 암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바깥의 풍경을 보고 있는데, 향기로운 차를 만들어서 잔에 따른다. 차를 받아들면 기본적인 예를 갖추면 좋다.

“향이 참 좋습니다. 무슨 차입니까?”

여인이 다소곳이 말했다.

“녹차(綠茶)예요. 주지 스님께서 선물로 주신 태평후괴(太平猴魁)라고 하는 차에요. 차는 좋은데 솜씨가 없어서 항상 아쉬워할 따름이에요. 호호~!”

“아, 어쩐지 향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녹차 한 잔의 향기로움은 삶의 호사(豪奢)입니다.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잠시 차를 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그렇게 차를 두어 잔 마시고 나자 몸에서는 온기(溫氣)가 감돌았고, 실내는 차향이 가득했다. 그러자 여인이 말했다.

“실은 어젯밤에 손님들께서 공부하시는 것을 먼발치에서 뵈었어요. 창밖으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가 봤었거든요. 사실 절간에서는 늘 같은 모습이었다가 새로운 풍경을 접하게 되면 궁금하거든요.”

여인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약간의 설명을 했다.

“아, 그러셨습니까? 어제는 형님을 모시고 지기(地氣)를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멀리서 보실 것이 아니라 동참했더라도 좋을 것을 그랬습니다. 하하~!”

“어쩐지~ 그러신가 싶었어요. 모두 기감(氣感)이 예사롭지 않던걸요. 그래서 뵙고 싶었답니다. 이렇게 무례한 청임에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받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했다. 일행은 여인의 내력에 대해서 궁금한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자 지광이 말을 꺼냈다.

“고통의 나날이 참으로 길고도 길었구료. 그래도 부처님 공덕으로 잘도 버티셨으니 반드시 밝은 날을 보게 될 것이외다. 하하하~!”

여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일순 멈칫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그 뜻을 알았는지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사실 우창을 비롯한 염재와 거산은 이 여인의 내력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나마도 우창은 새벽에 잠시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줘서 대략 짐작이라도 하지만 거산은 무슨 뜻인지 영문을 몰라서 의아(疑訝)할 따름이었다. 잠시 후 여인이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말을 시작했다.

“역시 소녀의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선생님들께 의논하면 무엇인지 몰라도 해결책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거든요. 원래 소녀가 태어난 곳은 하북(河北)의 열하(熱河)예요.”

이렇게 말을 꺼내자 모두 조용하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답변은 지광이 할 것이므로 우창도 마음 편히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나 먼 곳이었나? 멀리서도 왔군. 올해 나이는 어찌 되시는지?”

“소녀는 경자(庚子)생으로 나이는 서른둘이에요. 세상을 떠돌면서 나이만 쌓여가네요. 호호~!”

여인이 예의 그 허허로운 웃음 속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가 있었다. 지광이 다시 말했다.

“여인의 나이가 서른둘이면 인연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워야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렇게 천하를 유람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우리네 팔자와 다를 바가 없지 싶구려. 아마도 영혼(靈魂)과 얽힌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왜 해결하지 못하고 그리도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는 것이오?”

“역시 핵심을 짚어 주셨네요. 소녀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뚜렷한 답을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잠을 자는데 꿈에 연화대(蓮花臺)에 앉은 관음보살께서 환하게 웃으시면서 약병을 내려 주셨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뭔가 좋은 결과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생겼어요. 그런데 새벽에 법당에서 기도하는 중에 이 처사님을 뵈었는데 후광을 본듯했죠. 이것은 부처님의 인연인가 보다 싶어서 당돌하게도 말씀을 드렸어요.”

여인이 우창에게서 후광을 본듯하다는 말이 나오자 우창은 무슨 말인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지광이 설명했다.

“그런가 보군. 일이 잘되려고 아우님에게서 후광이 보였나 싶구려. 이것도 또한 인연이 아니겠소이까? 하하하~!”

“정말이에요? 부디 소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 뭘. 너무 고생이 많으셨으니 이제 자유로워질 때가 되었나 싶소.”

“정말인가요?”

“물론이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한 여인은 허리를 굽히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도 기쁨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심사가 복잡해졌다. 과연 어떤 해결책을 보게 될 것인지는 기뻤지만 괜히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은 여인에게 다시 절망감을 주게 되지나 않을까 싶은 염려였다. 그러나 지광은 전혀 개의치 않고서 말을 이었다.

“오늘 저녁에 유시(酉時)가 되면 해결해 드릴 테니 그 문제는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아니오. 그런데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셨던가 싶은데 이제는 거의 영안(靈眼)이 열릴 단계까지 오지 않았소?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것은 축하해도 되지 싶구려. 하하하~!”

“예? 그런가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부쩍 그러한 현상이 잦아져서 이것이 무슨 일인가 싶어 하던 차예요. 그나마 나쁜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으로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아마도 통인사의 호법신장(護法神將)이 영험하신 것이 틀림없소이다. 이 절에 오기 전에는 그러한 현상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어떠셨소?”

“맞아요. 통인사에서 기도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특히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들과 동행하는 영혼들이 보이는 것도 신기했어요. 가끔은 동행하는 영혼이 굵은 사슬에 묶여있는 것이 보이기도 해서 조용히 말을 해 주면 소스라쳐 놀라는 경우도 간혹 있었어요.”

여인은 이러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하고 지광도 당연하다는 듯이 들으면서 대화하는 것이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듣느라고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다. 여인의 말을 듣고 지광이 말했다.

“그러한 것이 안 보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보인다고 해도 마음에 담아 둘 일은 없소이다. 그러다가 보면 사라지게 될 것이니 지나치게 예민하지만 않으면 될 것이오.”

“소녀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자신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서 마음이 아플 따름이에요.”

“그것도 모두 수행의 과정이지 않겠소? 천지간(天地間)의 신명(神明)이 깊은 뜻이 있어서 통인사까지 인도했으니 이제는 자유로워질 것이외다.”

“소녀는 한 맺힌 영혼이나 보지만, 처사님은 자연의 영혼을 보고 계시지요? 정말 대단하세요. 부럽기도 하고요.”

우창은 여인이 자연의 영혼이라는 말을 하자 그 뜻이 궁금했다. 그래서 지광을 쳐다보니까 지광도 우창의 마음을 알고는 설명했다.

“아우님은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네. 이 여인이 보고 계신 것이 딱히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짐작만으로 영혼일 것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니까 말이네. 그러니까 그 말의 뜻은 기감(氣感)이 있어서 교감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라네. 하하~!”

“아, 그런 것입니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영혼이라고 하셨군요. 재미있습니다. 하하하~!”

그러자 여인이 다시 말했다.

“참, 미쳐 소녀의 이름도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소녀는 강정민(姜貞敏)이에요.”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나서서 말했다.

“형님은 지광(地廣)이시고, 소생은 우창(友暢)입니다. 그리고 이쪽의 젊은 친구는 염재(念齋)이고, 저 사람은 거산(居山)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모두 공부하는 학인들이시니 혹 궁금한 것은 말씀하셔도 됩니다.”

우창이 이렇게 가리키면서 말하는 대로 여인, 강정민은 일일이 눈으로 인사를 하면서 얼굴을 기억했다. 강정민의 표정을 보면서 모두 소개한 우창이 말을 마치자 여인이 우창에게 물었다.

“아, 우창 선생이셨군요. 처음 뵈었을 적에 인생사(人生事)에 깊은 통찰(洞察)이 있으신 것으로 보였어요. 그 혜안을 정민에게도 조금만 베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이번에는 지광이 말했다.

“오호~! 오늘 아우님의 귀신같은 간지술(干支術)을 다시 보게 되는군. 어디 잘 풀어보시게나. 하하하~!”

이렇게 말하자 여인이 자신의 사주를 말했다. 우창이 내심으로 놀랐으나 내색은 하지 않고 여인이 불러주는 대로 간지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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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를 보자 염재도 관심이 생겼고, 거산은 처음 보는 간지가 신기한 듯이 바라보면서 어떤 말을 듣게 될 것인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우창이 먼저 말했다.

“아니, 어떻게 사주를 다 알고 있었습니까? 혹 간지를 알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의외로 사주를 불러주셔서 내심 놀랐습니다.”

우창의 말에 여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시달리다가 보면 그 정도는 알게 되지 않겠어요? 다만 인연이 없어서 아직 배워보지는 않아서 내용은 몰라요. 다만 간지의 기본적인 것만 이해하고 있을 따름이에요. 호호~!”

“그러시다면 본인이 기토(己土)인 것은 알겠네요?”

“예, 딱 그만큼만 알아요. 아, 겨울에 태어나서 불이 필요하다는 말은 들었던 적이 있어요.”

우창은 연월(年月)의 경자(庚子)와 정해(丁亥)를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동안 온갖 풍파(風波)를 헤쳐오느라고 가냘픈 여인의 몸으로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를 생각해 보니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저절로 일어났다. 그 표정을 지켜보던 지광이 웃으면서 말했다.

“거참 신기한 일이로군. 간지만 들이대면 바로 교감(交感)을 하는 아우님을 보면 나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니까~! 도대체 문자(文字)에 무슨 힘이 있길래 그렇게 사주를 척 보면 바로 알아내는지 나도 어서 그 방법을 배워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군.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야 형님께서 지맥(地脈)에서 풍겨 나오는 빛을 보시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우제는 오히려 형님께서 눈으로 보는 기(氣)의 세계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아닐세,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두 가닥이라고 봐야 할 것이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의 차이라고 할 것이네. 오행의 이치는 마음으로 보게 되지만 눈으로는 볼 수가 없으니 어찌 비교의 대상이 되겠는가. 차원으로 논해도 내 능력은 한참 아래라고 봐야지 않을까? 하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을 하면서 결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보면서 우창은 오히려 이해되지 않았으나 또 생각에 따라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할 수가 있었다. 다시 강정민의 사주로 눈길을 돌렸다. 우창의 눈길을 따라서 일행도 모두 자연스럽게 눈길을 한곳으로 모았다. 우창이 시간(時干)의 병화(丙火)를 손으로 짚으면서 말했다.

“이 시주(時柱)의 병화(丙火)는 백천 개의 일월을 모아놓은 것보다도 더욱 밝은 빛을 발하는 것으로 봐서 지금의 시련들은 나중에 중생을 구제하는 밝은 등불이 되기 위한 수련인가 싶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우수에 잠겼던 여인의 표정에 잠시 밝은 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차를 따르던 손을 멈추고 우창의 말에 답했다.

“정말 소녀에게 희망을 주시는 말씀이네요. 어쩐지 이번에 백일기도를 마치게 되면 뭔가 저의 앞길에 방향을 잡아 줄 인연을 만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는데 실로 이렇게 귀한 어르신을 뵙게 될 줄은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에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는 강정민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