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 제41장. 유유자적/ 3.단양(丹陽)의 통찰력(統察力)

작성일
2023-12-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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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41. 유유자적(悠悠自適)

 

3. 단양(丹陽)의 통찰력(統察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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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우창이 단양이 잘 지내는지 살펴볼 겸 여여실을 찾았다. 마침 연화와 오광이 단양의 점심상을 들고나오다가 우창을 보고 반겨 맞았다.

스승님께서 오셨습니까? 태사님은 오반(午飯)을 마치셨습니다. 상은 오광이 갖다 놓고 올 테니까 누님은 차를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어린 오광이지만 사리가 분명했다. 연화는 그 말에 미소를 짓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말했다.

태사님! 마침 스승님도 들리셨어요. 차를 만들어 올릴게요.”

그래? 들어오라고 하지.”

우창이 안으로 들어가서 단양에게 문안했다.

스승님 편안하셨습니까?”

그럼, 잘 지내지, 이리 앉게.”

단양이 자리를 권하자 우창이 앉아서는 둘러보니 어느 사이에 방의 분위기가 아늑하게 안정이 되어 있었다. 역시 연화의 손길이 스쳐 지나간 흔적이 느껴졌다.

어젯밤에는 스승님의 귀한 가르침으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가 감동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흐뭇했습니다. 많이 힘드시지는 않으셨습니까?”

괜찮아. 푹 쉬었잖은가. 허허허~!”

우창이 다시 찾은 것은 앞으로의 처신(處身)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먹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조언을 듣고 싶어서였다. 특히 유백온과 어떤 인연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더 듣고 싶기도 했다. 예전에 노산에서 유백온을 잠시 뵈었던 기억으로는 빈틈이 없어 보였는데 그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그러는 사이에 연화가 차를 가져와서 우창의 앞에 놓았다.

홍차(紅茶)를 준비했어요. 기홍차(祁紅茶)라고 불리는데 맛이 달고 향에서 과일의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에요.”

우창이 차를 한 모금 마시자 과연 과일을 베어 문 것처럼 향긋한 향이 풍겨 나와서 기분을 여유롭게 풀어줬다. 단양이 물었다.

어떻게? 궁금한 것이 생겼나?”

, 실은 백온 선생을 예전에 노산에서 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 그랬군. 충신(忠臣)들을 하나씩 숙청(肅淸)하는 것을 보고서 늘 무슨 일이 있으면 의논하던 성의백(誠意伯)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찾아와서 앞으로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묻는데 내가 조짐을 봐서는 명이 위태롭겠다는 말이지. 그런데 이미 스스로 충분히 알만한 수준인데 그것을 묻는다는 것은 아직 권력에 미련이 남아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목을 움츠리는 표정을 지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가서는 바로 떠났던 것이라네. 왜냐면 이미 사방에서 귀들이 감시하고 있어서 말하는 소리는 바로 태조(太祖)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으니까. 허허허허~!”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까? 안목이 뛰어난 백온 선생이라면 당연히 무슨 일이라도 시켰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말입니다.”

소를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일이잖겠나? 자명(自命)을 알면 보신책(保身策)을 강구 해야지 주변에 끌려다닌다면 또한 자기의 삶은 풍전등화(風前燈火)가 될 따름이지 않겠나?”

과연 명쾌하십니다. 알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일 텐데 그것을 알면 즉시로 결행하시는 것이야말로 보통의 내공이 아니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우창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이미 그 마음으로만 오행원을 이끌어 간다면 외부에서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스스로 자신의 중심을 지키게 될 테니 말이야. 아마도 미시(未時)쯤이면 누군가 찾아와서 뭘 알려달라고 의뢰할지도 모르겠군.”

? 그렇습니까?”

우창이 호기심이 동해서 단양을 바라봤다. 미시에 일어날 일을 진시(辰時)에 내다보는 능력이 신기해서였다. 이러한 우창의 표정을 본 단양이 웃으며 말했다.

오호~! 우창의 표정을 봐하니 무슨 관법(觀法)을 사용했기에 그것을 알아냈는지 알고 싶다고 이마에 쓰여 있군.”

참으로 놀라우십니다. 독심술(讀心術)까지 갖추고 계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연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별것 없어. 우창의 면상에 떠오른 붉은 기운을 읽었을 따름이네. 이것은 말로 설명해 줄 수가 없는 것이 아쉽군. 허허허~!”

찰색(察色)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건 말씀해 주셔도 우창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니 말씀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붉은 색이라면 불길한 조짐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그대의 역량(力量)을 봐야 하겠으니 알아서 대응해 보게. 미시말(未時末)이 되면 내가 나가볼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허허허~!”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스승님만 믿고 부딪쳐 보겠습니다. 하하하~!”

차를 마시고는 우창이 합장하고 일어났다. 그러자 연화가 따라나섰다. 백차방에서 차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서재로 돌아온 우창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생각하느라고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육갑패를 뽑아보기로 했다. 어떤 조짐이 있다면 나타날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였다.

 

 


 

 우창이 점괘를 뽑아놓고서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자원이 서재로 들어오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육갑패를 바라보고 있는 우창을 보고서 물었다.

아니, 싸부~! 뭐 하세요? 웬 점괘를?”

자원을 보자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자원의 관점으로는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 마침 잘 왔구나. 이 점괘에서는 어떤 조짐이 보이는지 살펴봐. 목적용신은 묻지 말고 그대로 보이는 것만 살펴보면 되겠어.”

, 말씀하시는 것으로는 싸부의 점괘네요? 근데 왜 이렇게 무기력(無氣力)하게 나왔을까요? 역량(力量)이 너무 없잖아요? 설마 놀러 갈 생각이 아니라면 무슨 점괘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도모하더라도 추진력(推進力)이 부족해서 이루기는 어렵다고 해야 하겠는데, 왜 뽑으셨는지 조짐을 모르고서는 그냥 놀기 좋은 괘라고 밖에는 해석하지 못하겠잖아요? 분주(分柱)의 정묘(丁卯)가 좀 의미심장해 보이긴 하지만 목적을 모르니 해석도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 맞네요. 호호호~!”

자원이 목적용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해석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비로소 단양에게서 들었던 말을 해주면서 물었다.

자원이 보기에 어떻게 생각돼? 스승님은 중요하게 말씀하셨는데 점괘에는 조짐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뭔가 잘못 보시고 하신 말씀일까?”

그건 아닐 거에요. 괜한 말씀을 하실 분은 아니니까요. 결론은 싸부나 자원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이야기지 뭐겠어요. 호호호~!”

하긴 그렇구나. 하하하~!”

우창이 점심을 먹고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미시가 다가오자 백차방에서는 차담(茶談)을 나누느라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창도 차를 마시면서 오전의 일을 잊고 있을 때 말발굽 소리가 들리면서 최 자사(刺史)가 도착했다는 말을 염재가 전해 줘서야 비로소 단양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온다던 사람이 자사였단 말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형님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무(公務)에 분주하실 텐데 나들이하셨습니까?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자사는 한 남자와 동행했다. 우창이 접객실로 들어가자 연화가 차를 들고 따라와서 차를 따라줬다. 오랜만에 자사를 본 서옥도 나와서는 인사만 하고 들어갔다.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놀러 온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서였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오늘은 우창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네. 이분은 암행(暗行)하는 어사(御史)로 경사(京師:왕궁)에서 밀파(密派)된 분이네. 소주에서 비밀리에 반란(叛亂)의 무리가 암암리에 모의하고 있다는 정보(情報)를 입수했는데 그들의 근거지를 오랫동안 추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무중(五里霧中)이로군. 그 신묘한 점괘(占卦)를 보고 어느 방향으로 집중해서 역당(逆黨)들을 색출해야만 기미(機微)를 살펴도 빨리 해결할 텐데 말이네. 이렇게 아우를 찾아와서 의논해 보자고 동행했다네 깊이 살펴 주기 바라네.”

이렇게 말하면서 진지한 포정으로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이 동행한 남자를 보니 과연 눈빛이 예리한 것이 어사라고 믿어도 되지 싶었다. 이런 경우에는 육갑패가 아닌 오주괘로 답을 보고 싶었다. 어쩌면 단양도 오주괘를 미리 돌려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제가 병오(丙午)였으니 오늘은 정미(丁未)이고, 지금 시간은 미시(未時)이니 시주(時柱)도 정미(丁未)이다. 분주는....? 회중시계를 꺼내어 보니 신축(辛丑)이었다. 그래서 붓을 들어서 점괘를 적었다.

 

 


 

우창이 점괘를 보면서 궁리하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는 것을 차방에서 들은 진명도 접객실로 들어왔다. 자사와 인사를 하고 손님에게는 눈인사만 건네고 조용히 앉아서 빈 찻잔에 차를 따르면서 점괘를 살펴봤다. 우창이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연화는 진명을 보자 접대하는 자리를 얼른 일어나서는 눈짓으로 부탁한다는 표정을 짓고 나갔다. 

아침에 단양의 말로는 지금까지 들어맞았다. 그런데 왜 우창의 역량을 시험한다고 했을까? 점괘로 봐서는 자사와 어사가 힘들게 될 조짐이 복음(伏吟)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분주에서는 그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게 된다는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의 본거지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그것도 손바닥을 보듯이 빤히 보였다. 서쪽의 물가를 의미한다는 것이 신축(辛丑)으로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을 하려다가 다시 단양의 말이 귓가를 때렸다.

내가 도움을 주러 갈 테니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거라.’

이 말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단양의 말에는 분명히 무슨 뜻이 숨어 있었다는 것은 느꼈고, 그것을 알아야 하겠는데 역량을 시험하겠다고만 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를 헤아릴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시간을 끌어보기로 하고서 말을 꺼냈다. 손님도 있고 해서 자사에게 형님이라고 하기가 뭣해서 직함을 불렀다.

자사 나리께서 귀하신 분을 대동하고 찾아주셨으니 영광(榮光)입니다. 차를 드시면서 천천히 이야기 나누셔도 되겠지요?”

아무렴 내가 너무 조급한 나머지 아우를 귀찮게 했네 그려. 차가 참 향기로운걸.”

자사도 우창이 얼른 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화제(話題)를 돌렸다. 어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서 우창이 적어놓은 간지(干支)를 보면서 이리저리 궁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어사에게 말했다.

혹시 어사 나리께서도 간지를 볼 줄 아시는지요?”

냉철(冷徹)해 보이는 어사가 우창의 물음에 흠칫하면서 말했다.

모르오. 공맹(孔孟)은 열심히 읽었으나 잡술(雜術)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글자만 알고 있을 따름이오.”

어사가 딱 잘라서 잡술이라고 말하자, 자사가 깜짝 놀라며 우창을 바라봤다. 행여라도 우창의 심기가 불편할까 싶어서였다. 지금 아무리 난관을 타개하려고 백방으로 수사(搜査)를 했으나 역당들의 정체는 안개 속이어서 조언을 구하러 왔는데 어사가 이렇게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창은 그런 말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도 빤히 보이는 답을 놓고서 말을 하지 않으려니 그것이 더 고충이었다. 우창보다 진명의 속이 시끄러웠다. 내심 어사에게.

공맹의 가르침에는 역당을 잡는 방법이 안 나옵니까?’

이렇게 묻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는 그렇게 희희낙락(喜喜樂樂)할 상황은 아니어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속으로만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마침내 우창이 점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사 나리께서 누추한 곳까지 왕림하셨는데 무엇인가 작은 도움이라도 드려야겠기에 부족한 지식을 쥐어짜서 답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하하하~!”

어사는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앉아있었다. 그보다는 어서 나가서 한 곳이라도 더 뒤져봐야 한다는 조바심까지도 묻어나고 있었다. 자사의 표정과는 달리 자꾸만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사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조짐이 어떻게 나왔나? 대략 사방팔방(四方八方)에서 어느 방향이라고만 알려준다고 해도 관부(官府)에서는 많은 인력의 손실을 줄이고 역당을 색출할 수가 있을 텐데 아무래도 그러한 일이 우창에게는 여반장(如反掌)일 테니 잘 살펴서 한마디만 해주게.”

우창은 마냥 미적거리는 것은 평소의 성미에 맞지 않았고, 코웃음을 치고 있는 어사에게 등골이 서늘한 한마디를 던져주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뭘 그렇게 찾아다니느라고 고생하십니까? 서쪽에 있는 늪 주변에 그들의 은거가 있으니까 오늘 밤 축시(丑時)에 군졸을 풀어서 포위하게 하고 급습한다면 항아리에 든 쥐처럼 일망타진을 하게 될 테니까 아무런 걱정도 말고 차나 드시지요.’

이렇게 말을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혹시나 진명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해서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진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우창은 다시 점괘를 들여다봤다. 아무리 봐도 틀림이 없었다. 더구나 축미충(丑未沖)까지 보여주고 있는 점괘는 급습하라는 것을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진명이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자기는 잘 모르겠다는 의미일 것으로 짐작하고 막 자기의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어머~! 죄송해요~! 이 일을 어떻게 해요~!”

앉아있던 진명이 차를 따른다고 차관(茶罐)을 들고는 우창의 찻잔을 쳐서 엎어버린 것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자연스러운 실수였지만 우창이 보기에는 실수를 가장한 고의였음이 명백했다. 평소의 진명은 그렇게 함부로 실수할 리가 만무(萬無)했기 때문이다. 우창이 진명을 바라봤다.

스승님, 어떡해요. 진명이 실수를 다 하네요. 엎질러진 차를 닦고 다시 따를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렇게 말을 하면서 탁자를 닦고는 다시 뜨거운 차를 따랐다. 우창은 지금 뭐라고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진명이 왜 이렇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느라고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태사님께서 오셨습니다.”

오광이 밖에서 단양이 왔다는 것을 우창에게 알렸다. 그제야 우창의 머릿속이 환해졌다. 이제 뭔가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겠다는 기대감이 솟아올라서 진명에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나들이하셨으니 들어오시라고 하고 차를 한 잔 더 준비해 주겠나?”

! 알겠어요. 얼른 준비하겠어요~!”

진명이 일어나서 단양을 맞이하느라고 잠시 소란했고, 어사는 이러한 번거로움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사도 그러한 표정이 부담스러웠는지 우창을 바라봤으나 우창은 오히려 안도감이 들어서 자사를 보며 말했다.

자사 나리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서 스승님께서 나오셨으니 우창의 졸견(拙見)보다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들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단양이 앉을 때까지 서 있자, 자리를 마련한 진명이 새 찻잔에 차를 따라서 앞에 놓고 말했다.

태사님 차 드세요.”

그래, 귀한 분이 방문하셨다기에 나도 인사나 드리고 싶어서 나왔으니 편하게 이야기 나누시오~!”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이 적어놓은 점괘를 바라본 단양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자신에게 기회를 넘기라는 뜻이었다. 우창이 바로 어사를 보면서 말했다.

마침 스승님께서 귀한 조언을 해주시지 싶습니다. 가르침을 청해 보겠습니다.”

어사는 맘대로 하고 대충 끝내라는 듯이 무표정하게 앉아있었다. 단양이 그것을 보면서 한바탕 웃었다.

허허허허~!”

이것은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웃음이었다. 모두 이목을 단양에게 모았다. 그러자 단양이 어사를 보면서 말했다.

오호~! 점괘를 보니 참으로 난제(難題)로군. 뭔지는 몰라도 상황이 안개 속인 걸로 보이는데?”

단양이 이렇게 말하자 자사가 반색하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해결의 실마리라도 얻어보려고 해도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아서 어떻게든 방향이라도 좀 알아보려고 찾아뵈었습니다. 귀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벌써 두 달이 지났으나 변변한 성과가 없어서 조바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입니다.”

암중모색(暗中摸索)이라..... 먼 산에 늑대 소리를 들으면서 놀라서 잠이 깨니 야밤에 뻐꾸기만 처량하게 울어 대는구나. 쯧쯧~!”

단양이 이렇게 말하자, 어사와 자사가 동시에 놀라서 단양을 바라봤다. 어사가 단양의 말에 다시 물었다.

노인장께서 하시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말씀하신 내용이 현재 우리의 심경(心境)은 맞습니다만, 그 말씀 속에는 해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사의 말에 단양이 다시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을 읊었다.

동쪽 하늘에 번개가 치니 서쪽 하늘에 폭우가 쏟아지는구나. 남북으로 바삐 뛰어다니건만 오리무중(五里霧中)일세.”

단양의 말을 되씹어봐도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겠는지 이번에는 자사가 단양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역시 용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답을 얻겠습니까?”

자사의 말에 단양은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제자야, 아직도 모르겠느냐? 오늘의 점신은 영발(靈發)이 떨어졌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쯧쯧~! 늙은이는 이만 가오.”

이렇게 한마디를 툭 던져놓고 단양이 돌아갔다. 우창은 그제야 단양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를 알아챘다. 답을 주지 말라는 뜻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진명을 보자 진명도 미소를 지었다. 우창이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기에 자사에게 말했다.

오늘의 점괘는 아무래도 안개 속이라고만 나오니 달리 원하시는 말씀을 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득괘를 해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바쁘신 중에 나들이하셨는데 원하시는 답을 못 드려서 어떻게 합니까?”

우창이 미안하다는 듯이 말하자 어사는 벌써 일어나고 있었다. 어서 가자는 뜻이었다. 자사도 그제야 체념하고는 작별하고는 돌아갔다. 활짝 웃은 진명이 우창을 보고 말했다.

아이고, 조마조마해서 혼났잖아요. 스승님께서 말하면 안 되는 일이었나 봐요. 갑자기 스승님의 맑은 후광에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거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점괘는 또 어떻게 나왔고요?”

궁금한 것이 많은 진명이 이렇게 물었으나 그것은 우창도 마찬가지였다. 진명과 함께 찻물에 젖어서 번져버린 점괘를 들고 여여실로 향했다.

스승님 우창입니다.”

들어오게.”

방으로 들어가자 오광은 단양의 다리를 주무르고 연화는 단양에게 부채질을 하고 있다가 얼른 일어나서 자리를 만들었다. 우창이 앉으면서 말했다.

스승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제자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명쾌하게 가르침을 주실 줄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려운 말씀을 던지셔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손님들은 실망만 하고 그냥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왜 빤히 나온 점괘를 덮어버리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일부의 글씨가 번져버린 점괘 종이를 앞에 내어놓았다. 그것을 본 단양이 물었다.

아니, 그런데 종이는 왜 그렇게 되었느냐?”

단양이 묻자, 진명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스승님의 후광이 빛을 잃고 있어서 예감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시간을 끌어야 하겠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다른 방법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우선 급한 대로 잔꾀를 냈어요. 호호호~!”

 

 

진명의 말을 듣던 단양이 오른손의 손바닥을 들어서 진명에게 내밀자 진명도 무슨 뜻인지를 알고는 자기의 손바닥으로 마주치자 ~’소리가 났다. 우창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