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릴리스 꽃대
작성일
2020-12-27 07:06
조회
664
아마릴리스 꽃대
"이것 봐~! 꽃대가 올라와~!"
연지님의 살짝 흥분된 소리가 들렸다.
그래, 따뜻한 방에 옮겨 준 보답을 할 모양이다.
오늘도 풀때기 이야기이다.
어딜 나가볼래야 갈 데도 없고, 갈 수도 없고...
낭월 : 근데 실은 왜 묶었어?
연지 : 그야 잎이 널부러지지 말라고.
낭월 : 그럼 튼튼한 끈을 찾아줄까?
연지 : 안 돼~!
낭월 : 왜? 그러면 좋잖아. 앞으로도 계속 자랄텐데.
연지 : 지금은 햇살을 더 받아야 하니까.
낭월 : 아하~!
더이상 할 말이 없다. 역시 구경꾼은 주인에게 미치지 못한다. ㅎㅎ
어쩌다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테넷을 보게 되었고
그러다가 또 덩케르크가 인연으로 다가 왔다.
오늘 오후에는 덩케르크를 봐야지.
매월 스카이라이프에서 서비스로 주는 1만원짜리 쿠폰도 아직 남았지.
화면이 오후의 햇살에 여지없이 폭격당한다.
동짓달의 낮은 일각(日角)으로 오후만 되면 들어온다.
그리고 그 햇살을 '냠냠냠~!'하는 이 친구들..... 우짜노...
연지님의 그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때린다.
"꽃대가 올라오고 있잖아~!"
곰곰 생각타가 법당으로 올라갔다. 병풍~~!!
궁즉통이요 발상즉시 행동에 옮기면 된다.
병풍을 갖다가 꽃화분과 화면의 사이에 벽을 쳤다.
구름이 낀 날은 괜찮지만 햇살이 따사로운 날에는 눈치가 보여서... ㅎㅎ
이렇게 빛과 어둠은 타협을 봤다.
자세히 보니 다른 아마릴리스도 꽃대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아마도 올 겨울이 가기 전에 새빨간 꽃을 보여주지 싶다.
꽃대가 나오기 전에는 누군지 모르는 객이 보였는데
화분의 주인이 등장하니까 객풀들은 또 뒷전이 되었다. ㅋㅋ
관찰하기 좋으려고 아미릴리스만 한 곳으로 모았다.
모두 여섯 분이다. 아직 꽃대가 보이지 않은 화분도 있다.
그래도 곧 올라올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영화의 세계로 빠져든다.
병풍이 덜 쳐진 것이 아니다. 밖과 안의 경계를 담아본 것이다.
말하자면 작가의 의도가 들어갔으니 작품이라는.... 무신. ㅋㅋㅋ
원래 빛이 이렇게 강한 것은 아니다.
병풍의 그림을 보려고 빛을 양껏 허용했다.
눈은 보고 싶은 것을 자동으로 보정하지만
카메라는 멍청이라서 아직은 멀었다.
그래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잘 보이면 그만이다.
이제 영화에 몰입해야지. 독일과 연합군이 전쟁하던 이야기란다.
덩케르크에서 영국군을 철수시키던 사연을 담았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지휘자도 침착하고, 병사들도 명을 잘 따른다.
침울한 중에 생명력이 꿈틀댄다.
비록 남의 나라 일이었지만 공감이 되는 것은 또 뭔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지만 감독의 섬세한 심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덩케르크가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 거야....
구글에게 물어본다. '어느 구석에 있는 곳이고?'
아하,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있는 프랑스였구나.
빤히 보이는 그들의 조국 영국이 평생 도달하지 못할 곳이기도 했군.
안 가봐도 가본 듯이...
구글비행기를 타고 덩케르크 항으로 날아갔다.
여객선이 손님을 태우고 있는 모양이다.
영국으로 가는 배일까? 그것도 궁금하다.
연료가 떨어질때까지 자신의 몫을 다 한 공군아제....
그의 비행기가 착륙했음직한 해안선이 예사롭지 않다.
영화에만 담아둘 것이 아니라 현실도 기억에 추가시킨다.
그렇게 한 시절의 처절했던 순간을 현장감으로 감상했다.
인간의 탐욕과, 생존과, 그리고 자아의 의미를.....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병풍을 걷었다.
노을이 예쁘다. 그러면 또 바빠진다.
흡사, 죽음의 행진에서 빛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노성산이 거기 있어서 고맙기도 하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준 노성산과 떠다니는 채운(彩雲).
계룡산에 달이 오른다.
크리스마스의 저녁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