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불상파괴 뉴스 & 게시판 실명제

작성일
2001-03-1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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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불상파괴 뉴스 & 게시판 실명제

근래에 어느 나라에서는 불상을 파괴하는 문제로 뉴스에 보도가 된 적이 있었는데, 유네스코나 기타의 나라에서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불상을 망가트리는 모양이다.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들의 마음대로 하는 일이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뭐라고 하기는 좀 뭣하기는 하지만 과연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이미 오래 전에도 있어왔다고 해야 하겠는데, 세월이 흘러가도 그렇게 사람의 마음과 해동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1. 회교도의 불상파괴 심리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강력한 회교국가에서 강력한 통치자로 군림을 하는데 자신의 나라에 다른 종교의 교주를 상징하는 형상이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기에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더구나 그의 교주는 어떤 형상이거나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은 모두 사악한 무리라고 못을 박아 뒀다면 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충분히 할 만 하겠다.

그래서 용납이 되지 않는 마음에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어서 부숴 버리면 속이 시원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아마도 충분히 군대를 동원하고 대포를 출동시켜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형상들을 예술의 관점에서 바라다 볼 정도의 심미안도 없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명령을 내릴 것이고, 아마도 자신의 교주에 홀라당 반해버린 사람이라면 다른 것은 모두 추하고 요사스럽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래서 혹시라도 성실한 교도들이 그러한 형상을 보면서 마음을 빼앗기거나 흔들리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판단을 한 나머지 대단히 큰 자비심으로 자신이 철퇴를 맞을 작정을 하고 달려들어서 일을 벌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겠다. 어찌 보면 순교자의 차원에서 그 일을 수행했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이슬람은 어떤 형상도 종교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장면이다.

2. (일부) 절에 불을 지르는 광신도

같은 현상이 우리 나라에서도 늘 존재하는 것도 또한 현실이다. 절에서는 광신도의 행동이라고 단정을 하는데, 경찰에서는 어쩐 일인지 모두 정신질환자로 마무리를 해버린다. 그대로 의심쩍은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달리 어떻게 해볼 수도 없다. 그렇게 해서 신도들의 소중한 재산으로 불사를 하여 법당을 모시고 기도를 하는 대웅전은 벌써 여럿 소각이 되었으며 그러한 일로 사회문제를 삼을 만도 하건만 어쩐 일인지 그냥 유야무야(있었지만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로 넘어가고 마는 것은 무슨 일인지 신골화상으로서는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그냥 납득이 되지 않을 뿐이다.

아마도 본정신으로 불을 질렀든 광정신으로 불을 질렀든 중요한 것은 뭔가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과히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것인데, 아마도 이 세상을 (그가 말하는) 종교의 천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오만하게 버티고 있는 사찰들은 눈에 가시로 보였을 것이 틀림이 없다고 하겠고 그래서 역시 과감하게 법당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를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이해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나라의 불상 파괴와 다른 차이는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고 생각이 된다. 구태여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숨어서 행동을 하고 하나는 내 놓고 행동을 한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일을 보면서 숨고 나타남은 다르다고 하겠지만 그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심리의 바닥을 살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3. 중국에서는 도교(道敎)와 불교(佛敎)의 투쟁이....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중국에서는 도교와 불교간에 엄청난 투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렇게 종교를 위한다는 이름을 걸고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은 또한 시대만 다를 뿐이지 결국은 자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독선(獨善)이 분명하다고 하는 것은 누가 생각을 해봐도 알 일이다.

노자를 흔히 도교의 교주라고 하기도 하는데, 노자의 마음을 봐서는 어림도 없는 말이라고 해야 할까보다. 하기야 세월이 변해서 위정자들이 자신의 목적인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늘 유명한 인물을 등에 엎고 나와야 하는 것이니까 아마도 이용을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치열하게 투쟁을 하는 것으로 본다면 노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다고 해야 하겠다. 참고로 근래에 책을 하나 구했는데, 제목이 재미있다.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이름으로 써진 책인데 도올선생의 강의가 하도 엉터리여서 바로잡으려고 썼다고 하는 글인데 내용은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 서점에 가시면 살펴보시라고 권한다.

물론 불교라고 해서 온전하겠느냐는 말은 다시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불교도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거나 또는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의 악업을 만들었을 것이 뻔하다고 해야 하겠고, 물론 석가모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러한 일은 벌어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근래에 방영되는 왕건을 보면 미륵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는 일이 참 걱정스럽기만 한 것도 일 예라고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자신의 생각이 지고무상(至高無上)하다는 관념은 늘 있어왔던 것이라고 본다면 시간이 달라졌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남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그냥 깔아 뭉개버리고 자신의 지식을 최고로 올려놓고 흐뭇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본다면 과히 무리한 해석이 아니라고 하겠다.

4.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당연히 순교적인 마음이 깔려 있다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일면에는 시기심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타나는 행동으로 상대방의 종교에 대한 상징물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고 봐서 무리가 없겠다.

1) 불상을 파괴하면서 승리감에 도취된다

어쩌면 이러한 효과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싸워서 이긴다는 말이다. 이기면 흥겹다. 그래서 불상을 부스러트리고 절에 불을 지른다. 그리고 그렇게 불타는 절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뭔가 자신의 교주를 위해서(교주는 원하거나 말거나 무관한 일이지만) 큰 일을 했다고 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희열감은 순교자의 그것과 비교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점차로 과대한 망상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세상의 사악한 찌꺼기들을 모두 없애버리는 특명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밖의 사람이 보기에는 상당히 염려스럽겠지만 본인은 그러한 것은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혹 누군가 반대를 한다면 그를 이단자라고 해서 함께 묻어버리려고 안달이 날 것도 염려를 해야 하겠다. 흔히 성전(聖戰)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성인의 이름으로 전쟁을 한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이기적인 해석인지를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2) 분풀이 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그 교주는 사라졌고, 그를 믿는 무리들만 있다. 혹 어쩌다가 (불행히도) 그의 신에 비해서 상대방의 신이 더 커 보일 수도 있겠다. 혹 그가 명예에 연연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대로 개종을 하면 그만이다. 다시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무슨 종교를 의지한다고 큰 소리를 했는데, 하루아침에 변경을 하기도 어려울 수가 있다는 것이 복잡하기만 한 사람의 심리이다. 그래서 어쩌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풀이를 그렇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리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심리의 소유자는 대단히 많을 것이다. 시기심이라고 해도 되겠다.

4. 여전히 그는 그렇게 존재하건만......

불상을 때려부수면 불교가 없어질까? 물론 당장은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그러한 행동은 불상의 존재만 더욱 부각시킬 뿐이다. 그 외에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이다. 아마도 더욱 많은 불상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되겠다. 오래 전에도 불상의 파괴는 있어왔고 그래서 우리는 목이 없는 불상이나 팔이 없는 불상 귀가 없는 불상을 많이도 갖고 있다. 그러한 채로 그렇게 불상은 존재하면서 여전히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고 해야 하겠고, 실은 그 불상이 설하는 것이 아니고 그 가르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을 한다고 해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렇게 때려부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가 부수는 것은 환영일 것이다. 그림자라고 해도 되겠다. 그러니까 그러한 사람들은 그림자와 상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무리가 없다고 하겠다. 왜냐면 불상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알 일이기 때문이다.

불상의 의미는 깨달음으로 안내하는 상징성이다. 32상과 80종호를 구족하려면 도를 닦으라는 의미로 불상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불상을 보면서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한다고 보겠는데, 불상을 부수는 사람은 그 가르침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상이 있음으로 해서 불교를 믿고, 이슬람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 불상을 부수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불상은 손가락에 불과하다.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 말이다. 달을 보라고 만들어진 손가락은 이미 그의 적이 아닌 것이다. 그냥 손가락일 뿐이고 쇳덩어리나 돌덩어리 혹은 나무 조각일 뿐이다. 그러니까 조금만 멀리서 바라다보면 자신이 상대를 해야 할 것은 이미 불상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달은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손가락만 물려고 달려든다. 아무래도 저능아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이러한, 보다 깨어있는 의식으로 세상을 관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우물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수준을 가늠할 수가 있는 것이다. 불상을 부수는 자는 손가락을 보고 물려고 달려드는 어리석은 개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고, 지혜까지는 그만 두더라도 조금이라도 보편적인 이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손가락은 잠시만 바라다보고 이내 버릴 것이다. 왜냐면 그는 이미 손가락의 의미를 파악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깨달음에 도달하기는 요원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혼자 해본다.

5. 게시판에서 험지(險指-험한 손가락)를 휘두른다

참으로 씁쓰레한 마음을 금하기가 어렵다. 그렇게도 깨달음과는 담을 쌓았는지 오로지 낭월이 약오르는 것만 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을 올리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불상을 부수는 장면과 게시판을 어지럽히는 장면이 서로 덮이면서 묘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

어쩌면 행동은 다르지만 그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낭월을 이단자로 몰아야만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치가 발을 펼 수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낭월로 인해서 대단히 열을 받았거나, 여하튼 이 두 가지의 의미 외에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가명으로 위장을 한 채로 난동을 부리는 것을 보면 역시 한국에서는 숨어서 대웅전에 불을 지르는 자들과 같이, 게시판에서도 하는 행동이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기까지 한다.

자유게시판을 실명제로 바꿨더니 또 문답게시판으로 몰려가서 깽판을 치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온갖 인신공격에 악담에 여하튼 남사스러울 지경이라고 하는 전화를 해주면서 위로를 하는 벗님까지 계실 지경이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고 해야 하겠다. 그렇게 되는 동안에 그는 과연 무엇을 얻게 되며 낭월은 무엇을 잃게 될까?

1) 그가 얻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는 방문자이다

물론 일부의 남이 못되는 것이 통쾌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벗님들은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비난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그러한 악담(惡談)을 읽으면서 참 교양 있고 조리가 정연하고 그래서 타당하다는 말을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열에 아홉은 일단 이게 무슨 짓이냐고 힐난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혹 방문을 하기 싫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러한 것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자신도 그러한 행동이 얼마나 당당하지 못한 일인지를 알 정도의 판단은 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늘 가명에 숨어서 행동을 하겠지..... 그리고 어쩌면 낭월이 충분히 알만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까지 포함된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2) 그가 잃는 것은 자신감이다

과연 남을 비방하면서 얻을 것이 무엇이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집안에서는 대우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아웃사이드에서 번민의 나날을 보내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도 어렵지 않다고 하겠다. 남을 욕하면 우선 당장은 통쾌할 수도 있겠지만 이내 그러한 행동들이 얼마나 의미 있는 짓인지를 스스로 너무 잘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두 번 해보고 의미가 없다고 하면 바로 그만둬야 하는데, 이것이 습관이 되어서 아예 그 짓에 안주를 해버리는 모양이다.

그렇게 불상을 때려부수는 마음으로 낭월의 험집을 찾아서 두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어있는 것만 같다. 달을 가르쳐주니 달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손가락만 물고늘어진다.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의 방향일 틀렸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이 더욱 지혜롭다면 올바른 달 관찰법을 찾아서 다시 확인을 하면 될 일이다. 이러한 일이 낭월에게 물고 늘어져서 될 일인가 말이다.

인생은 소중한 존재이다. 그리고 시간은 한정이 되어있다. 100년을 살거나 60년을 살거나 결과는 같다. 하나같이 소중한 시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중한 시간은 소중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다시 물처럼 흘러가고 만다. 비록 지금의 현실이 따분하고 답답하여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여하튼 조심조심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마도 현명할 것이며 적어도 낭월에게 이렇게 물고 늘어져서 그가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철이 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6. 실명제로 전환을 하면서.........

이제 마지막 하나 남겨뒀던 문답토론 게시판마저 실명제로 전환을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홈페이지의 의미가 상실될까 염려가 된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자고 하는 마음인데, 서로를 배려한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볼상 사나운 꼴을 보여주게 되어서 어쩌면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이제라도 이렇게 실명제로 전환하면서 착찹한 마음에 변명 삼아서 몇 말씀 드려 본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어리석은 마음에 깨우침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니까 불상을 부수지 말고 스스로 불상을 뛰어 넘으라고 말이다. 이미 그 불상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이다.

물론 소귀에 경을 읽은 꼴이겠지만.....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