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 성(姓)은 그냥 성일 뿐이다.
작성일
2013-04-0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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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성(姓)은 그냥 성일 뿐이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인데도 날씨는 여전히 냉랭한 것이 금새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의 계룡산입니다. 그래선지 꽃도 피다가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오늘은 또 괜한 망상을 해 보려고 합니다. 괜한 망상이라는 것은 쓸데 없는 걱정이나 궁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방송을 보다가 이름이 네 글자인 사람이 등장을 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된 것입니다. 바쁘지 않으신 벗님께서는 함께 생각을 잠시 해 본다고 하더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 성(姓)이 과연 종족적인 의미가 있을까?
누구는 김씨이고 누구는 조씨이고 또 누구는 박씨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익숙하게 성(姓)이라고 생각하고 가문을 대표하는 표징(標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최(崔)씨가 앉은 자리는 풀도 나지 않는다.'거나, '최고집'과 맞짱을 뜨는 성씨로는 '강고집'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성씨에 따른 특징을 지어보려고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더듬어서 파고 들어가 보면 성(姓)에 대해서 과연 믿을만 하냐는 것에 대해서는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네요. 물론 의심이 원체 많은 낭월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아무리 할인해서 생각을 하려고 해도 다 믿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까지도 정리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을 말씀드리면 성과 종족의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확실하지 않다.'는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물론 낭월이 밀양박가이고 혁거세 할아버지의 63세 손이라고 족보에는 되어 있습니다만 인류의 생존에 의한 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만으로 이 몸에는 박가의 DNA가 유전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을까 싶은 의구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믿음이 확실한 경우에는 믿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의심만은 낭월의 소견임을 미리 말씀드림으로 해서 괜한 오해는 하지 말자는 방패막이를....... 하하~!
2. 나는 과연 박(朴)가 일까?
하하~! 참으로 가문도 족보도 없는 놈의 넉두리 같습니다. 그렇지요? 뭐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면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확실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의심보따리를 좀 풀어놓아보려고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벗님께서도 성씨가 있으시다면 뭐 동의하시거나 혹은 반대하시거나 상관은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엉뚱한 놈도 있더라는 정도만 생각하시면 충분합니다. 하하~!
'.................아득한 옛날에 서라벌에는 여섯 마을의 촌장이 나라를 이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밖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서 나가봤더니 말의 등에 커다란 박이 실려있었길래 내려놓고 박을 열어보니까 속에 사내아이가 들어있어서 그를 왕으로 삼고 박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은 박이라고 하고 이름은 왕이라는 듯으로 혁거세로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전해지는 것을 조상의 전설이라고 하나요? 각기 성씨마다 이러한 설화 한 가지는 있기 마련이라고 하겠습니다만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구름 속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스케일적인 면에서 본다면 알에서 나온 조상보다는, 훨씬 큰 박에서 나온 조상이 더 우월할까요? 하하~ 웃자고 하는 말씀이니 김씨 벗님들께서는 신경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박(朴)은 아무리 봐도 한자가 만들어진 이후에 붙여진 것이 확실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니면 처음에는 그냥 박이라고 하다가 한자에서 박으로 불리는 글자를 찾아서 음(音)만 빌어서 이두문자를 사용하듯이 그렇게 붙여진 것일 수는 있겠습니다. 여하튼 그건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문제는 박혁거세의(형평성에 의해서 존칭을 생략하니 박씨의 후손이 되시는 벗님들께서는 너무 무례하다고 탓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누구였을까에 대해서 궁금하다는 것이지요. 여하튼 알에서 나왔든 박에서 나왔던 아니면 캡슐에서 나왔던 간에 누군가가 낳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을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고, 그의 부모가 박씨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도대체 어떤 조상이었을까는 참으로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낭월만 그런가요?
의심을 하려면 이렇게 뿌리부터 흔들어버려야 의심이 제대로 되거든요. 어슬프게 우리 부친께서는 과연 밀양박씨의 후손이 맞을까?라든지 하는 식으로 의심을 해서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혁거세의 아버지를 의심하고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제법 효과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이야기는 문서적으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상상으로만 만들어 볼 수가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상상은 원래 재미있으니까요.
3. 박혁거세의 아버지를 찾아서
박혁거세의 아버지를 찾으면 간단하게 해결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말을 등장시켰으니 아마도 그의 부친을 찾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조상의 이야기를 보면 그의 부모를 유추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감춰져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대로 그 종족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지만 상상은 그러한 것을 간단하게 넘어서 자유롭게 과거의 기억으로 여행을 떠날 수가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박혁거세의 아버지가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글의 제목을 보시면 짐작을 하실 것입니다. 성씨는 아무렇게 붙어 있더라도 그냥 성씨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관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고서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다는 해결책을 찾은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혁거세 이후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전란과 생존의 위기를 겪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과연 제대로 자신의 아내에게 씨를 전해줘서 대대손손 한 점의 의혹도 없는 박가의 가문을 지켜왔다고 자신있게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심이 듭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아내가 어떤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인해서 다른 씨를 잉태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순식간에 박가라고 하는 정통성은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물론 정절이 대쪽같은 여인네는 바로 허리띠로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고도 합니다만 생명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철학자들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니 다시 거론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섞기고 엉켜서 그야말로 무늬만 박가인 채로 그렇게 물려졌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회적으로 역사를 관찰해 본다면 충분히 그렇게 되었을 개연성은 존재한다고 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씨는 그냥 성씨일 뿐이라고 해야지,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서 새로운 족보를 만들겠다고라도 한다면 아마도 엄청난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고 사는 것이 최선의 지혜인 것이지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로 인해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궁금하긴 합니다만서도.......
여하튼 박혁거세의 아버지를 찾을 길은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박씨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겠고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 동의를 하신다면 이 이야기의 제목에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성은 그냥 성일 뿐 집착하지 말자~!!'라고 하는 의미도 충분히 헤아리셨을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전에는 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을 나타내는 글자가 성(姓)일 리가 없을테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생(甥)자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것은 남자라는 남(男)과 낳았다는 생(生)이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여(女)와 생(生)의 글자와 대비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 글자는 성을 말하지 않고 조카를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족보의 성으로 사용을 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무효가 되겠고 여전히 여자가 낳은 것이 성(姓)이라는 것만 유효해 보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하네요. 여자가 낳은 것은 확실하지만 남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요즘 드라마를 보면 계속 출생의 비밀이 등장을 하네요. 지겨울 정도로 절대 빠지지 않고 끼여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나오는 삼생이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야기의 상당부분을 출생의 비밀에 대해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슬며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곤 합니다. 연지님이 재미있게 보시는데 꺼버릴 수는 없고 그냥 나와버리는 것이지요. 이것이 조용한 항의랍니다. 하하~!
여하튼 벗님께서는 낭월의 주장대로 과연 박씨가 틀림없는 박씨라고 할 수 없고 다른 성도 이와 유사하다고 한다면 성에 집착을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동의만 하신다면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조상은 워낙 틀림없이 자손을 생산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억만분의 일이라도 그럴리는 없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으시다면 예외로 하겠습니다. 그럴 수도 없다고는 못하니까 말이지요.
4. 부모의 성씨를 같이 쓰는 것에 대해서
문득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언제부턴가 갑자기 네 글자의 이름이 한국인의 성명에 등장을 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원래부터 복성(複姓)인 제갈이나 사공과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박김○○라고 하거나 김최○○라고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친은 김이고 모친은 최가 될 경우에 부모는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성만 따른다는 것은 남존여비의 법을 따르는 것 같아서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아예 두 분 부모님의 성씨를 나란히 붙여서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처음에는 여성들이 그렇게 사용하는가 싶었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자유이므로 뭐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뭔가 불편해 보인다는 것은 익숙하게 외자 성에 두자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가 되어서 오래도록 내려온 관습으로 인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 보니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장은 그렇게 해서 개인적으로는 부모의 성씨와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이 되고, 법적으로는 부친의 성씨에 세 글자의 이름을 쓰는 것으로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만 법적으로도 이름자가 5자 이내라면 합법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 글자의 이름을 쓰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말이지요.
그렇게 부모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 자녀를 낳게 되었을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렇게 되면 만약 언젠가는 부모가 모두 부모의 성씨를 사용할 경우에 그들의 자녀는 반드시 네 글자의 성씨를 사용하게 되될 것이고,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름자를 외자로 사용하면 되는 까닭이지요. 그렇게 해도 다섯 글자를 넘지 않으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벗님께서는 낭월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시겠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손자손녀에게서 일어나게 됩니다. 손자 손녀의 성씨는 여덟자가 될 것이고, 여기에다가는 이름을 넣을 자리가 없을 뿐더러 성씨만 표시하는 것이 이미 불법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예? 그럴리가 있겠느냐고요? 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전통이라는 것이 묘하게 전달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자의 성을 사용하는 부모가 그들의 자녀에 대해서 이름을 지으면서 어느 글자를 뺄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면 간단하게 생각을 해도 참으로 만만치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태어난 아기는 자신의 이름을 지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싫든 좋든 상관이 없이 부모가 지어주는대로 이름이 붙게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법이 제약을 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처음에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서 이름에 사용할 한자를 2,500자 정도로 제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불과 20여년을 버티지 못하고서 5,200여자까지로 확대가 된 것을 보면 이름자가 다섯 자에서 열 자가 되고 스무 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헌법을 걸고 국민의 자유권을 주장하게게 되면 버틸 재간이 없거든요. 그렇게 해서 법은 고치고 성씨는 대대손손 늘어나게 되었을 경우를 걱정하고 있는 낭월입니다.
괜한 망상이라고 하고 싶으시지요? 그래서 맨 첫 머리에 드린 말씀입니다. 괜한 망상이라고 말씀드렸으니까요. 왜 괜한 망상이라고 하느냐면 그렇게 하다가 또 불편해지면 다른 해결책을 찾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끝 났네요? 다 해결이 될 것이니까 결국은 시간이 말을 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면 되겠으니까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을 해 보는 것은 과연 그것이 의미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5. 내 부모는 내가 존경하면 그만이 아닐까?
존경이나 사랑은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내 스스로 아버지와 똑 같이 어머니를 존경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물론 동의하지 않으시더라도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은 마치 누군가에게
"나는 어머님도 아버지와 똑 같이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어머니의 성도 같이 사용한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낭월의 망상으로 쫓아 가 본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지요. 여하튼 낭월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하려는 잠재적 심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슬며시 해 봤습니다. 원래가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많은 낭월이다보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어머니의 지위가 향상되는 것이라면 백번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할 이유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어머니보다 더 소중한 분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말이지요. 잘 해 드리고 싶어도 계시지 않은 어머님에 대해서 자주 생각이 나곤 하네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한 번 정도는 더 생각을 해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것은 각자의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더 이상 뭐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봐서 망상으로만 남겨두고자 합니다.
6. 이름을 짓는 사람의 고통도 있을 것 같아서...........
사랑의 결실로 얻은 소중한 자녀의 이름을 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짓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에 대해서 이름을 지을 적에는 작명가에게 의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기왕이면 오래 살고 돈을 잘 벌고 공명을 얻어서 행복한 삶이 되고자 하는 이름이 있다면 그런 이름을 선물하고 싶어서이겠지요. 그러다보니까 작명가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얼마 전에 공부를 하러 왔던 선생이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작명법을 설명해 주는데 성이 두자에 이름이 열자가 되면 그것은 어떻게 풀이를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작명법에는 없는 것이니까 편법을 동원해서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는 것은 또한 신빙성만 자꾸 떨어질 뿐 과연 그 해석이 이치에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이 되든 안 되든 간에 기준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대로 외자 성에 두 자 이름이라면 그래도 해석을 할 기준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참, 긴 이름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으신가요? 어느 자료에 의하면, 가장 긴 이름으로 한국인의 이름에서는 '김온누리빛모아사름한가하'라는 이름이 있는데 12자로 되어 있군요. '가장 긴 이름으로 기록을 세운 이름자는 박하늘별님구름햇님보다사랑스러우리'씨라고 하네요. 여하튼 이러한 이름을 그 당시에는 제한이 없어서 등록하여 사용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작명가의 고통도 앞으로는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부모의 성씨를 다 쓸 정도의 주체성이 강한 부모라고 한다면 작명가에게 의뢰를 하러 갈 것 같지는 않아서 한 편은 다행이기도 하겠습니다.
이렇게 또 2013년의 어느 봄 날에는 쓸데없는 망상으로 잠시 머리를 식혀봤습니다. 물론 약간의 참고가 되신다면 더욱 고마운 일이지요. 모쪼록 고르지 못한 날씨입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3년 4월 2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