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 제42장. 적천수/ 13.나형(螺形)과 원형(圓形)

작성일
2024-04-1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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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42. 적천수(滴天髓)

 

13. 나형(螺形)과 원형(圓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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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도 고월의 탁월한 견해를 들으면서 내심 감탄했다. 더구나 현담의 형식(形式)에 거리낌 없는 소탈함에 대해서도 감동했다. 흡사 마음이 중심에 있다면 사방팔방으로 트여서 문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창은 다른 제자들을 위해서 한마디 언급하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현담에게 물었다.

스승님, 병신합(丙辛合)에 대해서 의문이 있습니다. 합수(合水)라는 말은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미 을경합(乙庚合)에서 이해는 되었습니다만, 왜 이러한 이야기가 나와서 경도(京圖)가 언급했는지 궁금합니다. 합화(合化)의 소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요?”

우창이 이렇게 묻자, 현담이 미소를 짓고는 말없이 차를 마셨다. 그딴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묻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마지못해서 말하는 듯이 한마디 했다.

왜 쓸데없는 생각에 소중한 삶을 바친단 말인가? 허허허~!”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제자들을 위해서 말씀해 주시면 그것도 또한 자비심(慈悲心)의 좋은 방편이지 않겠습니까?”

우창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질문만 귀양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기도 했거니와 이런 기회에 제자들에게 합화의 이치가 무엇인지를 각인시켜서 두 번 다시는 이러한 문제로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그 뜻을 이해했는지 현담이 천천히 말했다.

그래, 알았네. 지금 경도가 병신합수(丙辛合水)에 대해서 말한다고 생각했던가 보군.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왜 겁을 내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그에 대해서 해석했습니다만, 경도의 의중(意中)을 헤아려서 합화의 이치를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습니다.”

알겠네. 그렇다면 내가 수고를 양보하지. 허허허~!”

고맙습니다. 합화(合化)가 분명히 어딘가에 나오는 이야기이지 않겠습니까? 어디에서 나오는 말입니까?”

실로 합화의 역사는 길지. 삼황(三皇)의 하나인 황제(黃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까 말이네.”

그렇다면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네요. 문헌(文獻)에도 남아 있습니까?”

물론이지. 황제내경(黃帝內經)소문(素問)에서 황제와 기백(岐伯)의 대화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오운육기(五運六氣)’라는 말로 정리되어서 의방(醫方)에서 쓰이기도 했다네. 그러니까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고 신체적인 부분을 논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군.”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어딘가에 역사적인 흔적이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오늘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논명(論命)을 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네. 그냥 지식(知識)을 한 조각 얻어서 방구석에 처박아 놓는다고 생각한다면 또 모르겠다만. 허허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귀를 활짝 열겠습니다. 하하~!”

올해는 무슨 년인가?”

태세(太歲)는 계유(癸酉)입니다.”

그렇군. ()는 무계합화(戊癸合火)라고 한다네. 그래서 무계의 태세에는 태허공(太虛空)에 병정(丙丁)의 단천지기(丹天之氣)가 각진(角軫)을 통과하기 때문에 화운(火運)이라고 한다네.”

각진(角軫)은 무슨 의미입니까?”

우창도 처음 듣는 말이라서 다시 물었다. 그러자 현담이 간단히 설명했다.

규벽(奎璧)과 각진(角軫)이 있는데 이것을 천지(天地)의 문호(門戶)라고 한다네. 규벽은 하늘의 문이라서 술해(戌亥)가 되고, 각진은 땅의 문이라서 진사(辰巳)가 되는 것이지. 그리고 그 설에 의하면 땅의 기운은 진()을 통과하는데 오운(五運)은 바로 이 각진(角軫)에서 드러나게 된다네. 그러니까 무계년(戊癸年)에는 오운(五運)이 진()을 지나면서 단천지기(丹天之氣)가 되어서 화운(火運)이 된단 말이지. 그래서 월건(月建)에서 병진(丙辰)이 되는 것이라더군.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무계년은 화운(火運)이라고 한다는데 이것이 명학에 묻어온 이유는 모르겠으나 오운의 이치는 이와 같다네. 허허허~!”

정말 처음 들어보는 말씀입니다. 듣기에는 이치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계유년(癸酉年)의 진월(辰月)은 병진(丙辰)이니까 말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논리의 시원(始原)은 더 오래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럴 것이네.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오래된 것은 짐작할 수가 있을 테니 말이네.”

말씀을 들으면서 의문도 있습니다. 각진(角軫)이라서 진월(辰月)에 오운(五運)이 본색을 드러낸다고 했잖습니까?”

그렇지.”

오운(五運)은 하늘의 운행이라고 한다면 왜 지호(地戶)인 각진에서 천운(天運)이 드러난다고 생각했을까요? 오히려 천문(天門)의 규벽(奎璧)인 술월(戌月)에 드러나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무계년(戊癸年)의 오운은 임술(壬戌)이 되어서 수운(水運)이라고 하게 될 텐데 말입니다. 하필이면 각진에 병진(丙辰)이 된다고 해서 화운(火運)이라고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무계년에는 임계(壬癸)의 현천지기(玄天之氣)가 천문(天門)을 통과(通過)하니까 무계합수(戊癸合水)가 된다고 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어리석은 제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어쩌면 무계합화(戊癸合火)의 논리를 꿰어맞추기 위해서 찾다가 보니 진월(辰月)이 병진(丙辰)이라서 그렇게 각진이 선택되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망상일까요?”

우창의 말을 듣던 현담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기발(奇拔)하구나. 나도 전혀 그렇게 생각할 방법은 찾지 못했는데 말이네. 허허허~!”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일리는 있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든 이야기와 논리들은 합이불화(合而不化)로 정리한다면 일절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종화(從化)에 대한 부분을 공부하면서 다시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도 진지하게 말했다.

아마도 그러한 주장은 낙서(洛書)에서 나왔을 것이네. 낙서는 중궁(中宮)에 오()가 있으니 말이네 여기에서 더 들어가면 구성학(九星學)을 만나게 될 것이고, 자백결(紫白訣)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다시 구궁팔괘(九宮八卦)로 파고 들어가야 할 텐데 그것조차도 해 볼 참인가? 그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참으로 혼란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갈 텐데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것은 어떻겠나?”

현담의 말에 우창은 손을 내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지금은 적천수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이미 벅찹니다. 그러한 공부는 나중으로 미뤄도 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봉신반겁(逢辛反怯)은 병화가 신금(辛金)과 사랑에 빠진 관계로 주변의 팔간(八干)이 모두 근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으로 정리하면 충분하겠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다음은 오광(五廣)이 풀이해 볼 텐가?”

항상 현담의 옆에서 차를 따라주고 있는 오광에게도 생각이 있다면 발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오광을 보면서 말했다. 오광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예습(豫習)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풀이는 할 수가 있어서 천천히 말했다.

태사님께서 기회를 주시니 부족하나 보이는 대로 풀이를 해 보겠습니다. ‘토중생자(土衆生慈)’는 토()가 무리를 이뤄서 많이 있더라도 싫어하지 않고 자애심(自愛心)을 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토가 많으면 화생토(火生土)를 하느라고 화가 허약(虛弱)해져서 자애심이 생기다가도 고통이 될 수도 있는데 병화(丙火)는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오광이 이렇게 풀이하고는 현담을 바라봤다. 이렇게 풀어도 되는지 확인하는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현담이 말했다.

옳지! 잘 풀었구나. 이 단계에서는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라는 뜻이므로 용신(用神)을 가리기 위해서 일간(日干)의 강약(强弱)을 논할 단계는 아닌 까닭에 병화의 특성에 대해서만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한 까닭이니라.”

현담의 말을 듣고서 오광이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잘 알겠습니다. 다음은 수창현절(水猖顯節)’이니 수창(水猖)은 임계(壬癸)와 해자(亥子)가 명국(命局)을 휘젓는 것을 말하는데, 비록 상황이 그렇더라도 병화(丙火)는 절개를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양중지양(陽中之陽)인 병화인지라 스스로 화기(火氣)가 충만한 까닭에 비록 왕성(旺盛)한 수기(水氣)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맞서 싸울지언정 굴복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오호! 역시 선기(禪機)가 보이는구나. 잘했다. 누가 풀어도 그보다 더 잘 풀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감사합니다. 스승님 말씀에 용기가 샘솟듯 합니다.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오광이 합장하고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서평(西平)을 가리켰다. 그러자 일어나서 합장했다.

그대도 여기에 대해서 생각이 있는 듯하니 어디 풀이하거나 의견을 내어 봐도 좋네.”

제자는 서평(西平)입니다. 원래 의학(醫學)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하다가 명문(命門)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셨던 오운육기에 대해서도 대략 알고 있었는데 모처럼 말씀을 듣고서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이야기 좀 들려주겠나? 나도 그게 궁금하다네. 의학(醫學)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게.”

현담은 여전히 열정적인 호기심이 왕성했다. 의학을 공부했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핵심을 짚어서 물었고 우창도 듣고 싶던 차에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서평이 합장하고는 말했다.

오운(五運)은 태과(太過)와 불급(不及)으로 구분합니다. 계년(癸年)은 화운(火運)에 속하고 계가 음()이기 때문에 불급(不及)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므로 화불급(火不及)이 되는 것이지요. 반면에 무년(戊年)은 양()이어서 화태과(火太過)의 해가 됩니다. 화불급이 되면 인체(人體)의 화()를 주관하는 심소장(心小腸)의 기운이 허하게 되어서 이와 관련된 부분에 질병이 발생한다고 해석합니다. 이점을 미리 알아서 계유(癸酉)년이 되기 전에 의원(醫員)은 화불급의 해에 질병이 발생할 것을 미리 알아서 약재를 준비하게 됩니다. 이것이 의학에서 바라보는 오운론(五運論)입니다.”

서평의 말에 현담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오호! 그것참 재미있는 말이지 않은가? 미리 질병이 창궐할 것을 알고 있다면 인류의 구제(救濟)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 않은가?”

실로 그렇습니다. 다만 막상 진맥(診脈)하고 임상(臨床)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영향을 받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서 점차로 활용적인 면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을 것으로 사료(思料)가 됩니다. 더 자세한 것은 말씀드릴 주변이 되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하긴, 서평이 의원은 아니니까 당연하다고 하겠네.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것을 묻겠네. ‘무계년(戊癸年)은 합화(合化)해서 화화(化火)로 변한다는 논리는 설명할 수가 있겠나?”

()의 이치는 이미 명학에서도 그래도 적용하는 것으로 봐서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합화(合化)는 과연 존재하느냐는 말씀이신데. 이것은 제자도 언급하기가 어렵습니다. 계년(癸年)이면 화()의 기운으로 변화한다는 뜻인데 어차피 계유년에 태어난 사람은 계수(癸水)와 유금(酉金)으로 논할 따름이니까 말입니다. 이로 미뤄서 추론(推論)해 보면 아무래도 화기론(化氣論)은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오히려 논외로 하는 것이 더 깔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합화(合化)의 이치가 없다고 본는데 동조(同調)하는 마음입니다. 부족한 설명이지만 참고가 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덕분에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네. 그렇다면 이제 풀이를 해 보겠나? 어디 어떤 의견인지 들어보도록 하지.”

현담은 본문의 내용에 대해서도 풀이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서평이 다시 풀이했다.

서평의 소견으로는 병화(丙火)는 세상을 밝히는 빛이고 그 근원은 태양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생토의 이치에 따라서 온갖 만물이 빛을 의지해서 생존할 수가 있도록 자비를 베푼다고 생각합니다. 큰 아름드리나무로부터 작은 딱정벌레까지도 모두 빛의 도움으로 골고루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자애심(自愛心)을 일으킨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허공의 태양은 아무리 지상(地上)에서 큰물이 범람해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뿐입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봐서 사주에서의 병정사오(丙丁巳午)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물이 범람해도 절개를 지킨다는 평이(平易)한 말로 이해가 부족한 후학의 안목을 열어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서평이 이렇게 풀이하고는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현담이 정리 삼아서 의견을 첨부했다.

그렇다네. 서평이 말을 한 대로 천간론(天干論)은 사주에서의 일간(日干)나 오행(五行)의 균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천간의 본질과 역할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지. 허허허~!”

현담의 칭찬을 들은 서평이 합장하고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현담이 이번에는 유하(遊霞)를 가리키고 말했다.

어디 마지막 구절은 그대가 풀이해 보게.”

! 태사님. 유하입니다. ‘호마견향(虎馬犬鄕)’은 아마도 인오술(寅午戌)이 모여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 글자가 합()을 이루면 화기(火氣)가 치성(熾盛)하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갑래분멸(甲來焚滅)’이라고 했으니, 갑목(甲木)이 오게 되면 그 열기로 인해서 목은 불타서 없어지게 된다는 뜻으로 보여요. 특별히 어려워 보이는 내용이 아니어서 이렇게 봤는데 혹 깊은 이치가 있다면 경청(傾聽)하겠어요.”

유하가 이렇게 풀이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언뜻 봐서도 여기에서 더 깊은 이치를 찾을 수는 없어 보였는데 현담이 고월에게 물었다.

아마도 고월은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또 생각한 바를 말해 보시게.”

현담은 질문의 화살을 고월에게로 돌렸다.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내용 속에서도 뭔가를 찾아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고월이 현담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었는데 마침 스승님께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생각나는 대로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어디 고월의 설명이 기대되는군. 허허허~!”

현담이 유쾌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다른 대중들은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에 무슨 궁리를 할 것이 있어서 고월이 저렇게 말하는지가 더 궁금해서 이목을 집중했다. 대중을 한 번 둘러본 고월이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고월이 생각하기로는 인오술(寅午戌)의 출처(出處)는 삼합(三合)일 것으로 보는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서?”

그렇다면 삼합(三合)이라는 것이 과연 실재(實在)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겠는데 그것이 좀 의심스럽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남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월은 왜 의심하는지가 오히려 더 궁금하군. 허허허~!”

간합(干合)에 대해서 여태 말을 했습니다만, 인오(寅午)는 간합과도 무관합니다. 단지 목생화(木生火)라고 하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또한 오술(午戌)도 화생토(火生土)라고 한다면 또한 당연한 오행(五行)의 이치 안에서 작용하므로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생극(生剋)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왜 삼합의 이치가 포함되어 있느냐는 말이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심지어, 인술(寅戌)이 있으면 없는 오()를 불러들여서 합을 채운다는 설까지 나오고 보면 이러한 논리는 목극토(木剋土)를 벗어나서 허공을 맴돌고 있을 따름이니 무슨 이유로 삼합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방법이 묘연(渺然)할 따름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애초에 없는 것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 출처가 어디라고 생각하나? 비록 오행법(五行法)으로는 해당이 없다고 하더라도 삼합법은 또 나름대로 존재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네.”

현담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짐짓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고월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인오술의 출처를 추적(追跡)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찾았더니 풍수지리(風水地理)에 근원이 닿아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풍수지리에도 그런 것이 있기는 하지.”

그것을 생각하면서 나형(螺形)과 원형(圓形)에서 비롯한 오해(誤解)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형은 다른 말로 나선형(螺旋形)이라고도 합니다. 자평법은 나형(螺形)이고 풍수학(風水學)은 원형(圓形)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비로소 삼합에 대해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오호! 참으로 대단하군. 그 의미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겠나?”

물론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략히 지지도(地支圖)를 그려놓고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고월이 붓으로 간단히 지지도를 그려서 앞에 놓고서 설명했다.

 

 


 

나경(羅經)에는 이십사산도(二十四山圖)가 있습니다만 지지만 간략히 표시해도 이해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원형(圓形)입니다. 그리고 네 지지(地支)를 서로 연결하면 이와 같은 정삼각(正三角)의 형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에 글자는 인((()이지요. 그리고 이것을 풍수학에서는 삼합이라고 하는 말로 사용합니다.” 

맞아, 그건 아마 모두 알고 있을 것이네. 그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단 말인가?”

문제는 모르겠습니다만, 대입(代入)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나형(螺形)과 원형(圓形)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간지(干支)의 배열은 나선형(螺旋形)인데 나경(羅經)은 원형(圓形)입니다. 원형에서는 그렇게 하더라도 알 바가 없겠으나 간지를 원형으로 나타내게 한다면 이것은 큰 착각이 빚어낸 오류(誤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고월이 대중을 둘러보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간지가 나형이라고 보는 것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이 반복되는 까닭입니다. 다만 반복되더라도 태세(太歲)가 달라지는데 매년 돌아오는 것이 같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돌아오는 것은 원형(圓形)처럼 보이지만 시간(時間)을 생각한다면 같은 시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은 까닭에 소라의 회전하는 곡선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히 같은 자리에 도달할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간지(干支)는 나선형이고 나경은 원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형의 이치를 나선형에 도입(導入)하는 것은 큰 오류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군. 고월의 설명을 듣고 보니 지극히 타당한 말이로군. 아마도 다른 대중도 이해가 되었을 것이네. 그렇다면 적천수에서 경도가 전하고자 한 말은 무엇인가? 경도는 삼합의 이치가 잘못되었음을 몰랐을 수도 있겠나?”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오류는 저희 후학이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석(註釋)에 다시 주석이 붙게 되는 까닭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인지 원문의 판본(板本)에 따라서는 호마견향(虎馬犬鄕), 갑목약래(甲木若來), 필당분멸(必當焚滅)’이라고 된 곳도 있는데, 뜻을 살펴보면 대동소이합니다만 글자의 운율(韻律)이 맞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 어쩌면 삼합의 이치가 미심쩍어서 추가했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긴 하겠군. 그렇다면 여덟 글자를 어떻게 바꾸면 되겠는가? 어디 고월의 견해를 들어보도록 하지.”

현담이 고월에게 원문을 고쳐보라고 말하자 고월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제자가 생각하기로는 지전사오(支全巳午) 갑래분멸(甲來焚滅)이라고 하면 생극의 이치도 살리면서 글자의 수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호마견향(虎馬犬鄕)을 지전사오(支全巳午)로만 바꾸면 전혀 문제가 없이 군더더기를 털어버릴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고월이 하는 말을 가만히 생각하던 현담이 감탄하며 말했다.

오호! 과연! 고월의 사려(思慮)가 경도보다 한 수 위임을 내가 인증(認證)하겠네. 잘했어. 허허허~!”

그 말씀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치에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여겨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경도가 호마견향이라고 한 것도 사실은 지전사오의 의미로 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시의 분위기를 감안(勘案)해서 생각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롭다고 할 수는 없고 약간 고치는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고월이 이렇게 말하고는 합장하고 자리에 앉자, 현담이 이번에는 우창에게 의견을 물었다.

우창의 생각은 어떤가? 혹 다른 의견이 있으면 지금이 말할 때로군.”

현담은 혹시 우창에게는 또 다른 의견이 있는가 싶어서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말했다.

스승님, 우창도 고월의 생각에 전적(全的)으로 동의(同意)합니다. 어찌 삼합 뿐이겠습니까? 비록 호마견향으로 인해서 인오술을 말했을 따름이지만 신자진(申子辰)이니, 방합(方合)이니, 지합(地合)이니, 간지학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군더더기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고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담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중을 향해서 말했다.

오늘 그대들이 본 대로라네. 학문은 이렇게 파고들면서 토론하고 의심하고 또 새로운 이치를 추구하는 것임을 명심하게. 자칫하면 일천 년도 더 넘은 군더더기에 치여서 정작 학문의 핵심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언저리를 배회하다가 일생을 하직하게 될 수도 있음을 말이네. 다행히 우창과 고월같은 밝은 스승을 만났으니 아마도 모두 전생에 심어놓은 선근(善根)이 크다는 것을 알겠군.”

이렇게 말하고 오늘의 공부를 마무리했다. 모두 병화에 대한 깊은 이치를 생각하면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