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 제41장. 유유자적/ 11.한 걸음 더!

작성일
2024-02-0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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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 41. 유유자적(悠悠自適)

 

11. 한 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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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어(家語)공자가어(孔子家語)라고도 합니다.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 논어(論語)인데 여기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따로 모은 것이라고 전합니다.”

염재의 말에 수경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래? 들어 봤던 책이기도 한 것은 같은데 자세히 아는 바는 없어. 어디 염재의 배움을 나눠주면 안목을 더욱 높게 하겠네. 부탁해.”

자로(子路)가 공자를 뵙고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인가 봐?”

맞습니다. 공자가 자로를 처음 보고서 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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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너는 무엇을 좋아하는고?

자로: 저는 장검(長劍)을 좋아합니다.

공자: 내가 칼 쓰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던 것이 아니다. 넌 네가 잘 할 수가 있는 것만을 좋아하는구나. 그것에다가 학문(學問)으로 연마한다면 누가 널 이길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자로: 글을 배워봐야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공자: 그야 임금이라도 옆에서 올바른 이치를 말해 주는 신하가 없다면 올바른 것을 잃게 될 뿐이고 선비라도 옆에서 친구가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또한 배운 것을 잊어버리게 될 따름이니까. 길들지 않은 말을 위해서는 손에서 채찍이 떠날 수가 없고, 활을 쏘려면 활을 조정하는 것을 게으르지 않아야 하고, 나무를 자를 적에도 먹줄을 튕기지 않으면 바르게 자르기 어려운 것처럼 사람도 듣기 싫은 말을 들을 줄 알아야 성인(聖人)이 된다. 학문을 할 적에는 물어보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게 한다면 누가 능히 따르지 않겠느냐? 만일 선한 사람을 헐뜯고 관리를 비방한다면 형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래서 군자는 항상 배움에 힘써야 하는 게다.

자로: 종남산에는 죽림(竹林)이 있는데 누가 잡아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게 자라서 그것을 베어서 물소를 찌르면 두꺼운 물소의 가죽도 뚫습니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어찌 공부하라고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공자: 모르는 소리 말아라, 그 대나무를 잘라서 뒤쪽에는 새의 깃털을 붙이고 앞에는 날카로운 쇠로 만든 촉을 끼워서 활에 걸어서 쏜다면 적은 힘으로도 더 깊게 박히지 않을까?

자로: (일어나서 제자의 예로 두 번 절하고)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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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친 염재가 수경을 보면서 말했다.

마침 수경 누나가 무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바람에 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자로는 원래 무사였는데 공자를 만나서 그 난폭함을 꺾고 학문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무사는 누나와 대화를 나누고서 칼 대신에 붓을 잡겠다고 했으니 누나야말로 공자와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되겠습니다. 하하~!”

염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난 수경이 말했다.

이야기의 내용은 그게 아니잖아? 학문을 한다는 것은 잘 물어야 한다는 것이고, 자신이 타고난 품성에 가르침을 더하면 완전한 성인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니까 파초의 껍질을 벗겨가듯이 하나씩 깊이를 더하는 것은 화살의 촉을 더욱 날카롭게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잖아?”

맞습니다. 처음에는 종이 한 장도 뚫을 수가 없는 학문이 점차로 깊이를 더함에 따라서 언젠가는 물소 가죽도 뚫을 것이고, 더 열심히 한다면 마침내 은산철벽(銀山鐵壁)도 뚫고 심지어 사람의 마음조차도 뚫고야 말 것이니 그때가 되면 화살촉을 더는 쓸 곳이 없을 것입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서 진명이 감탄하며 말했다.

와우~! 염재의 말이 정말 이치를 관통(貫通)하는 명언인걸. 스승님께서도 그래서 더 지혜가 깊은 현담 스승님을 청하신 것으로 봐도 되는 거지?”

염재가 그제야 처음에 자신이 우창에게 던졌던 의문에 대한 답을 깨닫고서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염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처가 수행할 때 스승으로 섬겼던 선인(仙人)이 자기와 함께 교단을 이끌어 가자는 제안을 했을 적에 잠시 생각해 보고는 자신은 아직도 만족스러운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을 말하고 길을 떠났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 마음에 일점(一點)의 번뇌(煩惱)도 없어졌을 때까지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참된 수행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습니다. 더욱 열심히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염재는 총명하구나. 우창도 아직 모든 이치에서 완전하게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까닭이지. 그래서 처음에는 스승과 자신의 차이가 장강(長江)보다 더 넓다는 것을 잘 알고서 열심히 공부했으나 이즈음에는 한 걸음만 크게 뛰면 건널 수가 있을 만큼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단 말이네. 그러다가 건널 강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스승도 필요가 없는 때가 된 줄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군.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잠시 생각하던 염재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조금만 공부하면 된다는 말씀이 아니십니까?”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네, 예전에 공부할 적에는 스승과의 간격이 멀기는 해도 깊지는 않았어. 그런데 한 걸음이면 뛰어넘을 수가 있을 것 같은 사이라고 여겼었는데 언제부턴가는 깊이조차 아득해서 끝이 안 보인단 말이야. 왜 이런 것일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대중을 둘러보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채운이 먼저 말했다.

스승님, 그것은 흡사 도고마성(道高魔盛)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요? 처음에는 길이가 짧은 칼과 같아서 찔려서 상처를 입어도 며칠이 지나면 회복이 되는데 이제는 지혜의 갈이 날카로워져서 한번 베이기만 해도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 되는 것을 떠올렸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요?”

오호~! 멋진 비유인걸. 또 누가 말을 해볼 사람이 있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둘러보자 이번에는 빈 찻잔에 차를 채워주던 연화가 차관을 놓고서 말했다.

연화가 잘 모르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어린아이는 아무렇게나 말을 해도 사람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잖아요? 그런데 스승님과 같은 분이 한마디 하신다면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기뻐서 춤을 추거나 슬퍼서 울게 될 거니까요. 그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도 이와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물며 스승님께서 누군가로부터 깊은 이치를 배우게 될 경우를 상상해 본다면, 자칫 스승을 잘못 선택하면 돌이킬 수가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깨달음의 깊은 순간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과 같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연화의 말주변이 없어서 생각한 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연화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한마디 거들었다.

언니의 말에는 겸손함이 묻어나네요. 충분히 의미가 전해지거든요. 절정(絶頂)의 고수는 기운(氣運)만으로 사람을 제압하기 때문에 내공이 뛰어난 사람은 내상(內傷)을 입게 되지만 오히려 보통의 사람들은 몸의 기경팔맥(奇經八脈)이 뚫려 있지 않아서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스승님의 수준에서 다른 스승님을 맞아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신중하고도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오늘 대화를 통해서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스승님만 상해(傷害)를 입는 것이 아니라 저희 제자들도 더불어서 위험에 노출될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스승님으로 맞아들였다는 것은 현담 태사님의 공부가 얼마나 깊은지는 저희가 알 바 없으나 평소에 스승님의 품성으로 봐서 짐작만 할 따름이에요. 그래서 염재가 한 말도 공감이 될뿐더러 스승님의 방패가 얼마나 든든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어요.”

진명의 말을 듣고서 연화가 말했다.

정말이지 진명은 어쩌면 말도 그리 잘할까? 참으로 부러워. 호호호~!”

연화의 말에 진명이 웃으며 답했다.

언니, 그건 잘 모르시는 말씀이세요. 노자(老子)가 이르기를 다언삭궁(多言數窮)’이라고 하셨다잖아요. 말이 많으면 자주 궁색해진답니다. 그러니까 말이 없이 묵묵히 사유하는 사람이 더 깊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요. 호호~!”

저것 좀 봐, 어쩌면 겸손한 말도 그렇게 멋있게 하는지 정말 부럽다니까. 그래도 어쩌겠어? 나도 열심히 스승님을 따라서 공부하다가 보면 조금은 더 나아지겠거니 해야지. 호호~!”

이때 춘매가 오광과 함께 백차방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아니, 아무도 안 보여서 어디에들 계시는가 했더니 여기에서 담소하고 계셨네. 나도 차 한 잔 마시고 싶어서 왔는데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재미있게 나누셨을까?”

춘매가 오자 연화가 얼른 일어나서 자리를 권하며 찻잔을 가져다 놓고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차를 따랐다.

, 춘매가 왔구나. 우리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네. 호호~!”

언니, 무슨 이야기인지 내게도 들려줘요.”

춘매는 연화가 따라 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면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채운이 말했다.

언니가 없는 사이에 언니 흉이나 봐야지 뭐 할 것이 있어야지. 실은 스승님께서 무슨 연유로 현담 스승님을 청하셨는지 궁금해서 여쭤보고 있었던 참이야. 더구나 갑자기 단양 태사님께서 떠나신 것도 이상하긴 한데 그 이야기는 우리가 짐작할 수가 없으니 그냥 궁금한 채로 남겨둬야 할까 봐. 그렇지?”

그랬구나. 오고 가는 것도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난 행여라도 음식이 맞지 않아서 가셨나 싶은 생각도 해 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서 궁금하기는 해.”

춘매가 이렇게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명이 나서서 설명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의견을 말씀드려 볼게. 우선 단양 태사님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어디론가 떠날 궁리를 하셨던 것으로 보여. 며칠 전에 문안차 찾아뵈었을 적에 그러셨거든.”

아니, 뭐라고 하셨기에?”

춘매가 얼른 묻자 진명이 조곤조곤 말했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었지 뭐. 그렇지만 더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겠더라. 마음이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현담 스승님이 오셨다는 것을 알고서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지혜가 높으신 분들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서 불이 일어날 것을 알듯이 미리 내다보는 통찰력이 있으셨던 거야. 그러니까 겨우내 잘 계시면서 간간이 귀한 말씀도 해 주시다가 문득 한 마음이 동하자 홀연히 일어나셨는데 그다음에 절묘하게도 현담 스승께서 등장하신 것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지 뭐야.”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수경이 물었다.

아니, 정황은 대략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름이 돋기까지 했단 말이야?”

언니도 생각해 봐. 단양(丹陽)은 붉은빛이고 오행(五行)은 화()에 해당하잖아? 그런데 다음에 찾아오신 분이 현담(玄潭)이야. ()은 북방(北方)의 현무(玄武)와 통하니까 오행은 수()에 해당하는 데다가 담()은 또 연못이잖아. 그러니까 두 스승님은 애초에 함께 머무를 수가 없었던 운명이었다는 생각을 했던 거지. 어때? 그럴싸하잖아?”

모두 진명의 말을 듣고는 미처 몰랐던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감탄을 하면서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바로 염재가 우창에게 물었다.

아니, 스승님. 항상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름은 이름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명 누나의 말을 듣고 보니까 그것만은 아닌 것으로 느껴지는데 이것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입니까?”

염재가 정색하고 묻자 우창도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지. 진명의 말을 듣다가 보면 세상의 모든 일이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이러한 현상을 꿰어맞추기라고 하면 어떨까 싶군. 그러니까 현담 스승님의 이름이 백암(白岩)이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란 말이네. 다만, 하나의 조짐으로 보는 것은 인정해야 할 모양이군. 그리고 그 조짐을 읽는 능력이 진명에게 있다는 것도 말이네.”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염재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의 말씀은 이름과 무관하게 진행되었던 일인데 이름조차도 묘하게 연결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는 말씀이신 거지요?”

맞아. 그렇지만 만약에 이러한 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나도 생각을 바꿀 의사는 있다네. 하하하~!”

우창의 말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이름이 원인이 아니라 조짐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단서가 있다는 뜻이네요. 오늘은 두 스승님의 아호(雅號)를 통해서 의미를 찾았다면 또 다른 날은 다른 것에서 조짐을 찾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타당하네요. 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춘매는 점심을 차리러 나가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옥도 고단한지 쉬러 갔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들어가는 서옥을 부축하면서 우창도 들어가자 그 모습을 본 연화가 채운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사모님은 사흘을 넘기지 못하실 것으로 보이네. 다른 제자들은 해산(解産)에 대한 경험들이 없어 보이니 아무래도 내가 준비해야 하겠지? 호호~!”

맞아요. 언니가 계셔서 든든해요. 잘 부탁드려요. 호호~!”

 

오후가 되자 우창이 잠시 졸음이 와서 창가에서 햇살을 받으면서 졸고 있는데 갑자기 서옥의 신음소리가 들려서 얼른 일어났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산통(産痛)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자 얼른 백차방으로 가서 연화에게 정황을 알렸다. 연화는 침착하게 물을 끓여서 큰 통에 담아서 들고는 서옥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혹 무슨 일이 생기면 부를 테니까 편히 쉬고 계세요. 초산(初産)이라서 아마도 고통이 따를 거에요. 그렇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거예요. 사모님은 건강해서 잘 견디실 거니까요.”

우창은 알았다고 하고는 연화가 있어서 든든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귀는 산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려고 집중이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약 한 시진(時辰)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나왔고, 잠시 후에 연화는 씻긴 아기를 서옥의 품에 안겨주고 나와서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옥동자(玉童子)를 얻으셨네요. 축하드려요.”

산모는 괜찮습니까?”

우창은 서옥이 걱정되어서 묻자 연화가 웃으며 말했다.

잘 견디셨습니다. 들어가서 위로해 주셔도 되겠어요. 우선 미역국을 끓여야 하겠어요. 호호~!”

고맙네. 연화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네. 하하하~!”

우창도 그제야 마음을 놓고서 서옥을 보러 갔다. 서옥이 좀 부은 얼굴로 우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품에서 꼬물대는 아기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야릇했다.

고생이 많았지? 애썼네.”

연화 선생이 챙겨줘서 순산(順産)을 할 수가 있었어요. 고맙다고 말도 못 드렸어요.”

아직도 아픔이 가시지 않았는지 옅은 웃음을 웃으며 말하는 서옥을 살짝 안아주고는 나왔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천세력을 찾았다. 아이의 사주를 보고자 해서였다. 입춘(立春)을 지났으니 연주는 계유(癸酉)가 되겠고, 월주는 당연히 갑인(甲寅)이라는 것은 알겠고, 일진(日辰)을 보니 정사(丁巳)였다. 시간은 어느 사이에 어둑어둑한 시간임을 보고서 유시(酉時)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회중시계를 꺼내 보니 과연 유시가 맞았다. 유시라면 기유(己酉)가 된다. 우창은 조용히 붓을 들어서 사주를 적었다.

 

 

 


이렇게 적고 있을 적에 마침 저녁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울렸다. 우창이 식당으로 가자 춘매가 물었다.

왜 혼자 나오셨어요? 사모님은요?”

, 몸을 풀었네. 산모는 연화가 챙기기로 했으니 춘매는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겠어.”

어머나, 축하드려요. 스승님~!”

춘매가 크게 외치는 바람에 제자들도 다 듣고는 축하의 말을 했다. 우창도 답례하고는 밥을 먹고 궁금한 제자들을 위해서 백차방으로 갔더니 이미 모여서 사주를 뽑아놓고 한참 시끌벅적하다가 우창이 들어가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우창이 자리에 앉자, 염재가 팽주(烹主)가 되어서는 우창에게도 차를 따랐다. 연화는 어느 사이에 서옥에게 먹을 것을 갖고 갔다는 말을 채운이 전해줬다.

수고가 많으시구나.”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진명이 말했다.

스승님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사주는 저희가 궁금해서 먼저 살펴봤어요. 유시(酉時)가 맞겠죠?”

아마도 그렇게 되지 싶군.”

그런데 이름은 지으셨나요? 뭐라고 부르면 되죠?”

, 이름은 아들을 낳으면 일석(一石)으로 하기로 했네. 진일석(陳一石)이로군.”

우창의 입에서 이름이 나오자 염재가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스승님, 귀한 도련님의 이름을.....”

그러니까 염재의 뜻은 너무 하찮게 지은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그 말에 우창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닐세, 돌을 낳았으니 스스로 연마해서 금강석(金剛石)이 되거나 길가의 잡석(雜石)이 되거나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뜻이라네. 하하하~!”

사주를 들여다보던 자원이 감탄했다.

싸부, 일석이는 전생(前生)에 선근(善根)을 많이 심고 태어났네요. 간지(干支)의 조합(組合)을 봐하니 일기관통(一氣貫通)이에요. 호호~!”

자원의 말에 우창이 미소만 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채운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렇게 생긴 사주도 현생(現生)에서 만나 보네요. 앞으로 일석 도련님은 어떤 일로 세상을 복되게 할 것인지 그것이 궁금해요. 이름을 짓자면 용신은 기토(己土)에 있고, 희신은 유금(酉金)에 있으니 식신생재격(食神生財格)이네요.”

그때 고월이 백차방으로 들어오다가 모두 탁자 위의 사주를 놓고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서 흘낏 살펴보고 말했다.

오호, 조카녀석이구나. 기신(忌神)이 기신이 아니고 구신(仇神)도 구신이 아닌 사주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걸. 축하하네~!”

고월의 말에 우창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지 뭔가. 앞으로 오행원은 계속해서 번창하게 될 것이고 강호의 명학계(命學界)에 우뚝하게 자리를 잡겠다는 기대를 해도 될까?”

아무렴, ..... 다시 봐도 아름답기 짝이 없군. 하하하~!”

그렇게 되도록 고월이 아낌없이 채찍질해 줘야 할 것이네. 강하게 키워서 세상의 빛이 되도록 부탁하네. 하하~!”

우창의 말에 고월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명식을 보고는 말했다.

원원유장(遠遠流長)하니 무시무종(無始無終)이로구나.”

그런가?”

다시 말하면, 시기소시(始其所始)하고 종기소종(終其所終)이잖은가?”

고월의 말에 채운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고월 스승님, 무슨 뜻인지 설명을 듣고 싶어요. 느낌으로는 좋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이런 기회에 자세히 묻지 않으면 또 잠을 이루지 못할 거에요.”

고월이 채원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자 자원이 풀이했다.

고월 싸부, 옛날에 노산에서 공부하면서 들었던 구절이네요. 원원유장은 흐름의 길이가 아득해서 장강처럼 잘 흘러간다는 뜻이고, 무시무종이 여기에 붙으니까 본래의 뜻과 다르게 어디부터 시작하고 어디부터 끝나는지 모를 지경이라는 의미로 바뀌네요. 참 신기해요. 호호~!”

자원의 기억력은 항상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하하~!”

고월도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말하자 자원의 말이 이어졌다.

시기소시(始其所始)시작할 곳에서 시작 한다는 말이고, 종기소종(終其所終)끝날 곳에서 끝난다는 뜻이니 사주의 구성이 잘 짜여 있다는 말이로군요.”

자원의 풀이를 듣고서야 바로 이해한 채운이 고월을 보면서 말했다.

고월 스승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해가 되었어요.”

 

 

이렇게 덕담과 공부로 오행원이 어둠 속으로 잠겼다. 술시가 되자 모두 우창에게 축하의 인사를 하고는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고, 우창도 비로소 서옥에게 다가가서 다시 모자(母子)를 안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