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주왕산 주왕굴

작성일
2023-11-14 17:28
조회
519

청송(靑松) 주왕산(周王山) 주왕굴(周王窟) 

 

(2023년 11월 7일 탐방)

 


 

 

 

대전사(大典寺)에서 멋진 기암단애(旗巖斷崖)를 살펴보고는 용추폭포를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청송국가지질공원의 로고가 있기에 하나 찾아다 이야기에 장식용으로 써 본다. 로고에 대한 설명도 살펴 보자.

 

주왕산의 중생대 화산활동 모습을 표현한 심볼마크

지하의 출렁이는 마그마(주황색 부분)가 화산으로 분출하여 솟아 오르는 용암(빨간색 부분)이 분출하는 모습을 묘사했으며 양쪽의 회색 부분은 이러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용암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화산 분출의 모습을 "人'으로 표현해 지질과 사람의 조화를 중의적으로 담았다는 설명도 보인다.

 


대전사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돌탑의 옆으로 주봉과 용추폭포로 오르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용추폭포까지는 2.0km의 거리구나. 주봉은 쳐다볼 필요도 없는 것은 어차피 오늘의 여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까닭이다.

 


세부 안내도를 자세히 그려놔서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겠다.

 


확대해서 오늘 걸어야 할 코스를 확인해 본다.

 


우선은 가는 길에 직접 용추폭포로 향하기 보다는 먼저 주왕굴을 둘러 볼 예정이다. 주왕굴을 살펴보고 다시 용추폭포로 가면 되겠다. 용추폭포가 주왕산의 중요한 볼거리라고 들었지만 주왕굴도 들려서 살펴 볼만 하다는 정보를 보고서 맘을 냈다.

 


주봉으로 오르는 입구를 바라보고서 왼쪽의 다리를 건넜다. 

 


주왕굴은 1.5km를 가면 나온다. 용추폭포가 조금 더 멀어질 수도 있으려니 싶다. 그렇지만 길은 순탄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싶어서 걸음은 가볍다.

 


주왕산에 대해서라면 어느 소개에서도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이 아들바위다. 그러니까 빠트릴 수도 없다. 이것도 여정(旅程)이니까.

 


아들바위 사용설명서도 잘 비치해 뒀다. 일 없이 읽어봐도 되지만 묘한 자세로 돌을 던지라는 설명이다.

 


얼마나 많은 가임기(可任期)의 여성들이 아들을 염원했는지 돌의 숫자만 봐도 짐작이 된다. 그렇게 염원이 담긴 돌들이 모두 옥동자로 태어났을 테니 이 나라를 이끌고 갈 인재들을 점지했을 것으로 봐서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통과~!

 


담소를 나누며 가을의 산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참 풋풋해 보인다. 

 


주왕산의 응회암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해 놨고, 큐알코드로도 안내를 했으니까 폰을 켜고 큐알코드를 찍어도 설명이 나온다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혹시나 하고 사진에 대고 QR코드를 찍어봤더니 뭔가 나온다.

 

 

 

좀 더 친절한 안내를 보려면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지질변화의 과정에 대해서만 나오려나 했는데 전체적인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대한 홈페이지가 뜨면서 검색해 보라는 안내가 나온다. 일일이 큐알코드를 만드는 것도 번거로워서 그랬으려니 싶으면서도 더 정성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 했나? ㅋㅋ 설명이나 잘 살펴봐야지.

 


 

 

 


 

 

 


 

 

 


 

 

 


카메라가 6,100만화소의 큰 센서를 달고 있어서 한 장의 사진도 이렇게 나눠서 편집할 수가 있으니 또한 카메라의 공덕이 무량(無量)하다. 다른 카메라를 자꾸 사라고 신품으로 유혹을 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지막지한 화소를 갖고 있는 소니A7RⅣ가 있으니까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말이지. ㅎㅎ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지면 주왕암과 주왕굴이다. 

 

 

돌다리를 넓직하게 잘 만들었다. 다리를 건너다가 아래를 보니 예쁜 바위들이 있어서 눈길을 멈췄다.

 


아마도 오랜 세월에 계곡의 물길에 의해서 부실한 암석들은 모두 모래로 변하고 이렇게 단단해 보이는 바위들은 그대로 물의 힘에 적응하면서 동글동글하게 날카로움을 죽여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응회암이라도 단단한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부슬부슬하게 부서지는 것도 있는데 바닥에서 살아남은 바위는 좀 달라 보여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 정도면 응회암(凝灰巖)이 아니라 용암(鎔巖)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응회암은 모두 없어지고 그 바닥에 있던 용암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려니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계단이 나타난다. 주왕암과 주왕굴로 오르는 길이다.

 


 

 

 


바위가 굴러 내리지 말라고 받쳐 놓은 막대일 리는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막대를 주워서 세워 놓고 소원을 빌었던 흔적이라는 어느 주왕산 해설사의 설명이 떠오른다. 이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겠군.

 


요소요소에 화장실을 잘 마련해 둔 것은 주왕산의 특징으로 보인다. 탐방객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한 것으로 봐서 필요한 사람에게는 요긴하게 사용이 되겠거니 싶다.

 


얼마 가지 않아서 암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주왕암이겠군.

 


대문을 제대로 만들었구나. 나름 누각이네.

 


뭐라고 썼는지 궁금해서 또 자료를 찾아본다. 언뜻 봐서는 원앙루(鴛鴦樓)라고 썼나 싶지만 절의 누각에 그런 문구를 썼을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찾아보니 가학루(駕鶴樓)였구나. 그런데 한자로 등록이 되어 있는 단어라는 것이 이상해서 찾아보니 여러 곳에서 사용한 누각의 이름이었네.

 


영주시의 구성공원에 있는 누각의 이름도 가학루이고, 강원도의 북한 땅인 안변군에도 가학루가 있다고 하는데 남한에서는 영주의 가학루와 함께.

 

 

울산의 동헌에 있는 누각의 이름도 가학루였구나. 그런데 루(樓)는 목(木) 변인데 영주와 울산에 있는 루는 재(才) 변으로 보이는 것은 눈이 안 좋은 탓이겠거니..... 루(摟)는 끌어모은다는 뜻인데 왜 그렇게 썼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것을 또 그냥 붙여 놓은 것도 좀 이상하기는 하구먼시나.... 여하튼, 가학(駕鶴)이라는 숙어가 있는가 싶어서 또 뒤적뒤적.....

 

가학(駕鶴)은 황태자의 거동을 말하는 것으로 황태자(皇太子)를 기리킨단다. 열선전(列仙傳)에 '주 영왕(周 靈王)의 태자 왕자 교(王子 喬)가 숭산(嵩山)에서 도를 닦은 지 30여 년 만에 흰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어쩐지 흔히 볼 수 있는 글자가 아니었어. 그러니까 황태자의 누각이란 말이로군. 왜? 주왕암에 웬 황태자의 누각이 있는 거지?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주왕암(周王庵)이라는 이름이 떠오르면서 주나라 영왕이 주왕이니까 그 아들은 태자가 여기에서 망을 보면서 아버지를 지킨다는 의미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연관성을 만들어 붙여야 소화가 되는 까닭이다.

 

글씨가 멋져서 쓴 사람을 찾아보니까 월담(月潭) 권영도(權寧燾)가 썼다고 한다. 해강(海岡) 김규진의 제자라고 하니까 현대의 인물인 것으로만 짐작을 할 따름이다. 해강은 들어봤지만 서예계에는 문외한인지라 초면이기는 하지만 필체는 해강 선생의 느낌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뭘 안다고. ㅋㅋ)

 


 

주왕암(周王庵)

그림같은 비경 속에 자리한 대전사의 부속암자 주왕암은 919년(태조2)에 눌옹(訥翁)이 대전사와 함께 창건했다는 설과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설이 있다. 이곳에 은거하였던 동진(東晉)의 주왕(周王)을 기리기 위하여 주왕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문간채인 가학루(駕鶴樓)는 중층 누각으로 되어 있고, 기와는 이끼가 그윽하여 오랜 풍상을 보여주고 있다.

주왕암 주위를 병풍암을 비롯하여 나한봉, 관음봉, 지장봉, 칠성봉, 비로봉, 촛대봉 등의 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는 것은 이곳의 영험함을 말해준다. 또한 16나한을 모신 후 법당은 이곳이 나한기도 도량임을 증명하고 있다.

대전사 주왕암 나한전 후불탱화는 경상북도 문회재자료 제 470호로 지정되어 있다.

 

눌옹대사가 창건한 모양이구나. 나옹(懶翁:게으른 늙은이)은 들어봤지만 눌옹(訥翁:말 더듬는 늙은이)은 첨 들어본다. 눌옹을 호로 쓴 사람은 조선의 이광정이고 자로 쓴 사람은 성삼문이라고 하니까 나름 은둔처사의 이름으로 사용했나 싶기도 하다. 멋있기도 하구나. 역사가 좀 되었다 싶은 절을 창건한 사람으로 의상(義湘)대사는 웬만하면 붙어있으니까 '믿거나 말거나'가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려니.... ㅎㅎ

 


혹시나 지도에 바위 이름까지도 표기가 되어 있으려나 싶어서 확대해 봤지만 이름까지 기대한 것은 무리였군. 그래도 일곱 개의 이름과 일곱 개의 바위를 대입할 수는 있겠네. 그러니까 모두 이 중에 하나씩 이름은 갖고 있겠다는 것으로 대략 정리하고 통과하는 걸로. ㅎ

 


그나저나 바위들의 이름이 이렇게 멋지게 붙어있단 말인가? 하긴 뺑뺑돌아서 모두가 거대한 암벽들이니 일일이 이름 하나쯤 갖고 있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기는 하겠다. 이름은 몰라도 암벽은 멋지네. 그냥 지나쳤더라면 나중에 아쉬울 뻔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둘러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전은 나오다가 보는 것으로 하고 우선은 주왕굴로 향했다.

 


요사채의 돌축대를 끼고 돌아가는 분위기도 멋지다. 주왕산의 암자 풍모가 당당하게 보인다.

 


 

 

 


 

 

 


 

 

 


 

 

 


 

 

 


 

 

 


 

 

 


낙석(落石)에 다칠까 봐서 안전망을 설치해 놨다.

 


협곡을 끼고 주왕굴로 오르는 계단이 이어진다.

 


난간으로는 각종 소원을 이루기 발원하는 부적들이 매달려 있다. 암암리에 부적을 그려주는 것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대 놓고 사찰의 한쪽에서 부적놀이를 하는 것은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염원하는 것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딱히 따지고 들 필요까지는 없지 뭘.

 


 

 

 


원래의 굴은 허물어졌었는지 앞에 그럴싸한 형태로 덧대서 만들어 놓은 것이 조금은 어색하다. 아무래도 응회암은 풍화에는 약하니까 무너진 것을 보수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기왕이면 안으로 더 파고 들어가도 되었을 텐데 그것보다는 앞을 보수하는 방법을 택했던 모양이다.

 


주왕굴산신각이라고 쓴 이름표도 더러는 떨어져 나갔다. 아마도 굴러 떨어진 낙석의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닐까 싶다.

 


 

 

 


 

 

 


주왕이 머물렀던 자리는 산신(山神)께서 차지하셨구나. 

 


 

 

 


 

 

 


 

 

 


 

 

 


 

 

 


 

 

 

 

주상절리가 겹겹이 쌓였구나. 나무들로 인해서 많이 가려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윤곽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나마 낙엽이 진 다음이라서 다행이라고 하겠다. 우거진 하절기에는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을 테니까.

 


 

 

 


혹시 지질도에서도 이러한 지층에 대해서 설명이 되어 있는지 살펴봐야지. 다만 부분적인 것까지 표시하는 것이 어렵긴 할테지만서도.

 


여전히 지질연구소의 지도에서 나타나는 오류는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주왕굴이 주왕암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지. 그나저나 지질은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

 


주왕산의 대표암상인 각력질 안산암이다. 안산암이면 응회암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닌가? 안산암은 화산암이긴 하지만 용암이라고 이해해야 하겠구나. 어설픈 지식으로 오해를 했지 싶다. 어쩐지 주상절리가 보여서 응회암에도 주상절리가 나오나 조금 전에는 응회암이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공부하는 것이니깐. 그렇다면 다시 응회암에 대해서 공부하면 된다. 자꾸 찾으면 그럴싸~한 답을 구하게 된다.

 

[응회암(凝灰巖)의 분류]

형태는 응회암(凝灰巖)즉 화산쇄설암(火山碎屑巖 )이다

성분에 따라서 몇 가지로 나뉜다

①유문암질(流紋巖質) 응회암, 

②조면암질(粗面巖質) 응회암, 

③안산암질(安山巖質) 응회암, 

④현무암질(玄武巖質) 응회암

 

아하!(돌 깨지는 소리) 응회암에도 얼마든지 주상절리가 생길 수가 있는 것이었구나. 그리고 안산암질도 있고, 현무암질도 있고, 조면암질도 있고, 유문암질도 있으니까 이러한 응회암으로 이뤄진 암석도 당연히 주상절리가 생겨날 수가 있다는 것으로 정리를 하면 되겠다. 안산암(安山巖)과 안산암질(安山巖質)의 차이만 알아두면 되겠다. 용암으로 분출하면 안산암이고, 응회암으로 뿜어져나와서 쌓이면 안산암질이 된다는 것으로 일단 정리한다. 그래놓고 또 가 봐야지. 암석공부도 어렵긴 마찬가지구나. ㅎㅎ

 

 


상부의 층에는 붉은 빛의 지질로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아래는 경상계 불국사층군 각역질 응회암이고, 그 위에 덮인 것은 대전사 앞쪽의 암벽인 신라층군-낙동층군 적색 사암층인 것으로 보인다. 보기 편하도록 각도를 수평으로 변경했다.

 


이렇게 뚜렷한 차이를 보이니까 구분하기가 좋다. 어딘가에서 본 기록으로는 500m의 화산재가 분출해서 쌓였다고 했는데 그 두께가 쌓여서 바위가 되도록 오랜 시간에 화산활동이 이어졌을 풍경도 상상해 본다.

 

 

 

 

 

 


단층이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형태를 단층이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지층이 분리되었으니까 단층이 맞겠지. 다만 정단층(正斷層)인지 역단층(逆斷層)인지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네. 오히려 절단층(節斷層)이라고 해야 하려나? 끊어진 것이 단층인데 또 끊어진 절(節)을 붙이는 것이 옳지는 않을 것도 같다만서도. ㅎㅎ

 


단층의 속이 궁금해서 밝게 조절해 봤는데 별다른 것이 보이지는 않는다.

 


 

 

 


 

 

 


암벽을 살펴보니까 겨울이 지나고 나면 낙석도 많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이 돌에 맞지 않도록 하는 최선이다.

 


 

 

 


모델과 동행하면 이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크기를 가늠할 기준으로도 멋지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ㅎㅎ

 


요사채는 유리문으로 단디 달았구나. 산골짝의 바람이 워낙 차가우니까 열의 손실을 방지하는데는 최고의 선택인 걸로 봐도 되겠다.

 


흰신 검은신.....

 


 

 

 


돌부처가 좌정하고 있는데 모습은 팔공산 갓바위의 약사여래불이 떠오른다.

 


대웅전(大雄殿)이 아닌 나한전(羅漢殿)이다.

 


후불탱화가 경상북도 문화재라고 했지. 좌우로 앉아있는 나한상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가야 할 걸음이 바쁘지 않으면 일일이 표정을 찍었을 텐데 오늘은 이렇게 대략 스케치만 하는 걸로.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되어 있는 곳에 주왕이 숨어있었으니까 눈에 띄지 않으면 안전했겠지만 일단 공격을 받으면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도 일종의 호리병터의 양면성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당시의 긴박함은 상상으로 남기고서 다시 용추폭포로 향해서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