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 제44장. 소요원(逍遙園)/ 1.체용(體用)과 정신(精神)

작성일
2024-11-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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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 44. 소요원(逍遙園)

 

1. 체용(體用)과 정신(精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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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이 받아서 보관해 놓은 것을 살펴본 기현주가 말했다.

, 들어가지~! 오늘도 공부할 생각에 벌써 마음은 구름을 타고 앉은 것처럼 붕~하고 뜨는 것만 같잖아. 호호호~!”

우창 일행은 기현주를 따라서 서재로 들어갔다. 시동이 그사이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모두 자리에 앉는 것을 기다렸다가 시동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차를 준비했습니다.”

그래 잘했어. 너도 앉아서 이야기를 들으련?”

시동의 나이는 대략 15~6세 정도 되어 보였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면 여기 앉아서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겠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알아들을 것은 아니겠지만요.”

그것을 본 여정이 시동과 나란히 앉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창도 말리지 않았다. 대신에 시동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

, 이름은 호병건(胡秉虔)입니다. 그냥 소호(小胡)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호병건은 이렇게 말하며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는 여정과 나란히 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 기현주가 말했다.

우선 내용을 읽어봐야지?”

이렇게 말하고는 적천수의 체용(體用)편을 읽었다.

 

도유체용(道有體用)

불가이일단론야(不可以一端論也)

요재부지억지득기의(要在扶之抑之得其宜)

 

원문을 다 읽고 난 기현주가 말했다.

아니, 이렇게 간단한 거야? 팔격(八格)을 생각하다가 글을 읽어보니 매우 짧구나. 그러면 뜻을 풀이해 봐야지.”

,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길고 짧은 것에 있지 않으니까요. 하하하~!”

맞아! ‘()에는 체()와 용()이 있으니, 한쪽에서만 논하는 것은 불가하다 중요한 것은 부억(扶抑)에서 그 올바름을 얻는 것에 있다고 풀이하면 되겠는데 잘한 것인지 봐줘.”

잘 풀이하셨습니다.”

도를 일단(一端)으로 논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했네? 이건 무슨 의미지?”

그보다도 우선은 체용(體用)의 뜻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싶습니다.”

체용? 그건 오면서 이야기 나눴잖아? 정신은 체가 되고 신체는 용이 된다고 했으니.”

그야 사람의 체용이지요. 명학(命學)의 체용은 또 달리 적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단(一端)으로 논하면 안 된다고 했나 싶기도 합니다. 하하~!”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야 기현주는 문득 의미하는 바가 다르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 내가 참 너무 성급했구나. 호호호~!”

명가(命家)에서의 체용에 대한 설명은 각가(各家)의 설이 분분(紛紛)합니다. 그래서 모두를 다 살펴봐야 하는데 그것을 대략 간추려서 정리하는 것이 좋지 싶습니다.”

당연하지, 동생이 간추려서 설명해 주는 것으로 답을 삼을 거야. 제가(諸家)의 주장을 모두 볼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지.”

그러시다면 우창이 이해하는 정도로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체용을 다른 말로 한다면 주종(主從)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인(主人)과 주인을 따르는 시종(侍從)의 의미로 보면 되는 것이지요.”

오호라! 그것참 쉽구나. 그렇다면 주()에 따라서 종()은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그렇지?”

맞습니다. 일월(日月)로 논해 볼까요? 일간(日干)과 월령(月令)으로 말이지요.”

, 그야 쉽지. 일간은 주체(主體)가 되고 월령(月令)은 객체(客體)가 된다면 이것은 주객(主客)으로 봐도 말이 되잖아?”

비슷하긴 합니다만 주객은 의미가 다르겠습니다. 월령을 용으로 본다는 설도 실은 명료하지 않습니다.”

? 대체로 그렇게 보면 무리가 없겠는데? 동생은 어떤 견해가 있는지 들어보고 싶어.”

실은 일간(日干)이 체가 되고 월령을 포함한 나머지 간지를 용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건 또 왜?”

만약에 다수의 학자들이 거론하는 격국론(格局論)으로 본다면 그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구절이 겉도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지요.”

다음 구절? 그러니까 부억(扶抑)을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경도 선생은 어디에서도 월령을 용으로 본다는 의미는 없고 오히려 균형(均衡)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일곱 글자를 용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지요.”

오호~ 듣고 보니 그것이 오히려 본문(本文)에 충실해 보여.”

부지억지(扶之抑之)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건 이미 말했잖아? 약자의부(弱者宜扶)와 강자의억(强者宜抑)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되는 거지?”

기현주가 먼저 배웠던 것을 기억하고 말하자 우창도 흐뭇했다.

다행입니다. 누님께서 공감해 주시니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 벌써 끝난 거야?”

이미 체용에 대해서 심득(心得)을 하셨으니 더 머뭇거릴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뜻이지요. 하하~!”

, 난 또, 이렇게 얼버무리고 넘어가면 안 되지 싶어서 말이야.”

기현주는 우창의 설명에 공감하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서 말했다.

그러니까 체용을 다시 확장한다면 일곱 글자를 체로 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바로 그 말씀입니다. 억부(抑扶)의 이치에 따라서 나오는 한 오행이 바로 용()인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경도 선생의 뜻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핵심을 짚은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말의 뜻을 다시 요약한다면 일간(日干)은 체가 되고 용신(用神)은 용이 된다는 말이잖아? 결국 용신(用神)은 그래서 나온 말이라는 뜻이야? 이렇게 간단할 수가~!”

누님께서 명학의 핵심(核心)을 관통(貫通)하셨습니다. 우창이 생각하기에도 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일간(日干)과 용신(用神)이 바로 체용(體用)의 본의(本義)지요. 하하~!”

그래, 의미를 알고 보니까 각가(各家)의 소설(所說)이 궁금하잖아. 고인들은 이 체용편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 거지?”

여러 설이 있습니다. 월령을 체로 하고 월령에서 투출(透出)한 천간을 용이라고 하는 풀이도 있고, 사주의 명식을 체로 보고 대운을 용으로 적용(適用)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물론 더 나아가서 대운을 체로 하고 세운을 용으로 한다는 설까지 가면 정신이 아득할 지경입니다. 하하~!”

그렇구나.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체용의 의미는 일간과 용신인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고 명쾌해서 나는 동생의 논리를 채택하는 것으로 하겠어.”

기현주가 이렇게 정리하자 우창도 미소를 지었다.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어. 일단(一端)으로 논하지 말라는 말을 생각해 보니까 앞에서 말한 팔격(八格)에 매이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봐도 될까? 만약에 이렇게 보는 의미가 맞는다면 이미 일체월용(日體月用)으로 주장할 것을 경도 선생이 미리 알고 써놓은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맞습니다. 그리고 뒤로 가면 월령(月令)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음은 뭐지? 체용에 대해서는 이해가 잘 되었어.”

다음에 나오는 것은 정신(精神)편입니다. 체용을 먼저 설()하고 다음에 정신(精神)을 설한 것도 순서에 부합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체(身體)편도 있나? 정신이 있으면 신체도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잖아. 신체편에서는 건강장수(健康長壽)와 질병요절(疾病夭折)도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지.”

우창은 사유에 걸림이 없는 기현주의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활발한 모습이 푸릇푸릇하여 흡사 십오세의 소녀같다고 생각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우창을 본 기현주가 다시 말했다.

아니, 왜 그런 표정을 짓지? 내가 틀린 말을 했구나.”

말씀은 틀릴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만, 경도 선생의 의도는 그곳에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서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 알았어. 우선 정신에 대해서부터 공부하고 봐야지. 내가 읽어볼게.”

이렇게 말한 다음에 책을 펼치고서 읽었다.

 

인유정신(人有精神)

불가이일편구야(不可以一偏求也)

요재손지익지득기중(要在損之益之得其中)

 

읽고 난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아하, 이 구절은 앞의 체용과 대구(對句)로 되어있네?”

듣고 보니 그렇겠습니다. 글자 수가 맞춰져 있으니 말이지요.”

()에는 체용(體用)이 있고, ()에는 정신(精神)이 있단 말이지?”

그렇게 되는군요.”

우창은 가능하면 기현주가 스스로 길을 찾아서 풀이하도록 거드는 방향으로 생각했다. 스스로 풀다가 막히면 또 물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는 일단(一端)으로 구하면 안 되고, 정신은 일편(一偏)으로 구하면 안 된다는 말은 같은 의미로 보면 되는 거지?”

우창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단도 치우진 것이고 일편도 치우친 것일 테니 말이지요. 잘 이해하셨습니다.”

정말 쉽고도 재미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글이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기현주가 아쉽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맛이 있으십니까? 하하~!”

맛도 보통 맛이 아니라 천하일미(天下一味)잖아. 그동안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안타까워서 혼자 해보는 넋두리지 뭐. 호호~!”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에서 중요한 것은 억부(抑扶)이고, ()에서 중요한 것은 손익(損益)이라잖아? 득기중(得其中)은 참 멋진 말이네. 득기의(得其宜)와 득기중(得其中)이 완전히 짝을 이루는 것도 아름다운 것을 보니 경도 선생은 시인이기도 했었구나.”

그렇다면 정()은 무엇이고 신()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기현주는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아니, 정신(精神)은 같이 붙여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이것을 나눠서 이해한단 말이지?”

누님은 정기신(精氣神)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지요?”

그야 들어봤지. 그렇지만 정기신과 정신은 서로 다른 것이잖아?”

정기(精氣)와 신기(神氣)를 일러서 정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기신과는 약간 다른 의미이기는 합니다만,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몰랐어! 이것을 나눠서 본다면 어떻게 살펴야 하는 거지? 음양으로 볼까?”

그래도 되겠습니다.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 ()은 음()이고 신()은 양이 되겠지?”

그럴싸합니다. 설명하신다면요?”

()은 기운이 뭉쳐있는 것이고, ()은 그 기운이 밖으로 드러난 것일 테니 말이야. 신이 드러나면 그것을 신명(神明)이라고 하잖아?”

오호! 그럴싸합니다. 하하~!”

우창의 말에 흥이 난 기현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우창에게 공부하는 것은 정()이고 이렇게 동생의 칭찬에 흥이 나는 것은 신()인 것이지?”

맞습니다. 하하하~!”

또 달리 보는 법도 있을까?”

있습니다.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우창의 관점으로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으로는 인성(印星)은 정()이 되고 식상(食傷)과 관살(官殺)은 신()이 되는 것으로 설명한 주장이 가장 이치에 근접한 것으로 봅니다.”

아하~ 그렇게 보는 법도 있겠구나. 듣고 보니까 이해되네. 인성은 원기(元氣)에 속하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인성이 일간을 생하면 정기(精氣)가 견실(堅實)하다고 보면 되는 거야?”

왜 아니겠습니까? 인성이 적절하면 원기가 충실(充實)한데 인성이 과다하면 원기가 오히려 정체(停滯)됨으로 인해서 쇠퇴(衰退)하여 허약하게 되는 것은 균형(均衡)과 불균형(不均衡)의 이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호, 그래서 인성과다(印星過多)면 게으르다고 하는 거였어?”

맞습니다. 그런 말도 있었네요. 하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원이 말했다.

그러니까 사주로 본다면 언니는 정실(精實)하고 자원은 정허(精虛)네요. 인성이 허약하면 정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이렇게 깨달으니까 바로 이해가 되어서 좋아요. 단지 강약(强弱)만 살피면 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오늘 자원도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호호~!”

자원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균형을 이루면 충실(充實)해서 무엇을 하더라도 쉽게 지치지 않고 무엇을 파고 들어가는데 과다(過多)하면 마치 고인 물이 썩어버리듯이 허한 것 같고, 또 부족(不足)하면 물이 부족한데 물레방아가 헛도는 것같이 부지런히 움직이기는 해도 위력(威力)이 약하다고 하겠지. 그런데 자원은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있으니 노력을 남보다 더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구나.”

역시 자원을 알아주는 이는 싸부 밖에 없어요. 호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며 웃자 우창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논하는 것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는 것이겠지? 정신을 논하는데 정기신(精氣神)을 생각하게 되면 자칫 인체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오인(誤認)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하~!”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아니, 동생. 그 뜻이 아니었어? 난 같은 것인 줄로 알았는데. 그렇다면 정신(精神)과 정기신은 다른 것으로 봐야 하는 거잖아?”

? 다른 것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우창은 의외라는 듯이 기현주를 보면서 되물었다. 그러자 기현주도 우창에게 다시 말했다.

생각해 봐, 정신(精神)은 영혼(靈魂)이라고도 하고 주체라고도 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것을 정기신으로 논한다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버리지 않느냔 말이지. 어때?”

기현주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확신이 들지 않았는지 우창에게 물었다.

누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구(對句)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도유체용(道有體用)과 인유정신(人有精神)을 비교해 보면 같은 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도에는 체와 용이 있다고 했으니, 인에는 정과 신이 있다고 해야 결합이 되지 않겠어? 그렇다면 나눠서 보는 것이 맞잖아?”

그렇습니다. 정기신의 중간에 기()가 들어있어서 혼란스러울 수는 있지만 정기신(精氣神)은 정기(精氣)와 신기(神氣)로 생각해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되기는 합니다.”

, 맞네! 동생이 본 것이 맞겠어. 내가 오히려 착각했어. 호호~!”

기현주가 얼른 인정하자 우창이 설명했다.

인성(印星)이 충실하면 정실(精實)입니다. 다시 식상(食傷)이나 관살(官殺)이 충실하면 신실(神實)이지요. 이렇게 되면 정신(精神)이 충만(充滿)한 삶을 누릴 수가 있다는 의미로 풀이해 봅니다.”

와우! 깔끔하잖아? 멋진 설명이구나.”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인성이 허약(虛弱)하면 정허(精虛)가 되고, 식상이나 관살이 허약하면 신허(神虛)가 된단 말도 가능하겠네?”

그렇습니다. 누님의 말씀이 타당합니다.”

오호라! 그래서 손지익지(損之益之)가 나왔구나. 때론 덜어내야 하고 또 때로는 채워줘야 한다는 말이잖아?”

맞습니다. 정실(精實)은 좋으나 정태실(精太實)이 되면 이것은 과다(過多)한 것이기에 매사에 의욕(意慾)조차 없어지게 되므로 손실(損失)되어야 균형을 이루는 것이지요. 마치 배가 너무 부르게 음식을 먹고 나면 오히려 노곤해서 무엇을 할 의욕조차도 없어질 테니까요.”

~! 그렇구나.”

, 신실(神實)도 같은 의미로 신태실(神太實)이라면 당연히 상대적으로 정태허(精太虛)가 되지 않겠습니까? 글자를 맞춰보려고 태실이라고 했습니다만 그 말은 결국 태허(太虛)와도 통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래서 득기중(得其中)이라야 한단 말이지? 정말 이렇게 멋진 말이 있다는 것을 왜 진즉에 몰랐을까 싶어. 눈물이 나려고 해.”

기현주가 감동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우창이 다시 말했다.

누님, 어떻습니까? ()의 중요한 것은 부억(扶抑)에 있고, ()의 중요한 것은 손익(損益)에 있다면 여기에 팔격(八格)이니 잡기(雜氣)니 영향요계(影響遙繫)니 하는 것이 발을 붙일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기가 막힌 반격(反擊)이잖아. 호호호~!”

기현주가 통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것을 본 자원이 말했다.

언니, 공부하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본지도 참 오래된 것 같아요. 그렇게 천진난만(天眞爛漫)한 표정으로 열심히 귀를 기울이면서 깨달아 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도 부러워요.”

정말? 난 항상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호호호~!”

누님이 좋아하실 만도 한 이유가 있습니다. 실로 이 대목이야말로 적천수를 통틀어서 백미(白眉)거든요. 우창도 매우 좋아해서 수시로 읊조리는 구절이니까요. 하하하~!”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정말~! 이렇게 오행을 가르쳐주는 글은 여태 본 적이 없었어. 아름답고도 멋진 구절이야. 그야말로 진리의 법문(法門)’이라고 해도 되겠어.”

맞습니다. 이 두 구절만 잊지 않는다면 자평법(子平法)의 심장(心臟)을 움켜쥐었다고 해도 될 테니 말이지요. 하하~!”

그러니까, 득기의(得其宜)와 득기중(得其中)은 같은 듯 다른 뜻이었어. 체용의 도는 마땅함에 있고, 정신의 사람은 치우치지 않음에 있다고 하면 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누님.”

확실하게 해 두기 위해서 다시 말해 본다면, 득기의라는 것은 형상은 없지만 의미를 올바르게 얻는 것이고, 득기중이라는 것은 실제로 중도(中道)나 중심(中心)의 균형을 이룬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로써 마땅함과 균형의 이치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비밀의 통로(通路)였구나. 그것을 여태 몰랐어. 부귀빈천을 팔자에서 찾으려고 하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죽었다 깨어난다고 해도 알 방법도 없고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이 맞겠어.”

기현주의 말에 우창은 대답 대신에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잘 정리하는 것을 보면서 내심으로 흐뭇하고도 뿌듯했다. 우창이 말이 없자 기현주가 다시 말했다.

맞아?”

당연하죠. 누님. 하하하~!”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갑자기 시를 읊었다.

 

매화가 핀 것을 보니 봄이 옴을 알겠고

서리가 내린 것을 보니 가을이 깊은 줄을 알겠네.

봄에는 베적삼을 마련하고 가을에는 솜저고리를 챙기니

이것이 자연을 알아서 균형을 얻는 것이라네

 

기현주가 말을 마치자 우창과 자원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는 우창이 말했다.

누님과 함께한 이 순간들은 아마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자연과 하나가 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하하하~!”

고마워. 조카 녀석 때문에 만난 인연이 이렇게 꽃을 피우게 될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어? 사람의 사주팔자가 별다른 것으로 생각해서 항상 책에서 찾으려고만 했어. 그런데 오늘 깨닫고 보니까 일상의 풍경이 모두 팔자가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오감(五感)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모두 그 안에 있으니 이제 팔자를 살펴보면 인품(人品)을 살필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인품을 보면서 팔자를 유추(類推)할 수도 있을 것도 같으니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공부가 아니고 뭐냔 말이야. 참 기가 막힌 가르침을 얻었으니 이보다 기쁠 수가 또 있을까 싶어.”

축하합니다. 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우창에게 갑자기 삼배(三拜)했다. 우창이 깜짝 놀라서 얼떨결에 엉거주춤하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자 기현주가 다시 앉으며 말했다.

그냥 앉아있어도 돼. 우창에게 절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가르침을 전해준 인연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을 따름이니까. 호호호~!”

누님도 참. 깜짝 놀랐잖습니까? 하하하~!”

오늘 공부가 너무 깊어서 여기까지만 하자. 내일 또 귀한 가르침을 들으려면 조금은 비워놔야 할 테니 말이야. 그만들 쉬어.”

이렇게 말한 기현주는 우창의 일행이 편히 쉴 자리를 챙겨주고는 쉬러 갔다.

누님도 편히 쉬시고 낼 뵙겠습니다.”

근데 잠이 오려나 모르겠네.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