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6] 제43장. 여로(旅路)
28. 각자(各者)의 인연법(因緣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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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기현주와 현령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시지(時支)는 자녀궁(子女宮)입니다. 그래서 시지의 상황에 따라서 자녀로 인한 고락(苦樂)을 가늠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우창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기현주의 감탄하는 표정은 더욱 커졌다.
“그러니까 일지(日支)는 처궁(妻宮)이고 시지(時支)는 자녀궁이란 말이구나. 처는 재성(財星)이고 자식은 관살(官殺)로만 대입했는데 지금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서 생각해 보니 과연 현실도 그와 같아서 하충 선생의 비기(秘技)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신묘하구나. 참으로 놀라워.”
“약간의 공부로 드린 말씀이 크게 벗어나지 않으셨다면 다행입니다.”
우창의 말에 현령이 다시 물었다.
“이제 나이도 먹어가는데 앞으로 크게 바라는 것은 별로 없소이다. 다만 현령에서 관직이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더 기대해도 될 것인지가 궁금하구려. 그것은 어찌 판단하시오?”
“이대로 즐거운데 더 높은 자리에 오르면 무얼 하겠습니까. 자리가 높으면 찬 바람이 더 거세게 몰아치는 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현령은 우창이 말하는 뜻을 바로 이해하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다만 혹시 무슨 기회가 있으려나 싶어서 물어본 것인데 마음을 비우는 것만이 최선이겠구려. 허허허~!”
“현명하십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보다 더 행복한 노후는 없다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하하~!”
“참으로 옳은 말이오. 나이 들어서 물욕을 탐하다가 인생의 말로(末路)가 비참해진 벗도 한둘이 아니어서 깊이 생각하고 있던 바요.”
“그대로만 직무에 충실히 임하신다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겠습니다. 그리고 술수(術數)에 대해서는 애써 배우려고 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타고난 영감이 있으시니 백성을 살피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필요한 경우에는 누님에게 의뢰하면 즉시로 해결될 테니 걱정하실 필요도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우창의 말에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섭섭한 말씀이구려. 왜 그렇게 풀이하셨는지 설명이나 들어보고 싶소이다.”
“그것은 식신(食神)인 을목(乙木)이 있으나 경금(庚金)에게 눌려 있어서 학문으로 쓸 것이 아니라 영감을 키우는 것이 훨씬 좋을 것으로 보이니 참선(參禪)이나 간경(看經)을 권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명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씀이오?”
“맞습니다. 선문(禪門)은 일지 선생의 문이고, 학문(學問)은 우창과 기 누님의 문입니다. 서로 길이 다르니 각자 자신의 길만 찾으면 행복하기 마련이지요. 그래야 또 상부상조(相扶相助)도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이렇게 말하던 우창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현령에게 물었다.
“참, 여쭙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오늘 공개적으로 재판하셨는데 이러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보통은 유가족들만 불러서 조용히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지 싶었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묻자, 현령은 기현주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창에게 설명했다.
“실은 누이의 제안이었소. 은밀히 처리하면 나중에라도 흠차대신(欽差大臣)이라도 왕림할 때 상소(上訴)할 수도 있단 말이오. 그렇게 되면 조카 녀석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공개하게 되면 뒷말이 나오는 것도 방지할뿐더러 악행의 결과는 이와 같음을 알리는 효과도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인지라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구려. 허허허~!”
“역시, 그랬군요. 어쩐지 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만, 과연 깔끔하게 마무리가 잘 되어서 다행입니다. 하하하~!”
“재미있는 것이 유가족 중에서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가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이었소. 삶을 누리는데도 자기만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이웃까지 만족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으니 고을 백성들도 이러한 것을 보면서 어찌 깨달을 것이 없겠소. 허허허~!”
“과연 명쾌하십니다. 앞으로도 동향현은 태평한 나날이 될 것은 틀림이 없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더구나 누님이 옆에서 보좌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때, 단아해 보이는 여인이 들어와서 저녁 식탁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자, 같이 갑시다. 차린 것은 없어도 즐길 만큼은 될 거요. 허허~!”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아내요. 무엇이든 아내의 손이 가면 맛이 좋은 음식으로 변하는 능력을 갖고 있소이다.”
현령이 은근히 아내의 음식솜씨에 대해서 자랑했다. 현령의 아내가 식탁에 앉는 일행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방문해 주셔서 고마워요. 음식이 입에 맞으실지는 모르겠으나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모습이 빼어나진 않았어도 다소곳하고 말수가 적어 보였다. 우창이 보기에도 호감이 가는 여인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령이 부인에게 말했다.
“저 젊은 선생은 산명(算命)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으니까 밥을 먹고 나면 당신이 알고 싶은 것을 물어도 좋을 거네.”
현령의 말에 부인이 호감을 보이며 말했다.
“그래요? 기 대인의 능력만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더 뛰어나시다니 정말 기대되네요.”
이렇게 말하고는 모두 음식을 먹는데 편안하도록 보살폈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도 현령의 일지(日支)에 해수(亥水)가 있는 것이 우연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저녁을 즐기고 나자 다시 응접실(應接室)로 자리를 옮겨서 이미 어둠이 내린 방에 촛불을 대낮처럼 밝혀놓아서 손님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자, 편히 앉으셔서 후식(後食)을 즐겨주세요.”
부인이 이렇게 말하면서 과일과 과자가 가득 담긴 쟁반들을 탁자에 갖다 놓자, 신선한 과일 향과 달콤한 과자의 향이 섞여서 분위기를 푸근하게 만들었다. 모두 자리에 앉아서 저마다 맘에 드는 것을 먹으면서 잠시 말이 없었다. 우창은 현령의 부인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현령의 말로 봐서는 중요한 일인 것으로 생각되어서 그 점이 신경에 쓰였다. 그때 기현주가 우창에게 말했다.
“동생, 마음에 두지 말고 그냥 즐겨. 호호호~!”
이미 우창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가볍게 말하면서 어깨를 툭 쳤다. 그러자 자원이 우창을 보며 말했다.
“싸부는 원래 걱정이 많아요. 그래서 그것도 팔자인가 보다 하죠. 호호~!”
부관이 찾아와서 현령에게 귓속말하자 현령이 벌떡 일어나더니 우창에게 말했다.
“이런, 동헌(東軒)에 작은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구려. 잠시 다녀오리다.”
이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나갔다. 그러자 기현주가 말했다.
“원래 저렇게 바쁘시거든. 그래서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현령을 시켜줘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호호호~!”
이렇게 말하고는 현령의 부인에게 말했다.
“아까 현령의 말로 봐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셨나 보던데 지금 동생에게 물어봐도 돼요. 혹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면 저쪽 방으로 가서 말씀하셔도 되고.”
기현주의 말에 부인이 반기면서 말했다.
“응, 별것은 아니고....”
그러자 우창도 부인이 묻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을 알고는 말했다.
“무엇이든 편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해결이 가능하다면 힘써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만 능력이 부족하여 도움되지 못 할까 그것이 걱정일 따름입니다. 하하~!”
“실은 오대산에 간 아들이 걱정이지요.”
우창은 무엇을 물어보려고 그러나 하다가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비로소 안심되었다. 그 문제는 이미 현령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드님을 왜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일지 선생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참으로 잘하신 것으로 봤습니다.”
“어머나, 그러셨어요? 앞으로 영영 볼 수가 없는 것일까요?”
우창은 그제야 부인이 뭘 걱정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현령의 시지(時支)에 있는 술토(戌土)를 떠올리면서 말했다.
“남서쪽으로 삼리(三里:약1km정도)쯤 가면 훌륭한 명당(明堂)이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 사찰(寺刹)을 지으시면 됩니다. 벽오동(碧梧桐)을 심는 뜻이지요. 하하~!”
우창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자 부인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예? 그건 무슨 뜻이죠?”
“이 고을이 동향현(桐鄕縣)이지 않습니까?”
“맞아요. 오동나무 마을이지요.”
“오동나무의 고향이니 봉황(鳳凰)을 맞이해야지요. 그러자면 벽오동을 심어야 하는데 이것이 자라는 데는 10년이 걸린단 말이지요. 즉 10년 후에는 아드님이 공부를 마치고 하산할 무렵이니 미리 멋진 절을 하나 마련해 놓으면 고향으로 돌아와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명찰(名刹)로 가꿀 것입니다.”
우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기현주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동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알아듣기 쉽게 풀이해 줘봐.”
“간단합니다. 일지 선생의 시지(時支)가 떠올라서 이것이 조짐이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문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문 앞에는 황구(黃狗)가 느긋하게 누워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뭘 보라는 거야? 개?”
“그렇습니다.”
“그게 왜?”
“누님도 참 벌써 반주에 취하신 건 아닐 테지요? 하하하~!”
“취하긴, 왜 동생은 보는데 난 못 보는 거지?”
“그러니까 부인께서 누님에게 안 묻고 우창에게 물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뭘 아는 부인이십니다. 하하하~!”
기현주는 그래도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혼자만 알면 재미있어? 말을 해줘야 같이 즐기잖아. 무슨 뜻이야?”
이렇게 말하자 자원도 분위기도 띄울 겸으로 해서 말했다.
“자원이 생각하기에는 지금이 술시(戌時)임을 알겠어요.”
그러자 기현주가 이번에는 자원을 보며 말했다.
“옳아! 자원이 설명해 주는구나. 어서 말해 줘봐. 술시가 맞아!”
“그리고 누런 개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개는 술(戌)이란 말이잖아? 누런색은 토(土)가 되지.”
“맞아요. 그래서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호호호~!”
“오호라! 이제 보니까 자원의 안목도 비상(非常)하구나. 놀라워.”
기현주가 감탄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오라버니의 시지(時支)에 술(戌)이 있었다는 것과 술시(戌時)와 황구(黃狗)가 같이 어우러져서 삼술(三戌)이 된 거네?”
“그렇죠. 이렇게 세 곳에서 같은 방향으로 안내한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조짐이라고 본 것이죠.”
“그런데 서북방(西北方)이 아니었잖아?”
“싸부는 서남방(西南方)이라고 하셨어요.”
“왜? 술(戌)은 서북(西北)이잖아?”
“그야 싸부가 알려주시겠죠?”
이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우창에게 떠넘겼다. 그러자 기현주가 이번에는 우창을 보며 물었다.
“혹, 한 잔 술에 취해서 방향에 대해 착각하신 건가?”
“원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렇게 부인께서 중요한 물음을 주셨는데 말입니다. 착각이 아니라 방향을 보는 관점이 다를 뿐입니다. 하하~!”
“그것도 하충 선생이 알려주신 거야?”
“아닙니다. 지락 선생이 가르쳐 주셨는데 누님이 뵈었을 적에는 말씀을 안 하셨나 봅니다.”
“전혀 들은 바가 없었어. 그야 무슨 상관이야. 지금 배우면 되지. 어떻게 논향(論向)하는 것인지 알려줘. 궁금하네.”
이것은 삼진도 궁금했다.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문득 서남향에 대해서 듣자 떠오르는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데 우창이 삼진에게 물었다.
“삼진은 대략 짐작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디 말을 해볼 텐가?”
우창의 말을 듣고는 삼진이 집었던 과일을 놓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의미가 혹 지장간(支藏干)의 도리(道理)는 아닌지요?”
“내 그럴 줄 알았지. 맞아! 삼진이 제대로 짚었구나.”
“그래서 서남이었군요. 그렇게 보는 방법은 처음 들었습니다.”
지장간의 도리라는 말이 나오자 비로소 기현주도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휴! 뭐야? 겨우 그것이었어? 난 또 무슨 대단한 비법이 있는 줄로 알았지 뭐야! 그건 나도 알겠어. 호호호~!”
기현주가 좋아하는 것을 보며 우창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원래 대도(大道)는 무문(無門)이고 대리(大理)는 평범(平凡)하며 대언(大言)은 무언(無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왜 아니겠어? 크게 곧은 것은 흡사 휘어져 보이는 것도 알아. 그러니까 술중신금(戌中辛金)은 서향(西向)이고 술중정화(戌中丁火)는 남향이란 말이잖아? 그 사이이니 남서향(南西向)이 된단 거지?”
“당연히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누님도 도덕경(道德經)은 잘 읽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사소한 조짐으로 천하의 대사(大事)를 논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우창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하던 기현주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서남방으로 삼리를 가면 비봉산(飛鳳山)인데?”
“아, 그렇습니까? 참 신기합니다. 하하하~!”
“그러니까 말이야. 봉황이 날아가는 산인데 거기에 절을 짓는다면 봉황의 둥지를 만드는 건가? 더구나 벽오동까지 심으라니까 마치 그 모두를 둘러본 것처럼 말하잖아?”
“이것을 삼박자(三拍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부인의 자제(子弟)가 오대산으로 간 것은 천명(天命)이요, 삼리 밖에 봉황산(鳳凰山)이 있는 것은 지명(地命)이요, 오동나무를 심고 불사(佛寺)를 짓는 것은 인명(人命)이지요.”
“오호라! 그러니까 천지인(天地人)의 이치가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이었잖아? 참 신기하면서도 오묘하구나. 어쩜~!”
기현주가 감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부인은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눈만 깜빡이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현령은 일을 마쳤는지 다시 돌아와서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살펴보자, 부인이 설명했다.
“여보, 내가 항상 걱정하던 아들 녀석의 문제를 여쭸더니 비봉산 아래에 벽오동을 심고 나중에 아들이 오면 절을 지으면 모두가 편안할 것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부인의 말을 듣고서 현령이 반기면서 말했다.
“그래? 그것참 절묘한 일이구료. 원래 비봉산은 죽은 오부자의 땅인데 가족들이 의논을 한 결과 모두 처분하고 항주로 이사하기로 했다지 않소. 지금 그 이야기를 듣고 들어왔는데 비봉산에 절 짓는 이야기를 나누셨다니 일이 되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단 말이오. 허허허~!”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기현주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비봉산이 나온 건가?”
기현주가 현령의 말을 듣고서 아직도 문 앞에 있는 황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오라버니, 이런 것이 모두 하늘의 계시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오라버니의 팔자에 있는 자식자리의 글자가 뭔지는 알죠?”
“그야 술(戌)이잖은가?”
“지금의 시진(時辰)은?”
“아마도 술시(戌時)겠지?”
“저 녀석은?”
“아, 황구 말인가? 그러고 보니 그것도 술이잖은가?”
현령은 대략 이해가 되었는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우창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것과 비봉산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창이 설명했다.
“일지 선생은 나경(羅經)의 지반(地盤)은 아시지요?”
“그야 기본이 아니오? 북(北)은 자방(子方)이요, 북동(北東)은 축인방(丑寅方)이요, 동(東)은 묘방(卯方)이요, 남동(南東)은 진사방(辰巳方)이잖소?”
“맞습니다.”
우창의 말에 현령은 다시 기현주를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술해(戌亥)는 서북방(西北方)이잖은가? 비봉산은 서북방이 아닌데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은 아닌가? 비봉산은 미신방(未申方)이니 남서향(南西向)이라야 하는데? 너무 억지로 꿰어맞춘 것은 아닌가 말이네.”
현령의 말에 기현주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라버니가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나는 공부를 했는데 오라버니는 못 하셨으니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호호호~!”
“그래? 내가 모르는 방위학(方位學)이 있었단 말인가? 그게 뭔지 나도 알아야 하겠구나. 설명해 줘보게.”
“지지(地支)의 장간(藏干)은 아시잖우?”
“그야 알지.”
“그럼 술(戌)의 장간이 뭔지도 아시겠네?”
“술이라면 정신무(丁辛戊)가 아닌가?”
“맞아요. 이것을 오행으로 방향에 놓으면 되는 거랍니다. 호호호~!”
“오행으로? 그렇다면 정(丁)은 화(火)이니 남방으로 놓고 신(辛)은 금(金)이니 서방으로 놓으면 된단 말인가?”
“맞아요. 그래서 남과 서가 물려 있으니 서남방이 된다는 말이죠. 어때요? 알고 보니 참 간단하죠?”
기현주의 말을 들으면서 잠시 생각하던 현령이 우창에게 물었다.
“이렇게 지지를 놓는 법은 금시초문(今始初聞)이구려. 이렇게 없는 법을 만든 사람은 또 누구이며 이것이 실제로 영험(靈驗)이 있기는 한 것이오?”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것은 나반(羅盤)이 아니라 조짐방(兆朕方)입니다. 예전에 어느 스승님께서 가르침을 주셨는데 조짐으로 방향을 찾을 적에는 종종 이용하는데 결과는 또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오~ 그렇소이까? 조짐이라고 하니 더 할 말이 없소이다. 그렇다면 그 조짐이 실제로 맞는 것인지는 어떻게 확인한단 말이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고을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동향현(桐鄕縣) 말이오? 오동나무의 마을이라는 뜻이잖소?”
“오동나무가 벽오동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벽오동이야 봉황이 깃들어서 산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가 아니오?”
“그렇습니다. 마침 술방(戌方)에 봉황산이 있고, 일지 선생의 시지(時支)에 술(戌)이 있고, 그 조짐을 황구가 증명해 주고 있다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도 일말(一抹)의 의혹이 있으시다면 실제로 북서향(北西向)에 절을 지을만한 자리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얼른 대답했다.
“그쪽은 넓은 들판이 자리하고 중간에는 연못까지 있으니 내 생각에는 절을 지을만한 자리도 없을뿐더러 봉황이 머물도록 벽오동을 심을 곳도 없지.”
현령이 생각해 보니 모든 방향은 서남향의 봉황산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도 의혹은 남았는지 우창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봉황산이오? 더 멀리 가면 삼십여 리 밖에는 동명산(東明山)도 있는데 말이오.”
이 말에는 기현주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만약에 일지 선생의 시주(時柱)가 정사(丁巳)이고 지금이 사시(巳時)이며 뱀이 한 마리 앞을 지나갔다면 동명산이 맞습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현령이 얼른 물었으니 기현주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동생의 말인즉 사(巳)도 경병(庚丙)으로 화금(火金)이 있으니 서남향은 맞는데 인신사해(寅申巳亥)는 역마(驛馬)라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면 진술축미는 토(土)가 되어서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야?”
우창이 기현주의 말에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누님이십니다. 적확한 판단이십니다. 하하하~!”
이렇게 기현주의 판단에 대해서 우창이 동의하자 현령도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았소. 과연 이리저리 맞춰보니 그 말이 타당하게 생각되는구려. 이제야 그 말에 대해서 믿음이 생겼소이다.”
이렇게 말한 다음에 기현주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누이가 그 땅을 사도록 하게.”
“아니, 그건 또 왜요?”
기현주는 의외라는 듯이 현령에게 말하자 현령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는 뭐가 왜인가? 내가 그 땅을 산다면 당장에 조사를 받게 될지도 모른단 말이지. 그러나 누이가 사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뿐더러 이미 산의 가격은 급하게 처분하려는 마음으로 절반에 내놨으니 비용도 절약할 수가 있을 것이잖은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추진하게. 돈이야 내가 준비할 테니 말이네. 허허허~!”
이렇게 말한 현령은 기분이 좋았는지 술을 한 잔 마시더니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오. 봉황산 아래에 아들을 위해서 절을 짓는다면 절 이름은 뭐라고 해야 하겠는지도 알려 주시오.”
“이미 이름도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그래 무엇이라고 지었소이까?”
“포란사(抱卵寺)입니다.”
“포란사? 포란사라..... 알을 품는 절이라는 말이 아니오?”
“맞습니다. 포란사가 되면 자제가 오대산에서 수행하고 와서 그 자리를 지키겠지만 산이 비봉사라서 봉황이 날아가는 형국일 것입니다. 그런데 알이 있으면 봉황이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벽오동으로 숲을 이루게 하고 10년쯤 자란 다음에 포란사를 지어놓으면 됩니다.”
우창의 말에 화들짝 놀란 기현주였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한단 말이야? 정말 놀랍구나. 감탄했어. 지금 소름이 돋았잖아 봐봐~!”
기현주가 내미는 팔을 보니 과연 모공의 털들이 모두 빳빳하게 일어나 있었고 닭살이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현령이 말했다.
“과연 우창 선생은 귀인이시구려. 걸음이 바쁘지 않으시면 푹 쉬시면서 많은 가르침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시오. 실로 나도 감탄했소이다. 허허허~!”
이렇게 주객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권커니 잣거니 술잔이 돌아가면서 모두 취기가 감돌아서 더욱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