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 제43장. 여로(旅路)
19. 동향(桐鄕)의 기인(奇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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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는 거의 두 시진이나 달려서 동향현(桐鄕縣)의 번화한 거리를 지나치더니 맑은 물길이 휘감고 있는 한적한 곳의 장원(莊園)에서 멈췄다.
“다 왔습니다. 여기입니다.”
우창이 마차에서 바라보니 웅장한 정원이 펼쳐졌고 기화요초(琪花瑤草)들이 바람에 일렁이는데 그때마다 향기가 풍겨 나와서 사람의 기분을 즐겁게 했다. 머무는 것만 보고서 그 사람을 모두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풍경을 보면서 이 저택의 주인은 분명히 고상(高尙)한 사람일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았다. 입구에 세워놓은 이름에는 「소요원(逍遙園)」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어머나~! 선경(仙境)이네, 선경~!”
가장 먼저 자원이 감탄하며 마차에 내려서 꽃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꽃의 향기를 맡으려고 다가가는 것을 본 삼진이 얼른 제지했다.
“어머, 왜요?”
“진법(陣法)이 설치되었군. 조심해야지.”
삼진의 말에 자원은 머리끝이 쭈뼛해서 얼른 물러나서는 다시 화원(花園)을 바라봤으나 그냥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을 뿐이었다.
“뭐에요~! 오라버니는 왜 그리 예민하세요? 여기에 무슨 진법이 있다고 지레 겁을 먹은 거예요? 호호호~!”
자원의 말을 들은 삼진이 우창에게 말했다.
“이것은 팔괘진(八卦陣)에 기문(奇門)을 섞은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뭔가 오묘한 배합을 한 것까지는 알겠습니다.”
삼진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화원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나도 이러한 것에는 문외한이라 전혀 식견(識見)이 없으니 청맹과니로군.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장행성을 따라가면 됩니다. 다만 다른 곳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되겠습니다.”
삼진의 말에 장행성이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삼진 선생의 안목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모님은 아무나 함부로 화원에 들어가서 꽃을 훼손하는 것을 참지 못하시고 무슨 장치해 놓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소생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어서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척 보시고 바로 알아내시다니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자, 들어가시지요. 하하~!”
모두 장행성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자 잠시 후에 현관이 나타났다. 그리고 시동(侍童)으로 보이는 아이가 나와서 장행성에게 인사했다.
“형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님께서 귀한 손님이 오실 테니 객실로 모시라는 말씀을 듣고 나왔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우창과 일행들이 안내받아서 들어간 곳은 넓은 접객실(接客室)이었다. 특이한 것은 벽이 온통 크고 작은 수석(壽石)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점이었다. 잠시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니 수석들의 품격이 예사롭지 않은 자태들인지라 여태까지 보지 못한 모습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머! 손님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기현주(紀賢珠)에요.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호호~!”
우창은 이렇게 호탕하게 말하면서도 품격을 나타낼 수가 있다는 점이 놀라워서 내심으로 감탄하면서 바라봤다. 나이는 대략 50세 중반쯤으로 되어 보이는데 키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수수한 모습에 속을 알 수가 없는 눈빛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미리 말씀도 못 드리고 찾아뵈었습니다. 진하경(陳河鏡)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우창에 이어서 삼진과 자원도 각자 자기를 소개했다. 그리고 향기로운 꽃차를 시동이 들고 와서는 잔에 따라주자 그윽한 연꽃의 향이 방을 가득 채웠다.
“참으로 고상한 분위기에 연화향(蓮花香)이 감도니 여기가 선경이네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고맙습니다.”
자원이 기현주에게 인사하자 말없이 눈으로 반겼다. 우창은 자기도 모르게 수석으로 눈길을 주자 기현주가 말했다.
“혹 아호가 있으신지?”
“예, 우창(友暢)이라고 합니다.”
“아하~! 우창 선생이셨구나. 뜻이 통하는 벗들과 함께 자연의 이치를 나누는 학자란 뜻이죠? 멋져요. 호호호~!”
기현주는 순식간에 우창의 호에 깃든 뜻을 파악하고는 즐거워했다. 이어서 자기를 소개했다.
“공화(空華)에요. 꽃이 하나도 없어서 공화랍니다. 호호~!”
기현주가 자신의 호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자 우창이 화답했다.
“우창이 생각하기에 그런 뜻이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허공에 가득한 진리의 빛을 누린다’는 뜻이 아닐까요? 참으로 멋지십니다.”
우창의 말에 기현주는 놀랍다는 듯이 우창을 보며 말했다.
“어머나! 그 정도의 안목이셨구나. 미안해요. 호호호~!”
기현주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뜻은 우창의 풀이에서 내공을 발견했다는 의미였다. 젊은 사람이 생각보다 깊은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찬사이기도 했다.
“정원에 가득한 꽃을 두고서 공화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하~!”
“역시~!”
이렇게 말한 기현주는 장행성을 향해서 말했다.
“익현(翼弦)아, 네가 한 일 중에 오늘 귀한 손님을 모시고 온 것이야말로 가장 잘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구나.”
익현은 장행성의 아호였던 모양이다. 우창은 특이한 글을 아호로 쓴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생각해 봤다.
‘익(翼)은 날개이고 현(弦)은 활시위이니 활시위와 날개가 무슨 뜻일까?’
우창이 생각에 잠긴 것을 본 익현이 설명했다.
“다른 뜻이 아닙니다. 날개를 갖고 천하를 유람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고 또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활을 쏴서 잡고 싶어서 제멋대로 지은 호이니까요. 하하하~!”
장행성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우창은 문전에서 시동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나서 물었다.
“공화 선생은 저희가 온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야 뭐 대수겠어요. 그보다도 익현을 만나게 된 이야기가 더 궁금하군요.”
기현주의 말에 장행성이 나서서 자신이 저지른 일과 그에 대해서 우창이 점괘를 보면서 해결책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러자 기현주가 신기하다는 듯이 장행성에게 물었다.
“점괘? 어떤 점괘였지?”
기현주가 관심을 보이자 장행성도 신이 나서는 우창이 적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종이에 썼다.
장행성이 쓰는 것을 지켜보던 기현주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는 우창을 보면서 물었다.
“혹 도락(道樂) 선생을 알아요?”
기현주의 말에 놀란 사람은 오히려 우창이었다. 이 여인의 식견이 어디까지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반갑게 말했다.
“공화 선생으로부터 스승님의 호를 듣게 될 줄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오호~! 그랬구나. 그래 고덕기(高德基) 선생은 여전히 잘 계신 가요?”
“이미 수년 전에 뵈었습니다만 활기차고 즐거우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인연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강호를 유람하다가 우연히 임치(臨淄)에 들려서 기이한 점술(占術)을 펼치는 고인이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는 찾아가서 보름을 머물면서 그 이치를 배웠으니 우창 선생과는 동문이 되는 셈이군요.”
우창은 너무 반가웠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여기에서 뵙습니다. 말씀은 편하게 해주시고 많은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그래야 하겠구나. 우창은 동생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어. 누나로 불러줘. 반갑네. 호호호~!”
이렇게 말한 기현주는 우창과 점괘를 번갈아 보더니 장행성에게 말했다.
“에구~ 이렇게 큰일을 저질러 놓고서 또 내게 해결해 달라고 온 모양이구나. 언제나 철이 들려느냐. 쯧쯧~!”
기현주는 장행성을 나무라는 듯이 말했으나 그것이 진심은 아니었다. 다만 우창이 어떻게 해결책을 읽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래, 동생은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는 거지?”
“예, 처음에는 매장이나 화장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괘를 봐서 그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우창이 이렇게 설명하자 마음이 급한 장행성이 끼어들었다.
“이모, ‘정신을 화장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말을 듣고서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해결책이라고 하셔서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기현주가 장행성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우창에게 물었다.
“그건 나도 금시초문인걸. 설명을 부탁하네. 혹 경오(庚午) 때문인가?”
“맞습니다.”
“경(庚)과 정신(精神)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한 견해인데?”
기현주가 신기하다는 듯이 우창에게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자세히 설명했다.
“예, 경(庚)은 삼혼(三魂)이고 신(辛)은 칠백(七魄)입니다. 생시(生時)에는 경이 주인 노릇을 하고 사후(死後)에는 신(辛)이 묘를 지키고 경은 윤회의 인연을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렇다면 경신(庚辛)이 삼혼칠백(三魂七魄)이란 말이야? 어머나! 그렇게 생각하는 법은 처음 듣는 말이야. 어서 설명해 줘봐. 재미있네.”
“누님께서 재미있다고 하시니까 우창도 신이 납니다. 이렇게 살피는 이치는 간단합니다. 갑을(甲乙)이 신체가 되고 경신(庚辛)은 정신이 되는 것이지요. 경(庚)은 하늘에서 내려온 정령(精靈)이고 신(辛)은 땅에서 솟아난 신령(神靈)입니다. 이 둘이 합해서 일생을 살아가는 정신(精神)이 되는 것이지요.”
우창의 설명을 듣자 기현주가 느끼는 바가 있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이렇게 절묘한 견해가 있었단 말이야? 설마 동생이 이러한 이치를 스스로 깨우친 건가? 아니면 기인을 만나서 전해 받은 것인가? 어떻게 이런 설명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예 누님, 전해 받기도 하고 약간은 깨우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바로 알아보시니 누님의 내공이야말로 놀랍습니다. 하하하~!”
우창은 모처럼 마음이 통하는 지기(知己)를 만난 것이 너무 반가워서 심신이 상쾌해지는 것처럼 느껴지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감탄하며 말하자 기현주가 다시 점괘를 보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임(壬)은 어떻게 해석하지?”
“예, 그것은 익현이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산중(山中)이 아니겠습니까?”
“아하! 그러니까 불문(佛門)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야?”
“우창은 그렇게 읽었습니다만, 가르침을 청합니다.”
“물론 그것이 무(戊)라면 그렇게 읽어야 하겠지.....”
“그렇다면 아니라는 뜻이로군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임(壬)은 첩첩산중(疊疊山中)이 아니잖아?”
“그러면 무엇입니까?”
“광활(廣闊)한 허공이잖고? 경신(庚辛)은 삼혼칠백이라고 하면서 임(壬)이 산속이 되어버리면 어떡한단 말이야? 그건 마치 정신을 무덤에 넣는 꼴이잖아? 호호호~!”
우창은 깜짝 놀랐다. 임(壬)을 허공으로 생각해 봤던 적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러한 이야기를 기현주에게서 듣게 될 줄은 몰랐던 까닭이었다.
“그렇겠습니다. 우창이 잘못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임(壬)이 허공이면 계(癸)는 무엇입니까?”
“그야 황천(黃泉)길을 건너서 만나는 저승이지, 명부(冥府)말이야. 명부는 깜깜하잖아. 그런데 이러한 생각도 예전에는 하지 못했어. 지금 동생이 경신에 대해서 말하는 순간에 그 연결고리를 찾아낸 거야. 그러니까 절반은 동생의 가르침 덕이로구나. 호호~!”
“과연 멋집니다!”
우창이 감탄하자 기현주는 미소를 짓고 다시 점괘를 들여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논할 때가 아닌걸. 저 녀석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것이 당면과제이니 말이야. 그렇다면 다시 해결책, 그러니까 임(壬)을 해석해 봐야지?”
기현주는 우창에게 답을 요구했다. 그것을 듣고 싶었다. 첫 답변은 실패라고 본 우창도 다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누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과연 산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정해놓은 목적지가 없는 길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여행길에 오르라고 해야 할 모양입니다. 더구나 임오(壬午)인 것으로 봐서 말을 타고 가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 싶습니다.”
“역시~! 호호호~!”
기현주는 우창의 풀이가 맘에 들었는지 엄지손가락을 치켜서 우창에게 들이밀면서 활짝 웃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행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기현주에게 물었다.
“아니, 이모님 그건 또 무슨 해결책이 됩니까? 너무 막연하지 않습니까?”
장행성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우창에게 물었다.
“어때? 빠를수록 좋겠지?”
“말을 급히 몰아야 할 것으로 봐서 그것이 옳지 싶습니다.”
우창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현주는 장행성에게 말했다.
“넌 이 길로 말을 타고 집을 떠나거라 서호로 가서 풍파정(風波亭)을 배회하면서 우창 일행을 기다렸다가 동행하거라.”
기현주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자원이 먼저 말했다.
“놀라워요. 우리가 서호를 가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계셨어요?”
그러자 우창도 한마디 했다.
“누님의 예지력은 어떤 학문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자, 그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우선 저 녀석을 빨리 보내는 일이 더 급하니 잠시만 앉아서 담소들 하고 계셔.”
기현주가 급하게 일어서자 그것을 본 장행성도 우창 일행에게 포권을 하고는 서둘러서 기현주의 뒤를 따라서 나갔다. 잠시 접객실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저마다 생각에 잠겨서 골몰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적막을 깬 것은 삼진이었다.
“스승님, 공화 선생이 서호를 말씀하신 것은 아마도 어떤 방향에 대한 조짐을 읽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혹 분주(分柱)의 임오(壬午)를 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오주괘에 대해서는 통달하신 것으로 봐서 능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삼진의 말에 우창도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서 얼른 물었다.
“그런가?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어디 삼진이 추론한 것을 들어볼까?”
“오(午)를 말로 본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방향으로 본다면 어느 곳이 되겠습니까?”
“그야 정남(正南)이 아닌가?”
“맞습니다. 여기에서 정남으로 가면 호수(湖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호수는 무엇이겠습니까? 서호(西湖)를 빼놓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어렵지 않겠습니까?”
삼진의 설명을 듣자 우창도 비로소 이해되었다. 그런데 서호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물었다.
“어떻게 그것이 서호라고 단정을 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행색을 본다면 강호의 경험이 풍부한 공화 선생의 안목으로 봐서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삼진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아하~! 원래 그렇게 된 것이었구나. 그대의 안목도 상당하네. 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기현주가 일을 처리했는지 다시 들어와서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거처는 어디인가?”
우창에게 물었다.
“소주(蘇州)입니다.”
“수향(水鄕)이로구나. 좋지. 손님을 두고서 분주한 척해서 미안해. 호호~!”
우창에게 말하면서 시종에게 과일을 내오라고 시켰다. 그래 놓고는 다시 말했다.
“자, 시주(時柱)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조카 녀석이 사고를 친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고견을 듣고 싶어. 정신을 화장한다는 것까지는 들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서 말이야.”
실로 이것에 대해서는 삼진이나 여정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모두가 우창의 입만 바라봤다. 우창도 좌중을 둘러보고서 말했다.
“그러니까 익현이 죽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는 해석입니다. 육신은 개나 돼지인데 정신만 인간인지라 정신에게 형벌을 가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가 평소에 정인군자(正人君子)로 살았더라면 이러한 해석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와! 그것참 재미있는 해석이네? 그러니까 경(庚)은 그 인간의 정신이고, 시지(時支)의 오(午)는 경에게 정관(正官)이니 그를 벌한단 말이로구나. 그렇지?”
기현주는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우창을 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알겠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이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네. 어떤 방법으로 벌을 주게 된다는 거지?”
그 정도는 능히 판단할 능력이 되고도 남을 기현주였으나 조카가 연루(連累)되다 보니 혹시나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느라고 판단하지 않고 우창의 의견부터 청한 것인가 싶었다. 그래서 우창도 차근차근 설명했다.
“점괘는 익현의 것이었습니다만 정황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다 초점이 모여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둡게 처리할 것이 아니라 밝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방향을 잡게 되는 것이지요. 오시(午時)는 한낮이니 말입니다. 해자축(亥子丑)이 보였더라면 암매장(暗埋葬)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암시가 될 것입니다.”
“와~! 절묘하구나. 절묘해~!”
우창이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기현주도 이해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설명을 멈추자 기현주가 말했다.
“자정(子正)에 같이 가담했던 아이들을 불러서 시신을 가져다 현청(縣廳)의 광장(廣場)에 가져다 놓고 거적으로 덮어놓아야 하겠구나. 이것은 은밀히 해야 할 테니 내가 현령에게 미리 귀띔해 줘야 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유가족들은 시끄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이미 이 사람이 저지른 악행으로 인해서 차라리 죽어서 사라지기만을 바랐을 테니까 말이지요.”
“맞아, 그렇게 봐도 되겠어.”
기현주가 맞장구를 치자 우창이 생각을 말했다.
“그리고 삼진을 시켜서 글을 쓰게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궁핍(窮乏)한 자들의 고혈(膏血)을 빨아먹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인지라 하늘을 대신해서 벌을 내린다.’라고 써서 품속에 넣어둘 것입니다. 이미 고을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수전노(守錢奴)인지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관원이 이러한 글을 읽으면 됩니다. 현령께 이것까지 부탁하시면 되겠습니다.”
“오호,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구나. 시신도 처리하고 처벌도 내리게 되니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지? 다만 현령에게 어떤 경위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수사하지 않으면 된단 말이네.”
“누님께서 이해하셨으니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우창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나머지 일은 알아서 할 것으로 생각되어서 말을 줄였다. 워낙 눈치가 빨라서 긴말이 오히려 군더더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잘 알았어. 그 일은 이제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잊어버려도 되겠고, 그보다도 더 궁금한 것은 오주괘의 운용이 이렇게도 절묘한지 그 이야기가 더 궁금한걸.”
“그것은 우창이 드릴 말씀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서호로 가게 될 것까지 살피셨는지 감탄했습니다. 하하하~!”
“아니, 내가 그렇게 말을 한 것에 대해서조차도 풀이를 끝냈단 말이잖아? 참으로 대단한 인재를 만났으니 이대로 보낼 수는 없는 진객(珍客)이네. 여기에서 얼마든지 머무르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눠야겠어. 호호~!”
기현주는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시종에게 숙소를 준비하라고 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