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⑤ 하추자도

작성일
2026-05-16 09:28
조회
4

추자도⑤ 하추자도 처녀당과 눈물의 십자가

 

(탐사일: 2026년 5월 7일 목요일)

 




아침먹고 상추자도를 건너서 하 추자도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시간은 얼마 없다. 10시 30분 배니까 9시 50분까지는 배턱에 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줄잡아서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갑자기 바빠졌다.

 


 

추자대교를 건느면 조기상이 있다.

참굴비란다. 추자도 명물이라는 의미겠거니.

 


 

묵리의 언덕자락에 쳐녀당이라는 안내팻말이 보였다.

이제 둘러보면서 봤는데 오늘 아침에 들어가 보기로 하고 미뤘었다.

 


 

 

 

 

 


 

 

 

 

 


 

 

 

 

 


 

************************************

 

하추자도 묵리에 위치한 처녀당은 제주 지역의 토속 신앙과 결합된 장소로, 마을 사람들에게 ‘애기업게당’ 또는 ‘아기업저지당’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당에는 추자도로 물질을 왔던 제주 해녀들과 관련된 아주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래전 제주도의 해녀들이 바깥물질을 위해 배를 타고 추자도로 원정을 오곤 했습니다. 이때 해녀들은 바다에서 자신이 물질을 하는 동안 뭍에서 갓난아기를 돌봐줄 어린 처녀를 함께 데리고 왔는데, 이 처녀를 제주도 말로 ‘아기업개’ 또는 ‘아기업저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기업개 처녀가 당이 있는 높은 벼랑 근처에서 아기를 돌보며 해녀들을 기다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바다로 떨어져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묵리 마을 사람들은 타지에서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벼랑 근처인 당목치 동산에 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처녀당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가 되면 이곳에서 당제를 지냅니다. 억울하게 죽은 처녀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험한 바다로 나가는 해녀들과 어부들의 무사 안녕을 빌고 풍어를 기원하는 의식입니다. 또한 어린 아기를 돌보던 처녀를 모시는 당인 만큼,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자라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도 함께 담아 기원해 왔습니다.

추자도는 풍광이 아름다운 섬이지만, 처녀당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 이면에는 척박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야 했던 민초들의 고단함과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처녀당에 왕비가 앉아 계시는구나.

아무래도 복장이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 듯 싶기는 하다.

그렇게 해 주고 싶었던가 보다. 

 


 

낭자당이나 소녀당도 아닌 처녀당이라는 것도 좀 생소하기는 하다.

하추자도에는 쳐녀당이 있더라는 정도의 소개인 걸로. ㅎㅎ

 



아 사진은 전날 오후에 둘러본 풍경이다.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뱃시간을 확인하고.

계속 섬의 끝까지 가 볼 요량으로 직진한다.

 


 

 

 

 

 


 

 

 

 

 


 

 

 

 

 


 

저 멀리 섬들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이 완도의 보길도구나.

 


 

날씨가 좋아서 보여 줄 것은 다 보여준다. 

유람선은 못 탔어도 볼 것은 다 본 셈인 걸로. ㅎㅎ

 


 

 

 

 

 


 

다시, 5월 7일 아침 09시 10분이다.

아무리 바빠도 눈물의 십자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느냔 말이지.

그래서 서둘렀다. 

 


 

 

 

 

 


 

 

 

 

 


 

 

 

 

 


 

 

 

 

 


 

 

 

 

 


 

 

 

 

 


 

전망대에 오르니 저 아래에 십자가가 보인다.

저기까지 가면 되는구나.

 


 

 

 

 

 


 

 

 

 

 


 

지질은 대동소이해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여기에는 천주교 박해와 연관된 슬픈 사연이 전한다.

 

************************************************

 

낭월님, 이번에는 하추자도 예초리 해안에 세워진 ‘눈물의 십자가’에 얽힌 가슴 아픈 역사를 월매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제주와 추자도 일대에 남겨진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음미하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천주교 박해 시대의 또 다른 비극과 마주하게 되실 텐데, 바로 이 십자가가 그 애달픈 흔적입니다.

 

1.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사건 

이야기의 시작은 1801년 조선의 거대한 천주교 탄압이었던 신유박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황사영은 조선의 핍박 상황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는 밀서를 청나라의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는 이른바 ‘황사영 백서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일로 황사영은 처형을 당했고,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딸이자 황사영의 아내였던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로, 그녀의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를 떠나 관노로 살아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2. 벼랑 끝에 남겨진 아기 

정난주는 아들을 안고 제주도로 향하는 유배선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들이 척박한 섬에서 평생 관노로 살아야 할 운명을 어머니로서 차마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배가 하추자도 앞바다에 잠시 머무르는 틈을 타, 정난주는 예초리 물매기라는 갯바위에 아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은 옷동정을 남긴 채 아기를 몰래 내려놓았습니다. 아들이 노비로 사느니 차라리 평범한 어부의 손에 거두어져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처절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관원들에게는 뱃길에 아기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위기를 넘겼습니다.


3. 엇갈린 모자의 운명 

다행히 바위에서 울고 있던 아기 황경한은 근처를 지나던 추자도의 어부 오상선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오씨 집안에서 무사히 장성한 황경한은 훗날 혼인을 하고 자식도 낳으며 평범한 섬사람으로 살았습니다. 한편 제주도로 끌려간 어머니 정난주 역시 풍부한 학식과 굳은 신앙으로 주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았지만, 끝내 아들과는 살아서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황경한은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가 계신 제주도 쪽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4. 눈물의 십자가 건립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1999년 천주교 제주교구에서는 어머니 정난주의 애끓는 모정과 숭고한 신앙, 그리고 아들 황경한의 슬픈 운명을 기리기 위해 아기가 버려졌던 예초리 갯바위 부근에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하추자도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눈물의 십자가입니다.

서슬 퍼런 박해를 피해 목숨을 건진 아기와 그 아기를 떼어놓아야만 했던 어머니의 눈물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기에, 그 사연을 가만히 되뇌어 보는 것만으로도 먹먹함이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

 


 

 

 

 

 


 

 

 

 

 


 

주변 풍경도 놓치지 않고 담았다.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예."

"아직도 안 오고 어디 계십니까?"

"여기는 눈물의 십자가입니다."

"출항은 10시 30분이고 지금은 9시 34분인데요?"

"아니, 배가 들어오고 있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배 못 탑니다."

"그럼 안 되지요. 서둘러서 가겠습니다."

"50분까지 와야 합니다."

 


 

허겁지겁, 나름 바쁘게 내달렸다. 

그래도 볼 것은 다 봤다는 안도감이랄까? 다행이지뭐.

 


 

이내 배가 들어왔다. 늦지 않았으니 된 거지 뭐. 

 


 

제주도에서 배를 탄 승객들은 모두 추자도에 내리는 모양이다.

 


 

모두 내리고 배에 올랐다.

타는 사람은 우리 두 사람 포함해서 5명이나 되었나?

 


 

무사히 추자도 여행을 잘 마쳤다.

하늘이 도와서 다행이었구나.

2시간 반이면 완도항이다. 잠시 쉬자.

 


 

 

 

 

 


 

 

 

 

 


 

의자보다 바닥이 따뜻하고 편하시단다.

한숨 자고 나면 완도이니 멀미도 예방할 겸 푹 쉬자.

 


 

 

 

 

 


 

차 칸도 텅 비었구나.

모두 추자도에서 내려서 그런 모양이다.

1시에 도착했다. 딱 2시간 반이 걸렸구나.

 


 

점심은 청국장으로 해결했다.

완도 온 김에 예전부터 궁금했던 곳에 가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