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① 벽파진(碧波津)
진도① 벽파진(碧波津)
(방문일: 2026년 5월 5일)

추자도를 가기 위해서는 가장 편한 방법이 진도항에서 싼타모니카호를 하는 것이다.
방법은 완도에서 가는 것도 있지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송림블루오션은 13시 40분에 출항하는데 추자도에 도착하면 16시 20분이라서다.
그보다는 진도에서 자고 08시에 출항하는 싼타모니카를 타면 하루를 온전히 여행에 쓸 수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참고해서 오후에 출발해서 진도에서 자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가는 길에 예전에 둘려 보려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그냥 지나쳤던 곳이 떠올랐다.
벽파진이다. 그렇게 일정을 만들어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벽파진까지는 274km이고 시간은 3시간이다.
쉬엄쉬엄 가는 걸로 하고 집에서 2시 반에 출발했다.



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벽파로 향하는 길로 갈아타야 한다.


6시 조금 넘어서 벽파진에 도착했으니까 안전운행 한 걸로. ㅎㅎ
계획한 대로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벽파진과 용장성을 둘러 볼 수가 있겠다.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는 곳이 예전에는 날리던 벽파항이었더란다.
제주도 가는 배도 거쳐갔더라니까 대단했을 듯.
하지만 지금은 썰렁함으로 외롭게 자리만 남아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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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안내문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의 비문(碑文)
벽파진 푸른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고작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獄)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郡守)로 임명되었던 진도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公)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이때 조정(朝廷)에서는 공에게 육전(陸戰)을 명령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臣)에게 12척의 전선(戰船)이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며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닷목을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불고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7일 적선(賊船) 13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甘浦島)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 갔는데 공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우수영으로 진(陣)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적은 배로서 330척의 적선을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 사 만고에 길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그 날 진도백성들은 모두들 달려 나와 군사들에게 옷과 식량을 나누었으며 이천구(李天龜), 김수생(金水生), 김성진(金聲振), 하수평(河水坪), 박현(朴轩), 박희령(朴希齡), 박후령(朴厚齡)과 그의 아들 인복(仁福) 또 양응지(梁應池)와 그 조카 계원(啓源) 그리고 조탁(曹鐸), 조응양(曹應亮)과 그 아들 명신(命新) 등 많은 의사(義士)들은 목숨까지 바치어 천추(千秋)에 호국신이 되었나니 이는 진실로 진도민의 자랑이로다.
이 고장 민속 강강술래 구슬픈 춤과 노래는 의병전술(疑兵戰術)을 일러주는 양 가슴마다 눈물 어리고 녹진 명량 두 언덕 철쇄(鐵鎖) 걸었던 깊은 자욱엔 옛 어른들의 전설이 고였거니와 이제 다시 이곳 동포들이 은공과 정기를 영세(永世)에 드높이고자 벽파진두에 한 덩이 돌을 세움에 맞여 나는 삼가 꿇어 엎디어 대강 그때 사적을 적고 이어 노래를 붙이노니 열두척 남은 배를 거두어 거느리고 벽파진 찾아들어 바닷목을 지키실 제 그 심정 아는 이 없어 눈물 혼자 지우시다 삼백척 적의 배들 산같이 깔렸더니 울돌목 센 물결에 거품같이 다 꺼지고 북소리 울리는 속에 저님 우뚝 서 계시다 거룩한 님의 은공 어디다 비기오리 피흘린 의사혼백(義士魂魄) 어느 적에 살아지리 이 바다 지나는 이들 이마 숙이옵소서.
※위 내용은 1956년 11월 29일 건립된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적선 13척: 원래 비문 및 난중일기 기록에는 ‘18척’이나 안내판에는 ‘13척’으로 잘못 기재되어 있습니다.
조응양: 한자 ‘亮(밝을 량)’을 썼으므로 ‘조응량’이 맞으나 안내판에는 한글로 ‘조응양’으로 적혀 있습니다.
고작: 원문은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이나, 안내판에는 ‘고비에 고작 빛나고’라며 문맥상 어색한 단어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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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매의 도움으로 안내문도 이제 애써서 타이핑을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잘 못 된 부분까지도 찾아서 알려주니 만고 편하구나. 고마워 월매~! ㅋㅋ

참 절박한 문구다. 당시의 상황을 느껴볼 수도 있을 듯 싶다.
부하들의 두려움을 보면서 자기도 두렵지 않았을 리가 없었을 게다.
그럼에도 물러서 봐야 삶이 없다고 판단하고 외쳤으리라...


바위를 깎아서 계단을 만들었구나.
이런 곳은 종종 있다.







응회암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꽤 단단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용결(熔結) 응회암일 수도 있겠다.

현생누대 신생대 제4기
충적층
충적층
어? 이건 아닌데? 암석의 모양이 충적층은 아니잖여?
지질도에서 윗쪽의 보라색 삼각부위가 여기에 부합하는 듯 싶다.
지질도에도 오류가 있으니까 알아서 감안하면 된다.
고쳐달라고 메일을 보내봐도 못 고친다는 답만 올 뿐이다.

현생누대 중생대 백악기
백악기 분류산성암층 선성분류암질 응회암
산성분류암질 응회암
그렇지! 이 정도는 써 줘야 그런가보다 하지. 흠흠~~
이름이 복잡하구나. 이런 때는 무조건 월매 찬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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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올려주신 벽파진 지질도 사진을 보니, 진도 여행에서 역사적인 자취뿐만 아니라 그 땅의 뼈대까지 깊이 살피셨군요.
사진 속 지질도의 정보 창에 담긴 전문적인 한자 용어와 기호들을 알기 쉽게 하나씩 풀이해 드리겠습니다.
1. 시대: 현생누대 중생대 백악기
벽파진 일대의 암석이 만들어진 시기를 말합니다. ‘백악기’는 공룡이 번성했던 시기로, 대략 1억 4천5백만 년 전에서 6천6백만 년 전 사이를 가리킵니다. 까마득히 먼 옛날,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매우 격렬한 화산 활동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2. 암석의 정체: 산성분류암질 응회암
이 지질도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단어가 길고 복잡해 보이지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그 성질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응회암(凝灰岩):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땅이나 물밑에 두껍게 쌓인 뒤, 오랜 세월 동안 엄청난 압력을 받아 단단하게 굳어진 암석입니다. 용암이 시냇물처럼 흘러서 굳은 현무암과는 만들어진 과정 자체가 다릅니다.
산성(酸性): 여기서 말하는 산성은 맛이 시다거나 무언가를 녹인다는 뜻이 아니라, 암석 안에 ‘규산($SiO_2$)’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는 지질학 용어입니다. 규산 성분이 많은 마그마는 엿가락이나 꿀처럼 매우 끈적끈적한(점성이 높은) 특징이 있습니다.
분류암질(噴流岩質): 땅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식은 것이 아니라, 지표면 밖으로 뿜어져 나와(분출되어) 굳어진 암석이라는 뜻입니다.
3. 도폭과 기호: 우수영[1929], Kta
도폭(우수영 1929): 도폭은 넓은 지질도를 일정 크기로 나누는 기준 구역을 말합니다. 벽파진 일대는 ‘우수영’ 구역에 해당하며, 1929라는 숫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이 구역의 지질 조사가 이루어지고 지도가 처음 발행된 연도를 의미합니다.
기호(Kta): 지질도에서 색상과 함께 해당 지층을 간략히 표시하는 암호입니다. 보통 ‘K’는 백악기(Cretaceous)를, ‘t’는 응회암(tuff)을, ‘a’는 산성(acidic)을 의미하는 영문 단어에서 따와 조합한 것입니다.
4. 벽파진 지형에 얽힌 지질학적 비밀
이 정보들을 하나로 묶어보면, 중생대 백악기 시절 벽파진 일대에서는 끈적끈적한 마그마가 화산 가스를 잔뜩 머금고 있다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어느 순간 엄청난 대폭발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하늘을 뒤덮었던 막대한 양의 화산재가 이 일대에 두껍게 내려앉아 굳어진 것이 바로 지금 벽파진의 뼈대를 이루는 바위들입니다.
응회암은 대체로 단단하고 비바람에 깎이는 풍화 작용에 강한 편입니다. 이충무공이 12척의 배를 이끌고 거센 조류를 버텨내며 진을 쳤던 든든한 해안과 험준한 절벽들은, 바로 수천만 년 전의 거대한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단단한 화산재 덩어리 덕분에 형성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일전에 꼼꼼히 살피셨던 소청도의 층층이 쌓인 퇴적암이나 관입암 지대와는 또 다른, 뜨겁고 맹렬했던 화산 활동의 웅장한 흔적입니다. 뷰파인더 너머로 정성껏 담아내셨을 벽파진의 굳건한 바위들이 이제는 수천만 년의 시간을 품은 화산재로 새롭게 다가오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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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정도는 풀어줘야 뭔가 공부하는 맛이 난단 말이지.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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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요청하신 사진 속 '벽파정' 비석의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해 드립니다.
비석에 새겨진 원문의 띄어쓰기가 매우 불규칙하여 사진에 보이는 그대로를 먼저 옮겨 적었습니다.
벽파정
벽파 정은 1207년(고려희종3) 진도의 관문 인벽파 나루 언덕에창건하여 1465년(조선 세조 11) 중건 하였 으나 허물어 지고 옛자취만 남아 있다 이 정자 는내 왕 하는 관리 와 사신 들을 영송迎送하고 위로 하던 곳으 로 정객 과 문인 들이 아 름다운 경승과 감회를 읊어 많은 싯구 를 남긴 명소 이다. 벽파진碧波津 은정 유재란(1597년) 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이 12척 남 은배 를 이끌고 16일동안 바닷목을 지키실 때 향민 들은 공을 도와 죽음으로 명량대첩 을 이루 었고 고려말 에 는 삼별 초군 이 들어온 유적지이기도 하다. 유서깊 은 벽파 정 을 군민 들의 뜻에 따 라새터를다듬어 이 곳에 세우다 이천십육년칠월 일
진도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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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정이다. 가운데 방이 있으니 놀다가 밤이 되면 잘 수도 있었겠다.


이미 어둠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림자도 짙어졌다.
그래도 둘러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듯해서 자꾸 뒤지고 다닌다.
서각들이 붙어있으니 그 내용도 훑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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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선생님의 렌즈에 선명하게 담긴 벽파정의 시판(詩板)이군요. 사진 속 현판 우측에 새겨진 한문 원문과 독음, 그리고 좌측에 작게 적힌 우리말 풀이를 차례대로 정리해 드립니다.
[한문 원문 및 독음]
오른쪽 줄부터 세로로 읽어 내려간 내용입니다.
孤島天門遠 (고도천문원)
層溟鬼域隣 (층명귀역린)
招招舟子渡 (초초주자도)
世乏我須人 (세핍아수인)
夜靜無風起 (야정무풍기)
寒光物影流 (한광물영류)
滿酌滄江水 (만작창강수)
披襟洗客愁 (피금세객수)
[작자 및 우리말 풀이]
현판의 좌측에는 이 시를 지은 이와 글씨를 쓴 이, 그리고 시의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둔 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원문 그대로 옮겨 드립니다.
高麗 正言 曹希直 詠 (고려 정언 조희직 영)
靑農 文冠弼 삼가쓰다 (청농 문관필 삼가쓰다)
조정에서 멀리 떨어진 외로운 섬
변방엔 거센 바다 가까이 있고
손들어 사공 불러 건너려 하는데
세상에 나 기다리는 사람이 없네
고요한 밤 바람 한점 일지 않고
차가운 달빛에 만상이 흐른다
창강수 같은 술 가득 채워 마시며
나그네 흉금을 열고 시름을 씻노라
고려 시대에 정언(正言) 벼슬을 지낸 조희직이 벽파정에서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입니다. 적막한 바닷가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느끼는 나그네의 고독과 시름이 문장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머금은 옛 선인의 시구가 참으로 운치 있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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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올려주신 사진은 고려 시대 김화(金華) 출신의 문신 윤암(尹嵒)이 진도 강정(벽파정의 옛 이름)에서 지은 5언 율시를 새긴 현판입니다.
이 현판은 특이하게도 아래쪽의 한글 풀이마저 옛 한문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적혀 있습니다. 사진에 적힌 그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면 전혀 뜻을 알 수 없는 글자들의 나열이 됩니다.
1. 한글 부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었을 때 (현판의 물리적 배치)]
오가비네하회배며이렁일배은작데는없지그음마한득아
뜨에늘하은물니이람바고들어숨로으속름구는새니
범을성우견제이니더했워러끄부을됨못이선신네그나나구는
네르오어피기연른푸엔밖섬지인고라나느어나구였되이선신는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었을 때 (본래의 뜻)]
아득한 마음 그지없는데 작은 배 일렁이며 배회하네 비가 오
니 새는 구름 속으로 숨어들고 바람 이니 물은 하늘에 뜨
는구나 나그네 신선이 못됨을 부끄러워 했더니 이제 견우성을 범
하는 신선이 되였구나 어느 나라고 인지 섬 밖엔 푸른 연기 피어오르네
2. 한문 원문 및 독음
위아랫줄의 한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짝지어 읽어 내려가면 시 원문이 완성됩니다.
杳杳險難極 (묘묘험난극) 아득하고 험하여 끝을 알기 어렵고
盤桓漾小船 (반환양소선) 작은 배 띄워놓고 서성이네
雨來雲沒鳥 (우래운몰조) 비 오니 구름은 새를 삼키고
風動水浮天 (풍동수부천) 바람 부니 물은 하늘을 띄우네
愧匪餐霞客 (괴비찬하객) 부끄럽게도 노을 먹는 신선은 아니지만
乘桴犯牛仙 (승부범우선) 뗏목 타고 견우성 범한 신선이 되었구나
未知何郡國 (미지하군국) 여기가 어느 고을인지 알지 못하는데
島外碧生煙 (도외벽생연) 섬 밖으로 푸른 연기 피어오르네
(가운데 줄) 珍島江亭 高麗 金華 尹嵒 詠 (진도강정 고려 김화 윤암 영)
3. 오타 및 오류 확인
원고를 고쳐 쓰지 않고 현판에 나타난 오류만 짚어 드립니다.
나라고 인지: 원문의 ‘何郡國(하군국, 어느 고을 어느 나라인지)’을 우리말로 푼 것인데, ‘나라 고을인지’에서 글자가 누락되었거나 ‘나라인지’를 잘못 쓴 오류로 보입니다.
되였구나: ‘되었구나’의 잘못된 옛날식 표기인 ‘되였구나’로 적혀 있습니다.
글씨를 쓴 방향의 독특함 때문에 처음 보면 암호표처럼 느껴지는 현판입니다. 진도 앞바다의 험난한 풍랑 속에서 잠시 배를 띄워두고 풍류를 읊었던 고려 시대 문인의 정취가 잘 담겨 있습니다. 이 외에도 더 짚어보고 싶으신 기록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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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사진 속 현판에는 두 편의 오언절구(五言絶句) 한시가 나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오른쪽은 기묘사화로 유배를 가던 충암 김정(沖菴 金淨)이 벽파진을 떠나며 지은 시이고, 왼쪽은 훗날 그 시를 보고 규암 송인수(圭庵 宋麟壽)가 운율을 맞추어 지은 차운시(次韻詩)입니다. 한문 원문이 세로로 자유롭게 이어 쓰여 있으나, 읽기 편하시도록 5언 절구의 형식에 맞추어 줄을 나누어 정리해 드립니다.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한문 원문과 독음, 그리고 아래에 적힌 우리말 풀이입니다.
[우측 시: 충암 김정]
宇宙由來遠 (우주유래원)
人生本自浮 (인생본자부)
扁舟從此去 (편주종차거)
回首政悠悠 (회수정유유)
冲菴 金淨 詠 (충암 김정 영)
우리말 풀이: 우주는 예로부터 영원한 것이요 인생이란 본래 덧없는 것이니 일엽편주에 몸싣고 여기서 떠나가 머리 돌리면 정히 아득 하기만 하리
[좌측 시: 규암 송인수]
次韻 (차운)
孤忠輕性命 (고충경성명)
短棹任沈浮 (단도임침부)
日暮汀沙遠 (일모정사원)
招魂意轉悠 (초혼의전유)
朝鮮 圭庵 宋麟壽 詠 (조선 규암 송인수 영)
우리말 풀이:
의로운 충정은 목숨을 가벼히 여기고
짧은 노는 멋대로 뜨거나 잠기는구나
해는 지고 모래섬은 아득히 멀기만 한데
넋을 부르려니 뜻이 더욱 아득 구려
현판 아래에 적힌 우리말 풀이는 띄어쓰기가 행갈이에 맞추어 다소 불규칙하게 적혀 있어 원문 그대로 옮겨 두었습니다. 표기상의 오타와 띄어쓰기 오류는 아래에 따로 확인해 드립니다.
가벼히: ‘가벼이’의 잘못된 표기입니다.
아득 구려: 문맥상 ‘아득하구려’로 적거나 앞말에 붙여 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몸싣고 / 아득 하기만: 각각 ‘몸 싣고’, ‘아득하기만’ 등으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진도 유배길에 올랐던 선비들의 비장하고도 쓸쓸한 마음이 나란히 걸린 현판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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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이 현판은 고려 시대 문신이자 시인인 김극기(金克己)가 벽파진의 풍경을 읊은 오언율시(五言律詩)를 새긴 것입니다. 가운데 작은 글씨로 “高麗 金克己 詠 竹谷 朴在仁 敬書(고려 김극기 영 죽곡 박재인 경서)”라고 적혀 있어, 김극기의 시를 죽곡 박재인이 삼가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부터 한문 원문과 독음을, 왼쪽의 우리말 풀이를 차례로 정리해 드립니다.
[한문 원문 및 독음]
曠野初尋路 (광야초심로)
澄江忽上船 (징강홀상선)
殘山屛匝地 (잔산병잡지)
碎浪雪漫天 (쇄랑설만천)
淨境逃塵俗 (정경도진속)
淸遊厭水仙 (청유염수선)
興闌紅日晩 (흥란홍일만)
孤島起炊煙 (고도기취연)
[우리말 풀이]
넓은 들판 처음으로
찾아오는 길
맑은 강 홀연히 배에
오르네
나지막한 산은
병풍처럼 땅을 두르고
부서지는 물결은 눈같이
하늘에 가득하네
깨끗한 지경은
티끌 세상 피하였고
수선과 청유하니 마음
족하매 흥은 다하고
붉은 해가 저무니
외로운 섬에
밥 짓는 연기 오르네
이번 현판은 한문 원문의 본래 뜻과 우리말 풀이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 이 부분과 표기 오류를 확인해 드립니다.
수선과 청유하니 마음 족하매: 원문인 ‘淸遊厭水仙(청유염수선)’은 직역하면 ‘맑게 노니는 것을 수선(水仙)이 시기하네’ 또는 ‘수선보다 낫네’라는 뜻입니다. 현판의 풀이는 이를 ‘수선과 맑게 노니니 마음이 족하다’는 뜻으로 다소 다르게 의역해 두었습니다.
티끌 세상: 하나의 단어이므로 ‘티끌세상’으로 붙여 쓰는 것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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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사진 속 현판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성(李宬)이 지은 ‘벽파정기(碧波亭記)’의 한 구절을 발췌하여 새긴 것입니다. 글씨는 청인 양재복(淸仁 梁在福)이 썼습니다. 진도의 웅장한 지리와 풍요로운 산물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줄부터 세로로 읽어 내려간 한문 원문과 독음, 그리고 왼쪽의 우리말 풀이를 차례로 정리해 드립니다.
[한문 원문 및 독음]
珍之爲島茫 (진지위도망)
然絶域天府 (연절역천부)
之地亘五六 (지지긍오육)
十里間山高 (십리간산고)
水深土且肥 (수심토차비)
衍牧有馬雲 (연목유마운)
錦蔽野柚橘 (금폐야유귤)
珠樹成林寶 (주수성림보)
藏財府爲南 (장재부위남)
州冠王人使 (주관왕인사)
盖相望 (개상망)
(왼쪽 작은 글씨)
朝鮮 李宬 碧波亭記 (조선 이성 벽파정기)
淸仁 梁在福 謹書 (청인 양재복 근서)
[우리말 풀이]
현판의 왼쪽에 적힌 우리말 풀이를 사진에 보이는 그대로 옮겨 드립니다. 마침표 등의 문장 부호 없이 이어 쓰여 있습니다.
진도는 아득히 떨어져 있는 절해의 요새다
그 넓이가 직경으로 오륙십리 인데
산이 높고 물이 깊으며 땅이 비옥하고
넓은 목장에는 구름같은 말 떼들이
비단을 펼친듯 들을 덮고
유자나 귤은 구슬을 꿴듯 숲을 이루고
뭇 보배의 곳집으로 남쪽 고을의 으뜸이 되어
왕이나 사신들의 마행차가 끊일새가 없었다
[띄어쓰기 오류 확인]
원고를 고쳐서 새로 쓰지 않고, 현판의 우리말 풀이에 나타난 띄어쓰기 오류만 아래에 짚어 드립니다.
‘오륙십리 인데’는 ‘오륙십 리인데’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구름같은’은 ‘구름 같은’으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펼친듯’은 ‘펼친 듯’으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꿴듯’은 ‘꿴 듯’으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끊일새가’는 ‘끊일 새가’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옛 진도가 얼마나 물산이 풍부하고 빼어난 고장이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멋진 문장입니다. 벽파정의 다른 현판이나 낭월님의 여행길에 얽힌 또 다른 기록이 궁금하시다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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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올려주신 파일의 현판 내용도 잘 확인했습니다.
이번 현판은 앞서 보셨던 것들과 달리 한문 원문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쓰기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려 시대 문신인 채보문(蔡寶文)이 지은 칠언율시(七言律詩)로, 벽파정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요로움을 도원경(무릉도원)에 빗대어 찬양한 시입니다.
현판에 적힌 순서대로 한문 원문과 독음, 그리고 아래에 적힌 우리말 풀이를 차례로 정리해 드립니다.
[한문 원문 및 독음]
此亭誰創碧江濱 (차정수창벽강빈)
無限黃蘆與綠筠 (무한황로여녹균)
柳岸喜逢陶彭澤 (유안희봉도팽택)
桃源行訪武陵人 (도원행방무릉인)
蒼茫海上蓬萊島 (창망해상봉래도)
出沒波間日月輪 (출몰파간일월륜)
金橘數枝低馬首 (금귤수지저마수)
行人休道使君貧 (행인휴도사군빈)
高麗 蔡寶文 詠 (고려 채보문 영)
[우리말 풀이]
아래에 적힌 우리말 풀이를 사진에 보이는 그대로 옮겨 드립니다.
누가 이 정자를 벽강가에 지었는가
누런 갈대와 푸른 대숲 끝이 없구나.
유안에서 도연명을 반가이 만나보고
도원경을 찾아드니 무릉사람이로다.
바다 위 봉래도는 희미하게 보이고
둥근 해와 달이 물결사이로 오르내리네.
황금빛 유자가 말머리에 늘어졌으니
행인들이여 사군을 가난하다 말하지 마오.
고려채보문시를 고산 김민재 쓰다
[오타 및 오류 확인]
원고를 고쳐서 새로 쓰지 않고, 현판의 우리말 풀이에 나타난 띄어쓰기 및 표기 오류만 아래에 짚어 드립니다.
지었는가 누런: 두 개의 시구가 이어지는 부분이므로 '지었는가. 누런' 혹은 '지었는가, 누런'으로 문장 부호를 넣거나 띄어 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무릉사람이로다: '무릉 사람'은 붙여 쓰지 않으므로 '무릉 사람이로다'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물결사이로: '사이'는 의존 명사이므로 '물결 사이로'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가난하다 말하지: 문맥상 '가난하다고 말하지'가 조금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나, 시적인 허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고려채보문시를: 고유명사와 명사가 결합한 형태이므로 '고려 채보문 시를' 또는 '고려 채보문의 시를'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벽파정 현판들을 통해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비들이 이곳의 풍광에 매료되었음을 알 수 있네요. 여행지에서 이렇게 꼼꼼하게 기록을 남기시는 낭월님의 열정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더 풀어보고 싶으신 기록이 있다면 언제든 편히 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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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초서로 유려하게 흘려 쓴 글씨라 어지러워 보일 수 있지만, 뷰파인더로 선명하게 담아주신 덕분에 찬찬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현판은 앞서 보신 고려나 조선 시대 선비들의 시와는 달리, 비교적 최근인 2016년(병신년) 벽파정 복원을 기념하여 지은 시를 새긴 것입니다. 일반적인 한시의 율격(4구 또는 8구)을 벗어나 7구로 이루어진 파격적인 형태가 눈에 띄네요.
오른쪽의 한문 원문과 독음, 그리고 왼쪽에 적힌 우리말 풀이를 차례로 정리해 드립니다.
[한문 원문 및 독음]
千秋消失碧波亭 (천추소실벽파정)
巖上復元如本形 (암상복원여본형)
樓閣飛簷穿碧空 (누각비첨천벽공)
蒼茫海景潤蘇汀 (창망해경윤소정)
遺蹟依然沃州榮 (유적의연옥주영)
對峙公碑照萬齡 (대치공비조만령)
鳶飛弄日瑞雲停 (연비농일서운정)
祝碧波亭復元 (축벽파정복원)
丙申夏 吉日 (병신하 길일)
[우리말 풀이]
현판 왼쪽에 적힌 우리말 풀이를 사진에 보이는 그대로 행갈이하여 옮겨 드립니다.
긴 세월 소실되어 사라졌던 벽파정
원형 그대로 바위 위에 복원한
모습
누각의 처마끝은 하늘로 날
아오를 듯
푸른 바다 해변 마을 이
웃하니 절경이로세
오래도록 사적으
로 남아 옥주를 빛내고
억겁의 세
월 찬연하게 명소로 빛나리라
충무
공 전첩비를 바라보며 마주하는 곳
솔개 날아 뜨는 해 희롱하니
상서
로운 구름 벽파정 위에 머물도다
[오타 및 오류 확인]
원고를 고쳐서 새로 쓰지 않고, 현판의 우리말 풀이에 나타난 띄어쓰기 오류 및 특징만 아래에 짚어 드립니다.
처마끝은: ‘처마 끝은’으로 띄어 쓰는 것이 올바른 맞춤법입니다.
옥주: 한시 원문의 ‘沃州(옥주)’를 그대로 번역한 것인데, 이는 진도의 옛 이름 중 하나입니다. 옛 선인들의 시구를 빌려 진도의 자부심을 드러낸 표현입니다.
벽파정의 옛 자취가 낭월님의 카메라를 통해 낱낱이 기록되고 있군요. 꼼꼼히 살피시는 여정에 제 풀이가 조그만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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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벽파진에서의 마지막 현판이군요. 마지막까지 귀한 사진을 꼼꼼하게 담아오신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올려주신 사진 속 현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소재 노수신(蘇齋 盧守愼)이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입니다. 진도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했던 노수신의 쓸쓸하고도 서정적인 마음이 짙게 배어 있는 시입니다.
현판의 한자는 일곱 글자씩 떨어지지 않고 공간에 맞추어 세로로 자유롭게 나뉘어 적혀 있습니다. 원래의 7언 절구 형식에 맞추어 원문과 독음을 정리하고, 왼쪽에 적힌 우리말 풀이를 차례로 적어 드립니다.
[한문 원문 및 독음]
曉月空將一影行 (효월공장일영행)
黃花赤葉正含情 (황화적엽정함정)
雲沙目斷無人問 (운사목단무인문)
依遍津樓八九楹 (의편진루팔구영)
(가운데 작은 글씨)
碧亭 詩人 蘇齋 盧守愼 詠 (벽정 시인 소재 노수신 영)
靑農 文冠弼 삼가쓰다 (청농 문관필 삼가쓰다)
※ ‘벽파정’을 줄여 ‘벽정’이라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말 풀이]
현판의 왼쪽에 적힌 우리말 풀이를 사진에 보이는 그대로 행갈이하여 옮겨 드립니다.
새벽달에 허전히 그림자와
함께 가니
국화꽃 단풍잎이
정을 담뿍 머금었네
구름
멀리 아마득히 물어볼 사람
없어
벽파정 기둥 돌며 여
덟 아홉 번 기대었소
[오타 및 오류 확인]
원고를 고쳐서 새로 쓰지 않고, 현판의 우리말 풀이에 나타난 띄어쓰기 오류와 표기상의 특징만 아래에 짚어 드립니다.
머금었네 구름: 시구가 끝나고 새로운 구절이 시작되는 곳이므로 ‘머금었네. 구름’처럼 마침표를 찍거나 띄어 쓰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아마득히: ‘아득히’ 또는 ‘까마득히’의 잘못된 표기로 보입니다.
여 / 덟: ‘여덟’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줄이 바뀌면서 두 줄에 걸쳐 나뉘어 적혀 있습니다. 현판의 공간 배치 때문이지만, 글을 읽을 때는 시선이 끊어지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덟 아홉 번: 수를 연달아 나타낼 때는 ‘여덟아홉 번’ 등으로 붙여 쓰거나 ‘여덟, 아홉 번’으로 쉼표를 적는 것이 맞습니다.
벽파진에 얽힌 옛 선인들의 시문과 사적을 낭월님의 렌즈를 통해 이렇게 함께 짚어볼 수 있어 저 역시 무척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낭월님의 세밀한 관찰과 치열한 기록 정신이 담긴 이 텍스트들이, 훗날 벽파진을 찾는 많은 분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든든한 길잡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앞으로 이어질 탐구의 여정에도 월매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편히 불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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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현판이 보이면 사진은 찍었어도. 풀이하기 거역해서 넘어간 것이 대부분인데
이제는 이렇게 그럴듯한 내용으로 풀이한 것을 추가할 수가 있어서 만고 좋구나.
벽파정에서 바다를 굽어보는 풍경이 한가롭다.
절경은 아니라도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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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진짜 마지막이 아니었군요. 벽파진 전첩비를 알리는 또 다른 안내판 사진을 꼼꼼하게 담아주셨네요. 올려주신 사진 속 안내판의 내용을 원문 그대로 텍스트로 변환해 드립니다.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 Yi Chungmugong's Byeokpajin Battle Monument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5호
소재지 :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682-4
정유재란 당시 이충무공에 의해 가장 통쾌한 승리를 불가사의하게 거둔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고 진도 출신 참전 순절들을 기록하기 위해 1956년 11월 29일 건립되었다.
비신의 높이는 3.8m, 폭 1.2m, 두께 58cm이다. 비문은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진도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으며, 진도 교육감 곽충로는 관내 교육원 생도들을 비롯한 모든 군민의 성력을 모아 이 비를 세웠다. 비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옥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진도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이 53세 되던 정유년(1597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했으나 그대로 여기 이 바다를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 7일 적선 18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 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 갔는데 공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진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작은 배로서 330척의 배를 모조리 무찌르고,
그날 진도백성들은 모두들 달려나와 군사들에게 옷과 양식을 나누었으며 이천구, 김수생, 김성진, 하수평, 박현, 박희승, 박희령, 박후령과 그의 아들 인복 또 양응지와 그 조카 계원 그리고 조탁, 조응양과 그 아들 명신 등 많은 의사들은 목숨까지 바치어 천추에 호국신이 되었나니 이는 진실로 진도군민의 자랑이로다. 진도 민속 강강술래 구슬픈 춤과 노래는 의병전술을 일러주는 양 가슴마다 눈물 어린다.
안내판 원문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며, 안내판에 기재된 오타와 표기 오류를 아래에 따로 확인해 드립니다.
[오타 및 오류 확인]
참전 순절들을: '순절(殉節)'은 명사이므로 사람을 지칭하려면 '순절자들을' 또는 '순절한 이들을'로 적는 것이 문맥상 알맞습니다.
교육원 생도들을: 앞서 보신 실제 비문 원문에는 '교직원 생도들을'로 되어 있으나, 이 안내판에는 '교육원'으로 잘못 기재되어 있습니다.
무찌르고,: 문장이 끝나야 하는 부분인데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처리되어 어색
합니다. (실제 비문 원문은 '무찌르니'로 이어집니다.) 박희승: 비문 원문에는 '박현
, 박희령, 박후령'으로 되어 있는데, 이 안내판에는 '박희승'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되어 기재되어 있습니다. 조응양: 앞서 다른 안내판에서도 보셨듯, 원래 한자가 亮(밝을 량)이므로 '조응량'이 맞으나 여기도 '조응양'으로 적혀 있습니다.
벽파진에 관한 여러 안내판들이 내용이나 표기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낭월님의 사진을 통해 명확히 대조하고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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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월매입니다.
벽파진 이충무공 전첩비는 조선 시대의 여느 비석들과 달리 현대인 1956년에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순수 옛 한문으로 된 원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앞서 보여드린 내용에 한자를 섞어 쓴 ‘국한문 혼용체’가 비석에 새겨진 실제 원문입니다. 소전 손재형 선생 특유의 서체로 유려하게 새겨져 있지요.
비석에 새겨진 국한문 혼용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碧波津 푸른 바다여 너는 榮光스런 歷史를 가졌도다. 民族의 聖雄 忠武公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功을 세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獄에서 풀려나와 三道水軍統制使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隻을 겨우 거두어 일찍 郡守로 任命되었던 珍島 땅 碧波津에 이르니 때는 公이 53歲 되던 丁酉年 8月 29日. 이때 朝廷에서는 公에게 陸戰을 命했으나 公은 이에 對答하되
“臣에게 아직도 12隻의 배가 남아 있삽고 또 臣이 죽지 않았으며 賊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다를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日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薈(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月 초 7日 敵船 18隻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 9日에도 敵船 2隻이 監浦島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갔는데 公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日에 陣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隻 작은 배로서 330隻의 배를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痛快할사 萬古에 깊이 빛날 鳴梁大捷이여…
그날 珍島 百姓들은 모두 달려나와 軍士들에게 옷과 糧食을 나누었으며 李天龜, 金水生, 金成珍, 河壽平, 朴賢, 朴希齡, 朴厚齡과 그의 아들 仁福 또 梁應之와 그의 조카 繼元 그리고 趙倬, 趙應亮과 그의 아들 明臣 등 많은 義士들은 목숨까지 바치어 千秋에 護國神이 되었나니 이는 眞實로 珍島民의 자랑이로다. 이 고장 民俗 강강술래 구슬픈 춤과 노래는 義兵의 戰術이었고 피흘린 義士 魂魄 어느 적에 살아지리. 이 바다 지나는 이들 이마 숙이옵소서.
檀紀 4289年 8月 29日 鷺山 李殷相 글을 짓고, 素荃 孫在馨은 글씨를 쓰고 珍島 敎育區 敎育監 郭忠魯는 區內 敎職員 生徒들을 비롯한 모든 郡民과 道內 敎育 同志들의 誠力을 모아 이 碑를 세우다.
혹시 비문 내용 전체가 아니라, 비문 속에 인용된 충무공의 장계 원문(한문)을 찾으시는 것이라면 이충무공전서 등에 전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 (중략) 戰船雖寡 微臣不死 則不敢侮我矣”
(금신전선 상유십이 출사력거전 즉유가위야 ... 전선수과 미신불사 즉불감모아의)
전첩비를 직접 둘러보시거나 관련 글을 쓰실 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더 필요하신 자료가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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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의 풀이를 찾아서 추가한다. 월매의 공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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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님, 안녕하세요. 월매입니다.
요청하신 전라남도 진도 벽파진에 세워진 이충무공 전첩비의 비문 내용을 찾아 정리해 드립니다. 이 비문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짓고, 소전 손재형 선생이 글씨를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은 비문에 새겨진 전문의 내용입니다.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 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며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다를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 7일 적선 18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 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갔는데 공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진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작은 배로서 330척의 배를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사 만고에 깊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그날 진도 백성들은 모두 달려나와 군사들에게 옷과 양식을 나누었으며 이천귀, 김수생, 김성진, 하수평, 박현, 박희령, 박후령과 그의 아들 인복 또 양응지와 그의 조카 계원 그리고 조탁, 조응량과 그의 아들 명신 등 많은 의사들은 목숨까지 바치어 천추에 호국신이 되었나니 이는 진실로 진도민의 자랑이로다. 이 고장 민속 강강술래 구슬픈 춤과 노래는 의병의 전술이었고 피흘린 의사 혼백 어느 적에 살아지리. 이 바다 지나는 이들 이마 숙이옵소서.
단기 4289년 8월 29일 노산 이은상 글을 짓고, 소전 손재형은 글씨를 쓰고 진도 교육구 교육감 곽충로는 구내 교직원 생도들을 비롯한 모든 군민과 도내 교육 동지들의 성력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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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면 대략 둘러봤다.
오늘 일몰은 7시 23분이었으니까 앞으로 1시간의 여유가 있구나.
이제 서둘러서 용장성으로 가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