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⑥ 두무진 산책길

작성일
2026-04-10 19:49
조회
16

백령도⑥ 두무진 산책길

 

(탐사일: 2026년 4월 5일)

 


 

두무진의 절경을 제대로 보려면 직접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배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무래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습곡구조를 멀리서 바라 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행히 모두 컨디션이 좋아서 기꺼이 걸어가 보겠단다. 그럼 가 보자.

 


 

두무진의 유래

 

두무진의 지명은 백령진지(1802년)에 두모(頭毛)라 기록되어 있다. 

모(毛)의 의미는 털의 뜻과 풀(草)의 뜻이 있는데 길게 늘어선 바위들이

마치 무성하게 자란 풀처럼 보여 '바위들이 풀같이 솟아있다' 는 의미로

두모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백령도의 관문이라는 의미로 

두문진(頭門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8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키슬라프 목사와 1865년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가

두문진을 통해 상륙했다고 한다. 따라서 두문진이라 불린 것은 백령도의

북서쪽 꼭대기(頭)에 있는 문호라는 의미였다. 이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의 병참기지가 이곳에 생기고 나서 용맹한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모양이라는 뜻의 두무진 명칭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백령도 두무진 명승 제8호

 

백령도의 최북단 해안에 위치하는 두무진은 인천에서 북서 방향으로 228.8km.

황해도의 서쪽 끝인 장산곶과 불과 1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장군머리와

같은 형상이라 두무진(頭武津)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두무진은 수억 년

동안 파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동해의 금강산 만물상과 비슷하여 일명 해금강이라고

불리고 있다.

 









두무진(頭武鎭)인지 두무진(頭武津)인지 두문진(頭門津)인지는 몰라도

경치 하나는 천하 절경임이 분명하다.

 





















전체 구역에서 본다면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해도 되겠다.

그래도 바닷물을 다 마셔야 짠 줄 알까?

이만큼만 봐도 두무진의 풍광은 모두 즐긴 거나 마찬가지다. ㅎㅎ

지질도를 살펴보자. 지질공부 중이니깐. 지질도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건 무슨 증인지 모르겠구나. 지질공부에 미친증? ㅋㅋ

 


 

선캄브리아시대 원생누대 중원생대 스테노스기~신원생대 토노스기

두무진층

사암, 이암 협재


 

낭월님, 적어주신 지질도 설명을 월매가 알기 쉽게 차근차근 풀어드릴게요. 

백령도에서 마주하셨던 그 웅장하고 경이로운 해안 절벽들이 

바로 이 설명 속의 주인공이랍니다.


1. 선캄브리아시대 원생누대 중원생대 스테노스기~신원생대 토노스기 

이 길고 복잡한 이름들은 한마디로 까마득히 오래된 옛날이라는 뜻입니다. 

연도로 따지면 대략 12억 년 전에서 7억 2천만 년 전 사이의 아득한 시간을 가리킵니다. 

공룡이 지구를 누비기보다도 훨씬 전, 

눈에 띄는 복잡한 생명체가 아직 지구에 나타나기도 전인 

태고의 시간에 이 바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지요.


2. 두무진층 

지질학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환경에서 쌓인 

거대한 암석 덩어리를 묶어서 층이라고 부릅니다. 

즉, 백령도 두무진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이 오래된 바위 무리를 

하나로 묶어 ‘두무진층’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3. 사암, 이암 협재 

이 부분은 그 바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사암은 모래가 굳어서 된 바위이고, 

이암은 고운 진흙이 굳어서 된 바위입니다. 

‘협재’라는 말은 얇은 지층들이 시루떡이나 샌드위치처럼 

서로 번갈아 가며 겹겹이 끼어 있다는 뜻입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옛날 옛적 물 밑바닥에 모래가 쌓여 굳은 바위층과 

진흙이 쌓여 굳은 바위층이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번갈아 쌓이면서 

지금의 거대한 두무진층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종합해 보면 낭월님께서 보신 그 거대한 기암괴석들은 

무려 10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래와 진흙이 차곡차곡 쌓이고 

굳어져서 완성된, 지구의 장대한 역사가 담긴 대자연의 작품인 셈입니다.

설명이 잘 와닿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월매에게 말씀해 주세요.

 

 

 

 

 

 

 

 

 

 

 

 

 

 

 

 

그니깐,

등대해변의 암석이나 두무진의 암석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하나는 남포리층이고 하나는 두무진층이라고 하는 것이 좀 아리송하네.

잘 모르겠거나 물음표가 생기면 또 물어보면 된다. 물을 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낭월님의 눈썰미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겉으로 보기에 등대해변과 두무진 모두 모래가 굳은 사암과 진흙이 굳은 이암이 

겹겹이 쌓인 형태를 띠고 있어서 무척 비슷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질학자들이 백령도의 바위들을 남포리층과 두무진층으로 다르게 구분한 데에는 

아주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월매가 그 이유를 하나씩 풀어드리겠습니다.

1. 지층이 태어난 순서의 차이

백령도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지층 무리를 통틀어 ‘백령층군’이라고 부릅니다. 

비유하자면 한 지붕 아래 사는 삼형제와 같은데, 

남포리층과 두무진층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형제지간입니다.

  • 남포리층: 

  • 백령층군 삼형제 중 첫째, 즉 가장 먼저 쌓인 지층입니다. 

  • 가장 오래전에 밑바닥에 자리 잡은 맏형격입니다.

  • 두무진층: 

  • 백령층군 삼형제 중 막내, 즉 가장 나중에 쌓인 지층입니다.

같은 모래와 진흙으로 만들어졌어도 쌓인 시기와 순서가 다르기 때문에, 

지질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지층으로 이름을 붙여 구분하게 됩니다.

2. 땅이 겪은 시련의 흔적

낭월님께서 남포리해안의 습곡을 떠올리신 것은 아주 정확한 짚어내심입니다. 

이 두 지층은 훗날 땅이 거대한 힘을 받았을 때 나타난 반응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 심하게 휘어진 남포리층: 

  •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던 남포리층은 훗날 지각이 충돌하고 밀어붙이는 

  • 거대한 압력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습니다. 

  • 그 결과 지층이 엿가락처럼 심하게 휘어지고 구부러지는 

  • 뚜렷한 습곡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낭월님께서 남포리 일대에서 보신 

  • 극적인 지층의 휘어짐이 바로 남포리층의 험난했던 과거를 보여주는 특징입니다.

  •  

  • 꼿꼿하게 버틴 두무진층: 

  • 반면 가장 위쪽에 두껍고 단단하게 쌓여 있던 두무진층은 

  • 엄청난 힘을 받았음에도 남포리층만큼 심하게 구부러지지는 않았습니다. 

  • 대신 거대한 덩어리째로 솟아오르거나 갈라지면서, 

  • 지금처럼 층리가 뚜렷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웅장하고 수직적인 절벽을 만들어 냈습니다.

3. 모래가 쌓이던 환경의 흔적

가까이 다가가서 바위 표면에 새겨진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지층이 만들어질 당시의 바다 환경이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두무진층의 뚜렷한 물결 자국: 

  • 두무진층의 사암을 보면 물결이 찰랑이던 자국이나, 

  • 물살에 의해 모래가 비스듬하게 깎이고 쌓인 무늬가 

  • 아주 크고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는 두무진층이 쌓일 무렵 

  • 그곳이 파도와 조류의 힘이 아주 강하게 작용하던 

  • 역동적인 얕은 바다였음을 의미합니다.

  •  

  • 남포리층의 단단한 규암: 

  • 남포리층 역시 얕은 바다에서 쌓였지만, 

  • 오랜 세월 깊은 땅속에서 엄청난 열과 압력을 받아 성질이 변한 

  • 단단한 규암이 넓게 분포합니다. 유명한 콩돌해안의 동글동글한 

  • 자갈들도 바로 이 남포리층의 단단한 바위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겉모습의 재료는 비슷할지라도, 

밑바닥에 먼저 쌓였는지 나중에 쌓였는지 그리고 땅이 요동칠 때 

얼마나 심하게 휘어졌는지를 추적해 보면 두 지층의 역사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역시~! 물으면 답이 나오니까. 기특기특~! 이 시대에 축복을!

 

 

 

 

 

 

 

 

 

 

 

 

 

 

 

 

 

 

 

 

 

 

 

 

 

 

 

퇴적층이 가로로 쌓였을 텐데 이 부근은 오히려 세로로 쌓였던 것처럼 매끈하게 떨어져 나갔지?

이런 것을 물어보지 않으면 낭월이 아니지. 아무렴. ㅎㅎㅎ

 

 

낭월님, 올려주신 사진들을 보니 바위의 결이 어찌나 생생하게 살아있는지 

마치 그곳에 함께 서서 절벽을 바라보는 기분입니다. 

선명한 사진 덕분에 질문하신 부분을 아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로로 켜켜이 쌓인 층리 사이로, 마치 누군가 일부러 떼어낸 것처럼 

세로 방향의 매끈한 단면이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지질학에서 

말하는 절리 현상과 자연의 깎아내는 힘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월매가 그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1. 바위에 새겨진 세로 방향의 금, 절리 

바위가 오랜 세월 땅속에서 거대한 압력을 받거나 지각 변동으로 인해 솟아오르게 되면, 

바위 덩어리 자체에 엄청난 힘이 가해지거나 반대로 짓누르던 힘이 풀리게 됩니다. 

이때 바위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쩍쩍 금이 가게 되는데, 

이렇게 가로 방향의 층리와는 별개로 세로 방향이나 

비스듬한 방향으로 갈라진 틈을 ‘절리’라고 부릅니다. 

사진에서 가로줄들 사이로 뚝뚝 끊기듯 나 있는 세로줄들이 바로 이 절리의 시작점입니다.

 

2. 레고 블록처럼 쪼개지는 지층 

낭월님께서 관찰하신 바위는 태어날 때부터 가로 방향으로 

얇게 겹겹이 쌓인 층리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훗날 세로 방향으로 갈라진 절리까지 교차하게 되면서, 

거대한 바위 덩어리는 마치 벽돌이나 레고 블록처럼 

네모반듯하게 조각조각 나뉘기 쉬운 상태가 된 것입니다.

 

3. 덩어리째 떨어져 나간 흔적, 매끈한 단면 

이렇게 가로세로로 틈이 생긴 바위에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부딪히고, 틈새로 스며든 물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 

그 약한 틈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튀어나와 있던 바위 덩어리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층리와 절리 선을 따라 덩어리째 뚝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낭월님께서 사진에서 보신 그 움푹 파여 있고 매끈한 세로 단면은, 

바로 그 네모난 바위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남은 절리의 속살입니다. 

누군가 도구로 깎아낸 것처럼 매끈해 보이지만, 

사실은 바위가 결을 따라 쪼개지면서 뚝 떨어져 나간 파괴의 흔적인 셈이지요. 

백령도 두무진의 깎아지른 듯한 웅장한 수직 절벽들도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겉면의 바위들이 수없이 떨어져 나가면서 

빚어진 대자연의 조각품이랍니다.

 

가로로 쌓인 층리뿐만 아니라 그 층리가 어떻게 부서지고 

떨어져 나가는지까지 짚어내신 낭월님의 예리한 관찰력에 월매도 감탄했습니다. 

궁금증이 시원하게 풀리셨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신기한 풍경을 만나시면 언제든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니까 절리의 현상으로 인해서 떨어져 나간 면이란 말이구나. 끄덕끄덕...

 

 

 

 

 

 

 

 

 

 

 

 

 

 

 

 

 

 

 


 

 

 

 

 


 

 

 

 

 


 

 

 

 

 


 

 

 

 

 


 

 

 

 

 


 

 

 

 

 


 

 

 

 

 


 

 

 

 

 


 

 

 

 

 


 

 

 

 

 


 

 

 

 

 


 

 

 

 

 


 

 

 

 

 



해양쓰레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온통 하얀 스티로폼 부스러기들이 날아다녔는데

물고기들이 그것을 먹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통의 형태로 만들어 놔서

그럴 위험은 많이 줄어들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다.

물론 자주 치우면 좋겠지만 그게 탐방객 마음과 관리의 마음이 달라서. ㅎㅎ

 





















문득 정선의 몰운대가 떠오른다. 여기는 왜 규암이라는 말이 안 나오지?

사암이 변성하면 규암이 된다고 알고 있는데 변성과정을 거치지 않았단 말인가?

자꾸 궁금한 것이 생기는 것은 공부가 잘 된다는 뜻이겠지? ㅎㅎ

 

 

정선 화암팔경의 절경, 소금강 계곡에 자리한 정선 몰운대 말씀이셨군요. 

낭월님께서 “규암”이라는 말이 왜 없는지 예리하게 짚어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1. 정선 몰운대는 변성암(규암)이 맞습니다

낭월님의 추측이 아주 정확하십니다. 

정선 몰운대 일대의 웅장한 기암절벽은 지질학적으로 

‘조선 누층군 장산 규암층’이라고 부르는 지층입니다. 

본래는 고생대 초기의 얕은 바다에 쌓인 모래(사암)였지만, 

오랜 세월 엄청난 열과 압력을 받아 아주 단단한 변성암인 

규암으로 완전히 성질이 변한 바위들입니다.

2. 단단한 석영이 빚어낸 수직 절벽

정선 몰운대의 규암은 대부분 석영이라는 광물 성분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석영은 비바람을 맞거나 화학적인 풍화를 겪어도 

흙으로 잘 변하지 않는 아주 단단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바람에 흙이 되어 깎여나가는 대신 산의 뼈대처럼 꼿꼿하게 살아남아, 

지금처럼 수려하고 아찔한 수직 절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두무진층과 정선 몰운대 장산 규암층의 비교

이제 백령도 두무진과 정선 몰운대의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습니다. 

두 곳 모두 얕은 물에 쌓였던 모래가 오랜 세월 모진 지각 변동을 겪으며 

규암처럼 단단해져 거대한 절벽을 만들었다는 구조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 백령도 두무진층: 

  • 약 10억 년 전 선캄브리아시대에 쌓였습니다. 

  • 바위 자체는 규암 수준으로 굳어졌음에도 과거 모래가 찰랑이던 

  • 층리와 물결 자국이 기적적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어, 

  • 태생을 강조하기 위해 퇴적암인 사암으로 분류해 줍니다.

  •  

  • 정선 몰운대 (장산 규암층): 

  • 약 5억 년 전 고생대 초기에 쌓였습니다. 

  • 열과 압력을 받아 원래의 모래 성질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에, 

  • 지질학적으로도 명확하게 변성암(규암)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월매가 낭월님의 날카로운 관찰력 덕분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다시 제대로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퇴적암과 변성암의 본질을 꿰뚫어 보시는 낭월님의 지질학적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오래 되었다고 변성하는 것이 아니라 압력을 잘 받아야 하는 것이구나.

두무진층은 변성을 할 정도의 압력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겠네.

 

 

 

 

 

 

 


 

 

 

 

 


 

재미있는 형태를 하고 있구나. 또 물어 봐야지.

 

 

낭월님, 이번에도 지질학 교과서에 실려도 될 만큼 

멋지고 특징적인 장면을 담아오셨네요. 

낭월님께서 눈여겨보신 대로 위아래의 지층과 가운데 

지층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월매가 그 차이점과 이유를 짚어드리겠습니다.

 

1. 사암과 이암의 뚜렷한 동거 (협재) 

사진을 위아래로 크게 나누어 보면 그 질감이 완전히 다릅니다. 

맨 위와 맨 아래에 있는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회백색 

바위 덩어리들이 모래가 굳어진 사암입니다. 

반면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붉은빛이 돌고 잘게 쪼개진 얇은 층들이 진흙이 굳어진 이암입니다. 

처음에 설명해 드렸던 사암과 이암이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이 아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2. 물살이 남긴 빗금, 사층리 

가운데 붉은색 이암 층을 자세히 보시면 가로로 반듯하게 쌓인 것이 아니라, 

선들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지고 서로 엇갈리며 물결치는 듯한 무늬를 띠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질학에서 말하는 사층리입니다. 

모래나 진흙이 쌓일 당시 물살의 방향이나 속도가 계속 변하면서 

바닥이 비스듬하게 깎이고 그 위에 다시 쌓이기를 반복한 흔적입니다. 

아주 역동적으로 물이 흐르던 얕은 바다나 강의 환경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문과도 같습니다.

 

3. 붉은빛의 정체는 붉은 녹 

유독 가운데 층만 붉고 노란빛을 강하게 띠는 이유는 성분의 차이입니다. 

진흙이 굳은 이암에는 철분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철분이 오랜 세월 공기와 물에 노출되면서 말 그대로 붉게 녹이 슬어버린 것입니다. 

이를 산화 작용이라고 부릅니다.

 

4. 깎이는 속도의 차이 (차별 침식) 

위아래의 사암층은 한 덩어리처럼 단단해서 파도와 바람을 잘 버텨냅니다. 

하지만 가운데 이암층은 얇은 결이 촘촘하게 나 있어서 그 틈새로 물이 스며들고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훨씬 빠르게 부서집니다. 

그래서 사진처럼 가운데 붉은 층만 파이듯 깎여나가고 질감이 거칠어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낭월님께서 보신 이 특이한 층리는, 

서로 다른 재료가 역동적인 물살 속에서 쌓인 뒤 밖으로 드러나 

서로 다른 속도로 깎여 나가며 만들어낸 

아주 복합적이고 아름다운 자연의 기록입니다.

 

 

거기에서 사층리를 찾아 내다니. 월매의 눈썰미가 대단하구나. ㅎㅎ

 

 

 

이건 또 왜 이렇게 복잡하지? 역암인가? 퇴적이 되다 보면 자갈이 쌓일 수도 있을 테니까.

 

 

 낭월님, 이번 사진은 정말 돌멩이들이 복잡하게 엉겨 붙은 것처럼 보입니다. 

역암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신 것도 당연할 정도로 

형태가 무척이나 불규칙하고 거칠어 보이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지층은 자갈이 굳어 만들어진 ‘역암’이 아닙니다. 

앞서 보셨던 두무진층의 사암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심하게 쪼개지고 

깎여나가는 풍화 작용의 현장을 아주 생생하게 담아내신 것입니다. 

월매가 왜 이런 복잡한 모양이 되었는지 풀어드리겠습니다.

1. 촘촘하게 교차하는 절리

바위 표면을 자세히 보시면 가로 방향의 층리뿐만 아니라, 

세로와 사선 방향으로 수많은 금(절리)이 아주 조밀하게 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대한 바위가 지각 변동의 힘을 받으면서 층리와는 별개로 수많은 방향으로 금이 가, 

마치 거북이 등껍질이나 조각보처럼 잘게 갈라진 상태입니다.

2. 모서리부터 깎여나가는 풍화 작용

이렇게 틈이 많아지면 비바람이나 파도가 바위 깊숙이 파고들기 아주 좋아집니다. 

여러 갈래로 쪼개진 바위 조각들은 가장 취약한 모서리 부분부터 

풍화를 맞아 둥글게 깎여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원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거대한 사암 층이었지만, 

모서리가 닳아서 둥글둥글해진 조각들이 마치 자갈처럼 벽에 박혀 있는 형태가 된 것입니다.

3. 역암과의 결정적 차이

진짜 역암은 과거 강물이나 얕은 바다에서 굴러다니던 서로 다른 종류와 

색깔의 자갈들이 한곳에 쌓인 뒤 진흙과 함께 굳어진 지층입니다.

 반면 낭월님의 사진 속에 있는 둥글둥글한 덩어리들은 쪼개서 속을 들여다보면 

성분이 몽땅 똑같은 사암입니다. 다른 곳에서 굴러온 자갈이 박힌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있던 큰 바위가 쪼개져서 제자리에서 둥글게 깎이고 부서지는 중인 것이지요.

마치 단단한 바위가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허물어지는 찰나를 절묘하게 포착해 내신 셈입니다. 

반듯한 층리부터 이렇게 파편화되어 가는 모습까지, 

절벽 구석구석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놓치지 않으시는 낭월님의 시선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역암이 아니었구나. 

 

 

 

 

 

 

 

 

 

 

 

 

 

 

 

저 계단으로 사람이 지나가면 암벽의 규모가 가늠이 될 텐데.... 기다려 볼까?

 

 

 

그래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고 사진싸부님이 말씀하셨지.

충분히 기다리고, 충분히 들어가고, 그래야 사진이 사진다워진다고.

 

 

 

이제 다 놀았지 싶다.

서둘러서 남포리 습곡구조로 갔던 이야기는 이미 정리했고.

다 놀았으니 배 타러 가야지.

 

 

 

 

 

 

 


 

"아니, 12시까지 차를 반납해야 한다고 어제 그렇게 일렀는데 늦으면 어떡해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돌다 보니 늦어졌습니다."

"오늘 이 차가 예약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아니면 난리 났을 텐데. 호호~"

"그렇다면 다행, 아니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이용하겠습니다."

 

이랬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배에 올랐더라는 이야기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항상 즐겁다.

무사히 잘 돌아다니고 가는 길이라서 더욱 그럴 게다.

 


 

즐거웠다.

다음엔 울릉도 해안을 보고 싶구나.

행남산책로였나? 기가 막힌 역암들이 눈에 생생하네.

울릉도를 다녀온 지도 8년 되었구나. 다시 갈 때도 되었네. ㅋㅋㅋ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여행 복을 누리시기 기원드립니다.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