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도⑥ 노화동 주상절리

작성일
2026-04-09 07:2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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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도⑥ 노화동 해변 좌측, 휘록암주상절리 

 

(탐사일: 2026년 4월 3일)

 


 

해설사 나영운 선생의 안내를 받고서 부지런히 걸었다. 노화동을 향해서.

소청도에는 마을이 두 개 있다고 했다. 예동과 노화동이다.

그런데 나그네가 보기에는 탑동도 이름은 마을인데 왜 제외하는가?

물론 현장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주민이 없어서다.

어제 등대에서 돌아오면서 기사가 차로 한 바퀴 돌아 줬던 노화동이다.

아쉬운 점은 그때 노화동 해변에는 주상절리와 해식동굴이 있다고 했었더라면...

오늘 낭월이 안개 속을 헤치고, 노구(?)를 이끌고 걷지 않아도 되었겠다는. ㅎㅎㅎ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올해로 세상 나이 70이 되었단 말이지.

그래서 늘 생각한다. 오늘 가보지 않으면 언제 또 갈 수 있으랴~ 하는...

 


 

혼자 걸으니 생각할 것이 많아서 좋다. 

역시 사색은 걸으면서 하는 것이 최상인 걸로.

오늘이 가장 젊고 지금이 가장 빠른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10억 년 전의 암석 노두를 보면서 삶의 순간을 생각한다.

 

순간을 사는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영원을 사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


한량없는 세월이라고 해도 즉 한 생각에 있고

한 순간의 짧은 생각이라고 해도 영원의 시간이다

 

의상 대사가 법성게에 담아 놓은 귀중한 한 말씀이 낭월의 좌우명이다.

차를 타고 우르르~ 가서 둘러보면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보상으로 주어진다.

 


 

오가는 차도 별로 없다. 그러니 태워주겠다는 말을 들을 일도 없다.

뭐, 은근히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대도 하지 않았다. ㅠㅠ

 


 

호젓한 소청도의 길을 누리면서 걸어가는 시간이 오붓해서 좋다.

12시에 밥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왔다. 알았다고 했다.

이미 10시 52분인데 1시간만 주어진단 말이지? 뭐 안 되면 굶지. ㅋㅋ

 


 

 

 

 


 

등대로 가는 길 중간에 노화동으로 가는 표지석이 나타난다.

이제 내리막이다. 걷는 데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좋기는 하지.

 


 

표지석 아래에는 노화동의 유래도 써 놨구나. 잘 하셨구먼.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갈대가 많았다는 것은 좀 특이하기는 하네.

갈대는 보통 습지에 자라는 식물이지만 환경에 적응했던가 싶기도 하다.

 


 

 

 

 

 


 

 

 

 

 


 

흐릿한 가운데 영국도 보이고 맥레오드도 보인다.

뭔가 사연이 있었던가 싶어서 월매를 소환했다.

 

 

소청도 노화동과 영국 해군의 만남

낭월님, 소청도 노화동에 영국 해군이 정박했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월매가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1. 영국 함대의 서해안 탐험 

1816년 조선 순조 16년에 있었던 흥미로운 일입니다. 

당시 영국은 청나라와의 무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이 사절단을 호위하기 위해 영국 해군의 군함 두 척이 동행했는데, 

바로 머리 맥스웰 대령이 지휘하는 주함 알세스트호와 

바실 홀 함장이 이끄는 리라호였습니다.

사절단이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 이듬해 광동에서 합류하기까지 

약 다섯 달의 여유가 생기자, 군함들은 그 시간을 활용해 발해만과 

조선의 서해안 일대를 탐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 노화동 앞바다에 닻을 내리다 

1816년 9월 1일경, 탐험에 나선 영국 함대는 

마침내 소청도를 발견하고 닻을 내리게 됩니다. 

이때 두 군함이 정박했던 곳이 바로 소청도의 노화동 마을 앞바다였습니다. 

영국 해군들은 섬에 상륙하여 소청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조선의 주민들과도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3. 서양에 최초로 알려진 조선인의 모습 

이 사건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그림 기록 때문입니다. 

알세스트호에는 군의관 맥레오드와 화가 하벌 등 여러 전문가가 타고 있었습니다. 

탐험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간 맥레오드는 1818년에 조선 항해기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는 화가 하벌이 스케치한 소청도 주민들과 

조선의 관리와 수행원이라는 두 점의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 

이는 조선 사람의 생생한 실제 모습을 서양 세계에 최초로 소개한 

아주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4.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로 이어지다 

소청도 일대를 살핀 영국 함대는 남쪽으로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이후 충청남도 서천 마량진에 당도한 이들은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책을 건네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성경 전래 사건입니다.

 

 

 


 

 

오늘날 소청도 노화동 마을에 가보시면 길가 담벼락에 

당시 노화동 앞바다를 찾아왔던 리라호와 알세스트호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조촐하게 남아 있습니다. 

조용한 섬마을인 노화동이 서양의 거대한 함대와 조선의 백성이 마주쳤던 

세계사적인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점이 무척 새롭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1816년이면 209년 전이었네.

소청도에 김대건 신부 동상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어.

월매 덕에 소청도의 역사도 한 자락 공부하면서 길을 간다.

 


 

 

 

 

 


 

방파제가 튼튼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구나.

 


 

여기에서도 홍합 따는 배를 놓고 있구나.

 


 

좁은 틈을 만들어 놨구나. 파도가 세긴 한 모양이다. 

차량은 들어가지 말라고 줄을 쳐 놨지 싶다.

 


 

드디어 노화동 해안에 도착했다. 걸린 시간은 20분? 25분? 정도 걸렸구나.

금쪽같은 시간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주상절리는 왼쪽 해안에 있다고 알려 줬으니까 가보자.

 


 

쓰레기장이 있다고 하더니 그대로 보이는구나.

이런 것들로 인해서 지질명소로 지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말씀에 끄덕끄덕~

 


 

큰 자갈은 위에, 작은 자갈은 아래에 있으니 퇴적암의 층과는 반대라고 해야 하나?

 


 

하나하나가 수석감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예쁘게 마모되었다.

 


 

흠....

주상절리라고? 어디가? 싶었다.

거무튀튀한 휘록암 노두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뭐든 자세히 봐야 보이는 법이다. 뭔가 드러난다.

 


 

맞네! 주상절리가 맞아. 

머릿속에서는 제주도 중문의 주상절리를 떠올렸고,

경주 양남동의 주상절리도 떠올렸지만...

여기는 어쩌면 구룡포의 주상절리와 가장 가깝지 않은가 싶다.

 


 

 

 

 

 


 

주상절리는 화성암이라는 뜻일게고 

소청도의 화성암은 휘록암만 보이므로

여기의 지질은 당연히 휘록암이 바탕암일 것이란 짐작.

이제 지질도를 펼쳐서 확인만 하면 된다.

 


 

 

 

 


 

예상한 대로구나. 이런 지질공부라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데 말이지. ㅎㅎ

10억 년 전에 형성된 반심성암인 휘록암에 의해서 만들어진 주상절리구나.

현무암, 안산암 주상절리는 많이 봤는데 휘록암 주상절리는 처음이다.

언뜻 봐서는 현무암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다르다니까 다르겠지?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스스로 깜짝 놀란다. 공부가 제법 된 건가? 

2023년 3월에 백도 유람선에서 바라본 화강암에 푹 빠져서 시작한 공부가 

올해로 3년 차구나. 뭐든 3년 공부면 면무식(免無識)은 하는 모양이다. ㅋㅋ

 


 

 

 

 

 


 

 

 

 

 


 

규격화된 육각은 아니라도 오히려 자유스러운 모습이 예쁘다.

중간에 보이는 붉은 색은 산화철이겠거니 싶다. 

 

소청도의 휘록암에는 철과 마그네슘이 풍부하게 들어있기 때문에

대기 중에 노출이 되면 철은 산화가 되어서 붉어지는 까닭이다.

 

 

 

 

 

 

 


 

이 구역을 벗어나면 주상절리는 사라진다. 

딱 한 부분에서만 형성되었나 보다.

 


 

 

 

 

 


 

 

 

 

 


 

 

 

 

 


 

지의류들이 바위를 분해시키느라고 오늘도 분주하구나.

 


 

여긴 녹색이 더 짙구나. 혼합비율이 달랐던 모양이다.

 


 

 

 

 

 


 

잘 봤다. 이제 물러나서 전경을 하나 담자.

 


 

그래도 옹벽으로 싸 바르지 않고 돌려놔서 다행이다.

공사를 한 사람도 주상절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었나 싶다.

 


 

왼쪽을 봤으면 오른쪽도 보는 것이 탐사의 기본이지. 암.

 


 

별반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가까이 가 봐야지.

 


 

 

 

 

 


 

해식동굴이 뚫려서 씨 아치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코끼리가 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다. ㅎㅎ

 


 

노두는 지층이 없는 것으로 봐서 휘록암으로 보면 되겠다.

 


 

막힌 동굴도 있구나.

 


 

 

 

 

 


 

 

 

 

 


 

 

 

 

 


 

반대쪽 면에서도 바라본다. 비슷한 구조로 보인다.

 


 

더 가보지 않아도 되지 싶어서 걸음을 돌렸다.

 


 

반대쪽에서 바라본 노두.

 


 

 

 

 

 


 

 

 

 

 


 

접사도 남겨놔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줄어들지. ㅎㅎ

 


 

파도가 꽤 거칠어진다. 아무래도 오늘 배가 뜰지는 장담할 수가 없겠다.

 


 

노화동을 지키는 예쁜 동백꽃이 나그네를 위로한다.

 

 

 

당나무로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와도 작별했다.

 

 

 

하수종말처리장을 만드느라고 중장비들이 분주하다.

 

 

 

다시 김대건 동상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시간은 12시 4분이구나. 많이 늦지는 않았네. 

 

 

 

점심을 먹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전해 준다.

 

"인천항에서 코리아 프라이드는 통제되었다고 하네요."

 

다들 가거도에서 일주일을 묶여 봤던 사람들이라서 그러려니 한다.

'푹 쉬고 내일 가면 되죠 뭐.' 란다. 

그래 모쪼록 여행객은 그래야지. ㅎㅎ